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마음이 바빴다.
아침 열시에는 동네 청소도 해야하고, 오후에는 박근혜 끌어내리려 광화문에도 가야하기 때문이다.
열시에 ‘동자동 사랑방’으로 갔더니, 다들 청소하러 뿔뿔이 흩어지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만 몇 개 남아 있었다.

난, 청소하는 사진을 찍고 싶어 카메라까지 가져왔었는데, 부끄러운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기 동네 청소하는 걸, 자랑하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배낭 속에 집어 넣고, 나도 청소하러 따라 나섰다.

골목에서 청소하는 박정아씨를 만났지만, 인사만 나눈 채, 열심히 청소를 했다.

왜, 사람들이 담배 꽁초를 그냥 버리면 청소하기 쉬울 텐데, 꺼내기 힘든 맨홀에 집어넣는지 모르겠다.

사람들 심리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한 두어 시간, 청소하고 돌아오니, 다들 돌아와 있었다.
동자동 주민들이 시위 나갈 시간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있어, 카메라들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마침, 토요일이라 공원에서 빵을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나온 사람들이 적었다,

덕분에, 나도 빵 한 봉지 얻을 수 있는 행운이 따랐다. 그 정도의 빵이면 시위장에서 하루 종일 먹고 남을 분량이었다.

그런데, 반갑게도 첫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린애처럼 좋아하며 나온 이기영씨를 만나 사진을 찍기도하고, 동네사람들도 여럿 찍었다.
더디어, ‘동자동 사랑방’ 앞에는 전쟁터에 출정하려는 동네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늘의 출정 화두는 “박근혜 방 빼~‘였다. 모두들 피켓 들고 눈길 행진을 시작했다.
집결지인 인사동 ‘남인사마당’으로 떠나며, 모두들 전의를 다졌다.

사진, 글 / 조문호



 

 

 

 

 

 

 


 


 

 

 

 

 

 

 













12일 있었던 '민중 총궐기'대회 이후 심신이 편치 않다.
토요일엔 잠도 한 숨 못 잤지만, 일요일은 애인과 데이트하느라 바빴다.
피로가 덜 풀린 몸으로 일어 나 컴퓨터를 켜니, 또 울화가 치민다.


박근혜의 나쁜 짓거리야 말 할 것도 없지만, 반성은커녕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인간으로서 한 가닥 양심도 없는, 저런 인간을 대통령으로 둔 게 너무 분했다.
국민을 우습게 본, 그 대가는 곧 치루게 될 것이다.





이제 강제로 끌어내릴려면, 우리가 더 강하게 싸울 수밖에 없다.
먹는 것보다 잠을 더 자고 싶었으나, 그냥 일어났다. 싸우려면 좀 먹어 둬야했다.
아침 겸 점심 먹으러, ‘식도락’으로 내려갔다.

다들 식사 한 후라, 밥 한 그릇만 달랑 남아 있었다.
천 원짜리 한 장으로, 맛있게 먹었으나,
우건일씨와 뒤늦게 온 분들은 밥이 없었다.

큰 솥에다 라면 몇 개를 한꺼번에 끓였는데,
옛날 군에서 먹던 라면이 생각나, 군침 돌았다.
“라면 좀 먹어 보라”, “수급자 신청은 했냐”는 등
살가운 인사들에 답답한 가슴이 좀 풀렸다.






커피 한 잔하러 ‘동자동사랑방에 갔더니, 김정오씨가 김치 한 박스를 안겨 주었다.
올 겨울에 라면이라도 끓어 먹으려면, 김치가 있어야 할 것 같아 받아 놓았다.
적십자사에서 동자동 빈민들을 위해 보낸 김치였으나, 좁은 방에 둘 자리가 없었다.

틈나면 조금씩 나누어 주려고 옥상에 보관시켜 두었다.








오후에는 동자동 쪽방 촌을 한 바퀴 돌았다.
사람 때 묻은 옛날 건물들과 빤질빤질한 빌딩들이 모여 있는

우리 동네는 돈과 가난이 공존하는 독특한 구석이 있다.






요즘 노숙자로 전전하는 라흥주씨를 거리에서 만났다.
막걸리 두 병 사들고는, 따라 오라며 눈짓한다.
아래 공원 모퉁이에 자리 잡아, 한 잔 얻어마셨다.
술 마시며 했던, 그의 사연도 가슴 아팠다.

돈 벌러 서울 올라 온지가 30여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가족들에 연락마저 할 수 없는 사정이란다.
마지막 남은 4백만원 마저 잘 아는 사람에게 도둑맞아,
이젠 완전 개털되어 노숙자로 전전한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사연들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눈물겨운데,
대통령자리 도적질한 박근혜는 국민들의 피 같은 돈까지 도적질했다.

더 이상, 자격 없는 대통령이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정의감보다 눈치나 보며 명령에 끌려 다니는 섞어 빠진 검사들도 많지만,
정의감에 피 끓는 검사들도 분명 살아있다.

죄상은 명명백백히 밝혀 질 것이고, 박근혜는 그 죄 값을 받으면 될 것이다.

"그 걸 피하려 잔머리 쓰면, 너 네 아버지처럼 총 맞는다.
순리대로 풀어라!  국민이 살아있고, 역사가 지켜본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사랑방 공제조합'에서 마련한 ‘식도락’은 조합원들을 위한 밥집이다.

밥값 아닌 성금에 다름없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저금통에 넣는 게 전부지만,

그 곳에는 다른 곳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따뜻한 온정이 모락 모락 피어 오른다.

장소가 협소하여 삼 십 여명밖에 이용할 수 없지만, 아주 오붓한 밥상공동체다.

동자동에 온지 한 달 밖에 되지 않는 신참이라 깊숙이는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요즘 세상사는 공부를 다시 하듯, 많은 것을 깨우치고 있다. 사는게 이런 거라고..

식당에 오는 분들도 대개 아는 분이라, 마치 한 가족이 밥상에 모이듯, 인정스럽다.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먹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향수어린 정겨움으로 가득하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밥상의 행복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더러는 농담을 건네기도 하지만, 말 없는 눈웃음 속에 서로의 고달픈 삶을 위로한다.

요즘은 배꼽시계도 무뎌졌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는 생활습관에 밥 시간을 번번이 놓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밖에 이용하지 못하지만,

갈 때마다 식재료비도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어떻게 유지가 되는지 걱정스럽다.


반찬은 몇 가지 안 되지만, 마치 집에서 먹는 것처럼 담백하고 맛깔스럽기 그지없다.

시락국이나 콩나물국도 번갈아 등장해, 술에 찌던 내장을 시원하게 풀어 주곤 한다.

그러나 천원짜리 한 장도 없거나, 그마저 아끼려 무료급식에 줄 서는 사람이 더 많은 곳이 쪽방촌이다.

다들 돈 없이 살아가지만, 사람답게 살아가는 지상의 마지막 천국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9일 오후2시 무렵의 동자동 놀이터엔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처음보는 젊은이가 나타나 동자동 어깨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한 방에 날아갈 것 같았는데, 계속 깐죽댔다.
욕설을 해대며 “한 판 떠 자”는 것이다,
겉 모양보고 싸우는 건 아니지만, 상대가 만만찮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이 출동해 사라졌지만, 도대체 무슨 심보였을까?















오후 여섯시에는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에서 오픈한 후원주점을 찾았다.
남영역 건너편 슘 호프에서 열린 후원주점에는 많은 분들이 몰려들었다.
비급여 의료비나 의료급여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동자동주민들을 위한 행사였다.

의료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주점에는 우건일 조합장과 박정아씨를 비롯한
많은 주민들이 종업원으로 나서고 있었는데, 술집 분위기가 좋았다.
시나리오작가 최근모씨, 사회복지사 김성규씨와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는데,
반가운 사람 한 분이 나타났다. 사진가 김 원씨였다.

뒤늦게, 오래 전부터 동자동을 찍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어, 한 번 만나 보려던 참이었다.
빈민을 향한 작업에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더 이상 머물 시간이 없었다.
서로의 핸드폰에 번호를 입력하고 헤어졌다.

오후7시부터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메라 셋팅이 잘 못되어, 그 날 찍은 사진들을 모두 망쳐버렸다.

늙어면 죽어야지...

사진,글 / 조문호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건 한 참 잘 못된 말이다. 오직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고로, 없는 자보다 가진 자들의 편에서 정치를 해왔기에,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이다.

 

정치인들이여!

오 갈 때 없는 노숙자나 빈민들의 한 숨 소리에 과연 귀 한번 기울여 보았는가?

 

올 여름 무더위를 누가 가장 힘들어했겠나?

바로, 뜨거운 아스팔트를 헤맨 노숙자나 바람 한 점 들 수 없는 쪽방과 고시원에서 살았던 빈민들이다.

 

그들도 사람이다. 빵 한 조각 던져주면 다 한 것이 아니다.

쓸데없이 탕진한 나랏돈 귀퉁이만 떼 내어도 다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천벌 받을 짓을 더 이상 하지말자.

 

UN이 정한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맞은 지난 토요일, 가난한 약자들의 모임인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에서 주최한 ‘1017 빈곤철폐퍼레이드가 동대문에서 열렸다.

천 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빈곤철폐를 외치며,

동대문에서 종로, 종각, 청계천 영풍문고에 이르기까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광교에 도착하여 살인정권을 규탄하는 백남기농민 추모대회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썩어빠진 정치판에는 개 떼 처럼 몰리는 기자들이, 가난한 빈민들의 목소리엔 귀를 막더라.

그들이 가난을 맛보지 못해서 일까? 말로만 평등사회를 외쳤지, 생각 따로, 행동 따로였다.

 

그 날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김윤영씨를 비롯한 수 많은 단체에서 나와 빈민들의 원성을 전했지만,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전한 김혜진씨의 호소가 귀에 박혔다.

 “어떻게 물건이 아닌 사람에게 등급을 매깁니까?”

 

쪽방촌사람으로는 동자동 사랑방우건일씨를 씨를 비롯한 주민10여명을 만났고,

빈민 운동하는 사진가 최인기씨도 만났다.

 

그 날 외친 구호들이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민중복지 쟁취하자!" 
"노점 단속 강제집행 중단용역깡패 해체하라!" 
"허울뿐인 홈리스 복지 개선공공주택 공급하라!" 
"조물주 위에 건물주맘편히 장사하자!" 
"줬다뺏는 기초연금약속대로 이행하라"! 
"복지는 국가책임사회공공성 강화하라!" 
"세월호 진상규명진실을 인양하라!"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책임자를 처벌하라!" 

 

사진, / 조문호

























































 

 





지난14일은 ‘동자동 사랑방’에 갔다.
나도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에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다.
가입비 천원과 이 달 출자금 만원을 냈더니, 통장 하나 만들어 주었다.
신용불량자라 통장도 없는데, 입출금이 자유롭진 않지만, 기분 좋더라.






서울 중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동자동사랑방’은 쪽방 촌 빈민들의 자립을 돕는 공동체다. 

단발성에 그치거나 명분 내세우기에 급급한 구호의 손길보다, 진정으로 주민들을 도우며 함께 어울리는 곳이다.

조그만 사무실이지만, 주민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한다,

비좁은 쪽방에 선반을 만들어 주거나, 물품의 공동구매로 비용을 절감시키는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사랑방 식도락’에서는 천 원에 식사를 제공하고, 무료로 책을 빌려주기도 한다.






5년 전, 빈민들이 조금씩 아낀 돈을 출자해 공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의료비와 주거비 등 긴급한 생활자금이 필요한 조합원들에게 빌려주는 소액대출을 비롯해,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공동사업과 다양한 마을공동체 행사를 벌여, 벼랑에 선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동물원에 먹이 주듯, 밥과 빵이나 던져주는 봉사단체, 조그만 돈으로 안주하게 하는 정부의 빈민정책에 비해서는 훨씬 모범적이다.






그 날은 녹색당 홍보팀장인 한진희씨를 비롯한 여러 명이 ‘동자동사랑방’을 방문하여

우건일 조합장으로부터 쪽방촌의 현안과 문제점을 듣고 있었다.

방문한 젊은이들이야 빈민들의 실태에 당혹스러웠을지 모르지만,

정치하는 인간들은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걱정스러웠다.











아무튼 그들과 함께 ‘사랑방 식도락’에서 천 원짜리 식사를 했는데,

소 뼈 목욕한 국물이긴 하지만, 그 날의 메뉴는 곰탕이었다.

젊은이들 입맛에는 맞지 않을텐데,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더라.






그런데, 빈민들이 사는 촌방 촌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외국인들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웃의 한 분은 119요원들에 의해,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도 보았다.

부축하여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보아, 겉 모양은 괜찮으나, 속병이 심각한 것 같더라.

부디 별 탈 없이, 다시 돌아 오길 빌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공원 주변을 한 바퀴 돌았는데,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쓰러져 자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남의 일 같지 않더라. 나도 요즘 밥은 먹기 싫고, 술 생각이 간절한 때가 많으니까...

다행스럽지만, 아무리 술 생각이 나도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다짐은 한 번도 깨트린 적 없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쪽방촌 사람이나 노숙자들의 술자리가 곳곳에 있지만,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 술을 마시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 그들을 만나지는 않는다.

술에 끌려 다니지 않고, 내가 술을 끌고 다니기 위한 나의 철칙이 잘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가난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슬픔이 술을 찾게하고, 외로움에 또 한 잔한다.

그들의 고민을 잊게하고 위안해 주는 것은 술 밖에 없다.


세상이 알콜 중독자를 양산 하는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나이가 들어가면 짐을 하나씩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짐은 정선 움막에 있고, 작은 짐은 정영신에게 두고, 몸뚱이와 필요한 물건만 챙겨왔으니 너무 홀가분해 좋다.

쪽방 공간이 좁아, 크게 운신할 필요조차 없으니, 몸도 마음도 편한 것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해 뜨는 집’ 105호에 살던 김영희씨 방은 짐으로 가득했다.

어디서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왔는지, 쓸 만한 물건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석 달 동안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별 탈은 없어야 할텐데...

지난 8일, 그 쪽 방향으로 나갔더니 쪽방상담소 직원들이 그녀의 짐을 끌어내고 있었다.

밀린 방세 때문에 짐을 폐기처분할 모양인데, 좁은 방안에 짐이 얼마나 많은지, 수레로 두 차례나 실어 버리고도 남았다.





쪽방촌 사람들은 늘어나는 짐 때문에 대개 골머리를 앓는다. 심지어는 이웃 짐까지 맡아 곤혹스러워하는 경우도 더러있다.

갔다 올 때 까지 잠시만 맡아 달라했으나,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버리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인 것이다.

신변에 큰 문제만 없다면, 어디선가 또 짐을 모울 것이다. 아니면 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지...

그런데, 짐을 빼낸 ‘해 뜨는 집’ 1층의 방세를 물었더니, 한 달에 16만원이라 했다.

난, 4층인데도 23만원이나 주는데, 귀가 솔깃해 당장 짐을 옮기고 싶었다.

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싼 모양인데, 한 달 방세 손해 볼 것도 아깝지만, 있는 곳에 정이들어 생각을 접었다.






이제 먹는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지난 7일은 공원에서 빵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민간 봉사단체에서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러나 너무 늦어 빵이 모자랐다.  돌아서려는데, 강완우씨가 걸어 와 내 손에 자기 빵 봉지를 슬그머니 쥐어 주었다.

“왜 니 모가치를 내 한테 주노?”했더니,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비시시 웃는다. 빵을 안 좋아하는 놈이 줄은 왜 설까...

이런 인정스러움 때문에 쪽방사람들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그 날은 먹을 복이 많은지, '새꿈나눔터'에서 특별한 무료 급식도 하고 있었다.

‘연세의료원노동조합 행복 나눔 봉사회’에서 나왔는데, 닭다리를 하나씩 준 것이다.

비록 조그만 닭다리가 죽에 꽂혀 있었으나, 닭죽이라 술술 넘어갔다.

어찌 술 마시고 속 쓰린 것 까지 헤아려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지난 8일의 식사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운영하는 ‘사랑방 식도락’에서 해결했다.

한 끼 천 원씩 받아, 별 반찬은 없으나 씨락국이 시원해 좋다. 내가 앞으로 많이 활용할 식당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무료배식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인정스러움이 있다.





제일 힘든 끼니 때우기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맛나샘’ 무료급식이었다.
일단, 한 끼 얻어먹으려면 한 시간 전에 가서 신청명부에 적고 앉아야한다.

자리가 없으면 복도 계단에 줄지어 쪼그려 앉아,

예수를 믿던 안 믿던 한 시간 넘게 설교를 듣고 기도를 해야한다.

난,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그렇게 못하지만,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했다.

대관절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주 길래 저렇게 까지하며 얻어먹을까? 란 생각이 든것이다.





그래서 지난 11일, 한 번 체험해 보았다.
신청서에 올리고 복도계단에 쪼그려 앉아 내키지 않는 설교와 기도를 들은 것이다.

일단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일하는 사람들의 자세부터 고압적이고 거만했다.

밥 얻어먹으러 온 사람들도 외지에서 왔는지 낮선 사람이 더 많았다.

반찬은 된장국과 돈가스 세 조각, 당면무침 정도였으나, 먹을 만 했다.



교회에서 하는 급식 보다는 카톨릭 단체에서 하는 봉사가 훨씬 신사적이다. 

"카톨릭 평화의 집’에선 월요일과 목요일에 도시락 배달을 하는데, 200여 가구에 한정되어 있다.

 골고루 혜택 받을 수 없는 게 아쉽지만, 봉사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좀 귀찮지만, 밥은 얻어 먹는 것 보다 내 손으로 해 먹는 것이 상책인 것 같더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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