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줄초상으로 연이어 문상 가는 일이 생겼다.

조정순(91)씨는 연세가 많아 지병으로 돌아가신 호상이지만,

안애경(64)씨는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켜 목숨을 잃게 되었다.

안애경씨는 하는 일도 많은데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은, 난세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 더 안타깝다.

 

지난 8일 늦은 오후, 안애경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받았다.

평소 아픈 적도 없는 건강한 분이라 믿기지 않지만, 다가온 현실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정동지와 서둘러 시신이 안치된 이대목동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그녀는 독신이라 상주로는 자매 세 사람과 조카뿐이었다.

조카 이야기로는 뇌출혈로 쓰러져 두 차례나 수술받았지만,

일주일 동안 깨어나지 못하다 결국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안애경씨는 문화 전도사처럼 부지런한 삶을 살다 간 예술가다.

핀란드와 서울을 오가며 북유럽 문화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친환경적인 예술을 추구하며 우리네 삶을 개선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자유로운 삶을 누리거나 일을 놀이로 즐기는 행위를 비롯하여,

예술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 등 비슷한 생각을 가져 죽이 맞았다.

 

서서울호수공원에 만든 예술로 놀이터와 어린이 아트캠프 ‘TO BE FREE'

오산에 만든 어린이 놀이공간 나무처럼같은 어린이를 위한 일을 많이 했다.

'우리는 지금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열린 워크숍에서도 많은 깨우침을 주었다.

 

한번은 동자동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빨래줄 사진전을 열었는데,

빨간 종이꽃 한 송이를 만들어 와, 숱한 사람 중 강씨 머리에 꽂아주었다.

부끄러워하며,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는 강씨는 처음 보았다.

어린이와 가난한 약자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에 존경심이 일었다.

 

이제 그녀는 세상을 떠나고 없다. 누가 그의 일을 대신하겠는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사진이 위안했다.

부디 못다 이룬 꿈은 저승에서라도 이루길 바랍니다.

 

그 다음 날은 정동지의 고향 친척이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왔다.

정영신, 정주영씨 자매를 태워 인천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따라갔는데,

마치 장례식장이 이산가족 만나는 자리같았다.

다들 얼마나 반가웠던지, 상을 당한 슬픔은 뒷전이었다.

돌아가신 분이 집안 어른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이웃에서 살아 남다른 관계였다고 한다.

옛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한 아낙은 반가워 눈물까지 훔쳤다.

 

장성하여 다들 서울로 이사하는 바람에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마침 고인의 아들 정경갑씨가 정영신씨와 초등학교 동창이라 동창명부를 뒤져 알아 냈다고 한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시절이라

다들 시골에서 서울가야 사람답게 사는 줄 알았다.

노인만 남은 오늘의 시골이 잘 말해주지 않는가?

 

공부하여 돈 벌려면 시골에서는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리 아는 게 많고 돈이 많아도 인정이 메말라버린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더구나 핵가족화가 비정의 세상을 부추겼다.

이제부터라도 잊고 있었던 사람을 찾아내어 옛정도 되 찾자.

죽고 나면 지식이고 돈이고 아무런 쓸모없는 것이 아니던가?

 

아무튼, 세상을 떠나신 두 분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궁극의 자유는 죽음밖에 없다는 김용옥선생 말로 위안한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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