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건물은 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방안에 물이 얼어버리는 열악한 조건에서 전기장판 하나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틴다. 수도는 얼어 터져 바닥과 계단은 빙판이 되어 버렸고, 벽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지만, 건물주들은 남의 일처럼 나 몰라라 한다.
건물주들은 대부분 다른 곳에 살며 관리인을 통해 방세만 꼬박꼬박 챙겨가는 돈에 환장한 인간들이다.
그런 비인간적인 건물주들의 눈치를 보며, 국토부에서 발표한 공공개발을 2년이 넘도록 깔아뭉개고 있는 정부를 어찌 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고 빈민을 위한 에너지 바우처를 인상한다는 생색을 내지만, 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건물에 무슨 에너지 바우처가 해당되며, 가스가 들어온다 해도 여러 장벽에 걸려 혜택을 보지 못한다. 건물주들이도시가스 요금과 전기요금을 턱 없이 올린 상황이라 빈민들은 차라리 죽는게 낳겠다고 한다.
전기장판으로 버티며 난방비 착취 당하는 빈민들
건물 곳곳에 ‘난방비 부담으로 월세를 인상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는데, 월세 인상 폭은 3만 원부터 15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얼핏 보면 적게 인상한 것 같아 보이지만, 쪽방 월세가 20~30만 원 선인 걸 감안하면 인상 폭은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그리고 월세와 난방비를 현금으로만 내야 하는 대다수 쪽방주민의 입장에서 바우처 카드는 무용지물일 뿐 아니라,이런 저런 절차에 걸려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쪽방주민들은 난방비 지불 영수증은커녕, 고지서조차 받아 볼 수 없다.
건물주가 내라면 낼 수밖에 없는데다 그것도 현금으로만 내야 하니,
난방비를 지출했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
1인 가구와 무연고자가 많은 쪽방주민은 수급자가 되어도 본인이 장애인이거나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임신 중이거나 분만한 여성이 아니면 에너지 바우처 지원 대상에 해당 되지도 않는다.
또한 신청 절차도 매우 까다롭다.
한국에너지공단’에서는 난방비를 현금이 아니라 바우처 카드로 지급한다.
한국전력, 서울도시가스 등 에너지공급사가 요금이 감면된 고지서를 발급하고 나면 그 고지서 내용에 따라 바우처 카드로 결제 하는 식이다.
건물주들은 건물이 얼어붙어도 난방비를 현금으로만 착취하는 돈 벌레들이다.
한 번도 따뜻하게 지내지 못했지만, 난방비 폭탄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 에너지바우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난방비 지원으로 쪽방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것은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용산 대통령 청사 앞에서 쪽방 공공개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열어..
지난 7일 오전 11시,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쪽방 공공개발을 촉구하는기자회견이 열렸다.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동자동사랑방,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빈곤사회연대. 홈리스주거팀 등 16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하고,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을 신속히 추진하라며 정부의 무능을 성토했다.
‘동자동사랑방’의 김호태씨 사회로 진행된 기자회견은 ‘동자동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 ‘양동쪽방주민회’ 박종만위원장,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백광현 부위원장, ‘민주노총서울본부’ 이현미 수석부본부장, ‘민달팽이유니온’ 지수위원장, ‘기후정의동맹’ 서린 집행위원, 동자동 주민 최갑일씨 등 여러 명이 발언에 나섰다.
‘동자동주민협동회’김정호이사장은 ‘정부와 서울시가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한 지 2년이 지났건만, 지금까지 첫 단계인 지구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난방비 지원보다 공공개발에 의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쪽방을 적정 주거로 변화시키는 것만이 난방비 문제를 포함한 쪽방 주민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바우처는 빛 좋은 개살구
동자동에서 11년 거주한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백광현씨는“바우처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고 했다. ”나는 작년까지 64세라 한 번도 못 받았어요. 올해 65세가 돼서 ‘아 나도 이제 받을 수 있겠다’ 싶어 동사무소에 갔더니 ‘영수증 가져와라’, ‘계량기 확인해 와라 이래요. 바우처 이거 믿지 마세요. 주지도 않지만, 힘들게 얻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거 없습니다. 끝까지 투쟁해서 공공개발이 이뤄져야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맨 날 뉴스에 우리 사는 거 나오고, 정부는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는 헛소리만 하네요, 어렵게 사는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가 도대체 뭘 도와줬습니까? 쪽방주민들 도와주는 방법은 공공개발 뿐입니다“
지난 1월 말, 여러 언론에서 꽁꽁 얼어붙은 동자동 쪽방촌 사진을 일제히 내보냈다.
일명 ‘얼음 계단’으로 쪽방촌 건물이 통째로 얼어 계단과 바닥 전체에 빙판이 깔렸고,
난간 곳곳에 고드름이 매달린 사진들을 게재하며 동자동 빈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보도했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요즘 쪽방건물에 매일 기자들이 오는데, 언론은 한파 때만 쪽방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보도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적절한 난방은 생존권이다
‘기후정의동맹’ 서린씨는 “주거권 보장이 곧 기후정의”라고 강조했다. “적절한 난방은 생존권이다. 적정한 가격에 난방을 땔 수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다. 이제 에너지는 기본권이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공공재다. 난방비 지원으로는 결코 에너지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적정한 주거공간을 제공해야만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며, 쪽방촌 에너지 문제의 근본 방안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공공주택을 쪽방주민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만 난방을 때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주거공간 마련을 위해 공공개발 지구지정을 지금 당장 추진해야 한다. 쪽방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 계획 발표 2년, 신속한 사업 추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문도 낭독되었다.
‘적정 주거가 답이다! 난방비 말고 내놔라 공공임대!’ 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기자회견문은 ‘지금까지 민간주도로 이뤄진 쪽방 개발은 쪽방주민 축출의 역사였다.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은 이와 같은 폭력과의 단절이자 정책적 속죄라는 가치가 있다. 또 다시 제어되지 않는 소유주들의 불로소득의 탐욕에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이 소멸하는 비극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국토교통부가, 정부가,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임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그리고 백광현씨를 비롯한 주민 네 명이 나와 에너지 바우처 난방비를 반납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동자동 주민으로는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을 비롯하여 김호태, 선동수, 백광현, 정대철, 최갑일,조인형, 김장수, 박종근씨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21일 동자동서 열린 공공주택사업 토론회 공공개발구역 건물 소유주 대부분이 외지인 “민간개발 추진되면 외지인 투기수단으로 전락” 눈치 보는 국토부‧LH “쪽방주민‧소유주 윈윈해야” 쪽방주민 “우리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달라”
21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빈곤사회연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꽃 심고 비질하며 마을 지킨 주민을 존중하라’가 상영되고 있다. 사진 복건우
“여기(동자동 쪽방촌) 주민은 우리(쪽방주민)예요.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예요. 그런데도 개발 과정에서 주민 목소리는 둘째로 들어가더라고요.”
“여기 쪽방에는 바퀴벌레도 많고 쥐도 있습니다. 공공주택사업 빨리해서 하루라도 뜨뜻하고 깨끗한 방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입니다.”
- 동자동 쪽방촌 다큐멘터리 ‘꽃 심고 비질하며 마을 지킨 주민을 존중하라’ 중에서
빈곤사회연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꽃 심고 비질하며 마을 지킨 주민을 존중하라’를 보면 공공주택사업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드러난다. 쪽방주민은 ‘공공주택사업 환영’이라는 피켓을 들고 공공개발을 일제히 반기지만, 토지·건물 소유주는 공공주택사업 철회를 계속해서 주장한다. 현재 동자동 쪽방촌 일대에는 쪽방주민을 위한 임시 이주단지와 이들이 재정착할 수 있는 영구임대주택이 지어질 예정이다.
21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에서 ‘쪽방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필요성’ 토론회가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아래 추모제기획단) 주최로 열렸다. 이날 발언자로 나선 쪽방주민은 현재 지지부진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은 30분가량 토론을 벌인 뒤 주민과 질의응답을 가졌다.
- ‘아름다운 민간개발’은 공허한 슬로건일 뿐
동자동 쪽방촌은 현재 공공개발을 앞두고 있다. 2020년 국토부는 LH, 지방자치단체, 지방공사와 협력해 쪽방주민을 내쫓지 않는 ‘선(先)이주 선(善)순환’ 공공주택사업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서울시는 2020년 1월 영등포 쪽방촌을 시작으로, 2021년 2월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쪽방 밀집 지역인 동자동에도 해당 계획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국토부와 서울시는 동자동 공공개발을 한없이 미루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12월 공공주택 지구지정을 완료하고, 올해까지 소유주에 대한 보상계획을 수립한 뒤 내년에는 주택 착공에 들어가야 한다. 지난 22개월간 사업은 첫 단계인 지구지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쪽방 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필요성’ 관련 토론회가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주최로 열렸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공공주택사업(공공개발)과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민간개발)의 가장 큰 차이는 ‘기존 쪽방 주민의 재정착’ 여부다.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르면 공공개발의 경우 공공임대 35% 이상, 공공분양 25% 이하를 포함해 전체 주택의 절반 이상을 공공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 동자동 쪽방촌이 공공개발로 진행되면 공공임대 51.9%(1,250호), 공공분양 8.3%(200호) 등으로 원주민 1,000여 명의 임시 이주와 재정착이 가능해진다.
한편 동자동 쪽방촌이 민간개발로 진행되면 원주민 재정착률은 큰 폭으로 떨어진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에 따르면 민간개발 임대주택 의무 비율은 10~20%로, 서울시는 자체 고시에 따라 그 비율을 15% 선에서 유지하고 있다. 이때 80%가 넘는 원주민은 정착은커녕 삶의 터전을 잃고 내쫓길 위기에 놓이게 된다. 소유주가 주장하는 ‘아름다운 민간개발’이 공허한 슬로건에 그치는 이유다.
게다가 민간개발이 예정된 쪽방촌 주민은 제대로 된 이주 대책이나 보상도 없이 집을 비워야 한다. 2008년 동자4구역 재개발 당시 원주민은 이주비 명목의 3~7만 원을 받고 원래 살던 땅에서 쫓겨났다. 고시원 2개를 포함해 100여 개 쪽방이 사라진 자리에는 35층짜리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섰다. 쪽방 건물주는 지금도 ‘리모델링 공사’, ‘낙후 건물 안전진단’ 등을 이유로 들며 강제 퇴거를 일삼고 있다. 이는 이주비 등 보상 책임을 지지 않고 개발에서 추가 이윤을 챙기기 위한 전형적인 ‘꼼수 조치’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동자동 쪽방촌 소유주 등기부등본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이날 발제에는 동자동 쪽방촌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한 결과가 발표됐다. 추모제기획단이 공공주택사업 예정지 건물 308채의 소유주 실거주지를 분석한 결과, 199채(64.6%)의 소유주가 동자동 외 다른 지역에서 거주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상속‧증여에 따른 소유주는 62건(31%),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사는 소유주는 22건(11%)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동자동에 민간개발이 추진되면 쪽방촌은 외지인의 투기 및 재산 증식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헌법과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소유주의 재산권과 쪽방주민의 주거권 간 법익 균형성을 고려했을 때 공공성이 높은 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공공개발과 민간개발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비교 분석한 결과도 공개됐다. 참여연대 이슈리포트 ‘공공주택사업 및 민간 도심복합개발사업의 개발이익 분석: 동자동 쪽방촌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현행대로 동자동 쪽방촌에 공공개발이 추진될 경우 총 1,250세대의 공공임대주택이 건설될 예정이다. 이때 LH는 분양으로 1,471억 원의 개발이익을 환수할 수 있다. 소유주는 세대당 1억 4,000만 원, 최초 수분양자는 세대당 5,000만 원의 개발이익을 가져간다.
참여연대가 10월 발표한 이슈리포트 ‘공공주택사업 및 민간 도심복합개발사업의 개발이익 분석: 동자동 쪽방촌을 중심으로’에 나오는 동자동 쪽방촌 개발이익 분석 조건. 주거용 용적률은 500%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 질의에 대한 국토부 관계자의 답변이다. 참여연대 제공
반면 민간개발이 진행될 경우 공공임대주택은 8분의 1 수준인 156세대로 줄어들고, 소유주 개발이익은 10배에 가까운 13억 7,000만 원으로 늘어난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도 소유주는 세대당 10억 5,000만 원, 최초 수분양자는 세대당 5,400만 원의 개발이익을 챙길 수 있다.
이에 대해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민간개발의 경우 소유주와 사업자가 개발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더욱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는 당초 발표한 도심복합개발사업을 민간사업으로 유도하는 것을 멈추고, 동자동 쪽방주민을 위한 공공주택사업을 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 공공개발 발표해 놓고 소유주 눈치 보는 정부
이날 토론회에는 사업 시행 주체인 국토부와 LH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공주택사업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여러 의견이 오갔다. 자리에 함께한 40여 명의 쪽방주민은 동자동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지적하고 정부에 주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경수 LH 도시재생사업처 부장은 공공개발 과정에서 소유주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은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민간개발 사업에 비해 쪽방주민의 입장을 더욱 반영하고 있는 만큼, 주민과 소유주 모두 윈윈(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유주 의견을 반영하는 공공개발’은 애초에 답이 될 수 없다. 앞서 설명했듯 소유주는 개발이익을 최대로 거두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최소화할 것이고, 이는 공공개발의 취지와 상충된다.
발언자로 나선 동자동 쪽방주민 윤용주 씨가 동자동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지적하고 국토부와 서울시에 주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동자동 쪽방주민 윤용주 씨는 “지난해 국토부에서 주민의 재정착을 약속한 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라며 “매일같이 추위에 떨고, 쥐와 바퀴벌레가 가득한 집이 아니라 제대로 된 화장실과 욕실이 있는 집,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만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쪽방주민인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은 공공개발 논의에 주민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왜 국토부와 서울시는 쫓겨나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느냐”며 “하루라도 따뜻하게 살 수 있는 집, 화분이라도 하나 놓을 수 있는 집에서 살기 위해서는 정부가 후퇴 없는 공공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주택지구 지정 이후가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백준 제이앤케이(J&K)도시정비 대표는 “동자동이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되더라도 쪽방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해제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며 “동자동 개발사업의 방향은 국토부, 지방자치단체, 쪽방주민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 내다봤다. 달리 말해 쪽방주민이 공공개발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동자동에 민간개발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한동훈 국토부 공공택지조사과장은 “당초 계획보다 사업이 늦어지게 되어 죄송하다”며 “저소득층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정부와 서울시 관련 부처가 함께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는 데 그쳤다.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열린 합동 추모제. ⓒ김수나 기자
무연고 사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이들의 죽음과 장례에 대한 사회보장을 촉구하는 합동 추모제가 열렸다.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은 17일 경기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100구역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서 추모 의식과 문화제를 진행했다.
이날은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로,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제는 2017년부터 매년 이날 열리고 있다. 빈곤 운동 단체 등은 홀로 죽음을 맞고 장례를 치러줄 이마저 없는 무연고 사망을 단지 연고자가 없는 죽음이 아닌 빈곤으로 인한 인권 문제로 본다.
이들은 특히 추모제가 열린 서울시립승화원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이 일반 봉안시설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유골함을 일시 보관하는 창고 역할에 그치고, 상시가 아닌 추모제 날 하루만 개방되는 등 진정한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큰 문제로 지적했다.
추모객들은 이 창고에 갇힌 죽음에 대해 “불평등하게 살다, 죽어서도 존엄은 없다”면서 “이들은 잊진 존재가 아닌 기억돼야 할 존재이며, 누구든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용혜인 국회의원(기본소득당)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아 지난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2012년 1025명에서 2021년 3488명으로 지난 10년 동안 3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무연고 사망자는 모두 2만 906명에 달한다.
(오른쪽) 지몽 스님 등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기도법회를 하고 있는 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 ⓒ김수나 기자
이날 지몽 스님(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은 추모사에서 “살아서 고독하고 가난했던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며 “장사법 일부 개정으로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공영장례의 길이 열렸지만 갈 길이 멀다. 하루빨리 무연고자 장례에 관련된 미비점과 현장 실태를 파악해 존엄을 담보할 수 있는 매뉴얼이 갖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행정실무 담당자는 물론 국민 모두 무연고자 공영장례에 대한 온정주의와 시혜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현재 1인 가구 및 다양한 가족 형태가 늘고 있어, 가난과 관계 단절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무연고 사망자 장례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몽 스님은 “차갑고 창고 같은 건물 속에 있는 유골을 외면하지 말고, 서울시와 서울시장은 유골 보관 창고가 아닌 무연고 사망자를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누구나 애도 받고 애도할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고 존엄하게 이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로서 공영장례가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백광헌 부위원장(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은 “이 건물을 봐라, 여기가 추모하는 공간인가. 내가 죽어도 (추모의 집에 봉안된)이천 명 중 한 명, 누가 나를 기억할까”라며 “간판이 없어 찾아오기도 어렵고, 여기가 어디인지 몇 번이나 왔지만 놀랐다. 기억도 안 하고 추억도 없는데,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행복하게 조금만 더 신경 써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자동, 양동 쪽방촌 등지에서 온 이웃들이 참배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지난 6월 22일부터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개정 법률(약칭: 장사법)에 따르면, 시장 등이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존엄하고 표준화된 장례 절차를 제공하기 위해 장례비용을 국비로 지원하고, 지원 기관으로 장사지원센터를 두도록 했다. 현재 장례 절차 지원은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위탁했으나 예산과 인력, 기능과 역할 등과 관련한 구체적 과제들이 남은 상태다.
특히 이 지원센터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단순 지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충분한 추모와 애도가 이뤄지는 과정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참가자들은 이날 결의문을 내고 “고인들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것에 그칠 수 없다. 빈곤을 만드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추모만으로 어떠한 사회적 변화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2021년 전국 무연고 사망자는 36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연고자가 있지만 병원비, 장례비 등으로 시신 인수를 포기해 무연고 사망자가 된 이들은 2500여 명에 달한다. 실제로 연고가 전혀 없는 사망자는 전체 무연고 사망자의 3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이들이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원인을 연고 유무가 아닌 빈곤으로 보는 까닭이다.
스님들과 참배객들이 위패를 모시고 봉안시설 안에서 추모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이들은 또 “누군가의 애도를 위한 상징적 장소는 물론, 추모의 집에 봉안된 이들을 상시 추모할 수도 없다”면서 “서울시는 유골 반환이 있을 때를 빼고 추모의 집을 상시 폐쇄하고 있다. 기억과 추모를 금지할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추모의 집 안에 설치된 선반에는 공간 구분도 없이, 빼곡히 유골함이 놓여 있다. 현실적으로 많은 유골을 보관하기에 최적화된 곳일 뿐”이라며 “외부에는 이곳이 추모의 집이라 알 수 있는 안내판이나 현판도 없고 봉안된 고인을 확인할 수도 없다. 서울시는 추모의 집다운 공간으로 시설을 확충, 운영하라”고 촉구했다.
법 제도의 미비점도 지적됐다. 지자체에 공영장례 도입이 늘고 있고, 사망자의 생전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연고자가 아니어도 연고자 지정 및 장례 주관을 할 수 있도록 무연고 사망자 장례 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의료법 등 관련법은 개정되지 않거나 예산 문제 등으로 실행되기 어렵다면서 법,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무연고 사망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연고자가 있어도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경우의 사망을 포함하지만, 장사법에 따르면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경우의 무연고 사망자는 추모의 집에 봉안하지 않는다.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 표지판이나 안내문 등이 전혀 없는 창고처럼 생긴 건물로 일반인은 봉안시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김수나 기자
이날 합동추모제가 열린 서울시립승화원의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는 현재 유골 약 3000위가 봉안돼 있다. 이 유골은 장사법 시행령에 따라 최장 5년 동안 봉안되는데 이 기간 연고자가 나타나면 반환되고 나타나지 않으면 장사시설 내 화장한 유골을 뿌릴 수 있는 시설에 뿌려지거나 자연장한다. 애초 봉안 기간은 10년이었으나 2020년 개정돼 5년으로 줄었다.
‘공영장례’란 법정 공영장례 지원 대상자가 숨질 경우, 법정 장례비 및 지자체 조례가 정하는 내용에 따라 장례 절차가 진행되도록 지원하는 공공장례를 말한다.
이날 합동 추모제는 1017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나눔과나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동자동사랑방,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화우공익재단이 주관했다.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열린 합동 추모제. ⓒ김수나 기자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열린 합동 추모제. ⓒ김수나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며 노숙인 쪽방촌 지원방안을 공개한 가운데 관련 시민단체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라며 서울시를 향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사진은 2022홈리스주거팀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헤랄드경제/ 이영기 기자]
[헤럴드경제=김용재·이영기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며 노숙인 쪽방촌 지원방안을 공개한 가운데 관련 시민단체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라며 서울시를 향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노숙인·쪽방촌 관련 시민단체 연합인 ‘2022홈리스주거팀’은 12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노숙인·쪽방촌 관련 현실적인 지원방안과 오 시장과의 면담을 촉구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오 시장이 취임 후 첫 행선지로 창신동 쪽방촌을 찾고 3대 지원방안을 발표했지만 현재 쪽방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엔 미흡하다”며 “쪽방이라는 물리적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 약자와의 대화 없는 약자와의 동행은 허구다”라고 비판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3대 지원방안은 ▷쪽방주민 무료식사 지원 동행식당 운영 ▷노숙인 급식확대 ▷쪽방촌 에어컨 설치 및 여름용품 지원 등이다.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된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지만, 2022홈리스주거팀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12일 오전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열린 ‘노숙인·쪽방 주민을 위한 3대 지원방안 비판 및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 요청 기자회견’. 사진 출처 : 뉴스클레임(https://www.newsclaim.co.kr) 김동길 기자
홈리스행동은 전날 입장문을 내고 오 시장의 3대 지원방안과 관련해 “홈리스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미흡하다”라며 “폭염대책은 쪽방의 물리적 환경 개선 없이 불가능하다. 적정 면적의 임대주택 제공을 지속 요구해왔으나 이번 대책에 언급은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근본적인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 중이다. 쪽방촌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임대주택 등을 빠르게 공급하고 개발 과정에서 주거민들이 외면받지 않도록 세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종만 양동쪽방주민회 부위원장은 “현재 1인 최소 생활 면적 기준인 14㎡는 2021년 기준”이라며 “서울시에 18㎡으로 올려달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고 선거 때도 직접 말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영국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위원장 역시 “동자동 쪽방촌은 공공주택지구로 발표는 됐지만, 실제로 지구지정은 이뤄지지 않아 거주민들이 속만 끓이고 있다”며 “정치권이 하루 빨리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