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여행 Apple Travel

신현림展 / SHINHYUNRIM / 申鉉林 / photography

​2014_0724 ▶ 2014_0803

 

 

신현림_사과여행-프랑스 몽쉘미쉘 수도원_C 프린트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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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724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cafe.daum.net/gallerydam

 

 

시인이자 사진작가로 활동중인 신현림 작가는 사과나무밭 풍경에 몹시 반하여 사과를 주제로 작업한지 10년째다. 세 번째 전시 2011년『사과밭 사진관』展의 작품으로 2012 울산 국제 사진 페스티발 한국작가로 뽑히기도 했다. 사과밭에서 벌인 해원의 굿판을 지난 10년간 신현림은 사과꽃 피는 봄부터 계절마다 사과밭을 집 수시로 오가며 설치 퍼포먼스의 작업인『사과밭 사진관』展보다 시야를 더 넓게 펼쳐 보인다. ● 그녀는 10년이 넘게 한국과 해외 50개국을 여행을 다녔다. 이번『사과 여행 Apple Travel』이란 타이틀로 감동하고, 아프거나 추억이 있거나, 특별히 애착하는 자리에 사과를 놓고 6년간 찍은 사진들이다. 특히 조국인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뜻 깊거나 아프거나 기억하고 곳마다 사과가 바라보는 세상과 존재의 성찰을 담았다. 도시 풍경에서 바다로, 사과밭으로 대상은 달라졌어도, '살아 있는 생물이나 사물들뿐만 아니라 그 인연들의 기묘함'과 자연과 내면적으로 깊이 이어진 만물한 몸이란 동양적 생태적 철학개념에 시선을 두는 '신현림식 관점으로 존재 성찰하기'만은 이번 전시에서도 일관되게 스며있다. 최대한 정공법으로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담아낸 80여 점의 독특한 컬러 사진 작업이다. ● 전에는 사과밭이 지구의 상징이었다면, 이번에 그 지구를 돌며 찍은 것이다. 자신의 분신인 사과를 놓고 제사장처럼 제의를 치르듯 풍요를 기원하였다. 그리고 길과 길에 스며있는 수많은 전설과 신화. 시와 사람의 이야기와 기억들을 일깨우려 했다. 스스로 다시 깨어나고, 다시 태어나고 싶은 여행, 사랑을 담는 여행이고 생명의 중요성을 되살려내고 싶었다 한다. ● 그녀는 사라진 시간 앞에 묵념을 했다. 가는 곳마다 해와 바람 속에서 풍경과 나무의 존재에 감사했다. 책임지지 않는 인간의 손길과 발길로 다치거나 아픈 풍경 앞에 '미안합니다''용서를 빕니다'하고 사과를 했다. '자손들이 잘 살 수 있는 땅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자신이 숨쉬고, 느끼고, 끔직히도 열망하고 사랑하는 인생 그리고 지구와 자연에 대한 감사와 치유여행이었고. 기도하는 순례여행이기도 했다.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 주변 일상의 풍경들을 낯설고 기이하게 변주해서 보여준 2004년 첫 전시『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 2006년 두 번째 개인전『작아지고, 멀어지고, 사라지는 사람들』, 2011년『사과밭 사진관』展에 이은 네 번째 작업이다. "사월은 눈" 출판사에서 사진집 출간과 함께 갤러리 담에서 전시도 갖는다. ■ 갤러리 담

 

신현림_사과여행-이탈리아 친퀘테레_C 프린트_2013

 

대담: 사진작가 신현림_독립큐레이터 정형탁1. 정형탁_개인전을 축하드립니다. 2011년『사과밭 사진관』展시 이후 3년만의 개인전입니다. 이번『사과 여행 Apple Travel』展은 말 그대로 사과가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입니다. 전시주제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짧은 영어지만 trip과 travel은 다르죠? 선생님 스스로의 여행이기도 하구요. 신현림_사과나무밭을 처음 갔을 때가 기억나요. 빨간 사과들이 등불같이 열린 모습이 경이롭고 아름다워 깊이 빠져든 때가요. 이후 사과를 주제로 사진 작업한지 10년째 되었네요. 『사과밭 사진관』展 준비 중간 무렵『사과여행 Apple Travel』전시도 구상했어요. 내가 갈 곳과 가고 싶은 곳을 향할 때 늘 사과를 갖고 다녔어요. 사과를 풍경에 놓고 제사를 지냈다 할 수 있을까요? 제사장처럼 제의를 치르듯 풍요를 기원하며 마음은 춤을 추듯이 사진을 찍었어요. 끝없이 영생의 삶을 노래하고 싶었죠. 길과 길에는 수많은 전설과 신화. 시와 사람의 이야기가 스며있어요. 그 기억들을 일깨우기 위한 여행이기도 하구요. 사과 여행을 통해 다시 깨어나고, 다시 태어나고 싶었어요. 사라진 시간 앞에 묵념을 했어요. 가는 곳마다 해와 바람 속에서 풍경과 나무의 존재에 감사했지요. 책임지지 않는 인간의 손길과 발길로 다치거나 아픈 풍경 앞에 '미안합니다''용서를 빕니다'하고 사과를 했어요. '자손들이 잘 살 수 있는 땅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했어요. 이번 사과여행은 크게 제가 숨쉬고, 느끼고, 끔직이도 열망하고 사랑하는 인생 그리고 지구와 자연에 대한 감사와 치유여행입니다. 기도하는 순례여행였죠.

 

신현림_사과여행-운주사_C 프린트_2012

 

2. 정형탁_『사과밭 사진관』의 작품들이 국내의 한 사과밭의 풍경, 설치, 퍼포먼스 사진이었다면 이번 소재만 동일하지 시야가 커졌습니다. 작품도 사과가 있는 풍경들이 많습니다. 이전 전시와 다른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신현림_우리는 좀더 눈 여겨 보고 귀 기울여 들음으로 성장하고 매번 다시 태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지구를 돌면서 좀더 대자연과 인생을 눈여겨보고 땅이 안고 있는 삶의 흐느낌에 귀 기울이며 성장하고 싶었지요. "인생은 어디서나 가슴에 사랑을 담는 여행이며, 그 사랑은 사진이 증거한다." 사과를 찍으며 깨달은 제 아포리즘예요.『사과밭 사진관』展과『사과 여행』展의 공통점은 사랑을 담는 여행이고 생명의 중요성을 되살려내고픈 제 열망을 담은 거예요. 전에는 사과밭이 지구의 상징이었다면, 이번에 그 지구를 돌며 찍었죠. 도시 풍경에서 바다로, 사과밭과 풍경 속의 사과란 대상은 달라졌어도, '살아 있는 생물이나 사물들뿐만 아니라 그 인연들의 기묘함'과 자연과 내면적으로 깊이 이어진 만물한몸이란 동양적 생태적 철학개념에 시선을 두는 '신현림식 관점으로 존재 성찰하기'만은 이번 전시에서도 일관되게 스며있습니다. 최대한 정공법으로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담아낸 80여 점의 컬러 사진 작업입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인가, 어떻게 어디로 흐를 것인가 에 대한 오래된 질문, 그리고 사과를 놓은 풍경 속에서 떠오르는 나만의 질문과 답을 찾아보았어요. 이런 심정으로 50개국을 여행다닌지 10년이 넘었어요. 제가 감동하고, 아프거나 추억이 있거나, 특별히 애착하는 자리에 사과를 놓고 사진을 찍은 지는 6년 되었어요. 특히 우리의 조국,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뜻 깊은 장소와 사람을 기억하고 싶었어요. 사과가 바라보는 세상과 존재의 성찰이 담겼다 할까요.

 

신현림_사과여행-광주 원효사_C 프린트_2014

 

3. 정형탁_사과는 선생님의 분신입니까? 아니면 전시에서 보여준 환경, 여성성, 제의 등으로서 사과입니까? 사과의 상징성이 달라졌나요? 신현림_그 모두죠. 제 분신이기도 하구요. 사과에 제 마음과 영혼을 담아 찍고 싶었어요. 당연히 환경과 여성성, 사랑의 순환적 의미를 지녔구요. 우리 전통적인 제의의 사과였고, 희망과 기도의 사과. 생명과 나눔과 공유의 사과였죠. 간절한 기도가 담긴 기복의 상징 물이에요.4. 정형탁_여행에서 사과의 등장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가령 외국 풍경에서 찍은 사진은 국내에서 들고 가신 건가요? 그 지역에서 구한 사과인가요? 작품 제작 과정을 말해주십시오. 신현림_동네 트럭마트에서 사서 트렁크에 넣고 여행을 떠났어요. 바빠 준비 못한 때만 현지 마켓에서 샀어요. 휴대용 가방에 넣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찍었죠. 남의 시선이 신경 쓰여 못 찍을 때도 많았어요. 뭔가를 한다는 건 늘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남들 눈치 채지 않게 몰래 찍었어요. 왼손에 사과를 놓고 쭈욱 뻗어 사진기를 든 오른 손으로 찍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물론 춤출 때처럼 신나고 재미도 있구요~5. 정형탁_사진의 하나의 특징이랄 수 있는 '낯설게 하기'보다 정직한 풍경(?)이 많습니다. 가령 지난 첫 전시에서 보여준 낮에 플래쉬를 터트린다든가 일부러 초점을 흐리게 찍는다든지 하는 게 사라지고, 정공법으로 풍경을 찍었습니다. 전시 주제와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현림_풍경에 사과를 놓으면 낯설어지는데요. 그냥 아름답다고만 생각한 풍경도 사과를 놓으면 낯설고 독특한 존재감이 느껴졌어요. 그 전체적인 낯설음을 살리고 싶어 정공법이 어울린다 생각했어요. 사과를 놓을만한 공간이나 물건이 있으면 찍기가 수월해요. 하지만 들고 찍을 밖에 없는 풍경일 경우 줌렌즈처럼 무거우면 찍기 어려워요. 수십 컷 중에 한 두 장 고르는데, 그 수십 컷을 찍으려면 카메라가 가벼워야 해요. 그리고 최대한 정공법으로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리고 원하는 사진들이 태어나는 신비함에 기쁘기도 했구요

 

신현림_사과여행-예산_C 프린트_2014

 

6. 정형탁_몇몇 사과는 파랑이거나 노랑입니다. 의미가 있는 거죠? 신현림_푸른 빛은 신선함, 신비로움의 상징이죠. 균형과 조화의 색으로 신경을 안정시켜줍니다. 그리고 창의력 향상에 도움 주는 색이구요. 노랑은 좀 낙천적, 긍정적인 의미라 생각했어요~ 태양을 상징하며 변치 않는 사랑을 뜻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신현림_사과여행-프랑스 몽쉘미쉘 수도원_C 프린트_2011

 

7. 정형탁_장소성에 대해서도 말씀해보죠. 사진은 흔히 풍경을 전유한다고 말해집니다. 카메라는 현실을 포착도 하지만, 해석하기도 하구요. 선생님이 여행하신 수많은 장소와 풍경에서 유독 '이곳에서 사과를 꺼내 들어야 하는'이유가 있을까요? 신현림_사과를 통해 그곳과 저는 이어지고 깊이 만납니다. 관객도 제 사진 앞에서 그 풍경과 이어지고 새롭게 만나길 꿈꿉니다. 제게 무한한 영감을 주거나 아름다워 이곳을 담지 않으면 안된다는 느낌을 준 풍경도 많았어요. 물론 바삐 이동하느라 못 찍은 곳에선 참으로 아쉬었어요. 어떻게든 사과를 꺼낼 밖에 없던 페라스트 섬이 기억나요. 피로해 쓰러져 있다가 눈을 뜨니 이게 현실인가 묻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워 놀래 달려나갔죠. 발칸반도 몬테 네그로란 나라의 페라스트라는 지역이었어요. 제가 다룬 섬은 인공섬인데, 흔들리는 배에서 찍을 밖에 없었어요. 두 개의 섬은 두 개의 아름다운 사연이 있더군요. 첫째 사연은 15세기 베니스 어부가 우연히 발견한 암초에 걸려져 있는 성화였어요. 그것을 마을로 들여와 성지에 안치시킨 후 소문이 번져갔대요. 그 후 모든 어부와 마을사람들이 암초 위에 돌을 던지기 시작해서 약 550년간 돌이 쌓여 커다란 섬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섬에 성당을 세워 그곳서 발견한 성화를 안치시킨 후 모든 어부와 상인들의 안녕과 축복을 비는 성당으로 변하였답니다. 지금은 1년에 한번씩 페라스트 축제가 열려 아직도 돌을 던지는 풍습이 있는 곳이죠. 또 하나의 이야기도 인상 깊어요. 동네 한 어부가 배를 타고 나간 후 소식이 없자, 아내가 그를 기리며 20년간 머리카락을 잘라 수를 놓은 피에타 성모상을 만들었어요. 20년의 세월이라 검은 머리에서 백발까지 수놓아진 성화를 인공섬 성당서 직접 보고 감동하고, 전율을 느꼈어요. 제게 페라스트는 아주 각별한 기운을 받고 기쁨을 얻은 곳이었어요. 전시작품은 아니지만 인공섬을 배경으로 그곳 아이들을 찍은 즐거운 사진들도 있어 더 그런 거 같아요. 제게 매혹적이고, 유달리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곳은 이 외에도 많지요. 우리나라 화순의 운주사는 제가 제일 사랑하는 사찰이에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민초들의 천불천탑의 이야기가 스며있어요. 그래서 혁명적인 공간이고, 여기에 담긴 불상과 탑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이 아주 독특합니다. 이 신선함과 민초들의 열망은 지금 이 시대의 민초들의 열망과도 같아서 더욱 감동적이라 생각해요.

 

신현림_사과여행-화순_C 프린트_2012

 

8. 정형탁_사과시리즈는 계속 되는 겁니까? 앞으로 작업계획도 한 말씀? 신현림_네, 계속할 겁니다. 사과를 통해 인생의 비밀과 신비함을 찾고 꿰뚫어보고 싶어요. 사과꽃 풍경 속의 바디 스케이프나 우리 역사 속에 깊이 새겨진 고통과 제 개인 사적인 기억들이 서로 오가는 이미지를 모으고요. 저만이 할 수 있는 새롭고 매혹적인 작업을 사과를 통해 계속 일구고 싶어요.

 

Vol.20140724b | 신현림展 / SHINHYUNRIM / 申鉉林 / photography

 

 




The Masterpieces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展


2014_0705 ▶ 2014_0830 / 일요일 휴관

 

Eugène Atget_La Monnaie, Quai Conti, 6e_Albumen Print(Vintage)_21.5×18.1cm_1906
 

초대일시 / 2014_0705_토요일_05:00pm

 

참여작가

으젠느 앗제 Eugène Atget_에드워드 스타이켄 Edward Steichen

폴 스트랜드 Paul Strand_브라사이 Brassaï_마거릿 버크화이트_Margaret Bourke-White

앙리 까르티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_유섭 카쉬 Yousuf Karsh

널드 뉴먼 Arnold Newman_마리오 쟈코멜리 Mario Giacomelli

브루스 데이비드슨 Bruce Davidson_르네 뷔리 René Burri_요세프 쿠델카 Josef Koudelka

마르틴 프랑크 Martine Franck_안타나스 수쿠스 Antanas Sutkus

로버트 메이플소프 Robert Mapplethorpe_허브 리츠 Herb Ritts

 

후원 / 가현문화재단_한미사이언스

 

관람료 / 성인 6,000원 / 학생 5,000원

송파구민, 사진관련학과, 단체 10인이상 1000원 할인

미취학 아동, 65세 이상, 장애우, 국가유공자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목요일_10:00am~09:00pm / 토,공휴일_11:00am~06:30pm / 일요일 휴관

한미사진미술관T

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19, 20층

Tel. +82.2.418.1315

www.photomuseum.or.kr

 

소장품은 미술관을 대표하는 미술관의 얼굴이다. 전반적인 예술사 흐름을 유념하며 역사적, 미학적 관점에 따라 작품을 수집하는 미술관의 수집정책은 그 미술관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수집 방향의 일관성과 장기적인 안목은 미술관이 기반으로 하는 장르 전체를 아우르고 기관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 한미사진미술관은 한국사진사의 올바른 정립을 위하여 우리사진의 역사를 열다(2006), 대한제국 황실 사진전(2009)등 일련의 한국 근대사진 전시를 통해 국내 역사사진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왔으며 전시를 통해서 소개한바 있다. ● 이번 소장품 전시 The Masterpieces는 한미사진미술관의 정체성 확립과 내실화를 위해 꾸준히 수집해온 소장품들 중에서 해외 작품들을 엄선하여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전시이다. 세계 사진사 흐름에 충실하여 초기의 으젠느 앗제Eugène Atget를 비롯하여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 1930년대의 브라사이Brassaï, 인물의 힘을 보여주는 유섭 카쉬Yousuf Karsh, 결정적 순간의 앙리 까르티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등 해외 명작들을 포함한 주요 오리지널 작품들은 사진매체 고유의 사실적 특성을 기반으로 예술적 다양성을 수렴하는 한미사진미술관의 수집정책을 여실히 보여준다. ● 사진의 가능성과 미학에 대한 실험들로 점철된 사진사 170여 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각각의 사진이 지닌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발견하고 사진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이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출판물과 매체로만 소개해왔던 유수의 오리지널 작품을 총망라하여 전시장에서 직접 마주하는 아주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 손영주

 

Eugène Atget_A la Biche, 35 Rue Geoffroy Saint Hilaire_
Gelatin silver print(printed by Pierre Gassmann)_24×18cm_1905
 

으젠느 앗제 Jean Eugène Auguste Atget (프랑스, 1857~1927) ● 1897년부터 1927년까지 도시계획으로 변화되는 파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앗제는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빠른 속도로 근대화되어 가는 파리의 구시가지의 모습들은 기록하였다. 그의 사진들은 당시 문화의 중심지이자 급속히 거대 도시화되는 파리의 뒷골목, 가게의 유리창 안의 디스플레이, 건축 파사드 세부 등 사라져가는 자국의 문화유산을 자료로 남기고자 하는 공공 기관의 요청에 의해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파리의 구석구석 모든 것을 체계적이고 섬세하게 담아내었다. 당시 파리의 사진가들은 안정적인 구도와 노출의 완벽한 구성을 통해 사진을 제작하였으나 앗제는 사진의 형식적인 부분에 집착하지 않았다. 낡은 뷰 카메라의 노출과 테크닉 등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동트는 새벽, 이른 아침의 한적한 텅 빈 파리의 모습들을 장시간 노출로 촬영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그의 사진 속에서 건축물의 제외한 움직이는 사물들은 이미 사라진 흔적으로 표현되고, 렌즈 사이즈의 문제로 초점이 부정확하고 원판의 가장자리도 가려져 있다. 앞서 언급했듯, 공공기관의 의뢰로 만들어진 사진들이었기 때문에 몇몇 사진 유리원판에는 분류번호가 매겨져 있다. 실용적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앗제 사진은 텅 빈 도시의 멜랑콜리한 기분을 극대화하였다. 1920년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만 레이Man Ray의 조수인 미국출신 사진가 버레니스 애벗Berenice Abbott에 의해 널리 알려져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진가로 알려져 있다.

 

Edward Steichen_Flatiron Building, New York City_Tritone on platinum print_21×16.5cm_1904
 

에드워드 스타이켄 Edward Steichen (미국, 1879~1973) ● 미국의 사진가이자 전시 기획자로 20세기 현대 사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 중에 하나이다. 화가로 출발한 에드워드 스타이켄은 초기에는 부드러운 초점의 회화적인 분위기의 사진으로 시작하여 흑백, 컬러 사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인물과 풍경, 패션, 광고 등 다양한 주제를 섭렵하였다. 스타이켄이 사진을 시작한 20세기 초반 당시 미국의 사진계에서는 인상주의 회화와 같은 느낌의 부드러운 백금인화에 조색하는 회화주의 경향이 유행하였다. 1905년에 제작된 이 작품의 경우 안개 낀 저녁거리의 모습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점을 볼 때 20세기 초 회화주의 사진의 영향아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스타이켄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glitz와 함께 사진 분리파로 활동하며 독자적인 장르로서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스타이켄은 극적인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1955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사진부 책임자로 재직할 당시 기획한 인간 가족전 The Family of Man은 세계적으로 그의 이름을 알린 전시이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273명의 사진가들의 200만장의 사진을 한자리에 모은 이 전시는 사진은 예술이라는 지엽적인 분야에서 벗어나 대중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세상을 알리고 이해시키는 매체로서 가능성을 지닌 사진만의 특성을 부각시켰다. 전세계 85개국의 순회 전시를 통해 이 전시는 사진이란 매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각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였고, 1957년에는 서울 경복궁 미술관에서 전시되며 한국 사진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Paul Strand_Various images from Camera Work(set of 5)_Photogravures_23×16.6cm_1917
 

폴 스트랜드 Paul Strand (미국, 1890~1976) ● 즉물사진의 개척자인 폴 스트랜드는 1900년에 사진 분리파 운동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glitz가 제안한 '스트레이트 사진'이 출연한 시기부터 포토저널리즘의 전성기에 이르기까지 사진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사진의 예술성과 과학적인 속성의 일치점을 모색하여, 사진의 기계적 기록성을 더욱 강조하여 즉물적인 극한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진을 통해 사진 분리파가 내건 순수사진의 주장을 보다 더 발전시켰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루이스 하인 에게 폴 스트랜드를 소개받은 스티글리츠는 첫 전시를 '291화랑'에서 갖도록 주선하였으며, 그의 사진을 『카메라 워크Camera Work』지 특집으로 꾸몄다. 이번에 소개되는 5점의 사진들은 대상을 정밀하게 클로즈업해서 촬영하는 동시에 조형적으로 구도를 잡아 사실적인 질감과 둥근 곡선들의 조화를 보여준다. 육안으로 느끼지 못했던 사물의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Brassaï_Une grousse prostituee sous un reverbere_Gelatin silver print_29×23cm_1932

 

 

브라사이 Brassaï (헝가리, 1899~1984) ● 브라사이는 프랑스 사진의 주요 작가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 베를린 소재 미술학교에서도 공부한 적이 있다. 그 후 1923년에는 파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브라사이는 예술의 다양한 방면에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이러한 예술적 천성이 그로 하여금 파리에 머물게 했으며 예술의 도시에 쉽게 삶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였다. 그는 그 당시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를 비롯한 화가들과 헨리 밀러,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등과 함께 어울렸다. 그의 사진 작품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섬세함이라 하겠는데 이러한 예술가적인 그의 기질이 항상 화면 전체에 나타난다. 그는 사진뿐만 아니라 그림, 조각작업도 하고, 시도 많이 썼다. 그는 소재뿐만 아니라, 기록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사진에 대한 입장, 한편의 시적인 작품 분위기라는 점에 있어서 으젠느 앗제Eugène Atget의 사진세계와 동일하다. 앗제의 사진이 내향적이고 소박한데 비해, 그의 사진은 외향적이며 화사하다. 대상의 묘사가 소박한 경향을 보인 앗제와 달리, 브라사이는 대상을 극명하게 묘사하면서 개방적이고 전면적인 느낌으로 대상과 주위 환경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그는 대체적으로 인물을 화면 속에 전면으로 부각시키고 공간적 배경이나 분위기는 존속적인 조화관계로 처리했다. 이와 같이 다양성을 지닌 브라사이의 사진에서 회화적인 정취 혹은 조각처럼 입체적인 형태미와 더불어 시적인 로망을 머금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브라사이는 어느 하나에만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사진적인 조건 속에서 항상 그것들을 다루고 있다.

 

Henri Cartier-Bresson_Roman Amphitheater_Gelatin silver print_24×35.5cm_1933
 

앙리 카르띠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 (프랑스, 1908~2004) ● 1930년대는 세계 1차대전이 끝난 후 활동성이 좋은 소형 카메라의 사용과 사진인쇄술의 보급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시기이다. 앙리 카르띠에-브레송은 사람의 눈과 유사한 35mm 카메라를 사용하여 소형 카메라의 사진미학을 '결정적 순간'이라는 명제로 제시하여 사진의 미학적, 기술적 가능성을 보여준 사진가이다. 그가 말하는 '결정적 순간'은 사진 촬영에 있어서 빛, 구도, 감정이 일치하는 순간, 다시 말해 대상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순간을 말한다. 1952년 발간된 브레송의 첫 사진집 『결정적 순간』은 브레송이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전세계 사진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진방법론이 되었다. 그는 대학 시절 회화와 문학을 공부하며 그림을 위한 자료로서 사진을 접하게 되었고 으젠느 앗제, 만 레이의 사진에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게 되었다. 1931년 처음으로 구입한 라이카 카메라는 평생 그의 동반자가 되었고 25세의 나이로 뉴욕 줄리안 레비의 화랑에서 첫 번째 사진전을 열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브레송은 잡지 편집자의 조수로 경력을 쌓아가고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인도, 중국, 미얀마, 멕시코, 쿠바, 구소련을 취재하며 사진사에 길이 남는 명작을 남겼다. 앙리 카르띠에-브레송은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무어 등과 1947년 '매그넘 포토스 Magnum Photos'를 창립하였다. 매그넘은 '크다' 또는 '포도주를 담는 큰 병'을 가리키는 라틴어로 브레송이 말하는 '결정적 순간'의 한 장에 대한 사진미학을 강조하여 동시대에 일어나는 세계 곳곳을 취재하는 국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그룹이다. 브레송의 작품들은 그만의 위트를 느낄 수 있다.

 

Yousuf Karsh_Winston Churchill_Gelatin silver print_50×40cm_1941
 

유섭 카쉬 Yousuf Karsh (미국, 1908-2002) ● 유섭 카쉬는 인물 사진가 중 가장 유명한 사진가이다. 1933년 캐나다에서 인물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총독 부처를 비롯하여 고관과 그들의 가족을 찍기 시작하면서 인물 사진가로서 자리잡았다. 사진 속 인물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통해 사진가와 직접 대면했을 때 느끼는 강렬한 인상을 카메라에 담는 카쉬는 다양한 조명 테크닉으로 흑과 백의 강한 대비를 통해 인물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여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 화가, 유명 배우들의 사진을 고전적인 인물화 방식으로 촬영하였다. 카쉬의 후원자인 캐나다 수상 맥켄지 킹의 주선으로 1941년 캐나다를 방문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을 찍은 이 사진은 후에 『라이프』지의 표지에 실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당시 독일과의 정치적 관계에서 처칠의 카리스마 넘치는 인상을 잘 표현한 이 사진은 카쉬가 사진을 찍기 위해 처칠이 입에 문 시가를 빼앗았고, 이에 화가 난 처칠의 모습을 촬영한 일화로 유명하며 지도자로서의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인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그 후 카쉬는 『라이프』지의 요청에 의해 42명의 인물을 촬영하였고, 사진마다 인물 삶과 개성이 드러나는 표정과 손짓으로 인물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진가로서 인정받고 있다.

 

Arnold Newman_Igor Stravinsky_Gelatin silver print_18×34.5cm_1946
 

아널드 뉴먼 Arnold Newman (미국, 1918~2006) ● 아널드 뉴먼은 1941년 이후 샤갈, 피카소, 미로, 잭슨 폴락 등 많은 예술가들의 인물 사진을 발표해온 미국의 대표적인 포트레이트 사진가이다. 발레 음악 「봄의 제전」, 「불새」를 비롯해 가극 오라토리오 「오이디푸스 왕」 등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를 피사체로 담은 이 사진은 아널드 뉴먼의 대표 작품이다. 주로 인물을 짐작케하는 사물을 배경에 적절히 배치하여 촬영하는데 능했으며 파격적인 구도의 트리밍으로 신선한 초상을 보여준다. 〈Igor Stravinsky〉 작품은 전형적인 초상 사진이라 하기엔 그랜드 피아노의 검은 뚜껑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아래쪽 한구석에 스트라빈스키의 몸이 조그맣게 배치되어 있다. 사진 속 단순한 배경과 강한 명암의 대비는 인물로 시선을 끌어들인다. 그의 사진 속에는 복잡한 이미지 속에 단순한 요소가 패턴화되어 숨어 있으며 흑백 프린트의 깊이와 톤의 풍부함이 인물과의 친밀감을 더해준다. 평론가들은 뉴먼을 '환경적 인물사진가'라고 부른다. 그는 스튜디오용 대형 카메라만을 사용했지만, 스튜디오 초상사진의 전형성을 벗어나 인물의 생활, 직업이나 업적을 드러낼만한 요소를 화면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그 결과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익숙한 자신들의 공간 안에서 한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촬영 전 그는 촬영 인물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데 열성적이었다. 촬영 대상이 유명인이면 신문, 잡지사에 정보를 요청하고 일반인이면 식사를 같이 하거나 그 주변 인물을 만나서 정보를 파악하였다. 그는 촬영 대상을 알 기회가 없을 때에만 자신의 상상력과 직감에 의존했다.

 

Mario Giacomelli_Gelatin silver print_Printed in 1997_29×39cm
 

마리오 쟈코멜리 Mario Giacomelli (이탈리아, 1925~2000) ● 이탈리아의 사진가인 마리오 쟈코멜리는 이탈리아의 유명 시인과 화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흑백의강렬한 사진작업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상과 자연풍경을 촬영대상으로 삼았으며,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기보단 시적인 은유나 사색이 담긴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로 재구성하였다. 촬영 및 인화 테크닉을 통해 사진이미지를 부분적으로 남기기도 지우기도 하고 흑백 톤을 조절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로서 사진을 다뤘다. 흔치 않은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쟈코멜리는 죽음의 문턱에 있는 병든 노인들, 검은 옷을 입고 생활하는 스카노Scanno 마을사람들, 그리고 수도사들의 삶을 특유의 방식으로 조명했다. 그의 작업 곳곳에는 사진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죽음 시리즈는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강한 흑백대비를 살리고 거친 입자를 강조하는 인화법으로 표현한다. 대개가 종교적이고 어두운 분위기의 사진이다. 사진 속에서 작가 얼굴을 대신하는 가면, 날아가는 새들은 엄습하는 죽음을 상징하는 피사체로 등장한다.

 

Josef Koudelka_Jarabina, Slovakia_Gelatin silver print_15.9×23.2cm_1963
 

요세프 쿠델카 Josef Koudelka (체코, 1938~ ) ● 요세프 쿠델카는 인간이면 누구나 부딪히는 삶의 순간들―탄생, 결혼, 죽음―을 자유로운 집시의 삶으로 보여준다. 연극 사진을 시작으로 극적인 상황, 그리고 대상을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하는 태도를 익히고 1962년 이후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유럽 곳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소수민의 삶을 보여준다. 쿠델카는 그들의 환경 안에서 클로즈업을 통해 고발하거나 억지스런 앵글로 호소하지 않으며, 삶의 무게를 힘들게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의 사진은 때때로 가슴 깊은 적막함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대상에 대한 신뢰와 그들과 형성된 유대감이 바탕이 되어있다. ● 요세프 쿠델카의 집시연작은 1967년 체코 프라하에서 전시되고 1975년에 사진집으로 출판되었다. 살인죄에 대한 형 집행을 위해 무리와 떨어져 걸어가는 한 남자의 긴장한 몸과 무표정,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사진 속에서 암시적으로 느껴지는 남자의 운명은 바닥에 깊이 박힌 거친 타이어 자국만큼이나 힘들게 느껴진다. 그를 바라보는 집시 무리와 점점 벌어지는 현실의 거리가 멀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사진가와 남자와의 거리만큼이나 긴밀하다. ● 집시를 통해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가가 되었지만,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유민주화를 담은『프라하의 봄』을 발표한 후 조국에서 추방되었다. 여전히 쿠델카는 자신의 흔적이 남아있는 터전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집시처럼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사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 한미사진미술관

 

전시연계프로그램 라운지토크(총2회)

 

1) 7월9일(수)오후2시

제 : 문화 속에 숨은 사진이야기

연자 : 최봉림(한국사진문화연구소 소장)

장소: 한미사진미술관 20층

 

2) 8월13일(수)오후2시

제 : 큐레이터의 이야기가 있는 전시해설

강연자 : 손영주(한미사진미술관 수석큐레이터)

장소 : 한미사진미술관 20층

 

Margaret Bourke-White_Dancers in a Saloon_Gelatin silver print_20.2×25cm_1936(Printed in 1950s)

Bruce Davidson_untitled(from Brooklyn Gang)_Gelatin silver print_22×33.5cm_1959

René Burri_Pablo Picasso, Villa la Californie, Cannes_Gelatin silver print_32.2×48.3cm_1957(Printed in 2004)

Martine Franck_Tulku Khentrol Lodro Rabsel with his tutor Llagyel Shechen in the Bonath Monastery, Nepal_Gelatin silver print_23.5×35.5cm_1996

 

Robert Mapplethorpe_Feathers/Eggs_Gelatin silver print_38.9×39.2cm_1985

Herb Ritts_Untitled nude III_Gelatin silver print_56×46cm_1997
 

Museum's collection pieces represent the museum's identity. To what extent and what kind of work one considers to collect, so-called acquisition policy tells about the museum itself. Coherency and long-term discernment in collection practices encircle the whole genre the museum stands on, and proposes its prospective direction. ●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MOPS) has endeavored to define history of Korean photography in a fine way through a series of Korean vintage print shows. History Reveals(2006), Portraits of the Grate Korean Imperial Family(2009) are examples. MOPS, for this time presents masterpieces from overseas, the museum has industriously collected for substantiality and establishment of institute identity so far.The Masterpieces introduces a select vintage prints covering Eugène Atget from the very first, Edward Steichen, 1930s' Brassaï, Yousuf Karsh with his powerful portrait, and Henri Cartier-Bresson of 'The dismissive moment' within a chronological frame of photography history. This group of original prints well reflect the museum's collection policy which canvass artistic variety based upon the medium's intrinsic characteristic; a realistic documentation. ● The Masterpieces will provide a rare chance to encounter with large numbers of original masterpieces, introduced merely through publication in the meanwhile. Audiences can look back the last 170 years of photography history with a series of experiments on the medium's probability and unique aesthetics. In addition, the show will broaden and deepen their understanding of photographic art while providing chances to experiences the pieces' own aesthetic and historical value for the first time in Korea. ■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Vol.20140706g | The Masterpieces展

루브르 · 베르사유 전시에 35억…유병언 외국 언론에 스포트라이트
국내 미술계도 ‘돈의 힘’ 이 쥐락펴락…대대적 홍보로 스스로 이슈화


세월호 참사의 주범으로 지목돼 검찰의 지명수배를 받고 있는 아해(유병언ㆍ73)는 돈의 힘으로 명성을 얻었다. 루브르박물관과 베르사유궁은 수십억원의 기부를 받았다. 참사를 계기로 유병언식 ‘금권예술’이 도마에 올랐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11일(현지시간) ‘서울에선 공공의적, 파리에선 박물관의 친구’라는 헤드라인으로 아해를 소개한뒤, “세월호 재판 결과에 따라 유병언으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은 곳에도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해 스캔들을 계기로 되돌아본 우리의 화랑가도 ‘금권예술’로 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스스로 후원?…뜻있는 평론가들 “새치기일뿐”=아해의 전시회 데뷔는 지난 2011년 4월 말 미국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밴더빌트홀이었다. 이후 그는 런던, 프라하, 파리, 모스크바, 베니스 등 유럽 각지를 돌며 대규모 사진전을 열었다.

그의 사진전은 정계와 사교계의 유명 인사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2011년 런던 클라런스 하우스 정원에서 열린 사진전에는 찰스 황태자와 말레이시아 국왕 부처가 참석했고 체코 국립 박물관 사진전에는 체코 외무부 장관 등 정계 인사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전시를 ‘스스로’ 후원하는 전시 작가이자 메세나였다. 유병언이 2012년 루브르 박물관에 110만 유로(약 15억원)를 기부하자, 그의 작품이 이 박물관 소유인 인근 튈르리 공원에 전시됐다. 지난해 베르사유궁에 500만 유로를 전달하자 베르사유궁 오랑주리 미술관은 아해의 사진 작품을 전시했다. 심지어 마이클 니만의 교향곡 6번 ‘아해’ 연주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또 ‘물의 극장’ 보수공사 후원 등 명목으로 아해측으로부터 수백만 유로를 더 받았다.

콩피에뉴 숲 페스티벌도 유병언의 후원을 받았고 오는 7월4일로 예정된 아해 전시회는 아직 취소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달 20일 프랑스 우아즈에서 열리는 ‘숲 속의 축제(Festival des Forets)’ 참가 작가 명단에도 그의이름은 올라있다.

앙리 루아레트 전 루브르 박물관장, 클라우디오 데 폴로 사이반티 이태리 피렌체 알리나리 사진역사 박물관장, 밀란 크니작 전 체코 프라하 국립 박물관장, 마이크 본 조엘 런던 스테이트 미디어 편집장 등이 그가 돈으로 명성을 사는 데 따르는 많은 장애물들을 제거해 줬다.

돈으로 명성을 샀던 아해 유병언씨의 작품은 뜻있는 평론가의 혹평을 받았다. 그는 근거지에 대한 공권력 투입에도 검거되지 않았다.

 [출처=아해뉴스닷컴]


코네상스 데자르’나 ‘보자르 마가쟁’ 같은 잡지들은 마치 모네나 달리의 작품 전시회 때처럼 아해를 위한 임시 증간호를 내고 ‘아티스트의 테크닉과 전시회의 걸작들’이라며 그의 작품을 치켜 세웠다. 프랑스 언론 중 ‘루브르푸르투’ 등 인터넷 매체와 지역 신문 등 소수를 제외하면 아해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사진작가이자 교수인 마이클 맥카시는 “아해 같은 작가는 사진가로서 불쾌한 뒷끝을 남긴다. 세상에는 지치지 않고 노력해도 미술계에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부자 비즈니스맨이 전혀 특별하지도 않은 작업을 가지고 줄 맨 앞에 끼어드는 것과 같다”고 혹평했다.

예술작품 마케팅 전문가인 콘스탄스 자꼬 역시 “예쁜 이미지만으로 아해를 예술가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의 주제나 컴포지션은 아주 평이하며, 예술이라기보다는 르포나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엄청난 사이즈에 놀라지만 관객들에게 어떤 감정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루브르푸르투의 베르나르 아쉬케노프 기자는 헤럴드경제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주류 언론들은 거대 박물관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묵인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국내 미술계도 돈이‘ 쥐락펴락’=“원로 사진 작가들도 작품 한 장 팔기가 힘든데…. 작가들도 돈만 많으면 얼마든지 유명해질 수 있다.” 국내 미술계 한 인사는 아해를 ‘로비스트’라고 말했다. 돈으로 홍보하고 고가에 사도록 유도해 ‘이슈’를 만든 장삿꾼라는 것이다. 섬진강, 임진강 등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기록한 사진작가로 유명한 황헌만(66)은 아해의 사진들에 대해 “현격하게 떨어지는 퀄리티”라고 잘라 말했다.

돈으로 명성을 사는 사례는 국내에서도 드물지 않다. 한 동양화가는 홍보관련해 노골적으로 돈이나 작품 증정을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오래전 예술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종사하는 한 인사는 촌지로 받은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뒷돈의 피해는 작가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많다. 작품이 1억에 판매됐다고 가정하면 작가가 가져갈 수 있는 돈은 5000만원 정도. 나머지 5000만원은 제반 비용들을 해결하는데 쓰인다. 결국 작가의 입장에서는 비용을 떠안느라 제값을 못받는 것이다.

화랑들은 ‘고급 컬렉터’들을 비밀리에 관리하기도 한다. 또 다른 미술계 인사는 미술품 판매 수익을 작가와 화랑이 7:3으로 나눈다고 했을때 화랑이 가져가는 3에 해당하는 지분 중 1만 화랑이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2에 해당하는 부분은 이른바 ‘디스카운트’를 해 준다는 것이다. 실제 작품값보다 싸게 넘겨 고객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중 가격이 형성되는 셈이다.

한 신진화가는 한국 미술계가 작품이 아닌 ‘상품’을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화랑에 소속되는 순간 화랑이 원하는 ‘잘 팔리는’ 그림만 그려야 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업화랑의 지원 없이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만 하기엔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며 절패감을 털어놓았다.

돈으로 유명세를 얻는 미술계 일각의 빗나간 관행 속에서 “1억만 있으면 유명해질 수 있다”라는 작가들의 우스개소리가 씁쓸하게 들린다.

헤럴드경제/ 최상현ㆍ김아미 기자/src@heraldcorp.com




여행지에서 사진 찍기는 그 순간을 기억에 들여
나만의 歷史를 만들고 나를 주인공으로 새겨 넣는 일이다.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본격적인 찜통더위가 시작되니 만나는 사람마다 여름휴가 계획을 물어온다. 머뭇거리는 사이 요즘 새로 뜨는 여행지를 권해주기도 하고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여행법을 전수해주기도 한다. 이미 다녀본 곳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더라도 나는 잠자코 듣고 있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의 여행담을 듣는 것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가지고 싶어하는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취하는지, 누구와 즐거움을 나누는지 등 여행에 대한 기억은 한 사람의 역사에 관한 기대 이상의 정보를 지니고 있다.

인류가 기억하고 기대하는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 중 하나는 아마도 달이 아닐까 싶다. 1969년 7월, 3인의 우주인이 탑승한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닐 암스트롱(Neil Amstrong·1930~2012)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땅에 첫발을 내려놓는 장면은 텔레비전 카메라에 찍혀서 온 지구인에게 목격됐다. 달 표면에 찍힌 최초의 인간 발자국은 암스트롱 자신이 남긴 명언처럼 "한 인간으로선 작은 발걸음에 불과했지만 인류에겐 거대한 도약"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에 달 착륙에 관한 진실 공방이 있다고는 하나, 중요한 것은 당시 전 세계 5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한 사람의 달나라 여행이 아니라 모든 지구인의 영토가 우주까지 확장되는 역사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남긴 최초의 인간 발자국, 1969년 7월 20일.

 

그날 이후 암스트롱의 족적은 끝을 알 수 없는 미지 세계로의 멈추지 않는 도전과 개척 정신의 상징이 되었고 그 위대함의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게다가 이 사진에 대한 설명엔 항상 '달에는 바람이 없으니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백만년이 지나도 남아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따라다닌다. 지워지지 않는 족적이라니,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45년간 달에 다녀온 사람은 여전히 손에 꼽을 만큼 적고 본격적인 우주여행 시대는 기대했던 것보단 훨씬 더디게 다가오고 있다. 비록 우주 관광의 대중적 실현 가능성이 아직 요원한 듯하지만, 달은 더 이상 토끼가 방아를 찧는 동화 속 세계만은 아니다. 우리는 보름달을 쳐다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지만 언젠간 저 곳으로 휴가를 갈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우리에게 달에 관한 더 많은 상상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한 개인의 역사와 기억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어떤 이는 늘 가던 곳에서 빈둥거리면서 휴가를 보내고 어떤 이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을 순차적으로 점령하듯 휴가를 보낸다. 어디에서 무얼 하든 여행은 비일상적인 경험을 일시적으로 소유하게 해줄 뿐이지만, 그 경험을 오랫동안 자신의 것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여행의 시간과 장소는 제한적이며, 그 경험은 내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또다시 점유되고 소유되며 소비된다. 하지만 나의 카메라로 기록된 여행에 대한 기억은 나를 영원한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파리의 에펠탑, 포카라의 사원, 몽골의 초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순간을 자신의 기억 속으로 끌어들여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신세계가 아니면 어떤가. 내 인생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만한 발자국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장에 가는 재미 중 사람 보는 구경거리도 빼 놓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축제라도 사람 없으면 소용없듯, 장터의 중심은 결국 사람이다.
길이나 버스 같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과는 또 다르다.
일에서 해방되고 울타리에서 벗어났으니, 모든 걸 내려놓고 함께 어울릴 수 있다.

그동안 개인주의적인 의식구조 때문에 쉽게 소통하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마음의 빗장을 풀고, 모르는 사람 만나는 재미에도 한 번 빠져 보자.
알고 보면 다 정다운 이웃이고 좋은 사람들이다.

정선아리랑시장 문화장터는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다양한 층들이 얼굴을 부딪친다.
때로는 공연장에 나가 같이 엉덩이를 흔들며 춤도 춘다. 이게 사람 사는 재미다.
할머니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같기도 하고, 애인 같기도 한, 다 가족 같은 이웃이다.
옛 말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장을 지나치다 눈길이 마주치면
서로 웃으며 말을 걸어보자. “안녕하세요. 패션이 멋지네요”, “어디서 오셨어요?”

문화장터에서 만난 사람과는 막걸리라도 한 잔 나누며 어울려보자.
정선아리랑시장에서 만나는 이런 인연들이 쇼핑이나 공연보다 훨~~~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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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으로 이명동선생을 꼽을 수 있다.
보도사진은 물론 학술적인 이론과 평론, 출판을 위시하여 사진계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한 그의 업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대 원로작가께서 아흔다섯이나 되는 연세에 처음으로 사진전을 열게 된 것이다.  전무후무한 이번 사진전은 ‘사진예술’ 발행인 김녕만씨의 노력으로 성사되었는데, 문제는 그 첫 전시에 내놓은 사진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종군기자 때 찍은 한국전쟁의 가슴 아픈 사진들과 자유당시절의 민주화 운동 및 김 구, 신익희, 조병옥씨 등 우리나라 거목들의 마지막 초상사진에 이르기까지 작품성을 떠나 중요한 역사적 사료들을 망라했다는 것이다.

전선에서 찍은 어린 병사의 기념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미어지게 만들었다. 고향 부모에게 보내려고 찍어 달랬다는데, 그의 총구에는 예쁜 인형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개막식에서는 이명동선생의 인사말씀과 사진가 윤주영, 송영숙(한미미술관장)씨의 축사, 장사익씨의 축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많은 참석자들의 뜨거운 축하박수를 받았다.

 

지난 7월5일 오후5시에 개막된 ‘먼 역사 또렷한 기억“ 이명동사진전은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14에 위치한 ”한미사진미술관“ 19층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개막전에 참석한 사진가는 다음과 같다.
정범태, 김한용, 홍순태, 육명심, 한정식, 황규태, 강운구, 임범택, 김테레사, 차용부, 박영숙, 송영숙, 이완교, 윤주영, 박용윤, 전민조, 구자호, 최봉림, 김녕만, 윤세영, 이병용, 최광호, 김대수, 이주용, 이갑철, 이기명, 김영태, 박상훈, 곽명우, 손영자, 이종화, 김가중, 정태만, 유건식씨 등, 그 외에도 옛 현대칼라 대표였던 장남수씨를 비롯하여 동아일보 사우들과 이명동선생 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6·25 종군사진가 이명동씨가 기록한 ‘그날, 그 사람들’
입대해서 처음 글 배워 아버지께 편지 또박또박
“훌륭한 군인이 된 모습 사진 한장 찍어줄수 있습니까”
편지 들고 해맑게 웃던 병사, 이튿날 전투를 마지막으로…

소총에 인형 달고… 이명동 월간 ‘사진예술’ 고문이 6·25전쟁 당시 전선에서 찍은 어느 병사의 사진.

군대에서 한글을 배워 아버지께 처음 쓴 편지를 든 앳된 병사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아래쪽 작은 사진은 전쟁 중 국군이 눈 속에서 행진하는 모습. 이명동 고문 제공

 

흑백사진 속 국군병사는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앳된 얼굴이었다. 머리에 쓴 철모가 헐거워 보였다. 오른쪽 어깨에 자랑스럽게 M1소총을 기대고 풀밭에 앉아 두 손에 쥔 편지를 바라보는 모습. 소총 끝에 매달린 인형이 병사의 어린 나이를 짐작하게 했다. 비극적인 6·25전쟁의 한복판에서 이명동 월간 ‘사진예술’ 고문(94)이 찍은 한 병사의 사진이다.

한국 사진계 원로인 이 고문은 1950년 발발한 6·25전쟁에서 종군사진가로 활동했다. 육군 보병 제7사단에서 군무원 자격으로 전투 기록 사진을 찍었다. 24일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사무실에서 만난 이 고문은 전쟁 발발 64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렸다. 당시는 꽃다운 젊은이들의 피가 한반도를 붉게 물들이던 때였다. 전장에서 마주친 참혹한 광경들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자신이 찍어 준 어느 병사의 사진이다.

1953년 강원 중부전선에 있을 때였다. 한 병사가 카메라를 보고 그에게 다가왔다. “아버지에게 보낼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습니까?” 병사는 지리산 골짜기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숯을 구우며 살았다. 가난한 형편에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입대한 뒤 처음으로 한글을 배웠다. 혼자 남은 아버지께 처음 편지를 썼는데 같이 보낼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이었다. 병사는 “이렇게 훌륭한 군인이 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군복 주머니에서 돈 몇백 원을 꺼내 내밀었다.

카메라 앞에 선 병사는 자부심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글을 읽지 못하는 아버지 대신 경남 함양에 사는 친척의 주소가 적힌 편지를 남기고 그날 밤 최전방 고지로 떠났다. 며칠 뒤 이 고문은 병사가 사진을 찍은 이튿날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처음 쓴 편지가 마지막 유품이 돼버린 것. 이 고문은 그의 사진을 영정용 사진 크기로 다시 만들어 돈 몇천 원을 보태 편지와 함께 함양 친척 집으로 부쳐야 했다.

“참 아까운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어린 병사도 많았고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우리 국군이 얼마나 용감했는지….” 이 고문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눈앞에서 적군의 공격으로 즉사한 아군의 참혹한 시신, 혹한에 동상 걸린 발로 행군을 계속하던 병사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적군의 습격에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면서 국군의 훈련하는 모습과 생활상 등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전쟁이 끝난 뒤 1955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진기자로 활동했으며 동아일보 사진부장, 월간 ‘사진예술’ 창간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다음 달 5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 ‘먼 역사 또렷한 기억’에서 그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동아일보 /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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