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14인의 ‘촛불항쟁’ 현장 기록
촛불 구술사 口述史


강재훈 김봉규 노순택 박종우 성남훈 성동훈 윤성희
이승훈 전민조 정택용 조문호 조진섭 최형락 홍진훤


전시기간: 2017년 3월 28일 - 4월 23일

장소: 류가헌 http://ryugaheon.com/



정택용



‘빛의 예술’ 사진을 통해, 촛불을 ‘꺼지지 않는 빛’으로
- 사진가 14인의 ‘촛불항쟁’ 현장 기록 사진전, 3월 28일부터 류가헌

‘순한 촛불 하나를 어두운 밤 보탠다’
송경동의 시 ‘촛불 연대기’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랬다.

지난 2016년 10월 29일 첫 번째 촛불집회로부터 19번의 촛불 집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 ‘순한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거리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쳤다. 더 큰 빛을 찾아서, 어두운 밤에 빛 하나를 보탰다.


하나의 촛불로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그날의 시간들이 지워지지 않을 풍경으로 각인될 때, 사진은 그것을 기록했다.

개개인의 기억으로 또한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장면으로 남을 그날의 시간들을 사진가들이 빛의 예술이라는 사진으로 기록함으로써

촛불을 또한 ‘꺼지지 않는 빛’으로 만든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체온으로 광장을 덥혔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오늘,

사진가 14인의 ‘촛불항쟁’ 현장 기록 사진전이 다시금 그날의 장엄과 감동을 재현한다.

3월 28일부터 사진위주 류가헌(청운동 113-3)에서 열리는 사진전 <촛불의 구술사 口述史>가 그것이다.

강재훈 김봉규 노순택 박종우 성남훈 성동훈 윤성희 이승훈 전민조 정택용 조문호 조진섭 최형락 홍진훤. 신예 사진가부터

이름이 잘 알려진 다큐멘터리 사진가, 원로사진가, 사진기자 등 14명의 사진가가 함께 한 100여 점의 사진들은

최초의 집회로부터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탄핵인용에 이르기까지 장구하게 이어진 촛불의 시간들을 바로 눈앞인 양 펼쳐 보인다.

한 손으로는 목마 태운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치켜 든 촛불, 기차처럼 늘어 선 차벽,

자신의 촛불로 다른 이의 심지에 불을 붙여주는 손길, 눈물을 흘리는 여학생과 ‘너무 좋다, 박근혜 파면’의 신문 호외를 들고 뛰며 웃는 청년.....

촛불항쟁 현장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사진가들의 시선은 저마다의 변별성을 지닌다.

드론을 사용하지 않고 몸으로 찍은 이백만 촛불광장의 하이앵글, 만장일치로 탄핵이 인용된 순간 군중들의 환희와 눈물 등

기자의 직분을 가진 사진가들은 일반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극적인 순간들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프랑스에서 사진을 공부한 젊은 사진가의 프레임은 어떤 혼잡한 순간에도 미쟝센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그 균형 때문에 현장의 분노와 함성은 증폭된다.

바람 부는 광장과 거리에 촛불을 들고 선 군중들의 낯선 풍경을 더욱 더 기이하게 구성한 사진가, 태극기와 성조기의 물결에 주목한 사진가,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농성을 한 예술인들과 함께 넉달 보름동안 직접 풍찬노숙을 하며 ‘광화문 캠핑촌 예술행동’의 면면을 기록한 사진가까지,

14명 사진가의 시선도 표현방식도 다채롭다.

전시제목의 ‘구술사’란 민중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한 방식이다.

촛불항쟁의 촛불은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이룬 거대한 빛이었다.

그러한 민중의 외침이었다는 점에서, 그것을 사진가들이 사진의 형식을 빌어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술했다는 점에서

구술사이자 한국사의 풍경을 바꾼 역사의 한 장면이라는 면에서 또한 구술사다. 

전시는 4월 23일까지 류가헌 전시 2관에서 열리며,

이어서 박근혜 정부 4년과 촛불항쟁을 기록한 사진집 출간 기념 전시가 4월 18일부터 전시1관에서 2주간 열린다.



정택용

정택용


조진섭


조진섭


성동훈


성동훈



최형락



최형락


최형락


전민조 - 탄핵만세   2017. 3.   10  안국동


김봉규



​김봉규


​김봉규


최형락


윤성희



성동훈


​강재훈-7차 촛불집회,어린이05-1


박종우


박종우


박종우


홍진훤


조문호

조문호


2. 작가소개


강재훈
한겨레신문 사진부문 선임기자(부국장)이자 자타공인 분교 사진 전문가다.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럽고 정겨운 사진으로 피사체와 감성적으로 공감하려는 사진가이기도 하다.

경기대, 홍익대 대학원 등 여러 대학에 출강해 사진사와 포토저널리즘 등을 강의했으며,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1999년부터 2011년까지 포토저널리즘 강의를 하였고,

현재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재훈 사진학교”의 강의를 전담하고 있다.

이곳에서 배출된 100여 명의 사진가들로 구성된 사진 집단 <포토청>을 이끌고 있다.


노순택

露宿澤. 사진사. 길바닥에서 사진을 배움.

본명 노순택이었으나 2016년 11월 박근혜 퇴진 광화문광장 농성에 돌입하면서 노숙택으로 개명.

분단체제가 파생시킨 작동과 오작동의 풍경을 수집 중.

<분단의 향기> <얄읏한 공> <붉은 틀> <좋은 살인> <비상국가> <망각기계> <어부바> 등 국내외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이름의 사진집을 출간.

최형락
사진가로서, 외면 받은 사람들의 눈빛을 기억하려 애쓴다.

 '돈의 논리'와 '국가의 논리'가 망가뜨린 것들을 기록하며, 혹시 그럴 수 없는 것이 있는지를 찾고 있다. 

4대강 사업의 허위를 기록한 책 <사진, 강을 기억하다>(2011, 공저) 등을 펴냈다.

현재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 기자로 일하고 있다. 

성남훈
프랑스 파리 사진대학 ‘이카르 포토(Icart Photo)’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

프랑스 사진에이전시 ‘라포(Rapho)’의 소속 사진가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전주대학교 문화산업대학원 객원교수이고 사회공익적 사진집단 ‘꿈꽃팩토리’를 이끌고 있다.

2008년 한미사진미술관, 2010년 타슈켄트 국립사진센터,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2016년 스페이스22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2004년 강원다큐멘터리 작가상, 2006년 한미사진상, 동강사진상, 1999/2009년 월드프레스포토상을 수상하였다.

출판물로 『소록도』(타임스페이스, 1996), 『유민의 땅』(눈빛 2005)등이 있다.

성동훈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사진가
ATLAS PRESS 소속

수상
제3회 온빛사진상. 2013
LUCIE FOUNDATION SCHOLARSHIP COMPETITION, USA, 2011
CITY OF SUBIACO PHOTOGRAPHY AWARD, AU, 2010 _ FINALIST
INTERNATIONAL PHOTOGRAPHY AWARD, USA, 2010 _ 4CATEGORY, 6 PICTURES

정택용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생태를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
대추리나 제주 강정, 밀양, 용산과 더불어 숱한 노동현장에서 이 나라엔 대접 받는 1등 국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의문을 품고

사진을 찍는다.

2010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냈고,
2014년 ’밀양구술사프로젝트팀'이 쓴 『밀양을 살다』 속 밀양 주민 16명의 사진을 찍었다.
2016년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담은 사진집  『외박』을 냈다.

​조문호
 다큐멘터리 사진가.

개인전으로 ‘사람이다’(2016), '청량리 588'(2015), ‘장에 가자'(2015),'인사동, 봄날은 간다'(2010), '산을 지우다'(2008),

‘신명’설치전(2007),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2007), '두메산골 사람들'(2004), '태풍 루사가 남긴 상처'전(2002), '동강백성들'(2001),

 '전통문양초대전(1995), '불교상징전(1994)', '전농동588번지‘(1990)', '87민주항쟁’(1987)', '동아미술제초대전(1987)',

‘아시안 게임’ 기록전(1986) 등을 개최하였다. 현재 인사동 사람들과 동자동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다.

외 7인



3. 작업노트


노순택
광장일기, 어떤 날
비닐포장을 뜯고 흔들면 뜨거워지는 ‘핫팩’이라는 물건.

그런 물건을 알기는 했으나 써본 건 처음이었다.

1인용 텐트에서 잠을 잔 것 또한 내겐 첫 경험이었다.

비 내린 후 첫 얼음이 얼었던 어느 날, 새벽에 눈을 떠 보니 텐트가 주저앉은 채 얼어 얼굴에 닿아 있었다.

바닥에 깔 스티로폼 반입을 경찰이 허용하지 않아, 작은 텐트 안에 침낭만 깔고 자던 나날이었다.

몸서리나게 추운 그런 날들을 핫팩 덕분에 견뎠다. 나는 언제부턴가 식어서 버려야 하는 핫팩을 모으기 시작했다.

봄이 오면 핫팩 안의 흙을 모아 퇴비를 섞어 무언가 심어볼 생각이다.

점성질 재료를 섞어 조형물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택용
142일. 이렇게 오랫동안 광화문 광장에 공간을 점거해 유지할 줄 몰랐다.

작년 11월 4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기자회견 뒤 기습적으로 점거하면서

적어도 2주 정도면 이 정권에 뭔가 사달이 나서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완전 오판이었다.

헌재 탄핵심판 선고일 예측이 미뤄질 때마다 느낀 절망감은 깊었다. 하루라도 빨리 광화문 캠핑촌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 안에선 사진 찍는 일도 흥이 나지 않았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시간들이었다.


조문호
촛불이 예술로 꽃 피우다.
정의를 부르짖는 촛불시민들의 함성이 ‘광화문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 펼친 촛불시위의 놀이판은 예술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고,

예술이 대중 속에 녹아드는 예술 본연의 일상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시민들과 어울려 펼친 예술가들의 행동은 촛불의 위대함에 화관을 씌우며,

촛불이 예술로 거듭나는 쾌거로 또 하나의 민중미술사에 남게 된 것이다.

이 사진들은 석 달 동안 열 네 차례의 프로젝트에 함께 한 기록이다. 














신성한 태극기를 더 이상 모독하지 마라.

지난 1일, 시청 앞에서 열린 속칭 태극기부대로 불리는 박사모의 집회장은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명분도 논리도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구호를 외쳐대며 태극기를 휘날렸다.

‘탄핵무효’등 의 피켓이나 구호만 없었다면 마치 국경일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연단에서 선동하는 자의 말은 북한에서 일삼는 어투 그대로였다.

말은 빨갱이를 때려 잡자지만, 만약 빨갱이들이 쳐들어 와 장악했다면

이렇게 거리에서 태극기로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일까?

하는 짓으로 보아서는 무슨 깃발을 들고 설칠지 궁금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박근혜를 신봉하는 광신도 무리가 틀림없었다.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애국’을 들먹이는데, 애국 많이 좋아하시네.

나라를 살리는 게 아니라 나라 망신시키는 일인 줄을 왜 모르는가.


태극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성조기까지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힘센 트럼프가 나서달라는 아부성 작태인가?  아니면 미국의 속국이란 뜻인가?

겉모습은 다들 멀쩡한데,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여지 것 태극기가 이토록 나쁘게 악용된 적이 있었던가?
당장 쪽 팔리는 광란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사진-



박근혜가 구속되니, 삼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며 속이 후련하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지은 죄를 뉘우칠지 모르겠다.

그동안 국민들이 받은 상처를 헤아리면 죽어 마땅하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측은한 생각도 든다.

그동안 일 핑계 대며 컴퓨터와 날밤 까기를 밥 먹 듯 하였더니, 몸이 말이 아니다.
술 취해 들어와 담배연기 자욱한 쪽방에서 잠 않자고 노닥거린 탓이다.

이것저것 사진 찍어오면 정리하는 일도 만만찮은데다,
인터넷 검색하고 페북 질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녘에 잠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일거리를 미루지 못하는 습관도 있지만, 페북에 들락거리며 더 심해진 것 같다.

정영신씨가 나더러 인터넷 중독이란 진단을 내렸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았다. 핸드폰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지만,
일 때문에 컴퓨터와 씨름하다보니, 수시로 들락거린 것이다.

일이나 술도 갖고 놀아야 한다는 게 평소 신조였는데, 끌려 다녀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내 몸의 적폐 하나 청산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세상의 적폐를 운운 할 수 있겠나?

일단 컴퓨터를 몇 일 동안 켜지 않았다.
지난 주말의 촛불집회를 비롯하여 찍은 사진이 수두룩했으나, 그냥 정리하지 않고 쳐 박아 두었다.

사진을 정리하지 않으니 찍기도 싫었지만, 사진을 찍지 않으니 할 일이 없어졌다.
더구나 박근혜 파면으로 쫒던 대상을 잃고 생긴 멍한 상태였는데,
거기다 일까지 없으니 무기력증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안되겠다 싶어 타협안을 찾아냈다.
밀린 사진을 정리하기 위해 오랜만에 컴퓨터를 열었는데, 폐북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여지 것 찍어 온 사진들은 내가 필요한 사진도 있지만, 대개 상대를 위한 배려에서 찍어왔다.

그러니 사진이 좋든 말든 모든 사진을 블로거나 페북에 올렸는데, 주위로 부터 핀잔도 많이 받았다.

“왜 모조리 올리냐?”는 것이다. 안 좋은 사진은 작가의 이미지를 흐리게도 만들지만,

좋은 사진까지 왜 인터넷에 공개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난 생각을 달리한다.

사진가 입장보다 찍힌 사람의 입장이라는 배려가 전제되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사진이란 서로 많이 보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데, 숨겨두면 무슨 소용이냐?는 나름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젠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다. 인터넷의 포로가 되어 찍는 것보다 보여주는데 더 골몰한 것 같다.

그러니 밤과 낮이 뒤 바뀐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 건강을 해치고 말았다.

죽고 나면 아무 일을 할 수 없으니,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만 찍어 일을 최대한 줄이고, 일기 쓰듯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과 글도 몇 장만 올리기로...
폐북도 연결만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다음 주에 정선 가서 기력 찾아, 그동안 소홀했던 동자동 작업에 매달려야겠다.

조문호



‘‘바람찬 전시장’을 주 무대로 석달 동안 열 네 차례에 걸쳐 다양한 현장미술을 펼쳐 촛불시민들과 함께했다,

자유롭게 벌인 미술 놀이판은 시민들과 쉽게 가까워 질 수 있었고,

이러한 미술과 대중의 소통으로 미술본연의 일상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은 게 성과라면 성과다.

마지막 전시였던 ‘촛불역사’전 역시 지난날의 모습을 돌아 볼 수 있는 현장사진들이라 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박근혜 파면과 함께 ‘광화문미술행동‘의 모든 작가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사진가들과 화가 ,시인, 시민들의 사진으로 마련된 ’촛불역사‘전이 ’광화문미술행동‘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 것이다.

전시가 끝나는 날은 박근혜가 검찰 조사받는 날이라 곧바로 구속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그러나 검찰은 미적거리는 것 같았고, 다들 대선에만 꽂혀 개혁이나 적폐청산은 뒤로 밀려나고 있다.

그렇지만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이상 물길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1일 정오 무렵 전시를 철수하기 위해 미술행동 팀들이 ‘궁핍현대미술광장’ 전시장으로 모여들었다.

김준권대장을 비롯하여 류연복, 김남선, 김영배, 이광군, 김명지, 정덕수, 김가영씨,

그리고 참여사진가로는 이정환, 양시영, 곽명우, 홍윤하, 하형우, 정영신씨가 나왔다.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전시를 철수했는데, 한마디로 시원섭섭했다.

다들 점심식사를 해야 하는데, 김준권씨가 광화문 음식에 질렸는지 인사동으로 가자고 했다.

‘툇마루’에 가서 된장비빔밥을 먹기로 했으나, 자리가 없어 한 참을 기다렸다.

그 자리에 사진가 이정환씨가 집에서 담근 매실주를 한 병을 갖고 나오셨다.

불편한 몸으로 무거운 술을 챙겨온 성의가 고마워 쪼록 쪼록 마시다보니, 그만 낯 술에 취해버린 것이다.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인사조차 드리지 못한 채, 횡설수설하며 이곳저곳 전시장을 돌아다녔는데,

낯 술에 취하면 지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옛말이 맞긴 맞았다.

아무튼 주책 떨어 죄송하고요, 그동안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그 고생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사진, 글/ 조문호























































박근혜 파면에 따라 ‘광화문미술행동’이 해산하며 보여주는 마무리 기획전 ‘촛불역사’전이

지난14일 오후4시 광화문광장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 개막되었다.

그동안 광화문광장의 시민혁명을 기록해 온 다큐사진가들과 시인, 화가, 춤꾼을 비롯한

촛불시민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그 날 개막식에는 백기완선생을 비롯하여 김준권(광화문미술행동 대표), 송경민(광화문캠핑촌 촌장),

신유아(궁핍현대미술관장), 화가 신학철, 장경호, 류연복, 김진하, 이윤엽, 김 구, 박불똥씨,

시인 정덕수, 양문규, 김이하, 김명지씨, 사진가 하형우, 정영신, 양시영, 박영환, 곽명우, 이정환씨

춤꾼 양혜경씨와 가수 김가영, 홍가혜, 김남선, 차광호씨 등 참여 작가들과 관계인들이 참석하여

간단한 열림식을 가졌는데, 다들 백기완선생과 기념사진 찍느라 바빴다.







그동안 촛불시민들이 광화문광장으로 몰려 나와 박근헤 퇴진을 외쳤고,

예술가들도 다양한 예술행동으로 시민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세상을 원했다.


그 위대한 시민혁명을 기록한 열세 명 다큐사진가들의 각기 다른 색깔의 기록에서 부터

화가나 시인 그리고 촛불시민들이 바라 본 순수한 시선들도 흥미롭다.

여러가지 코스프레에서 부터 대머리에 ‘탄핵’이라 쓴 스티커를 붙인 코믹한 사진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기 그지없다.






기록 사진이란 잘 찍는 것 보다 현장성이 더 중요한 건, 그 자리에 없으면 기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화문광장’ 텐트촌에서 노숙하는 정덕수시인은 다 물러나고 없는 한가한 캠핑촌의 일상을 기록했다.

그 잔잔한 뒷이야기들은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그리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펼친 ‘광화문미술행동’의 기록들도 의미가 크다.

매주 토요일마다 펼쳐온 예술행동 면면의 기록들은 예술이 대중 속에 녹아드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에 몇 장의 사진을 보며 살까? 신문이나 인터넷을 열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게 사진이다.

전 국민이 사진기록자이고 증언자이다. 또 다른 눈으로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사진가 곽명우, 권 홍, 김문호, 노숙택, 박영환, 양시영, 엄상빈, 정영신, 조문호, 채원희, 하형우, 홍윤하씨를 비롯하여

시인 강 민, 정덕수, 김명지, 김이하, 화가 김진하, 이재민, 최연택, 부은정, 춤꾼 양혜경씨

그리고 촛불시민들이 기록한 사진까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전시는 오는 21일까지다. 어렵게 찾아 온 봄 맞으러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자.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내일을 준비하자.



사진, 글 / 조문호








































































 

▲ 조문호 사진가

 

요즘 친박 단체들의 관제데모를 두고 '태극기 집회'라 부른다.

언제부터 태극기가 극우단체나 친박 성향의 전유물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정치적 오용은 태극기에 대한 모독이다.

피로 지켜낸 나라의 국기가 일제에 빌붙었던 박정희 우상화와 그의 딸 박근혜를 지키는 도구로 전락됨을

선열들께서 얼마나 통탄하시겠는가? 이 날 내린 봄비가 선열들의 눈물인양 서글펐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덮으려 마치 애국자처럼 태극기를 흔들어대더니 이젠 한 술 더 떠 성조기까지 흔들고 있다.

사대주의에서 비롯된 주체성 없는 짓을 하면서도 부끄러운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들의 패악 질에 태극기만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쩌다 신성한 태극기에 혐오감이 생기는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광화문광장의 '노란리본 공작소'에서 노란리본을 단 태극기를 나누어주어

촛불집회에서도 태극기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극기에 노란리본을 달아 태극기 집화와 차별화하는 것도 안 된다.

나라가 두 쪽 나 태극기와 인공기로 나누어 진 것만도 서러운데 태극기까지 나누어서야 될 말인가?

지난 삼일절은 시청에서부터 광화문에 이르기까지 태극기로 뒤 덥혔지만.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기보다 태극기가 오용되고 양분되는 참담한 현실에 온 종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 날 찾아 간 지하철 시청역 인근에는 온 몸에 태극기를 휘감은 사람에서부터

박근혜 초상사진과 태극기를 들고 일인 시위하듯 서 있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여지 것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는 매주 나왔지만 ‘시청광장’ 태극기 집회는 처음 가보았다.

스스로 나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몰려다니는 것으로 보아 단체에서 동원된 듯한 사람들이 많았다.

광장에선 삼일절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었으나, 확성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종북 타령과 박근혜 탄핵반대를 외치는 선동적인 이야기 일색이었다.

연단에 나온 사람들의 어투나 집회 분위기도 왠지 북한을 닮아가는 듯 했다.

촛불시민을 종북 이라지만 그들의 짓거리가 북한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군복 입은 늙은이는 ‘군대여 일어나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고,

어떤 이는 ‘빨갱이를 죽여라’고 외치는 등, 하는 짓이 완전 사이비 종교집단의 광신도 같았다.

그런데 광화문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이 주최한 3,1만세운동 ‘구국기도회‘도

나라를 구한다는 이름과는 달리 대통령탄핵 반대 집회’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무대 단상엔 군복 입은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이 지켰고, ‘공산주의 반대’ 등의 손 팻말을 들고 성조기도 흔들어댔다.

정의를 앞 세워야 할 종교단체가 정치꾼의 앞잡이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냥 두면 많은 시민들은 하나님에 등 돌릴 것이다.

태극기의 분열과 오용으로 삼일절을 우울하게 만든 그날,

‘광화문 미술행동’이 '바람찬 전시장'에서 태극기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태극기 역사’전을 열었다.

세종대왕상 뒤쪽에 자리잡은 이 기획전은 ‘광화문미술행동’의 촛불광장 프로젝트 일환이었다.

매주 주제를 바꾸어가며 많은 대중들과 소통해 왔는데, 이번에는 태극기에 관한 자료 전을 내놓았다.

태극기는 삼일절과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상징물이기도 하지만, 보수단체의 태극기 오용이 도를 넘는 시점이라 시의적절 했다.

임시정부에서 사용했던 태극기에서부터 해방되어 친일파가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어 그린 것도 있었고,

여성 속옷 천에 그려진 태극기도 있었다, 싸움터에 동원된 것 같은 태극기는 날카로운 무언가에 뚫린 구멍과 혈흔이 묻어 있었다.

전시기획자인 김진하씨는 ‘태극기는 국가에 대한 기호로서의 이미지에 앞 서,

3.1 독립운동에서 시작되어 민주화운동에 이르기 까지 국민들 마음에 소중하게 자리 잡은 국기로,

이런 태극기가 부패한 정치집단의 무능을 가리는 도구로 오 남용되고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태극기의 역사’전에는 많은 시민들이 찾아 와 기념사진을 찍는 등 전시장은 온 종일 관람객들로 붐볐다.

비록 하루 열린 전시였지만, 어느 대형전시장도 이만한 관객동원이 쉽지 않다.

실사 이미지로 보여주었지만, 대형 프린트의 시각적 효과는 야외 전으로 그지 그만이었다.

촛불시민들에게 태극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태극기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우는 시간이 되었다.

극우단체들이여! 더 이상 태극기를 슬프게 하지마라.
친일잔재인 너희들이 남용할 태극기가 아니다. 이제 그만 태극기를 내려라.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흐르는 물길을 되돌릴 수 없듯이, 다음 주면 박근혜 탄핵이 인용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만으로 봄은 오지 않는다.

정의로운 나라로 가려면, 힘들어도 촛불을 내려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바로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장으로 몰려나오는 시민들도 지쳤지만, 광화문광장에서 예술행동을 벌이는 작가들의 삶도 말이 아니다.

여지 것 악에 받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물 불가리지 않은 채, 박근혜 퇴진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었지만,

이제 탈진하여 더 버틸 여력이 없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는 이번 주말 11일을 마지막 예술행동으로 준비하고 있으나,

어떠한 방법으로든 세상을 바꾸는데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19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4일 펼친 광화문미술행동의 프로젝트는 역사, 광장 민주주의였다.

바람찬 전시장에서는 촛불의 역사를 기록한 사진들이 전시되었고, 춤과 함께한 드로잉 퍼포먼스,

서예 퍼포먼스, 작가와 촛불시민들이 함께하는 바닥 글쓰기, 촛불 목판화 찍기 등 다양한 예술행동을 벌였다.



 

촛불집회의 역사적 장면들이 담긴 사진들이 바람찬 전시장양 벽을 가득 메워 지나치는 촛불시민들의 발길을 잡았는데,

참여 다큐 사진가로는 권 홍, 곽명우, 김문호, 노숙택, 양시영, 엄상빈, 이정환, 정영신, 조문호, 하형우씨 등 열 한명이었다.




 

바람찬 전시장옆에서는 가수 양재화씨와 정미씨가 나와 노래 불렀고,

신현아씨의 퍼포먼스에 따라 작가들의 드로잉작업도 시작되었다.

아승연, 이상태, 정용철, 정도나, 노경애, 이철민, 박재수, 김미란, 오귀현, 조형순 등의 드로잉 작가가 참여했고,

오현, 정유영, 김예슬씨 등 촛불시민들도 함께 했다.




 

춤꾼 장순향씨가 보여 준 세월호 씻김굿의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지만, 그 날 처음 본 신현아씨의 몸짓도 예사롭지 않았다.

우연히 멋진 예술행동을 만난 시민들은 구경하느라 눈을 떼지 못했다.


    


 


서예가 여태명씨가 펼친 서예 퍼포먼스는 여러 차례 보았지만, 볼 때마다 감동스럽다.

그의 힘찬 필력이야 다들 알고 있으나, 즉흥적인 그림 솜씨도 대단했다.

그런데,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다, 번번히 서예퍼포먼스를 놓칠 때가 많다.

이 날도 유진규씨의 퍼포먼스에 갔다 오니, 그 사이 퍼포먼스는 끝나고 작품만 바람찬 전시장에 걸려 있었다.

    


 


광화문미술행동은 오는 11일 열릴 열세 번째 촛불광장 프로젝트로 촛불시민 여러분 사랑합니다를 개최한다.

 ‘광화문미술행동'을 마무리하는 이 프로젝트에는 바람찬 전시장 현장 공개와 촛불시민 인증샷, 촛불 목판화 찍기,

서화 퍼포먼스, 시민 글쓰기 등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된다. 마지막 예술행동을 함께 즐기자.



    

 

그리고 박근혜탄핵이 결정된 14일부터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 의미 있는 사진전도 개최한다.

광화문미술행동을 결산하는 전시로서 촛불의 역사를 지켜 본 열다섯 명 다큐사진가들 사진과 

촛불시민들의 사진도 내 걸린다. 또한 광화문미술행동에서 보여 준 다양한 예술행동도 함께 전시된다.

촛불시민의 승리를 기념하는 촛불역사전을 기대하시라.



    

 이 날 함께한 분은 김준권대표를 비롯하여 류연복, 김남선, 김진하, 장경호, 여태명, 장순향, 정덕수, 송용민,

강성봉, 김영배, 이철재, 변정대섭, 이재민, 이인철, 정영신, 신유아, 신학철, 김창규, 김진열, 조신호, 권 홍,

배인석, 김봉규, 성기준, 정세학, 김 구, 임경일씨 등인데, 취재나온 한겨레 노형석기자도 함께 했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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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나 Sky Wind Stars and Me


김대수展 / KIMDAESOO / 金大洙 / photography

2017_0309 ▶ 2017_0401 / 월요일 휴관


김대수_sms2004135_젤라틴 실버 프린트_41×54.8cm_200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0518b | 김대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0309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비케이Gallery BK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42길 56(한남동 683-38번지)

Tel. +82.(0)10.6790.7079

gallerybk.co.kr



땅과 하늘 사이에서 ● 『하늘』이라는 제하의 작품들은 『Colors of the Bamboo』, 『Trees from the People』, 그리고 『The New Wave』에 이은 김대수 작가의 네 번째 작품집이다. 나는 이 작품들을 내가 의도한 특정적인 관점으로, 즉 서양철학자의 시각에서 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김대수의 작품에 대한 내재적 해석이기보다는 그의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에서 그의 작품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봄으로써 그 작품 세계의 풍부함과 보편성을 파악하고자 함이다. ● 비록 작가가 직접적으로 그 길을 제안하지 않더라도, 김대수의 작품은 한국과 중국 문화의 심층적 전통 안에 새겨져 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땅으로부터 인간을 거쳐 하늘로 나아간다. 이러한 운동의 기반에는 무언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 그렇지만 스스로를 간파하게 해 주는 것, 보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보이게 하는 것, 무의식이면서도 우리로 하여금 의식적으로 자각하게 해주는 그 어떤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중국철학의 근본적인 장소들 중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 철학의 사유는 서양적 사유와 달리 존재하는 것 이거나,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양적 사유가 태동한 그리스 철학에서는 만물의 근본은 불변부동의 존재이다. 성경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만물이 거기서부터 유래하는 모태(matrix)와 같은 것이 있다. 그러므로 태초에 존재가 아니라 운동(movement)이 있다. 운동은 비존재(non-being)에서 존재(being)로, 그리고 존재에서 비존재로 끝없이 나아간다. 그러므로 존재는 비존재 옆에 있다. 존재는 비존재로, 비존재는 존재로 환원되지 않는다. 하늘은 땅 옆에 있다. 공(空)은 색 옆에 있다. 만질 수 없는 것이 만져지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구조 그 자체이다.


김대수_sky2004114_젤라틴 실버 프린트_41×54.8cm_2004


김대수_sms2011166_젤라틴 실버 프린트_120×120cm_2011


김대수_sms2008159_젤라틴 실버 프린트_41×54.8cm_2008



하지만 이것은 열림을 내포하는 작업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작품이 뿌리박은 문화보다는 그것이 내포하는 열림이다. 이러한 근원적인 열림을 통해서우리는 서양적 프리즘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완전히 동양적 세계 속에 있는 것 역시 아니다. 서양은 그 근대성의 차원에서 인간을 아주 높은 곳에 위치시켰다. 아마도 너무 높은 곳에 놓은 것 같다. 서양 세계에서는 인간의 오만함이 있다. 이것이 인간의 힘인 동시에 그 약점이 되기도 한다.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을 장식하는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그림들이 보여주듯이 인간은 신의 이미지를 따라 만들어졌다고 한다. 김대수의 작품에서 자연은 인간에 예속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들에서 인간은 주인이자 소유자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차라리 그곳에서 인간이 자연화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자연화는 『Colors of the Bamboo』로 부터『Trees from the People』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자연화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실제로 자연(nature) 안에 나의 본성(my nature)이 있고 나의 본성 안에도 자연이 있다. ● 이 운동은 단지 이미지들 속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닌, 각 작품의 이미지와 제목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상징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가지들이 얽혀 있는 나무가 「crazy woman」으로 둔갑했거나 작은 나무숲이 인간군상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관점을 역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나무는 더 이상 나무만이 아니다. 차라리 우리가 여기서 보는 것이 이 「white man」이며 이것이 또한 나무이기도 한 것이다. 사람이 곧 자신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나무의 이미지를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제 더 이상 나무보다 더 높이 있거나 그것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Fernando Pessoa) 가 내 마음이 호수이고, 내 허파는 숲이 아닌지 자문한 것처럼 김대수에 의하면 우리 영혼 자체가 「white paradise」가 된 것이다. 이 백색은 또한 모든 색의 모태이자 예술가의 고향을 지시한다. 반대로 나무들과 풍경들, 동물들은 인간에 접속되어 있다. 우리가 그것들을 바라보듯이 그것들도 우리를 바라본다. 우리가 자연적인 것만큼이나 그것들은 인간적이다. 우리는 여기서 페소아의 주요 작품인 『비평안의 서(非平安의 書, The Book of Intranquillity)』를 기꺼이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높이 솟은 풀들 위로 /놀란 눈들이 그런 것처럼 /외로운 해바라기들은 /입을 크게 벌린 채로 우리를 응시하였다.' 그러므로 바로 이러한 상호접속, 이러한 소통가능성은 동양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서양에서 나오는 것도 아닌, 동서양을 넘나들며 여행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연을 인간 속에 그리고 인간을 자연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김대수_sky2004132_젤라틴 실버 프린트_120×220cm_2004


김대수_sky2004131_젤라틴 실버 프린트_41×54.8cm_2004


이제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을 열어보자. 이것은 노자의 『도덕경』에서처럼 우리를 땅에서 하늘로 여행 시킨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단순한 질문을 하려고 한다. 이 여행은 순환적인가? 우리가 땅 속에서 하늘을 발견한 것처럼 하늘 속에서 땅을 재발견해야 할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그리고 여기서도 역시 접속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인간인가?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우리는 하늘로부터 인간을 거쳐 되돌아올 수 있을까? 마치 우리가 인간 덕분에 땅을 떠날 수 있었던 것처럼? ● 우선 이 여행은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지우고자 한다. 문제는 하늘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의심할 여지 없는 김대수만의 독창성이 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모든 국면을 이용한다.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사진이, 말하자면, 작품의 세 번째 눈을 드러내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기술의 눈이다. 하나의 그림은 화가에 의해 그려진다. 그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체험을 표현한다. 그러나 사진은 기술적 도구의 사용에 의해 비인격화되고 객관화 된다. 끌리셰(cliché)는 이와 같이 도구로부터 유래한다.



김대수_sms1998101_젤라틴 실버 프린트_120×55cm_1998


김대수_sms1999109_젤라틴 실버 프린트_120×80cm_1999


그러나 끌리셰 안에 지각적이고 주관적인 유희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유희, 이 소실선들 (vantage points)을 통해 우리는 관찰자와 관찰된 것을 잇는 표상의 관계를 파악한다. 작가의 두 번째 작품집에서 「lady kyo」라는 제목의 사진이 바로 그러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표상 관계는 상당히 드물다. 예를 들면 「countless grain」에 등장하는 나무와 열매들은 풍경 속의 대상인지 아니면 풍경 자체인지 알기 어렵다. 따라서 나무는 대상인 동시에 그것이 나타난 틀이나 공간이기도 하다. 나무는 단지 하늘이라는 배경 위에 있는 형태가 아니다. 그리고 이를 인간화 할 경우에는 더욱 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면 「back to her」에서 나무들이 절단되는 공간은 동시에 한 여자의 육체를 그리고 있다. 이 점에서 김대수의 작품을 『루체른 근처 공원(Park bei Luzern)』이나 『신밧드의 항해(Sindbad der Seefahrer)』같은 파울 클레(Paul Klee)의 몇 몇 작품들에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언가가 배경과 형상 사이에, 또는 표면과 깊이 사이에 존재하는 전통적 대립들을 이미 넘어서서 작동하고 있다. 이로써 그의 작품은 더 이상'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게 된다. ● 그러나 「하늘」 연작에서는 이보다 더 특별하게'가시화하는'방식이 드러나 있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대상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대상들은 구름들이다. 그들은 흰 것일 수도, 회색빛 일수도, 색깔을 띤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구름은 다른 것들과 똑 같은 대상은 아니다. 그것은 우선 요소들로 분해할 수 없고 뉴튼 역학의 법칙들을 전혀 따르지 않는 복잡하고 유연하며 다양한 형상을 가진 대상이다. 노르베르트 비너(Norbert Wiener) 가 자신의 유명한 저서 『사이버네틱스』의 서두에 묘사한 구름에 대한 과학적 서술은 이 관점을 이해하는데 유의미한 도움을 준다. 그에 따르면 어떤 의미에서 구름은 하늘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하늘 자체가 흐리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다음에 하늘이 더 깨끗해질수록 우리는 이 대상들을 덜 보게 된다. 그때 우리는 푸른 하늘과 햇빛 사이에서 색깔, 색의 대조만을 보게 된다. 그러나 구름이 있건 없건 간에, 번개불의 불연속적 형상들이 있건 없건 간에, 구름 위에 새들이 있건 없건 간에, 이 이미지들에는 어떠한 소실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사진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며 작품에서 완전히 사라진 관찰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진은 더 이상 세계의 표상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다. 순수한 색깔로 향해 감에 따라 점점 더 정화되는 세계이다.



김대수_trs2011103_젤라틴 실버 프린트_41×54.8cm_2011


김대수_trw2005646_젤라틴 실버 프린트_60×120cm_2005


이와 동시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자면 색깔은 결코 완전히 순수한 것이 못 된다. 공이 거기에 언제나 거주한다. 하늘의 푸른 색과 오렌지색의 태양빛 사이에도 최소한의 대조가 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최소한이다. 번개의 얼룩무늬들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은 무한으로부터 그리고 우리가 거기 살고 있는 바로 그 무한으로부터 하늘을 분노하게 하고 우리를 바라본다. 앙드레 브르똥(André Breton)은 『나지아(Nadja)』에서 나는 누구인가? 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내가 누구에게 사로잡혀 있는지를 아는 문제로 되돌아온다고 그는 대답한다. 김대수의 멋진 하늘들은 점차로 인간에 의해 사로잡히는 듯하다. 그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아마도 무감동(impassible)을 향해 더 멀리 나아가게 해주는 것 같다. 즉 불교적이고 도가적인 무위(inactivity)를 향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인간의 척도로 본 신들이다. 인간이 이러한 신들에게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것들은 동양적인 것 속에 거주하는 서양적 특징과 같다. 이러한 서양적 특징에 언제나 약간의 동양적인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말이다. ● 이 마지막 요소에 대해 덧붙이자면 그것은 소용돌이(vortex)이다. 어떤 끌리셰(cliché)들에서 하늘의 불은 소용돌이로 변한다. 김대수에게 고유한 이미지배치(cadrage)에서 이 과도한 소용돌이는 이따금 사진의 영역을 넘쳐난다. 그리고 여기서 갑자기 나무들이 솟아난다. 우리는 사진작가의 눈이 없이도 거기에 있다. 마치 기술적 도구라는 세 번째 눈으로부터 유래하는 우주 생성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 비인격적 이야기는 물론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방향에서 이 이야기는 점차 인간적 기술의 산물을 관통한다. 그것은 인공이 재구성한 자연이다. 게다가 이 기술은 아마도 위협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술적 인간성 속에서 어떤 비인간성을 발견하기 위해 너무 멀리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서울 구도시의 궁전들을 신도시 남쪽 지역의 과도한 탑들과 공존하게 하는 바로 그 비인간성이다. 우리가 환기하는 소용돌이는 단지 놀라운 것이 아니라 걱정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를 사물들의 극성(polarity)으로 되돌려 보낸다. 이 극성은 매 순간 역전될 수 있다. 선은 악으로, 인간적인 것은 비인간적인 것으로 역전될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시대와는 반대로 오늘날 책임의 주체는 바로 인간인 것이다. ■ 폴 앙투안 미켈(번역_황수영)



Vol.20170309a | 김대수展 / KIMDAESOO / 金大洙 /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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