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 蒼然 Sublime of the olden days

이화자/ LEEWHAJA / 李和子 / painting 

2023_1018 2023_1209 / ,월요일 휴관

이화자 _ 풍어제 _ 한지에 먹 , 분채 ; 비단천 ,화선지 _145.5X112cm_1992

 

초대일시 / 2023_1018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소포라

Space Sophora

서울 중구 덕수궁로 114 B1

Tel. +82.(0)2.3789.3754

www.spacesophora.com @space_sophora

 

이화자 작가는 한국 채색화의 명맥을 이어온 작가로서 석채, 분채 등의 전통 재료들을 고집스럽게 사용하여 토속신앙, 불교 미술을 바탕으로 풍경, 화조, 영모화 등 다양한 소재를 작품 속에 표현해 왔으며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표현 방법으로 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여 왔습니다. 특히, 전통 염료를 사용하여 수없이 덧칠을 반복한 작가의 노력이 빚어낸 깊이 있는 색채는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 미감에 절대 뒤떨어지지 않으며, 유장한 세월의 거쳐 더욱 깊이 있는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초기작과 중기작은 물론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와 색채로 한국적 아름다움을 표현해 여러 작품을 선보입니다. 특히, 풍경 위주의 최근작들은 원근을 표현하기 힘든 한국화 붓 터치의 한계를 면 분할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했으며 한결 부드러운 색감으로 초기, 중기작과는 다른 편안하고 관조적인 심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 전시의 주제인 '창연(蒼然)'"오래된 옛 것으로부터 그윽한 빛이 나온다"라는 뜻으로, 흔히 "고색창연"과 같이 사자성어로 사용됩니다. 전시의 영문 제목인 Sublime of the Olden Days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옛 것의 아름다움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전시는, 새롭게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공간의 의지이면서 동시에, 한국 현대미술이 지금까지 어떻게 발전해 왔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페이스 소포라

 

이화자 _4 월 April_ 한지에 분채 _145X109cm_1980

'박락''균열'의 미학 - 이화자 작품을 중심으로 '박락(剝落)'은 그림이나 글씨가 오래 묵어 긁히고 깎여서 떨어진 현상을 말하며, '균열(龜裂)' 역시 오래되어 갈라지고 터진 상태를 일컫는다. 박락과 균열은 거의 유사한 어의로 문화재 보존수복 분야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이기도 하다. 미술작품에 박락과 균열이 있다는 것은 작품의 손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작품의 상태가 불완전함을, 더 나아가 수리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미적 감상을 위한 시각적 차원에서든, 유지를 위한 보존의 차원에서든 미술작품의 박락과 균열이란 피해야 마땅한 변화인 셈이다. 그런데 이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오히려 없애야 할 박락과 균열을 작품의 중요한 조형 요소로서 차용한 작가가 있다. 바로 채색화가 이화자(李和子, 1943-). 그녀는 한국 채색화단의 2세대로, 지난 2000년 박생광과 뉴욕에서 2인전을 개최하는 등 한국의 채색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이화자가 화가로서의 수련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형성해나갔던 시기는 1960년대였다. 채색화로 자신의 진로를 설정하게 된 것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재학시절 박생광과 천경자와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그는 박생광으로부터 그림에 담겨야할 민족 전통의 중요성을, 천경자로부터는 현대 미술의 감각을 배웠다.

 

이화자 _ 달밤 Moon night_ 한지에 분채 _145.5X97cm_1995

1960년대는 박정희 정부 주도로 경제 성장과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도록 전통을 새삼 강조하던 시대였다. 이러한 문화정책 아래 전통 예술과 문화재는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1) 전통시대의 목공예품 역시 그 자체로서 민족적 특질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1970년대에 이화자 외의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서 이와 유사한 소재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회고적 취향은 당시 한국화단에서 잠시 인기를 끌긴 했지만,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반면 이화자는 시류와 달리 회고의 경향을 본인 작품 세계의 모토(motto)로 삼고 꾸준히 심화시켜 나갔다. 1970년부터 90년대에 걸쳐 그린 고분벽화와 불교회화를 제재로 한 작품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소재들에 깊이 천착했던 이유를 이화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더욱이 채색화는 곧 일본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왜곡된 인식은 채색화가로서 너무나 답답한 현실이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한국의 채색화가로서 갈 길은 한국적 채색화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이를 정립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 아마도 이러한 이화자의 고백은 당시의 채색화가들 뿐만 아니라 전통의 계승과 현대성을 창조하려는 오늘날의 채색화가라면 여전히 모두에게 공감되는 대목일 것이다. 여기에 박생광의 "모든 민족 예술은 그 민족 전통 위에 있다"는 언급 등은 이화자로 하여금 '전통을 기반으로 한 한국성 추구'라는 일관된 주제 의식을 갖게 했다. 그 실천의 대상으로서 한국 채색화의 시원(始原)이라 할 수 있는 고분 벽화에서 채색화의 기법을 탐구했고, 오랜 역사 속에 꾸준히 전개되어온 불교회화를 채색화의 본령(本領)이라 여기며 이를 통해 한국인의 정신성을 발견했다. 이후 이화자는 한국적 채색화의 구현이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의 사찰들을 답사했고, 더 나아가 그 원류가 되는 돈황, 아잔타 석굴 등 해외 답사를 하기에 이른다. 이는 한국 불화만의 독창성을 분별해 나가며 자신의 작품에서 적극적으로 응용해 나가기 위함이었다.

 

이화자 _ 초여름 An Early Summer_ 한지에 분채 _240X290cm_1989

그림 속에 보이는 박락되고 균열된 현상은 그 안에 담겨있는 시간의 역사를 증명한다. 분명 세월의 풍파 속에 손상되고 낡은 모습이지만, 그래서 그것을 다시 명료한 색채로 복원해야 할 것 같지만, 그 자체가 주는 낡음의 미가 있다. 방금 만든 듯한 목가구보다 손때 뭍은 고색의 목가구에서 더욱 감동 받는 이치와 같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금속공예품인 국보 92호 물가풍경무늬 정병에서도 이러한 낡음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청동 재질의 정병 표면에 물가의 풍경 무늬를 파낸 뒤, 그 안에 은실을 박아 넣은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러한 은입사 기법의 금속공예품들은 바탕의 청동은 어두운 색으로, 은실로 표현된 문양과 그림은 은색을 발하게 된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이 정병의 경우 현재 전혀 다른 색을 보여주고 있다. 정병의 표면은 연두색으로, 은색으로 빛나야 할 물가풍경무늬는 어두운 회색빛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표면은 녹이 슬고, 물가의 풍경무늬는 변색된 것이다. 사실 박물관에서는 금속공예품을 이렇듯 빛이 바래고 산화된 상태로 유지시키지 않는다. 실제로 전시된 다른 은입사 기법의 청동 정병을 보면 말끔하게 녹을 제거하고, 은색의 문양은 또렷하게 드러난 모습이다. 물가풍경무늬 정병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낡음'이 주는 아름다움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재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박물관에서조차 낡음의 미학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화자_세월2 Time &Tide 2_한지에 분채_130X161cm_1998
이화자 _ 작은 숲과 황혼 Little Forest &Twilight_ 한지에 분채 _76.5X60cm_2009

이화자 작품 속의 균열과 박락 역시 같은 맥락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낡고 오래됨이 추()가 아닌 미()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일찍이 장자(莊子)는 외형의 추를 내재적인 정신미와 대립적 요소로부터 통일시키며, 형체는 추하지만 마음이 선한 것을 높이 산 바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기이한 외형이 건전한 형체에 비해 그 내재적 정신의 숭고와 위대함을 드러내기에 더욱 쉽다고 본 것이다. 3) 이처럼 처음의 아름다운 모습이 비록 낡고 훼손되었지만, 거기서 발현되는 내재적 아름다움과 가치를 읽어내려 한 시도는 단순히 한국의 전통적 소재를 그림으로 재현한 것에 한층 깊은 의미를 더하며, 그림 속 등장한 불화가 더 이상 종교적 의미의 불화로서가 아닌 오래된 숭고미를 지닌 고화(古畵)로 탈바꿈 시켰다. 결국 채색화가 이화자에게 있어 박락과 균열은 한국 채색화의 요체라 할 수 있는 불화와 벽화에 이를 주입함으로써 '고색창연'이란 낡음의 미학과 연결 짓고, 이를 한국성의 추구로까지 이어지게 한 매개(媒介)였던 것이다. 이화자의 작품에 있어 고색미(古色美)의 추구를 위한 주된 조형적 요소인 박락과 균열. 작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점차 박락과 균열을 본인 작품의 구상적 이미지를 해체해가는 도구로 활용해 나간다.

 

이화자 _ 해금강 Haegemgang_ 한지에 분채 _49X78.5cm_1997

이처럼 이화자는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추상화 작업을 보다 구체화해갔다. 1997년도에 그려진 기원시리즈나 1998년 작 세월Ⅱ」 등은 그의 대표적인 추상화들이다(10). 세월Ⅱ」에 보이는 늘어트려진 옷의 천자락은 화려한 원색의 사용으로 주술적인 상징성과 함께 길상과 벽사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들 작품 중에는 이전에도 그렸던 불교적 제재들을 변형시켜 단순화, 추상화한 것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박락과 균열이 작품의 조형적 요소로서 여전히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화면 전반의 형태 자체가 불완전하다보니 어느 부분이 균열이고 박락인지 이전보다는 불명확하게 드러나지만 그의 작품 요소요소에서 긴밀하게 작용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화자가 이 '박락''균열'을 한국적 추상의 방법으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그는 "형태를 완전히 해체하는 서양의 추상은 한국적이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정서와 이질적이기 때문에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도 한다. 4) 이에 대상을 해체하되 이를 완전히 해체해 버리지 않고, 그냥 그렇게 시간을 견뎌온 박락되고 균열된 상태의 완전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방기해 버림으로써 불완전한 형체를 만들었다. 작가는 여기에 상상력을 가미했고, 한층 온건한 자기 나름의 추상화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물론 예술가에게 있어 구상의 세계에서 추상의 세계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전개시켜나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상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재현하는 작품에서 점차 그 핵심과 요체를 그려나가는 방식으로 연륜이 쌓임에 따라 작품의 표현 방식과 성격이 바뀌어간다는 뜻이다. 이것이 모든 미술가들에게 해당되는 수순이라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띠고 있는 흐름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화자의 균열과 박락이 고색의 취향, 추상화의 방편(方便)에 더하여 한국적 표현을 위한 하나의 선택이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화자_회상eminiscence_한지에 분채_54.5X76cm_2018

박락과 균열은 이화자 작품 세계의 주요한 시각적 요소이기도 하지만, 한국 채색화단의 역사와 현재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채색화의 전통은 고구려 고분벽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것이 고려 불화, 조선시대 궁중회화, 민화로 이어질 만큼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근대기 일본 화풍과 서양 미술이 점진적으로 유입되기보다 한꺼번에 빠른 속도로 영향을 주게 되면서 채색화에도 무수한 균열과 박락이 초래되었다. '채색화=일본화'라는 왜곡된 인식 등에서 안타까운 상황들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5) 한국 채색화는 오래된 전통을 뒤로 한 채 왜색 화풍의 논란과 수묵화와의 대립적 관계 속에 역사적으로 심한 단절과 부침을 겪으며,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균열과 박락으로 존재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화자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균열과 박락으로 존재했던 채색화를 통해 자신의 회화 세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해왔다. 또한 그 과정에서 한국성의 추구를 핵심적 명제로 삼았으며, 공교롭게도 이 균열과 박락은 그의 작품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즉 이화자가 작품의 조형 어법으로 사용한 '균열''박락'이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분열''단절'로 존재했던 채색화를 제 위치에 자리매김 시키고 봉합하는데 활용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전통 시대 문인화가 상위의 미술로서 인식됐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이화자의 채색화와 문인화의 지향이 어느 지점에서 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근대 이전 문인화는 지식인 계층이 만들어낸 예술론의 결과물로 해당 시대 미학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대변한다. 이화자가 문인화의 미학을 염두에 두고 작품에 박락과 균열을 적용한 것은 아니지만, 동아시아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 접점(接點)이 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화자_두물머리1 Dumulmeori 1_한지에 분채_28.5X49cm_2003

극단적인 추상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은 태도는 기본적으로 균열과 박락을 통해 추상을 시도했던 작가 이화자의 태도가 일관되게 이어지는 면모다. 채색화를 자신이 생각한 방식으로 한국화, 현대화하고자 했던 의식을 읽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바는 마땅히 균열과 박락의 채색화를 복원하고, 한국 현대미술사에 위치 지우는 일일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화자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충실한 데생과 섬세한 채색에 기반한다. 또한 그 주제는 서구적이기보다는 한국적,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는 기존 채색화의 내용과 기법에 '균열''박락'을 통한 새로운 미감을 더하며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보여주었다. 한국 채색화의 전개를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바른 전개 방향을 설정하기에 앞서 이화자에 주목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발췌)  배원정

 

* 각주1) 김현권, 이데올로기와 미술 속 전통,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국립현대미술관, 2021), p. 353.2) 20151110일 이화자 인터뷰.3) 주래상 , 남석헌 · 노장시 , 中國古典美學(미진사, 2003), pp. 85-86.4) 20161116일 이화자 인터뷰.5) 강민기, 전통에 색 입힌 근현대 채색화 부흥,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국립현대미술관, 2021), pp. 53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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