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몇 일간 먹는 게 싫다.
먹는 게 싫으면 죽는 것인데, 할 일이 남아 죽을 수도 없다.
지난 주말을 보낸 후, 몇 날을 방에서 낑낑거리고 있다.
몸살 증세 같지만, 푹 쉬면 괜찮을 것으로 여겨 누워 지낸다.
고작 정신 차려 하는 일이라고는, 컴퓨터 열어 노닥거리는 게 전부다.
그러나 하루에 한 끼는 먹어야해, 한 번씩은 밥집을 찾는다.
일찍 서둘면 지척에 있는 ‘식도락’에서 먹을 수 있지만, 매번 밥 때를 놓친다.
그 곳은 사랑방 조합에서 봉사하는 밥집인데, 한 끼에 천원 밖에 받지 않는다.
지난 토요일 후로 여태 못 갔으니, 어지간히 게으름을 피운 게다. 




 

지난 토요일에는 허미라씨가 혈당 검사까지 해 주며,
돈 넣으려고 저금통을 찾으니, 토요일은 무료라며 돈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날은 돼지 수육과 쌈이 준비된 특식이 나왔다.
수육이래야 한 접시가 전부였지만, 아무도 욕심 부리지 않는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서너 점씩만 담아 갔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얼굴에 묻어났다.
‘식도락’은 밥값 부담도 없고, 음식도 깔끔하지만,
이곳의 별미는 여러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인정이다.
따뜻한 눈길 섞인 말 한 마디에 절로 배가 부른 것이다.







요즘 따라 부쩍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진다.
몸이 신통찮은 탓이겠으나, 애써 추운 날씨 탓으로 돌린다.
4층 계단만 내려오면, 단골 밥집이 바로 입구에 붙어 있다.
이름 적힌 간판도 없이 그냥 닭곰탕이란 글만 보인다.
그러나 아직 이 집에서 한 번도 닭곰탕을 먹어 본 적은 없다.
매번 주문하는 것이 사천 원짜리 백반인데, 먹을 만하다.
코 구멍한 밥집이라 서너 사람만 들어오면, 꽉 차보이고,
주변이 너저분해 손님 모시기는 좀 그렇지만,
주인 아줌마도 좋고, 음식이 집에서 먹듯 맛깔스럽다.







매일 세시 쯤 들리다, 오늘은 다섯 시에 내려갔더니,
주모가 더 신경 써 주는 것 같았다.
날씨가 춥다며, 된장국을 맛있게 끓여 주었다.
살아남기 위해 내려 왔지만, 짭짤한 된장국이 댕겨 허겁지겁 먹었다.
그러다 벽에 붙은 구닥다리 티비 뉴스 소리에 울컥 토할 뻔했다.
반기문씨의 귀국 기자회견에서 한 말에 비위가 상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말 한마디에 배가 부르기도 하지만, 말 한마디에 밥맛을 잃는다는 것도 알았다.

사진, 글 / 조문호








격일제로 마시던 술을, 요즘은 전시 때문에 매일 마시게 된다.

지난13일도 전시장 문 닫기가 무섭게 김남진 관장 따라 나섰다.
정영신과 사진하는 후배 한 분과 마셨는데, 아쉽지만 먼저 일어나야 했다.
몇 일전,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박씨와의 약속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만나 한 잔 더 하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모두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자고 있었다.

노숙하는 자가 시계나 핸드폰이 있을리 없어 허탕을 친 것이다.
하는 수 없어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식도락’으로 사람들이 더나들었다.

밤 늦은 그 때까지 문이 열릴 리가 없었기에, 궁금해 들여다보았더니
방에는 동네 분들이 가득 앉아 있었고, 주위에 서성거리는 분도 계셨다.
음성 ‘꽃동네’에서 오셨단다.








매주 화요일은 ‘꽃동네’ 수녀님들이 동자동을 찾아, 빈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날이었다.
다들 일어날 시간이었으나 음식이 남아있어 끼어 앉았더니, 뜻밖의 슬픈 소식도 접했다.

김순애, 박미숙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전시하는 사정을 알고, '사랑방'에서 연락하지 않은 모양이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단 한차례 밖에 뵙지는 못했으나, 영정사진마저 없었다는 말에 가슴 아팠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렸다. 저승에서는 마음 편히 사시라고...






동자동에서는 함께 식사 할 때가 종종 있으나, 술은 일절 구경할 수 없다.
식사시간이 아닌 늦은 시간인데도, 술 마시지 않는 분만 모여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정씨 딱 두 사람 뿐이었다.







그 역시 닭고기 안주에 술 생각이 나는지,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고기만 몇 점 집어먹고 일어나려니, 수녀님이 선물봉지를 안겨주었다.
식빵 한 줄, 삶은 밤과 밑반찬 두 가지가 조금씩 담겨 있었다.






요긴한 선물도 고맙지만, 환하게 웃는 수녀님 모습에 온갖 시름이 다 녹았다.
고맙다며 맞잡은 손의 온기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사랑방 공제조합'에서 마련한 ‘식도락’은 조합원들을 위한 밥집이다.

밥값 아닌 성금에 다름없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저금통에 넣는 게 전부지만,

그 곳에는 다른 곳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따뜻한 온정이 모락 모락 피어 오른다.

장소가 협소하여 삼 십 여명밖에 이용할 수 없지만, 아주 오붓한 밥상공동체다.

동자동에 온지 한 달 밖에 되지 않는 신참이라 깊숙이는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요즘 세상사는 공부를 다시 하듯, 많은 것을 깨우치고 있다. 사는게 이런 거라고..

식당에 오는 분들도 대개 아는 분이라, 마치 한 가족이 밥상에 모이듯, 인정스럽다.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먹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향수어린 정겨움으로 가득하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밥상의 행복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더러는 농담을 건네기도 하지만, 말 없는 눈웃음 속에 서로의 고달픈 삶을 위로한다.

요즘은 배꼽시계도 무뎌졌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는 생활습관에 밥 시간을 번번이 놓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밖에 이용하지 못하지만,

갈 때마다 식재료비도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어떻게 유지가 되는지 걱정스럽다.


반찬은 몇 가지 안 되지만, 마치 집에서 먹는 것처럼 담백하고 맛깔스럽기 그지없다.

시락국이나 콩나물국도 번갈아 등장해, 술에 찌던 내장을 시원하게 풀어 주곤 한다.

그러나 천원짜리 한 장도 없거나, 그마저 아끼려 무료급식에 줄 서는 사람이 더 많은 곳이 쪽방촌이다.

다들 돈 없이 살아가지만, 사람답게 살아가는 지상의 마지막 천국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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