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친박 단체들의 관제데모를 두고 '태극기 집회'라 부른다.

대단한 애국자인 것처럼 태극기를 흔들어대는데, 언제부터  태극기가 극우단체나 친박 성향의 전유물이 되었는가?

더 웃기는 것은 이제 성조기까지 들고 나오는데, 자칫하면 일장기까지 나올지 모르겠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들인가? 이젠 태극기만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쩌다 신성한 태극기에 혐오감을 갖는 이 지경이 되었는지, 가슴아프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광화문광장의 '노란리본 공작소'에서 노란리본 단 태극기는 나누어주어

촛불집회에서도 태극기를 들기 시작했다. 또 ‘광화문미술행동’에서도 대형 태극기내 세워 예술행동을 펼쳤다,

그러나 태극기에 노란리본을 달아 차별화하는 것조차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가 두 쪽 되어 태극기와 인공기로 나누어 진 것만도 서러운데, 태극기까지 나누어서야 될 말인가?





지난 18일 진행된 ‘광화문미술행동’의 여덟 번째 프로젝트는 더 풍부하고 화려해졌다.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 열린 ‘민미협’의 광장미술전에서는 김준권, 류연복씨의 판화 찍어주기가 있었고,

촛불광장의 여덟 번째 프로젝트 '광장오픈에어갤러리' 전시는 ‘흑운만천 천부경‘전이열렸다.

검은 구름이 가득해서 하늘이 안 보인다는 뜻으로 이흥덕씨의 ’지하철퍼레이드‘를 비롯하여 김진열, 송 창,

권용택, 오석훈, 이인철, 박철우씨 등 유명 작가들의 대형 걸게 그림들이 광화문 광장에 펼쳐졌다.

김진하씨의 기획과 디자인으로 정덕수, 송용민씨가 설치한 이 작품은 엄청난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전시가 되었다.

하루 동안의 전시라 아쉬운 감은 들지만, 이렇게 만은 관객을 동원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민족춤협회 장순향교수와 이삼헌, 김경수씨가 보여준 씻김, 베 가르기 춤도 장관이었다.
여지 것 베 가르기 춤을 보아 왔지만, 그 길이가 백 미터나 되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 세월호의 한을 다 풀려면 100미터로 될까마는, 또 하나의 기록은 남긴 셈이다.





만신 이덕인씨가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혼을 불러내는 소리는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임실농악팀의 풍물놀이와 ‘민주도둑잽이수요모임회’의 길놀이가 흥을 북 도우며 광장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풍물과 함께하는 삼색 줄다리기, 시민들과 작가가 함께하는 바닥 글쓰기, 여태명 선생의 손 글씨 이름 써 주기와

촛불시민 인증 샷 찍기 등 다양한 예술행동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많은 추진비용의 대부분이 판화가 김준권씨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한 방울의 물이 내를 이루듯, 조금씩 동참하자.

이 날은 ‘광화문미술행동’대표 김준권씨를 비롯하여 백기완, 이수호, 강 민, 방동규선생, 류연복, 여태명, 김남선,

장경호, 김진하, 김진열, 정복수, 장순향, 이덕인, 이삼헌, 김경수, 정영신, 변정대섭, 정덕수, 송용민, 최병수, 이재민,

정세학, 김봉준, 성기준, 양혜경, 김낙영, 김영부, 유진규, 문성식, 최문성, 최현중, 안현정씨 등 많은 분을 만난 하루였다.





오는 25일 열릴 제17차 촛불집회의 ‘광화문미술행동’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신학철화백의 대작이 등장한다.

궁핍현대미술광장 미술전과 촛불 목판화 찍기, 서예, 드로잉 퍼포먼스, 시민바닥 글쓰기,

촛불시민 인증샷 찍기 등 다양한 예술행동이 펼쳐진다.


모두 가족과 손잡고 광화문광장으로 나오세요.

봄맞이 예행연습 쯤으로 생각하고, 황교안 끌어내리기에 힘을 보탭시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4일 열린 7차 ‘광화문 미술행동’에서 내세운 슬로건은 ‘새로운 나라로!’였다.

새로운 나라가 되기에는 세월이 걸릴 것 같지만, 일단 박근혜 부터 구속시키고 황교안을 사퇴시키자.

광장갤러리에 설치된 걸개그림은 판화가 김준권씨의 ‘청죽’을 비롯하여 30년 전에 그린 김진하씨의 작품도 먼지 털며 나왔고,

정비파씨의 독수리 무리도 경주에서 날아왔다. 박홍규, 김봉준, 김 억, 류연복, 손기환, 유대수, 윤여걸, 이철수, 홍진숙,

홍선웅씨 등 대가들의 그림이 줄줄이 내 걸렸다. 이젠 알미늄 틀도 만들어져, 다들 반듯하게 걸렸으나,

김진하씨의 작품만 바람난 여인 치맛자락같이 펄럭였다. 오히려 흔들리는 형상에 더 눈길이 끌리더라.


오는 정월대보름 날 열릴 8차 프로젝트에서는 ‘광장갤러리’를 시와 사진으로 꾸밀 예정이다. 

서예퍼포먼스와 함께 춤판도 벌일 예정이나 매주 예술행동에 소요되는 비용 또한 만만찮다.

세화를 찍고, 판화를 파는 등 다방면으로 후원금을 모아 왔으나, 적자를 면키 어려웠다.

가난한 작가들의 예술저항이라 십시일반 나누는 시민들의 도움이 절실한 실정이다.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 열린 세화로 꾸민 판화전은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판화가 류연복씨는 세화 찍느라 바빴고, 옆에서는 김가영씨가 열심히 도왔다.

이날은 반가운 분들도 연이어 등장하셨다.

원로 시인 강 민선생을 비롯하여 백기완, 황석영씨와 함께 조선의 삼대구라로 꼽히는 방배추(방동규)선생,

시골서 상경한 홍석화씨, 맹문재교수, 양문규시인, 장영도이사도 함께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나왔으나 ‘청진동해장국’으로 따라갔다. 신축건물이라 옛 분위기는 오간데 없고, 밥값만 비싸졌더라.

맹문재씨가 카드로 결제했지만, 만원씩이나 하는 해장국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를 비웠더니, ‘광화문 미술행동’의 서예퍼포먼스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여태명씨의 서예퍼포먼스는 끝 난 뒤였다.

여태명씨는 ‘탄핵대길. 안민다경’을 써 놓았고, 박수훈씨는 탄핵농자지대본’을 쓰고 있었다.

예술가들의 글과 그림 위에 시민들이 쓰는 자유발언대 참여도 이어졌다.

이날 김준권씨를 비롯하여 장경호, 송경동, 김남선, 김진하, 깁봉준, 정덕수, 김 억, 김 구, 양혜경, 정영신, 장순향,

김영배, 이광군, 장진영, 이윤엽, 이재민씨 등 많은 예술가들이 일을 도왔고, 신학철, 신상철, 박 철, 권 홍, 최석태,

하형우, 김보영씨 모녀도 모습을 드러냈다. 고생하는 후배들을 위해 신학철선생께서 한 턱 쏘았는데,

술 한 잔에 맛이 가 꾸벅꾸벅 졸다 돌아와야 했다. 아직 몸이 정상은 아니었다.

오는 정월대보름날 열릴 15차 촛불집회의 ‘광화문예술행동‘을 기대하시라.
김준권씨는 충북 옥천에서 행진에 사용할 깃발용과, 광화문 달집용 대나무를 벌채하는 사진이 페북에 올라왔다.

정월대보름의 신명난 굿판이 기다려지는 하루다.

사진, 글 / 조문호

























[김준권씨 페북에서 스크랩]

[김준권씨 페북에서 스크랩]





































































[김준권씨 페북에서 스크랩]

[김준권씨 페북에서 스크랩]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인사동 마당발 노광래씨로 부터 연락이 왔다.
해가기 전에 인사동 ‘아리랑식당’에서 밥 한 끼 먹자는 전화였다.
그 날은 광화문광장에서 벌어지는 ‘미술행동’ 전쟁터에 가야하나,
서둘면 밥 한 끼는 때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광화문에 있는 장경호씨까지 기별하여 함께 갔다.

까칠한 화가 장경호씨는 그런 자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채현국 선생께서 오신다는 말에 들렸는데,
채현국선생이 나타나지 않아 마음이 영 불편한 듯 했다.
밥술도 떠는 둥 마는 둥, 그 좋아하는 막걸리마저 마시지 않았다.
아마, 몸이 아픈 듯 했다. 혼자서 힘들게 사니 끼니를 잘 챙기지 않는 그다.
독거노인이 아프면, 그보다 더 서러운 것은 없다.
어디 가서 편하게 좀 쉬었으면 좋으련만,
투사적인 그의 고집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다.

인사동 ‘아리랑식당’은 청주출신의 유재만씨가 운영하는 곳인데,
본 이름은 ‘아리랑가든’이지만, 난 그냥 아리랑식당으로 부른다.
그는 인사동에서 ‘아리랑명품관’까지 운영하며, 돈푼께나 만지는 분이다.
돈에 중독된 대개의 사람들에 비해, 돈을 제도로 쓸 줄도 안다.
가끔은 인사동을 떠도는 예술가나 지인들을 불러 잔치를 열기도 하고,
고향 동문들을 해마다 불러 모아 잔치를 벌이는 등
나름으로 재미있게 살려고 애쓰는 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한 예술가에 바친 존경심이다.

그의 ‘아리랑 명품관’ 이층에는 십 삼년 전에 돌아가신
타악기 연주자 김대환 선생의 작업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듣기로는 월남전에서 맺은 인연인 듯했으나, 꾼을 제대로 알아 본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북을 두들겨대는 김대환선생께 아무도 작업실을 빌려 줄 사람은 없었다.
그걸 알게 된 유재만씨가 돈 한 푼 받지 않고, 그 분을 아리랑 가게에 모신 것이다.
세월이 숱하게 지난 오늘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빈 작업실에,
다른 짐을 방에 들이기는커녕, 물건하나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신앙적 존경심으로 볼 수 있으나, 그럴 만도하다.

김대환선생의 33년생이나,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추측하기는 몸의 기를 너무 많이 빼앗겼지 않았나 생각한다.
무엇에 집중하면 온몸의 기를 쏟아 붙는 그 분을 보면 마치 신들린 것 같다.
모든 예술의 근간은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기에서 비롯된다.
미천한 내가 그 심미적 기의 세계를 제대로 알진 못하지만,
몸을 단련하는 방법으로야 그지 그만이겠으나,
대개의 유명 예술가들이 무작정 쏟아 붓기만 해 단명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타악의 독보적인 경지에 있는 그 분은 모든 게 일박에서 통섭된다고 말했다.
이박자와 삼박자도 일박에서 비롯되므로 일박은 무박이고, 즉 박자의 전부라고 말한 분이다.
열손가락에 여섯 개의 북채를 끼우고 북을 치는 소리를 들으면,

그의 아호로 불리는 黑雨처럼 어두워 보이지 않는 비처럼 무겁게 내리 친다.

마치 소나기가 땅을 두드리는 자연의 질서처럼 웅장하게 다가온다.

가히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소리의 경지에 달해 있다.


그 뿐 아니다. 한 때는 ‘세서미각’에 빠져들어 쌀 한 톨에 ‘반야바라밀다심경’283자를 새겨,

세계기네스 북에 오르기 까지 했다.

그런 온 몸을 불사르는 도전정신과 집념이 위대한 성과로 연결된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이제 세상을 떠나가고 없다. 몸을 아껴 좀 더 사셨으면 하는 바람은 간절하지만,

누군들 언젠가는 떠나기 마련이니, 그리 애석해 할 일만도 아닌 것 같다.

단지 아무도 이루지 못한 김대환 선생의 위업을, 나라에서 방치해 잊혀지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픈 것이다.

그 날, 오찬자리에는 원로시인 강 민선생을 비롯하여 방배추로 통하는 방동규선생,

장경호, 이만주, 노광래, 전강호, 나재문, 신현수씨 등 열 두 명이 함께하며 유재만씨가

살아 온 내력을 들으며,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본 것이다.

좀 서둘러 나와야 했으나 김대환선생이 사용하시던 작업실까지 들리는 통에,

광화문에서 벌어지는 여태명선생의 서예 퍼포먼스를 놓쳐 버렸다.

아차피, 연착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어쩌랴! 단지 연이 닿지 않는다며 자위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전강호 사진]












비가 내린 지난 토요일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동자동 쪽방사람들의 행렬이 인사동을 메웠다.

‘남인사마당’에 집결한 빈민들은 북인사 마당을 돌아 광화문으로 향했는데,

그들이 외치는 “박근혜 방 빼!”라는 함성이 인사동 거리에 울려퍼졌다.

빗길 나들이의 외국 관광객이 박수를 보내기도 했고, 지나치는 행인들은 구호를 따라 외쳤다.

시냇물이 강물 되듯, 광화문으로 몰려든 시민들의 물결은 광화문 일대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곳곳에 울려 퍼지는 퇴진 함성과 음악소리에 들떠 추위도 잊게 했다.

어두워지자 경찰이 진을 친 청운, 효자동 주민센터 앞까지 행진했으나,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오히려 전경을 위로하는 시민이 늘어나고, 전경들도 몸은 묶였으나 마음은 똑 같다는 듯 서로 일체감을 보였다.

밤늦은 시간, 인사동에서 김명성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형! 어디 있어? 광화문에 있으면, ‘여자만’으로 와”
빵조각으로 끼니는 메웠으나, 추위를 녹여줄 술 생각이 간절했던 터라 잽싸게 달려갔다.


‘여자만’에는 김명성씨와 김용국씨가 있었지만, 연락을 받았는지 반가운 분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고중록, 이강군, 김영배, 정영신, 신상철씨에 이어 인사동 어르신들도 오셨더라.

방배추로 통하는 시대의 협객 방동규선생과 강 민시인, 구중서, 전태수선생 등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모두들 시위현장에서 오신 것 같았다.

이미례씨가 차린 술상 옆에는 박기성씨와 김여옥씨도 있었지만, 긴 시간 퍼져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급히 마신 탓에 취기도 올랐지만, 시위현장에 복귀하기 위해서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인사동 거리는 붐볐다. 오히려 종로 방면은 사람이 빠져나가 보행이 다소 수월했다.

광화문 군중대열에 합세하여 또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박근혜 방 빼! 박근혜 방 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2일 충무로에 있는 갤러리 브레송에서 김보섭씨의 사진전이 열렸다.

개막식에 가 있는데, 인사동으로 빨리 넘어 오라는 전화가 번갈아 왔다.

제주에서 온 변순우씨도 기다리고, 김명성씨는 기국서씨와 함께 있단다.

 

뒤풀이에서 먹는 둥 마는 둥, 사진 몇 장 찍고 빠져 나왔다. 급해 택시를 잡았더니 시간이 더 걸렸다.

유목민에 도착하니, 기다리다 지친 변순우씨는 술 취해 여관에 들어 누워버렸고,

연출가 기국서씨와 박 철, 김명성, 이승철시인이 유목민골목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안쪽에는 전활철, 이상영씨가 분주히 오갔고, 공윤희씨는 거나하게 한 상 차려놓고 있었다.

 

기국서씨는 극단76’의 창단 40주년을 맞아 신작 리어의 , 지난 20일 대학로 무대에 올렸단다.

'76단'은 연희단 거리패, 학전, 연우무대와 함께 대학로 연극시대를 이끈 핵심 극단이다.

예술 감독인 기국서씨를 비롯해 동생인 기주봉, 송승환씨가 창단해 관객모독등의 대표작들을 만들어 냈다.

선돌극장’에서 공연되는 리어의 역은 리어왕을 40년간 연기하고 은퇴한 노배우의 이야기로,

58일까지 이어지니 한 번 구경하러 오란다.

 

좀 있으니 방동규 선생께서 '유목민' 골목에 등장하셨다.

방동규선생은 이름보다 별명이 더 잘 통한다. 방동규 하면 몰라도 방배추라면 왠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백기완, 황석영선생과 함께 조선의 삼대 구라 중 한 분 아니던가.

양산에 있는 채현국선생 학교에서 일하셨는데, 그만두고 올라오셨단다.

하기야 얼마나 살지 모르는데,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산 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 방선생께서 김명성씨 칭찬을 많이 하셨다. 인사동 예술가들을 보살펴 온데 따른 치사였는데,

자고로 사나이는 그릇이 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릇이 적으면 질질 흘려 주변이 더러워진다는 말씀이셨다.

그리고는 벽에다 下學而上達라는 글을 쓰셨다.

아래로부터 배워 위를 통달한다는 공자말씀인데, 너무 좋아하는 고사성어였다.

 

이어 박 철시인의 기타반주에 노래가 흘러나오는 흥겨운 술판이 벌어졌다.

그런데 방동규선생이 듣고 싶은 노래를 박 철씨가 정확히 모르는 게 있었다.

제목은 기억 나지 않고, 가사 에 그냥 십팔번으로 불러주세요라고 나오는 작부 신세타령인데,

나도 입에 뱅뱅 돌면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갑자기 김명성씨는 송상욱 선생을 불러야 한다며

난리법석을 떨었으나 집에 들어가신지 오래 된, 송선생을 모셔오기는 더욱 힘들었다.

 

뒤늦게는 강성수, 고용욱, 김기영, 이상훈씨 등의 술꾼들이 차례로 등장하였고,

충무로 김보섭전시 뒤풀이에서 놀던 아내 정영신도 찾아왔다.

신나게 놀았지만, 집에 돌아갈 시간만 되면 맥이 빠진다. 술 마시다 편하게 죽는 수는 없을까...

아내와 골목을 빠져 나오니 푸른 별의 최일순씨가  의정부 천상병선생 행사에 가자며 채근이다.

내일 선약이 있어 갈 수도 없지만, “김병호가 장난치는 동안은 낄 생각 없다고 전하라 했다.

 

사진,/ 조문호






















































지난 27일 원로시인 강 민선생과의 오찬 약속으로 인사동 '여자만'에 나갔다.
강 민선생과 이행자시인이 먼저 와 계셨는데, 뒤 따라 공윤희씨가 왔고

좀 있으니 백기완, 황석영씨와 더불어 조선의 3대 구라로 불리는 방동규선생도 오셨다.

오랜만에 방동규선생의 걸쭉한 구라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에 관한 쉼 없는 구라도 그의 꾸준한 독서습관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날도 모임에 오기 전에 교보문교에 들려, 책 몇 권을 사오셨다.

사모님께 탄 용돈의 대부분이 책값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꾸준하게 운동하는 방법이 담긴 책을 사와 강 민선생께 드리는 등 자상한 모습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오랫동안 일해 온 경북궁 지킴이는 해를 넘길 수 없는 처지라며, 시원섭섭해 하셨다.

술자리에서 일어날 즈음 소설가 김승환선생이 오셔서 '푸른별 이야기'로 옮겨 한 잔 더하고,

술 취해 돌아오는 길에서는 권양진, 김명성, 정해광씨를 만났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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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주먹이며 조선의 삼대구라로 꼽이는 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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