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목판화 발굴 프로젝트1 無有等等


조진호展 / CHOJINHO / 趙眞湖 / printing
2018_0905 ▶︎ 2018_0921



조진호_오월시 동인지 외 조진호의 목판화가 표지화에 실린 80년대 시집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무유등등無有等等1) - 한과 해원의 목판화 ● 난 지금 판화시집을 보고 있다. 五月詩2) 판화집.『가슴마다 꽃으로 피어있어라』(1983, 한마당)와『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1984, 청사) 두 권이다. 전자는 '오월시' 동인들의 시와 조진호와 김경주의 목판삽화가 어우러진 것이고, 후자는 조진호의 목판화가 표지에 디자인된 것이다. 1980년 광주항쟁에 대한 시인들의 비애와 탄식, 분노와 저항 등으로 엮어진 이 시집에 조진호의 목판화가 어우러지며 억울하게 이승을 떠난 이들에게 한바탕 살풀이와 회심곡을 올리는 진혼제가 된 시집이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오래된, 그러나 생생한 80년대의 청년기 기억과 함께 이 시와 판화는 그렇게 다시 내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만큼 80년 광주는 한국 현대사에서 불의한 힘에 의해 죽임을 당한 질곡이자, 이를 극복한 희망의 상징이다. 조진호의 목판화도 바로 그 질곡과 희망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정서로 기능한 작품이다. ● 조진호는 80년대 내내 '광주목판화 연구회'와 '광주전남 미술인 공동체(광미공/공동대표 조진호 홍성담)'을 중심으로 미술운동을 펼친 작가이자 미술운동가다. 목판화를 중점적으로 발표하며 활동했다. 70년대 후반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이후 80년 광주를 겪으면서 제작한 첫 작품인 80년 「오월의 소리」부터 10여 년간 제작한 목판화는 대략 백수십 여 점에 이른다. 그동안 광주를 중심으로만 활동했기에 그의 이 작품들은 타 지역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묻힌 것에 반비례할 정도의 판화사적인 가치가 있음은 그의 활동상과 작품 모두가 증명해준다. 특히 당시 민미협을 정점으로 진행되었던 중앙 집권적 미술운동의 궤에서 보더라도, 광주미술의 독자적인 지역 활동과 결과는 80년대 미술의 중요한 축이었다. 바로 그 운동의 궤적에서 작가 조진호의 목판화와 여타의 활동도 그런 광주미술의 한 축을 형성했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로 인해 그의 목판화가 80년대와 한국현대목판화사에서 그가 활동한 만큼의 자리를 잡아야 함은 타당하다. ● 전체적으로 조진호 목판화의 궤와 특성을 보면 시기적으로, 형식적으로, 또 내용적으로 크게 4분화가 된다. 일차적으로는 1980년 목판화를 시작할 때부터 1982년까지의 형식적 모색과 실험기의 작업이 있다. 80년 광주를 소재로 한 것부터 습작기 특유의 각법과 작은 목판에 어울리는 판법이 주축이 되는 시기다. 다색과 단색을 아우르며 일러스트적인 편화와 밑그림에 충실한 각법 등으로 비교적 초보 단계에서의 칼맛과 프린팅의 깔끔한 어울림을 선사한다. 중년 남자의 얼굴을 클로즈업시킨 처녀작 「무제」에서는 제작년도인 1980이란 숫자를 수인번호 명찰처럼 가슴에 새겼다. 중의적 메시지다. 80년 5월 이후 이 땅의 살아 남은 모든 성인 남자는 죄수라는 듯이. 형식과 표현언어에 대한 모색의 바탕에서 이 시기 작업들은 당대 한국 사회에 대한 심리와 비판이 동시에 반영되는 작업들이다.


조진호_오월의 소리 1980 Ⅱ_리놀륨판화_24×35cm_1980


조진호_오월시판화_리놀륨판화_22.5×31cm_1983

이어서 '오월시 판화집'으로 타 장르인 시인들과 연대하고 출판미디어를 활용한 1983~1984년의 표현주의적 수법이 독특한 삽화로 기능한 시기다. 「오월시 판화」 연작과 함께 「잡풀베기」 연작도 이런 스타일에 해당된다. 공포, 불안, 분노, 그리고 남도 민중의 거칠고 뜨거운 생명성, 소박한 이웃에의 애정과 서정성… 등이 함께 게재된 시인들의 시어들과 함께 직접적인 판각법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당시 작가는 자기 작품만이 아닌 시라는 타 장르와의 어울림에 대한 형식을 찾느라 꽤나 고민이 많았던 듯싶다. 판화가 김경주와 함께 오월시 동인들의 시를 엮은 판화시집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있어라』의 서문에서, 시와 만났을 때의 목판화에 대해서 쓴 다음의 텍스트를 보면, 이런 그의 고민이 잘 드러난다. ● "시를 주제로 한 판화작업을 나는 새로운 감각으로 반갑게 시작하였다. 언어로 표현되는 시의 관념이 나의 관념 속에서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에로점이 많이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즐거움도 있었다. 구체적인 주제가 설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언어를 하나의 독립된 형상으로 작화시키는 것과, 그 형상이 판화의 독특한 표현 기법 과정을 거쳐 화면에 나타났을 때 시의 본래 뜻이 왜곡되지 않나 하는 의문점이 있긴 하다. 나의 작업과정이 시인의 시 쓰는 과정과 같지 않을진대 양자의 합일점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현실의 아픔을 찾아 따사로운 어머니의 손길로 어루만지는 듯한 시의 느낌을 미래에 대한 희망 속에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조진호_고향, 흙-2_목판화_36×49.5cm_1985


온전히 자신만의 형상과 목판언어로 풀어내는 개인적 작품과, 타인의 시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져야 할 어울림에 대해서, 그 형상이나 어법의 차이점을 간파한 것이었다. 이 시기 조진호의 목판화의 특징은 ①대상인 사람의 형태의 왜곡과 해체, ②一刀一劃의 칼질로 인한 강력한 회화적(목판화적) 표현성, ③시적 분위기의 회화적 형상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특히 ②항은 목판화만이 가질 수 있는 칼맛에 대한 회화적 연역이란 점에서 시의하는 바가 크다. 당시 상당부분의 작가들이 오윤의 판법을 전형화한 형태중심의 정교한 선각線刻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 반해, 자유분방하고도 즉흥적인 칼의 즉발적 운용으로 나이브한 원시적 표현성을 보여준다. 덜 다듬어진 상태에서 작가 몸의 궤적이 그대로 형상에 반영되는 칼질은 면面판화의 액티브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그리고 세 번째는 1985년 이후부터 90년까지 전개되는 재현적 양식으로 풀어낸, 이웃과 서민들의 삶과 향토적 정서가 단정하게 드러난 작업들이다. 꼼꼼한 사실적 밑그림, 주로 세모칼의 운용에 의한 섬세한 판각, 오랜 시간 공들인 묘사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주로 주변부 시골 노인이나, 어머니, 고향 등의 소재가 주가 된다. 특히 80년에 가족을 잃은 한을 간직한 듯한 모습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그 중심을 이룬다. ● 마지막으로 86년부터 90년까지의 호방하고도 굵은 필획이 선각으로 두드러지는 풍경이 있다. 이른바 '무유등등' 연작이다. 남도의 한을 넉넉하게 풀어주고 해원시켜주는 어머니 품과 같은 무등산의 장엄함과 생명성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시선이 녹아 있는 장면들이다. 또한 80년 광주를 회고하면서도 생명에 대한 능동적인 여유가 느껴지는 90년대의 이 대작 목판화에서의 서정성은 자기 양식화에 성공한, 무르익은 목판화 기량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편 이와는 또다르게 '광주항쟁 10주기 거리미술제'에 츨품한 「학살도」와 「대학살도」의 대하서사적 역사화의 대형 스케일과 다양하게 구사한 기법은 목판화가로서 조진호의 절정기를 반증하기에 충분했다. 무유등등의 담담한 서정성의 배경에 치열한 80년의 한과 역사적 기억과 인식이 여전히 그에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작이었다. 그러니까 90년도의 「무유등등」과 「학살도」연작은 조진호의 목판화양식이 완성되었음을 증명하는 실례라 하겠다.



조진호_학살도-광주민중항쟁 10주기 거리미술제_김남주 시인의 '학살'을 판각_목판화_75×150cm_1990

조진호_대학살도-광주민중항쟁 10주기 거리미술제_김남주 시인의 '학살'을 판각_목판화_30×127cm_1990


그러나 바로 그 시기에 조진호는 목판화를 멈췄다. 목판화를 중단하고 또 다른 맛의 회화작업으로 작업의 주 매체를 전환한 것이다. 작업 미디어와 내용을 바꾸는 것은 머무르지 못하는 작가의 몸과 의식과 본능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한편 광주목판화의 흐름에서 보자면 아쉬운 일이기도 했다. 90년대 들어 시대상과 미술문화의 흐름이 바뀌고,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5공 청문회를 통한 특별법으로 전두환 세력의 응징(너무나 미약한 것이긴 하지만)이 있었기에 80년대식의 목판화운동은 80년대식의 지나간 미디어라는 인식이 보편화한 문화적 환경 때문이기도 할 것이었다.(이때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목판화의 활동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던 시기였다.) 아무튼 이 기점에서 조진호의 목판화는 80년대와 함께 지나간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그것은 안타깝지만 한편 자연스런 것이기도 했다.


조진호_무유등등_목판화_18×48cm_1990


글을 쓰다가 보니 조진호의 80년대 여러 형식의 목판작업 궤적을 가로지르면서도 이를 동시에 관통하고 꿸 수 있는 수사가 떠오른다. 80년대 군사독재의 불의한 힘에 대한 격렬하되 "따뜻한 저항"이 그것이다. 조진호는 그와 함께한 동료, 이웃, 서민들 삶에서의 비애까지를 따뜻하게 아우르는 시선으로 비판적 형상성을 견인했다. 광주를 모티프로 비극적 서사의 바탕에서, 좀 더 애잔한 시선으로 이웃에의 애정을 덧붙였다는 것. 소박한 태도다. 부드러운 감성의 발현이기도 하다. 저항적 운동가였지만 운동의 근원인 사람과 세계에 대한 여린 공감의 시선을 가져서다. 미술과 운동 이전, 사람 냄새 나는 부드러운 성격과 감성을 지녀서 그런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진호의 80년대 목판화가 2018년에 발굴되고 체계적으로 기록되어야 할 필요성은 거기에 있다. 80년대 목판화사에서 지역미술운동의 활동, 작품으로 드러나는 조형적 독자성, 그리고 세계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 작가의 심성과 통일된 조형적 방법이 주제로 연결되는 진정성의 과정은 관객의 소통에의 집중을 강하게 만든다. 저항과 투쟁이 필요할 땐 그리 실천하고, 그 저항의 이면에선 恨을 넘어선 해원解寃의 넉넉함으로 서로 위무하고 보듬어주는 심성의 발현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은 무유등등의 무등산과 닮았다. 저항으로 날이 서있으되, 평화를 위한 보편적 세계정신에 이르는 광주시민의 의식처럼, 성숙한 품성이자 너비다. 그 근저에 무등산과 어머니를 같은 품으로 여기는 믿음이 있다. ● 조진호의 목판화는 현실적으로 광주의 자연과 문화와 정치적 기질을 소탈하게 담아낸 함지박이다. 엎어놓으면 무유등등한 형태로 무등산의 완만한 능선을 닮았다. 무기교의 소박한 칼질과 흔적은 풍상을 겪은 할머니의 손등이나 어머니의 눈빛과 비슷하다. 거기에 남도의 손때와 정서와 상흔과 삶의 힘이 담겨있다. 기록이자 기억이고, 내면이자 일상이기도 한 그런 힘이 조진호다움으로 그의 80년대 목판화에 질박하게 남아있다. 오로지 결과적인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 소탈한 정서가 귀하고 반갑다. 나무아트의 '한국현대목판화 발굴 프로젝트'에 조진호 작가를 소환한 건 바로 그런 작품의 제작과 소통과정에서의 미감이 증명하는 진실성을 보아서다. ■ 김진하


* 각주1) 無有等等 : 반야심경 '무등등(無等等)'에서 어원을 찾는다. '부처님은 세간의 모든 중생과 같지 않으므로 무등한 것이요', '무등등'은 '부처님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서 견줄 이가 없다'는 뜻으로 '무유등등'은 부처 아래 있는 모든 만인은 평등하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어원의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鎭山)이자 모산(母山)으로 백제 때는 '무당산'으로 고려 때는 '서석산'으로 조선시대에는 '무등산'이라 불리웠다. 무등산은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 이기도 하고, 그 반대로 '너나 나나 같은 산' 이라는 평등의 의미도 담고 있다. '無有等等'과 '無等山'은 오랜 세월 속에 눅눅하게 녹아 들어 이제는 광주의 정신이자 상징이 되었다. - 광주시립미술관 '갤러리 GMA' 개관展 설명 중에서.2) 五月詩 : 21cm-23cm. 75면-300면 가량 등으로 판형과 면수가 다양하게 발행되었다. 1981년 7월에 1집이 나온 이후, 1985년 5월까지 총 5권이 발행되었다. 시 동인지인 이 잡지는 시를 주로 실었으며 3집부터는 동인의 평론과 산문 등도 함께 실었다. 각 권은『이 땅에 태어나서』(1집), 『그 산 그 하늘이 그립거든』(2집),『땅들아 하늘아 많은 사람아』(3집),『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4집),『5월』(5집) 등으로 제목이 따로 붙어 있다. 처음에는 김진경, 박상태(박몽구), 나종영, 이영진, 박주관, 곽재구가 동인으로 참여하여 시 작품을 주로 발표하였으며, 이후에는 윤재철, 최두석, 나해철, 고광헌이 합류하여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였다.


Vol.20180905c | 조진호展 / CHOJINHO / 趙眞湖 / printing


'인사동 정보 > 인사동 전시가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시안내] 문승현展 "서정"  (0) 2018.09.23
김승희展 "Window II"  (0) 2018.09.21
김상표展 "NIRVANA"  (0) 2018.09.14
[전시안내] 문 호展 "Sweet Peace"  (0) 2018.09.13
[전시안내] Jeppe Hein展  (0) 2018.09.12




지난 8일은 인사동사람들 만나 술 한 잔하는 셋째 수요일이었다.
죽기 전에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만나자고 나발 분지가 제법 되었건만,
다들 그리운 사람이 없는지, 사는 게 힘든지 잘 나오지 않는다.






그 날은 오후2시부터 인사동 나오라는 장경호씨 전화를 받았다.
일찍부터 마시면 늦게까지 버티기 힘들어 겁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난 지 오래된 최명철씨와 함께 ‘툇마루’에 있다는데...






나오다 동자동 입구에 자리 잡은 유정희씨 일당에게 덜미 잡혔다.
“날씨도 더운데, 막걸리 한 잔 해요.”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마시다보니 30분이 후딱 지나버렸다.






바삐 갔더니, 그 때까지 장경호씨와 최명철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명철씨는 전국구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일 없이 바쁜 양반인데, 모처럼 인사동에 나온 것이다.
툇마루 막걸리는 맛은 있으나 느즈막에 달아올라 힘들게 하는 술이지만, 찔끔 찔끔 받아 마셨다.






그런데, 인사동에서 30여 년 동안 양념 행상을 해 온 권정선씨가 ‘툇마루’ 이층에 올라 온 것이다.
알고 보니 ‘툇마루’의 된장비빔밥에 들어가는 참기름을 권씨 할매가 댄다고 했다.
‘툇마루’를 단골로 잡고 있는 권씨 할매가 갑자기 존경스러워 보였다.
뵐 때마다 옛날 같지 않은 야박한 인사동이라 사는 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비빔밥 한 그릇 먹고 ‘유목민’으로 가다 거리에서 뜻밖의 까딱이를 만난 것이다.
이 친구 역시 인사동에서 만난 지가 30년 넘었지만,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인사동 물귀신이다.
그것도 날씨가 무섭도록 춥거나 더울 때만 나타난다.
보이지 않으면 혹시 죽지나 않았는지 걱정하는데, 그 걱정을 비웃듯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이 인간 보면 사람 목숨이 참 질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숙자들이 몰리는 서울역 부근으로 가면 밥이라도 쉽게 얻어먹을 수 있지만,
그가 즐겨 다니는 곳은 인사동이나 미술관이 몰린 곳이라 밥은커녕 사람들의 눈총만 받는다. 



 


비록 노숙하며 살아가는 걸승이지만, 내공은 보통이 아니다.
저승 떠난 화가 강용대씨가 그를 일찍부터 알아채어 유일하게 벗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는 한 때 해인사 중이었지만, 무슨 사연인지 인사동을 헤맨 지 숱한 세월이 지났다.
인사동에서는 스님들이 그의 밥이다.
얼마 전에는 조계사 경내에서 보살 한 분이 거지 행색을 푸대접 했다가 혼쭐나는 모습을 최명철씨가 봤단다.






그는 중답게 술은 마시지 않는다.
녹차는 좋아할 정도가 아니라 그의 중독자에 가깝다.
거지 주제에 따뜻한 물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 비결은 나도 모른다.
녹차 문제로 종로경찰서에 들락거린 적도 두 차례나 있는데, 그 때마다 고인이 된 ‘귀천’ 목여사가 빼 내 주었다.






아무리 꼬드겨도 그의 법명은 물론 신상에 관한 일체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무슨 의문이 그리 많은지 항상 고개를 까닥거리고 다녀 그냥 까딱이로 부른다.
탁발 또한 아무한테나 손 벌리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만 강탈하듯 뺏는다. 
푼돈이지만, 만나면 항상 갈취 당했는데, 요즘은 내 사는 꼴을 짐작했는지 돈 달라는 소리를 일체하지 않는다.






너무 반가워 담배 한 대 권했더니, “주제에 담배는 무슨 담배냐”며 갑 채 빼앗아 자기만 피운다.

오히려 내가 담배를 구걸하도록 만들었다. 좌우지간 보통 내공이 아닌 의문의 걸승이다.






이 날은 오래된 인사동 꼴통들을 자주 만났다.
돌 위에 자리 잡은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문호형님 아입니꺼?”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올려다보다 지산이었다. 이 인간 이야기 꺼내려면 날 샐 것 같아 그만해야겠다.






그 날은 막사발로 통하는 김용문씨를 비롯한 서울공고 동문들의 단체전이 있다기에 ‘나무화랑’에 올라갔다.
석심 미술전이라 이름 붙였는데, 돌에는 마음이 없으니 보나마나다.
김용문씨를 내세운 아마추어 동문들 전시였는데, 아는 분이라고는 김용문씨와 김진하관장 뿐이었다.






날씨도 내 마음처럼 왔다 갔다 했다.
비오다 더웠다 들랑날랑 하니 사람들도 많았다 적었다 날씨 따라 갔다.
‘유목민’에 자리 잡았으나 시간이 이른지 손님도 없었다.
오가며 만난 아는 사람이라고는 이수호선생과 김명성, 공윤희, 유진오, 전활철, 박혜영씨가 전부다.






그나저나 술이 취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다들 늦게나오는데, 나오기도 전에 내가 취해버렸으니 어쩌랴!
다음부터는 오후 여섯시 이전에는 절대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장경호, 유진오씨를 남겨두고 삼십육계 줄행랑 쳤다.






아! 살아남기 힘들다.

제발 셋째 수요일을 기억해다오.



사진, 글 / 조문호





























좌로부터 박불똥,김재홍, 김영진작가



김영진, 김재홍, 박불똥씨가 참여하는 Oh! Real?展이 지난 20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개막되었다.



박불똥작



1982년 미대 회화과 복학생이었던 김영진, 김재홍, 박불똥 세 사람은 개인적 사정과

시대현실에 대한 반항과 비판 등으로 스스로를 미술교육이란 제도 바깥으로 물러났다.

자기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자 ‘낙동강 오리알’ 같은 외진 작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36년의 긴 세월이 흐른 오늘, 청년기의 각오를 되새김질하는 작업을 한데 모아 삼인 전을 마련하였다.
전시는 오는 7월2일까지 열린다.



김재홍작



개막식에는 참여작가를 비롯하여 김진하 관장, 장경호, 최석태, 유근오, 최명철, 신상철, 나종희, 정영신,

손기환, 홍성미, 김보중, 김경지, 조신호, 박세라, 이재민, 정재안, 김이하. 곽대원, 김태서, 김정대씨 등

많은 지인들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김영진작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6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칡뫼 김구의 “아프다!?“전이 개막되었다.






그 날은 하던 일을 마무리하려다 개막시간을 한 시간이나 넘겨버렸다.
다들 뒤풀이 장소로 옮겨 버렸고, 작가와 낯선 몇몇 분만 남아 있었는데,
전시장이 한산해 작품은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전시된 작품에는 분단의 상징 같은 철조망이 자주 등장하였고,
상품에나 붙어야 할 바코드도 여기저기 그려져 있었다.
갈라진 땅에 수술용 가위와 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분단의 상처와 더불어 욕망에 의한 인간성상실을 말하는 듯 했다.





철조망이 툇줄로 연결된 ‘분단둥이의 탄생’이나
쿠르베의 작품인 ‘세계의 기원’을 패러디한 ‘세계의 상처’란 야한 그림도 있었고,
고사 지낼 때나 등장하는 돼지머리 설치물도 있었다.






휴전선과 인접한 김포가 고향인 작가로서는 분단에 대한 앙금이 남다를 것이다.
어릴 적부터 보아 온 철조망, 즉 분단에 대한 한이 곳곳에 묻어나고 있었다,
서로 편 가르는 단절이나 소통부제가 주는 현실이 아픈 기억을 촉발시켰을지 모른다.
마치, 분단된 사실을 잊고 사는 오늘의 현실을 꾸짖는 듯 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내가 처한 현실, 그 삶의 진면목은 과연 뭘까?
늘 묻던 질문입니다.(중략) 저는 작가 자신도 잘 모르는 공허한 그림을 반대합니다.
우연히 만들어진 이미지에 목매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라는
작업노트에 적힌 글에서 분단된 나라에서 사는 작가로서의 아픔이 베인,
문제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뒤풀이 장소인 ‘유목민’으로 갔더니, 축하객들이 너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었다.
정복수, 김진하, 장경호, 이명희, 임경일, 이만주, 김아란, 김행수,
김발랜티노, 하형우, 노광래, 김이하, 강경석, 전강호, 김수길,
유진오. 최명철, 김재홍, 손기환, 이수호, 김명성, 이인섭,
이정황, 장종수, 편근희씨 등 많은 분들이 술잔을 기울였다.





류연복씨를 비롯한 이인철, 박문종, 김현숙씨 등 몇몇은 인근의 ‘사랑채’에 자리하고 있었다.
작가의 인간적 친화력을 엿볼 수 있는 뒤풀이 현장으로, 양쪽을 오가느라 혼자 바쁜 걸음 쳤다.






이 전시는 6월19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오는 6월5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려

[서울문화투데이] 2018년 05월 25일 (금) 18:23:54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작품 앞에 선 이인철 작가. ⓒ조문호


이인철의 ‘in the paradise’전이 23일부터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 분단국으로 남은 전쟁위기, 그리고 인간성 상실로 치닫는 기계화의 야만성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며 비판하고 있다.


작품들은 3D 프로그램과 2D 포토샵으로 그린 도형적 이미지들인데, 전시장에 걸린 다양한 형상의 작품들을 돌아보면 마치 과학 교재실에 들어 온 듯 흥미롭지만 경직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자세히 드려다 보면,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로켓이 김밥 잘리듯 잘려있고, 스텔스기에 치즈를 발라 놓았다. 인조 잔디밭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인간이 있는가하면, 힘없이 날아가는 탄두는 어디 떨어질지 불안하다.



▲이인철, 핫바 171,1X96,25cm, 2018



불행한 세상으로 치닫는 현실을 파라다이스에 비유하며 풍자하고 있으나, 그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작가의 이상 또한 작품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당하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그 구조적 모순을 공격한다는 자체도 흥미롭다.


작가 이인철은 인간성을 상실한 야만성의 현실을 비판하는 가상의 세계를 그렸지만,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in the paradise’란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무기를 해체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여 사람답게 사는 낙원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인철, 스텔-스안주,140X96,25cm(부분).

.

컴퓨터로 그려진 그의 작업들은 그림보다 사진에 더 가까운 이미지다. 사진처럼 철저한 사실묘사로 이루어진 가상의 디지털 작업이었다.

몇 일전 문영태 유작전에서 만난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께서 “이인철 작품은 과학적 감성의 결과물”이라고 호평한 바도 있지만, 과학적 감성을 바탕에 둔 창의력으로 사회를 향하여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인철, 세월1, 86,5X100cm


더러는 사회 규범과 권위에 도전하는 거친 표현도 있다. 표제작으로 내놓은 작품은 성경에다 칼을 꽂아 놓았고, 그 작품 옆에는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난민이 고개 숙이고 있다. 이게 뭘 말하는가? 나 역시, 성경이나 법전에 나오는 거룩한 말씀을 거지발싸개 정도로 여기지만, 신이 계시다면 세월호 같은 사건이 어찌 생길 수 있으며, 착한사람은 못 살고 나쁜 사람이 잘 사는 이런 세상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인철, 우리들의 일그러진 꼴통, 46X36,5cm



그런데, 작가 이인철은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 부인 김명희씨가 목사님이 아니던가? 그래서 전시 뒤풀이에서 만난 김명희 목사께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보았다.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는 예수님 말씀이 마태복음에 있다고 했다. 싸워서 평화로운 세상을 쟁취하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라며, 이인철씨 표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역시 한 편인 것 같았다.



▲이인철, 사과-탄, 60X80cm


작품을 평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글이 이인철씨의 작업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비록 가상의 세계지만, 그 쉬르와 하이퍼 리얼을 교직한 미적 쾌감은 소통의 폭을 확장시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 반영은 인식을 담보하고 거기서부터 현실을 개진해 나가려는 비판성과 사회적 함의가 발생한다. 이인철은 바로 그런 ‘이미지노동’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파라다이스로 역전시키고 있다. 거기에 이인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소통하는 이미지’의 힘이 있다.”


서울 ‘민미협’ 대표를 역임한바 있는 중견작가 이인철씨의 일곱 번째 개인전 ‘in the paradise’는 오는 6월 5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열린다





.







지난 23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이인철의 ‘in the paradise’가 개막되었다.
이 전시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 분단국으로서의 전쟁위기,

그리고 인간성 상실로 치닫는 야만성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며 비판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3D 프로그램과 2D 포토샵으로 그린 도형적 이미지들인데,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이 마치 과학 교재실에 들어 온 듯, 흥미롭기도 경직된 느낌도 준다.

그러나 자세히 드려다 보면,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로켓이 김밥 잘리듯 잘려있고, 스텔스기에 치즈를 발라 놓았다.

인조 잔디밭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인간이 있는가하면, 힘없이 날아가는 탄두는 어디 떨어질지 불안하다.






불행한 세상으로 치닫는 현실을 파라다이스에 비유하며 풍자하고 있으나,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작가의 이상 또한 작품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작가 이인철은 야만성의 현실을 비판하는 가상의 세계를 그렸지만,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in the paradise’란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무기를 해체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여 사람답게 사는 낙원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로 그려진 그의 작업들은 그림보다 사진에 더 가까운 이미지로,

사진처럼 철저한 사실묘사로 이루어진 가상의 디지털 작업이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당하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그 구조적 모순을 공격하는 것도 흥미롭다.






몇 일전 문영태화백 유작전에서 만난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께서

“이인철 작품은 과학적 감성의 결과물”이라고 호평한 바도 있지만,

과학적 감성에 의한 창의력으로 사회를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또한 사회 규범과 권위에 도전하는 거친 표현도 있다.

표제작으로 내놓은 작품은 성경에다 칼을 꽂아 놓았고,

그 작품 옆에는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난민이 고개 숙이고 있다. 이게 뭘 말하는가?

나 역시, 성경이나 법전에 나오는 거룩한 말씀을 거지발싸개 정도로 여기지만,

신이 계시다면 세월호 같은 사건이 어찌 생길 수 있으며,

착한사람은 못 살고 나쁜 사람이 잘 사는 이런 세상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인철씨가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 부인 김명희씨가 목사님이 아니던가?

그래서 전시 뒤풀이에서 만난 김명희 목사께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보았다.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는 예수님 말씀이 마태복음에 있다고 했다.

평화로운 세상을 쟁취하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라며, 이인철씨 표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역시 한 편인 것 같았다.






이인철씨 작품을 비평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글이다.
“비록 가상의 세계지만, 그 쉬르와 하이퍼 리얼을 교직한 미적 쾌감은 소통의 폭을 확장시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 반영은 인식을 담보하고 거기서부터 현실을 개진해 나가려는 비판성과 사회적 함의가 발생한다.

이인철은 바로 그런 ‘이미지노동’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파라다이스로 역전시키고 있다.

거기에 이인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소통하는 이미지’의 힘이 있다.”






그리고 이인철씨의 인간적 친화력은 개막 전시장을 북적이게 했다.
원로 손장섭선생을 비롯하여 김명희, 민정기, 황의선, 윤범모, 김진하, 정복수, 장경호, 김재홍, 곽대원,

최경태, 김 구, 이재민, 변대섭, 한상진, 박홍순, 김영중, 김보중, 이원석, 김경지, 송용민, 김영진, 마문호,

양상용, 황준연, 박승원, 조경숙, 현린씨 등 많은 미술인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가 되었는데,

뒤풀이 장소인 ‘낭만’에는 손기환, 박은태, 임정의, 성기준, 소리꾼 유주현씨 등이 합류하여

판소리가 흘러 나오는 질퍽한 친목의 자리를 만들었다.





6월 5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열리는

이인철씨의 일곱 번째 개인전 ‘in the paradise’에 많은 관람 있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김정헌 전 예술위원장, 46년 간 보관한 손기환 작품, 전시장에서 돌려 줘

2018년 04월 23일 (월) 17:16:08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ss@sctoday.co.kr

손기환의 ‘정치적 팝, 팝의 정치학’ 2부작이 오는 5월1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 사회적 현상을 형상화한 작품들은 기민한 만화적 순발력을 회화에 끌어들여,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타! 타타타타타” 이 얼마나 간단명료한 메시지인가?


▲손기환, 타! 타타타타타, 130.3x192cm Oil on Canvas 1985.



무장헬기의 굉음을 소리로 나타낸 이 글은, 시각적 재미와 함께 문학적 요소도 가미되었다.

위로는 군화발이 부각되고, 아래로 몇 명의 군인들이 매달려 지나가는 낯설지 않은 풍경은,

전쟁분위기를 조성하는 군사문화의 폐해를 한 마디로 정리한 걸작이다.

기울어져 있는 잠실 롯데타워 옆에 새떼와 전투기가 함께 나는 풍경도 있다.

녹색의 지평선과 주홍색의 하늘이 어긋나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 장면은

성남비행장 활주로의 방향을 틀어 가며 빌딩을 세우게 한 정경유착을 꾸짖는 비판적 시선에 있다.



▲손기환, 죽음의 백조, 584x91cm Acrylic on canvas 2017.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희뿌연 ‘DMZ 풍경’은 마치 안개 낀 정국을 보는 것 같다.

풍경 위로 GP(초소)와 OP(관측소) 그리고 GOP에 관련된 일렬번호와 지뢰표시만 표기하므로 추상적 현실을 구체적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남북대치정국의 실감나지 않는 비현실적 현실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그 그림은 비현실적 공간이 돼버린 DMZ의 오늘에 대한 고발이며 응전이었다.




손기환, DMZ-풍경 240x100cm Acrylic on canvas 2012



‘DMZ-마주보기’시리즈에는 권력자들이 망원경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김정은과 이명박도 있고, 박근혜도 있다.

이들이 보고 싶은 것이 도대체 뭘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빅 카드라도 찾고 싶었나? 아니면 유치한 야동이라도 보고 싶었는가?

한 마디로 보여 주기 위한 국민을 기만하는 쇼에 불과하다. 웃기는 현실을 시로 뱉은 노동자시인 김신용씨 처럼 “조, 빠, 하~”다.



▲손기환, DMZ-마주보기 750X78cm(일렬설치) 2012-1995


손기환의 이미지 저장고는 수많은 시각적 기억들로 넘쳐난다.

오래된 사진 이미지에서부터 어린 시절의 딱지, 만화, 카툰, 민화, 책표지 등

이미 기호화된 대중적 이미지를 끌어들여 다양한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

적절한 이미지로 동시대의 정치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며, 만화와 회화와 판화가 지닌 표현기법과 양식적 특성 사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풍경을 연출해 낸 것이다.


▲손기환, 홍길동 100X100cm Acrylic on Canvas 2000


작가가 분단과 DMZ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실향민 2세라는 성장 배경과 DMZ 최전방에서 근무했던 군대 생활도 연관 있다고 한다.

전쟁 직후 태어 난 세대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반공을 세뇌시키는 획일화된 교육환경과 유신독재정권의 무자비한 폭력,

그리고 광주학살의 만행으로 이어지는 암울한 시대를 체험하며 자라난 저항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다보니 전시 작품이 압수되고 구속되는 수난을 겪으며 이마에 별을 달기도 했다.

그런 몸소 겪었던 체험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에 녹아 난 것이다.



▲손기환, DMZ-산수 98cm Acrylic on Canvas2016



손기환은 파인아트에서 터부시하는 시각물을 가감하게 끌어들여 대중적 보폭을 넓히고 있으나, 고급문화의 속성을 거부하는 측면도 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색도 노란색이나 보라색 등 약간 병적인 색깔을 의도적으로 선택한다.

그런 팝적 요소를 구축하여 성공적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손기환, 불청객 803X 100cm Acrylic on Canvas 1985


손기환이 누구인가? 주재환, 신학철, 김정헌, 민정기, 박불똥 등 우리나라 민중미술을 이끌어 온 몇 안 되는 용병 중 한 사람이다.

다채로운 형식으로 정치적 모순을 비판하며 권력에 저항해 온 역전의 용사다.

지금은 국제 만화에니메이션 페스티벌 SICAF의 집행위원장과 잡지 ‘만화정신’의 발행인으로 화단보다 만화계에서 많이 활동하는데,

상명대학교 만화에니메이션과 교수이기도 하다.



▲손기환, 끌 수 없는 불-2 100x80


그런데, 2부 전시가 시작된 18일 오후5시 무렵, 화가 김정헌씨가 포장된 액자 하나를 들고 전시장에 나타났다.

사연 인즉 김정헌씨가 46년 전, 손기환씨와 화실을 같이 사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김정헌씨는 대학원생 시절이고, 손기환씨는 균명중학교 3학년이었다는 것이다.



▲김정헌씨가 제자 손기환씨의 46년전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조문호


그 당시 손기환씨가 김정헌씨에게 사례로 드린 그림을 여지 것 보관하고 있었다는 자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일찍부터 손기환씨의 작가적 기질을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전시를 축하하러 오며 아득한 추억 하나 챙겨 왔는데, 손기환씨는 46년 전의 감상에 젖는 또 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림으로 맺은 기나긴 세월의 정이 너무 아름다웠다.




▲화가 손기환씨가 'DMZ 마주보기 작품 앞에 서있다. ⓒ조문호


작품집 서문을 쓴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고착된 기존의 제도적, 조형적 미학적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손기환의 작업은 작업내용 뿐만 아니라 생태적인 면도 정치와 유사해 보인다. 또 기존에 제도화된 작가 중심의 미적 기득권의 고착된 위계를 해체하기 위해, 미적 근거를 대중적 ‘팝’의 영역에 두고, ‘팝’적 언어를 차용해서, ‘팝’적으로 관객과의 감각과 인식의 평등한 대면과 연대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랑시에르적 ‘감각의 분배’도 일정정도 떠 올리게 한다. 자신을 포함에서 이미 사회적으로 제도화, 권력화된 미적 이데올로기나 위계에 대한 파열을 시도하며, 관객들 개별적인 감각으로의 수평적인 소통전략을 취하는 미적 태도다.“고 적었다.


전시는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5월1일까지 열린다.






손기환의 정치적 팝, 팝의 정치학’ 2부작이 오는 51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 사회적 현상을 형상화한 그의 작품들은 기민한 만화적 순발력을 회화에 끌어들여,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 타타타타타이 얼마나 간단명료한 메시지인가?

무장헬기의 굉음을 소리로 나타낸 이 글은, 시각적 재미와 함께 문학적 요소도 가미되었다.

위로는 군화발이 부각되고, 아래로 몇 명의 군인들이 메 달려 지나가는 낯설지 않은 풍경은,

전쟁분위기를 조성하는 군사문화의 폐해를 한 마디로 정리한 걸작이다.


 

기울어져 있는 잠실 롯데타워 옆에 새떼와 전투기가 함께 나는 풍경도 있다.

녹색의 지평선과 주홍색의 하늘이 어긋나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 장면은

성남비행장 활주로의 방향을 틀어 가며 빌딩을 세우게 한 정경유착을 꾸짖는 비판적 시선에 있다.


 

그리고 희뿌연 ‘DMZ 풍경은 마치 안개 낀 정국을 보는 것 같다.

풍경 위로 GP(초소)OP(관측소) 그리고 GOP에 관련된 일렬번호와 지뢰표시만 표기하므로,

추상적 현실을 구체적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남북대치정국의 실감나지 않는 비현실적 현실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그 그림은 비현실적 공간이 돼버린 DMZ의 오늘에 대한 고발이며 응전이었다.


 

‘DMZ-마주보기시리즈에는 권력자들이 망원경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김정은과 이명박도 있고, 박근혜도 있다. 이들이 보고 싶은 것이 도대체 뭘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빅 카드라도 찾고 싶었나? 아니면 유치한 야동이라도 보고 싶었을까?

한 마디로 보여 주기 위한, 국민을 기만하는 쇼에 불과하다.

노동자시인 김신용씨의 시어처럼 , , ~”,


 

손기환의 이미지 저장고는 수많은 시각적 기억들로 넘쳐난다.

오래된 사진 이미지에서부터 어린 시절의 딱지, 만화, 카툰, 민화, 책표지 등

이미 기호화된 대중적 이미지를 끌어들여 다양한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

적절한 이미지로 동시대의 정치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며,

만화와 회화와 판화가 지닌 표현기법과 양식적 특성 사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풍경을 연출해 낸 것이다.


 

작가가 분단과 DMZ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실향민 2세라는 성장 배경과 DMZ 최전방에서 근무했던 군대 생활도 연관 있다고 한다.

전쟁 직후 태어 난 세대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반공을 세뇌시키는 획일화된 교육환경과 유신독재정권의 무자비한 폭력,

그리고 광주학살의 만행으로 이어지는 암울한 시대를 체험하며 자라난 저항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다보니 전시 작품이 압수되고 구속되는 수난을 겪으며 이마에 별을 달기도 했다.

그런 몸소 겪었던 체험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에 녹아 난 것이다.


 

손기환은 파인아트에서 기피하는 시각물을 가감하게 끌어들여 대중적 보폭을 넓히고 있는데, 고급문화의 속성을 거부하는 측면도 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색도 노란색이나 보라색 등 약간 병적인 색깔을 의도적으로 선택한다.

그런 팝적 요소를 구축하여 성공적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손기환이 누구인가? 주재환, 신학철, 김정헌, 민정기, 박불똥 등 우리나라 민중미술을 이끌어 온 몇 안 되는 용병 중 한 사람이다.

다채로운 형식으로 정치적 모순을 비판하며 권력에 저항해 온 역전의 용사다.

지금은 국제 만화에니메이션 페스티벌 SICAF의 집행위원장과 잡지 만화정신의 발행인으로 화단보다 만화계에서 많이 활동하는데,

상명대학교 만화에니메이션과 교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2부 전시가 시작된 18일 오후5시 무렵, 화가 김정헌씨가 포장된 액자 하나를 들고 전시장에 나타났다.

사연 인즉, 김정헌씨가 옛날에 손기환씨와 화실을 같이 사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김정헌씨는 대학원생 시절이고, 손기환씨는 균명중학교 3학년이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손기환씨가 김정헌씨에게 사례로 드렸다는데, 그 그림을 46년 동안 보관하고 있었다는 자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일찍부터 손기환씨의 작가적 기질을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전시를 축하하러 오며 아득한 추억 하나 챙겨 왔는데, 손기환씨는 46년 전의 감상에 젖는 또 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림으로 맺은 기나긴 세월의 정이 너무 아름다웠다.


 

작품집 서문을 쓴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고착된 기존의 제도적, 조형적 미학적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손기환의 작업은 작업내용 뿐만 아니라 생태적인 면도 정치와 유사해 보인다. 또 기존에 제도화된 작가 중심의 미적 기득권의 고착된 위계를 해체하기 위해, 미적 근거를 대중적 의 영역에 두고, ‘적 언어를 차용해서, ‘적으로 관객과의 감각과 인식의 평등한 대면과 연대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랑시에르적 감각의 분배도 일정정도 떠 올리게 한다. 자신을 포함에서 이미 사회적으로 제도화, 권력화된 미적 이데올로기나 위계에 대한 파열을 시도하며, 관객들 개별적인 감각으로의 수평적인 소통전략을 취하는 미적 태도다.“고 적었다.


 

이 전시는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51일까지 열린다.

전시와 함께 손기환, 정치적 팝, 팝의 정치학작품집(가격50,000)나무아트에서 발행되었다.

276면의 방대한 자료집이라 소장가치도 높다.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