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긋지긋한 더위가 물러가니,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왔다.

다들 귀성 준비하며 선물을 보내거나 음식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돌아갈 고향마저 잃은 동자동 사람들은 마음도 몸도 한가롭다.


 

인생 막장인 쪽방촌에 들어오기 전만 하더라도

명절만 되면 여기저기 돈 구하느라 전전긍긍하던 사람들이 아니던가?

다 포기하고 나니 잡다한 걱정은 끼어 들 틈조차 없다.


 

힘들어도 살아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걸 지켜보며 추억이라도 떠 올리지 않는가?

이젠, 세상에 대한 원망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다 타버린 촛물처럼 내려앉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속담처럼,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나은가?

모진 목숨 차마 끊지 못할 뿐, 저승을 그리는 사람이 더 많다.

술 한 잔에 모든 근심걱정 내려놓고, 실없는 웃음만 흩 날린다.


 

지난 9일은 동자동 멋쟁이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 잡고 동네 마실 나왔더라.

그래도 이 분들은 의지하고 사는 분이 있어 행복한 편인데,

요즘 할멈 건강이 신통찮아 운동 삼아 자주 나오신다.


 

골목에선 틈틈이 모아 둔 깡통을 손 수레에 옮겨 싣는 이씨의 표정이 넉넉했다.

고물 판돈으로 추석 장보러 갈 것이란다.

이 정도가 동자동의 희망적인 소식이라면 희망적이다.


 

지난 10일 오전에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로 골목이 소란스러웠다.

옆 건물에 사는 젊은이가 갑자기 호흡에 문제가 생겨 119를 불러 놓고, 병원가려고 길가에 나와 있었다.

미안해 내려와 기다렸으나, 구급요원 보기는 좀 떨떠름한 모양이다.


 

태풍 링링도 동자동에선 나뭇가지 정도만 부러트리고 도망쳤다.

삶의 의욕을 잃은 쪽방 사람들은 태풍도 두렵지 않다.

방에서 꼼짝 않거나, 술에 모든 것을 맡긴 체념한 사람들이다.

길바닥에 잠든 이들, 꿈이라도 행복 했으면 좋겠다.


 

지난11일은 오전10시부터 동자희망나눔센터'2층에다 추석명절 공동 차례상을 차렸다.

서울역쪽방상담소김갑록 소장과 주민 송범섭씨 등 몇 명이 차례를 지냈는데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들 고향을 잃어 조상까지 잊었단 말인가?

큰 절 올리고 약과 하나 얻어 내려오니, 공원에선 이른 시간부터 술판이 벌어졌더라.




그런데, 용성이네 두 모자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애미는 허벅지와 정갱이가 벌겋게 피멍이 들었고, 용성이는 온 얼굴에 상처투성이였다.

술에 젖어 사는 사람들이 5층 옥탑 방 까지 오르내리다 보니, 수시로 넘어져 몸이 성한 날이 없다.


 

얼마전만해도 아들 용성이가 술 끊었다는 말을 전하면서,

자식 자랑보다 술친구를 잃은 허전함의 그늘이 더 짙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둘다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정은 얼마나 많은지, 큰 컵에 소주를 벌컥벌컥 따라주고, 안주하라며 사과까지 나눠준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과 살기 위해 죽지 못한다는 말은 어느 것이 정답인가?

정답은 없다그냥 꼴리는 대로 살자.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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