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영의 ‘밤의 집’은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바가 다 다르다.

모든 작품이 다 그렇지만, 관람자의 눈높이나 생각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밤의 집' 손은영 사진집 표지 / 눈빛출판사 / 값 12,000원

 

 

며칠 전 정영신의 ‘장에가자’ 전시에서 다음 전시작가 손은영씨 작품을 알게 되었다.

전에 본 사진과는 또 다른 울림이 있었는데, 마침 인사동 갈 일이 생겨 충무로부터 들렸다.

사진전이 막을 올리는 날이라, 손님 몰리기 전에 빨리 보고 올 속셈이었다.

 

텅 빈 전시장에서 사방을 돌아보니 각양각색의 집들이 마치 무대세트 처럼 정렬되어 있었다.

인적 끊긴 집의 형태에서 텅 빈 무소유를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어떤 이는 밤의 집에서 사람의 체취나 온기를 느낀다고도 했으나

인간애가 담긴 삶의 공간으로서 보다 문명비판적 시각이 더 앞섰다.

 

요즘 치솟는 아파트 가격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집값 아니더냐?

벌집 같은 아파트 한 채가 몇 십억을 호가하니, 이미 집은 주거공간에 앞서 부의 상징이다.

사진을 보는 분의 평가도 다르듯이, 보는 입장에 따라 달라 보일 수밖에 없다.

 집 없는 서민의 입장에서는 납작한 지붕의 슬라브 집이 꿈의 궁전처럼 보일 것이고,

돈 많은 부자의 입장에서는 측은하면서도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정작 작가는 아무런 단정 없이 감상자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내가 볼 때 손은영의 ‘밤의 집’은 기록에서 예술로 승화시킨 작업이다.

단순한 집의 외관을 통해, 삶의 회억에서 부터 사회적 경제논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내며 반성의 단초를 제공한다.

 

마치 건축도면처럼 깔끔하게 보정한 작업에서 엿볼 수 있듯이,

차거운 톤을 이룬 밤의 색조와 집의 조형미가 어우러져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 같았고.

집에 대한 향수도 집에 대한 욕심도 아닌 물질문명에 망가진 인간의 자화상이었다.

하나의 도구로 사진을 채용했을 뿐, 작가의 묵시적 메시지다.

 

작가는 한 때 고성에서 산불 난 집을 찾아다니며 찍은 적도 있고, ‘길에서 만난 사람’도 찍었다.

사람조차 집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많았는데, 유독 집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불 타버린 건물의 앙상한 자취를 특유의 인화로 황량한 느낌을 강조하기도 했고,

이 땅에 의지해 살아 온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강인한 정신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작업은 또 다른 시도였다.

창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에서 희망의 여지는 남겨두었으나

어둠 속에 감도는 무거운 침묵, 바로 그 것이 이 사진의 매력이다.

 

작가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여린 여성의 입장에서 밤 고양이처럼 밤에만 쫓아다녔다.

나즈막한 슬라브 집들을 초상사진 찍듯 다박다박 찍어 낸 것이다.

마치 파파라치가 사람 몰래 촬영하듯 남의 집들을 밤에만 기록했다.

그리고는 집의 조형미에 따라 도식화시켰다.

 

티끌 한 점 남기지 않는 후 보정 작업으로 사적인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 버린 것이다.

색깔도 창백한 톤으로 정리하는 등, 인간과의 연결고리나 단서조차 말끔히 지워버렸다.

집에서 번져오는 희미한 불빛으로 여운을 남겼는데,

그 여운은 작가가 부여잡고 싶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손은영씨처럼 작업 한다고 한 번 가정해 보자.

늦은 밤까지 기다리다 지쳐 술부터 한 잔 마셨을 것이다.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집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진다.

 

다들 깊이 잠든 늦은 시간에 공부하느라 머리를 싸맨 학생도 있을 것이다.

어떤 집은 불꽃 튀기는 사랑의 전쟁을 벌이는 곳도 있을 것이다. 

 

달콤한 생각에 이르니, 옛날 파출소 부근에서 민방위 보초 서던 시절이 떠오른다.

한 밤 중 보초서다, 신음소리에 끌려 보았던 귀가 막힌 장면이 생각나서다.

한 쌍의 야생마 같은 부부의 뒤틀린 몸짓과 거친 숨결에 온 몸이 달아올랐다.

그 깊고 오묘한 장면 장면을 어찌 세치 혓바닥으로 다 이야기 하겠나?

 

갑자기 이런 잡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잡놈은 잡것만 생각나고, 돈에 중독된 놈은 돈만 생각나고,

새로운 것을 찾는 작가는 오로지 작품만 생각한다는 말이다.

 

바로 손은영씨가 보여 준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 집은 무언의 시대적 증언이다.

물질문명에 의해 인간성이 상실된 오늘의 사회상이고, 묵시적 가르침이다.

비록 후 보정이라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지만, 생각이 한 발자국 앞 선 것이다.

일 년 넘게 고생하며 이룬 손영은의 또 하나의 성과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는 손은영 ‘밤의 집’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사진은 가장 보편적이고 익숙한 사진에서 출발하지만

동시에 그 비근한 소재에서 찾아낼 수 있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지점을

예민하게 지각시켜주는 사진이다. 무엇이라 설명하기 힘들고 규정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과 모종의 기운이 어둠 속에서 밀도 있는 공기의 층으로,

몸으로 휘감기는 안개처럼 잔뜩 피어오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전시는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0일까지 열린다.

전염병으로 전시장 다니기가 불편하시다면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눈빛사진가선 시리즈66호 손은영의 ‘밤의 집’ 사진집을 보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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