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랭크, 영화 시사회, 할리우드, 1955 ~1956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중앙 여배우 대신 뒤편 관객에 초점
스스로 중요한 것 선택하는 용기가 젊은 사진가를 전설로 만들어


인생에 진리를 찾아주는 강연이 유행이다. 수년 전부터 다양한 그룹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많이 생겨나더니 이젠 방송에서도 흔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평소에 강의할 일은 많아도 들을 기회는 드문지라 우연하게라도 다른 사람의 강연을 대하면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세상엔 참 내가 모르는 것도 많고 지혜도 많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정작 내가 강연 방송을 보면서 가장 즐기는 부분은 청중의 반응이다.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고, 또 어떤 이는 딴생각에 빠져드는 것을 숨기려고 애쓴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에서 고군분투 중인 우리의 초상을 본다.

지혜의 가르침을 찾는 것은 자신의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시작된다. 내가 지금 겪는 어려움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어서 누군가는 분명히 그에 대한 답을 찾았으리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들이 전해주는 지혜를 따라가면 나보다 앞서간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찾아낸 답이 내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여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아무리 평범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그 앞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이유는 그게 바로 하나밖에 없는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는 인생의 초보자인 것을, 만고의 진리가 무슨 소용이랴. 결국 나를 특별하게 만들려면 나만의 고통을 나만의 방법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1924~)는 1950년대에 촬영한 '미국인들'이라는 연작(連作)으로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스위스 태생의 이민자였던 그는 2년간 미국 전역을 돌며 자신의 눈에 비친 낯선 미국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지금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지만 당시 서른을 갓 넘긴 나이였던 그는 이미 슬하에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 없는 청년이었다.

평범한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처절하게 싸워야 할 삶이 있었을 뿐이다. 그의 고통은 그의 사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가 찍은 사진에서 단시간에 세계의 주인공으로 성장한 미국의 자부심이나 기회의 땅에서 희망을 찾은 미국인들의 성취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성장과 성공의 이면에 남은 이들의 모습이 담긴 것이다.

할리우드의 영화 시사회장에서 촬영한 이 사진 속 주인공은 영화배우가 아니다. 화면 중앙에 크게 자리 잡은 여배우는 초점이 맞지 않아 흐려졌고 로버트 프랭크의 시선은 저 너머 뒤편 관객들을 향했다. 어찌 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시선에 그를 거장(巨匠)의 반열에 올린 비밀이 숨겨져 있다. 남들이 주인공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지나쳐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눈은 스스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선택하는 용기를 만나서 그만의 특별함을 만들어냈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아마도 세상보다는 자신의 불안한 현재와 소외된 고독감에 더 집중했을 것이다. 그가 단지 세상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남들이 보고 싶어 하고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고통에 집중함으로써 그 아픔만큼 특별한 '나'를 만든 것이다. 무엇을 바라볼 것인지, 어디에서 답을 찾을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체면이나 시선 따윈 사치일 뿐이다. 
가진 것 없는 서러운 인생,
빈손에 눈물만 고인다.

어느 누군들 사연 없는 인생없다.
길거리에 뒹구는 나뭇잎도
속내 깊은 이야기는 숨어 있다.

살아가는 모습은 다를지라도 
절절한 아픔들 가슴에 묻고 살기에

덧없는 인생, 자꾸 눈물이 난다.  

 

 

2014. 8. 6 인사동거리에서

 


 

Fare-Well Noise

석성석展 / SUKSUNGSUK / 昔聖晳 / installation.video

2014_0807 ▶ 2014_0831 / 월요일 휴관

 

 

석성석_잡음 상자_199809NoiseBox-199809_35mm필름변환, 다채널 영상_가변크기_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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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성석 홈페이지_undergroundartchannel.net

 

초대일시 / 2014_0807_목요일_06:00pm

미디어-파사드 프로그램 / 2014_0815_금요일_08:00pm~10: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트렁크갤러리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8-3번지

Tel. +82.2.3210.1233

www.trunkgallery.com

 

 

의식과 노이즈: 텔레노이아적 유토피아 / 석성석의 작업에 관한 소고Scene #1 기술에 대한 편집증적 사유-일종의 편집증「paranoia」일까. 석성석의 작업은 지속적이고 완고한 의심에서 비롯된다. 불필요한, 어쩌면 매우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이러한 의심은 그의 작업에 있어 본질적 작동 기재가 된다. 그는 과거로부터 매체 실험적 작업을 지속하여 왔다. 때로는 매체 그 자체의 매질「媒質」로부터, 때로는 그러한 매체가 상징하는 의식적 수준에 관한 실험이기도 했다. 그의 작업은 하이-테크놀로지가 아닌 로우-테크에 가까운 것이었고, 디지털적 변환에 도달하지 못한 그것이었다. 이는 다분히 의식적 선택이다. 아직 그러한 변환과 전개를 따라가기에는 이전 기술에 대한 사유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전 기술로부터 현재의 기술을 가늠하고 미래의 기술을 상상하는 것은 우리 기술의 역사가 말해주는 변치 않는 측정 방식이다. 따라서 최근 디지털로 표상되는 당면한 변화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 또한 이에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를 구성해왔던 연속의 세계-아날로그는 기술 체계이자 우리의 삶 자체를 반영하는 생체적 리듬과 현상이었다. 그러나 물질을 구성하는 원초적 단위가 숫자로 전환되는 순간, 신호는 재매개되었고 연속적이었던 우리의 의식은 분절되기 시작했다. 기술에 관한 편집증적 사유는 이로부터 파생된다. 디지털이 아날로그적 연속의 개념을 분절시킨다면, 분절된 연속은 결국 어떠한 변화를 수반하는가? 분절의 틈에서 우리는 어떠한 것을 잃어버리게 될까? 틈-간극에서 발생하는 그 무엇은 정보인가 노이즈인가?

 

 

석성석_잡음 상자-199809NoiseBox_1998

 

                                                                              석성석_잡음 상자-199809NoiseBox_1998
 

 

Scene #2 의식-연속과 분절작가가 개입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틈-간극이자 오래되고 새로운 것 사이, 매개와 재매개를 가로지르고 전유하는 바로 그 지점 말이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정보 덩어리들을 노이즈라 칭한다. 분절의 간극에서 만들어지는 노이즈. 우리가 그것을 어떠한 가치 체계 속에서 이해할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이미 노이즈는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우리는 그것을 통해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성석은 과거, 「전자 초상」이라는 작품을 통해 일그러진 전자 화면으로 구성된 새로운 시대의 초상을 제안했다. 그것은 결국 분절된 우리의 상「像」이자 시대의 이미지였고, 캔버스를 벗어난 매체로의 이동 그 자체였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분절된 이미지는 디지털 입자처럼 보이지만 본래 아날로그 이미지에서 채집된 매우 연속적인 그리고 의식적인 이미지라는 점이다. 그는 아날로그 매질이 지닌 불연속적 요소를 확대-재생산하여 일련의 노이즈로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것을 노이즈로 봐야할 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여기에서 주목해봐야 하는 것은 그가 채집한 노이즈가 작가의 의도 안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노이즈를 발생시킨다. 그것도 매우 매체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의도적 노이즈는 스스로의 범주를 벗어난다. 개념적으로 보자면 결국 비의도적-비목적적-우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래의 정의와는 괴리가 있다. 그러나 노이즈에 관한 정의를 결국 정보/콘텐츠에 관한 의도의 존재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자면 작가가 발생시킨 노이즈는 역설적으로 노이즈라 부를 수 없는 일종의 정보 이미지이자 메시지로 환원된다. 그렇다면 앞서 제기했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작가는 왜 그러한 간극에 개입하는가? 스스로의 개입으로 발생시킨 일련의 메시지는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가?

 

 

석성석_연작사진 199809-serises 1998_35mm필름변환, 디지털프린트_1998~2000

 

석성석_미스코리아를 위한 배관공Plumber for Miss Korea_사운드 설치_가변크기_2014
 

 

Scene #3 아날로그 신호의 단절-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일련의 아날로그 TV 수신기들을 선보인다. 아날로그 방송 종료와 함께 폐기 처분된, 용도가 정리된 기계 장치들이다. 전기 신호를 수신하는 장치로서의 TV 모니터「수신기」들은 그 외형적 요소로부터 「기계적 설치물로서의」 미학적 가치를 획득한다. 또한 백남준 이후 TV는 상징적 기술 매체「당시에는 하이-테크를, 현재에는 로우-테크를 상징하는」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TV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 장치로서 이해되기 어려운 특성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 TV 수신기의 예술적 차용은 관습적인 맥락으로 이해되기 쉽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날로그 TV수신 장치들을 모아놓은 작가의 의도는 그 선도「鮮度」를 논하기에 앞서 시대를 사유하는,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시대적 기술에 대한 의심으로서의 필요-충분적 조건으로 기능한다. 왜냐하면 작가는 TV를 텔레-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본래의 기능적 맥락이 아닌 오히려 그 기능이 정지되고 해체된 유물적 오브제로서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과거로부터 시대를 규정해왔다. 굳이 키틀러「Friedrich Kittler」나 플루서「Vilem Flusser」와 같은 매체 이론가들의 선언적 명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마주하는 기술-환경을 통해 충분한 납득이 가능한 상황이 되었버렸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보면 기술이 지닌 도구적-기능적 개념을 통해서만 시대를 사유할 수 있게 되는 도착적 상황에 빠져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기술의 도구적-기능적 개념은 결국 기술의 존재 이유를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목적성 안으로 옭아맨다. 따라서 기술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우리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종속되고 마는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 그러나 작가가 제시하는 TV 수신기들은 이미 그 목적성에서 스스로의 소임을 다한 퇴역 기계 장치들이다. 그것도 시대적 기술 규정에 의해 강제적으로 혹은 일방적으로 폐기된 상태이다. 정작 폐기된 것은 아날로그 신호 체계이지만 그러한 폐기의 운명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오브제는 아날로그 TV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관객들은 이러한 TV보다 디지털 평면 TV 모니터들이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다이얼을 돌려가며 신호를 감지하고 수신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은 현재에도 레트로 디자인이란 명목로서 유지되고 있다. 다만 신호를 잡아내는 고유한 프로세스에 대한 시스템적 접근은 전무하다. 이렇게 보자면, 아날로그 TV는 마치 외형만 박제되어 남아있는 멸종한 동물과도 같다.

 

 

 

석성석_잡음기계 1번~26번Noise Machine no.1~no.26.1_

UHF 송수신 기반 실시간 미디어 설치_가변크기_2014

 

                                                                석성석_잡음기계 1번~26번Noise Machine no.1~no.26.4

 

Scene #4 텔레노이아적 유토피아를 향하여-이러한 맥락에서 석성석의 시도는 기술에 관한, 혹은 기능적 매체에 대한 반성적 사유로서의 기능을 내포한다. 각각의 TV 수신기는 서로 다른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로부터 신호를 수신하는 모습 또한 각양각색이다. 의도를 넘어 이러한 양상은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하는데, 송신과 수신으로 구성된 커뮤니케이션의 몇몇 장면들은 TV 수신기들의 다른 화면, 즉 신호 체계에 대한 해석체로서 이해될 수 있다. 아날로그 신호를 제대로 전달하거나, 독자적 방식으로 신호 체계를 교란시키며, 심지어는 송신된 신호를 절대적으로 단절시킴으로서 각자의 정체성은 오히려 발현된다. 작가는 아무런 화면도 내보내지 않는 모니터의 화면 또한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적 선택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개입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냈던 노이즈들도 이제는 자연 발생적 차원으로 놓아둔다. 단지 작가는 그러한 환경을 창조하며 발생의 촉매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미디어 작가이자 이론가인 로이 애스콧은 이러한 기계 매체들로 구성된 사이버 세계에서 후기 생물학적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그들의 네트워킹에 의해 구성된 가상의 의식 공동체로서의 '텔레노이아「elenoia」'를 언급한다. 그의 언급처럼 텔레노이아가 신호 체계를 넘어 의식적 수준까지 연결하는 매체적 커뮤니케이션의 이상향을 보여주는 유토피아적 개념이라면, 석성석의 작업은 오히려 단절된 커뮤니케이션 매체로부터 야기되는 디스토피아적 의식의 수준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로부터 다시금 기술의 기능적 한계를 사유하게 만드는 역할 또한 수행한다. 따라서 작가의 파라노이아「paranoia」적 접근은 텔레노이아적 유토피아를 위한 선결조건인 동시에 로우 테크에 관한 사유로부터 하이-테크를 향한 선언으로서, 디스토피아적 폐허에서 양분을 얻어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는 텔레노이아적 사유가 된다. ■ 유원준

 

 

 

석성석_잡음기계 1번~26번Noise Machine no.1~no.26.2

 

석성석_잡음기계 1번~26번Noise Machine no.1~no.26.6

 

석성석_잡음상자-전자초상-볼2NoiseBox-Electronic Portrait Vol.2_

5채널 노이즈비디오가 들어있는 알루미늄상자_2005~14

 

 


랄프 깁슨展 / Ralph Gibson / photography

2014_0812 ▶ 2014_1119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

 

 

                                                         ⓒ 랄프 깁슨_Untitled_젤라틴 실버 프린트_50.8×40.6cm_196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랄프 깁슨 홈페이지로 갑니다.

 

작가와의 대화 / 2014_0921_일요일_02:00pm

관람시간10:00am~07:00pm / 11~2월_10:00am~06:00pm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 마감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고은사진미술관

Goeun Museum of Photography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로 452번길 16(우2동 1005-17번지)

Tel. +82.51.746.0055

goeunmuseum.krblog.naver.com/goeunmuseumfacebook.com/goeunmuseum

 

고은사진미술관은 프랑스의 베르나르 포콩 Bernard Faucon과 독일 현대사진에 이은 세 번째 해외교류전으로 초현실주의 사진의 거장 랄프 깁슨 Ralph Gibson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랄프 깁슨은 20세기 현대사진의 맥락을 잇는 중요한 작가이자,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한 미국의 대표적인 사진가이다.

 

 

ⓒ 랄프 깁슨_Untitled_젤라틴 실버 프린트_50.8×40.6cm_1972

 

ⓒ 랄프 깁슨_Untitled_젤라틴 실버 프린트_40.6×50.8cm_1970

 

ⓒ 랄프 깁슨_Untitled_젤라틴 실버 프린트_40.6×50.8cm_1974

 

ⓒ 랄프 깁슨_Untitled_젤라틴 실버 프린트_50.8×40.6cm_1975

 

ⓒ 랄프 깁슨_Untitled_젤라틴 실버 프린트_50.8×40.6cm_2002

 

ⓒ 랄프 깁슨_Untitled_젤라틴 실버 프린트_50.8×40.6cm_1987

이번『Ralph Gibson 랄프 깁슨』展은 스트레이트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초현실주의, 강렬한 흑백대비, 과감한 구도와 클로즈업, 독특한 앵글과 파격적인 프레임 구성 등 그의 사진적 특징을 80여점의 빈티지 프린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유럽 중심의 사진으로부터 미국 사진의 전성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진의 새로운 경향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 고은사진미술관

 

Vol.20140812c | 랄프 깁슨展 / Ralph Gibson / photography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2011년 10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대규모 사진전을 열었다.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 등 약 100점의 작품이 전시되는등 놀라운 규모였음에도 아해라는 작가명 외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고 일절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2014.07.30. <사진=Newsroh.com 제공> robin@newsis.com 201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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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그랜드센트럴 전시회…수십만 명 다녀갔지만 언론 전혀 주목안해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모든 것은 뉴욕의 전시회로부터 시작됐다.

‘시신 미스테리’로 돌아온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뉴욕에서 신비의 자연주의 사진작가로 통했다.

그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 명이 다녀간 거대한 사진전을 열었다. 2011년 10월13일부터 22일까지 뉴욕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였다.

전시회는 충분히 뉴스가 될만한 것이었다. 장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한국의 서울역에 견줄만한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은 유서 깊은 역사와 웅장한 규모로 뉴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그가 전시회를 연 중앙 홀 옆에 있는 밴더빌트 홀은 미국의 철도왕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이따금 대기업과 시정부 차원의 행사가 펼쳐지지만 미지의 예술가가 온전히 개인전을 위해 임대하는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은 뉴욕 북부의 통근철도 3개 노선과 5개의 지하철이 만나는 곳으로 평일엔 75만 명, 주말엔 100만 명이 넘는 승객이 이용하는 맨해튼의 허브이다. 밴더빌트 홀은 역사 남쪽 42가의 메인게이트로 중앙 현관 역할을 한다.

역사(驛舍)를 이용하는 승객의 최소한 30%가 이곳을 통과했다면 당시 열흘 간 계속된 유병언의 사진전을 잠깐이라도 본 사람은 연인원 20만 명은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사진전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처럼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을 포함 약 100점의 사진 작품이 전시되는 등 입이 딱 벌어질만 했다.

게다가 많은 작품들은 내부에 조명이 설치돼 LED처럼 발광하는 방식으로 소개했다. 열흘 간의 엄청난 임대료는 그만 두고라도 전시공간을 꾸미는 것만 해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을 법 했다.

이런 초대형 전시회를 연 주인공이었지만 그는 이름도 얼굴도 공개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프로필도 없었다. 오직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타이틀과 ‘아해(AHAE)’라는 작가명만 나와 있을 뿐.

◆ 기이한 언론의 외면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전시회를 주목한 언론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공간을 임대해준 뉴욕시가 웹사이트에 짤막한 소개를 했을뿐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주최측이 일부러 홍보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취재를 원했다 해도 미스테리의 장본인은 인터뷰를 거절했을테니 말이다.

기자가 아해 전시회를 취재한 것은 우연이었다. 평소 밴더빌트 홀의 행사를 자주 둘러봤지만 알고 간 것은 아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취재는 했지만 기사화할 수는 없었다. 전시회가 미스테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랜드센트럴 터미널 밴더빌트 홀은 양 입구에 문 형태의 거대한 구조물을 세워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보기 드문 초대형 사진전도 이색적이었지만 그 대상이 한국의 자연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아해’란 이름이 생소했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동포 작가일까? 대체 얼마나 세계적인 작가이길래 이렇게 특별한 곳에서 엄청난 전시회를 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 입구에 각각 서있는 구조물의 한쪽은 사진, 다른 한쪽은 음유시인의 서정적인 시구와도 같은 내용이 써 있을뿐 아해가 대체 누구인지, 왜 이런 작품전을 열게 됐는지 말해주는 단서는 없었다.

전시장 안쪽 가려진 곳에 있던 주최측 관계자를 찾았다. 30대의 안경 쓴 한국인이었다. 작가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기자의 신원을 확인한 그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분은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인터뷰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언론의 취재를 반기지 않는 정체불명의 사진작가가 아해였다. 그 남성은 웹사이트(www.ahae.com)를 참고하라고 했다. 하지만 웹사이트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의아하기까지 했다.

◆ 2년 간 창문 통해 100만여 장 사진 촬영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자신의 집 창문밖에서 바라본 풍경들을 무려 100만 장 넘게 찍었고 그중에서 고른 작품들을 전시장에 걸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100만여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고? 2년 간 쉬지 않고 찍었다 해도 대략 하루에 140여장을 촬영한 셈이다.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만일 당신이 100일이 넘게 창문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사진을 찍는다면 그 사진은 어떤 걸 보여줄까. 한국의 선지자 아해를 만나보라. 아해의 작품들이 사진전으로 마련된다. ‘나의 창문을 통해서’는 사계절 창문 밖으로 통해 바라본 세상을 촬영한 100장이 넘는 사진들이다.”

 

 

괴이했다. 집안 창문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2년 간 촬영했다니 말이다. 그런데 피사체 속에 나타난 대상은 아주 다양하고 풍성한 자연이다. 들짐승 날짐승이 단골 메뉴였다. 그는 자연주의자니까.

그의 집이 비무장지대 안에라도 있는 것일까. 창밖으로 이런 파노라마의 대자연을 만날 수 있다니. 필경 집안 창문은 동서남북으로 다양하게 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넓은 발코니에 나가서 자유로이 앵글을 활용하거나 산책 중에 촬영하는 ‘파울 플레이(?)’를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100만여 장의 사진 중 90%만 창밖을 통해 촬영했다고 소개한 내용도 눈에 띄었다. 그렇다 해도 아해는 최소한 도덕적인 작가이다. 자연을 건드리지는 않았으니까. 500년 된 금강송의 사진 각도가 안 나온다고 주변의 200년 된 금강송 수십 그루를 베거나, 동물들을 괴롭히고 때로는 해치면서 인위적으로 연출하는 작가들도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유명한 자연주의자이자 사진작가인 아해는 거의 100만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그의 작품 90%는 집안의 창문을 통해 촬영한 것들이다. 매혹적으로 아름다운 한국의 시골 정경을 볼 수 있는 그의 사진들은 가장 순수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인위적이지 않고 작위적이지 않다. 자연의 아름다움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개별적인 관점에서 사진들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전시회는 우리의 지속적인 건강과 복지와 관련하여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차남 “그 누구도 아버지와 같은 작가는 없어”

 

 

그와 관련된 유용한 한 가지의 정보가 있다면 아들의 등장이다.

“아해의 사진전 ‘나의 창을 통해서’는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운 속성을 가장 순수하며 가장 원초적으로 보여준다. 아해의 아들 키이스 유(Keith Yoo)와 대변인은 ‘어떤 사진작가도 이렇게 엄청난 작업량을 통해 만든 것은 없었다’고 말한다. ‘특히 인위적인 조명과 무대, 편집 등 일체의 인위적인 편집이 없는 것들이다. 이것은 가장 단순하지만 보기드문 프로젝트이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키이스 유는 차남 유혁기씨의 미국 이름이다. 그리고 엄청난 대자연을 촬영한 그의 자택은 안성의 금수원 안에 있었고 작업을 하는 개인 스튜디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들을 많이 걸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는지 디스플레이가 어지럽다는 느낌이었다. 솜씨좋은 큐레이터가 가세하지 않은 듯 작품들을 주제화하지도 않았다. 작품의 규모엔 압도됐지만 기자의 눈에 그렇게 높은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2008년 이전에 작업을 했다는 내용이 없으니 아해의 사진작가 경력은 그리 내세울 게 없는지도 모른다. 사실 성능 좋은 최고급 카메라와 장비들로 줄기차게 100만 장을 찍으면 훌륭한 사진 수백 장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얼굴없는 사진작가, 자연주의 사진작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주의와 선진 시민들에게 민감한 환경 보호를 강조하면서 아해의 이미지 마케팅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언론의 주목을 피하면서도 그는 뉴욕 전시회 이듬해인 2012년 루브르의 튀를리 정원, 2013년 베르사이유궁에서 잇단 전시회를 열었다. 115만 유로(약 15억원)의 엄청난 기부금을 낸 대가로 알려졌지만 그랜드 센트럴이라는 뉴욕의 랜드마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 경력이 ‘국제적인 작가’의 행보에 분명 도움이 됐을 터이다.

사업가이자 종교 지도자인 그가 말년에 자연주의 사진작가로까지 포장하게 된 것은 순수한 예술의 열정이었을까. 아니면 이 또한 치밀한 사업의 한 방편이었을까.

갑오년 비극의 정점인 세월호 참사 이후 그는 사상 최고액의 상금이 걸린 현상수배자가 되었고 의문의 변사체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아해의 웹사이트(www.ahae.com)는 출생과 사망연도를 ‘1941∼2014’로 표시해 놓은 채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본래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언어로 서비스됐지만 초기 화면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바탕 화면에 하나씩 떠오르는 일곱 개의 애도 메시지들이다. ‘당신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거에요…’(마이클) ‘당신은 정말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잭)….

그리고 피터의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내 주위 사람들과 함께 당신의 사상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당신의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을 세상이 알도록 진실을 위한 싸움을 하겠습니다.’

미스테리의 삶이요, 미스테리의 죽음이다. 그러나 유병언 회장의 죽음은 세월호 참사 규명과 무관하다. 서서히 침몰하는 배에 갇힌 가녀린 목숨들을 왜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느냐가 ‘화두’이므로.

robin@newsis.com

 

 

 

 

 

 

 

 

 

 

 

 

 

 

사진=김중만 작가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독도를 말하지 말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독도를 내버려 두지 말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독도에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꽂지 말자
이제 우리는, 우리는 그냥 독도가 되자(-김중만 作)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 29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지하 1층)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작가 김중만의 독도 사진전 제목이다.

직설적인 건 사진전 제목 뿐, 사진에서는 민족이나 애국의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되레 독도의 사물을 침묵시킴으로써 역사적 발언을 한다.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한 세련된 대응방식이다.

시인 고광헌은 "(김중만은) 빛을 감추거나 집적해 드러내는 방식으로 차이에 대한 존중과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상업사진 촬영을 중단한 김중만 작가는 독도 사진전에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 촬영된 사진은 추후 동북아역사재단에 기증할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찍은 사진 'Sea 2014416 Ⅲ'도 전시된다. 김중만 작가는 "바다에 나설 때마다, 영문도 모른 채 참담히 죽어간 그대들의 이름을 부르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진=김중만 작가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학준)과 해양경찰청이 공동 주최한 이번 사진전은 김중만 작가가 2년(2012~2013년)에 걸쳐 촬영한 독도사진 53점을 전시한다.

8월 11일까지. 무료 입장. 문의는 02-399-1114~6

 

CBS노컷뉴스 / 문수경 기자


 

박병문씨와 그의 아버지.


‘아버지는 광부’ 사진전 연 박병문씨
태백 광부 부친 일상 다큐사진으로
탄광기록 15년… 작년 최민식상 수상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와 작업도
“그분들 순수한 삶 현장을 담고싶어”


박병문의 사진전 <아버지는 광부였다>가 23일부터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개막에 맞춰 같은 제목의 사진집도 냈다. 개막식에서 박병문(55·사진 왼쪽)씨를 만났다. 그는 광부 연작으로 지난해 ‘최민식 사진상’ 특별부문 대상을 받았는데, 이번 사진전에는 당시에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이 대거 포함되어 완성도가 한결 높아졌다. 사진전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박 작가의 부친 박원식(85)씨는 1960년대부터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일한 광부였고, 이날 곱게 한복을 입고 아들의 전시 개막을 지켜봤다. 박 작가는 개막식 인사에서 “다큐멘터리사진가로서 무거운 첫발을 가볍게 내디딘다. 저로서는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탄광의 일상이었지만 탄광을 촬영하여 오늘 이곳에서 전시를 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이번 사진들 덕분에 탄가루에 묻어 늘 까맣던 아빠의 힘든 얼굴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혀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또 그는 “이 사진전은 오늘도 탄광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는 광부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사랑하는 저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인사를 마무리했다. 박원식씨는 아들의 전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작년에는 광부들의 현장 사진으로 상을 받았다고 해서 기특하다고 생각했고 동네에 자랑도 하고 다녔다. 사진들을 보니 옛날이 기억나서 흐뭇하기 짝이 없고 ‘아드님’이 잘해줘서 내가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 사진들은 탄광에서 고생했던 사람, 지금도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탄광 작업을 하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박 작가는 “아버지가 광부였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아버지는 늘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표출하고 싶은 이미지였다. 아버지는 광부들이 캐낸 탄을 실어 나르는 작업을 하고 그러셨는데 사고 난 이야기도 듣고 그랬다. 지금의 젊은층은 탄광을 아예 모른다. 그래서 알리고 싶었다. 예전에 은행 근무를 했는데 첫 발령지가 태백이었다. 탄광을 기록한 지는 15년쯤 되었고 낙동강 사진을 찍다가 만난 이석필 선생에게 지금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작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석탄공사 관계자 및 광부들의 협조 문제가 난관이었다. 여러 번 설득해서 윗분들의 허락을 받았지만 막상 탄광에 들어가선 현지에서 일하는 분들과 친해지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 (광부들이) 회식할 땐 같이 추렴도 하고 해서 어울렸다. 광부 얼굴의 클로즈업 사진의 경우 리얼리즘적으로 찍었다. 당사자가 ‘내 모습이 나가는 것은 상관없는데 자식들이 보면 싫어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대화를 많이 나눠서 풀었고 이번 전시에도 포함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탄광 외에 다른 작업도 한다. 그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을 지난해 7월부터 찾아가고 있다. 얘기도 하고 동영상도 직접 찍는다. 역시 할머니들과 친해지는 게 급선무였다. 처음 계기는 나눔의 집 카페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이야길 들었다. 한참 이슈가 될 때였고 매스컴에서 거론될 무렵이었다. 그때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기에 현장을 찾아갔더니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달랐다.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의 70%는 기자들인 것 같고 나머지는 유가족들, 정치권 쪽 인사들이더라. 마을 사람이나 시 관계자들은 안 보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성을 많이 띤 것 같아서 싫었다. 5년 지나고 나면 몇 분이나 살아 계실까 싶기도 하고 해서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삶의 현장을 휴먼다큐로 담아두고 싶다”고 말했다.

한겨레 /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NCOUNTER'14

•기획자 송수정
•기 간 2014. 9. 13(토) - 9. 14(일)
•장 소 호텔 인터불고

 

 

 

2014대구사진비엔날레는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가능하도록 리뷰 프로그램 “ENCOUNTER"를 준비하였다.

국내외 전시 기획자, 미술관 관계자, 사진축제 기획자 등이 리뷰어로 참석하는 본 프로그램은 작가들이 작업에 관해 현장 전문가와 심도 깊게 고민을 나누고, 전시와 출판 등의 구체적인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의미 있는 만남의 장이 될 것이다.

포트폴리오리뷰를 통해 우수 작가로 선정된 작가에게는 리뷰어들과의 개별적인 성과와 별도로 "2015 휴스턴 포토페스트 발견전" 및 "2016 휴스턴 포토페스트 포트폴리오 리뷰" 참여, "2016 대구사진비엔날레 우수포트폴리오 선정 작가전"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포트폴리오 리뷰는 국내 사진, 미술 전문가는 물론 한국 사진에 관심이 많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과 아시아의 사진관련 전문인들에게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이다.

 

알찬 결실을 맺은 2012년 포트폴리오 리뷰의 성과에 부응하고, 현재에서 더 나아가 미래에도 한국의 사진이 큰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기에, 젊은 사진인들에게 의미 있는 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신청기간 : 2014년 7월 26일(토) - 8월 3일(일)
신청경로 : 본 홈페이지 PARTICIPATION>포트폴리오 리뷰>신청안내

신청하기

 

해외 리뷰어

레기나 안젠버거
Regina Anzenberger (오스트리아)

 

비엔나 안젠버거 갤러리 디렉터
Director of Anzenberger Gallery

아이린 아팅거
Irene Attinger (프랑스)
유럽사진미술관 출판팀장
Library director of Maison de la Européenne Photographie
짐 캐스퍼
Jim Casper (프랑스)
렌즈 컬쳐 발행인
Publisher of Lens Culture
로지나 카잘리
Rosina Cazali (과테말라)
독립 큐레이터
Independent Curator
클레어 그래픽
Clare Grafik (영국)
영국 런던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전시팀장
Head of Exhibitions of London Photographer's Gallery

엘리나 하이카
Elina Heikka (핀란드)

핀란드 사진미술관장
Director of Finnish Museum of Photography
바오 쿤
Bao Kun (중국)
평론가 겸 전시기획자
Critic
그웬 리
Gawen Lee (싱가포르)
싱가포르 사진축제 디렉터
Director of Singapore International Photography Festival
보니 루벤스테인
Bonnie Rubenstein (캐나다)
스코티아뱅크 콘택트 사진 축제 감독
Director of Scotiabank CONTACT Photography Festival
히립시메 비써
Hripsime Visser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큐레이터
Curator of Stedelijk Museum Amsterdam
웬디 와트리스
Wendy Watriss (미국)
휴스턴 포토페스트 디렉터
Artistic Director of Fotofest
야마지 유코
Yuko Yamaji (일본)
일본 기요사토 사진미술관 큐레이터
Curator of Kiyosato Museum of Photographic Arts

국내 리뷰어

강수정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구본창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박영미박건희문화재단 학예연구실장
박원재원앤제이갤러리 대표
박천남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신보슬토탈미술관 큐레이터
신수진일우사진재단 디렉터
양정아국제사진기획자, Y&G 아트디렉터
이상일고은사진미술관 관장
조선령미술평론가,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최성우보안여관 디렉터
홍경한경향아티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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