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나무화랑’에서 도예가 김용문씨의 도판화 전이 오는 13일까지 열리고 있다.

‘산과 나무의 단상‘이란 제목이 붙여진 도판화전은 오랜만에 만나는 그의 귀국 전시로,

새로운 수묵드로잉까지 보여 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김용문 하면 막사발이 먼저 떠오르고, 막사발 하면 머리말아 올린 김용문의 상투가 연상된다.
가히 전설적인 장인이다. 젊은 시절부터 옹기에 매료되어 다양한 옹기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의 예술세계는 막사발을 만드는 도예에 한정되지 않았고 퍼포먼스에서 글과 그림까지 전방위 작가다.

그러한 다양한 작업들도 결국은 막사발을 위한 부대작업에 불과할 것이다.

오죽하면 ‘나는 막사발이다’라는 책까지 펴냈겠는가?






토우와 도자기로 삶의 애환을 담은 퍼포먼스도 여럿 있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도 단양 충주댐에서 가진 ‘수장제’였다.

84년 단양 하방리를 지켜 온 좌청룡과 우백호, 전주작, 후현무의 네 풍수 동물을 토우로 빗거나 조각해

많은 이주민들이 울부짖는 통곡에 장단 맞춰 댐 속으로 잠기게 하는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최고의 퍼포먼스라 메스컴에서도 일제히 나발 불었다.





그리고 87년 대학로에서 가진 ‘옹관장전’도 파격적이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화가 강용대씨가 상여에 실려 가는 모습,

큰 칼로 옹기 작품을 내려치는 무속인 무세중씨의 모습은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인사동에서 가진 전시도 여럿 기억난다.

인사동 거리에 좌판 깔아놓고, 푼돈 받고 토우 파는 전시에서부터,

인사동에서 제일 넓은 ‘아라아트’ 전시장 바닥에 수천 개의 막사발을 펼쳐 전시를 하는 등 특이한 전시가 많았다.






그는 홍대미대 공예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토속적인 막사발에 승부를 걸고 활동 해 왔는데,

터키 국립 하제테페대학교 도예과 초빙교수로 떠난 지가 8년째라 최근에는 자주 볼 수 없는 작가다.

경기도 오산, 충청도 괴산, 전라도 삼례 등지로 막사발 박물관을 옮겨가며 ‘세계막사발축제’를 36년째 이끌어 왔다.

또한 세계막사발심포지엄 19회, 국내외에서 가진 개인전도 43회나 개최했다.






투박한 토속적 미감의 막사발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도예가 김용문의 도판(陶板) 그림전은

산과 나무를 대상으로 한 추상화인데,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예술혼을 담아냈다.






우리 문화의 속내가 들어다 보이는 대개의 작품들은 지두문(指頭紋) 기법으로 이루어졌다.

지두문(指頭紋)이란 유약이 마르기 전 빠른 손가락 놀림으로 풀, 나무 등의 문양을 그려 넣는 기법인데,

손가락이 스쳐간 자국들은 우리 선조들의 멋이고 아름다움이다.
대개의 지두화(指頭畵)가 둥근 접시나 정사각형 도판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보통 지름 25cm정도의 작은 작품서부터 지름 70cm가 넘는 대형 작품 등 다양한 크기로 제작된다.






이번에 처음 선보인 수묵드로잉전은 김용문씨의 또 다른 미적영역 확장이었다.

다들 자기 영역 밖의 작업을 하다보면 다소 어설퍼 보일 때가 더러 있으나, 거침없이 그려낸 그의 솜씨는 달랐다.

이는 막사발에 길들여진 원숙한 솜씨와 오랜 세월 몸에 베인 지두문 화법이 그대로 화폭에 옮겨 진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로 먹과 안료, 붓과 지두문으로 표현한 드로잉은 때로는 힘이 솟는 박진감으로 넘치고

때로는 막사발 질감처럼 투박하거나 거칠게 자유롭게 넘실댄다. 여지 것 보아 온 수묵화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폭발력을 가진 작품이 있는가 하면,

전형적인 우리 민족의 미감을 드러낸 인물상에서는 마치 자애로운 불상을 닮은 듯 편안하다.

어떤 작품은 난을 치듯 나무나 잡초를 그리기도 했는데,

흥선대원군의 난이 여인네의 여림이라면, 김용문의 난은 남정네의 투박함으로 말할 수 있겠다.






지난 31일 가진 개막식에서 보여 준 강만홍교수의 퍼포먼스도 인상적이었다.

마치 도공들의 원혼을 불러 모우는 것 같은 동작으로 작품에 기를 불어넣었다.

작가 김용문씨를 비롯하여 김진하, 조명환, 김진홍, 안창홍, 조신호, 김억, 장경호, 손기환, 김구, 채현국, 이인섭,

조해인, 이명희. 공윤희, 전인경, 편근희, 이회종, 김수길, 유진오, 임경일씨등 많은 분들이 함께했다.




‘유목민’에서 가진 뒤풀이에서는 다들 얼마나 퍼 마셨는지, 술집에 술이 부족할 정도였다.

채현국선생께서 모자를 벗어주며 술값 걷어 라는 명령에 자존심하나로 버티는 장경호씨가 졸지에 모자 돌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어렵사리 걷었으나 고작 20만원 남짓이라는데, 모자라는 50만원은 어쩌지?

여지 것 술값이 정산 되지 않고 있다는데...

사진, 글 / 조문호
























































































지난6일부터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조신호씨의 ‘일상적 DMZ'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초청하는 메시지는 진작 받았으나, 지방 다니느라 일도 밀린데다
몸도 편치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못 갔는데, 전시가 연장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지난 15일은 조계사에서 ‘한국전통문화사진’ 아카이브 운영에 따른 세미나가 있었는데, 
가는 길에 ‘나무화랑’에 잠시 들렸다.  마침 전시장에 조신호씨가 있었다.






작품들을 둘러보니, 거칠고 도발적이었다.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으나,
마치 귀신 나올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가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조신호씨에게 주제넘게도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평범한 DMZ풍경에서 은유적으로 메시지를 전해주는 반대어법은 어떨까요?”
 했더니, 지금은 많이 순화된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 붉은 백일홍 위에 세 마리의 두루미가 앉은 작품을
대표작으로 내 세운 것 같았다.






험상궂은 해골에서 피어난 붉은 백일홍과 푸른 미루나무,
말라비틀어진 삭막한 나무에 걸린 달과 눈밭위에 웅크린 성난 고양이.
깃털을 세운 검은 산양과 날개를 펼친 독수리 등 하나같이 분위기가 살벌하다.
그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가의 분노가 녹아 있다.






오래 동안 환경운동과 작품 활동을 해 오며 겪은 고충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금이야 민중미술이 뜨고 있지만, 그 것도 유명작가 몇 명에 한 할 뿐이고,
아직도 대중들이 손쉽게 벽에 내 걸 처지는 아니다.






마치 오래전의 반공포스터를 보는 것 같은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표현방법이 민중미술에 의해 다소 친숙해지기는 했으나,
일반적인 작품을 선호하는 대중성을 되돌리기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는 세태야 더럽기 짝이 없지만, 어쩌겠는가?
작업을 이어가려면 작품이 팔려야 하는데...


얼마나 궁핍했으면, 액자도 없이 내 걸었겠는가?






그는 화가이기 전에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바닷가에서 살았던 그가,
간척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생태가 파괴되는 현장을 보았고,
그 뒤 일어 난 태안 기름 사고가, 그를 환경운동가로 나서게 했다.






지금은 파주에서 DMZ를 오가며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파주지회장으로 있으니,
생태환경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환경미술로 그 심각성을 경고하며 저항하는 것이다.





전시가 19일까지라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 나면, 작품 구경하러 인사동에 들리자.
외롭고 힘든 작가에게 전시를 축하해 주고 격려해 주자.



사진, 글 / 조문호







비오톱의 저녁(The evening of biotope)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2017_0913 ▶ 2017_1002


최경선_고택사람들_캔버스에 유채_35.4×53cm_201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51016f | 최경선展으로 갑니다.

최경선 블로그_outframe.kr


초대일시 / 2017_091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순례적공간의 더께와 빛 ● 최경선이 생명과 삶에 대한 성찰 위에서 작업을 해 온 것은 그가 화가의 소명을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다. 그는 생활이 엮어 놓은 여러 관계들 속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것만큼이나 작가의 눈으로 목격한 것을 기록하는 행위 또한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런 관계로 관객은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일상적 풍경과 인물들, 감정의 파열과 회복, 사유와 깨달음의 흐름을 함께 한다. 그 과정에서 풍경의 형태로 옮겨온 작품은 그곳에 머물렀을 작가의 의식과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과 포개어진다. 그래서 최경선의 회화는 재현되거나 표현된 질료적 대상을 넘어 우리들 사이 사이, 세상의 틈과 틈을 이어주는 매개로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최경선_마치저녁처럼_캔버스에 유채_72.5×90.7cm_2017


최경선의 여섯 번째 개인전 『비오톱의 저녁』의 신작들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단순해진 화면 구도가 인상적이다. 작품의 대부분은 가로로 마주한 두개 내지 세개의 색면 위로 크고 작은 얼룩이 추상적인 인상을 강조한다. 첫인상이 채 남기 전에 색면의 경계 위로 여러 인물들의 흔적과 움직임에까지 눈길이 닿으면 색 덩어리는 일순간 하늘과 대지, 숲과 강처럼 자연의 모습으로 둔갑한다. 시공간의 콜라주처럼 인물과 배경 사이에 놓인 의미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일렁이는 대기는 더욱 낮게 가라앉고 있다. 아마도 저녁이라는 시간을 암시하는 차갑고도 어두운 색감 때문일 것이다. 네이비, 블루, 그린, 바이올렛 등을 주도적으로 사용하면서 각 장면들은 지붕, 나무, 지평선처럼 현실적인 장소를 지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공간-현실의 파편들이 무작위로 조합된 누군가의 꿈-으로 해석되기 쉽다. 하지만 최경선의 회화는 꿈에 관한 것이 아니다. 모든 작업은 그가 마주했던 현실을 말하고 있다.


최경선_물고기_캔버스에 유채_52.9×45.4cm_2017


최경선의 풍경과 인물은 물리적 현실공간에서 시작하여 경험적 주체가 인식한 질서에 따라 재구성된다. 그래서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주변 풍경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감추어진 땅(2016)」, 「수레국화(2016)」 등과 같이 작가는 비어 있는 공간을 주시하였다. 대기는 여러 색깔의 활발한 붓자국을 겹쳐 밀도 높게 처리하였으며 작품 안 인물을 감싸고 있다. 작가의 세계는 깊은 바다 속처럼 모든 존재가 연결되고 맞닿아있어 인물의 호흡과 움직임에 조응하여 공간의 구조와 형태가 달라진다. 대기는 공허하게 빈 상태가 아니라 생명과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원천으로 존재한다. 생명에 대한 관심은 이번 전시 제목 『비오톱의 저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비오톱(biotope)을 "생명이 가득 찬 우리 삶의 영역이자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 형태의 상징"으로 설명한다. 관습적으로 풍경화는 자연의 조화와 법칙을 드러내는 구상물을 아름답게 배치하여 장르적 가치를 얻는다. 반면 최경선의 회화는 무한한 가능성과 생명을 품은 공간과 인물 사이의 생동하는 관계를 시각화 하는 실험에서 본질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최경선_비오톱의저녁_캔버스에 유채_60.5×72.7cm_2017


「물고기」 연작은 시간과 공간 사이의 흥미로운 관계를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어두워져 가는 하늘이 보이고 그 아래 반딧불처럼 빛나는 아이가 천진한 모습으로 홀로 앉아있다. 느슨하게 기대어 앉아 활짝 웃는 아이의 발 아래로 물결과 같은 흐름이 빠르게 지나간다. 일정한 방향을 지닌 붓질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하나의 장소 속에서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감지하게 한다. 물길처럼 흐르는 것은 지나간 시간이 누적되고 각인된 장소의 울림이다. 시간과 장소가 오버랩된 신비한 이곳에서 아이는 그저 자신의 놀이에 빠져있다. 게다가 아이는 나뭇가지가 아닌 어긋나고 겹쳐진 공간의 흐름 위에 걸터앉아 장소의 안과 밖 경계를 무색하게 만든다. 관객은 그 어떤 곳이라도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버리는 아이의 모습에서 공간과 합일을 이루는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최경선_수레국화_캔버스에 유채_45.3×37.2cm_2016


이번 전시는 공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외에도 시간과 기억이 투영되고 생명과 죽음이 순환하는 만유(萬有)의 근원으로 대지를 주목하고 있다. 작가의 새로운 관심을 반영하듯 신작 「마치저녁처럼」, 「로즈메리」, 「제자리」의 하단 대부분이 거칠고 광활한 대지로 채워졌다. 푸른 빛에 가까운 하늘이 지평선 위에 걸렸음에도 짙게 깔린 대지의 인상이 압도적이다. 눈 앞에 놓인 것은 어두운 풍경이다. 그렇지만 해가 떨어져 만들어낸 둔탁하고 무거운 어둠은 아니다. 작품은 여러 장의 네거티브 필름이 겹쳐진 것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여러 형태와 흔적들이 드러났다가 이내 가라앉아 어둠 속에 스며들어 있다. 물감을 바르고, 겹치고, 묽게 흘리고, 뿌리는 과정에서 풍경은 균일하지 않은 층을 드러내고, 중첩되고 교차된 여러 겹의 막이 쌓인다. 이처럼 붓이 지나는 속도와 물감의 농도와 같은 물질적 흔적들과 같은 최경선의 독특한 마티에르는 이질적 공간의 연결고리이자 서술방식이다. 마치 고장 난 카메라에 걸린 오래된 필름처럼 여러 시간과 이질적인 공간이 한 컷에 누적되어 모호하면서도 매력적인 축적물로 드러난다. 거대한 산맥의 지층단과 같은 시간의 더께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 그도 그럴 것이 최경선의 풍경을 이루는 막과 막 사이에는 이야기가 흐른다. 작게는 작가가 목격하고 경험했던 다양한 순간들에 대한 기억이고, 크게는 그 땅 위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사람들의 이야기, 즉 역사다.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두운 대지는 수차례의 붓질로 쌓아 나간 결과다. 그래서 모든 색을 품고 있는 듯한 풍부한 정서적 감각을 얻는다. 마치 하나의 음에 여러 다른 음이 얹혀 아름다운 화음이 되는 것처럼 작품 속 어둠의 빛은 온갖 다양한 음색과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바로 이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조화의 모습이다. 나와 너, 그들과 우리,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은 대지 위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향연이다.


최경선_자라는집_캔버스에 유채_31.6×40.7cm_2014~6


최경선의 지난 십여 년간의 작품 전개를 살펴보면 화면의 층은 더욱 깊어지고 색 또한 어두워졌다. 작가는 검은 그늘과 덩어리들 사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찾고자 했다. 마치 죽음을 딛지않은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작품은 깊은 사유와 묵상에 닿아 있었다. 작가에게 어둠은 죽음과 고통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어둠은 사멸의 지점으로서 끝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연결되는 다릿돌이다. 밤이 지나야 새 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상실과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서야 비로소 존재의 기쁨과 성찰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작가에게 가장 의미있는 시간은 저녁이다. 행복과 긍정의 밝은 에너지를 미덕으로 삼는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 최경선의 회화는 다소 생경하다. 욜로(You only Live once)는 오늘의 시대적 경향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강박을 여실히 드러낸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삶은 감각적 쾌락과 욕망의 달콤한 환상으로 가득 차 있는 원더랜드가 아니다. 인간의 육체는 고통에 가장 민감하고 마음은 언제나 쉽게 상처받는다. 어두운 화면 아래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여러 흔적과 형태들의 존재처럼 최경선의 회화는 심연을 향한다.


최경선_집으로가는길_캔버스에 유채_65.2×90.8cm_2016


오랜 시간 지켜 본 최경선은 순례자의 눈을 지닌 화가다. 길 위의 순례자는 항상 낮은 곳에서 진실을 찾으며 주변의 모든 존재들로부터 의미를 성찰하여 진리로 나아가는 이정표로 삼는다. 작가는 인간에 대한 관심을 그것을 둘러싼 시공간에 대한 인식으로 확대시켜, 그들 사이에 맺어진 관계적 의미를 감각의 영역에서 전달하고자 하였다. 메를로 퐁티가 대상의 지각이 일어나는 현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과거와 미래의 이중 지평의 연속으로 설명한 것처럼, 작품 속 인물들은 공간의 다층적 표현 안에서 신체적 경험의 한계를 넘어선다. 신체의 공간과 역사의 공간은 끊임없이 교차하며 단선적 시간에 대한 판단에 혼선을 일으킨다. 비로소 인간은 유한성과 불완전성의 장벽을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생명으로 거듭난다. 이번에 최경선 작업의 여정을 따라가보니 동양적 사고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시적 형태를 초월하여 대상과 그 주위의 허공마저 포괄하는 공간 의식은 의경(意境)의 또 다른 표현이다. 불교의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법(法)은 홀로 생기지 않으니, 경(境)에 의지해서 생겨난다"는 것처럼, 우리는 삶의 풍경 속에서만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 책 속에 박제된 이론이 아닌 실제 삶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 깨달음은 보다 흥겹고 생기 넘치는 것이어야 한다. 이번 『비오톱의 저녁』전에서 최경선은 비로소 순례자라는 고된 무게를 내려놓고 삶이라는 순례적 공간을 산책자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걸을 준비를 마친 듯하다. ■ 김문정


Vol.20170913d |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지난 16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강행복씨의 목판화 ‘UNTITLE‘ 아티스트 북 설치작업을 보았다.

전시된 아티스트 북은 읽는 책이 아니라 느끼는 책이었다.

추상적인 조형성이 면면으로 연결되어 그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책들을 모두 펼쳐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모두 단 한권씩 밖에 없는 오리지널 작품인데, 전시는 9월5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전시장에서 ‘나무화랑’ 김진하 관장과 화가 송용민씨를 만났다.














판화가 강행복씨의 아티스트북 설치전이 지난 9일부터 9월5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린다.




지난 11일 오후 4시경, 모처럼 인사동에 나갔다.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광화문미술행동, 100일간의 기록을 보기 위해서다.
이 전시는 이달 초하루에 막을 올렸으나, 내일 내일 미루다 여지 것 보지 못했다.
전시되는 사진이나 설치물은 함께 한 일이라 알고 있으나, 눈도장은 찍어야 했다.

얼마 전, 동자동 일에 너무 소홀해 일체의 오프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나발 분 것이 족쇄가 되어, 꼭 가야할 전시회마저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어디에는 가고 어디에는 안 간다면 욕먹기 십상이라, 얼굴에 철판 깔고 버틴 것이다.

사실 열림식 있는 날에는 사람 만나기는 좋아도 작품 보는 데는 별로다,
꼭 보아야 할 전시는 평소 시간 날 때 들리기로 했는데,

이날은 판화가 류연복씨가 전시장 지킴이라기에 찾아 나섰다.

 

전시장에는 류연복씨 외에도 김준권, 변정대섭, 김이하, 육인순씨 등 반가운 분들이 여럿 있었다.

좀 있으니 죽은 용태형 딸래미 김보영과 그의 친구 김진영씨도 나타났다.

숨겨 둔 막걸리를 얻어 마시며, 오랜만의 회포를 풀었던 것이다.





이 전시는 출판기념회를 겸해 열렸으나, 사실 광장이나 야외에서 전시되어야 했다.

그 많은 설치물과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현수막들을 어떻게 조그만 전시장에 다 펼칠 수 있겠는가.

광화문광장에 모두 펼쳐놓고, 그 날의 감회를 맛 볼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전시된 사진과 현수막들을 돌아보니, 지난겨울의 하루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끓어오르는 분노의 열정으로 추운 줄도 몰랐고, 역사의 순간순간들을 기록하느라 배고픈 줄도 몰랐다.

그 타오르는 촛불의 물결을 바라보며, 사실상 짜릿한 희열도 맛보았던 것이다.

올바른 세상을 향한 국민들의 외침으로 철옹성 같은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이제 적폐들이 하나하나 청산되고, 갑과 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시간이 되어 전시장 문을 걸어 잠그고, 다들 풍류사랑으로 몰려갔다.
그런데 어디를 가나 류연복씨는 인기 짱이다.

그토록 여성 팬이 많은 그가 홀 애비로 사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른 것일까? 아니면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지...
이 날도 풍류사랑에 가자마자 보영이 엄마로부터 뽀뽀세레를 받았다.
"주여! 왜 이리 세상이 불공평하나이까?"

돌아오는 길에 습관적으로 유목민에 들렸다.
뜻밖에도 정영신씨가 유목민술자리에 있었다.

나도 반가워  뽀뽀세례를 받고 싶었으나, 최혁배, 장경호, 공윤희, 배성일, 임경일씨 등

사내들 속에 끼어 있어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좀 있으니 옛날 유행가 가사가 생각나더라.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던, 모를 건 이내심사~






이 전시는 16일까지 이어지고,

오는 20()은 오후1시부터 8시까지는 광화문광장에서 노무현대통령 8주기 추모문화재 사전행사도 열린다.

노무현재단에서 주최하고 광화문미술행동에서 주관하는 시민과 함께하는 추모예술난장에 많은 분들의 참석을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광화문미술행동-100일간의 기록
100Days Document for Kwanghwamun Art Activity展
2017_0501 ▶ 2017_051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 +82.(0)2.722.7760



광장의 미술, 미술의 광장 - 보고 혹은 설명 ● 박근혜에 대해서 하야와 탄핵을 외치며 100일간 진행된 '광화문미술행동'의 프로젝트는 "OVER THE WALL"이란 붙박이 타이틀 아래 크게 세 개의 마당과, 15개의 작은 소주제로 14주 100여 일간 진행되었다. 「퇴진행동」본부와 「예술인 텐트촌」의 전체행보에 컨셉을 맞춤과 동시에, 미술행동이 자체적으로 지향한 방향성으로「차벽공략→차벽 넘어 광장으로→촛불광장」이란 진행과 정적 슬로건을 설정하고, 거기에 당시 긴급한 시국현안에 조응하는 시의적절한 실행 타이틀로 '바람찬 전시장'의 기획을 진행하며 촛불시민들과 소통했다. 그 15개의 슬로건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차벽공략 Project  

- 2016. 12. 24: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 2016. 12. 31: "촛불이 국민의 명령이다-君舟民水"  

- 2017. 01. 07: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 2017. 01. 14: "응답하라! 1987, 한 걸음 더 2017!"   


2. 차벽 넘어 광장으로 Project  

- 2017. 01. 21: "동녘이 밝아온다"  

- 2017. 01. 28: "촛불시민 만복래"-캠핑촌예술위와 설날 한마당  

- 2017. 02. 01: "광장목판화전"(궁핍현대미술광장)  

- 2017. 02. 04: "새로운 나라로! - 彈劾大吉 建陽多慶"  

- 2017. 02. 11: "대선? 탄핵이 먼저다!'   

- 2017. 02. 18: "黑雲萬天 天不見"   


3. 촛불광장 Project  

- 2017. 02. 25: "임을 위한 행진곡"  

- 2017. 03. 01: "민주주의 촛불공화국 만세!"  

- 2017. 03. 04: "역사, 광장민주주의"  

- 2017. 03. 11: "촛불시민 여러분 사랑 합니다"  

- 2017. 03. 14: "촛불 역사전"(궁핍현대미술광장)


이런 정규적인 메인프로젝트 사이로 국회의사당, 검찰, 세종시 문화부 등에서의 현장 작업과,

여타 궁핍미술광장 목판화전 등의 다양한 부정기적 프로젝트 참여 등이 있었다.




12월 24일에 시작해서 네 번 진행했던 『차벽공략 Project』를 1월 중순에 『차벽넘어 광장으로 Project』란 슬로건으로 바꾸면서, 광장 한쪽 끝인 미대사관 앞 차벽으로부터 광장 중앙으로 진입했다. 그동안 미술행동의 『차벽공략 Project』 작업이 촛불시민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특히 1월 14일의 박종철 열사 30주기를 기념하며 기획한 "응답하라! 1987, 한걸음 더 2017!" 은 현장미술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기획이란 판단이 들 정도로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2월 말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의 탄핵이 인용될 거라는 예측하에 광장 가운데서 시민들과의 '조우'와 '합류'가 우리들의 희망사항이라서 그렇기도 했다. 새로운 나라를 향한 중심 무대, 그 열린 광장에서 우리들의 미술행위도 촛불시민들과 함께 하기를 바래서이기도 했고. ● 우리는 미술행동의 작품을 설치하는 주 무대를 경찰차벽에서 세종대왕 동상 바로 뒤편의 8개의 조형물 기둥 사이에 'Open Air Gallery'란 이름으로 터 잡았다. 4회의 현장작업 진행하고 마침내 미술행동은 차벽을 넘어 광장에 이른 것이었다. 얼마 뒤 백기완 선생은 영어가 아닌 순우리말로 '바람찬 전시장'이란 이름을 붙여 주셨다. 시민들은 우리들을 더 환영했고, 또 시민들 스스로 미술행동의 현장프로젝트에 더 많이 참가했다. 또 그 결과물들을 더 가까이서 더 기꺼이 감상하고 향유했다. ● 그러나 2월로 예상되었던 탄핵인용은 다시 미뤄졌다. 광화문집회도 얼마나 진행될지 알 수가 없었다. 총 10개의 프로젝트를 소화한 뒤, 3월을 목전에 둔 2월 마지막 주부터 이제는 미술행동이 곧 촛불시민이고 또 광장의 한 주체라는 자부심에서 『촛불광장 Project』이라고 명명했다. 미술행동이 촛불시민들 한가운데에서 가족이 되었음을 알려도 될 만큼 상호 간 소통과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확신이 서서였다.





광장의 주체는 시민이다. 미술행동은 시민들이 제공한 무대에서 미술이란 특수한 분야를 실행한 또 다른 소수의 시민이었다. 민주주의란 보편성과 미술이란 특수성이 결합하고 융합하면서 불의한 권력과 공권력에 감성적인 '이미지투쟁'·합리적인 '상징투쟁'·그리고 역사적인 '기억투쟁'('상징투쟁,'과 '기억투쟁'이란 용어는 미술평론가 김준기선생의 글에서 차용)을 실행하면서, 동시에 촛불시민들과의 동지적 배려를 통해서 진심을 소통하는 겸손한 운동방향을 세웠고, 이는 미술행동의 기본적 태도이기도 했다. '진심과 전략'을 모토로 실행한 미술행동의 프로젝트는 참여작가 대부분이 쉰을 넘긴 나이였으나, 그럼에도 이 광장에서의 속도감 있는 프로젝트는 대부분에게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상당수 작가들은 젊은 시절 민중미술운동의 주역들이라 능동적으로 자기작업의 포지셔닝을 이해했지만, 시민운동으로 그 틀이 바뀐 지금의 방법은 과거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명적인 프로젝트 진행의 이런 기획/진행 방식은, 1980년대 시위 현장에서의 물리적 충돌을 염두에 둔 전투성과는 또 다르게 작용하는 현장 소통의 메카니즘으로 원작자-기획자-시민들 사이에서 이해의 폭이 넓게 기능했다. 특히 기획자의 의도대로 작가들의 원작이 아닌 디지털 출력물들을 이미지 소스(Source)로 활용함으로, 원작의 아우라(Aura)나 '팍투라'를 거세한 '팍토그라프'적 정보 중심의 대중적 소통방식이 유발하는 현장성은 파괴력이 있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정교하게 결과를 예측하고 준비를 하는 전시장 중심의 전시에 비한다면 상당 부분은 그 밀도감이 생경할 수밖에 없었지만, 예술로서의 작품 감상이 아닌 현장에서의 실제적 소통효과를 내야만 하는 목적에서 보면 기민하고 유격적인 작품제작/설치/향유의 방식으로선 좋은 전략이었다.





지난 100여 년간 근·현대 한국의 미술은 시민들과 겉돌았다. 현대미술이나 미학이 작가중심적인 것이고, 또 대부분의 미술이 미술관이나 갤러리 내부에서 벌어지는 제도적인 감상/거래의 대상이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시민들과의 일상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대중적 소통문법과 교감의 독법을 실행할 수 있는 기획의 실험과 시도가 별로 없어서 그렇기도 했다. 특정한 장소를 반영구적인 고체로 모뉴멘트化 하는 공공조형물들의 하드웨어적 속성과는 달리, 이렇듯 공공적 집회와 시위에서 기민한 순발력의 퍼포먼스로 진행되는, 게릴라식 즉흥·즉발적 미술행위의 유연한 개입과 탈주의 현장성은, 한마디로 미술과 대중의 살아있는 호흡을 이루기에는 적합한 것이었다 ● 작업실에서처럼 작업의 고립된 주체로서의 '작가'가 아니라, 열린 광장에서의 상호 의견과 작업프로세스와 정서를 나누는 한사람의 '시민'일 때도 여전히 미술은 그 표현과 전달력이 강력하다. 미적으로 발달된 기능을 가진 '작가시민'이 마음만 있는 '일반시민'을 미술이란 공감의 과정으로 불러들일 때, 바로 그때 그 조우에 의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신선함이 발생한다. 그 '발생'의 과정과 결과물이 특정한 공적 현장성과 정치적 이념성을 담보할 때, 우리는 살아있는 미술의 작용을 감동스럽게 나누고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 기실, 미술의 존재방식은 여러 가지다. 특정한 틀이 있을 수 없다. 작가의 생각·입장·태도도, 작업의 내용·형식·이념도, 관객의 관람과 수용하기에도 어떠한 룰이나 제도도 개입할 수 없다. 작업실에서 내밀한 자신의 세계를 소요하는 작가나 공공현장에서 사회적 가치를 부르짖는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미술의 개념이나 소통의 작동방식에도 당연히 틀이 없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현대미술은 제한된 제도의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거기에 집단적 논리가 자리 잡았고, 자본과 기득권이 생겨났고, 그 결과 미술은 부와 명예의 코스프레를 위한 장식품이자 기호품의 이미지로 박제화되었다. 유통제도권 내에서 그림값이란 숫자로 대체된 미술은 2016, 7년의 겨울 광장에선 없었다. 시민들의 선택이 빛나게 한 민주주의를, 미술이 또 향유하는 역동적인 운동장이었다. 미술은 그곳에서 작가명 없는 익명으로, 자본가가 아닌 시민들을 만나고·호흡하고·울고·웃으면서 미술의 근원적 기능을 누렸다.




광장은 용광로였다. 모든 이질적인 것들을 용해해서 공동체적 발언을 주조해 낸다. 지난 100일간 광장에선 미술도 그런 용광로의 역할을 했다. 작가와 기획자, 작가와 작가, 작가와 시민, 시민과 시민들이 담장을 헐고,용융하고, 융합했다. 미술도 미적 조건 없이 시민들과 수평적으로 만나고 행동했다. 작가들의 그림에 시민들은 낙서를 했고, 거기에 작가들은 또 그림으로 응답했다. 작가/시민, 주/객, 예술/낙서, 토로/독백, 함성/속삭임, 그림/글, 이미지/리터러티들이 그 경계를 넘어서 함께 어울리며 광장을 거대한 표현과 발언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 자유로웠던 것이다. 미술행동과 시민 사이에서 즉발적으로 발생하는 작용과 교감과 행동에 의해, 공동작업의 결과가 전혀 새롭게 생성되는 예측하지 못한 결과적 이미지의 우연한 발생은, 기존의 미술 관습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기도 했다. 굳이 미술이란 범주의 안팎 어느 지점에 있어도 상관없을 그런 열린 소통과 교호작용이었다. (다만 오랜 기간 고답적인 미술계와 그 구조 안에서 살아온 필자 같은 경우엔, 이 현상의 교감 내지는 정보전달작용의 싱싱함에 다소 낯선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 아직은 논리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체험이지만, 광장에선 미술의 어느 한 부분이 훨씬 건강하게 넓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감지된다. 일찍이 미술에서 시민이 미술가들과, 또 미술가들이 대중들과 이렇게 수평적으로 만난 적이 있었던가. 대부분의 관객 참여형 해프닝·이벤트·퍼포먼스도 기획자의 로드맵이나, 작가의 아우라에 의해서 진행된다. 그런데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의 시민들이, 작가들과 함께, 작품행위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될 수 있었던 현상은 2016~7년의 여기 광화문 광장에서만 있었다. 기존 미술계 시스템의 바탕에서 자본, 인맥, 학맥, 기타 제도화된 미술의 한계에서 일탈하는 거대한 열림의, 또 다른 미술의 개념과 프로세스와 장르적가능성을 보았다면 내가 지나친 걸까. ●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흥분해 있다. 기존의 제도와 양식과 개념의 틀로부터 일탈·이탈·돌파를 시도하는 미술은 얼마나 짜릿한 것인가, 라는 생각에 말이다.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그 광장에 빠지지 않고 내가(그리고 우리가)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에, 거기서 능동적으로 시민들과 미술로 함께 했다는 사실에 난 얼마나 뿌듯해하는가. 감동이었다. 촛불시민이자 미술인으로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추신-에피소드 1 ● 황당한 일이었다. 분명 정부종합청사를 가로막은 경찰차벽 앞에서 '광화문미술행동'이 시민들과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을 붙이기로 했는데, 그날따라 경찰버스가 나오지 않은 것. 미술행동의 첫 번째 '차벽공략' 프로젝트인데 그 대상인 경찰차벽이 없다니 닥친 현장에서의 그 난감함이란. 그 자리에 있던 미술행동 대장인 김준권 형과 부대장인 류연복 형, 총무 김남선씨와 나, 그리고 몇 명의 멤버들 모두 허탈했다. 리어카에 가득 실어온 각종 그리기 도구들이 무색했고, 그 리어카 한쪽 귀퉁이에서 하릴없이 혼자서 펄럭이는 '광화문미술행동' 깃발이 야속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적당한 한기와 바람이 우리들의 눈에서 초점을 흐리게 했다. 준권 형이 나를 돌아보며 묻는다. "어떡하지?" 묻는 것보다는 차라리 탄식이다. "다른 자리를 찾죠, 뭐. 여기만 의미 있는 장소는 아닐 테니."라고 대답하는데, 연복 형이 끊고 들어온다. "아무 차벽이나 골라서 하자고. 다 광화문인데. 괜찮아." 모두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오후 1시의 광장엔 아직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모두의 눈이 동시에 모아진 곳은 미대사관 앞에 장기적으로 정박(?) 중인 굳건한 경찰차벽이었다. 바로 앞 세종대왕 동상 뒤편의 광장도 넓게 비어있다. '퇴진행동'의 메인 무대로 치자면 맨 뒤쪽이니, 행사가 시작되어도 다른 곳에 비해선 인구밀도가 다소 낮은 곳이라 작업조건도 좋은 편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기 미 대사관 앞으로 갑시다. 저기 경찰차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뿌릴 내리고 있을 터이니"라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준권 형과 연복 형은 김총무에게 리어카를 끌게 하곤 벌써 세종대왕 동상 쪽으로 가고 있다. ● 불과 이삼일 전에 급하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우리들은 아직 어떤 계획도 없었다. 준비고 뭐고 게릴라 특유의 현장 임기응변으로 첫날 작업을 하기로 했다. 준권형과 김총무는 부랴부랴 청계천과 여기저기에서 사다리·실사출력천·물감·크레용·기타 물품들을 준비했고, 웹자보를 이은걸씨가 디자인했다. 난 2주쯤 뒤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로 한 터라 지금은 그저 현장에서 몸으로 할 일밖엔 없었으니, 나뿐 아니라 모두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종대왕 동상 뒤편에 이르자 바로 출력 롤지를 대략 15m씩 너덧 개를 바닥에 테이프로 고정하며 낙서를 시작했다. 제발 많은 시민들이 동참해서 거기에 쓰고, 낙서하고, 그리고, 밟고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 이 즉흥적인 첫 번째 해프닝은 성공적이었다. 우리들과 작가 몇 명이 바닥에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면서, 호기심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하는 시민 관객들에게 동참을 호소하자 곧바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깔깔거리면서 낙서를 한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는 서예가 여태명 선생의 온몸을 사용하는 큰 붓질로 서예퍼포먼스(김준권 형이 미리 기획한 프로그램)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시민들이 점점 모여들어서 그 현장을 둘러싸서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또 낙서에 동참한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민주주의 만세!" 등과 같은 낙서가 대세였다. ●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광화문미술행동의 첫 번째 '차벽공략 프로젝트'는. 마침 화가 송용민씨가 붙박이로 붙어서 현장관리를 한다. 자발적이고 자동적이고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멤버들의 참여 시스템은 그렇게 자연스레 파르티잔의 게릴라 전술처럼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구축되어 가고 있었다. 12월 31일도 마찬가지였다. 다이나믹한 이미지들이 수십 미터의 대형 천위로 집적되었다. 촛불시민들의 박근혜정권에 대한 심판과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은 컸다. 그것을 차벽에 붙일 때(경찰들과 실랑이가 있었고, 또 12월 31일의 작업 중 가장 큰 차벽작업은 분실되기도 했다) 뿌듯한 마음이 일었다. 미술행동의 '차벽공략'이 시작된 순간이었으니까.




추신-에피소드 2 ● 해가 바뀐 2017년 1월 7일. 새해 첫 프로젝트로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衆志動天"이란 타이틀을 실행했다. 새해 초부터 준권형과 전화로 컨셉, 타이틀, 방법 등에 관한 많은 협의를 했으나 당장에 어떤 작가도 1~2주 만에 신작을 준비할 수는 없는 일이라, 80년대 오윤·이철수·홍선웅·이상호의 목판화와 류연복의 근작·정찬민의 근작·이윤엽의 백남기 농민 등의 목판화를 대형 실사출력한 사이로 이윤엽의 파편화시킨 이미지들을 배치하고, 거기에다가 시민들이 참여하고 낙서할 빈 여백을 만들었다. 시민들과 작가들의 경계가 없어지는 작업이다. ● 이날도 또 재미있는 사건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지난주까지 차벽에 작업을 부착할 때 우리를 바라만 보던 경찰이 이날은 부착을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찰과 실갱이를 하던 우리는 긴 그림은 들고 서서 전시를 하고, 3m높이의 그림은 차벽 앞 도로바닥에 작품을 설치했다. 벽화가 바닥화로 바뀐 것. 차벽에 그림걸기라는 일종의 데몬스트레이션에, 또 즉흥적인 바닥화로서의 데몬스트레이션을 추가한 행위였다. 많은 시민들이 동참해서 그림을 함께 들어주기도 했고, 또 정찬민의 '세월호 미귀환자 초상'에는 촛불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밤 7~8시경 경찰들이 다른 곳으로 위치 이동한 틈을 타서 우리는 급하게 이 그림들을 차벽에 부착했다. 많은 시민들이 박수를 치고 격려의 함성을 우리에게 보내며 부착을 도와줬다. 그러다가 한 10분쯤 뒤에 보니 그림 한 점이 위치가 바뀌어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난 위치를 바로잡으려 까치발로 그림을 떼서 손에 든 채로 돌아서는데 누군가 갑자기 내 멱살을 잡는 것 아닌가. 시민들 대여섯 명이 우루루 몰려와서 나를 빙 둘러싸고는 포박하듯 내 양팔을 붙잡고 "당신, 누구야? 왜 그림을 떼는 거요?, 당신 경찰이야? 아니면 박사모야?"라며 소리쳤다. ● 이런 황당한 일이... 바로 옆에서 울리는 메인 무대의 거대한 마이크 소리 때문에 "내가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입니다"라고 나를 밝히는 내 목소리는 그들에게 들리지 않아서, 1분 정도를 난 멱살이 잡힌 채로 그들에게 '박사모'로 오인되어 혼쭐(?)이 났다. 청와대로 행진하던 시민들이 차벽의 그림을 내가 폐기하는 줄 오해하고 그런 것이었다. 그림을 떼지 않겠다는 내 몸짓이 그들에게 입수된 다음에 비로소 내 멱살은 풀렸다. 봉변(?)을 당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다행히 민주시민들이라 폭력은 당연히 없었던 터, 시민들은 이 그림을 자신들의 마음과 동일한 것으로 여겼기에 나를 제어한 것이었으니까. 언제 미술이 대중들에게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라는 흐뭇함과 함께 그간의 시민들과 유리된 채로 오로지 자본적 가치로만 존재해 온 미술에 대해서 약간의 자괴감도 동반되긴 했다. ● 확실히 광장에서는 작가가 아니라 시민과 대중이 주체다. 생각해보니 광화문미술행동을 운영한 건 작가들이지만,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 건 촛불시민들이었다. 자본을 가진 재벌이 아니라, 촛불시민들이 '메쎄나'였다. 십시일반 모금함에 작은 돈을 넣어주고, 작은 판화전에서 작품을 사주고, 일회성 경매에서 판화나 글씨를 응찰해주고, 또 어떤 분들은 따로 봉투를 전해 주고... 바로 그런 시민들이 마련한 운동장에서 우리는 함께 뒹굴고 놀았던 것이었다. 재미있게 놀아서 이런 사랑도 받았다. 불의하고 불법적이고 무능한 정치권력 앞에서 시민들은 자동적으로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한 사회에서 참여하는 시민들의 윤리적·정치적·사회적 의식의 성숙도가 이리도 높을 수 있는지를 1980년의 광주에서 전해들은 이후 처음으로 느꼈다. 바로 그 역사적 현장에 내가 있었다. 광화문미술행동도 있었다. 시민이자, 작가이자, 기획자로 바로 거기에 우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승리했다. 정치적 승리이자 미술의 승리이기도 하다. 이런 숭고함과 넉넉한 기쁨과 영광이 어디 있으랴. 이런 미술행동의 동기를 제공해 주신 촛불시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촛불시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 김진하


『광화문미술행동-100일간의 기록』책 출간  

김준권, 김진하 엮음  

ISBN: 978-89-966435-9-3  

나무아트 刊 / 100페이지 / 24*19cm / 800부 한정판 / 값 15.000원


Vol.20170504d | 광화문미술행동-100일간의 기록展




지난 일요일 오후6시 무렵, 인사동에 나갔다.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이흥덕씨 ‘지옥철’을 보고, ‘서울아트가이드’4월호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꾸물대다 허탕 쳤다. 도착하니 오후 여섯시가 지나버렸는데, 전시는 일정이 남았으나 책이 급했다.
인사동인근 갤러리의 전시일정을 스캔하여 월초마다 알려왔기에, 내일 다시 나와야 했다.

이틀에 걸쳐 두 차례나 인사동 거리를 돌았지만, 왠지 낯설어 보였다.
사람도 낯설지만, 내 기억의 풍경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전시장에서 본 이흥덕씨 드로잉 ‘지옥철’에서도 인사동이 연상되었다.
그의 그림들은 인간의 은폐된 폭력성에 의한 살벌한 사회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인성의 황폐함을 느끼게 하는 현대판 지옥도였다.

마치 이야기 하듯 풀어가는 그림들은 이기적인 인간 군상을 풍자했다.
인간의 불안의식과 저항성이 화면 곳곳에 꿈틀거렸다.
돈과 물질문명에 의해 망가진 인간성과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쓴 전시서문 한 구절을 옮긴다.


“이흥덕의 시선은 철저하게 관찰자로서의 전지적 시점이다. 또한 시간성은 늘 현재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현실, 거기에 반응하는 심리도상인 형상들은 즉물적이다.
(중략)
그 화면에는 작가의 주관적 감정의 축소와 객관적 심리(불안)의 증폭이 반영하는
우리시대 평범한 소시민들의 일상적 초상이자 전형성이 오롯이 드러난다.”









‘나무화랑’기획전 이흥덕의 ‘지옥철’은 4월28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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