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사진 읽기]

 

몰입하면 보이는 '낯선' 日常의 모습

피망, 혹은 일그러진 시선 - 에드워드 웨스턴, 피망 No. 30, 1930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즐거움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즐거움의 필요조건은 '몰입'이다.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즐거움을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방법을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몰두할 수 있는 일을 갖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을 풍부하게 하는 경험이며, 몰입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독려해야 한다. 몰입과 이완,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이 둘 간의 균형감을 통해 우리는 평범한 삶을 조금은 특별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1886 ~1958)의 사진은 일상적 장면에서 어떻게 순수한 시각적 몰입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그는 작고 흔한 물건에 오래도록 주목하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 사진을 완성했다. 그가 대상에 몰입하는 방식은 어떠한 꾸밈도 덧붙이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사진 속 피망은 화면의 중앙에 큰 비중을 차지하도록 배치되었고, 대형 카메라로 클로즈업되어 세밀한 디테일까지 살아있는 듯 묘사되었다. 그리하여 하나의 피망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다. 그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물건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누군가는 웅크리고 앉은 사람을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깊은 동굴의 서늘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웨스턴의 사진이 주는 즐거움은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음 직한 평범한 대상을 처음 보는 물건인 양 들여다보게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로부터 불러일으켜진 수많은 기억과 상상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웨스턴처럼 담백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섬세하고 예민한 눈길을 조금만 더 천천히 거둘 수 있다면, 세상은 예기치 못한 신선한 몰입과 이완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보물 상자일 것이다.

신수진 / 사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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