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핀란드 수교50주년을 기념하는 이어지다전에

고 안애경의 헌신을 기억하려는 예술창고가 마련되었다.

 

그녀가 수집한 컬렉션과 워크샵을 통해 한국과 핀란드 수교 50주년의

발자취를 기념하며 함께 나아 갈 길을 모색하려는 취지다.

 

  지난 21일부터 인사동 코트에서 열린 안애경 예술창고에서 릴레이 뜨개 워크숍도 열린다.

 

  주한 핀란드대사관과 그녀의 가족을 비롯한 친구들이 힘을 모아 마련한 전시에는

자연이 일상에 스며들어 디자인이 된 창조물을 소개해 온, 한 사람의 열정과 노력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안애경(64)씨는 일 년 전 광주에서 과로로 쓰러져, 일주일간 사경을 헤매다 목숨을 잃었다.

 

  그 일주기를 맞아 필란드 대사관에서 그녀의 추모 공간을 겸한 특별한 자리를 만들었는데,

그녀의 공적을 한국보다 필란드가 더 인정하는 것 같았다.

 

  안애경씨는 미술, 공예,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즐겨 온

예술가이자 디자이너, 큐레이터이자 아트디렉트였다.

 

   '핀란드국립박물관'과 '필란드디자인뮤지엄', '핀란드공예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한국 공공디자인 엑스포' 등의 초청 큐레이터로 일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한 일상 속의 디자인과 건축 및 예술교육을 소개하며,

국제전시와 교육프로그램 등을 기획하여 진행해 왔다.

 

  북유럽의 자연과 삶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북유럽 친구들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예술교육을 진행했는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학교디자인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녀는 핀란드와 서울을 오가며 북유럽 문화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친환경적인 예술을 추구하며 우리네 삶을 개선하는데도 온 힘을 쏟아왔다.

 

  그녀의 삶은 사는 것 자체가 예술이었다.

미술과 디자인은 일상에 뭔가 써 먹을 수 있어야 한다며,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발견해 만들어갔다.

사람 속에서 출발하는 것이 디자인이었고, 디자인이 그녀의 삶이었다.

 

  마음의 상처가 생길 때마다 책을 쓴다는 그녀는 소리 없는 질서’, ‘핀란드 디자인산책’,

북유럽디자인’, ‘북유럽학교 핀란드’, ‘북유럽학교 노르웨이등 여러 가지 책도 펴냈다.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은 6년 전 인사동 '통인가게' 김완규회장이 초대한 오찬회에서다.

동자동에서 찍은 사진들을 빈민에게 돌려주는 빨래 줄 전시를 할 것이고 했더니,

자기도 구경하고 싶다며 관심을 보였다.

 

  그게 인연이 되어 서로 오 가게 되었는데, 허리 관절염으로 비좁은 쪽방에서 제대로

누울 수가 없다는 글을 페북에 올렸더니, 핀란드 목공예가를 이끌고 달려왔다.

좁은 공간에 맞는 목침대를 직접 만들어 줄 정도로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나 역시 그녀가 기획 추진한 서서울호수공원에 만든 ‘예술로 놀이터

어린이 아트캠프, 오산에 만든 어린이 놀이공간 ’나무처럼‘ 같은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친환경에 관한 세미나나 워크숍 등 그녀가 하는 일마다 유심히 지켜보게 된 것이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열린 워크숍에서는

'우리는 지금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질문을 던져 많은 깨우침을 얻기도 했다.

 

  한 번은 에로 수오미넨 주한 핀란드 대사가 마련한 대사관저 만찬 초대를 받았는데,

그동안 핀란드를 오가며 문화전도사 역할을 해 온 그녀의 역량을 재확인한 자리가 되었다.

 

  한국과 핀란드 수교50주년을 기념하는 '안애경의 예술창고'는 고인의 언니 안병애씨 노력으로 꾸며졌다.

 

소장품인 이딸라 유리 블로잉, 파이프로 만들어낸 오이바또이카 컬렉션 꽃병 등

핀란드를 상징하는 도자기 작품들도 선보였다.

 

  전시장 벽에는 안애경씨가 고등학생 때 그린 작품으로, 대학 미술제에 응모하여 입상한 작품도 걸렸고,

한 쪽 구석에 마련된 모니터에서는 안애경씨의 공적과 그녀의 아름다운 삶을 말하는

핀란드 친구들의 인터뷰가 소개되고 있었다.

 

  일주일동안 안병애씨가 진행하는 뜨개 워크숍에서 만들어 질 방석들은,

쪽방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동자동 빈민들에게 나누어 줄 계획이라고 한다.

 

  이 전시는 내일(29일) 까지라, 보실 분은 서두르기 바란다.

 

사진, / 조문호

 

 

지난주에는 줄초상으로 연이어 문상 가는 일이 생겼다.

조정순(91)씨는 연세가 많아 지병으로 돌아가신 호상이지만,

안애경(64)씨는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켜 목숨을 잃게 되었다.

안애경씨는 하는 일도 많은데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은, 난세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 더 안타깝다.

 

지난 8일 늦은 오후, 안애경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받았다.

평소 아픈 적도 없는 건강한 분이라 믿기지 않지만, 다가온 현실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정동지와 서둘러 시신이 안치된 이대목동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그녀는 독신이라 상주로는 자매 세 사람과 조카뿐이었다.

조카 이야기로는 뇌출혈로 쓰러져 두 차례나 수술받았지만,

일주일 동안 깨어나지 못하다 결국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안애경씨는 문화 전도사처럼 부지런한 삶을 살다 간 예술가다.

핀란드와 서울을 오가며 북유럽 문화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친환경적인 예술을 추구하며 우리네 삶을 개선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자유로운 삶을 누리거나 일을 놀이로 즐기는 행위를 비롯하여,

예술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 등 비슷한 생각을 가져 죽이 맞았다.

 

서서울호수공원에 만든 예술로 놀이터와 어린이 아트캠프 ‘TO BE FREE'

오산에 만든 어린이 놀이공간 나무처럼같은 어린이를 위한 일을 많이 했다.

'우리는 지금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열린 워크숍에서도 많은 깨우침을 주었다.

 

한번은 동자동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빨래줄 사진전을 열었는데,

빨간 종이꽃 한 송이를 만들어 와, 숱한 사람 중 강씨 머리에 꽂아주었다.

부끄러워하며,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는 강씨는 처음 보았다.

어린이와 가난한 약자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에 존경심이 일었다.

 

이제 그녀는 세상을 떠나고 없다. 누가 그의 일을 대신하겠는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사진이 위안했다.

부디 못다 이룬 꿈은 저승에서라도 이루길 바랍니다.

 

그 다음 날은 정동지의 고향 친척이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왔다.

정영신, 정주영씨 자매를 태워 인천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따라갔는데,

마치 장례식장이 이산가족 만나는 자리같았다.

다들 얼마나 반가웠던지, 상을 당한 슬픔은 뒷전이었다.

돌아가신 분이 집안 어른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이웃에서 살아 남다른 관계였다고 한다.

옛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한 아낙은 반가워 눈물까지 훔쳤다.

 

장성하여 다들 서울로 이사하는 바람에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마침 고인의 아들 정경갑씨가 정영신씨와 초등학교 동창이라 동창명부를 뒤져 알아 냈다고 한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시절이라

다들 시골에서 서울가야 사람답게 사는 줄 알았다.

노인만 남은 오늘의 시골이 잘 말해주지 않는가?

 

공부하여 돈 벌려면 시골에서는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리 아는 게 많고 돈이 많아도 인정이 메말라버린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더구나 핵가족화가 비정의 세상을 부추겼다.

이제부터라도 잊고 있었던 사람을 찾아내어 옛정도 되 찾자.

죽고 나면 지식이고 돈이고 아무런 쓸모없는 것이 아니던가?

 

아무튼, 세상을 떠나신 두 분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궁극의 자유는 죽음밖에 없다는 김용옥선생 말로 위안한다.

 

사진, / 조문호

 

 

 

안애경(64)씨가 광주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안애경씨는 예술감독이며 디자이너, 전시기획자이며 작가로 다양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동안 펴낸 서적으로는 '핀란드 디자인 산책', '북유럽 학교 핀란드' ,

'북유럽학교 노르웨이', '북유럽 디자인' 등이 있다.

 

며칠 전 '보안여관'에서 북 콘서트 열 때 가보았더라면 이렇게 안타깝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은 열심히 놀고 일할 때지만, 떠나는데 무슨 순서가 있겠는가?

너무 슬프다.

 

고인을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오년 전 인사동 통인가게김완규회장이 초청한 오찬 모임에서 처음 만났는데,

동자동 빨래줄 전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 번은 허리가 아파 고생한다는 소문을 듣고,

핀란드 목공예가 세 사람을 데려 와 쪽방에 맞는 침대를 만들어주기도 했고,

쪽방촌 잔치에서 빨래줄 전시가 열리면 찾아 와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그러한 사람에 대한 인정에 앞서 뛰어난 예술적 감성으로

자연을 끌어안는 삶의 방식은 늘 귀감이 되었다.

 

강연도 몇 차례 들어 보았는데, 생각이 앞서니 모든 게 앞섰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문화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순회 강연하라고 부추겼겠는가?

 

떠난 사람이야 천국에서 또 다른 세상을 살겠지만,

귀한 인재를 잃은 마음이 더 슬프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빕니다.

 

, 안애경 (64)

 

상주

자매 : 안병애, 안혜경, 안은경

조카 : 조아라, 조아름

조카사위 : 이정훈

 

빈소 : 이대목동병원장례식장 10호실

발인 : 2022 10 10 (월요일) 오전9

장지 : 벽제승화원

 

그동안 찍은 고인의 모습을 모았다.

 

 

 

 

 

 

 

 

 

 

 

 

 

 

 

 

 

 

 

 

 

 

 

모처럼 부암동 작업실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는 안애경씨 연락이 왔다.

지난 금요일 오후 무렵 정동지를 앞세워 부암동을 방문했는데, 공간의 대변신을 만난 것이다.

 

습기가 차 비어있는 반 지하 공간을 빌려 철거 공사 할 때 보았는데,

그 때가 엊그제 같건만 벌써 3년의 세월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세월은 말없이 저만큼 가버렸는데, 난 그동안 뭘 했단 말인가?

 

뜯어낸 벽돌 부스러기를 재활용하기 위해 산더미 처럼 쌓아놓았는데,

그 사이 멋진 생활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핀란드를 오갈 때마다 코로나 격리되는 시간에 조금씩 작업을 했다는데,

작업이라기보다 놀이처럼 즐긴 것 같았다.

 

벽에 붙은 갖가지 타일도 을지로 타일가게에 버려진 자재를 주워 모아 재활용한 것이었다.

그는 예술가며 실천하는 환경운동가다. 자기가 사용할 컵은 광주리에 담아 다닐 정도로...

 

얼마 전 오산에 어린이 놀이 공간 '나무처럼'을 완성했다는 소식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예상은 했지만 상상 밖이었다.

만든 사람 스스로 어린이가 되어 자기가 즐길 공간을 만든 것 같았다.

한 가지 이해 되지 않았던 것은, 관급공사에서 예술감독이 할 수 있는 한계를 알기 때문이다.

 

하기야! 필란드 있는 작가를 오산시장이 직접 만나 부탁한 일인지라 재량권이야 주었겠지만,

잘 못된 관습과 관행을 바꾸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안감독은 모든 걸 하나하나 설득하여 바꾸어 놓았다.

장애물에 불과한 현장소장이란 직책 자체를 없애 버리고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담당공무원부터 설득시켜 기존의 가치를 재정립하게 만들었다.

하청에 하청이 따라 붙으며 부풀려지는 견적구조도, 인부들이 자재를 아끼지 않는 관습도 모조리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필요한 재활용 자재가 관급공사 자재를 조달하는 조달청에 있겠는가?

 

놀이공간을 완성한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곳을 운영할 직원들의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안전과 질서만 강조하는 기존의 보육시스템으로는 어린이들의 창의적 활동에 장애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해보라 시키지 말고 그냥 노는 걸 지켜보라"는 말을 학부모들은 알아 듣지만,

단체로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교사들의 관습은 바꿀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시종일관 안전과 질서만 앵무새처럼 외우며 어린이를 길들이기에 혈안이란다.

 

커피 한 잔 나누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인근 주민들에게도 미운털이 박힌 것 같았다.

보육타운 마당에 차를 들이지 못하게 한 것 때문인지 사사건건 시비란다.

얼마 전에는 놀이마당 뒤에 잡초가 많다는 민원을 제기해 청소과에서 나와 풀을 베어버린 적도 있었단다.

그들에게 화초로 구분되지 않은 것은 모두 잡초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정선 만지산 화재현장에 집 지을 일도 물어왔다.

아직까지 옆집과 합의가 되지 않아 당분간 보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더니, 바로 결론을 내렸다.

화해하여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어쩌면 그 또한 소유욕일 수도 있겠다.

'동강사람들 자료관 만드는 일이나 멋진 예술창고 만들어 예술가들 불러 모으려는 생각 자체가...

 

다소 불편해도 도움 준 분들이 호젓한 시간을 즐기며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작지만 예술과 인생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오붓한 공간.

 

생활에서 찾아 만들어가는 안감독 디자인이 인생 디자인으로 승화하는 지점이다.

그동안 게 거품 물었던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 헛소리였단 말인가?

인간관계 하나 조율할 줄 모르면서 무슨 사람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마침 건물주인 아주머니가 지나치다 모처럼의 인기척에 들어오셨는데, 환하게 웃는 모습에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졌다.

집을 빌려 준 사람이나 빌린 사람이나 마음만 맞으면 한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안애경씨 따라 전망 좋은 식당에 들어가 콩국수를 먹었는데, 소금도 넣지 않고 허겁지급 먹어버렸다.

요즘 사람들은 소금을 싫어해 싱겁게 먹어야 하는 줄만 알았는데, 옆에 준비해 둔 소금도 몰랐다.

늙어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딱 맞다. 

 

사진, / 조문호

 

 

친환경적인 작업으로 주목받는 안애경 예술감독을 만나러 오산 놀이공간 '나무처럼' 작업장을 찾았다.

 

 

 

오랫동안 핀란드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북유럽과 한국 문화를 접목해 온 그로서는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았는데, 몇 달 전 오산에서 작업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차일피일 미루다 가보지 못했다.

 

 

 

마침 정선 집에 불난 것을 알고 전화를 걸어와, 13일 정오 무렵 정동지와 찾아가기로 약속한 것이다. 갑자기 서둔 것은 만들어 놓은 놀이공간도 궁금했지만, 정선에 집을 지으려면 환경친화적으로 작업해 온 안감독의 자문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안감독을 지켜본 바로는 예술이 별난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예술이었다. 무슨 일이던 그 대상에 푹 빠져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타고난 재주꾼이었다.

 

 

 

사람이건, 자연이건, 그 대상에 대한 친화력이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을 숱하게 보여주었다. 어린이 공간을 만들 때는 어린이가 되어 동화되었고, 자연의 공간은 원초적 미로 되돌렸다.

 

 

 

오후2시 무렵 ‘오산 보육 타운’에 도착해 마당에 차를 주차하니, 안감독이 달려 나와 다른 곳에 주차하란다.  바닥에 주차 구역이 그려져 있어 괜찮은 줄 알았으나, 안애경씨가 주차를 못하도록 바꾼 것 같았다.

 

 

 

 

아예 바닥에 그려진 선은 지우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더니,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지워진다는 논리다. 인위적인 것이나 관습적인 것을 싫어하는 안 감독의 진면목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오산보육타운’이란 간판과 빛바랜 건물외벽을 보며, 역시 안 감독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공사를 하면 외부부터 치장하여 돋보이게 하는데, 그는 가식적인 면보다 실리적인 면에 더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정문을 들어가는 계단과 바닥에 모자이크된 오밀조밀한 바닥재들이 어린이들의 소꿉놀이터 처럼 정겹게 깔려 있었다.

 

 

 

본관에 들어가 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답답하게 막아 둔 천장을 뜯어내어 앙상한 골재와 배관이 그대로 노출되었고, 막힌 벽에 유리를 넣어 자연 풍경을 그대로 보이게 만들었다. 가리고 숨기는 것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관습을 깨는 그만의 장점이다.

 

 

 

오로지 역랑을 집중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놀며 창의력을 일깨우는데 있었다.

 

 

 

여지 것 '서서울호수공원'에서 열린 ‘어린이 아트 캠프’나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늘 푸른 예술로 공원 워크숍' 등을 통해 생각이 깨어 있음을 잘 알지만, 어린이 놀이터를 개선하거나 폐목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등 본보기가 될만한 좋은 작업을 많이 보여주었다.

 

 

 

오래 전에는 월드컵공원의 폐목으로 낙엽 함을 만드는 작업도 했다. 낙엽은 쓰레기가 아니라 자연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발견하고 대화하며 만들어가는 것이 그가 작업하는 방식인데, 미술과 디자인은 우리일상에 뭔가 써먹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활철학이다.

 

 

 

 

일반적인 실내장식이라면 설계도면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하겠지만, 안애경씨가 맡은 이상 대충 넘어가는 것은 통하지 않았다.

 

 

 

매번 일 할 때마다 부딪히는 점이 공무원들의 틀에 박힌 관념을 깨부수는 일이었다. 이 공사 역시 현장소장으로 파견된 분과의 이견이 장애가 되어 현장 소장직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하나하나 가르쳐가며 만들어야 하니 공사기일이 길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잠깐만 한 눈 팔면 일률적으로 마감되고, 기존 방식으로 처리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고 한다.

 

 

 

인부들을 관리하는 감독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출근길의 정체를 피해 새벽부터 출근하였으니, 현장에서 살았던 거나 마찬가지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 집에 있는 식기를 비롯한 일용품까지 현장에 옮겨 놓았더라.

 

 

 

꾸며진 어린이 놀이 공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흥미로운 것이 너무 많아 욕심까지 생겼다. 손녀 하랑이가 이 어린이집에서 놀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꼰대의 이기심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하나 놓인 소품들도 예쁘고 흥미롭지만, 창의적인 공간들이 너무 많아 앞으로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이 줄을 이을 것 같았다. 어린이들이 직접 종이로 동물 형상을 만들어 보여주는 그림자놀이도 재미있지만, 손 씻는 수도꼭지까지 청개구리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 감독은 공간을 만드는데 끝나지 않았다. 그 곳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당분간 눌러 앉았다고 한다.

 

 

 

 

안애경 감독은 일 자체를 무서워하지 않고 즐기는 스타일이다.

 

 

 

몇 년 전에는 방바닥에 오래 앉아 허리를 다쳤다는 페북 소식을 접하고 핀란드 목공예가 헬레나와 미디어작가 유하, 소피아 등 세 사람을 데리고 쪽방을 찾아와 침대를 만들어 주고 책상까지 들여 준적도 있었다. 자재를 챙겨 와 공간에 짜 맞추어 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필요하면 무슨 일이던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심성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야기 중에 정선 집 문제도 나왔는데, 직접 현장을 보지 않고 거론 할 사정은 아니었다. 불난 현장이 정리되고 작업이 시작되면 자문해 주겠지만, 가급적 현장에 있는 자연적 자재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란다. 불 탄 쇠토막까지 적절하게 활용하여 지난한 세월을 알아 볼 수 있도록 만들 작정을 했다.

 

 

 

다른 미팅 약속이 잡혀 손님들이 찾아와 먼저 일어났는데, 잠간 기다리라고 하더니 만들어 둔 복숭아 통조림을 챙겨주었다.

 

 

 

돌아오는 내내 집 지을 생각에 빠졌었는데, 하루에도 집을 몇 채나 지었다 허물기를 반복한다. 내 평생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지어보는 집인데, 제대로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1일 개막된 정영신의 ‘장에 가자’ 사진전이 10일간의 일정을 잘 마무리했다.

 

그동안 전시를 하면 아는 분들에게 초대장을 보내거나 여러 통로로 알려왔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예전과 달라 별도의 초대를 하지 않았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때라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가 있어 페이스 북으로만 알렸다.

 

그래서인지 인사동과 관련된 오래된 지인들이 많이 빠졌다.

그러나 전시 작품을 보러 오거나 책을 구입하기 위해 들리는

순수한 수요층이 많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성과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을 자제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찾아주시거나,

책을 구입하는 등 성원해 주신 많은 페친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덕분에 ‘장에 가자’ 책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17일부터 전시가 마무리된 20일까지 방문한 분의 모습과 전시장 풍경이다.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전시장에 들린 분들을 모두 기록하려 했으나, 미처 빠트린 분도 많았다.

받은 것만큼 돌려 드린다는 다짐으로 꼼꼼히 챙겨왔으나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지난 17일은 사진을 찍기 위해 뒷걸음질 치다 턱에 걸려 뒤로 넘어지는 봉변을 당했다.

넘어지며 오른 손으로 바닥을 짚었는데,

오른 손에 잡혀있던 카메라가 바닥에 부딪혀 렌즈가 망가져 버렸다.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몸은 별로 다치지 않았다.

카메라를 놓았다면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욕심이 일을 키운 셈이다.

 

니콘AS센터에 갔더니, 단종된 카메라라 렌즈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혹시나 알 수 없어 카메라는 두고 왔으니, 이젠 사진도 찍을 수 없게 되었다.

정영신씨 카메라로 가끔 찍었지만, 총 잃은 병사에 다름아니다.

 

정오 무렵에는 ‘눈빛’의 이규상대표가 전시장을 방문하여

김남진관장과 함께 충무로 ‘뚝배기집’에서 미역국을 먹었다.

그 날 이규상씨로부터 듣게 된 따끈한 소식은 홍대부근에 개장한

‘예술산책’ 책방에다 고객을 위한 작은 갤러리를 만든단다.

그 곳에서 정영신의 ‘장에 가자’전을 다시 열자고 했다.

 

시나리오 작가 최건모씨는 불광서점에서 사인회를 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이 것 저 것 가리지 않고 책 판매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나설 작정이다.

 

그날은 짐 때문에 차를 끌고 나와, 온 종일 주차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충무로는 타 지역보다 주차비가 비싸 전시장을 지키고 싶어도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동자동으로 이동하여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모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컴퓨터 켜기가 무섭게 예술감독 안애경씨가 전시장에 들렸다는 연락이 왔다.

 

차를 두고 지하철로 달려갔는데, 인사도 나누기 전에 차 빼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안애경씨가 주차한 곳까지 태워 주었는데,

손님에게 굳은 일을 시키는 부담을 안기고 말았다.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오니 에니메이션감독 주흥수씨와 화가 유준씨가 전시장을 찾아왔다.

주감독과 만날 약속은 일찍부터 한 터라 저녁식사라도 함께 할 작정이었으나,

약속이 겹쳐 잔시장을 비울 수가 없었다.

 

뒤늦게 나타난 조준영교수와 저녁식사를 하러 갔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 때문에 술 한 잔 마실 수도 없었는데, 하루 종일 저 놈의 차가 내 발목을 잡았다.

 

전시기간 동안 동자동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내가 없는 사이 다녀간 분도 많았다.

사진가로는 헤이리에서 ‘갤러리 움’을 운영하는 권홍, 이경희부부를 비롯하여

제이 안, 양시영, 윤성광씨가 다녀갔고, 화가 전인경씨와 전인미, 조경석, 심금숙, 심경애, 김인숙,

문금희, 박상문, 조한곤, 류순이, 강선준, 한동일, 김지욱, 이창수, 박성득, 이경애. 정진택,

박경애, 유현동, 한승훈, 김순남, 채재웅, 김욱수, 권병준, 조영기, 조용모, 정혜령씨 등

많은 분들이 전시장을 다녀갔더라.

 

그 이틀 날은 사진가 김수길씨와 이민씨를 전시장에서 만났는데,

김수길씨는 어디가 아팠는지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아마 이화마을 빨래줄 전시를 치르느라 힘들었던 모양이다.

 

늦은 시간에는 고향 후배인 사진가 하재은씨가 찾아왔다.

요즘은 페북에 통 보이질 않아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는데,

그 사이 목동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등 바쁜 일이 많았단다.

이사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던 앱숀 프린트기도 처분했다고 한다.

 

하재은씨는 한 때 외국 시장을 주제로 작업을 했으나,

지금은 고향의 사계를 집중적으로 기록한다고 했다.

그 날 드론으로 공중 촬영된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고향인 영산의 가을이 그토록 아름다운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19일은 공윤희씨와 최석우씨가 찾아 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최석우씨가 전시장 바로 옆에 있는 일식집으로 가자는데, 평생 일식집은 처음이라 망설여졌다.

유별나게 일본을 싫어해 그동안 일본여행은 물론 스시집 마저 철저하게 외면했지만,

손님의 배려를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음식 값이 비싸기는 해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정영신씨 말에

한 번도 데려가지 못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전시가 끝나는 20일은 정오 무렵에야 전시장에 나갔는데,

아들 조햇님과 ‘진인진출판사’의 김태진 대표가 와 있었다.

아마 정의당 동지로서 가까운 사이 같았다.

 

김태진씨는 ‘장에 가자’ 책 내용이 좋아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분에게

선물할 책을 여러 권 구입해 와서 서명을 받아 갔다.

많은 책을 구입해 준 것만도 고마운데, 작품까지 한 점 사주었다.

인사치레만이 아니라 고향을 그립게 하는 정감도 한 몫 한 것 같았다.

 

이번 전시의 작품판매는 곽명우씨가 사간 작품에 이어 두 번째인데, 너무 고마웠다.

여지것 살아오며 많은 전시를 치러 왔으나, 손해 보는 줄 알면서도 치루는 병중의 큰 병이다.

경제적 손실보다 그 곳에 쏟아 붓는 공력 또한 여간 아니기 때문이다.

난, 전시를 열어준다고 해도 한사코 손사래를 쳐 왔으나, 정영신씨 경우는 달랐다.

어렵사리 책을 내준 출판사 사정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사진집으로 대중성을 갖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지만,

이 책은 따뜻한 이야기 거리가 담겨있어 대중성에 기대 걸만도 했다.

다행히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 사는 정이 그리운 때라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것 같았다.

 

출판사의 주도면밀한 접근으로 일단은 출판 몇 일만에

재판에 들어갈 정도로 잘 팔리는 책으로 낙점 되었다.

 어쩌면 이 전시가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뒤 이어 사진가 이동준씨와 강정효씨가 나타났는데,

제주에서 온 강정효씨는 다음에 전시할 작가였다.

남태영씨의 도움을 받아 작품 철수에 들어갔는데, 액자가 없으니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저녁에 전시를 끝낸 기념파티를 ‘뮤아트’ 김상현씨가 마련한다는데,

점염병이 기승을 부려 지인들을 마음 편히 초대할 수도 없었다.

 

아무튼, 전시를 추진한 김남진관장을 비롯하여

도움준 많은 분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장이 가자' 책을 소개한 신문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blog.daum.net/mun6144/5805

 

 

 

 

 

 



'우리는 지금 다음세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 워크숍이

지난 24일 오후1시부터 5시30분까지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지하2층에서 열렸다

미술감독 안애경씨가 서울시 도움으로 마련한 워크숍에는 배일동 명창과 사회학자 한도현씨,

식품영향학 이정희 박사, 명상연구가 이민형씨, 시사인 고재열기자 등 다양한 층의 전문가들과

관련인 30여명이 모여 우리가 기억하고 살아야 할 인간 도리와 자연 섭리를 논하는 자리였다.



일찍부터 약속한 일이 있어 한 시간 쯤 늦게 나갔는데,

전통문화에 탁견을 가진 배일동 명창의 강의는 이미 끝나 들을 수 없었다.

한도현씨는 마을공동목장을 만들어 슬기롭게 활용하는 제주 가시리 마을 주민들의 사례를 들었다.

조상들이 걸어 온 발자취를 살려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그들만의 헌법인 향약(鄕約)에 미래세대 권리를 명시했다더라.


    

다양한 사례나 문제점도 듣고, 명상연구가 이민형씨가 준비한 명상을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으나,

식물학자 이정희씨가 들려 준 식물공장이라는 화두는 많은 생각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의 비닐하우스나 양식어장도 식물공장이나 비슷한 제배방법이긴 하지만,

통제된 시설에서 빛과 온도 습도 등 모든 재배 조건을 인위로 조절하는 대규모 식물공장 시대가 도래 했다는 것이다.

계절과 장소의 제약 없이 필요한 양을 생산해 낼 수있는 식물공장은 관리와 운영 등 모든 설비가 자동화 된다고 했다.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데다 병충해도 발생하지 않고,

심지어는 식물 속에 함유될 영양분 양까지 조절해가며 안정적인 식량공급이 가능하다니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이 글을 쓰는 중에 미국에 사는 유성호씨가 포스팅한 글이 페북에 올라왔다.

사막에 대규모 식량생산공장이 설치된다. 완전 무인공급, 자체동력과 자급 원료, 물조차도 보충하지 않는 최첨단의 식량공장이다. 36524시간 완전무공해의 최상의 벼와 밀, 옥수수등, 주요 식량자원이 무한정 공급된다. 그리고 원하는 국가에 그 공장은 설치될 것이다. 단 그 식량이 무상으로 분배될 경우에 한 한다. 기준의 대규모 농사 플랜트, 농약회사 등...돈되는 사업은 모두 해체되고 가족농은 각종 채소와 여타의 자급농작물을 재배한다. 농사는 돈벌이 보다는 취미생활의 범주에 들게 된다. 대규모의 생산과 소비, 무역은 사라지고, 지역중심의 경제가 부활한다. 대도시는 외면되고 모든 시민은 작은 도시에서 대부분의 부가적 농산물을 자체 생산, 소비한다. 가장 자연적인 최상의 땅에서 최상의 먹거리를 가꾸고 소비하게 된다. 기술이나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게걸스러움 탓에 모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인류는 창조(?) 이후로 생산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없어서 배고팠든 것이 아니라, 분배, 게걸스러움 탓에 배고플 수밖에 없었다 낮 꿈은 항상 즐겁다. ㅋㅋ 칼이 칼에 당하듯, 기술은 기술에 당한다. 그러니 왠만하면 지구를 너무 혹사시키지 말고 개발해야 한다. 빌 게이츠가 GMO에 투자하지 말고 이런 사막에서 식량 생산하는 사업에 투자하면 참 좋겠다. 어쨌거나 쌀국은 쌀도 많고 오일도 많고 돈도 많다. 그러니 그들에게 그런 걸 배우려 하면 안된다. 그런 게 없는 우리가 살면 지구가 산다. 그렇게 믿고 산다. 꿈 꾸는 직업이나 사업은 없을까?”


 

나만 몰랐지, 식물공장시대는 이미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과연 공장방식으로 식물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다음 세대에 끼칠 해악은 없을까?

그렇다면 영세한 농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그렇잖아도 기계처럼 살아가는 현실에 인간성 상실이 가장 큰 문제인데,

그런 문제를 더 부채질하는 것이 식물공장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다른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우리는 과연 미래 아이들이 이어갈 세상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자연환경을 가꾸고 보존하는 일이야 당연하지만, 잘못된 것은 모두 바꾸어야 한다.

정치는 물론 잘못된 법과 관습도 바꾸어야 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인간성회복에 있다.

교육이나 모든 사회시스템이 기계화 규격화 되어가는 지금의 구조로는

날이 갈수록 사람이 아니라 인간 로봇을 만드는 꼴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은 없고 기계가 사는 세상을 진정 바라는가?

모든 것이 돈이라는 마약이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어제는 공원을 지나치다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귀여운 어린이들이 올망졸망 텐트에 모여 있는데, 여인네 둘이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 온 사람답게 사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순진한 어린이들에게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선교를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이

사이비목사 전광훈 처럼 종교를 정치화하는 것과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세뇌 시키는 거다.

우리국민은 오랜 세월 일본에 세뇌되어왔고 다음은 미국으로 부터 세뇌되지 않았던가.

어린이들이 자라며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하나님을 믿으면 될 것인데,

애들을 길들이는 못된 짓을 아무 죄책감 없이 하고 있더라.


 

우리에게 따뜻하고 다정했던 생활 방식이나 전통문화는 점점 박제화 되어가고 있다.

나무 한 그루와 물 한 모금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연을 거슬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 문제는 그 날 모인 몇몇 사람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이 진지하게 고민하며 하나 하나 바꾸어나가야 할 문제다.

거창하게 인류를 위해서 라기 보다, 우리의 자식이나 손자 등 직계를 위해서라도 등 돌릴 수 없는 일이다.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손녀 하랑이를 위해서라도 잘못된 세상을 바꾸는데 모든 것을 바칠 작정이다


 

 

사람 나고 돈 나지, 돈 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니잖은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에 다같이 동참하자.

    


사진, / 조문호























 




예술감독 안애경씨는 사는 것 자체가 예술이다.
그동안 핀란드와 서울을 드나들며 추진해 온
친환경 예술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지켜 본 바로는
그 대상에 푹 빠져 가치를 극대화 시켰다.




생각이 깨어 있어 가치를 분별하니 결과는 보나마나다.
사람이 우선이건, 자연이 우선이건,

그 친화력이 예술로 승화하는 것을 숱하게 보여주었다.




어린이의 공간엔 어린이가 되어 낙천의 미를 찾아내고,
자연의 공간은 자연으로 되돌리는 원초적 미를 만들어냈다.
그런 그가 두 달 전 빵집 디자인을 맡았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상업적 공간에는 시간을 투자할 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곳은 30년간 동네 빵집으로 성장하여 '통인시장'에 연결되어 있는 ‘효자베이커리’였다.
빵집주인이야 안애경씨의 능력을 알아서 맡겼겠지만, 글쎄다.
그 녀의 이야기로는 빵집 겉모습보다 문화를 심겠다고 했다.




돈이 개입되는 일이라 여러가지 우려가 앞섰는데, 예삿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일반적인 실내장식이라면 설계도면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하겠지만,
대충 대충 넘어가는 것이 안 통하는 안애경씨가 아니던가?
먼저 일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부터 바꾸는 일이 더 힘들 것이다.
하나하나 가르쳐가며 함께 만들어 가는 기나 긴 여정이 불가피했다.




대개 지저분한 것은 가리고, 보이는 곳만 단장하는 기존의 방식은 버렸다.
보습재 등 벽속에 파묻히는 자재는 최고급 자재를 사용하지만, 눈에 보이는 자재는 재활용품을 활용했다.
재활용과 친환경재료를 외치는 그녀가 오히려 외계인 취급을 받았단다




벽을 뜯어내다 발견된 세월의 흔적은 지저분해도 노출시켰다.
낡은 기왓장을 프라스틱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주인장의 말을 거역하고 비새는 부분만 보수했다.




건물 디자인에 앞서 옆에 사는 이웃도 살폈다.
건물사이의 짜투리 땅에는 쓰레기가 지저분하게 쌓였지만, 서로 한 뼘 땅 차이로 통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드디어 서로 다른 땅주인 생각을 하나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소통이 안 되어 해결하지 못했지만, 땅주인도 같은 생각이었다.
쌓아 올려 진 담장을 반쯤 허물어 쓰레기를 거두어 내고 나무를 심었다.




빵집주인은 작은 짜투리 땅을 빌리고 허름한 뒷집 한옥도 빌렸다.
그 곳엔 쓰레기 대신 나무를 심어 쉼터를 만들고, 한옥은 직원들을 위한 거처로 만들었다.
동네 사람들과 경계를 긋는 대신, 조심스럽게 담을 헐어낸 것이다.




그리고 획일적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실내장식에도 제동을 걸었다.
버려진 타일을 활용하여, 그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식을 했다.
일에 진척이 나가지 않는 것을 불평하는 기능공을 다독여야 했는데,
아마 자신의 미적 감각을 전수하는 일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상 안애경씨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이유다.
잠깐만 한 눈 팔면 일률적으로 마감되고, 기존 스타일대로 바뀌었다.
그들을 껴안아 가르치며 일하다 보니, 두 달이 훨씬 지나버린 것이다.
결국은 돈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2층과 3층은 빵 만드는 공장이었다.
그 멋진 공간에 기계가 들어오는 것 보다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매장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돈 보다 일하는 사람의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부근을 지나칠 때 가끔 들려보았는데, 그녀는 부지런했다.
일하는 사람에게 조급함을 다독여주는 칭찬은, 하나의 교육이었다.
정말 의지의 여장부였다.




드디어 빵집에 빵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1일 오후 무렵, 병원 가는 길에 들려보았다.
외관보다 문화를 심는 일에 집중된 빵집이라 구석구석 눈길을 끌었다.
옛 재료와 새로운 재료가 만나 잘 어울렸다.



그러나 예술감독 안애경씨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빵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디자인보다 빵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공정에서 최고의 빵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최고의 빵을 만들어내고 싶은 안애경씨의 꿈이 현실화 되도록 지켜 볼 일이다.




통인시장 입구에 자리잡은 '효자베이커리'를 지켜보자.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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