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1일부터 '갤러리 브레송'에서 김동진의 ‘Another City 2’ 사진전이 열렸다.




김동진의 ‘또 다른 도시’는 인간성이 상실되고 개인주의로 치닫는 심각성을 비판하며 고발하고 있다.




정상보다 비정상이 판치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때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마저 혼란스럽다.

삶의 구조가 비정상으로 치닫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비정상이 정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 구분 자체가 인간이 규정해 길들어 온 것이겠지만, 그 기준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인간성일 것이다. 




소외와 박탈, 욕망, 갈등 등 현대인들의 심리적 불안상태와 비정한 도시의 단면을 형상화하여,

앞만 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개막식에는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사진가 김문호, 이수철, 이윤기,

김영호, 정영신, 함인선, 하춘근, 이세연씨 등 20여명이 참석했지만,

같은 시간대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막된 중국사진가 왕칭송 전시에는 200여명이 참석하였단다.

너무 대조적이다. 그 전시는 3개월이나 열린다는데...




이수철, 이광수, 김문호, 김남진씨가 차례대로 나와 사진에 대한 감상평과 격려의 말을 전해 주었고,

작가 김동진씨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서로 개막식이 진행되었다.




전시작이 작년에 전시된 사진보다 더 좋아진 것은 틀림없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진 평을 해 주신 분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사진비평가 이광수씨의 표현으로는 사진이 더 독해졌다고 말했고, 김문호씨는 사진이 진득하게 찰지다고 표현했다.


 

난, 김동진씨가 주제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되었다.

비정상으로 돌아가는 세상인지라 모든 게 찍을 대상이 아니겠는가?

사진가 김문호씨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작업도 비틀어진 사회상의 기록이지만, 그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주제는 비슷하나 김문호씨의 사진이 동적인 편이라면 김동진씨 사진은 정적이다.




개막식이 끝난 후, 다들 충무 해물탕 집에 몰려 가 뒤풀이를 했다.
전시작가 김동진씨도 부산사람이지만, 이광수씨도 부산서 올라 와 더 반가웠는데,

이광수교수의 시원시원한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오기로 한 이규상씨가 빠져 다들 아쉬워했다.

바쁜 분이 후배들 사진전을 위해 마음 써주는 것이 고맙기 그지없는데, 다 사진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김남진관장이 이차로 안내한 곳은 후미진 골목 안쪽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의 통행이 없는 골목인데, 분위기가 오붓해 좋았다.

더구나 술 마시며 담배까지 피울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었다.




뒤늦게 사진가 고정남씨도 찾아 왔는데, 술 마시다 사진 촬영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초상권 문제로 사람은 물론 거리스냅도 어려운 실정이 아니던가?

김문호씨는 카메라 파인더를 보지 않고 찍는 노 파인더 기법을 많이 활용한다고 했다.

이젠 숙련되어 대부분 의도한 화각을 얻어낼 수 있단다.




가로등이 조는 어두컴컴한 골목 풍경도 김문호씨가 놓칠 리 없었지만,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사랑 놀음하는 남녀가 타깃이 되기도 했다.




그 날 김동진씨가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자리했었는데, 결혼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남편 될 김동진씨의 사진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니, 찰떡궁합인 것 같았다.

다들 축하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런데, 김남진관장과 김동진씨가 나란히 앉았는데, 찬찬이 살펴보니 너무 닮았더라.

이름까지 비슷한데, 혹시 숨겨 논 아들이나 동생은 아닐까?




다들 술이 취했으나 삼차로 호프집을 찾았다.
김남진 관장이 앞으로 추진할 사진기획을 말했는데, 이광수교수도 흔쾌히 돕겠다고 했다.



헤어지기 아쉬워 계속 마시다 보니, 자정이 가까워 전철이 끊어 질 시간이었다.

부산사람들은 여관을 잡아 놓았으나, 멀리 가야할 김문호씨가 걱정이었다.

택시비로 주머니 좀 털렸을 거다.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다




이 전시는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0일까지 열린다,
안 보면 손해다.

사진, 글 / 조문호




































































원로 사진가 한정식선생께서 건강에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다.
인사동 오피스텔을 처분하고 자택에 들어 가신지가 일 년이 가까워 온다.
해마다 신년만 되면 가까운 분들을 인사동에 불러 모아 오찬회를 베풀었으나,
올해는 나오실 수가 없어 못한 것이다.
일체 바깥출입을 하지않아 문안드리고 싶었으나 그마저 사양하셨다.





지난 16일 모처럼 정영신씨의 주선으로 한정식선생 댁을 방문하게 됐다.

사모님과 함께 계셨는데, 한 때는 사모님이 더 위중하셨으나, 이젠 선생님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선생님의 구체적인 병명은 알 수 없으나, 잠을 통 주무시지 못한다는 것이다.

술도 수면제도 통하지 않아, 용하다는 한의원마다 다녀보았으나 소용없었다고 하셨다.

소문난 대부분의 한의사나 침술사들이 엉터리라 믿을 수 없었단다.

의사의 치료나 처방을 받아보면 대개 그 속내가 들여다보인다는 것이다.

침을 맞고 약을 먹어도 술수를 훤히 알아 믿지를 못하니 나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설사, 밀가루로 만든 가짜 약이라도, 믿는 환자는 나은 사람도 있었다는데...



 


외출도 멀리는 못하지만 가까운 곳은 조금씩 움직여 외식 정도는 드시러 가셨다.

인근의 고기 집에서 함께 식사를 했는데, 드시는 데는 전혀 지장 없었다.

식사 도중, 댁으로 손님이 찾아온다는 전화가 왔는데 사전에 약속을 했다고 하셨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선생님의 북촌사진을 소장하기 위해 찾아 온 단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니, ‘예술종합상사 봄을 운영하는 문화기획가 이일우씨와

역사박물관학예사 한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준비해둔 견본 사진들을 보여주며, 모두 가져가 필요한 사진을 고르라고 하셨다.

그런데, 몇 장을 매입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머지 사진을 기증해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다.

평소에 선생님께서도 원고료 없이 주는 사진이나 사진 기증하는 문제는

어렵게 작업하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안 된다고 말씀하셨으나, 그 날은 묵묵부답이셨다.



 


추측컨대, 사진하는 제자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하기 힘드셨거나,

아니면 오래 사지지 못한다고 생각되니 확실한 곳에 넘겨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손님들이 자리를 떤 후 선생님께 간곡하게 부탁 말씀드렸다.

선생님! 절대 사진을 그냥 주지 마십시오. 힘들게 사는 후배들의 희망이 끊깁니다.”고 했다.





어느 분야의 예술이건 작가들의 삶이란 곤궁하기 짝이 없다.

예술계 전반의 문제지만, 그중에서도 가난한 작가는 사진가이고, 사진 중에서도 기록에 전념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사진 수집은 가난한 다큐사진가들이 국가에서 보상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바늘구멍 같은 곳인데,

기증하는 사례가 늘어나면 그 구멍마저 막힐까 걱정하는 것이다.



 


사실 국가 기록사업은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지만,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돈과는 무관한 기록 사진 찍느라 가정이 파탄되거나 온갖 어려움을 겪는 사진가들이 많으나 정부에서 도와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큐멘터리사진을 전공하고 사회에 나와도 대개 버텨내지 못하고 전업하는 실정이다.

아무리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지만, 모든 걸 희생하며 찍어 온 결과물을 털도 뽑지 않고 통째로 먹겠다는 게 말이 될 소리냐?

어떻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사는 사진인들에게 좌절을 안겨주려 하는가?



 


이미지 홍수시대에 살고 있으나, 오래된 사진이나 기록적가치가 높은 사진은 차원이 다르다.

예술 보다 소중한 기록의 역사성을 하잖게 여기니, 어찌 역사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

수 많은 사진가들의 소중한 사진자료들이 쓰레기더미에 쓸려나가도 누구하나 나서는 이가 없고, 정부도 사회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평생 찍어 온 필름들이 집안의 애물단지처럼 굴러다니다 본인이 세상을 떠나면 그냥 사라지고 만다

이제 정부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대처해야 되겠지만, 담당 공무원들도 실적 위주로 그냥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진인들도 개인적인 이해득실보다 다른 사진가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스스로의 권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하기야! 사진을 전공한 사람조차도 사진인을 등쳐먹는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대개 사진라이브러리 운영하는 사람들인데, 정직하게 계약대로 주는 경우는 더물다.

맡긴 사진의 판매된 곳을 알 수 없으니, 도용이 발각되어야 변명하며 돌려주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 여지 것 사진라이브러리를 불신하여 한 번도 원고를 맡긴 적이 없으나, 8년 전 믿을 만한 사진후배의 부탁에 처음 주었다.

유로 크레온이란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며. 외국 포토에이전시와 연결되어 잘 팔릴 거라는 막연한 말을 믿었다.

전통문양이나 불교문화에 관한 팔릴만한 많은 사진들을 주었는데, 여지 것 감감소식이다.

물론, 팔 년동안 한 컷도 팔리지 않아 돈을 보내지 않을 수도 있으나 전화는 물론 우편물 한 장 받은 적이 없다.

 

더구나, 처음 시작할 때는 전모씨와 동업했는데이해관계로 전씨가 먼저 물러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유로 크레온자체가 어떻게 되었는지 오리무중이고, 두 사람 모두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만약 사업을 접었다면, 최소한 사정에 의해 폐업했다고 통보하며 원고라도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지 것 그의 체면을 보아 기다렸지만, 이젠 소송절차를 밟기로 했다.

나 혼자만의 피해가 아니라 많은 사진인들을 위해서라도 그냥두지 않을 것이다.

유로 크레온은 물론 다른 라이브러리에서도 피해를 본 사진가는 모두 나서자.

힘을 합쳐서 기어이 손해배상을 받아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퇴를 가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사진인들의 원고를 사후에 한 곳에 기증하여 보관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자.

그 곳에서 다양한 원고를 관리 판매하여, 가난한 사진가들의 작업비나 사진인 복지에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

많은 사진가들이 참여하여 투명하게만 활용한다면 정부에서 활용하는 것 보다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고,

그 수익금으로 미래의 사진가들을 도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물론, 장터사진가 정영신씨도 평생의 기록물을 흔쾌히 기증하겠다고 답했지만,

원로사진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진원고 기증을 권할 생각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 사진가들의 삶이 나아지고, 우리나라 사진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권익은 우리가 찾아야지, 아무도 대신 해 주지 않는다.

 

 

사진, / 조문호






線(The Lines): 선 건너 우리에게 안부를 묻다
노춘호展 / ROHCHOONHO / 盧春浩 / photography

2019_0514 ▶︎ 2019_0519 / 월요일 휴관



노춘호_평안북도 신의주시_종이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67×100cm_2018


초대일시 / 2019_0514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사진위주 류가헌

Mainly Photograph Ryugaheon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6(청운동 113-3번지)

Tel. +82.(0)2.720.2010

www.ryugaheon.comblog.naver.com/noongamgo



노춘호의 線 The Lines -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풍경 ● 통일과 북한에 대한 많은 사진을 보면서 항상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보는 사진이 얼마나 정확할까?'하는 의문이다. 분단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휴전선과 DMZ, 그리고 판문점에서 만날 수 있는 대치 상황, 국경지대에서 떠도는 꽃제비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가 보아왔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북한의 이미지는 매우 제한된 정보에 근거한 것이고, 이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우리의 판단 또한 제한된 것일 수밖에 없다. 무엇이 진실일지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역사만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노춘호의 사진은 중국과 북한의 국경 너머로 바라본 북녘 땅의 모습이다. 이 또한 북한을 이해하고 파악하는데 필요한 완벽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가 사진을 찍는 목적 또한 북한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에 있지는 않다. 사진으로 제공할 수 있는 북한의 정보는 우리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만큼이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작가 자신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사진가는 자신이 볼 수 있는 상황에서 가장 사진적인 '시각적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 그가 북한을 바라보는 곳의 경계는 휴전선이 아닌 국경이다. 하지만 분단 조국을 가진 작가에게 중국과 북한의 국경은, 더 이상 국경이 아닌 또 다른 분단의 경계선이다. 동시에 그곳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 작가 자신은 양쪽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주변인이 된다. 마치 서구 열강에 의해 만들어진 휴전선과 6.25 전쟁 이전의 38선에 대해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한계적 상황과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한국전쟁을 통해 둘로 나뉜 냉전 상태의 남북관계에서 북한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이런 식으로 그저 바라보는 방법뿐이라는 사실이 슬펐다"고 작가 자신이 술회한 것처럼, 그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정체성'을 상실한 존재로서 그저 바라보는 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춘호_함경북도 온성군_종이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67×100cm_2019


노춘호_양강도 혜산시_종이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67×100cm_2019


노춘호_양강도 김형직군_종이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67×100cm_2018

작가의 가족은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온 실향민이다. 자신의 고향을 잃고 부산이라는 타향에 뿌리를 내리고 경계인으로 살아온 그의 가족사와 마찬가지로 그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에 서 또 다른 경계인으로 만나는 낯선 풍경과 담담하게 마주하면서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실'을 사진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 작가가 사진 안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선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작가가 작품에서 가상적으로 상정한 선은 카메라 파인더 뒤쪽에 있는 작가와 사진을 마주하는 '우리'를 사진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그들'과 구분한다. 이런 이유에서 사진 속의 선은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경계를 넘나든다. 우리는 사진 속에 실재하는 북한의 모습을 마주하지만, 인민을 의식화 하고, 노동에 동원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붉은 구호와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자들의 사진과 동상과 같은 우상으로 대변되는 허구의 세계를 동시에 만난다. 동상의 머리를 잘라내고 살아 있는 인민의 모습을 강조하거나, 산길을 홀로 지나가는 사람과 왼쪽의 대형 동상을 병치하면서 상반되는 두 세계의 모순을 강조한다. ● 실재와 허구가 공존하는 공간, 그것이 작가가 바라보려고 했던 북한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사진을 보면서, 마치 광고 이미지가 넘쳐 나는 도심 안에서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다고 프레드 리친(Fred Ritchin)이 말했던 시뮬라크르로 가득한 세계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노춘호_양강도 김정숙군_종이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3×50cm_2019


노춘호_자강도 중강군_종이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3×50cm_2018

접근할 수 없는 대상을 촬영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작가가 사용한 망원렌즈는 사진 안에 몇 가지 특이한 효과를 만든다. 망원렌즈는 사진 속 대상들 간의 간격을 실제보다 훨씬 더 좁힌다. 근경, 중경, 원경의 공간적 층위들이 실제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압축된다. 마치 역사적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의 평면 위에 압축 한 것처럼 사진 안에는 다양한 풍경이 병치된다. 그리고 그 안에 또 다른 경계선을 만든다. 통제하는 자와 통제를 받는 자, 동원하는 자와 동원 되는 자, 이데올로기를 만든 자와 의식화된 자,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자와 화석처럼 동상과 사진에 갇힌 지도자의 모습이 모두 사진이라는 하나의 평면 안에 압축된다. 일반 풍경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안내선을 제거하면서 그의 사진은, 무대 위에 있는 장면을 촬영한 것과 같은 '극장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그 시각적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작가의 사진 속 장면은 실제의 모습이지만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 자신이 에셔의 그림에 나오는 끊임없는 모순의 고리 속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그런 모순의 순환 고리 말이다. ● 원근감을 극단적으로 축소한 그의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회화 효과를 만들어낸다. 매그넘의 르네 베리(Rene Burry)가 브라질의 상파울로의 높은 건물에서 아래로 보이는 건물위의 사람들과 도로를 촬영한 사진이나 거리 사진가로 잘 알려진 사울 레이터(Saul Leiter)와 앙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의 사진처럼 장면을 극도로 추상화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항상 정면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으로 인해 사진에 담긴 풍경은 '활인화(tableaux vivant)'를 대하는 것과 같은 비현실성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이런 독특한 시각화를 통해 그의 사진 속에 담긴 '풍경'은 마치 무대 위의 공연처럼, 아니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비현실화되고, 추상화된다. 그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안개와 연기처럼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머문 자리를 떠나면 이내 사라지고 말 것에 대한 작가의 안타까움을 담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풍경의 이런 속성을 통해서 사진의 본질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서려고 한다. 하지만 다가설수록 멀어지는 역설의 풍경이다. ● 작가는 자신의 사진적 시선을 특정 이데올로기에 맡기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분단 이미지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이 보여주는 풍경이 분단의 모습 전부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전통 다큐멘터리 사진의 가치가 '통찰력'에 바탕을 둔 해석이듯이, 그 또한 자신이 서 있는 그 곳에서 정치적 색채에 치우침 없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진실에 최대한 접근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의 사진적 해석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의 분단 현실의 내면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통일이 과거와 미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바로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현실임을 직시할 수 있다. ■ 김성민



노춘호_양강도 혜산시_종이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47×70cm_2018


노춘호_자강도만포시_종이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3×50cm_2018

TV에서는 이산가족들이 30년이 넘는 세월을 아픈 간격을 눈물로 메우고 있다. 이를 하염없 이 바라보고 있는 아버님의 눈 속에는 소주잔이 아른거린다. 3개월 후 아버님은 통한의 세 월을 끝내시고 하늘에서나 고향을 볼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또 35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눈물은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 생(生)은 어쩌면 경계에서 한쪽을 선택하거나 선택되어진 결과다. 사람은 누구나 선(線)에 걸쳐 있다. 線 사이에서 단지 저 線으로 넘어가지 않았을 뿐이니 말이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線이 있다. 그 線을 넘어온 사람들, 월남 가족. 그래서 이 땅에 존재할 수 있었던 나에게 한반도에서의 선(線)은 무엇인가? 왜 지금까지도 단 하나의 선은 없어지지 않는가? 이런 물음에서 이번 작업이 시 작되었다. ● 線. 한반도에는 두 개의 線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첫 번째는, 강한 집단들이 어떤 대상에 대해 그 대상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들 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그어 놓은 線과 그리고 그 線 에서 파생된 대상 내부에서 기득화 된 권력들에 의해 굳어지고 있는 線을 합친 線. 이 線에 의해 한국전쟁에서 3백만 명에 가까운 사망 실종 부상자,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 시기 희생자, 중국에서 인권유린을 당하는 탈북인,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 이산가족 등 수 많은 보통 사람들의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지나간 기억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이 線은 항상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국경과 인권은 정 치적 산물이어야 하는가? 이 희생들도 큰 정치적 타협에 묻히고 線은 다시 그어지는 것인 가? ● 두 번째는 같은 언어, 역사, 문화 등을 가진 민족끼리 서로 이어져 더 행복해야 할 이음의 線. 그러나 이 이음의 線은 강한 첫 번째 線에 의해 가로막혀 있고,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 들의 무관심 외면 등으로 그 이음이 점점 느슨해지고 있다. ● 그래서 이 이음의 끈을 잡고 현재 시점에서 권력에 의해 제공된 특정 장소와 시점에서 촬영 된 단위적이고 의도된 모습이 아닌 '지금, 여기'의 보편적인 상태의 線 건너 우리에게 몸은 여기 있지만, 영상이라도 線을 넘어 다가서서 안부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로 막혀있어 할 수 없이 북·중 접경지역을 찾았다. 그나마 그곳에는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들 이 있었다. 비록 다가갈 수 없는 線에 막혀, 체제의 감시를 무릎서고 짝사랑처럼 들여다보 았지만, 이념의 간격과 허락 없이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서로 볼 수가 있는 보통사람의 본 성으로 보통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었다. 그 너머 많은 우리에게도. ■ 노춘호



노춘호_양강도 혜산시_종이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67×100cm_2019

Asking After Us Beyond Boundary Lines ● on TV, separated families have filled the painful 30 years of time with tears and cries. A soju glass glimmered inside the eyes of my father who was blankly watching the screen. Three months later, he was finally able to see his hometown in heaven after an end to his life of bitter grief. 35 years have also passed since then, but the tears and cries still continue to date. Life is probably a result choosing one side or the other on a borderline. ● Every person stands at a line. He/she has not just crossed the line from the other. There is another line to us who live in the only divided nation in the world. People who have crossed the line are the families who have defected to South Korea from North Korea. From the questions "What is the lin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why has this line never disappeared?" to me who has existed on this land, this work began. ● Line. I believe there are two lines on the Korean Peninsula. The first one is a line drawn by a strong group on a certain target regardless of its intention based on their interests, and a line that combined the lines hardening by the powers and authorities in the target group derived from the first line. As a result of this line, the Korean War has led to the pains and hardships of so many people including nearly 3 million deaths, injuries, and missing people, victims from the Arduous March due to severe economic difficulties, North Korean refugees whose human rights are being violated in China, North Korean people suffering in political prisoner camps in the North, and separated families. However, these are not past memories and are still present continuous. This line always throws a question at me: Do boundaries and human rights in the end have to be political outcomes? Are these sacrifices buried under major political compromises and is a line drawn again? ● The second one is the line of connection that must be happier by reuniting the people of the same language, history, and culture. However, this line of connection is blocked by the strong first line and over time, its connection has become loose due to people's disinterest and negligence. Thus, instead of a single, intended scene shot at a certain place and time provided by power at this point with this line of connection, I wanted to approach and ask after us across the line over the ordinary state of 'right now, here' while our body stays here, albeit in a video. ● Unfortunately, I had no choice but to visit the border area between North Korea and China since everything was blocked. At least there were 'ordinary' people like us. Blocked by the unapproachable line, I looked over them like a one-sided love by risking the regime's monitoring and surveillance. Still, I wanted to send warmth to ordinary with the innate human nature of ordinary people to see each other whenever they wanted without ideological gaps and permissions—even to many of us across the boundary line. ■ ROH CHOONHO



Vol.20190514b | 노춘호展 / ROHCHOONHO / 盧春浩 / photography




태국에서 자리 잡은 고영준씨가 모처럼 서울에 나타났다.

죽도록 식구들 고생만 시키던 사진을 접고 사업에 몰입한지 15년째다.

사진을 그만두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사진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진과 돈은 멀어도 너무 먼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다 해도 돈은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지나 온 세월을 돌이켜 보니, 온갖 회한이 다 밀려온다.

잘 나가던 가게 내팽개치고 사진하지 40여년, 과연 얻은 게 무엇인가?

살기가 힘들어 몇 차례 직장을 전전하기도 했으나, 사진에 미쳐 오래가지도 못했다.



83년 인사동 포장마차에서..(좌로부터 고영준, 조문호, 윤재성, 유성준)



평생 저축 한 번 하지 않고, 만원 생기면 만원 쓰고, 십 만원 생기면 십 만원 썼다.

그렇지만 돈 없어 굶어 본 적 없고, 돈 없어 병원 못간 적도 없다.

한 평생 잘 놀며 잘 살았으니 여한은 없다. 죽고나면 말짱 도루묵 아니던가?

그렇다면 결혼을 하지말고 혼자 살아야하는데, 가족들 고생시킨 죄는 크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처럼 살지만, 흉악한 돈에 물들지는 않았다.




같이 춤춘 이런 때도 있었네, 옆 여인은 누구지? ㅎㅎ



지난 11일 오후 고영준씨가 귀국했다는 전갈에 충무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모처럼 케케묵은 이야기로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한가한 시간을 가진 것이다.

고영준은 40년 지기의 사우로 ‘사협’ 내막을 일찍부터 지켜 본 산증인이다.

인사동에 '예총'사무실이 있던 70년대 하반기부터 사진협회 총무로 일했으니,

원로사진가들의 이야기는 물론, 단체에 대한 내막을 훤히 깨고 있다.



85년 '동아미술제'에서 큰 상을 받았을 때 축하하러 온 사우들

(오른쪽부터 고영준, 신희순, 양은환, 홍순태, 조문호, 한 분 건너뛰어 정동석, 유성준씨)



김광덕이사장에서 시작하여 이정강, 이명복이사장을 두루 거쳤으나,

천성이 못된 짓을 못해, 못된 패거리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 때 그만두었기에 망정이지 더 있었다면, 똥바가지 뒤집어 쓸 수도 있었을 게다.

갈수록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비리의 규모도 비례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달에는 400여명의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한꺼번에 회원으로 입회하였다니,

가히 사진작가를 생산하는 공장이나 마찬가지다.






고영준씨는 '한국환경사가회'를 비롯한 여러 모임에서 함께 일했는데,

사람 좋은 덕에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꼬인다.

그런데, 독한 구석도 있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그 좋아하던 사진을 접고 사업에 매진한 것은 차지하고라도

'알중'에 가까울 정도도 좋아한 술과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어버렸다는 점이다.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난 담당의사가 끊지 않으면 죽는다 해도 끊지를 못하니, 어찌 존경스럽지 않겠는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브레송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강재구씨의 ‘12mm’사진전을 보러갔다.

전시 작가는 잘 모르지만,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12mm' 사진집 광고에 관심을 가져서다.

전시장에 아는 분이라고는 고정남씨 뿐이었으나, 군 입대를 앞둔 장정들의 긴장된 표정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번에 전시된 ‘12mm’는 군 입대 전에 머리카락을 12mm로 자르는 행위를 통해 통제되고 집단화되어 가는 과정을 말했다.

전형적인 기념사진풍의 방식이었으나, 긴장된 표정을 강조하기 위해 인공조명을 사용한 점이 특이했다.

입대를 앞둔 장정의 긴장된 표정과 경직된 자세가 핵심인데, 사진에는 애인 같은 여성이 옆자리를 지켰다.

그것은 개인의 정체성이 규율화되고 통제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여성을 통한 사회적 관계도 함께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젊은이의 표정과 자세를 통제하여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이끌어 내었는데,

남성이라면 한 번은 거쳐야 할 군대라는 공룡집단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었다.

입영을 앞둔 두려움과 이질감은 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강재구씨는 이전에도 군인을 소재로 한 작업을 두 차례나 가진 바 있었는데, 그 작업들이 궁금해 졌다.

병영의 기록은 이한구씨의 작업 '군용'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다녀와 고정남씨가 올린 페북 사진을 보니, 강재구씨도 나의 페친이란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평소 ‘오빠랑 놀고 싶다’는 젊은 애들만 아니면 무조건 페친으로 받아 주다보니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

가끔 인사동이나 전시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하면 난감할 때가 많다.




강재구 사진집 ‘12mm’ / 눈빛사진가선 60
2019년 4월 ‘눈빛출판사’ 발행 / 가격12,000원



전시장을 나왔으나, 고영준씨가 술을 마시지 않으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마침 정영신씨와 연락이 되어 충무로 복국집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제기랄! 혼자 소주 한 병을 깠더니,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제 소주 한 병도 무리인 것 같은데, 술과 인연을 끊어야 할지 모르겠다.

고영준씨와 언제 만날지 기약은 없지만, 헤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다면, 볼 날이 있겠지...


사진, 글 / 조문호















기다리던 쥐띠부인은 기어이 나타나지 않았다.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블로그에 올려놓고 날자와 장소만 알려주면 찾으러 가겠다고 했으나,

정작 날자와 장소를 올렸더니 애매한 글을 올려놓았다.






“[쥐띠부인-조문호] 네사진은 갖고 싶지 않다. 박광호 까마귀 그림과 맞바꿀 것이다
까마귀 그림 없이 네 사진 받을 생각 말아라
날 모욕 명예혜손 건으로 고소한 댓가는 내가 혹독하게 치루 게 할 것이다“






이런 글이 다시 올랐지만, 세발 까마귀 그림에 집착한 것으로 보아 올 것으로 생각했다.
약속한 날은 동강할미꽃 축제가 열리는 날이라, 혹시 길이 엇갈릴 수도 있겠다 싶어 집에 메모까지 해 두었다.
아무리 화가 났지만, 막상 얼굴 보면 옛날 생각나 사진과 그림을 모두 주려고 했다.
무슨 철천지 원수진 것도 아닌데다, 병석에 누운 박광호를 생각해서다.






그러나 내 기대는 빗나갔다. 약속한 29일의 해가 저물어도 쥐띠부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밤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며, 그림을 태울 것인가 아니면 더 두고 볼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입에 두말 할 수도 없지만,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그림은 태우는 게 상책인 것 같았다.





태울려면 군불 지피는 아궁이에 집어 넣어버리면 간단할 것이나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박광호 까마귀그림을 3월30일 오전9시에 정선 윗만지산길 56-5 소재에서 태운다’고 못 박기도 했지만,

박광호를 생각해서라도 푸닥거리는 해 주고 싶었다. 돈만 있었다면 정선에 있는 무당도 불렀을 것이다.






그 이튿날 아침에 그림 태울 준비를 했다.
생각한 장소는 십 일년전 ‘만지산서낭당축제’ 때 여러 작가들이 작품을 내걸었던 밭 이였다.
당시 그 그림도 함께 걸었기에, 그 곳이 좋을 것 같았다.
산이라 불이 옮겨 붙을 수가 있어 가마솥 화덕을 옮기려니, 돌 계단이 무너져 오를 수가 없었다.
야외에서 삼겹살 구울 때 사용하는 가마솥 화덕의 무게가 보통은 아니었다.






하는 수 없어 돌계단 아래 자리를 잡은 것이다.
먼저 사진부터 찍어두기 위해 액자 유리를 제거했더니, 아련한 향수가 밀려왔다.
20여 년 동안 쌓인 겹겹의 세월 먼지도 먼지지만, 어렵게 살아 온 박광호의 지난날이 떠올라서다.
캔버스 살 돈이 없었던지, 세발 까마귀는 종이 위에 그려져 있었다.





디테일도 없이 덧칠한 검은 까마귀가 전면을 가득 차치하고 있었다.

세발로 버둥되는 까마귀의 기형적인 모습은 불구로 몸부림치는 화가의 자화상 같았다.

그래,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훨훨 날아가거라.





마침 ‘전시장 가는 길’이라 쓰인 표석 옆에 진달래도 피어 있었다.
처음엔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세발까마귀 그림 화형식 퍼포먼스를 하려했으나 다 부질없는 짓이다 싶었다.

그냥 조용히 날려 보내기로 했다.






각목 세 개를 맞대어 고정시키고, 철사 줄로 액자를 매달았다.
화약처럼 마른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니 금세 세발까마귀에 불길이 옮겨 붙었다.
마치 불새처럼 허둥대는 까마귀 형상이 카메라 파인더에 들어왔다.






박광호 내외를 괴롭히는 악귀도 나를 괴롭히는 악귀도 모두 물러가라며 주문을 외웠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진가 오현경씨의 ‘그림자를 지우는 비’가 지난 3월 21일부터 인사동 ‘마루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개막식이 열린 21일 오후6시 무렵 들린 전시장에는 사진가 오현경씨를 비롯하여

이규상, 박재호, 석재현, 남 준, 권 홍, 정영신, 하춘근씨 등 많은 사진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박순경사진


처음 본 오현경씨의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니, 꿈결같은 시상이 떠올랐다.

아마 작가가 사진을 찍었을 때 느꼈던 시어로, 작가의 마음속에 도사린 욕구와 감정을 사물을 통해 풀어낸 것 같았다.

어쩌면 제목처럼 그림자에 작가의 뜨거운 욕구를 감추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못이 박혀 깨진 유리의 균열에는 절망적인 분노가 담겨있고,

가로등에 비치는 빗줄기에는 우울한 작가의 고뇌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물위에 아롱진 잔영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다.

때로는 사군자 같이 드리워진 나뭇잎으로 또 다른 감성의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직설적으로 풀어낸 기록사진을 넘어 심상적 시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가끔 독해를 요구하는 이해되지 않는 이미지도 있었지만, 대부분 보는이로 하여금 울림을 주었다.





오현경씨의 작업노트에 적힌 부분이다.

"복잡한 현실과 고민들을 그림자 속으로 집어넣었고, 감추고 싶던 아픔 혹은 현실적 처지와 어려움을 대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로서 감당해야만 하는 감정의 원칙과 형식의 정렬들... 내가 사진 속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자유'였다.

움직이는대로 변하고 형성되는 그림자... 나만의 사진 놀이이자 자유로운 외출이다."





오현경의 ‘그림자를 지우는 비’는 작가의 감정을 그림자에 숨기고 싶은 자기성찰이며 자화상이다.





이 전시는 '마루갤러리'[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5-4 마루 / 신관3층 C관]에서 3월 29일까지 열린다.



글 / 조문호





그날 찍은 기념 사진은 카메라 조작 실수로 망쳐놓았는데, 뒤늦게 포토샵에서 몇장 구제했다.
복구 못한 작가의 인물사진 및 작품사진 몇 점은 페북에서 스크랩했다














이윤기씨의 빛 그림 사진전 ‘시간을 담다’가 지난 2일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렸다. 





전시된 사진들은 그림처럼 아득한 그리움을 안고 있었다.

싱그러움이 느껴져, 젊디 젊은 사진가의 작업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은 이윤기씨는 칠순을 훌쩍 넘긴 노사진가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은 유수같이 빠르다.
그의 사진에는 인생무상에 대한 안타까운 그리움이 배어있다.
이윤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흘러가는 그리움의 시간이고 세월이었다.
연분홍 빛 아름다웠던 사랑의 시간도 담겨있고, 힘겹고 암울한 고난의 시간도 담겨있다.
돌이킬 수 없는 억겁의 세월은, 장면 장면마다 그리움이 절절했다.






이윤기씨는 바람에 날려가는 시간과 세월을 붙들어 인화지에 뿌려 놓았다.
얼핏 보면 느린 셔터로 쉽게 찍을 수 있는 이미지로 볼 수도 있으나,
그의 사진에는 깊은 내공이 쌓여있다.
어쩌다 한 두 장이라면 우연성에 기대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아니었다.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형상화하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찾아낸 기억이다.





그리움의 시간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불어오는 바람에 그리움이 꽃비처럼 흩날린다.
그렇게, 봄날은 가는 것이다.






사진 평론가 최연하씨는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작가가 붙잡고 싶은 십 분의 일초는 그가 사진에서 되찾고 싶었던 시간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근거인 풍경-세계 속으로 들어가, 살아왔고 살아가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겹쳐 운동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특이한 것은 무엇이 어떻게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인 풍경이지만, 시간의 눈들이 분명하게 포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매 순간 세계가 선사하는 빛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작가의 눈빛도 반짝인다. 자유롭고 귀한 몸짓이다.

작가는 아마도 작가 속으로 들어 온 바람과 더불어 ‘바깥’의 바람을 사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바깥(피사체)이 사진가의 내적 원리가 될 수 있음을 이윤기의 빗금 그어진 풍경을 보며 생각한다."






이 전시는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5일까지 열린다.






지난 6일 정오 무렵 ‘갤러리 브레송’을 찾았다.
누구 전시인지 어떤 사진인지도 모른 체, 김남진관장의 부름에 따른 것이다.
마침 밥 먹으러 갔는지, 김남진씨도 전시작가도 없었다.
사진을 돌아보며, 작가 이윤기씨가 누군지 궁금했다.




아름다운 풍경만 찾아다니며 복제하듯 찍어대는
아마추어 사진들에 진저리를 내 온 터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많은 생각을 끌어내는 사진에서 어렴풋이 작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에서 젊은 감성이 묻어났다.
전시장에 들어오는 작가를 만나보니, 성함만 기억 못했지, 잘 아는 분이었다.
전시 오프닝마다 숱하게 만나왔고, 술잔도 여러 차례 나누었던 분이 아니던가.
그 분의 사진도 처음 보았는데, 사진으로 이윤기씨를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전시를 돌아 본 후, 사무실에 들어가 김남진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사진가 박옥수씨가 들어왔다.

충무로에서 숱한 세월을 보낸 분이라, 이야기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젊은 시절에는 문선호선생 스튜디오에서 일한 적도 있다며,
문선호선생의 세심한 성격과 사업적 수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금성출판사’와 손잡고 현대미술가100인선 화집을 만들어 돈도 많이 벌었단다.
어느 날 스튜디오에서 누드 모델을 촬영하신 후, 그 이틑 날 갑자기 돌아가셔서
복상사하셨다는 풍문이 돌았는데, 사실이 아니란다.






한 때는 제일 행복한 죽음이 복상사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차피 죽을 것, 황홀하게 마감하고 싶지만 살아남은 사람 생각에 안 될 것 같았다.
이윤기씨 사진처럼, 아름다운 꽃비를 날리고 싶었는데...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주변 사람들 때문에 마음을 너무 많이 다쳤다.
사람 찍는 사람이, 사람이 싫어지니 분명 예삿일은 아니다,
사진을 시작하며 물고 늘어졌던 인본이란 말조차 무색해 졌다.






돈에 눈이 뒤집혀 정이나 양심은 전당포 잡혀 먹은 돈 벌레들,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고, 정치권력의 문전을 기웃거리는 똥파리들,
예술가라는 가면을 뛰집어 쓴, 사기 치는 양아치들,






사람 좋아하는 천성에 비롯된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사진을 그만 둘 것인가? 사람을 포기할 것인가?
몇 날 며칠 동안 나를 우울하게 만든 화두였다.






돈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마약 같은 존재라 치더라도,
예술 한다는 사람이 정치권에 기웃거리며 벌이는 형태는 구역질나 못 봐 주겠다.
얼마 전, 어느 전람회 감상하러 권력 실세가 인사동에 나타난 적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 평소에는 꼴도 보이지 않던 똥파리들이 줄줄이 나타나 알랑방구를 뀌어댔다.






청와대 문전을 호시탐탐 노리는 한 언론인은 사기꾼의 말 장난에 눈이 뒤집어졌다.
위선 투성이의 노인을 대통령과 잘 통한다며 바람 잡은 모양인데, 그것도 남을 모함하기 위해서다.





그런 일들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관련된 모든 사람이 인사동에서 자주 만나 온,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게 문제다.





바른 말이나 충고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다들 유아독존 격이다.
잘 못을 잘못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합리화시키며,
지적을 고맙게 생각하여 고칠 생각은 않고, 오히려 원수처럼 대한다.






평창가는 운전 길에 트럭기사가 옆에서 계속 사인을 보내왔다.

뭔지 싶어 갓길에 세워보니, 앞 쪽 바퀴의 바람이 빠져 차가 기울어 있었다.
바람 빠진 타이어 갈아 끼우느라 낑낑거리다 어렵사리 도착하니, 오전 아홉시가 넘어버렸다.

그런데, 장터를 오가는 사람들이 찍기 싫어졌다.






차 안에서 잠 자며 시간을 보냈으나, 관광지 순례에는 따라 나섰다.
황태 덕장이나 양떼 목장, 상원사, 월정사 등을 골고루 다녔으나, 마음이 텅 비었다. 
여기 저기 셔터는 눌렀지만, 사람은 피해 찍었다.






황태를 매다는 작업도 이미 끝났고, 양 때들도 겨울이라 갇혀 있었다.

20여 년 만에 가본 상원사도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법당의 불경소리조차 돈, 돈, 돈을 노래하는 것 같더라.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것은 '월정사'의 '팔각구층석탑'이었다.
위대한 예술의 자태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예술가는 사라져도, 훌륭한 작품은 영원하다는 것을 다시 일깨웠다.





오대산 일대를 돌아다니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할 일만 생각했다.






이제 사람이 아닌 쓰레기는 찍지 않기로 작정했다. 사진은 물론 상종도 않을 것이다.
그 중 사기꾼들이 가장 많이 득실거리는 인사동 출입을 가급적 줄이고, 동자동 작업에 몰입하기로 했다.
내가 지켜 보기로는 돈에 오염되지 않은 가난한 자들이 마지막 희망이다.






다들 짬 내어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자,
과연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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