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티잔 미술가들의 게릴라전, 홍범도 장군 초상

지난 1일부터 13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미술행동이 오늘의 행동으로 이어진 홍범도 장군의 초상전에는

35명의 민중미술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홍범도 장군이 누구인가?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 무장투쟁에 온 몸을 바친 분을 두 번 죽이려 한다.

 

윤석렬 친일 정권에서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흉상을 철거하는 암담한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 분연히 들고 일어난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양식의 초상화가 제작되어

항일 독립 정신을 계승하는데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장군에 대한 사진이나 이미지가 귀한 현실에서 재조명하는 의미도 있다.

 

그리고 이 전시는 참여작가만의 전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전시다.

홍범도 장군을 추앙하는 국민이 많을수록 역사 왜곡을 막을 수 있다.

 

전시를 관람한 후 방명록에 적는 것만으로도 함께 할 수 있다.

방명록에는 홍범도 부대 입단 지원 명단이라고 적혔다.

 

참여작가 명단 

강경구, 김구, 김억, 김인규, 김재홍, 김주호, 김준권, 김진열, 김진하, 류연복, 류준화, 문승영.

박건, 박건웅, 박순철, 박영균, 손기환, 송창, 유기호, 유대수, 이동환, 이명복, 이상호, 이원석,

이윤엽, 이인철, 이재민, 이태호, 이현숙, 장경호, 정기현, 정원철, 최경선, 최윤정

 

이번 게릴라전은 한때 광화문 미술행동을 추진했던 김진하씨가 기획했다.

 

아래는 전시 취지문이다.

 

1. 최근 윤석열 정권이 친일과 반공을 하나의 이념으로 묶어 국민을 상대로 이념 전쟁을 선전포고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획책이 바로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를 비롯,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 무장투쟁에 일생을 바친 분이셨습니다.

 

2. 그런 홍범도 장군을 의도적으로 욕보임으로써 반공=친일이란 그릇된 프레임을 일반화시키려는 작태를 현 정권이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소련공산당 입당, 빨치산 활동, 자유시 참변 등의 이유로 홍범도 장군의 활동 폄하와 함께 무장 독립운동사를 우리 역사에서 숙청하고, 궁극적으로는 친일 극우 세력의 영구적 정치 기반을 만드려는 획책이기도 합니다. 역사학계와 양심적 지식인들은 이 정권의 황당한 양두구육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3. 1940년대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 한 고독한 70대 독거노인이 소련군에 입대하겠다고 했답니다. 소련이 미국과 연합해서 대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하면 본인도 전장터에 나설 거라면서요. 일본에게 부인과 아들 둘 가족 모두를 잃은 봉오동 영웅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을 잃은 채였지만, 파란만장했던 삶의 마지막까지 조국 독립을 위해 일본과 싸우려 했던 내면의 도저한 치열함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임종하기 직전까지 30년의 저항, 그 고단했던 대일항쟁 편력이 아마도 그의 마지막 얼굴에 생생하게 스며있었을 것입니다. 그 절절했을 절대 고독, 그게 홍범도 장군의 실존적이고도 수명적인 '장군의 길'이었던 모양입니다.

 

4. 이런 과거-현재 얘기가 설왕설래하는 와중, 저희 나무아트에서는 깨어있는 작가들과 함께 게릴라형태로 홍범도-장군의 초상전을 기획했습니다. 현재 홍범도 장군에 대한 역사적 사진이나 이미지는 상당히 희박한 게 현실입니다. 따라서 미술인들이 홍범도 장군의 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양식의 초상화를 제작-전시함으로, 우리 근대사의 항일 독립 정신이 시민에게 널리 향유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작가마다의 고유한 개성과 상상력으로 이 초상화들이 진지한 역전의 역사화로 연결되면 더 좋겠습니다. [김진하]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여파 이주원씨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잘 모르는 분이라 궁금했는데, 칡뫼선생과 함께 가겠다는 말에 나만 모르는 주변 분 같았다.




12일 오전엔 김명성씨 따라 장호원에 갈 일이 있어 일찍부터 차를 끌고 나왔다. 
서울로 돌아오니, 약속시간인 다섯시가 임박해 차 돌려 줄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인사동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주원씨와 약속한 ‘화인갤러리’로 간 것이다.




그 자리는 옛날 이해림씨가 운영한 술집 ‘평화만들기’ 자리였다.
수안스님 전시 뒷풀이를 비롯한 많은 일들이 생각나는 예사롭지 않은 장소였다.



쌈지 뒷골목은 오랜만에 들어가 보았는데, 이름도 반가운 '정선곤드레쌈밥'집도 생겼더라.



'화인갤러리'로 바뀐 후 첫 걸음인데, 마침 전시작을 철수하고 있었다.
칡뫼 김구, 여파 이주원 선생 등 여러 명이 참여한 단체전이었다.



칡뫼선생이 먼저 와 있었는데, 걷어내기 직전의 출품작 두 점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개인전을 못 봐 아쉬웠는데, 두 점이라도 봐 천만다행이었다.



뒷골목 밤 풍경을 그렸는데, 작품에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칡뫼선생 이야기로는 몇 년 전에 한 작업으로, 그 때는 작품도 제법 팔렸다고 한다. 
왜 주제를 바꾸었는지 모르지만, 계속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그리움에 병든 세상이 아니던가?




뒤 이어 여파선생이 나타났는데, 서울이 아니라 천안에서 왔다고 했다.
하기야! 칡뫼선생도 김포서 왔지 않았는가? 서울역 부근에 사는 거지 팔자가 상팔자가 아닌가 싶다.




난, 이주원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는 우리 집 숟가락이 몇 개인 것 까지 다 알고 있었다.
블로그 ‘인사동 사람들’ 단골손님으로 가끔 정다운 댓글로 위안도 준 분이다.
온라인 인연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몇 안 되는 귀한 인연이었다.




뒤늦게 임경일씨가 나타나 술 마시러 갈 때가 되었는데, 끌고 온 차가 골칫거리였다.



'툇마루'로 가기 위해 골목을 나서는데, 정영신씨가 지나가다 손을 흔들었다.

사진으로 본 정영신씨보다 더 젊어보인다는 여파선생 말에 내가 사진을 잘 못 찍은 것 같았다. 




술 마시려면 차는 어쩔 것인가?  일단 마시고 보자.
‘툇마루’에서 녹두빈대떡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 마셔버렸다.
이 좋은 날, 술 한 잔 마시지 못한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이차로 간곳은 벽치기 골목에 있는 ‘유목민’이었다.
요즘 술 마시러 인사동에 잘 나오지 않아 몇 달 만에 들렸는데, 대개 처음 보는 손님이었다.




화가 여파선생은 사진 작업도 병행한다는데, 그 작업들이 궁금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이인섭선생과 주인장 전활철씨가 나타났다.



술은 땡기지만, 몸에서 그만 마시라는 신호가 왔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멀리서 온 손님이라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지만,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대리운전을 부르라며 여파선생이 따라 나섰지만, 손을 흔들었다.
주차비도 제법 나왔을 텐데, 여파선생이 계산해 버렸다.
차를 끌어 내 ‘아라아트’ 옆 빈자리에 세워두고 지하철 타러 간 것이다.



내일 새벽 다시 나올 생각하면 귀찮지만, 어쩌겠는가?
“성질 마이 죽었다. 음주면허증으로 그 술 마시고 두 번 걸음하다니...”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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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나의 떴다 방 사진전이 지난 19일 오후2시 종로3가

‘도심권50플러스센터’1층 '활짝라운지'에서 활짝 열렸다.




난생처음 듣는 떴다방 사진전이라는 말에 궁금증이 발동했다.
'떴다방'이란 말은 부동산 분양권 전매가 기승을 부리던 1998년 무렵 생겨난 것이 아닌가?
아파트 분양현장에 철새처럼 모여드는 '이동식 중개업소'를 '떴다방'이라고 불렀다.
아무튼 말 자체가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기는 하지만, 어감이 흥미로웠다. 


 

사진을 판매하기 위해 갑작스러게 전시를 하는 하나의 이벤트로 짐작했으나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오후2시에 들려 사진만 보고 여의도 촛불집회로 갈 작정이었는데,
사진전이 아니라 성유나씨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프로젝트였다.




행사장에는 성유나씨를 비롯하여 사진가 이정환, 권 홍, 이경희, 이재정,

심보겸, 정명식, 이미리씨와 화가 김구씨도 있었다. 그러나 모르는 분이 더 많았다.




그런데, 사진전이 아니라 빔 프로젝트로 성유나씨의 사진을 프레젠테이션하는 자리였다.
그 이전에 젊은 작가가 만든 단편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지도교수인 이정환씨가 작가를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성유나씨가 자신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귀가 어두워 절반도 알아듣지 못해 미칠 지경이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젊은이들 이벤트에 끼일 군번은 아닌 것 같았다.
늙은이 하나 때문에 다들 불편해 할 것도 틀림없지만,
예상한 시간보다 많이 걸려 다음 일정에 신경도 쓰였다.




작 년 봄 정선 ‘동강할미꽃’축제에 왔을 때, 사진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으니

사력이 2년도 채 되지 않았건만, 자기만의 분명한 색깔을 잡아가고 있었다.
하기야! 사진한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 가에 달려있지 않은가?



성유나씨는 주제도 잘 잡았지만, 그에 따른 열성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거리를 지나치는 인간 군상에 푹 빠져 있었다. 앉으나 서나 사진 생각이었다.




아무튼, ‘성유나의 떴다방’ 사진전을 축하하며 더 큰 성과를 기대한다.


사진, 글 / 조문호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세 가지의 목소리를 내는 특별한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이흥덕의 불안의 에티카’(1)는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조신호의 “DMZ로 부터”(1)는 생태환경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민종은 나의 노래’(2), 자연은 자연으로 두라는

각기 자신만의 어법으로 쟁점화 시켰다.



 


작가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비판적 현실이 암울하고 참담할 뿐이다.

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정신은 병들었고,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마치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남이야 죽던 말든, 자연이야 망가지던 말든,

오로지 개인주의적 탐욕으로 똘똘 뭉친 것이다.

그 비정의 현실을 말하는 기획전이라 뜻하는 바가 크다.



 


이흥덕이 사회를 보는 불안한 시각은 꽤 오래 되었다.

40년 가까이 욕망이 이글거리는 우리 시대의 다양한 사회풍경을 풍자하고 비판했다.

불안한 현실을 그려내는 심리 도해로서의 지옥도고, 온몸으로 부대낀 보고서다.

    


 



해골 무덤에서 탱고를 추는 남녀 군상들, 구제역에 매몰되는 가축들,

전쟁놀이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

구덩이에 처박혀 떨고 있는 사람들, 십자가에 눌린 무력한 예수,

모든 작품들이 지옥이 따로 없는 오늘의 현실을 말해준다.



 


작가의 불안한 증상은 개에 쫒기는 사람으로 동시대적 폭력과 야만을 보여준

80년대부터 시작되었단다.

풍자적으로, 때로는 에로티시즘적인 수사학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상을 형상화해냈다.



 


흑백 목탄이나 초록의 유화 모노크룸,

또는 강렬한 색을 사용하여 마치 요지경이나 만화경 속에 들어 있는

무대처럼 몽환적 풍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원시의 울산 암각화처럼...




 

근대미술의 시조격인 고야의 동판화집 "이성이 잠들면 요괴가 눈 뜬다"라는 작품이 있다.(중략) 이흥덕의 그림도 거기에 맞닿아 있다. 요괴를 부정하는 근대도 지나고, 그 유산으로 '찬란한 문명(?)'을 성취한 현대도 100년 이상이나 지났건만, 우리는 여전히 요괴가 눈 뜨고 횡행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이흥덕은 그런 동시대를 때로는 겹 눈질로 때로는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의 불안을 임상보고하고 타자와의 미적·정서적 연대를 시도한다. 이는 보편적인 이웃과 더불어 인간욕망과 욕망이 야기한 폭력과 그로인한 '불안'을 바로 보고, 거기에 맞서려는 작가 이흥덕의 저항적 '에티카(Ethica)'에 다름 아니라 하겠다.“고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썼다.




 

두 번째 작가인 조신호씨는 대학생 신분으로

한강미술관푸른깃발전에 참여한 적도 있단다.

일찍부터 시대정신에 눈 떠 현실에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미를 추구하는 그림에서 벗어나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다 18년 전, 살기가 어려워 파주로 들어가 DMZ를 접하며

생태환경에 빠지는 일대 전환을 맞는다.

고통 받는 동물들을 치료해 주며 스스로 위안 받았다고 한다.

지구의 환경오염이 인간이나 동물에게 미치는 심각한 폐해를 자각한 후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DMZ를 다닐 때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초월적인 힘은 도저히 용납하지 않았다.

인간을 끝없이 불안한 존재로 인식하며,

그런 문제의식을 그림으로 토해내기 시작 했다.



 


살기를 뻔뜩이며 날개 짓하는 독수리무리, 해골에 박혀있는 나무,

앙상한 나목을 마지막 보루처럼 지키는 조류, 하나같이 섬뜩한 장면이다.

마치 작가의 분노가 고스란히 화폭에 옮겨진 것 같다.

강렬한 색과 터치로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미술평론가 곽대원씨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영국의 화가 프렌시스 베이컨(1909-1992)을 연상케 한다. 베이컨은 고기와 형상과의 관계를 통해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작가다. 베이컨 그림에 나타난 인간과 동물은 아름다움보다는 처절함이다. 조신호의 작품에서 종종 비슷한 그림을 발견한다. 동물을 인간의 정형이라고 믿는 베이컨이나 조신호가 혹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묻고 있다.

    


 



세 번째 작가 이민종이 나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내 놓은

일련의 작품을 보면 우선 나른한 느낌이 든다. 자극거리가 없다.

땅에서 시작되는 삶이란 원래 지루하고 따분하다.

성적인 말로 조루와 반대되는 지루의 상태로

언제 사정해 버릴지 모르는 아슬아슬함을 지닌 채 오래도록 지속된다.

본래 자극을 주는 것이란 쉽게 눈길은 가지만 금방 싫증을 느낀다.



 


마치 드론으로 찍은 부감사진 같은 풍경은

재현적인 사실주의라기보다 조형화한 산수화 같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아주 높고 치밀한 불완전함이 있다.

무기교의 기교이며, 무기교를 위장한 기교다.

바로 이것이 이민종 풍경화의 매력이다.



 


색을 중첩하는 채색방식이야 서양화지만, 동양화의 관점이다.

미세한 붓 자국으로 눈이 쌓이듯 잔잔하게 찍어 그렸는데,

작가는 사물의 물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물감의 흔적으로 화면 층을 깊게 하며,

붓 자국이 쌓이는 시간을 기다려 공간감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형상화해가는 방법이 아니라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에 있다.

자연은 그냥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은 지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겨울은 가능성의 세계이고 봄은 생동하는 계절이기에 선택되었으나, 계절 속 자연은 침묵으로 생명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동양사상의 핵심은 현실 속에서 주변과 자기마음을 조용하고 화평하게 하는 데 있다. 화가 이민종의 정신은 이러한 자연에서 발견한 감성적인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것이다.”고 주성열교수가 적었다.



 


지난 30일 전시를 보러 금보성아트센터를 가야했으나,

그날따라 서울대학병원장례식장에서 열리는 김윤수선생 추모식 시간과 겹친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한 곳은 포기해야 할 텐데, 기어이 욕심을 부려 더 힘들게 만들었다.




   

먼저 전시장부터 들렸으나 이미 개막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금보성 관장과 미술평론가 김종근씨 등 작가들이 차례대로 나와 이야기들을 했다.

객석에는 류연복, 정복수, 이재민, 나종희, 김진하, 김재홍, 김구씨 등

반가운 분들의 모습도 여럿 보였다.



    

 

개막식이 끝나야 전시를 볼 수 있을 텐데, 행사는 지루하게 이어졌다.

그런데 류연복씨가 추모식에 갈 것이냐며 재촉해 온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다시 볼 생각으로 나왔는데.

가보니 추모식도 이미 끝날 직전에 있었다.

반가운 분들이야 만났지만...



 


지난 2일은 아침부터 궁상맞게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정영신씨에게 연락해, 전 날 못 본 금보성아트센터전시를 다시 찾은 것이다.

작가 이흥덕씨는 자리에 없었지만, 조신호, 이민종씨가 있었고,

금보성 관장과 사진가 양재문씨도 와 있었다.



    


전시도 찬찬히 돌아보고 기념사진도 찍고, 관장실에 들려 커피까지 얻어 마셨다.



 


마침 서재에 전주의 류휴열씨 도록이 꽂혀 있었다,

! 이 얼마 만에 듣는 이름인가?

30년 전에 그의 주선으로 전주에서 전농동588번지전시를 연적도 있다.

어떻게 서로 전주와 서울을 오가며 이토록 무심하게 잊을 수 있었단 말인가?

다음에 전주 가면 꼭 한번 만나보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금보성 관장께서 내년에 나와 정영신씨에게 전시를 하란다.

난, 형편도 되지 않지만, 전시 같은 건 별 관심이 없으나,

정영신씨의 장터사진은 한 번 추진해 봐야겠다.

죽기 전에는 동지로서의 계약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한꺼번에 세 작가의 작업을 감상할 수 있는 이 전시를 놓치지 마라.

오는 17일까지 금보성아트센터’(02-396-8744) 전관에서 열린다.

 

사진, / 조문호












 





박영환씨의 蓮緣이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리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이 연꽃의 아름다운 자태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는 스러져가는 스산한 자태를 더 눈여겨 보았다.





   

지금 창밖은 낙엽이 떨어지는 스산한 풍경이다.

세월의 무상함이 밀려오는 자연의 섭리를 박영환의 연연(蓮緣)’이 말하는 것이다





모진 비바람 이겨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서는, 다 내어주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연꽃을 통하여 인간의 삶과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난, 작품보다 작가의 인간성을 더 중요시한다.

작품은 좋아도 교만과 위선으로 똘똘 뭉친 돼먹지 않은 인간들이 도처에 늘려있다.

작품에 앞서 사람이 먼저 되어야한다는 선인들의 말씀이 절절한 시절에 산다.



 


사진가 박영환씨를 알게 된지는 촛불이 광화문광장을 뒤덮던 때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던 그의 열정에 혹했는데,

사람의 연을 중요시하는 따뜻한 인간미에 또 한 번 반한 것이다



 

 


그가 전시한 사진작품에는 그의 따뜻한 인간미가 그대로 배어있다.

스러져 가는 하잘 것 없는 연잎조차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바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연이 있는 곳이면 지역과 거리를 상관치 않고 찾아다닌 지 올해로 꼬박 5년이 되었단다.

그 동안 담은 수천여 장의 연꽃 사진 가운데 100여장을 골라 수록한 연연사진집도 출간됐다.


연연사진집은 인연을 주제로 태어나다, 살아내다, 꽃피우다, 떠나가다, 삶과 죽음 등

5개의 섹션으로 풀어낸 사진이야기다.




 

정세훈시인은 작품집 서문에 이렇게 썼다.

선비들의 시각이 연꽃을 사랑했다면, 민중들의 시각은 그에 못지않게 연의 뿌리와 연잎을 사랑했다.

그동안 보아 온 연에 대한 사진작품들이 선비들의 시각으로 접근한 작품들이라면

박영환 작가의 연연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민중들의 시각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지난 13일 오후6시에 열린 개막식에는 사진가 박영환씨를 비롯하여 시인 정세훈씨,

노찾사의 김가영, 문진오씨, 화가 김 구씨, 사진가 정영신, 권 홍, 임성호씨,

정명식, 최병용, 김홍중, 이연희, 이경희, 유성복씨 등 많은 분들이 찾아 와 전시를 축하했다




   


 

정세훈 시인은 축시를 낭송했고, 가수 김가영, 문진오씨는 축하의 노래를 불렀다.

아름다운 사람을 비롯한 앵콜 송까지 여러 곡 불렀는데, 그중 전시와 잘 어울리는 곡은 '세월'이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고

가을이 가고 또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고 봄이 또 오고

여름이 가고 다시 또 가을 오고...“


이 전시는  25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 조문호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에서 한 달에 한번이라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자는 뜻으로 시작된

첫 ‘주삼수(酒三水)날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으나, 너무 과음했다.
‘학고제’에서 화가 송창씨의 개막식이 있었지만, 삼청로라 갈 수도 없었다.
많은 주당들이 그 전시뒤풀이에 퍼지겠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인사동 길거리에서 반가운 분들을 만났다.
제주로 내려 간 김호근씨를 만났는데, 오랫만의 서울 나들이라 했다.

종각 부근에서 약속이 있어 그 곳에서 마시자고 했으나 양해를 구했다.

인사동에서 이차를 약속하고 ‘낭만’으로 갔지만 거긴 아무도 없었다.

이 날은 핸드폰까지 고장 나 아무와도 연락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사진하는 곽명우씨를 만났다. 언제나 웃는 표정이 정겨운 친구다.





벽치기 샛길의 주막으로 접어드니, 찻집 앞에는 김명성씨가 앉았고,

불화가 이인섭씨는 제자와 함께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이 날의 첫 술잔은 이인섭씨와 골목에서 시작되었다.

성기준씨와 송용민씨도 다녀 갔지만, 이차는 화가 김 구, 장경호씨와 마셨다.

장경호씨는 이미 술에 취해 왔는데, 다른 곳에 가서 한 잔 더하자며 바람 잡았다.





칠뫼 김구씨와 함께 따라간 곳은 ‘국악 라이브’였다.

장경호씨는 요즘 술만 취하면 ‘월하의 공동묘지’같은 이집으로 자주 데려왔다.

여자들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노래 부를 수 있는 곳이 없어 찾는 것 같은데, 만만찮은 그 술값은 어쩔거냐? 

난 너무 취해 소파에 잠시 골아 떨어졌는데, 눈을 떠보니 임경일씨도 와 있었다.






장경호씨는 자기의 십팔번인 뒷동산 아지랑로 시작되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제목을 몰라 못 찾고 있었다. 그토록 노래를 자주 부르면서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그나저나 자정이 가까워 오고 있었는데. 일산 사는 장경호씨는 또 백상사우나에서 신세 질 팔자였다.

나도 지하철 끊기기 전에 줄행랑쳤지만, 뒤가 편치 않았다.


에고~ 사는 것도 힘들지만, 노는 것도 힘들다.



사진, / 조문호








































김수길씨의 ‘시간지우기’사진전이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열렸다.

난, 오래전부터 인사동에서 김수길씨를 보아 왔지만, 사진을 한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80년대 중반무렵 인사동에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이란 카페가 있었는데,

그 카페를 운영한 주인이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일단, 그림공부를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사진들이 그림 같았다.

오래된 활동사진이 돌아가는 느낌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중첩된 이미지는 작가의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 낸 것들인데, 암울하고 처연한 풍경이었다.

앙상한 가로수가 펼쳐있고 그사이에 실루엣의 사람이 부각된 가운데. 저 멀리 버스도 보인다.

작가의 기억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뭔가 정처 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면서도, 한편으론 쓸쓸해진다.

또한 꽃 위로 웅덩이가 있는 시골길이 정겹게 펼쳐져 있다. 애틋한 고향에 대한 기억인 것 같다.

모든 사진들이 숨은 그림 찾는 퍼즐 같다.

작가는 왜 시간을 지우는 것인가? 사라져가는 시간을 지운다고 말할 때는 잊기 위함인가?
아니, 그는 잊기 위함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지운다고 한다.


한 때는, 서울 사대문 안의 이화동 낙산 뒷골목을 기록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엔 사실적인 기록이 아니라 정반대의 추상적인 기억의 기록을 선보인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현실기록보다 창의적 기록으로, 한 걸음 나아갔을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난다면 이화동의 현실기록이 더 빛나지 않을까?

어찌 보면, 그 가치기준 자체가 허망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잡지 ‘카페人’ 발행인 손한수씨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컷을 위해 작가는 오늘도 지운다.
 잊지 않기 위해 시간을 지운다.
 그렇게 응축된 순간들의 이야기는 울림이 크다.
 지우면 여운이 깊다”

글 / 조문호












아래 사진은 정영신씨가 오프닝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작가를 비롯하여 이순심관장, 노광래, 김구, 임경일, 편근희씨 등 낮익은 분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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