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교수의 페북 대화창 ‘서울사진가와 소총수’에 술꾼들 모이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세미나 토론자로 서울 올라가는 김에 술 한 잔하자는 것이다.
모처럼 반가운 자리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겨버렸다. 전 날 저녁 동자동에 갔더니 방문 앞에 우편물 한 통이 꽂혀 있었다. 뜯어보니 용산구청에서 보낸 ‘복지대상자 자격 및 급여변동 안내문’이었는데, 자격중지(급여중지)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격 중지될 이유가 없었다.
11일 작성된 공문으로, 이미 소명기간이 지나버렸다. 우편물이 왜 이리 늦게 왔는지도 모르겠고, 왜 중지되었는지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공무원들 퇴근 후라 확인해 볼 수도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짤릴 것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혜택 받은 3년 동안 돈 걱정없이 잘 살았는데,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당장 내야 할 방세부터 걱정되었다.
난데없는 걱정에 밤을 꼬박 샌 후, 아침에 구청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별 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다. 당하는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요한 일인데, 어떻게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
이유는 아들 햇님이 재산에 변동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들어보니, 결혼 후 방을 얻기 위해 처가에서 빌린 전세자금이 재산으로 둔갑된 것 같았다.
충분히 소명할 수 있는 문제라 걱정은 덜었으나, 잠 안 자고 신경을 많이 쓴 탓에, 힘이 쫙 빠졌다. 스트레스 받아 그런지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어지럽기 까지 했다.
그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어 녹번동 정영신씨 집으로 찾아갔다.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해소에는 최고인 비상약을 먹었다.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져, 저녁 술 약속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25일 오후8시 북창동 ‘행복전집’으로 김남진, 김문호, 김봉규, 김태진, 이규상, 정영신씨가 호출되었는데,
그 날이 신문사 당직인 김봉규씨만 못 나왔다.
김태진씨가 미리 예약해 둔 북창동 ‘행복전집’에 가보니 김문호씨가 먼저 와 있었다. 좀 있으니, 그리웠던 분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들 막걸리를 마셨지만 혼자 소주를 마셨는데, 이광수씨가 추천해 준 ‘진로’가 참 좋더라. 술병은 파리약병 처럼 못 생겼으나, 술이 순하고 부드러웠다. 그 날 모임은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술 마실 일 밖에 없었다.
술독을 얼추 비웠으나, 그냥 헤어질 수 없었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노래방이 최고가 아니던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노래방으로 따라 갔는데, 다들 잘 부르더라.
이광수씨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렀는데,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났다. 어디서 그토록 시원하게 욕 할 수 있겠는가? “이 씨발넘들아~” 듣는 내가 다 속이 후련했다.
나도 한 곡 뽑기는 했지만, 이제 끝난 것 같았다. 젠장~ 소리가 나야지... 분명 봄날은 갔고, 노래라기보다 지랄발광에 가까웠다. 그러나 윤석렬로 받은 스트레스까지 모두 풀었다. 교주님께서 다음엔 부산에서 한 판 벌이자지만, 어디엔들 못 갈소냐?
기차 시간을 넘긴 이광수씨만 여관에 들어가고, 다들 뿔뿔이 헤어졌으나 자정이 넘어 택시가 없었다. 시청 앞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선동하는 앰프 소리만 요란스러웠다. 대형 전광판에는 목사란 자가 ‘문재인을 구속시켜야 된다’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전광판 대 여섯 개가 나란히 들어선 걸 보니 광화문광장까지 연결된 것 같았다. 택시 잡으러 광화문까지 가보니, ‘구국철야기도회’란 이름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라, 다들 담요 같은 걸 뒤집어쓰고 구호를 외쳤다.
무슨 찬양가 인지도 모를 신나는 곡도 있었다. 술이 취해 엉덩이춤을 추가며 사진을 찍었는데, 나만 미친 것이 아니라 다들 미쳐가고 있었다.
몇 일전 정영신씨로 부터 인사동 사진집 출판에 대한 제안이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출판사 ’ZININZIN’ 김태진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는데, 김태진씨는 이광수교수 강의 때 한 두 차례 만난 적도 있지만, 정의당원인데다 페친 중의 한 분이라 관심 두고 지켜 본 분이다.
얼마 전 페북에 인사동 사진집을 년 말까지 출판해야겠다는 생각을 밝힌 적은 있지만,
어떻게 절묘하게 출판 제안이 맞아 떨어졌는지 궁금했는데, 아마 이광수교수의 입김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지난 3일 오후6시경 정영신씨를 만나, 김태진씨와 약속했다는 인사동 ‘툇마루’로 갔다. 귀가 어두운데다 말이 어눌해 소통이 어려울 것 같아 정영신씨에게 모든 걸 위임한다고 했으나,
처음 상의하는 자리라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안경까지 깨져 눈 뜬 장님이나 마찬가진데, 자리만 지키는 로봇 신세였다.
안국역에서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벽치기 골목은 한적했고, ‘조금’ 앞에서는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들이 기념사진 찍느라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인사동 박람회가 끝난 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아 청사초롱이 훤하게 불 밝혔는데,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김태진씨가 바로 옆에 지나가고 있었다.
‘툇마루’에서 된장비빔밥에다 막걸리와 빈대떡을 시켜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나,
대화 내용을 대충 짐작만 할 뿐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꾸어다놓은 보리자루처럼 밥그릇만 비웠다.
김태진씨와 오래전에 명함을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라오는 ‘인사동이야기’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고 했다. 아마 인사동 이야기 출판에 관한 전체적인 가닥은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진인진’은 그동안 고고학이나 미술사학 등 학술지출판이나 학술정보DB개발에 주력해 온 출판사지만,
이번에 사회문화 방향으로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작업 중인 책은 역학에 관한 만화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 만들 책이 인사동 사진집이라 한다.
시끄러운 식당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울 것 같아 찻집으로 옮기기로 했는데,
김태진씨가 너무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옆에 있는 사람이 군침이 돌 정도로 드셨는데, 큰 복 하나 타고난 것 같았다. 한 조각남은 빈대떡까지 싸 가지고 찻집 ‘수요일’로 자리를 옮겼다.
책 내용은 내가 먼저 정리할 일이라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출판계약서를 전달 받는 등 가닥만 잡았다. 아무래도 작가 입장에서는 작품 위주로 책을 만들고 싶겠지만, 출판사는 팔리는 책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여지 것 책을 만들 때는 일체 간섭하지 않고 출판사에 위임해 왔다. 아무리 좋은 책도 독자가 외면하면 쓰레기에 불과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작가의 의향을 존중해 그런지 별 말씀이 없었다. 원고를 정리하는 중에 여러 가지 조언을 줄 것으로 여겨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삼개월 가까이 인사동 작업에만 주력해야 할 것 같다.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인사동 풍류를 어떻게 보존할 것이며, 인사동다운 환경이 지켜지도록 최선을 다 할 작정이다. 아무쪼록 인사동의 정체성이 정립될 수 있는 좋은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작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바라며, 내년 초에 선보이게 될 인사동 사진집을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