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사진 읽기]

 

급변하는 時代에 대응한 '知的 실험'



역사적 인물들의 업적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이 시대에 산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때가 있다. 인재가 타고나는 것만이 아니라면 다른 시대적 환경 속에선 그들도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다가도, 그들의 시대에 대한 대처 방식이 오늘날에도 유효하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어쨌거나 인재는 시대와 함께 만들어진다.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던 백 년 전의 유럽에서 활동했던 작가 중엔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예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사람이 많다. 라슬로 모호이너지(Laszlo Moholy-Nagy·1895~1946)도 그중 하나다.


                                                          라슬로 모호이너지, 포토그램, 1939

빛으로 그린 그림 - 기계로 만든 규격화된 생산품들을 암실에 갖고 들어가 빛을 비추자 이름과 기능은 사라지고 추상화된 그림만 빛의‘흔적’으로 남았다. 라슬로 모호이너지, 포토그램, 1939
헝가리 태생으로 독일 바우하우스를 거쳐서 후에 시카고 뉴 바우하우스를 이끌었던 그의 활약은 눈부시다. 화가이자 사진가, 교수이자 이론가로서 그의 활동 분야는 조각·영화·디자인·광고·무대 및 전시 설계 등을 넘나들었다. 그야말로 유토피아 정신으로 무장한 전 방위적 예술가였다. 이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그의 관심사는 기술과 산업이 이끄는 환경의 변화를 예술에 통합하는 것이었다. 포토그램(photogram)은 카메라를 이용하지 않고 암실에서 인화지 위에 직접 빛을 주어서 그림자만으로 형태와 명암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말 그대로 빛으로만 그리는 그림이다.

모호이너지에게 사진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빛'을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였다.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이전 시대의 유산이라면 전기를 활용하는 인공 조명을 가지게 된 20세기 인간에게 '빛으로 그리는 그림'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예술적 표현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 중에서도 모호이너지가 유독 포토그램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그것이 물질성과 비물질성, 구상과 추상, 사고와 감정을 넘나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당시의 인류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의 본질을 꿰뚫어 인류가 변화하는 시대에 더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그가 우리 시대에 다시 살아난다면 무엇을 했을까 하는 공상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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