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에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예술가들이 더러 있지만,
대개 나이가 들수록 기력이 딸리거나 창의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통념을 단숨에 불식시키는 예술가가 있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씨다.
유진규하면 마임이고, 마임하면 유진규로 통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광대다.
대개의 예술가들이 꼴리는 대로 산다지만, 세상이 자유롭게 가만 두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돈이나 명성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는 것이다.

그는 ‘춘천마임축제’를 세계적축제로 만들어 놓고 뒤로 물러났다.
일이 자유를 구속시켜 뇌종양이 생긴 것이다.
그 후 석 달 동안 세상과 연락을 끊고 산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며 병을 고쳤다고 한다.
한 곳에 안주하지 않으며, 위기를 기회로 삼은 그였다.
곧바로 ‘욕심을 버리자’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 ‘빈 손’을 발표했다.






학창시절엔 자유롭게 살려고 수의학을 택했으나, 시대적 상황의 돌파구로 연극을 시작했단다. 

그러나 팀워크가 중요한 연극은 그의 자유를 막아 이혼해 버렸다.
그 후 마임과 결혼하여, 45년을 오로지 한 곳에 올인 한 것이다.

그는 공연장이고 거리고 관계없이 관객만 있으면 몸짓으로 말해왔다.
지인의 전시 개막식이나 모임에서 조차 거리낌 없었다.

그의 몸짓은 담백하면서도 강열한 독보적 에너지가 발산된다.
그 강한 흡인력은 관객의 시선을 꼼짝 못하게 묶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기를 통째로 마임에 불어넣고 있으니, 어느 간 큰 관객이 눈길을 거둘 수 있겠는가.






이제 그의 나이 육십 중반에 들어 선 할아버지다.
그러나 관객만 있으면 청춘으로 돌변해 버리는, 타고 난 사람이다.
자신의 예술 행위에만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불의도 두고 보지 못한다.
지난 해 11월 ‘광화문광장’ 블랙리스트 기자회견장에서 시작된
유진규의 마임 저항은 현재 진행형이다

주류아닌 예술가들의 시국퍼포먼스 ‘옳’이라는 기치를 내 걸고,
지난 해 12월7일 촛불집회에서 보여 준 “옳지 않은 놈들 꾸짓기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3월4일 가진 ‘봄은 이미 와 있다.’에 이르기 까지 열 세번의 퍼포먼스를 펼쳐왔다.
“눈떠”, “닭쳐”, ‘양파, 까도까도 끝이 없다“등 매번 기발한 주제를 내세워
신명난 굿판으로 광화문광장을 들썩인 것이다.






물론, 혼자 벌이는 퍼포먼스가 아니기에 더 힘든 것이다.
깃발부대와 나팔부대는 차지하고라도 김기상, 문성식, 박미루, 전형근, 이정훈, 최문성,

안현정, 최현중씨 등 많은 후배들이 동참하는데, 그 퍼포먼스 경비는 어떻게 충당하는지,

젊은 후배들과의 견해 차이는 어떻게 푸는지 걱정스러운 게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뒤풀이에 따라가 실상을 들여다보니 기우에 불과했다.

밥값에 이르기 까지 모든 비용은 각출되었고, 다음 기획을 준비하는 회의도 기획자의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라 토론에 의해 민주적으로 진행했다. 세대 간의 격차가 발붙일 겨를이 없었다.

그는 촛불집회 때마다 신명난 굿판을 벌여왔으나, 한 장소에서 퍼포먼스를 끝내지 않았다.

철판을 등에 짊어진 채, 헌법재판소와 청와대로 행진하는 거리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나도 두 차례 행진에 따라 나선 적이 있는데, 갈 때마다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더구나 지난 보름날 진행한 ‘부럼깨듯’에서는 여의도에서 광화문까지 거리 행진을 벌인 그다.





그리고 지난 3일 광장극장 블랙텐트에서 막을 올린 세월호 퍼포먼스 ‘33한 날에 돌아와요“는

장장 일곱 시간동안 공연을 펼친, 기록적인 강행군이었다.

그 긴 시간을 지킬 자신이 없어 한 두 시간 정도만 감상하려던 계획조차 공연날자를 잘 못 알아 놓쳐버렸다.

그 대단원의 작품을 놓친 아쉬움도 있었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 친 일곱 시간 한을 외면한 자책이 더 컸다.

더 놀라운 것은 밤늦게 공연을 끝낸 그 이틀 날, 다시 광화문광장에서 열세 번째 ‘옳‘퍼포먼스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이 강철이었다. ‘봄은 이미 와 있다. 탄핵은 인용되고, 박근혜는 구속 된다’라는 주제로 가진,
그 날의 퍼포먼스는 봄을 상징하는 초록으로 얼굴을 잔뜩 물들이고 광란의 굿판을 벌였다.
광화문에서 헌재로, 헌재에서 인사동으로 이어지는 거리 행진도 따랐다.

정의와 예술혼에 온 몸을 불사르는 그의 강인한 투지가 정말 존경스럽다.
그는 이 시대가 낳은 영원한 광대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4일의 열 세번째 퍼포먼스를 앞두고, 광화문광장에서 외손자와 함께한 유진규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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