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사진 찍기는 그 순간을 기억에 들여
나만의 歷史를 만들고 나를 주인공으로 새겨 넣는 일이다.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본격적인 찜통더위가 시작되니 만나는 사람마다 여름휴가 계획을 물어온다. 머뭇거리는 사이 요즘 새로 뜨는 여행지를 권해주기도 하고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여행법을 전수해주기도 한다. 이미 다녀본 곳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더라도 나는 잠자코 듣고 있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의 여행담을 듣는 것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가지고 싶어하는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취하는지, 누구와 즐거움을 나누는지 등 여행에 대한 기억은 한 사람의 역사에 관한 기대 이상의 정보를 지니고 있다.

인류가 기억하고 기대하는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 중 하나는 아마도 달이 아닐까 싶다. 1969년 7월, 3인의 우주인이 탑승한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닐 암스트롱(Neil Amstrong·1930~2012)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땅에 첫발을 내려놓는 장면은 텔레비전 카메라에 찍혀서 온 지구인에게 목격됐다. 달 표면에 찍힌 최초의 인간 발자국은 암스트롱 자신이 남긴 명언처럼 "한 인간으로선 작은 발걸음에 불과했지만 인류에겐 거대한 도약"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에 달 착륙에 관한 진실 공방이 있다고는 하나, 중요한 것은 당시 전 세계 5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한 사람의 달나라 여행이 아니라 모든 지구인의 영토가 우주까지 확장되는 역사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남긴 최초의 인간 발자국, 1969년 7월 20일.

 

그날 이후 암스트롱의 족적은 끝을 알 수 없는 미지 세계로의 멈추지 않는 도전과 개척 정신의 상징이 되었고 그 위대함의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게다가 이 사진에 대한 설명엔 항상 '달에는 바람이 없으니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백만년이 지나도 남아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따라다닌다. 지워지지 않는 족적이라니,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45년간 달에 다녀온 사람은 여전히 손에 꼽을 만큼 적고 본격적인 우주여행 시대는 기대했던 것보단 훨씬 더디게 다가오고 있다. 비록 우주 관광의 대중적 실현 가능성이 아직 요원한 듯하지만, 달은 더 이상 토끼가 방아를 찧는 동화 속 세계만은 아니다. 우리는 보름달을 쳐다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지만 언젠간 저 곳으로 휴가를 갈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우리에게 달에 관한 더 많은 상상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한 개인의 역사와 기억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어떤 이는 늘 가던 곳에서 빈둥거리면서 휴가를 보내고 어떤 이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을 순차적으로 점령하듯 휴가를 보낸다. 어디에서 무얼 하든 여행은 비일상적인 경험을 일시적으로 소유하게 해줄 뿐이지만, 그 경험을 오랫동안 자신의 것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여행의 시간과 장소는 제한적이며, 그 경험은 내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또다시 점유되고 소유되며 소비된다. 하지만 나의 카메라로 기록된 여행에 대한 기억은 나를 영원한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파리의 에펠탑, 포카라의 사원, 몽골의 초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순간을 자신의 기억 속으로 끌어들여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신세계가 아니면 어떤가. 내 인생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만한 발자국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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