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위가 꼬리 내려 가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밖에 나가 살랑거리기 좋지만, 쪽방은 아직 덮다.
그래서 동자동 입구나 공원에서 자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여름 철 동자동 주변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쪽방주민들이다.
사방이 뚫려 시원한 곳 놔두고 성냥갑 같은 방에 갇혀 땀 찔찔 흘릴 필요 있겠는가?
공원에 나갔더니 최씨가 개를 안고 나왔더라.
‘피치’는 최씨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고 새끼다.
그 좁은 방에 털숭이 끼고 자느라 땀띠 깨나 생겼을 거다.
내가 동자동에 주민 신고식 한지가 오늘로 딱 삼년 되었다.
기념할 소식이라도 있나 싶어 똥개 똥 찾듯 동내를 살피고 다녔다.
사람 죽어 나간 자리 다른 사람이 채웠을 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바뀌지 않듯, 다른 사람도 바뀌지 않았다.
완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완장 좋아하고,
칼자루 쥔 ‘서울역쪽방상담소’ 나리들 막힌 것도 여전하더라.
술에 중독된 사람들은 사는 것도 개판이었다.
그동안 새 삶을 찾아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구급차에 실려 죽어가는 사람만 숱하게 보았다.
동자동은 강민시인의 시처럼 ‘이승의 간이역’이고, ‘신판 고려장’이다.
잘 못된 것을 아무리 바꾸자고 방방 그려도 쇠귀에 경 일기다.
좆통수 불어도 동자동은 돌아가고 세상도 돌아간다는 것인지...
사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다 죽는 거지 별 것 있겠나?
아직 꿈을 못 깨 돈 돈하는 사람이 있는데, 죽고 나면 말짱 도루묵이다.
버티고 사는 날 까지는 재미있게 살자. 잘못된 것은 싸워서라도 편하게 만들자.
행복은 권력자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몇일 후 ‘동자동 사랑방’의 추석 잔치에서 신명나게 한 판 놀자.
“노세 노세 늙어 놀아, 죽고 나면 못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차면 기우나니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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