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촌의 한 방문에 붙어 있는 공공주택사업 촉구 포스터.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세상읽기] 조문영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정부가 서울역 쪽방촌 일대에 공공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계획대로라면 2021년 말 지구 지정이 이뤄지고, 2022년 말 국토교통부 장관의 지구계획 승인까지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일부 토지·건물 소유주들이 정부 계획에 반발하고 수익성이 더 높은 민간개발 전환을 요구하면서 사업은 표류 중이다. 정부 발표 2년째를 맞아 서로 다른 집회가 펼쳐졌다. 쪽방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신속한 공공주택 지구 지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면 소유주 단체는 국토부 장관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공공개발을 철회해달라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개발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토론 배틀’은 학교나 언론의 단골 소재 아닌가. 실제로 내가 만난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실무자는 이해관계자들의 견해를 듣는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고 시민 참여라며 사업 지체에 관한 우려를 반박했다. 그러나 나는 작금의 갈등이 주거권과 재산권을 ‘배틀’ 상황에 놓는 듯해 찜찜하다. 대한민국 헌법(23조)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면서도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가 아니라 “공공필요”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 헌법(35조)은 또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이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모두가 안전한 집에서 살 권리는 공공의 복리와 필요에 필수적인 것으로, 특정 개인이 재산을 증식할 권리와 맞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쪽방 세입자와 소유주를 대등하게 바라보는 태도는 양자의 분명한 위계를 가린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공공주택 사업 이해관계자들에게 지난 2년은 꽤 다른 시간이었다. 애당초 동자동 바깥에 거주해온 대다수 토지·건물 소유주는 민간개발 계획안을 국토부에 거듭 제출하면서 재산증식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2년 전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정비사업 추진을 대대적으로 선포했던 국토부, 서울시, 용산구, 토지주택공사는 정권이 바뀐 뒤 담당자를 수시로 바꿔가며 침묵, 외면, 발뺌을 일삼고 있다. 아무리 회귀물이 유행하는 세상이라지만 정치인·행정가마저 시대를 거슬러야 하나.

 

정부가 뒷걸음질 치고 건물주가 재개발 운운하며 쪽방에 대한 최소한의 관리마저 포기한 사이, 쪽방 세입자들은 기다림의 무게를 고통스럽게 견뎌야 했다. 집 아닌 집에서 살아오는 동안 이미 몸이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은 2평 미만 쪽방에 갇혀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고, 기후재난에 심각하게 휘둘렸다. 지난 2년 동안 (동자동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집계로만) 쪽방 주민 60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 와중에 공공개발 취재엔 관심도 없던 기자들이 쪽방 건물의 ‘얼음계단’을 찍겠다고 동자동에 들이닥쳤다. 겨울철에 복지수급자 한두명을 수소문해 생활고를 전하는 쉰내 나는 관행이 되풀이됐다. 기후재난으로 적정 주거가 절실해진 마당에 정부는 에너지바우처라는 땜질 처방만 요란하게 시행하고, 언론은 시야를 잔뜩 좁힌 채 바우처 지원 효과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국가가 헌법 취지에 맞게 에너지 효율을 높인 공공주택을 지으면 될 일인데.

 

지난 2년의 험로를 돌아볼 때 서울시의 행태가 가장 기이하다. 지난해 12월 ‘쪽방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토론회’가 열렸을 때, 국토부 공공택지조사과장은 “노력하겠다”는 답답한 제스처라도 보였으나 서울시 담당자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약자와의 동행’을 자체 브랜드로 앞세우고 있다. 공공개발의 조속한 추진을 요구하는 쪽방 주민은 서울시가 원하는 ‘약자’가 아닌 걸까. 그가 서울시가 달아준 에어컨으로 여름철 폭염을 견디고, 서울시가 제공한 긴급복지로 당장의 위기를 면했다면, 그리고 그 정도 지원에 감사할 줄 안다면, 서울시는 그한테 ‘약자’의 지위를 하사할 것이다. 관리 가능한 ‘약자’를 선별하는 작업에 더 적합한 명칭은 ‘약자와의 동행’이라기보다 ‘시민 길들이기’ 아닐까. 하지만 쉬이 길들지 않는 쪽방 주민들은 오늘도 ‘공공주택 환영’ 팻말을 들고 분주히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바우처라는 연명 치료 대신 집이라는 인권을 당당히 요구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묻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6시 무렵 동자동 공원으로 나갔다.
쪽방은 찜통이었으나, 공원은 너무 시원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술을 마시거나,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 쪽에서 동네 어른이신 이상준씨가 나를 불렀다.
그 자리에 김창헌씨도 함께 있어 너무 반가웠다.
우건일 조합장이 다녀간 이야기에서부터 많은 말씀을 주셨다.
다들 우건일 조합장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빨리 완쾌하여 동자동에 복귀 할 날만 기다릴 뿐이었다.






그 자리에는 한정민, 변성식, 이원식씨도 있었는데,
이원식씨가 외국인과 사진 한 판 찍어달라며 부탁했다.
공원에 들어오며 낮선 악사가 자리 잡은 것을 보았으나,
친분이 없어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스페인 사람이라는데, 기타 하나들고 짚시처럼 떠도는 젊은이었다.






뒤늦게 이번 사건과 관련된 분이 나타나 방범초소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합장 행방불명에 따른 전달내용의 인식차이는 다소 있었으나,
서로 동자동사랑방을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틀림없었다.


문제는 글을 올린 후 급히 부산 내려갔던 것이 일을 키웠다.
모든 일은 서로 만나 소통하면 쉽게 풀릴 일인데,
전화나 글로만 감정을 표출하니 문제가 된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를 글로 올리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추측이 개입된 점도 인정했다.
아무튼 이번 일로 오해를 일으킨 점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사진, 글 / 조문호














노숙하는 이상구씨는 서울역 지하철 11번 출구에서 올 겨울을 보낸 사람이다.

밤늦게 돌아오다 보면, 늘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자고 있었다.
따끈한 빵이나 고구마를 사와 이불 속에 밀어 넣어도 미동도 안했다.
만사가 귀찮은 듯 보였다. 낮에는 어디서 지내는지, 늘 밤늦게 잠자리를 폈다.
지난 16일엔 모처럼 일찍부터 자리 깔고 앉아 있었다.

기회다 싶어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아제는 소원이 뭔기요?” 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뭉칫돈이나 여자, 대궐 같은 욕망의 찌꺼기들을 들먹일 줄 알았는데, 뒤통수 쳤다.
“소주 한 병과 김밥 한 줄” 아주 현실적인 소원이라 기꺼이 삼천 원을 내 놓았다.






술친구로 지내던 김씨가 내려오니, 술 사오라며 시켰다.
그는 꼼짝도 않고 입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학창시절에는 야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다는, 왕년의 자랑도 했다.

대개 그들을 인생패배자처럼 생각하지만,
더러는 아무런 욕심 없이 자유를 구가하는 사람도 있다.
추운 날씨에 노숙인 보호소에 가지 않는 것도 사람이 만든 규칙이 싫어서다.






술을 홀짝이다, 그가 나에게 되물었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야?'기에
“성은 조가고 하는 일은 사진기사다, 앞으로 조기사라 불러”했더니.
사진기자거나 사진작가지 기사가 무어냐며 나무랐다.
“기는 적을 記자고 사는 베낄 寫라 했더니, 그때야 ”말 되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서기’에서 일하는 이애신씨가 나타나 이상구씨에게 이 것 저것 물었다.
묻는 이야기라고는 언제부터 나왔냐는 등 뻔한 얘기들이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할 수 없냐?'는 물음에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자기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이다.
귀찮게 굴어 약 올리려고 거짓말했는지 모르나,
기초생활수급자면 길거리에서 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노숙 인에는 대개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아직 욕망의 찌꺼기가 남은 초짜는 늘 이글어진 표정이지만,
모든 욕망을 내 던진 고수들은 그냥 허허실실이다.
모든 걸 버렸다면, 그게 부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들 생불 만나거들랑, ‘소주 한 병과 김밥 한 줄’의 시주를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격일제로 마시던 술을, 요즘은 전시 때문에 매일 마시게 된다.

지난13일도 전시장 문 닫기가 무섭게 김남진 관장 따라 나섰다.
정영신과 사진하는 후배 한 분과 마셨는데, 아쉽지만 먼저 일어나야 했다.
몇 일전,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박씨와의 약속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만나 한 잔 더 하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모두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자고 있었다.

노숙하는 자가 시계나 핸드폰이 있을리 없어 허탕을 친 것이다.
하는 수 없어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식도락’으로 사람들이 더나들었다.

밤 늦은 그 때까지 문이 열릴 리가 없었기에, 궁금해 들여다보았더니
방에는 동네 분들이 가득 앉아 있었고, 주위에 서성거리는 분도 계셨다.
음성 ‘꽃동네’에서 오셨단다.








매주 화요일은 ‘꽃동네’ 수녀님들이 동자동을 찾아, 빈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날이었다.
다들 일어날 시간이었으나 음식이 남아있어 끼어 앉았더니, 뜻밖의 슬픈 소식도 접했다.

김순애, 박미숙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전시하는 사정을 알고, '사랑방'에서 연락하지 않은 모양이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단 한차례 밖에 뵙지는 못했으나, 영정사진마저 없었다는 말에 가슴 아팠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렸다. 저승에서는 마음 편히 사시라고...






동자동에서는 함께 식사 할 때가 종종 있으나, 술은 일절 구경할 수 없다.
식사시간이 아닌 늦은 시간인데도, 술 마시지 않는 분만 모여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정씨 딱 두 사람 뿐이었다.







그 역시 닭고기 안주에 술 생각이 나는지,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고기만 몇 점 집어먹고 일어나려니, 수녀님이 선물봉지를 안겨주었다.
식빵 한 줄, 삶은 밤과 밑반찬 두 가지가 조금씩 담겨 있었다.






요긴한 선물도 고맙지만, 환하게 웃는 수녀님 모습에 온갖 시름이 다 녹았다.
고맙다며 맞잡은 손의 온기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9일, 동자동을 한 바퀴 돌았는데, 한 사내가 비둘기를 안고 있었다.
비둘기는 왜 잡았냐고 물었더니, 비둘기를 잡은 것이 아니라 평화를 잡았다는 것이다.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을 원했으면, 평화의 상징이라는 비둘기를 잡았을까?
이 섞어빠진 난국에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는 것은, 비록 그만이 아니라,
온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일 게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개정국이다.
정치하는 자들은 제 이속 차리느라 눈치나 보며 시간만 끌고 있고,
대통령 자격을 상실한 박근혜는 늙은 간신들 바짓가랑이 잡아,
또 다른 음모로 뒤집을 생각에 국민들의 외침을 비웃고 있다.

한 평생 나쁜 짓하며 호의호식한 계집이 어찌 빈민들의 어려움을 알겠냐마는,
죄 값으로 교도소에서 남은 여생 보낸 후, 말년에 빈털터리로 사회에 내 던져져
노숙자처럼 살아 보아야, 뒤늦게나마 깨달을 것이다.

몇 일 전에는 인천의 한 노숙인이 추위를 피하려 불 피우다 화상입어 죽었고,
지난 달에는 잠자려고 변전실에 들어간 노숙인이 감전되어 죽었다.
그런데도 정치하는 인간들은 아무도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노숙자들은 너 네들 생각처럼, 게을러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고,
가난을 물려받았거나, 잘 못된 사회구조의 한 회생양일 뿐이다.

그 날도 잠깐 동안 서울역 주변을 돌아보았는데,
거리나 지하도에서 세우 잠자는 노숙인 들이 늘려 있었다.


머리맡에 빵 한 조각 두고 잠든 사람도 있었고,
막걸리를 모셔 둔 채, 자는 사람도 있었다. 산다는 게 대관절 무엇 이길래..


사회 밑바닥에서 헤매는 노숙자 문제부터 해결하라.
더 이상 빈민들을 방치하면 천벌 받는다.
짐승 만도 못한 정치 모리배들아...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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