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면 대개의 동자동 사람들은 방안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거리에 방치된 노숙자들만 주차장 구석에 모여 앉아 술로 시간을 죽인다.



한산한 공원 주변을 돌아보니, “쪽방주민 집단이주 중단하라”는
주민대책위에서 내건 현수막이 오늘의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동자동 재개발을 위해 주민들을 외곽으로 이주시키려는 작업이 추진되지만,
나간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는 실정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딴 지역인데다,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쪽방 촌에서는 수시로 여러 가지 생필품을 나누어주었지만, 요즘은 예전같지 않다.

줄 세워 주민들을 길들이지 말라는 비난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외곽으로 내 몰기 위한 작전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누어주는 구호물품도 대개가 유통기간이 임박한 상품이 많다.

시중에 팔기 힘든 상품으로 선심 쓰는 기업들도 비인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나 역시 라면 같은 것은 바로 끊여먹지만, 자칫하다가는 유효기간을 넘길 때가 종종 있다.




방안에서 밥해 먹을 수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호하는 라면 외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아 유효기간을 넘기게 된다.



노숙하는 친구들은 유효기간이 지나도 괜찮으니 갖다 달라지만,
내가 못 먹는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겠나?



쉽게 내 뱉는 인권이니 평등이라는 말은 먼 나라 이야기 같다.
국회에서도 쌈박질만 할 것이 아니라, 오갈 때 없는 빈민들 대책에 적극 나서라.
버림받은 가난한 사람들은 유효기간이 지난 인간인가?

사진, 글 / 조문호













날씨가 추워지면 오갈데 없는 홈리스가 제일 걱정이다.




두꺼운 옷으로 바꿔 입을 옷이 있나. 꺼내 입을 내복이 있나.
흔해 빠진 전기장판 하나 없지만, 있어도 쓸데도 없다.




차디 찬 시멘트바닥에 신문지 깔아 고슴도치처럼 웅크렸지만
통로에서 몰려오는 찬바람에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맞바람이라도 피하려 종이 집을 만들어 자니,
사람인지 물건인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어차피 사람대접 못 받을 바에야 물건으로 팔렸으면 싶다.




부품은 고물이지만, 살아있는 로봇이 아니던가?
"어디 돈 많은 부자 양반 없나요, 인간 로봇 하나 들이면 어떻겠소?
그마저 안 된다면 관처럼 똘똘 뭉쳐 화장이라도 좀 해 주소"

사진, 글 / 조문호















떠날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 한 잔 술로 시름 달랜다.



저승사자처럼 달려오는 구급차에 긴 한숨 쓸어내린다.




그들은 꿈도 희망도 버린지 오래다.
희망이란 한낱 말 장난으로 여긴다.



저주받은 삶은 죽음이 축복일 뿐이다.




죽는 것이 편하지만, 그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죽지 못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죽지 못하는 것은 뭐가 다른가?




틈틈이 ‘용산소방서’에서 나와 보살펴준다.
죽는 사람 데려가는 일만 아니라 뜨거운 공원을 시원하게 적셔 준다.
맥 놓은 빈민들 혈압도 재 준다.




그러나 찜통 같은 쪽방은 방치한다.
움직이면 살고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죽으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더러운 꼴도 안 보겠지만,
이를 부득부득 갈며 살아야 한다.




나쁜 놈들이 잘사는 빈부의 악순환은 끝내야하기 때문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밤 깊은 서울역
홈리스들이 총 맞은 병사처럼 쓰러져 잔다.



어디선가 여린 선율의 바이올린소리 들린다.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아베마리아’다.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그들보다 가진 자들이 더 많지 않은가?




고통스런 삶이냐? 자유로운 삶이냐?
추운 날은 고통이고, 더운 날은 자유롭다.




처음 힘들 때는 고통스럽게 보였지만,
내가 익숙해지니 자유롭게 보이더라.




상대적이라 아무도 단정 못 한다.
그들에게 돌을 던지지 마라.

사진, 글 / 조문호












년 초 부터 잃어버린 카메라 찾으러 서울역 주변을 맴돌았으나, 허탕 쳤다.
카메라 가져간 노숙인 이종민씨는 물론이고, 같이 술 마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숙대입구나 영등포 등 다른 지역으로 옮긴 모양인데,
일단 카메라 찾는 것을 포기하고,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






지난 3일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술 마시는 노숙인은 아무도 없었고,
지하도에서 마시는 몇 명 밖에 만날 수 없었는데, 다 어디 갔을까?

추운 날씨인데다, 저녁식사 후라 따뜻한 곳에서 잠시 쉬는 듯 했다.






서울역2번 출구 옆에 있는 '다시서기 상담센터'로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60여명의 노숙인들이 티브이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공부를 하거나 핸드폰을 충전하기도 했지만, 이종민은 없었다. 






우체국 앞 지하보도의 응급대피소 앞에는 오후7시의 입실시간을 기다리는
노숙인들이 이십여 명 서성이고 있었고,
지하보도 입구에는 노숙인들의 짐 보따리가 여기 저기 쌓여 있었다.
응급대피 숙소에는 일인용 전기장판 하나로 잘 수 있는 구역을 정해 놓아
많은 짐은 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겨울철만 문을 여는 이 응급대피소는 112명이 잠잘 수 있는 숙소가 마련되어 있고,
숙대입구역 1번 출구에 있는 '다시서기 보호센터'는 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그 곳에 가지 않고 거리를 방황하는 홈리스는 대개가 알콜 중독자들이다.
그곳은 술을 마실 수도 없지만, 많이 취해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 술 취해 거리에서 자다보면 동사하기 십상인지라,
그들을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게 할 대책마련이 절실했다.
그 대책이란 것이 병원에 강제 수용하는 방법이겠으나,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그마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있는 그들을 방치하는 것은
죽음을 방임하는 거나 다름없으니, 그냥 둘 수도 없는 일이다.
노숙인 뿐만 아니라 쪽방 사는 빈민들도 알콜 중독자가 점차 늘어나는 것은
삶에 대한 희망도, 삶에 대한 낙도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술을 끊는 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도가 지나친 알콜 중독자를 병원에 강제 수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빠른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다시서기 상담센터'에서 잠시 몸을 녹이는 노숙인














한 해를 보내는 지난 31일은 왠지 일찍부터 마음이 들떴다.
몇 날을 송년회 핑계대고 퍼 마셨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종각 타종행사 같은 곳에 갈 수는 없잖아.

마침 ‘통인’의 관우선생께서 연락이 왔다.
낙원상가 밑의 ‘다리 밑 집’으로 오라는 것이다.
관우선생 단골집이지만, 좁아도 술집 분위기가 꽤 괜찮다.
마치 어린 시절 짚동 사이에 들어가 놀던 틈바구니 생각도 나지만,
집 이름이 너무 야하지 않은가?

인사동에 나가보니 낙원상가 가는 길이 꽁꽁 얼어붙어 몇 사람이나 넘어졌다.
연탄재라도 좀 뿌려야 했으나 요즘은 연탄재도 흔치 않다.
그런데, ‘다리밑 집’에 문이 잠겨 있었다.
연락했더니, ‘낙원아구찜’으로 옮겼다고 했다.

그 자리에는 관우선생을 비롯하여 송재엽씨 등 여러 명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미녀가 두분이나 있었다.
관우선생이 도예가와 큐레이터라고 소개했는데, 큐레이터라는 여인의 얼굴을 보니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사슴 눈처럼 큰 눈에 금방 눈물이 고일 것 같은 애잔함이 가득한데,
약간 도툼한 입술은 모든 기를 다 빨아들일 것 같은 강한 마력을 갖고 있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걸 눈치 챈 송재엽씨가 얼른 자리를 바꾸었다.
이런 저런 씨잘데 없는 이야기 나누며, 소주로 한 해의 여독을 씻었다.

이차로 다른 곳에 간다지만, 난 서울역으로 가야 했다.
한 해를 보내는 즈음이라 노숙하는 친구들과 한 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사동 최고의 부자나 인생의 벼랑에 선 사람이나 술마시고 노는 건 별 다를 바 없다.
쪽방 촌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가 기초생활수급자라 사는데 별 걱정은 없지만,
노숙자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을 부리는 것이 인간이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욕심 부릴 게 없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 대로 나누어 먹는 그들이 진정 비운 자라는 생각도 한다.

패트 소주 두병과 육포하나를 사들고 서울역으로 같다.
개찰구를 나오니 지하도 한 쪽 구석에 낯 익은 자들이 보였다.
이종민, 김종학, 김상훈씨등 여러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낄낄거리고 놀았다.
총무를 맡고 있다는 김종학은 ‘종학이를 아느냐?’며 계속 천원만 달랬다.
서울역에서 종학, 종철, 종민, ‘쓰리 종’을 모르면 간첩이라며 유세했다.

마침 세밑이라 그런지 온정을 나누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외국인 가족이 각기 봉투를 들고 왔는데, 그 안에는 빵 하나 우유 하나, 양말 한 컬레, 핫펙 하나가 들어 있었다.
난 고맙다며 사진까지 찍었으나, 다들 시큰둥했다.
술이 취해 했던 소리를 되풀이하거나 가끔은 금지된 노랫가락이 튀어 나오기도 했는데,
지나가는 역무원들이 제지시키며 나가라고 종용했다.
몸에 상처를 입은 동자동 최씨는 ‘다시서기’직원들이 휠체어로 실어갔다.

이종민이가 카메라를 달래서 주었더니, 이런 저런 모습을 찍어댔다.
마침 경찰의 강제 해산에 직면해 어지러운 술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선물이 담긴 봉지는 챙기지도 않은 채 그냥 두고 갔다.
그런데, 정리를 하고 나니, 종민이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가져간 카메라는 5년 전에 삼십만원에 구입한 NIKON Coolpix P310으로 지금은 단종 된 카메라다.
술자리에서 마구 사용한 고물이라 돈은 되지 않지만, 오늘 찍은 사진파일이 걱정되었다.
그 심장이 멎을 것 같았던 미인도 미인이지만, 같이 마신 친구들의 초상사진도 많았다.

다른 역으로 옮긴다면 모르겠으나, 서울역에 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것이다.
한편으로 배신감도 일었으나, 아무래도 물욕은 아닌 것 같았다.
나에겐 소중할지 모르지만, 그들에겐 쓰레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분명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더 가까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라는 듯...
그들 무리에 합류하고 싶으나, 추위가 두려워 탐색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카메라를 빼앗긴 무장해제 상태가 되니 지갑에 돈 떨어지듯. 온 몸에 힘이 쫙 빠졌다.
기관총 급인 라이카를 챙기러 동자동 방으로 올라갔다.
이 카메라는 고향후배인 사진가 하재은씨가 선물한 카메라인데, 

좋기는 하지만 술자리나 현장에서 막 쓰기는 불편하다.
찍히는 사람들도 피해의식부터 느끼니, 큰 행사나 많은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시 카메라를 챙겨 서울역지하도로 내려갔으나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새로 나타난 어느 노숙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 깔고 누워 있었다.


하는 수 없어, 해 바뀌는 시점에 함께 축배 들기로 약속한 녹번동 정영신씨를 찾아갔다.
오늘 일기장에 올릴 사진을 모두 잃어버렸다며, 내 얼굴 한 장 찍어달라며 카메라를 내 밀었다.
신년 인사를 겸한, 강한 의지가 담긴 그런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되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홈리스들이 왜 역을 안방처럼 생각하고, 서울역을 큰집처럼 생각할까?
역이니까 어디로던 쉽게 떠 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구걸하기 좋기 때문일 것이다.
기나 긴 역전의 세월이 쌓아 놓은 빈자들의 울타리다.
맞은편에 둥지 튼 양동과 동자동은 한 가닥 희망 촌 역할을 한다.






지난 22일은 충무로에서 열리는 사진전에 들려 낮부터 술을 마셨다.
돌아오다 보니, 서울 역 주변이 마치 전쟁터 같았다. 
총 맞은 듯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는데, 다들 술에 취해 있었다.
그래서, 홈리스를 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멀쩡한 놈이 일은 안하고 빈둥거린다'거나
'술만 마시고, 행패나 부리는 놈'이라는 등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들여다보면 다 사정이 있다. 더러는 게으름뱅이거나 알콜 중독자도 있으나,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요즘은 그들이 대포폰, 대포통장, 대포차, 바지사장 등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무슨 천형이나 받은 듯 특별한 계층으로 보지만, 노숙자 되기는 아주 쉽다.
정해진 주거가 없는데다 돈 떨어지고,
일용직을 구하고 싶어도 경쟁에서 계속 밀려나면 그냥 노숙자가 되는 거다.





4~50대에 실직한 뒤 고시원 쪽방 다 거치고 찜질방 전전하다
그마저 갈 돈이 없으면 그때부터 노숙한다.
청년층은 대학 졸업하고 취직이 안 되어 좌절하거나,
또는 계약직 전전하다 막히면 30대 중반부터 노숙자 신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사연이 절절하다.
대개 노숙인이 되는 과정은 질병이나 사고로 노동력을 잃은 사람이 많지만,
사업이 망하거나 실직, 빚보증을 잘 못서거나 가정불화로 나온 사람도 있고,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직업을 택한 경우도 많다.
주로 주먹쟁이나 운동선수, 군인, 예술가등이 그런 직종인데,
그 중 많은 게 운동선수와 주먹쟁이다.






지하도 계단을 지나다 노숙하는 김용규씨와 눈이 마주쳤는데, 술 한 잔 하고 가라는 듯 종이컵을 들어보였다.

상원이와 소령이를 거느리고 술판을 벌여놓았는데,
그는 구미가 고향인 씨름선수 출신이다.





김용규씨는 젊은 친구들을 잘 보살펴주어 동생들이 지극히 모신다.
술이 부족하여 오천 원을 꺼냈더니, 상원이가 냅다 달려가 소주 두병을 사왔다.
다들 폭주 하지 않고 서서히 즐기며 마셨는데, 나만 쭉쭉 들이켰다.





씨름꾼 시절의 삿바 이야기에서 부터 몇일 전에 일어났던 싸움이야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시비를 걸어 노숙인과 싸움이 붙었는데,
경찰이 노숙인만 나쁜 놈으로 취급했다며 열변을 토했다.
같이 주먹다짐을 해도 일반인보다 노숙자가 불리한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에게 인권이란 없다.







너무 답답하여 “술~ 술~ 술이 원수다‘란 케케묵은 노래를 불렀더니, 다들 질급을 한다.
역무원에게 당장 쫓겨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쫓겨나지 않으려 공중질서를 지키지만, 내가 더 못난 놈이었다.
상원이가 노래 말에 시비를 걸며 ”형! 술이 원수가 아니라 돈이 원수지요“라고 말했다.
조그만 소리로 다시 불렀다. “맞다 맞다 맞았다! 돈이 원수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울역 쪽으로 나가니, 노숙하는 김지은씨가 빨리 가자며 재촉했다.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났다고 했더니, 괜찮단다.






따라갔더니, 진짜 그때사 선물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지은씨 덕에 도시락과 화장지 선물을 받았는데, 타이밍이 귀가 막혔다.

예배와 공연으로 보내야 하는 지루한 시간을 생략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인생을 배우지만, 가끔은 약삭빠른 요령도 배운다.


이러다 사기꾼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2017년 12월 26일 (화) 17:19:06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es@sctoday.co.kr  


‘누가 패자인 홈리스에 돌을 던질 수 있겠나?’


지난 22일의 동지 날은 해마다 서울역에서 홈리스 추모문화제가 열리는 날이다. ‘홈리스 행동’을 비롯하여 ‘동자동 사랑방’등 40개 반빈곤인권사회단체가 연대한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에서 추진한 행사로, 무연고 홈리스 사망자들의 넋을 기리는 문화제다.

▲무연고 사망자를 애도하는 묵념을 올리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분향소가 마련되어 서울역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이 헌화하기도 했다.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죽음에 이른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을 알려 추모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야하는 홈리스의 복지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거리나 쪽방에서 죽은 무 연고자를 추모하는 자리지만, 무관심한 사람이 더 많았다. 국민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살펴야 한다고는 하나, 말뿐이다.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얼마 전 친구에게 지하도에서 연명하는 홈리스 이야기를 꺼냈더니, 핀잔을 주었다. 게으르고 술만 마시는 그들은 어쩔 수 없다며,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다. 너무 열 받아 한 마디 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마라. 네가 그 사람들 사정이나 한 번 들어 봤나? 돈이 사람을 망치는 세상의, 한 희생자일 뿐이다. 어쩌면 돈에 길이든 네가 더 잘 못 산 것인지 모른다.“

▲사망한 홈리스의 이름 위에 국화가 놓여있다.

세상이 정해놓은 논리에 순응하지 못해 비참하게 죽었는데, 누가 그들의 죽음에 돌을 던질 수 있겠나? 추모제가 열린 날은 다른 날에 비해 덜 추웠지만, 홈리스의 삶은 일 년 내내 혹한의 겨울이다.

매년, 거리에서 죽어가는 노숙자나 쪽방 촌 빈민들이 300여명이나 된다, 그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절실하지만, 편안히 눈감을 수 있도록 장례라도 제대로 치루어 주어야 한다.

▲홈리스 추모제가 열리는 서울역 야경

그 날 서울역광장에서 한 해 동안 세상을 떠난 빈민들을 추모하며, 살아남은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들에게 안정적인 주거와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죽어서나마 영혼이 구천을 떠돌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추모제에 참여할 기력도 없는 홈리스가 주변에 웅크려 있다

그 많은 무연고 사망자 중에 영정사진이라고는 세 사람 밖에 없었고, 다들 이름만 적혀 있었다. 무슨 놈의 팔자가 그토록 기구하여, 죽어가면서도 자기 얼굴 한 장 남기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홈리스 서정철씨가 촛불로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추모제에서는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법률상담, 홈리스 사진관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소리 없는 이들의 삶을 기록한 ‘홈리스 생애기록’이란 책도 출판하여 나누어 주었다. 홈리스들은 책 자체도 짐일 뿐인지라, 책보다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끓여 준 동지팥죽을 더 찾았다.

▲홈리스 김지은씨가 '동자동사랑방'에서 준비한 동지팥죽을 받고 있다

오후7시부터 시작된 추모제 본 행사에는 다들 촛불을 들고 무연고 사망자들을 넋을 기렸는데, '동자동 사랑방' 차재설씨가 나와 안타까운 추모사를 낭독했다. 노동가수 박준씨와 ‘노들장애인야학’의 박경석씨의 노래도 있었지만, 마음에 불을 지핀 건 김가영씨의 추모노래였다. ‘새로운 선택’이란 노래도 마음 아팠지만, ‘오! 자유여, 오! 기쁨이여, 오! 평등이여, 오 평화여’ 라고 열창한 노래에 피가 끓었다.

▲가수 김가영씨가 '새로운 선택'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추모공연이 끝난 후 죽은 홈리스의 은신처이기도 했던 서울역 구내를 비롯한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추모행진을 하며 구호를 외쳤다. “홈리스 차별을 철폐하라”, “홈리스 인권을 보장하라”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1세라지만, 홈리스의 평균수명은 48세라는 걸 잊지 말자.

▲'홈리스 차별을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빈민들

홈리스의 죽음은 스스로 택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방치한 죽음이다. 그들도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빈소도 빌리지 못한 채, 냉동 보관되다 화장터로 직행한다. 더 이상 홈리스의 죽음을 방치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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