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부터 이광군, 김준권, 류연복, 이윤엽씨



광화문광장에 가림 막을 친 경찰 차벽을 그림판으로 만든 두 번째 프로젝트 ‘촛불이 국민의 명령이다’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며, 오는 7일에 열릴 세 번째 프로젝트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가 추진되고 있다.



여태명씨의 서예 퍼포먼스 [스크랩 / 김진하씨 사진]



지난 연말 열린, 두 번 째 프로젝트에서는 국민들의 새해 소망이 담긴 갖가지 구호들이 차벽을 메웠다.

서예가 여태명씨와 김성장씨가 ‘촛불이 세월호를 인양하리라’, ‘촛불이 차벽을 불태우리라’.는 등 큼직한 메시지를 남기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달려들어 ‘희망 저버리는 나라 말고 꿈 꿀 수 있는 세상아 와라’, ‘행복하고 싶어요’,

‘박근혜를 구속하라’등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갖가지 염원들을 풀어놓았다.

오후4시경, 미 대사관 앞 경찰차벽에 이어 붙인, 그림판의 전체 길이가 60미터에 가까웠으니, 가히 장관이었다.















행동대원으로 나선 김준권씨를 비롯하여 류연복, 김진하, 여태명, 김 억, 정고암, 김남선씨가 달라붙어

일사불란하게 차벽 미술판을 만들어 갔는데, 류연복, 여태명씨는 사다리 위를 다람쥐처럼 오르내렸다.

그 외에도 김윤수, 이윤엽, 장경호, 이인철, 이광군, 이도윤, 이태호, 정영철, 성효숙씨 등 많은 작가들이 현장을 지켰다

















그런데, 경찰이 병력을 끌고 와 설치를 저지하려 했다.
스티커 범벅이 될 경찰차 보호막 노릇을 하게 될 천막을 왜 걷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김준권씨의 끈질긴 설득으로 경찰들은 물러났으나, 한편으론 조마 조마했다.

늙은 투사의 부드러운 설득에 꼬리 내렸지만, 이젠 단순 물리적인 제압은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종대왕상 뒤편에는 판화가 이철수씨와 김준권씨의 작품을 세긴, 길이가 7미터나 되는 인증 샷 배경 현수막이 설치되었다.

다큐 사진가들이 직접 찍어 주는 초상사진 인증 샷 '그 날, 나도 여기에 있었다‘를 진행했다.

 

나를 비롯하여 엄상빈, 정영신, 남 준, 곽명우씨가 촬영을 전담했으나, 양시영, 하형우, 이민씨도 현장에 왔었다.

다들 한 시간씩 나누어 찍기로 했으나, 남 준씨와 곽명우씨가 전 시간을 종횡 무진하는 바람에 늙은이는 끼어 들 틈도 없었다.

초상사진 기록은 물론 참가 시민들의 휴대폰 사진까지 찍어 주며, 최선을 다한 열혈 용사였다.











블로거 ‘다음’의 ‘인사동 사람들’과 ‘네이브’의 ‘한국의 장터’에 올려 본인 사진은 퍼 갈 수 있도록 했으나,

여러 사진가들이 찍은 많은 사진들을 정리해 모우려니,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이 또한 요령이 생기면 해결되겠지만, 그보다 꾸준히 이어가려면 더 많은 사진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제 사진가들의 목소리도 절실한 시점이다. 사진가들이 만나, 즐겨 봉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연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어둑어둑해 질 무렵, 촬영을 끝내고 사진 팀끼리 식사하러 갔다.

점심도 못 먹은 분이 있어 정영신씨에게  부탁했으나,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곽명우씨가 내겠다고 가로막았는데, 난데없이 사진가 김문호씨가 나타나 계산해 버렸다.

다른 좌석에서 우리를 본 것 같은데, 그 역시 가난한 사진가라 얻어먹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좌우지간 고맙게 얻어먹고 캠프로 돌아오니, 김준권씨가 사진 팀에 사용하라며 20만원을 내 놓았다.

진작에 있었다면 김문호씨에게 짐 지우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시민들의 후원으로 모은 돈을 밥값으로 사용할 것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진행하다보면 돈도 필요하겠기에, 정영신씨에게 총무를 맡겨 넘길 작정이다.







오후7시 무렵, 차벽에 설치한 그림 벽이 궁금해 밖으로 나갔더니, 광화문광장 일대는 인산인해였다.

200미터 남짓한 미 대사관 앞까지, 사람들을 비집고 가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 한 시간은 걸린 것 같았다.

그런데, 차벽 그림판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 위에다 스티커를 얼마나 붙였는지, 본래의 그림이나 글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개인이 붙인 사이 사이의 스티커야  괜찮으나, 정치색 짙은 스티커로 전체를 도배해 버린 것이다.

뒤늦게 그마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많은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역사적 산물을 잃어버리다니... 

우리가 지켜내야 할 또 한 가지 과제를 남겼다.




오는 7일에 열릴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세 번째 차벽 공략 작전도 착착 준비되고 있다.

그 날은 오후2시부터 5시까지 작업하여 오후10시에 철수하게 되는데,

작가 정고암, 여태명, 박방영 세사람의 켈리그래피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정고암, 김천일작가와 함께하는 시민작가들의 그림과 글쓰기도 진행된다.





그리고 오윤(칼 노래), 홍선웅(역사의 노래), 이철수(북을 쳐라 새벽이 온다).이상호(무제), 정찬민 (세월호 미수습 이웃9인),

류연복 (따로 또 같이) 이윤엽(현장판화 복합) 등 판화가 7인이 참가하는 ‘메인차벽 작품 판화로 여는 세상“도 펼쳐진다.








세종대왕 동상 뒤에 설치된 '그 날, 나도 여기에 있었다‘ 포토존에서 사진가들의 초상사진 인증샷 촬영도 계속된다.

사진인들이 많이 들려주어야겠지만,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멋진 사진 한 장 남겨두자.

가능하면 이름까지 밝혀둬야 하는 것은, 후에 사진집에 활용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또 다시 광화문광장을 예술의 난장으로 만들 ‘광화문 미술행동’에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광화문 미술행동’이 광화문광장에 야전 캠프를 차렸다.
전기도 없는 바람막이에 불과한 천막이지만, 용사들이 쉬며 전력을 재정비할 전투사령부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 것이다.

두 번 째 차벽공략 프로젝트로 싸늘한 경찰 장벽을 국민들의 염원을 담은 전시장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이젠 회를 거듭 할수록 참여 작가들이나 프로젝트의 규모도 커지지만 전개방식도 다양화되고 있다.

이 '광화문 미술행동' 전투부대의 총 사령관은 판화가 김준권씨가 맡았고, 부사령관은 류연복씨가 맡고 있다.
여태명, 김진하, 장경호, 이인철, 박재동씨 등 서예나 그림 그리는 막강한 참모들도 포진해 있다.
보좌관 김남선씨가 살림을 맡고 있지만, 대부분 사령관 쌈짓 돈으로 끌어 간다.
시민예술가들의 참여나 후원도 간간히 이어지고 있으나, 실탄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광화문의 온 차벽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승리로 이끌 그 날까지 우리 모두 힘을 보태자.

이제 '미술행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초상사진을 찍기 위한 다큐사진가들의 참여도 시작되었다.
엄상빈, 남 준, 곽명우, 정영신씨가 시동을 걸었고, 뒤늦게는 양시영, 하형우씨도 함께 했다.

이 기록 또한 새 세상이 올 때까지 계속되므로, 더 많은 사진가들의 참여와 목소리가 절실하다.

아래 사진들은 두 번 째 전투가 있었던, 전 날부터 이틀동안 예술 전장에서 만난 분들이다.
화가 신학철선생을 비롯하여 장경호, 김이하, 이윤엽, 최병수, 류연복씨

그리고 다음 날엔 김윤수, 여태명, 이광군, 김진하, 이도윤, 정고암씨 등 여러 분을 만났다.

'광화문 미술행동'사령부 야전 캠프는 광화문 캠핑촌 희망촛불탑 옆에 있고,

초상사진 인증 샷은 세종대왕상 뒤편에 있는 ‘그 날 나도 여기에 있었다’ 배경막에서 한다.

함께할 용병들은 캠프에 들리시고, 후원하실 분은 아래로 보내주면 고맙겠다.

작은 시냇물이 큰 강물을 이루니, 작은 도움이라도 망설이지 말자.

[후원계좌 / 국민은행 420801-01-270492 김남선/광화문미술행동]

사진,글 / 조문호




캠프에 둘러 앉은 김준권, 신학철, 장경호,김남선씨


좌로부터 김준권, 김이하, 장경호씨


좌로부터 판화가 이엽, 김준권씨, 이윤엽씨는 캠프 옆에 있는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 목판화전을 한다.

광화문광장 캠핑촌에서 살아, 그의 노숙자 행색이다.


좌로부터 최병수, 김준권씨, 최병수씨는 광장에 날카로운 예술무기들을 만들어 놓았다.

머지않아 작업실에 둔 거대한 솟대와 배도 가져 온 단다.


사령관 김준권씨가 빨지산 우두머리 격인 신학철선생과 뭔가 이야기를 나눈다.

경호대장  장경호씨의 뒷모습도 보인다.



류연복씨가 시민들에게 나누어 줄 판화 달력을 가져와 캠프로 옮기고 있다. 

부사령관이 수송대 일까지 맡아, 늘 바쁘다.



좌로부터 이광군, 김준권, 류연복, 이정엽씨, 정의를 위해 싸우는 빨지산이다.


좌로부터 양시영, 곽명우, 남 준, 엄상빈씨, 시대적 역사를 기록하는 찍사들이다.


찍사 하형우(우측)씨와 그의 친구인데, 성함을 잘 모르겠네.



좌로부터 여태명, 이광군, 김윤수, 이도윤, 정고암씨, 김윤수선생은 한 때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분이 아니던가.


판화가 류연복씨와 함께 한 미녀들, 워낙 사람이 좋아 주위에 여성 팬이 끊이지 않는다.


[스크랩] 서울문화투데이 2016년 12월30일

▲ 조문호 사진가


시국이 어수선하다.

올바른 세상을 위한 산통으로 보지만, 국민들에게는 희망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이제 부패한 권력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아무리 재벌과 언론을 끌어들여 야합해도 소용없다. 신속한 SNS가 국민들의 귀와 눈을 열어놓았으니, 예전의 독재시절과는 상황이 다르다.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촛불시위는 21세기 한국의 문화혁명이다.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토요일마다 전국 도심을 촛불로 밝히며, 평화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박사모’ 일당들이 맞불 집회로 방해하고 있으나,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다.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먹고 살기 위해 얼굴에 철판 깐 사람들도 있지만, 난리 통에 각인된 반공의식이나 박정희 새마을운동 향수에 빠진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젠 먹고 살만하니, 빨갱이 세상 될까 걱정하는 단순 무지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 신앙적 추종세력들의 속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더 슬프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아 걱정할 필요 없다.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살다 사라질 사람들이 아닌가?. 이제 젊은이들이 나서 올바른 세상으로 바꾸어 나가면 된다.

성탄절과 연결된 9차 시민촛불 집회에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광화문광장으로 60만의 시민들이 몰려나와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를 담아 캐럴송을 부르고, 구호를 외쳐댔다. 가족과 연인, 친구끼리 몰려나와 전쟁터가 아닌 촛불의 축제장으로 이끌어 갔다.

김제동씨를 비롯한 연예인들은 광화문 열기를 후끈 끌어 올리며 추위를 물리치게 했고, 예술가들은 갖가지 행위예술로 군중들의 마음을 끌어 올렸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씨 일행은 네 번째 “옳”시국 퍼포먼스를 벌였고, 판화가 김준권, 류연복씨가 주동이 된 ‘예술행동’도 본격 시동을 건 것이다. 김준권, 류연복씨가 누구인가? 바로 긴 세월 독재 권력과 싸워 온 역전의 용사들이 아닌가? 거기다 김진하, 여태명, 이인철, 장경호, 성효숙, 박은태씨 등 기라성 같이 많은 예술가들이 합세하여 박근혜가 구속될 때까지 예술행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그 날 광화문광장에서 보여 준 “옳”시국퍼포먼스는 ‘까도까도 끝이 없다’는 ‘양파’를 보여주었다. 등에 짊어 진 양철판 끌리는 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광화문과 헌법재판소 가는 길은 나팔소리와 냄비 두드리는 소리까지 가세해 요란했다. 그 굉음에 틀어막은 박근혜의 귀도 뚫렸을 것이다. 뚫렸으면 교도소 들어가서나 공주노릇해라.

광화문 미술행동 ‘차벽공략,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40미터에 달하는 천에 낙서그림을 그려 경찰차벽에다 붙인 것이다. 많은 작가들과 시민들의 참여로 철통같은 차벽을 순식간에 재미있는 그림판으로 바꾸어 놓았다. ’국민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행복한 나라에 살고 싶다’, ‘자식보기 부끄럽다’, ‘치 떨린다 최순실, 끌어내자 박근혜’ 등 갖가지 구호들이 그림판에 새겨졌다.

요사이 광화문 일대는 박근혜 국정농단에 분개한 예술가들의 전진 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의 텐트촌이 생기면서, ‘민미협’에서 만든 거대한 ‘희망촛불탑’도 불을 밝혔다.

수시로 이곳에서 예술가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매주 금요일 오후3시부터 춤꾼 장순향교수가 주동이 된 ‘춤 교실과 전통문화제‘도 열린다. 그리고 궁핍현대미술광장 개관전이 열리는 천막 전시장도 마련되었다. 음악과 퍼포먼스, 시와 그림으로 부패권력을 조롱하며 박근혜 구속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시작된 시국전 ‘병신무란 하야제’도 촛불처럼 꺼지지 않는다. 인사동 ‘아리수’에서 열린 ‘조국의 산하’전을 거쳐, ‘인천아트플랫폼‘의 ‘광장, 환대의 문지방’으로 규모가 확대되어 이어지고 있고, 춘천의 ‘순실뎐’에 이어 광주전시 등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가히 예술혁명으로 이끈다.

박근혜가 구속되고, 세상이 바뀔 때까지 시민들과 함께하는 예술가들의 저항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국민들을 고생시키지 말고 그만 끝내라. 최소한 연민의 정이라도 남게 하라.

부디 새해에는 국민들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대동의 한 해가 되길 바란다.






8차 촛불집회가 열렸던 지난 17일, 광화문광장에서 비주류예술가들이 보여주는

올바른 예술행동 ‘옳’ 세 번째 시국퍼포먼스가 오후 두시부터 열렸다.

함께할 작정이었으나, 사진전에 손님이 끊이지 않아 나갈 수가 없었다.

간신히 빠져나와 광화문 광장으로 달려갔으나, 오후 다섯시가 가까웠다.

삼청동으로 행진한다는 언질에 달려갔으나 삼청동에도 보이지 않았다,

청운동과 삼청동을 왔다 갔다 하다, 그만 지쳐버렸다.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니, 퍼포먼스에서 쓴 “모두다 싹쓸이”라는 양철 판만 몇 장 보였다.

그 자리에서 화가 주재환, 김정헌선생과 장경호씨를 만났고, 판화가 류연복, 춤꾼 장순향교수를 만났다.

삼청동과 청운동을 오가며 이민, 하태웅씨도 만났으며, 총리공관 부근에서는 아들 녀석 조햇님이도 만났다.

이산가족 만난 듯 반가웠으나, 추위에 질린 안색에 가슴 아팠다.


총리공관 주변의 좁은 도로는 양편에 세워놓은 경찰차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잦은 불심검문과 도로통제로 겪는 주민들의 호소문도 곳곳에 붙어 있었다.


이 추운 겨울 날 허구한 날 국민들이 몰려나와 이렇게 아우성을 치는데도, 그 년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죄 없다며 오리발까지 내고 있다. 나라 경제나 국민의 고통 따위는 관심도 없는 것이다.

이젠 박사모를 비롯한 늙은이들을 총 동원하여 맞불까지 지르고 있다.

권력에 빌 붙어사는 완장부대들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설치는 노인들이 안타까운 것이다.

단지 한국전쟁의 악몽과 먹고 살만한데 따른 박정희 신드롬에 빠진 것이다.

정말 박근혜는 인간도 아닌 것 같다.
자랄 때부터 못된 것만 배워 그런지,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양심마저 없다.
오로지 버텨내어 추운 겨울철에 교도소 가는 것이라도 피하려는 발악 같다. 

그러나 힘들어도 지치지 않아야 한다. '옳' 시국퍼포먼스 글처럼 모두다 싹 쓸어내야 한다.

이번 주말은 전국의 박사모 패거리들이 총 출동한단다. 그들이 부끄럽도록 만들어주자.


박근혜 하나 끌어내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정치 사회적 구조 자체를 뜯어 고쳐야 한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수준이 그 나라 국민수준이란 걸 명심하자.


이제, 다 같이 잘 사는 대동의 세상 한 번 만들어보자.




사진,글 / 조문호















































 

심신이 지쳤나보다.

이틀 동안 쪽방에 들어 누워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토요일 햇불 집회 생각으로, 더 이상 누워 있을 여유가 없었다.

광화문에 가야하지만, 한 두시간 더 쉬고 싶었으나,

서울역에서 왕왕거리는 확성기 소리에 그만 일어나야 했다.



 




빈속이라 뭘 좀 먹어야 했으나, 밥 때를 놓쳐버려 그냥 나갔다.

서울역으로 갔더니, ‘박대통령을 모함하는 검찰을 구속하라

현수막을 펼쳐잡은 노인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요즘 토요일만 되면 광화문 집회에 맛 불 놓느라, 노인들이 종종 난리를 피운다.

이전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치부하며, 엄청 멸시했.


  

 




그런데, 그 날은 잘 아는 이웃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돈이 탐나 일당 받으러 나왔을까? 아니면 진짜 그렇게 생각할까?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탓일 뿐이지, 개짓하는 지식인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알고도 나쁜 짓 하는 인간들보다, 잘 몰라 그러니 용서라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여지 것 권력가진 인간들에게 이용당한 사람들이 바로 돈 없고 못 배운 서민들이었다.







우리민족은 유달리 긴 세월동안 권력자들에게 짓밟혀 온 서러운 민족이다.

그러나 이젠 그 틀을 깨야한다. 아니, 얼마나 앞 당기냐의 문제지, 깨어 질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무지한 국민보다 깨어 있는 국민들이 더 많으니, 더 이상 속지 않는다.

더구나 SNS의 위력은 나쁜 짓하는 놈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구조다.


그날도 서울역에서 카메라 들고 설치던 MBC같은 사이비 언론도 곧 무너질 수밖에 없다.

소수의 목소리도 중요하다는 명분이야 그럴싸하지만, 그 속내는 뻔하다.







더 이상 이웃과 얼굴 부딪히기 싫어, 얼른 지하도로 내려갔다.

종각역에서 내려 광화문 방향으로 갔는데, 오후 3시쯤인데도 사람들이 몰려와 도로가 혼잡했다.

예술인 캠핑촌에서 아는 분들을 만나려 했으나, 사람에 막혀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어쩌다, 판화가 류연복씨와 김사빈씨를 간신히 만났을 뿐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앞 장선 행렬에는 백기완선생과 이재명, 장경호, 하태웅씨의 모습도 보였으나, 사람에 막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길 가 양쪽을 경찰차로 방벽치고 인도는 경찰이 점거하고 있었으니, 4차선 도로가 북새통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넘게 시달리고 나니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났다.

몸이 정상이 아닌데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은 것이 없으니, 그런 것 같았다.



 


간신히 경복궁 지하역으로 빠져 내려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메우고 방으로 올라오니, 4층에 사는 정씨가 말을 건다.

오늘은 데모하는 날인데, 왜 벌써 와요?”

차마 아프다는 말은 못하고, 사람이 너무 많아 늙은이는 빠졌다고 둘러댔다.

그랬더니 보수성향의 정씨가 반색을 한다. “그래요. 앞으론 그런데 가지마세요

 

말할 기력도 없었으나, 한 마디 했다.

가고 싶어 가나요. 세상 좀 바꾸어야지요.

우리야 어차피 그렇게 살았지만, 자식들은 잘 살게 해야 지요

 

사진 / : 조문호


























 

 

 

 

 

 

 

 

 

 

 

 

 





형상미술가 김진열씨의 '모심전이 오는 1012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린다.


김동화씨는 격정에서 경건이라는 제목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그의 예술은 이성이나 사유가 아닌 본질적 감성의 촉수를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렇다. 그래서인지, 내눈에는 우리민족의 한과 분노로 읽힌 것이다.

한민족의 한과 설음을 토해내는 강렬함이 엿보였던 것이다.


, 화가 이청운, 황재형, 권순철씨처럼 거칠고 암울한 붓 길을 좋아한다.

김진열씨 작품 또한 거칠고 투박함을 좋아하지만, 그만의 또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

얼핏 보면 조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조각이 아니다.

여수에 있는연도라는 섬에서 떠내려 온 철판이나 양철 등 폐기물을 주워와

작업의 질료로 이용하는데, 소금기에 절은 철판들은 시뻘건 녹물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걸 자르고, 버려진 마분지를 여러 겹으로 덧붙여 덩어리를 만든 것이다.


김진열씨의 형상미술은 우리 민중들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제작한 철판이나 양철을 덧붙여 칠한 거친 작품들은

외세에 의해 찢기고 분열되어 온 우리민족의 상처 같았다.

그리고 소나무의 투박한 결에서 강인한 민족적 정체성도 느껴졌다.

또한, 우리 민초들과 함께 해 온 장승같기도 하고...


김진열씨의 생김생김은, 마치 임꺽정을 연상시킨다.

임꺽정을 보진 못했지만, 수염만 깍지 않았다면, 꼭 산적 같은 모습이다.

임꺽정은 가난한 사람들 편이고, 나쁜 놈들을 힘들게 했다.

좌절하지 않고 분노를 삭여가며, 싸우는 정신도 같다.


작가의 조형적 감수성으로 빚어 진, 투박한 노동의 힘,

거기에서 버려진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힘이 꿈틀거렸다.

말보다 강한, 상징의 힘에서 우레 같은 폭발력도 엿 보인다.


작가는 우리 민중들이 섬겨왔던 거대한 나무들을 모셨다고 했다.

김진열씨의 '모심'전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가 크다.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였다.

민중들의 분노를 다독이며 위안하는 무속적 주술 같은 것도 읽혔다.


김진열씨가 보여 준, 질기고 강인한 힘은 결국, 우리 사회와 정치를 겨냥하고 있었다


 

사진, / 조문호

 

그 날 개막식에는 김진열 내외를 비롯해, 김진하관장, 목판화가 류연복, 사진가 한선영, 화가 장경호,

고옥룡, 김영진, 이흥덕, 송 창씨 등 십 여명이 부산식당에서 유목민까지 옮겨가며 잘 마시고 놀았다.

 유목민에는 불화가 이인섭선생을 비롯하여, 이종률, 전활철, 공윤희, 임경일, 김 구, 노광래,

김기영씨 등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김진하 촬영













































































 

 

 

 

 

 

 

 


 

 

경주의 목판화가 정비파씨의 전시 뒤풀이가 지난 15일 오후7시경 인사동 '부산식당'에 마련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의 술자리 인데다 부산식당의 명물 생태찌개 맛이 너무좋아 과음해 버렸다.

이 날은 정비파씨 전시 외에도 도예가 김용문, 서양화가 이강용씨 등 인사동에 전시오픈이 여러 군데 있어

여기 저기 오가느라 불알에 요령소리가 났다.

와인에다 막걸리에 소주까지 섞어 마시다보니 이차로 간 '무다헌'에서는 너무 취해 뻗어 버렸다.

잠들기 전까지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으나, 얼마나 취했는지 이틀 날 확인해보니 카메라에 CF카드가 없었다.

부산식당에서 빼내며 갈아 끼우지를 않았던 모양이다.

부산식당 뒤풀이에는 작가 정비파씨를 비롯하여 서양화가 신학철, 박진화, 정복수, 김정대, 성기준씨 목판화가 류연복, 김영만씨 제주4,3연구소 김상철이사장, 아라아트 김명성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종률총장, 국회의원 임수경씨,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손예진, 오덕훈, 이도윤, 김영진씨 등이 함께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경주의 목판화가 정비파씨의 기획초대전 '국토'가 지난 15일 오후5시30분,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지하1-2층 전시실에서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우리나라 산과 강의 혈맥들을 섬뜩하게 드러낸 정비파씨의 방대한 목판화 작품들을 보며 기가 번쩍 솟는 느낌을 받았다.

한 작가의 끈질긴 집념이 이루어 낸 결과들인데, 그 6미터에 달하는 대작들을 경주 작업실에서 어떻게 옮겨 왔는지도 궁금했다.

이 날 개막식에는 작가 정비파 가족들을 비롯하여 우리의 건달 할배 채현국선생, 서양화가 신학철, 임옥상, 박진화, 정복수, 김정대, 성기준씨 목판화가 류연복, 김영만씨 제주4,3연구소 김상철이사장, 아라아트 김명성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종률총장, 국회의원 임수경씨,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미술평론가 곽대원, 최석태, 유근오씨, 무도가 하태웅씨,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사진가 정영신씨, 소설가 구중관씨, 손예진, 오덕훈, 신상철, 한소라, 김영진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광복7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정비파 목판화전은 오는 8월 20일까지 계속된다. 꼭 한 번 볼만한 전시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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