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ZU

클라우스 루카스展 / Claus Lucas / photography

2013_0903 ▶ 2013_0916

 

 


클라우스 루카스_wozu series 01_Edition of 3_피그먼트 프린트_190.89×150cm_2011

초대일시 / 2013_0903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혼돈의 바다-부유하는 덩어리들 ● 물 속의 이미지들, 자유로움과 고요함 뒤에 또 다른 나레이션을 담고 있다. 화면을 채운 덩어리들은 덕지덕지 달라 붙어 있거나, 마치 유령처럼 특별한 활동이나 기능이 없이 물 속을 부유한다. 때로는 반인 반수와도 같이 보이는 형체들은 뒤엉키고, 분리되어 변형된 왜곡을 보인다. 이것은 비대하거나 왜소하게 마른 두 가지의 몸으로 시각적 상이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매끈하게 정제되어 있지 않은 날 것처럼 투박하게 닮아있는 덩어리로 표현 된 형체에서 인간의 몸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혼합을 통한 새로운 대상의 출현은 낯선 가능성과 함께 혼성 된 가상성의 공간으로 다양한 상상을 유추하게 하고 새로운 긴장감을 안겨준다.

 


클라우스 루카스_wozu series 02_Edition of 3_피그먼트 프린트_150×189cm_2012

배경이 되는 물은 신화나 종교적인 관점에서 우주가 시작되기 전에 거대한 힘의 근원으로써 인식되어 '혼돈의 시대'라고 정의된다. 소극적인 부드러움과 동시에, 막강한 변형의 힘과 순수한 잠재적 가능성을 통한 무한 확장이 가능하고,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과거 리바이어던(Leviathan)과 같은 거대한 바다 생물체로 표현 되기도 할 만큼, 평온함과 파괴력을 동시에 지녀 다분히 이중적이고 다중성이 있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모습과 닮아, 물과 인체가 혼성이 될 수 있는 충분한 타당성과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클라우스 루카스_wozu series 03_Edition of 3_피그먼트 프린트_190.89×150cm_2013



작가는 그간 다소 소극적으로 특정 물체나 대상에 인간의 모습을 대리시켜, 은유적인 표현방식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져왔다. 그러나 신작「WOZU-why」는 실존하는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자신 또한 발가벗은 채 「WOZU-why」라는 세계에 과감히 몸을 던진다. 그가 만든 가상의 세계에서의 형상(몸)과 배경(물)의 결합에서는 구분과 차이, 대립도 없는, 도플갱어가 함께 존재하여 닮은 듯 하지만 각기 다양성을 드러낸다.

 


클라우스 루카스_wozu series 05_Edition of 3_피그먼트 프린트_190.89×150cm_2012

사진으로 자신만의 몽환적인 세계를 표현하는데 있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 방식은 적합하다. 작업은 물과 신체를 주제로 원초적이며 단순 명료한 표현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각적 방법으로 유출된 그의 혼성의 세계는 아름답지 만은 않다. 독일어로 '무엇 때문에' 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WOZU'는 나약하고 불완전하여 발생되는 다양한 인간의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기에 끊어낼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이기도 하다. 인간은 혼돈에서 시작 한다.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물음 또한 멈출 수 없다. 이처럼 끊임없는 질문들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이자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는 불완전함으로 혼돈의 세상을 부유하며 살아간다. ■ 배은혜

 


클라우스 루카스_wozu series 06_Edition of 3_피그먼트 프린트_97.295×239.49cm_2013

물 속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거기에는 낯선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일은 그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 클라우스 루카스

 


클라우스 루카스_wozu series 07_Edition of 3_피그먼트 프린트_150×203.28cm_2013

Sea of confusion – floating lumps ● Images under water, they contain another narration behind unconventionality and tranquilness. Lumps filling the screen clung to each other here and there or floating in water just like ghost without any specific activity and function. Sometimes, objects looking like half-human and half-beast show deformed distortion as they got entangled and separated. This makes audience feel visual difference with 2 bodies: one is obesity and the other is small and skinny. However, the shape expressed by rough lump roughly resembling raw material which is not purified makes it possible to predict it's a human body. Advent of a new subject through mixing with consciousness and unconsciousness makes audience infer various imaginations as a space of virtualities along with unfamiliar possibility and gives new tension to people. ● Water in the background is a source of huge power before universe was started in a viewpoint of myth and religion and it is defined as 'Era of confusion' It has passive smoothness and also infinitely extendable through huge power of change and pure potential possibility giving tremendous destructive power. This has pretty much multiple aspects since it has tranquilness and destructive power enough to be expressed as a sea creature just like Leviathan in the past. These multiple aspects, as they look like an appearance of human being, have enough feasibility and persuasive power which are mingled with water and human body. ● The author has ever been more or less passively casting questions about essence of human beings by metaphorical expression which replaced specific objects and subjects with appearance of human being. However, in his new art work 「wozu-why」, actually existing model appears, and the model becomes naked and throws its body bravely onto a world of 「wozu-why」 ● Combination with shapes (body) and background (water) in his virtual world exposes diversity although they are resembled together without distinction, difference and conflict just as doppelganger co-exists. ● But it is very primitive, simple and clarified only by simple combination with water and body through combination of digital and analogue. Sufficient visual satisfaction shows fantastic and dreamlike world. But his mixed world is not always beautiful. 'Wozu' which is interpreted as "What for" by German language means continuous ontological contemplation for human being who is under agony, weak and imperfect. ● Human beings are started from confusion. And they are destined not to stop ontological question until they reach death. Maybe, those continuous questions might be meaning of our existence in daily life. Therefore, we are still imperfect and living together floating in a world of confusion. ■ BAEEUNHYE

I reflected myself in water and there was astranger. I wish he disappeared tomorrow ■ claus lucas

Vol.20130903f | 클라우스 루카스展 / Claus Lucas / photography

[신수진의 사진 읽기]

 

급변하는 時代에 대응한 '知的 실험'



역사적 인물들의 업적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이 시대에 산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때가 있다. 인재가 타고나는 것만이 아니라면 다른 시대적 환경 속에선 그들도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다가도, 그들의 시대에 대한 대처 방식이 오늘날에도 유효하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어쨌거나 인재는 시대와 함께 만들어진다.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던 백 년 전의 유럽에서 활동했던 작가 중엔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예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사람이 많다. 라슬로 모호이너지(Laszlo Moholy-Nagy·1895~1946)도 그중 하나다.


                                                          라슬로 모호이너지, 포토그램, 1939

빛으로 그린 그림 - 기계로 만든 규격화된 생산품들을 암실에 갖고 들어가 빛을 비추자 이름과 기능은 사라지고 추상화된 그림만 빛의‘흔적’으로 남았다. 라슬로 모호이너지, 포토그램, 1939
헝가리 태생으로 독일 바우하우스를 거쳐서 후에 시카고 뉴 바우하우스를 이끌었던 그의 활약은 눈부시다. 화가이자 사진가, 교수이자 이론가로서 그의 활동 분야는 조각·영화·디자인·광고·무대 및 전시 설계 등을 넘나들었다. 그야말로 유토피아 정신으로 무장한 전 방위적 예술가였다. 이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그의 관심사는 기술과 산업이 이끄는 환경의 변화를 예술에 통합하는 것이었다. 포토그램(photogram)은 카메라를 이용하지 않고 암실에서 인화지 위에 직접 빛을 주어서 그림자만으로 형태와 명암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말 그대로 빛으로만 그리는 그림이다.

모호이너지에게 사진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빛'을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였다.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이전 시대의 유산이라면 전기를 활용하는 인공 조명을 가지게 된 20세기 인간에게 '빛으로 그리는 그림'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예술적 표현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 중에서도 모호이너지가 유독 포토그램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그것이 물질성과 비물질성, 구상과 추상, 사고와 감정을 넘나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당시의 인류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의 본질을 꿰뚫어 인류가 변화하는 시대에 더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그가 우리 시대에 다시 살아난다면 무엇을 했을까 하는 공상에 빠져본다.

     




 

 

 

 

 

 

 

 

 

 

 

 

 

 

 

 

 

 

 

 

 

 


제주의 오래된 민가나 성읍민속마을 변두리, 또는 골목 풀숲에서 만난 작은 풍경들이다.
뜰 한 구석에 핀 들꽃이나 세월의 더께가 쌓인 오래된 사물들에서 고향같은 진한 향수를 느낀다.

 

 

 

 

 

 

 

 

 

 

 

 

 

 

 

 

 

 

 

 

 


 

 

 

 

 

 

 

 

 

 


 

 

 

 


 

 

 

 

 

 

 

 

 

 

 

 

 

 


티켓다방은 80년대에 시작된 우리나라의 다방 풍속도였다.

지금은 사라진줄 알았으나, 아직도 성업중이라고 한다.

한시간에 2만5천원, 그리고 마음맞아 이차가면 10만원으로 주로 중국 한족여성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변질된 수법의 매춘이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고 한다.

 

사진은 13년전 충청도 제천과 강원도 여량 등지의 시골 다방에서 일하는 아가씨들 모습이다.

시간별로 티켓을 끊으면 시간만큼 술도 마셔주고, 노래방에서 같이 놀아도 주었다.

서로간의 이해타산이 맞으면 사랑까지 사고 파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시골에서는 들이나 밭에까지 커피를 배달해 주기도 하는데,

처녀가 귀한 농촌 총각들은 다방 아가씨 보는 낙으로 일했는지도 모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