얼마 전 도예가 한봉림씨 작업실에서 벌인 난장 퍼포먼스로 뒷말이 많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으나,
그 행위 자체에 대리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더구나 그 난장판에 법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도 의아해 했다.

한봉림씨는 그 난장판을 치우고 정리하느라 사흘이 걸렸다지만,
가족의 원망 받아가며 부글부글 끓인 속은 보나 마나다.
문제는 작품을 망가트리고, 기물을 부순 경제적 손실에 앞서,
퍼포먼스를 폭력으로 이끈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가 없다는 점이다.

차마 두려워서 전화조차 할 수 없었다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어린애도 아닌 사람이 여지 것 아무런 대꾸가 없다는 것은
잘 못을 시인하지 못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난 25일 복구 현장을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보내며,
껄껄 웃는 한봉림씨 전화에 뱃심 좋은 그의 기질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어이~ 친구! 그 친구가 멋진 작품 하나 만들었어.
뻥 뚫린 구멍으로 울분을 날려 버린 멋진 작품이야!”
“작품제목은 뭔데?”라고 물었더니. 대뜸 ‘미지랄’이란다. 즉 미친놈 지랄이란 뜻이다.

겹 유리창이라 가능했지만, 깨진 유리를 그대로 둔 채, 
사방을 검게 칠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구멍 뚫린 그림도 보수했다지만, 흔적은 조금 남았단다.

그림의 훈장으로...

그동안 속 끓인 사정을 생각하면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파괴 현장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마음의 울화까지 날려버린 호탕함에 속이 후련해진다.
오늘, 서예가 여태명씨가 위로 차 작업실에 들렸다가 그 작품을 보더니.
‘이 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작품은 없다’며 좋아 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깨진 거울에 그림을 그리는 이발소 그림이란 게 있었지만,
그 것이 감추기 위한 그림이었다면, 이건 드러내기 위한 현장 작업이었다.
이 보다 더 힘 있는 현장감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이 작품은 떼어 낼 수도 없으니, 구입하려면 집채 사야할 대작이다.

이제 더 이상 가해자에게도 사과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둔다면, 평생 멍에로 짊어져야할 무거운 짐일 테니까...

사진: 한봉림 / 글: 조문호



한봉림의 '포말 퍼포먼스' 일화를 모른다면 아래를 클릭하면 된다.


http://blog.daum.net/mun6144/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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