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이 살해하여 찍은사진, 당시 보도된 일간지에서 스크랩했다




▲조문호 사진가



사진도 제대로 모르는 얼치기 아마추어 사진 인들이 전체 사진가들 얼굴에 똥칠시킨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 채, 오로지 공모전에만 집착하여 상장 쪼가리 몇 장 받고나면 자기도취에 빠져 안하무인이 되어버린다. 취미로 즐기며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야 나무랄 일은 못된다. 그러나 자연을 훼손하거나 부정을 저지르는 등 온갖 부도덕한 짓거리로 말썽을 일으켜 문제다,

반세기 동안 공모전 수상 경력을, 한 사진단체의 입회 자격으로 삼은 것이 원인인데, 그 폐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래 전부터 공모전 입회점수제를 폐지하라며 목청을 높여왔으나, 여지 것 반복되고 있으니, 어쩌면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부정부패나 불협화음이 공모전에서 비롯되지만, 돈과 모든 이권이 공모전에 걸려 있으니 없앨 수 없는 것이다, 그 폐해는 사람을 죽여 사진을 찍는 이동식 같은 살인마도 탄생시켰다.

이동식이 죽음에 집착한 동기도 공모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여러 차례 공모전에 출품하여 고배를 마셔오다 우연히 죽어가는 비참한 닭을 촬영해 출품했는데, 그게 은상을 받은 게 사건의 발단이다. 그래서 끔찍하고 자극적인 사진이 예술사진으로 착각하게 되었고, 그런 생각이 굳으며 엽기적인 살인마로 변한 것이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한 단체가 구성되려면 구성원의 인성이나 자질은 물론, 교육이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 없다. 그 살인 사건도 창피하다고 쉬쉬할 것이라, 입회규정에 명시된 공모전 수상경력을 폐지하여 회원들의 자질이나 사진교육에 치중했더라면, 오늘처럼 작가 없는 작가단체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작가란 허울 좋은 이름에 순수한 아마추어 사진 인들이 공모전을 추종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조직의 규모가 공룡집단처럼 비대해졌다, 이젠 한 술 더 떠 예비회원이란 이름으로 선모집도 한단다. 이게 작가증 팔아먹는 장사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전국에 깔린 조직들의 지역 이기주의 또한 보통문제가 아니다.

몇 일 전 속초 청호동에 ‘아트 플렛폼 갯배’란 갤러리가 개관되어 엄상빈씨의 ‘아바이 마을 사람들’ 초대전이 열렸는데, 지역 아마추어 사진인들의 항의성 민원이 물의를 빚었다는 것이다. 지역 사진가를 두고 왜 외부 사진가를 끌어들여 개관전을 하느냐?, 지원액도 지역 사진인들과 차별하느냐?‘는 내용이라는데, 사진이면 다 같은 사진이냐?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리자는 심보인지 모르지만, 제발 주제 파악 좀 하라. 이런 일들이 지방마다 비일비재하다.

앞서 이동식사건을 새삼 언급한 것도 그 희대의 살인마가 그 사진단체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동식씨는 서울 가락동에서 보일러 배관공으로 일하며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모델촬영대회를 쫓아다니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주변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목 맨 모습이나, 밧줄에 묶여 칼에 찔려 죽는 모습 등 비참하게 죽어가는 잔인한 사진을 연출해 찍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실감나는 사진을 얻기 위해 마침내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이동식은 이발관 면도사였던 김경희(24)양을 모델 시켜 주겠다며 산으로 유인해, 청산가리를 담은 캡슐을 감기약으로 속여 먹였다고 한다. 당시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한 그가 찍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진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 귀가 막히는 것은, 그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올림픽을 앞 둔 시점이라 나라 망신시킨다며 수사를 중단시킨 채, 그냥 덮어 버렸다는 점이다. 몇 년 전 담당 수사관이 뒤늦게 밝힌 바에 따르면 전처를 비롯하여 21명이나 되는 또 다른 여성 실종자에 대한 살해자백도 받아 냈다고 한다. 전처의 시신이 묻힌 자리를 파는 순간, 수사를 종결하라는 지시에 막을 내렸다니, 이제 죽은 자에게 더 물어 볼 수도 없게 되었다.

86년도 사형이 집행되며 그 살인사건은 모두에게 잊혀 졌지만, 난 부끄러워 잊을 수가 없었다. 정부에서 입을 막았고, 사진 계에서도 입을 닫았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 달 사진계 원로학자를 만난 사석에서 그 이야기도 사진사에 남겨야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가치 없는 그런 일은 입에 담지도 말라는 것이다. 치욕의 사진사는 역사가 아니던가? 꼭 남겨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한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 그 것은 예술이다. 나는 예술사진을 찍은 것이다.“라는 한 사이코의 괘변이 아직도 머리를 짓누른다. 미쳐도 제대로 미쳐야지, 어중간하게 미치면 사람도 잡을 수 있다는 경고의 말이다.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압수된 사진들과 증거자료를 설명하는 이동식.



어제는 샤진가 하재은씨에 이어 엄상빈씨가 병문안을 오셨다,
하재은씨는 세계 시장을 기록하는 잦은 해외 나들이와 국내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으로 바쁘고,
엄상빈씨는 6월15부터 7월31일까지 속초 청호동의 ‘아트 플렛폼 갯배’의 ‘아바이 마을 사람들’ 초대전 준비로 바쁘다,
더 이상 바쁜 분들에게 민폐 ‘끼치는 병원생활을 빨리 접어야 겠다는 생각이다,


엄상빈, 정영신씨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밥 먹다 어이없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속초시에서 실향민들이 사는 청호동에 갤러리를 만들어, 개관전으로 엄상빈씨를 초대했는데,
속초에 거주하는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속초시에 민원을 넣어 물의를 빚었다는 것이다.

속초시 담당자의 표현으로는 '지역 사진인들의 반란'이란다.  

지역 사진가를 두고 왜 외부 사진가를 끌어들여 개관전을 하느냐?, 지원액도 지역 사진인들과 차별하느냐?‘는
내용이라는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왜 주제 파악을 못하는지 모르겠다. 사진이면 다 같은 사진이냐?

지역 아마추어 동아리 전시와 프로 사진가의 기획전도 구분하지 못하니, 할 말이 없다. 

 

갤러리를 아마추어 사진인들의 놀이터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누가 기획을 하던, 실향민 지역 개관전이라면 청호동의 역사적 기록사진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누가 엄상빈씨 만큼 긴 세월동안 실향민을 기록한 사람이 있는가?

사진이라고는, 고작 옛날 이발관 그림 비슷한 공모전 사진이나 찍어오는 주제에... 


몇 년 전, 정선에서도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무식하니 뻔뻔스러운 것도 몰랐다.
아직까지 지역 이기주의에 빠진 우물 안 개구리들이 있다는 현실이 사진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아무리 제 잘난 맛에 산다지만, 쪽 팔리지도 않냐? 제발 사진 망신 그만 시켜라.



'

사진, 글 / 조문호

















오랫동안 좁은 공간에서 꼼짝 않고 앉아 놀았더니 허리에 문제가 생겨 생각지도 않은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지난 10일 오후6시에는 숭례문에서 이광수교수를 비롯한 몇 분들과 술 한 잔하기로 몇 일전부터 약속해 두었는데,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못가 걱정스럽기 그지없었다.

많은 분들에게 걱정 끼쳐 송구스럽지만, 정영신씨가 날 감금시켰다고 페북에 올려, 술자리가 병원부근으로 변경되었단다.

덕분에 반가운 분들과 마음껏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더니, 아픈 허리 통증까지 사라져버렸다.

 

이 날은 오후2시 무렵부터 병문안이 이어졌다. 물리치료를 받는 중에 인사동 유목민주인장 전활철씨가 찾아왔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페북하는 혜영씨에게 들었다고 했다. 장사 준비할 시간에 찾아주어 송구스러웠지만 어쩌랴!

민폐이긴 하지만 정 나눌 수 있는 자리라 고맙고 또 고마웠다.

가고나니 사진가 김수길씨와 하형우씨가 차례대로 찾아주어, 오랜만에 얼굴 보며 희희낙락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가운 분을 만났으면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환경이 변하니 찍는 걸 잠깐 잊어버린 것이.

하형우씨와 인근 공원에 가서야 생각나 카메라를 끄집어냈다.





 

오후6시 무렵에는 반가운 분들이 때 거리로 몰려왔다.

부산의 이광수교수를 비롯하여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 ‘갤러리 브레송김남진 관장, 사진가 김문호, 강제욱씨 등인데,

반갑고 미안한 마음에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병원 부근의 먹거리를 꽤고 있는 정영신씨의 안내로 오리장터로 들어갔다.

허리가 불편하니 오리걸음으로 나와도 재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술자리 대화는 이광수씨와 이규상씨가 만나면 죽인. 요즘은 이규상씨가 좀 자제하는 편이지만, 코메디 수준이다.

세상에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이 들어 점잖게 살아야 한다지만, 죽고 나면 자연스럽게 점잖아지니 재미있게 사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다.

이 날은 이광수교수의 구라로 시종일관 희희낙락했다. 폐북에 올라오는 글도 그렇지만, 일상적인 대화도 마찬가지다.

학자로서의 빈틈없는 논리를 바탕으로 시정잡배들이나 즐겨 쓰는 막말에 속이 다 후련하다.



 


그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싸움꾼이다,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악바리다,

이미 SNS를 휘저어 그 영향력은 왠 만한 언론 빰 칠 정도다. 그동안 실검 1위에 오른 건만 몇 차례나 된다,

대표적인 것이 고 최민식 선생의 사진상 문재 제기, 더불어 민주당의 사표 론에 따른 문재인 저주론 등을 펼쳤는데,

끈질긴 공격 끝에 결국 다 손들게 했다. 그래서 정의를 향한 혁명가 기질의 이광수씨를 존경하는 것이다.

난, 부산외대 교수라 부르지 않고, 교주님으로 따른다.


그런 분이 멀리 서울까지 병문안을 와 주셨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환자복 입은 체 졸라 빨아버렸다.

교주님의 그침 없이 쏟아내는 구라에 얼마나 웃었던지, 술을 마셔도 취하지를 않더라.

이차로 '새벽'이한 맥주집에 가서는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되는 새마을 주제가도 불러버렸다.



 


그런데 사진가 강제욱씨가 이광수교수의 광주대동고등학교 후배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정도면 대동고등학교도 명문이다,

서당 훈장 같은 김문호씨의 덕담이나 광대같은 이규상씨의 유모어가 뒤섞여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런 와중에도 의미 있는 일 하나 하기로 합의했다,

이광수씨의 제안으로 사진단체들이 뒷짐 지고 있는 사진가들의 권익을 찾기 위한 모임을 결성하기로 한 것이다,

일단 단체결성에 앞서 사진저작권문제의 구심점을 이규상씨가 운영하는 '눈밫출판사에 두기로 했다.

사진저작권에 대한 문제가 있다면 서로 협력해 대처하기로 했다. 사진가의 권익은 사진가가 지켜야 하니 많은 분들의 동참을 바란다.

 

역시 교주님이 나타나면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일도 만든다.

사진가들이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런데 뱉고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네...

 

사진, / 조문호






































 

 

 

 

 




▲조문호 사진가



권력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거대 언론들의 횡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치인이건 재벌이건 언론 앞에서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
여론몰이로 한 방에 갈 수 있으니, 어느 간 큰 놈이 감히 고개 처들 수 있겠는가?
긴 세월동안 서로의 먹이사슬이 되어 결국 오늘에 이르지 않았던가.
그러한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여론을 호도하거나 상대를 짓밟는 짓거리만이 아니라,
가난한 예술인들의 피를 빨아먹는 치사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들의 원고료를 착취하거나 재능기부란 이름의 연예인 인건비를 착취하는 사례 등인데,
문제는 대개의 작가들이 언론사의 인터뷰나 원고청탁에 상응한 대가를 강력히 요구하지 않는데 있다.

돈을 요구하면 당연히 대상에서 밀려나겠지만, 어느 누군가는 그냥 주기 때문에 악습이 반복되는 것이다.
인건비와 원고료는 고사하고, 한 술 더 떠 돈 봉투를 주거나 작품까지 싸 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더러운 관행 아닌 관행 또한 청산되어야 할 적폐임이 틀림없다.
요즘 들리는 바로는 소개해 주는 기사 당 인터넷매체는 30만원, 종이신문은 50만원이상 이라는 말까지 떠돈다.
돈을 받는 놈이나 주는 놈이나 똑 같다.

돈 되지 않은 문학이나 사진은 작품을 주거나 돈 봉투 내미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겠으나,
당연히 받아야 할 원고료는 물론 취재에 대한 인건비조차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 부끄러운 것은 작가들이 비굴하게 언론에 굽신 거린다는 점이다.
살아남기 위한 수단인지 모르나, 작가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살기 위해 작품이라도 한 점 팔려면, 자신을 알려야 하는 다급한 사정은 이해가 되나,
스스로의 자존심이나 권리마저 내 팽개치는 예술가들의 책임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란 생각으로, 긴 세월 언론의 버르장머리를 고치지 못한 원로들의 책임도 크다.

80년도 부산에서 사진 활동할 무렵, 작고하신 원로사진가 최민식선생을 자주 만날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선생께서는 각종 신문이나 잡지에서 청탁을 더러 받았는데, 대개 원고료도 받지 않은 채 사진을 보내 주었다.

그것도 가난한 잡지라면 모르겠으나 재벌 언론조차 원고료를 주지 않아, 선생의 살림살이가 걱정되어 한 마디 거들었다.
“원고료 안 받으면, 다음에 후배들은 우째 묵고 삽니꺼?” 했더니, “안 주는 걸 어떻게 달라하냐?”하셨다.
“그라마, 달라 해야지 예!”라며 몰아 부쳤으나, 말은 쉬워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일 것이다.

사진은 먹고 살기가 어느 예술분야보다 열악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언론사들의 원고료지급 사례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공영방송에서 몇일 동안 한 가족의 생활을 묶은 대가의 인터뷰료가 고작 30여 만원에 불과했다.

지난 달 케이비에스에서 방영한 ‘한국의 밥상’에서는 평생 장터를 찍어 온 정영신씨의 옛날 장터 사진을
여러 장 사용했으나, 원고료를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적은 금액이나마 원고료를 지급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아예 예산책정에도 잡혀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이러하니 다른 군소 방송이나 신문, 잡지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진이 기대어야 할 언론매체의 비도덕적 만행은, 사진 중에서도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살 길을 막아 왔다.

그리고 언론을 앞세운 방송사들의 재능기부공연도 심각한 문제다. 재능기부라는 말 뜻은 참 좋다.
즉 개인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공헌하는 것인데, 그러한 선의의 재능기부를 악용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시간과 노동력의 보상, 혹은 정당한 대가없이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노동착취의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창작행위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시장에 혼란을 가져 올 수 있다.
재능기부는 경제적 가치가 다른 기부를 쉽게 요청하고 거절 못하게 하며,
개인의 능력과 직업의 가치를 폄하하는 아주 나쁜 방법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재능기부라지만 사회적 강자이거나 돈 있는 사람에게 없는 사람이 ‘기부’하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언론사들의 공연문화 발전을 해치는 악덕 재능기부, 노 캐런티 출연문화’는 연예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게 가난한 예술인들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가난한 예술가들을 힘들게 하는, 힘센 언론의 예술인 노동력 착취는 뿌리 뽑아야 한다.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옛 서당처럼, 학생 수가 일곱 명뿐인 학교도 있었다.

제주도 북제주군 추자면 추포도에 있었던 학교로
배우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교사 배용문씨가
자진해서 섬에 들어와 가르쳤다고 한다.

여덟 가구가 사는 이 섬은 제일 가까운 학교가
바다길 2킬로미터나 떨어진 추자도 초등학교라
추포도 어린이들은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일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며 문맹을 퇴치하려 안간힘을 썼건만,
지금은 다들 너무 많이 배워 탈이다.
배금주의와 개인주의에 젖어 오히려 인간성을 잃게 되었다.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그 때 그 시절이 그립다.


1972년 5월 김성수기자가 찍은 사진으로
‘한국보도사진연감’에서 옮겼다.




지난 금요일은 단오제’ 촬영하러 강릉 가야했다.
사진가 성남훈씨가 기획한 ‘100개의 카메라, 100개의 시선’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한국관광공사' 프로젝트로 일 년 동안 계절별로 20명씩, 80명의 사진가가 투입되고,
동영상 20명 등 100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강원도 홍보기록’이다.
난, 포토그래퍼 10팀으로 이규철씨와 조가 되어 ‘강릉단오제’를 찍어야 했다.
단오제는 토요일부터 시작되지만, 하루 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3시경 낙원동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어,
느긋하게 어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반가운 손님이 방문했다.
무의도를 예술 섬으로 만들려고 전 재산을 털어 넣은 무의도 촌장 정중근씨와
경기민요 전수자인 예당문화원 조수빈원장이 찾아오신 것이다.
어제는 김도이씨가 오더니, 요즘 밥 사주겠다는 분이 많아 즐겁다. 

 





시원한 대구탕으로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었다.
커피는 사창가에 올라가 한 잔하자는 것이다.
팔년도 없는데 사창가는 무슨 사창가냐고 했더니,
사진을 창작하는 집이란다. 꿈보다 해몽이 그럴듯했다.
그러면서 가게에 들려 믹스커피 한 박스를 사왔다.
“우메! 내가 믹스커피 중독자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할 좁은 방에서 커피마시며,
시시껄렁한 한담을 나누었다. 좀 애로틱한...
듣기가 좀 거시기한지 조수빈씨는 가곡 ‘비목’을
민요로 편곡해 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아 난감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차피 사창가에서 일 치룰 것 아니면 빨리 일어나야 했다.
강릉 갈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낙원동에서 이규철씨 차로 서너 시간 달려 강릉에 도착했다.
현장 부근에 근사한 여관 잡아두고, 근사한 식당에서 한 잔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 이규철씨가 홀 애비로 지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독거의 편한 점도 있지만, 그 외로운 밤을 지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 촬영스케줄이 잘 못 짜여 있었다.
우린 정해진 일정 따라 움직였지만, 강릉단오제의 중요한 볼거리가
대부분 다음 날부터 잡혀 있었다.
강릉단오와는 무관한 ‘동래야유’ 탈춤과 초등생들의 ‘강릉관노가면극’이 고작이었다.
하루 더 머물면 되겠으나, 일요일 정오에 약속이 있어 밤늦게 돌아와야 했다.
정해진 소재가 없어 보이는 대로 찍었는데. 마음이 조급하니 보이지도 않았다.

찍힌 사람들에게 동의서를 받기 위해 ‘관광공사’직원이 따라다녔으나,
그가 무료할 정도였다.






돌아다니다 공연준비 중인 아리마당에 들려 반가운 분도 만났다.
삼척엠비시 황지웅 피디가 취재 나와 있었다.
동자동에 한 번 가겠다고 벼루다 아직 못 갔다며,
오래 전 서울역과 영등포 홈리스를 취재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로의 촬영모습이나 프로필사진도 몇 장씩 찍어야해,
이규철씨의 촬영모습을 관찰하였는데,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삼각대는 물론 드론까지 챙겨왔더라.
다행히 이규철씨가 하루 더 체류하여 보충하겠다기에 한 시름 놓고 돌아왔다.






작년에는 20년 전에 찍은 무당들을 만나 사진을 전해 주지 않았던가.
굿 보러 일부러 찾아 갔었는데, 이번엔 목전에 두고도 그냥 와야 했다.
세상만사 다 연이 있는 것 같았다.
강원도 홍보기록을 위해 소지라도 한 장 올려야하는데...

사진, 글 / 조문호

단오제 사진은 의뢰 받은 사진이라 올리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千人譜: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김광안展 / 金光岸 / KIMKWANGAN / photography
2017_0531 ▶ 2017_0606



김광안_千人譜:우리들의 마지막 얼굴展_갤러리나우_201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광안展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나우

GALLERY NOW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9(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82.(0)2.725.2930

www.gallery-now.com



종묘공원에서 영정사진 무료봉사를 시작한지 일 년 남짓 지난 어느 날 중앙일보의 취재 요청이 있었다. 인터뷰 다음날 신문이 뽑은 기사의 헤드라인이 "기억해줄 사람 없는 노인들 ― 마지막 순간 기록해주고 싶어"였다. 담당 손 기자님이 인터뷰의 맥을 정확히 짚어낸 군더더기 없는 발제(拔題)였지만, 당시에 그에게 밝히지 못한 내막이 따로 있었다. 기실 내 속셈은 단순히 특정 개인의 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한 영정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우리시대의 '마지막'얼굴들을 채집하고 그것을 작품화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방점(傍點)이 있었다. ● 얼굴은 하나의 아이콘이며 생존을 위한 표현기제(表現機制)로서 안면성이 전면에 클로즈업된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하여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얼굴을 통한 표정관리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사회적응이 가능 했다.때로는 욕망실현을 위해서 본심을 가면 뒤에 숨기고 삶을 연출해야만 했으며, 그 점에서 '페르소나'가 사회적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일찍부터 터득하고 있었다.


김광안_千人譜:우리들의 마지막 얼굴展_갤러리나우_2017


그러나 우리들의 주인공인 '마지막'얼굴들을 보라. 그들은 무대 위에서 가면이 벗겨진 피에로의 '민얼굴' 바로 그대로이다. 어르신들은 이미 사회에서 퇴출된 '잉여인간(剩餘人間)'이기에 이제는 무대 위에서 애써 표정을 관리 하거나 꾸밀 필요가 없다. 그들 스스로가 가면을 벗어버리고 무대에서 내려와 카메라 앞에서 가장 정직한 '잉여얼굴'이 되었다. ● 더욱이 첨단을 가는 성형술, 최신 유행의 화장술 그리고 강력한 영상 편집기술을 통한 얼굴왜곡, 얼굴훼손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오늘의 세태(世態)에서, 오히려 노년(老年)의 꾸밈없는 이런 '잉여얼굴'은 우리 안에 내재된 인간성의 원형(原形)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특별한 기호(記號)로서 사진가의 주목을 끌기에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된다. ● 유명(有名) 배우나 문인 등을 비롯한 사회 각 부문의 저명인사들은 자의(自意)가 아니더라도 인쇄나 매스콤 등 여러 매체에 의해 초상이 기록되고 세월 속에 보존 된다.갤러리에서 유명 탤런트가 아프리카의 어린이를 품에 안고 찍은 사진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고 자비를 들인 자서전 출판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물론 누구나가 다 유명해질 수는 없는 일이고 유명해질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 종묘공원은 옛 파고다공원에 이어 '도심(都心)'에 있는 동년배 노인의 모임 장소로 널리 알려진 명소(名所)인 반면 여기에 모여드는 '유랑민(流浪民)'은 익명(匿名)의 집단으로 여기서는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무명인(無名人)이 된다. ● 그러므로 누군가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소명을 가지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삶이 팍팍한 이들 무명인의 편에 서서 그들 얼굴 하나하나에 이름과 자존감을 되돌려 주고,우리시대의 대표적 '잉여얼굴'인 이들의 초상(肖像)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수납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록된 것만 역사에 남기 때문이다.



김광안_千人譜:우리들의 마지막 얼굴展_갤러리나우_2017


천여 명의 영정사진을 찍으면서 렌즈를 통해 바라본 노인들의 얼굴은 그 하나하나가 마치 한 폭의 풍경처럼 나에게 다가 왔다. 얼굴 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개성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표정이 아로새겨진 주름진 얼굴을 마주 보면서,수수께끼를 풀듯이 그의 인생을 어림해 본다. 그 사람의 얼굴풍경이 곧 그 사람의 인생풍경 이라도 되듯이... ● 전시 제목인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은 문태준 시인의 같은 제목의 시집에서 차용 하였다. 아래는 그 시의 몇 구절 이다. ● 당신은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네 /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몸이 된 당신을 보네 / 오래 잊지 말자는 말은 못하겠네 // 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네 /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네 / ■ 김광안



Vol.20170531a | 김광안展 / 金光岸 / KIMKWANGAN / photography





쪽방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
보증금이 없어 한 달만 못내도 쫓겨난다.
많지도 않은 짐, 버리고 버려도 남았네.

지하철 서울역11번 출구,
가랑이 쩍 벌린 사진 밑에 자리 잡아,
가져 온 짐을 성처럼 쌓고 잔다.

내일이면 하나하나 버리겠지만,
정들었던 마지막 밤을 같이 보낸다.
오늘 밤, 무소유의 진리를 꿈꾸리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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