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에서 작년 8월부터 쪽방주민들에게 실시한 ‘아름다운 동행’은 그 무엇보다 고마운 일이었다.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한 사업이었지만, 주민들의 호응으로

올 년 말까지 연장되었는데, 이제 굶어 죽을 사람은 없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자료사진

‘아름다운 동행’은 하루 한 끼 팔천 원 상당의 무료식권을 제공하는 복지사업이다.

쪽방살이에서 제일 힘든 것이 주방 없는 비좁은 방에서 밥해 먹는 일이다.

그게 싫어 줄선 노숙인 틈에 끼이거나 무료급식소를 찾아다녀야 했다.

더러는 ‘동자동사랑방’에서 실시하는 ‘식도락’에서 천원의 끼니로 해결하는 분도 많았다.

 

그마저 힘든 노약자들은 밥 굶기를 밥 먹듯 했는데,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한 끼만 제대로 먹어도 목숨 연명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물론 밥 한 끼 사먹을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초생활수급비 받아 밥 사 먹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방에 들 앉아 꼼짝 하지 않고 먹는 것 마저 소홀 한 것은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쪽방 촌에서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시신이 발견되는 것도 다 예견된 일이었다.

밥이 보약이라 듯 사람은 먹어야 산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속담처럼, 귀찮아 먹지 않던 힘없는 노약자들이

사라질 식권, 즉 돈이 아까워 식당을 찾는 것이다. 지정된 날짜가 지나면 식권은 무효가 되어버리니까...

그러니 ‘아름다운 동행’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동자동에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은 모두 열 곳이다.

'김밥천국'을 비롯하여, 한식뷔페인 ‘만냥의 행복’, ‘맛고마 대구탕’, ’백암순대국‘, ’송탄부대찌게’,

생선조림전문 ‘완도집’, 백반과 찌게전문 ‘전주식당과 ’우정식당‘, 중화요리로는 ’만리장성‘과 ’태향‘이 있다.

작년에는 ‘대우정’도 있었으나, 건물 벽에 민간개발을 원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던 건물주가

운영하는 업소라 그런지, 주민들의 이용률이 낮아 올해부터 다른 업소로 바뀌었다.

 

그리고 팔천 원을 초과하는 음식은 차액만 내면 되니,

하루 한 끼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지만, 대개 단골 식당을 이용한다.

특히 직장인들이 많이 출입하는 식당은 초라한 빈민들의 출입을 꺼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설거지도 줄일 수 있는 음식포장을 더 반긴다. 자재비 낭비보다 엄청난 쓰레기를 양산한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나누어 주는 식권 총액이 한 달에 일억육천팔백만원이나 되니,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 금액을 지정된 열 곳 업소로 나누면,

한 달에 천 육백만원의 매상을 올릴 수 있으나, 돈은 탐나지만 사람은 싫은 것이다.

 

나 역시 직장인들이 찾는 업소는 가급적 들리지 않고, 가까운 ‘우정식당’을 이용한다.

그곳은 두 모녀가 19년 동안 운영해온 식당이라 애착은 가지만, 일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주인인 박정화(67세)씨는 주방을 맡고, 친정어머니인 심문숙(91세)가 서빙을 하는데,

늙은 노모의 느릿느릿한 서빙은 어쩔 수 없지만, 음식이 정갈하지 않아 식당을 옮기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사정이 그러니 직장인은 없고 주민들 뿐인데, 그러다 있는 손님마저 다 뺏긴다.

인정에 의한 동정심은 영업에 대한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식당의 성패는 결국 음식 맛이 아니겠는가?

주방장 들여 음식 맛에 신경 좀 쓰고, 박씨가 손님 서빙을 맡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반가운 일이 생겼다.

식권이나 물품을 나누어 줄 때마다 줄을 세워 공개적으로 시정을 요구해 왔는데,

2월분 식권을 나누어 준 지난 1월26일의 나눔에는 긴 줄이 없었다.

 

지정한 시간까지 기다리지 않고, 오는 즉시 나누어 주니 주민들이 줄 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왜 번번이 줄 세워 추위에 떨게 했는지 모르겠다.

거지 동냥하는 광고하려는 작태가 아니라면 진즉 바뀌어야 할 구태였다.

 

아무튼, 주민들의 입장을 헤아려 줘 고마울 뿐이다.

서울특별시의 ‘아름다운 동행’ 식권사업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날씨가 더워 그런지 대개의 동자동 노인들이 입 맛을 잃은 것 같다.
병원에 누운 환자처럼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 억지로 먹는다.
라면으로 허기를 메우는 것이 다반사지만, 가끔은 밥도 먹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사는 쪽방 건물 일층에 있는 광주식당은 간판도 없는 코 구멍한 가게다.
2인용 테이블 두 개로 영업 했으나, 된장찌개, 김치찌개가 주 메뉴였다.
일인분 오천 원으로 입맛 잃은 노인들이 가끔 들리지만, 장사가 통 되지 않았다.

 

 

 

 

젊은 회사원들을 받는 주변 식당들은 붐볐지만, 이 곳은 파리만 날렸다.
나 역시 그 전에는 이 삼일에 한 번씩 들려 밥을 먹었으나,
장사가 되지 않아 점포 내 놓은 지 한 달이 넘었다.

 

 

 

모처럼 '동자동 사랑방'에서 운영하는 ‘식도락’에 들렸다.
밥 값으로 천원을 내는 이 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허기를 메우는 밥집이다.
그들에게 생명줄 같은 식당이지만, 입맛을 찾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콩나물 국에 밥 말아 살기위해 억지로 한 술 뜬 것이다.

 

 

 

몇일 전 의학전문기자 김철중의 생로병사에 ‘어르신, 껌 좀 씹으시죠’라는 기사를 읽었다.
나이가 들수록 껌을 자주 씹어야 좋다는 것이다.
껌 안에 침샘을 자극하는 성분도 있고, 칼슘 보충제가 첨부된 것도 있단다.
껌 씹는 자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보다 침 분비량을 10배 가까이 늘리며,
그 때문에 입속 박테리아의 증식이 줄어든다고 한다.
충치를 일으키는 산(酸)의 생성도 억제한다니, 칫솔질이 부실하면 껌이라도 자주 씹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의료용 대마 성분이 있는 '칸나비디올 껌'도 있다는데,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는 이 껌을 입에 달고 골프를 친다고 했다.
'우즈 껌'은 계산되고 기획된 스포츠 의학으로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여준다고 말했다.

 

 

 

 

사실, 대마가 청각, 시각, 미각 등 사람의 오감을 예민하게 하는 것은 틀림없다.
대마종류에 따라 성분 차이는 있지만, 어떤 대마초는 음식 맛에 빠져들게도 만드는데,
그런 성분을 추출하여 식욕촉진제로 활용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미국의 정신과 의사 줄리 홀랜드와 앤드류 웨일 등이 집필한 대마 백과사전 '올 어바웃 카나비스'가 번역되어 나왔다.

'도서출판 세상의아침'에서 대마초의 약리적 작용을 내용으로 하는 '대마초 약국'에 이어

이번에는 대마의 다양한 약리 작용에 관한 분석에 머물지 않고 역사, 문화, 정치적 논쟁까지 다룬 책이다.

대마가 궁금한 분들은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라.

 

 

 

그동안 당치도 않는 마약올가미로 손을 놓고 있으나, 이제부터라도 다양한 약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미 외국에서는 여러 가지 약효가 입증된 수많은 특허들을 독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무 것도 없다.
마약으로 각인 시켜놓은 국민들 눈치 보느라,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정치인들은 모두 끌어내려야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동자동 쪽방 촌 빈민들이 연이어 세상을 등지고 있다.
혼자 어렵게 연명하던 독거들이 스스로 목숨을 재촉한 듯하다.

술로 위안하다 더러는 병원으로 옮겨져 운명하기도 하지만,

외부와의 왕래를 끊은 채 혼자 쓸쓸히 생명줄을 놓는 사람도 있다.

말로만 듣던 독거사가 빈민촌에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5일 오후 무렵, 동자동 ‘식도락’에 합동분향소가 차려진다는 메시지가 떴다.
급히 지방 갈 일이 있어, 성산동자동차검사장에 있을 때였다.

고물차 불합격 판정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을 즈음이라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철상할 시간까지 도착하기 어려울 것 같았으나, 서둘렀다.

다행히 김정호씨에게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허급지급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이 날의 상주로 나선 김호태씨를 비롯하여

우건일, 김정호, 조두선, 이원식, 선동수씨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난순, 박정아씨는 주방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날은 윤정수(82)씨와 은진기(67)씨, 두 분의 장례식을 치루었고,

김동휘(72)씨는 내일 장례를 치룬다고 하였다.


다들 무연고자라 '동자동사랑방'에서 어렵게 장레를 치루는데,
내일은 정선군청에 약속이 있어 조문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적은 조의금이나마 맡겨두었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구나 김동휘씨는 쪽방에서 쓸쓸이 세상을 떠난 분이라,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드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디 세상에서 받은 설음과 고통 다 잊으시고, 편히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사랑방’은 주민이 주인인 아주 민주적인 협력체다. 여기는 갑 질하는 이도 없고, 완장부대도 없다.

서로 돕는 자치단체로 주민들과 소통하며 정 나누는 행복한 보금자리다.
이 야박한 세상에 정 나누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한 끼 천원으로 식사 할 수 있는 ‘식도락’과 책을 나누어보는 도서실을 운영하며,

어려운 분들의 선반을 만들어 주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때로는 잘 못 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연대투쟁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연고자 없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면, 사랑방 식구들이 상주가 되어 장례까지 치러 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을 길들이는 무차별한 지원을 거부하며, 스스로의 자립을 돕는데 있다.

그리고 ‘동자동 사랑방‘에서는 매년 어버이날과 추석을 맞아 주민들을 위한 행사를 마련한다.

지난 5월8일의 어버이날에도 어르신들에게 꽃을 달아드리며,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잔치를 열었다.

오전10시부터 새꿈어린이공원’에서 열린 이 날 잔치에는 주민 300여명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잔치 비용도 관이나 단체에서 후원 받은 것이 아니라 주민들로부터 한 푼 두 푼 모아 마련하였다.

필요한 예산이 250만원이었는데, 229명의 주민들이 낸 모금액이 2,513,230원에 달해, 신통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 협력한 애착의 결과였지만, 사랑방 식구들이 하나같이 손발을 걷어 부쳤다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쪽방주민은 물론 더 배고픈 노숙인까지 대접하는 고마운 자리가 되었다.

이 날 잔치에 곁들여 그동안 찍은 사진을 돌려드리기 위한 ‘동자동 사람들’ 빨래줄 사진 나눔 전도 가졌다.

다 뽑지는 못했으나, 그 중에서 135장을 골라 빨래 줄에 걸어 서로 돌려 본 후 잔치가 끝난 후 가져가게 했다,

누락된 사진과 다시 찍는 사진들은 올 추석잔치에서 돌려드리기로 하였으나, 장수사진 촬영에 주력할 생각이다.

이번 어버이 날 잔치에는 사랑방 식구들이 아침8시부터 몰려 나와 각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아침식사를 드시지 못한 분도 많았지만, 점심마저도 주민들 챙기느라 못 먹은 채 다들 정성을 다했다.

음식이 소진되어 주민들이 떠나갈 무렵에는 쓰레기 치우고 주변 정리하느라 또 한 차례 전쟁을 치루었다.

다들 집기들을 옮겨가고 나니, 그 때 사 시장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취재하러 왔던 정영신씨 따라가 비빔밥 한 그릇 얻어 먹었는데, ‘식도락’ 골목에 사랑방식구들이 몰려 있었다.

“식사하지 않고 어디 갔다 왔냐?”며 중국집 ‘태향’으로 안내했다.

김호태회장을 비롯한 여러 주민들이 식사를 끝내고 소주 한 잔 나누며 뒷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동자동사랑방’ 사무실 앞에서는 강동근, 김정길, 김정호, 강병국, 임수만씨 등 여러 명이 설거지하느라 분주했다.

이날 뒷마무리하며 끝까지 남은 분으로는 우건일조합장을 비롯하여 박정아, 선동수, 허미라, 김창헌, 차재설, 박희봉,

박용서, 조두선, 전인중, 한정민, 최순규씨 등 많은 분들이 수고해 주셨다.


'동자동 사랑방' 화이팅!



사진,글 / 조문호


































오늘 아침 문재인씨가 대통령 되었다는 소식을 페북에서 알았다.
반가웠지만, 홍준표 득표의 쪽팔림과 심상정 몰락에 마음이 엿 같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며, 점심 먹으러 ‘식도락’으로 갔다.

빵으로 때울까 생각하다, 오늘 세월호 리본을 만든다기에 내려간 것이다.
다행스럽게 입맛도 없는데, 식도락에서 국수를 끓여 놓았다.
요즘 쓸 수 있는 이빨이 아래위로 두 알 뿐이라 밥 먹기가 영 힘든데,
물 국수라 잘도 빨려 들어갔다.

난순 여사가 비벼 먹는 비빔국수도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것도 욕심이라며, 눌러앉아 리본 만들기를 기다렸다.






허미라씨를 비롯하여 김정호, 선동수, 박정아, 유한수, 김호태,
김창헌, 이인자, 강병국, 조남철씨 등 일꾼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곳에서 세월호 리본을 세 번째 만들었으나, 아직도 다들 서툴다.
규격화를 거부하는 인간 본능이라 믿고 싶었다.

모두들 세월호에 가득 찬 진흙을 호미로 퍼내는 심정으로 리본을 만들었다.
대통령이 새로 뽑혔지만, 아무도 정치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많은 주민들이 정의당을 지지했기에, 비참한 결과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와 힘을 모아 적폐를 하나하나 청소할 것으로 위안했다.






먹을 것이 마땅찮아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베지밀 한 박스를 사왔다.
4층까지 기어 올라와서는 쪽방에 퍼져버렸다.
한 숨 자고 일어나 빵에다 베지밀 까지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했다.

오후 아홉시가 넘었지만, 동내 산책이라도 나가야 했다.
밤에는 술 마시는 회사원들 뿐이라 잘 나가지 않지만,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공원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형님이라 불렀다.
돌아보니 정용성이었다. 이 녀석은 지 애비 벌 되는 놈을 늘 형님이라 부른다.
불렀던 사연인즉, 지 애미와의 실랑이 때문이었다.






두 모자가 술을 너무 좋아해 매점에서 소주 두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사서는,
아들은 시원한 공원에서 마시자 하고, 애미는 쌀쌀하니 방에서 마시자며
서로 고집을 꺾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지원군으로 불렀던 것이다.

다들 반 술은 되었지만, 나만 말짱해 일단 중재안을 내 놓았다.
30분만 마시고, 방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사실은 내가 더 술이 고팠기 때문이다.
용성이 녀석은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불렀다.





멜로디는 분명 투쟁가였으나,
가사에는 압박과 설음에 해방된 민족까지 뒤 섞인 묘한 노동가였다.
반세기 동안 정치꾼들의 놀음에 길들어 온 우리민족의 자화상이 아니라 자화가였다.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오로지 잘 사는 것만 지향해 온 민초들의 슬픈 노래였다.






약속시간이 되어 다들 황춘화씨 따라 방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 방은 5층에서도 옥상까지 올라가야 하는데다,
계단도 가파르고 좁아 힘든 코스지만, 한 잔 더 마시려면 따라가야 했다.
소주와 안주가 담긴 오븐을 들고 올라갔는데, 다들 바빴다.

술 취한 용성이는 방 치우러 가는지 먼저 올라가 버리고,
황춘화씨는 4층에 있는 술꾼 정재헌씨 집부터 들어갔다.
이 양반은 술 취해 자고 일어나, 그 때야 허기를 메웠는지 이를 닦고 있었다.
이 판에 어울리면 힘들 것 같으니, 제발 제발이라 부르짖었다.






알 중 어미와 아들, 그리고 좃 중 셋이 모여 오붓하게 한 잔 했다.
술이 취해 오가는 이야기들은 도무지 사이클이 맞지 않았다.
켜 놓은 텔레비 마저 사이클에 문제가 생겼는지 펄펄 거렸다.
내가 텔레비 죽이라니까, 이번에는 손바닥 만한 라디오를 켰다.

두 모자가 매일 같이 함께 술을 마시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냥 대화의 칸막이처럼 켜 놓는 것이다.





대화 칸막이로는 내 노래가 더 좋다며 한 가락 뽑았다.
‘봄날은 간다’를 불렀는데, 목이 메어 그만 울음이 되어버렸다.
좃이 피면 같이 웃고, 좃이 지면 같이 우는 대목에 못 미쳐,
용성이 모자 앞에서 쪽팔리게 울어버린 것이다.
놀란 두 사람이 무슨 사연인지 의아해 슬픈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황춘화씨와 정용성씨 모자는 동자동에 들어 온지가 삼십년이 넘었다.
동대문에서 양동으로, 양동에서 동자동으로, 마지막 쫓겨 온 곳이 동자동이었다.
황춘화씨가 기초연금 70만원 받아 23만원 방세 제하고 사니 보나마나 뻔하다.
거기다 두 사람이 매일 마셔대는 술값도 장난 아니다.


얼마 전에는 술이 취해 넘어진 용성이가 허리를 다쳤단다.
술만 마시면 아프지 않은데, 술이 깨면 아프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기회에 진단서를 끊어 제출하면 자기도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오늘 진단서를 끊어 왔다며 보여주었다.





정확하게 기억되지 않으나, 병명이 탈골이 아니라  알콜 중독에 의한 의존증이라 쓴 것 같았다.
수급자 자격에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일 할 수 없는 환자는 분명해 수급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아니라면 모든 걸 적게 주고 피해가는 잘 못된 법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했다.

황춘화씨도 몇 일 전 이웃집 개에 팔을 물려 붕대를 감고 있었다.
기사가 준 돈으로 첫 병원비는 치렀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며 걱정했다.
추측컨대, 그 기사라는 사람은 기자를 잘 못 알아들은 사진가 김원씨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몇 달 전 사진 찍지 말라며 화 낸 것을 사과했다.
난 잊은 지 오래되었으나, 그는 여지 것 잊지 않고 있었다.
'맞은 놈은 다리 펴고 자지만, 때린 놈은 오무려 잔다'는 옛말이 생각나 혼자 키득거렸다.

사는 꼴이 기가막혀 제일 필요한 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쌀이라고 했다.
난 밥을 해먹지 않아, 내방에 있는 쌀 포대를 가져가라 했더니,
두 모자가 차례대로 내 손을 부여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착한 양을 굽어 살펴 인도하라”는 기도였다. 아~ 니미 기분 이상하데...





이미 자정이 지나 일어났더니, 황춘화씨도 따라 일어났다.

계단이 위험해 술 취해 떨어질까 걱정된다며 따라나선 것이다.
‘아지매 걱정이나 하이소. 다시 올라 갈라 카마 힘든께 내려 오지마소“ 해도
기어이 따라 내려와 배웅했다. 법 없어도 살, 참 착한 모자였다.

어쩌면, 말년까지 마흔여섯이나 된 아들녀석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행복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자식 놈이 그때까지 장가 안가고 밤낮으로 엄마 술친구 되어 줄 놈이 있겠는가?
다들 혼자 사는 쪽방에서, 엄마와 살 부대끼며 사는 맛이 부러울 것이다.

헤어지며 잡는 손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사람들은 대개 실제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많은 분들에게 여쭈어보았으나, 추정한 나이보다 훨씬 젊었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빨리 늙어 버렸다.
삶 자체가 힘들고 고달프니, 몸 돌볼 겨를이 없었던 것일 게다.






지난 4일 동자동의 ‘식도락’에 갔더니, 이인자할머니가 식사를 하고 계셨다.
허미라씨가 마주앉아 이 것 저 것 물어보고 있었는데,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오실 때 짚고 온 워커를 김호태, 우건일씨가 수선하는 것으로 보아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것 같았다.






식사를 끝내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사랑방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셨다.
연세가 아흔은 되어 보였지만, 이제 일흔이란다.
나와 동갑내기인데, 어쩌다 이처럼 폭삭 늙어 버렸을까?
당뇨에다 관절까지 망가져 혼자 살기가 힘든 것 같았다.
아들은 죽고 딸이 하나 있지만, 7년 전부터 동자동에서 혼자 사신다고 했다.






하기야! 내 몰골도 크게 나을 바 없지만, 몸 쓰는 대는 지장 없으니 다행이다 싶다.


이제 6학년에 불과한 유한수씨는 골목 구석에 앉아 혼자 깡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금주령이 내려 진 상태라고 한다.
마침 우건일씨에게 적발되어 남은 술병을 빼앗겨야 했는데,
아쉬운 듯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식사 시간이 끝나니 ‘식도락’으로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식도락’에서 두 번째로 마련한 노란리본 공작소를 찾은 것이다.
주민들이 세월호 리본을 만드는 것은 그 끔찍한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이웃끼리 오손도손 둘러앉아 세월호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누기도 하고
인양된 선박에서 실종자 찾기를 염원하며 리본을 만들었다.


 




힘든 이웃을 돕고 서로 정 나누며 사는 ‘동자동사랑방’은
각박한 서울 한 복판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마지막 달동네다.
돈으로 망가진 인간성회복을 위한 ‘희망공작소’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사랑방 ‘식도락’은 알콩 달콩, 콩 볶는 사랑 솥이다.

밥 때만 되면 반가운 분들이 웃음 물고 나오신다. 말 없는 표정 속엔 따뜻한 정으로 진득하다.


다들 콩 볶는 재주가 없어 밥만 드시지만, 재주도 없으며 손 발 걷어 부치는 사람이 있다.

달마승 처럼 눈꼬리가 휘어진 김정호님이다. 썰렁한 우스게지만, 정감이 잔득 묻어난다.

난순 주모께 감놔라 콩놔라 하는 것도, 그가 할 수 있는 콩 볶는 재주라면 재주다.

‘식도락’ 구석에 큼직한 화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직 덜 된 그림이지만, 한 번 봐달란다.

스케치에 그친 미완성이지만 자랑할 만 한데, 그려보지 않은 초짜 그림치고는 괜찮아 보였다.

말하려는 내용이나 화면 구도가 꽉 짜여있었다. 한 그루의 고목은 동자동 사랑방 가족을 의미했다.

그는 부지런하기도 하다. 이웃 선반 짜주는 일에서 부터 못하는 게 없다.

그 날도 버려진 고물 핸드폰을 장사치에게 팔아넘겨, 사랑방조합에 건네주었다.

사무실 폐품 정리하는 박정아님을 도와주다 우건일님이 호두과자 한 상자를 내놓으니,

몇 알 챙겨들고는 쏜살같이 ‘식도락’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 계신 분들을 먹이기 위해서다.

몇 일전 퇴원하신 김원호님이 뒤늦게 ‘식도락’에 나오셨다.

아직 몸이 불편해 애기 밥처럼 조그만 공기에 담아 드시어, 다들 걱정스레 지켜보았다.

약 챙겨 드리는 허미라님의 손길이 따스하게 전해졌다.

그러다 이웃에 짐 내려야 한다는 우건일님 전갈에 우루루 몰려갔다. 이게 동자동사랑방의 사랑법이다.

콩 볶는 구수한 냄새가 동자동 골목에 진동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설날이 가까워오니, 쪽방촌 사람들도 좀 쌔게 나가더라.
평소 소주 마시던 사람들이 그 날은 위스키를 마셨다.
나도 만원 보탰지만, 쓸데없는 허풍이었다.

‘동자동사랑방’으로 갔더니, ‘식도락’ 돼지를 잡았다.
밥 먹을 때 마다 천 원씩 넣은 돼지 저금통을 깬 것이다.
허미라씨가 열심히 세더니, 사십 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한 달간의 식자재비도 안 되는 돈이지만, 많은 편이란다.
하기야! 천원도 없어 넣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식자재비야 그 돈으로 대략 메울 수 있다지만,
점포 월세 50만원은 고스란히 ‘동자동사랑방’에서 나간다.
공동체 주민을 위한 봉사라지만,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경비는 보조해 줘야 한다.
이보다 더 확실한 빈민 지원이 어디 있겠는가?

엉뚱한 곳으로 세는 세금 단속해, 이런 봉사단체에 지원하라.
올해는 빈민의 삶 깊숙이 살펴 주었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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