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한정식선생 생신 날에 식사 한 끼 대접하겠다는 약속을 작년부터 했다.

 

지난 18일 정오 무렵, 한정식선생을 비롯하여 김보섭, 이규상, 정영신, 안미숙씨 등

여섯 명이 추억이 많았던 ‘한일관’에 모여  축하 자리를 가졌다.

모두들 선생님의 건강하심을 바라는 축배를 들며, 웃는 시간을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친구'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곳에 주명덕선생과 최재균씨가 있었다.

주명덕선생의 단골집이라 행여 뵙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뵙게 된 것이다.

만나자 마자 “전시하며 왜 연락도 안 했냐?”며 나무라셨다.

 

할 말이 없었다.

장돌뱅이 노릇하며 정신없이 살다보니, 그동안 사진가들과 교류가 뜸했다.

전화번호도 없어 가끔 만나는 몇 몇 분을 제외하고는 알리지 못했는데, 너무 송구스러웠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한 해만에 없어 진 ‘최민식사진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주명덕선생께서 말씀을 꺼내셨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마추어가 주는 상을 프로가 받는 것은 스스로의 자존심을 다치게 한

일이라며 작년 수상자 이갑철씨를 나무랐다.

 

프로와 아마추어, 그 차이에 대한 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아픈 하루였다.

 

사진, 글 / 조문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한일옥

 

 

 

 

 

 

 

 

 

 

 

 

 

 

찡하다. 알듯 모를듯...

 

 

 

 

누가 더 편할까?

 

눈빛이 힘들다.

 

 

 



[인터뷰] 1980년대 홍등가 풍경 찍은 사진작가 조문호

 

 

송화선기자 spring@donga.com

 

 

1983년, 사내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뒤늦게 시작한 사진 작업에 빠져 부산살림을 정리하고 서울에 온 지 1년쯤 된 참이었다. ‘월간사진’ 편집장을 맡으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가족의 이해는 얻지 못했다. 지독한 가난과 남편의 무심함에 지친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부산으로 떠나버렸다.

 

“생각해보면 삶의 나락이었죠. 그때 여기서 위로와 안식을 얻었어요.”

 

어느새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사내와 바로 그곳,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답십리로 11길) 근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당시 서울 제일의 홍등가로 손꼽히던 곳,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젊은 여인들이 색색의 등불아래 서서 오가는 사내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이른바 '588'이다.

 

조문호 작가(사진)는 젊은 날 그 거리에서 자신의 소매를 붙드는 여인들과 인연을 맺었다. 신세타령 듣고 속내를 나누다 몸과 마음까지 주고 받았다. 그렇게 1년여간 부대낀 기록을 동아미술제에 출품해 1985년 사진 부문 대상을 받았다. 조 작가를 만난 건 당시 기록들을 모아 지금 서울 인사동에서 사진전 '청량리 588'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눈빛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의 사진집도 펴냈다.

 

588의 직업인 

 

30년 전 그가 남겨둔 기록의 더께를 열었다. 그 안에 담긴 건 누구나 볼 수 있는 뻔한 뒷골목 풍경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그늘 중에서도 가장 음습한 곳., '집창촌'이라 불리는 그 거리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만져질 듯 생생히 담겨 있다.  조 작가는 " 그 해 동아미술제 사진 주제가 '직업인'이었다. 나는 588 여인들'이야말로 이 주제에 적합한 피사체라고 여겼고,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꾸밈없이 찍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카메라 앞에 선 여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대가로 받은 돈으로 생계를 꾸리며, 남는 것은 알뜰히 모아 고향 어머니에게 부치던 이들이었다. 한 여인은 그의 작업에 대한 얘기를 듣고 "직업인이라는 주제가 마음에 든다"며 여기서 일하는 게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나를 구더기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견디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의 도움 덕에 조 작가는 여인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화장을 고치고 '직업적 노동'을 수행하는 순간의 모습가지 렌즈에 담았고, 그중 6점을 동아미술제에 출품했다. 1985년 3월 19일자 '동아일보'는 조 작가의 동아미술제 대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홍등가'는 감히 어느사진가가 손대기 어려운 상황 하의  직업인을 심층적으로 깊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진이었다'고 평했다.

 

그동안 어느 누구도 촬영하지 못한 뒷골목 사람들의 삶을 낱낱이 기록한 건 분명히 작업의 장점이었을 것이다. 그중 몇몇 작품은 센세이셔널하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오히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차분히 앉은 채 정면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마치 렌즈 너머 작가를 응시하는 듯 보이는 한 여인의 표정이었다. 조 작가는 그 사진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 아이가 바로 정숙이"라고 했다.  처음 그의 작업에 공감을 표했고, 친구들을 소개하며 적극적으로 응원해 준, 조 작가가 지금도 잊지 못하는 한 여인의 이름이다. 조 작가는 최근 펴낸 사진집 서문에 '정숙아! 혜련아! 당신들의 모습이 담긴 이 사진집을 혹시 보게 되면 내게 연락 한 번 주렴, 내 비록 거지 처지일지라도 소주 한 잔 살게'라는 편지를 남겼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청량리 거리를 걸으면서도 '혹시 정숙이가 여기서 뭐라도 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몰라요"하며 주위를 휘휘 둘러보곤 했다.

 

한국 현대사의 뒷골목

 

"우리는 그 시절, 이 작업을 통해 588에서 일하는 여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앨 수 있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현실의 벽이 높았죠. 1990년 프랑스문화원에서 '전농동 588번지 기록전'이라는 사진전을 열면서 이 여인들을 초대한다고 하자 언론의 관심이 온통 여인들에게만 집중됐어요. 결국 아무도 전시회에 오지 못했고, 제 시도가 실패했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날 이후 조 작가는 588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정숙이'도 만나지 못했다. 자신의 의도가 세상 안에서 왜곡돼 그들에게 상처로 남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 때문에 그동안 촬영한 사진과 필름도 꺼내 보지 않았다. 최근 588을 다시 떠올리게 된건, 곧 그 공간이 영영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조문호사진작가의 사진 속에는 1980년대 '588'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민낯이 생생히 담겨 있다.

 

 

2012년 12월, 서울시는 전농동 588번지일대 재정비 계획을 세웠다. 예정대로라면 2017년에는 그 자리에 60층 높이의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주상복합 마천루들이 주위를 두르게 된다. 마침 출판사로 부터 사진집 출간 제의를 받은 조 작가는 이번엔 거절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한국 현대사의 한순간을 담은 기록으로 이 작업을 세상에 꺼내 보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자신만큼이나 노인이 됐을 그 시절 여인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고 했다.

 

10년 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정영신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 그는 요즘 평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인생의 굴곡을 함께 건넜던 이들도 부디 행복했으면 하는 게 조 작가의 바람이다. 그리고 사진작가로서, 588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다시 한 번 뒷골목 풍경을 기록해두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다. 이제는 30여 년 전 그 시절처럼 그들 안에 들어가 부대끼며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기록자로서의 구실은 다하고 싶다고 한다.


 

‘청량리588‘전시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전시 종료를 이틀 앞둔 지난 주말에는 시인 강 민, 김가배 선생께서
김수영시인의 미망인이신 김현경선생을 모시고 오셨다.

김현경선생께서는 구십을 넘긴 연세지만 아직 짱짱하시다.
기억력이 너무 좋아 김수영선생의 생전 일화들을 심심찮게 들려주신다.
‘청량리588’전시를 둘러보신 후, 익숙한 풍경이라며 말씀을 꺼내셨다.

돌아가신 김수영선생께서 옛 홍등가인 ‘종삼’에 가끔 들리셨다는데,
한 번은 술이 취해, 아끼는 군용 털내의를 두고 나와 통탄해 하셨다고 한다.
어느 집, 어느 방인지도 몰라 안타까워하시기에, 다시 사주겠다며 달랬다는 것이다.
정말 간 큰 남편이고, 통 큰 아내였다.

그 날은 가수 최백호씨와 기와장 오세필씨도 들려 김명성씨와 함께 '툇마루'에서 점심을 먹었다.

최백호씨는 축구를 하다 넘어져 한 달 넘게 고생하였다고 한다.

점프를 하다 그만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머리로 바닥을 쳤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큰 일 날뻔한 사고로, 좋아하는 축구도 이제 못하게 됐다.

 

사진가로는 한정식, 전민조, 변홍섭씨가 오셨고,

눈빛출판사 이규상씨는 사진가 구본상, 이경수, 김봉규씨와 함께 들려 기념사진을 찍었다.

전 날엔 막차로 서양화가 장경호, 김정대씨가 찾아 와 ‘화신포차’에서 소주 한 잔하였는데,

이 날은 이대훈, 노인자 내외가 늦게 와 염소 고기집에서 소주 한 잔 했다,
옆 자리에는 서양화가 김종숙씨를 비롯하여 김명성, 박인식, 조근숙씨 일행도 있었다.

 

술, 웬수같지만 난 버리지 못한다. 세상이 술 취하지 않고는 살기 힘들게 만드니까.

술, 담배, 섹스, 모두 마약처럼 중독성을 가졌지만, 버릴 수 없고 버리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그 것 다 버리면, 사는 재미가 뭘까?.... 

 

 

글:조문호/사진: 정영신, 조문호

 

 

 


 

 

 

 

 

 

 

 

 

 

 

 

 

 

 

 

 

 

 

 

 

 

 

 

 

 

 

 

 

 

 

 


[MBC 잠깐만 캠페인]

 

지난 3월9일부터 15일까지 방송되는 'MBC 잠깐만 캠페인'에 전국5일장 순례기의 저자 정영신씨가 방송합니다.
하루에 다섯 번씩 방송되는 ''MBC 잠깐만 캠페인'에 많은 관심바랍니다. 아래는 캠페인 일정과 방송내용입니다.

 

 

[MBC 잠깐만 캠페인1] 장터는 움직이는 인생 박물관 / 3월 9일 월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어느날 부턴가 무작정

푸근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우리네 장터를 순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5일장을 다니며

소중하지 않은 만남은 없었는데요,

 

경기도 강화 풍물장에서 오랫동안

음식을 팔아오신 할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지만,

이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사는 거‘라구요.

 

장터에는 쉬지 않는 삶이 있고,

돈보다 귀한 사람살이의 정이 숨어 있는

움직이는 인생 박물관이나 다름 없습니다.

 

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2] 정 없는 장은 장도 아니다. / 3월 10일 화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요즘 많이들 가는 대형 할인점과는 달리

장터에서는 물건보다 사람이 중심입니다.

 

흥정을 하고 덤을 주고 받을 때도

정이 뚝뚝 묻어나는데요,

시골 장은 상품도 사고 팔지만,

훈훈한 인정도 함께 나누는 곳이죠.

 

어느 장터에서나 들리는

가장 우렁찬 소리는 뻥튀기 가게의

‘뻥~’하는 소리인데요,

이웃과의 정도 정감어린 이 소리에 맞춰서

더욱 커지고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3] 글쓰는 할머니 / 3월 11일 수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몇 해전, 진해 경화장터에서

야채 파는 전찬애 할머니를

처음 만났습니다.

 

장사를 하다 말고 할머니는

종이에다 뭔가를 열심히 쓰셨는데요,

알고보니, 어린 시절부터 장터에서 일하며

힘들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글을 쓰면 신기하게도 힘이 났다고 해요.

 

평생 장-돌뱅이로 살아온 분들 중에

숱한 고비를 지혜롭게 이겨낸 경우가 많은데요,

그 분들의 생생한 장터 인생 이야기에서

세상 살이를 배워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4] 사람을 만나러 장터에 나오다 /  3월 12일 목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하루는 충북 진천장에서

홍시감 몇 개를 가지고 나온

할머니에게 여쭤봤어요.

'할머니, 이거 팔려고 장에 까지 나오셨어요? '

 

할머니는 ‘그냥 사람들 보고 싶은 마음에

나와봤어~~‘ 하시더라구요.

시골 장터에는 장날이 유일한 외출이고,

장에 나와야 친구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누군가와 얼굴 보는 일보다는

문자나 전화에 익숙해져가는 시대지만,

장터 곳곳에서는 늘 반가운 만남의 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5 정도단 할머니 / 3월 13일 금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노래와 춤이 취미라는

정도단 할머니를 만난건

전남 진도 오일장에서 였습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손을 펼쳐 보이셨어요.

한 평생 맨손으로 칡을 캐는 바람에

거친 갈퀴손이 됐지만,

어머니로써 부끄럽지 않은 손이었죠.

 

우리네 시골 장터는 정 할머니 처럼

고단한 삶을 묵묵히 살아낸 이들의

땀과 눈물이 보석같이 빛나는 곳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6] 어릴적 장날은 축제날 / 3월 14일 토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

장날은 그야말로 축제의 날이었어요.

 

하얀 고무신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동네 어르신들 뒤로

장에 따라나설 때면,

얼굴엔 늘 웃음꽃이 피었는데요,

 

5일 마다 열리는 시골장의 정겨움은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달콤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나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7] 시골 장터의 봄날 풍경 / 3월 15일 일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시골 장터에서는 봄소식을

봄꽃이 아닌 봄나물이 전해줍니다.

 

추운 겨울을 견뎌낸

원추리와 돌나물, 씀바귀...

이런 것들로 봄날 장터에는

봄나물 향기가 가득하지요.

 

겨울에 들렀던 경기 안성 5일장에는

봄나물을 캐 둘테니

봄에 꼭 다시 오라는 인정 많은

할머니도 계셨는데요,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봄나물 향기 맡으러 시골 장터로

향해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골목 둘러보기, 국밥 먹어보기 등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정영신씨가 말하는 장터에서 할 일

“이 물건 안 사가면 후회해유. 많이 줄게 들어가유.”(충남 예산장)
“맵고 달삭한 맛이 없고 너무 싱겁데이. 고치를 덜 말린나. 좀 꼬꼬부리하네.”(경남 합천장)

“아따 성님, 내가 언제 속입디여. 조까 믿으씨요.”(전남 함평장)

“물이 좋쑤과. 1킬로에 얼마우꽈.”(제주 모슬포장)

정영신(58·사진 오른쪽)씨는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소설가다. 전국 522개 장터를 빠짐없이 훑고 다녔던 그는 지난 1월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를 펴냈다. 사진집 <한국의 장터>(2012)의 후속편인 이 책에서 장씨는 장터를 중계하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책 출판에 맞춰 남편 조문호(69·사진 왼쪽)씨와 함께 사진전 ‘장에 가자’를 연 정씨를 2월9일 서울 중구 인사동 아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두메산골 주민을 찍던 남편은 9년 전부터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정씨와 함께 장터를 돌아다니고 있다.

장보따리는 가방으로, 유모차로 바뀌고

장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년간 장터에서 “할매들과 놀다”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릴 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함평장이 열렸다. 엄마 따라 오일장에 가곤 했는데 그 추억이 아련했다. 신춘문예에 자꾸 떨어져서 사람을 더 알아야겠다, 깊이 소통해야겠다 싶어 장터로 향했다.” 그렇게 1년간 장터를 훑다보니 ‘변화상’이 눈에 들어왔다. 컬러텔레비전이 시골에까지 보급되면서 장꾼의 옷차림, 머리 모양이 바뀐 것이다. 그 모습을 정씨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인사동 암실(지금의 스튜디오) ‘꽃나라’와 동아리 ‘진우회’를 오가며 사진을 배운 터였다.


변화상은 30년간 이어지고 있다. 할머니들이 장보따리를 이고 다니다 점차 가방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유모차에 싣고 다닌다. 장옥도 달라졌다. 난장이 줄어들고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그러나 장꾼은 반기질 않는다. “공무원들이 새 장옥으로 몰아넣어도 할머니들이 (시멘트가) 썰렁해 들어가질 않는다. 겨울에는 양지바른 곳에서 몸을 녹여야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다.” 조씨가 말했다. 정씨는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장에 나오는 물건이 이 장이나 저 장이나 비슷해진 것을 아쉬워했다. 또 힘의 논리를 절감할 때는 엉엉 울기도 했단다. “20년간 장터의 명당 자리를 지키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바구니와 빗자루 등을 만들었는데 햇볕 잘 드는 곳이라 이웃 장꾼들이 어우러져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느 날 가보니 낯선 트럭이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 힘있는 자들이 할아버지를 내쫓아버린 거였다.”

안 돼요, 툭툭 건드리며 ‘이거 중국산이죠?’

그래도 전통과 인정을 맛볼 수 있는 장터가 아직은 남아 있다. 충남 예산장, 경남 합천장, 경북 경주 건천장, 전남 함평장, 전남 구례 산동장, 제주 모슬포장 등이 그렇다(상자 기사 참조). 장씨는 몇 곳은 10번도 더 가봤다고 했다. “석류를 맛있게 먹던 모습을 기억하고 할머니가 석류를 챙겨놓고 기다린다. 그 따뜻한 정이 그리워 발길이 자꾸 간다.”


가볼 만한 시골장터
주변 모든 좋은 것이 모여드는 곳

926년 개설된 충남 예산장 쌍송백이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에 펼쳐진다. 평소엔 주차장으로 쓰다가 장날이면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풀어 난장을 꾸민다. 보따리에선 가을에 수확한 콩과 말린 나물이 쏟아진다. 파라솔도 계절마다 설치가 달라진다. 겨울에는 파라솔이 누워 바람막이로 쓰였다가 여름에는 일어나 햇살을 가린다.

 

경남 합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보리, 콩, 참깨, 들깨 등의 곡식을 비롯해 무, 배추, 고추, 양파, 마늘, 수박, 우엉, 토란, 감자에서 백작약, 구기자, 질경이, 당귀 같은 약재까지. 이 모든 것이 인근 마을에서 재배돼 장터로 흘러 들어온다. 예전엔 인근 늪지대에 사는 여인네들이 모두 가물치, 메기, 뱀장어 등 민물고기를 이고 와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수가 줄어들어 몇몇 할머니들만 눈에 띈다.

경북 경주 건천장 전통의 멋과 맛이 그대로 묻어난다. 장옥을 덮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과 함석 미닫이문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일부러 만들어놓은 풍경처럼 느껴진다. 장꾼들이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고단한 사람살이를 부려놓는, 끈끈한 정도 변함없다.

 

전남 함평장은 100년이 넘었다. ‘두루 평평한 땅’이라는 이름 그대로 산지보다 평야가 많아 지역 특산물과 농산물이 넘쳐난다. 함평만에서 잡아온 수산물과 축산물도 거래된다. 함평장 뒤에는 육회비빔밥집이 즐비하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신선한 재료만을 이용한단다.


1956년 7월에 개설된 전남 구례 산동장 2일과 7일에 열린다. 구례장의 한 귀퉁이밖에 안 되는 조그만 장이지만 산수유를 수매하는 12월 초부터 1월까지는 성시를 이룬다. 산동면 58개 마을이 새벽부터 갖고 나온 산수유 때문이다. 산동은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로, 1천 년 된 산수유 나무도 있고 생산량도 전국의 74%를 차지한다. 장에 나온 사람들은 “어째, 산수유 많이 땄는가?”로 시작해 “많이 따이소”로 인사를 끝낸다. 산동장은 오전 10시가 넘으면 서서히 파하기에 ‘파싹장’이라고도 불린다.

 

제주 모슬포장 공식 이름은 대정오일장이지만 모슬포장으로 더 유명하다. 제주답게 귤이 종류별로 나와 있고 자두며 복숭아, 참외, 수박 등 색색의 과일들이 화려하다. 어물전에선 갈치가 은빛을 뽐낸다. 장터 머리에선 바다가 보인다. “어디 감수꽈?”(어디 가십니까?)로 표현되는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에서 토속적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장터에서 꼭 해야 할 것을 물었다. 장씨는 첫째, 할머니들과 눈을 맞추며 얘기하라고 권했다. “봄 장터에 가면 할머니가 캔 봄나물이 나와 있다. 3천원어치 쑥을 사면서 ‘참 예쁘게 다듬었어요’라고 칭찬해보라. 덤은 물론이고 첫사랑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둘째, 골목을 둘러보라. 장터에 가면 흔히 큰길만 훑어보는데 고유한 특색은 뒷골목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골목을 둘러보며 그들만의 일상을 엿보는 것과 비슷하다. 셋째, 국밥 먹기.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식재료로 장터에서는 국밥과 밑반찬을 만들어 값싸게 내놓는다. 국밥집은 보통 장날과 장이 열리기 전날만 연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날이 되면 장꾼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막걸리 잔을 부딪친다. 놓칠 수 없는 장터 현장이다.

장씨는 장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설명했다. “툭툭 건드리면서 ‘이거 중국산이죠?’라고 묻지 마라. 그렇게 무례하게 굴면 자긍심이 강한 장꾼들이 크게 화낸다. 그들은 갖고 나온 물건이 얼굴이고, 장터가 살아온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이끌려 장씨는 30년간 장터를 들락거렸다. “장터는 사람과 물건이 만나는 곳이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세월과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느끼는 끈끈한 감정은 그대로다.”

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눈 맞추며 칭찬하면 첫사랑 이야기도 듣게 돼요”

골목 둘러보기, 국밥 먹어보기 등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정영신씨가 말하는 장터에서 할 일

한겨례 21 제1051호

 

“이 물건 안 사가면 후회해유. 많이 줄게 들어가유.”(충남 예산장)

“맵고 달삭한 맛이 없고 너무 싱겁데이. 고치를 덜 말린나. 좀 꼬꼬부리하네.”(경남 합천장)

“아따 성님, 내가 언제 속입디여. 조까 믿으씨요.”(전남 함평장)

“물이 좋쑤과. 1킬로에 얼마우꽈.”(제주 모슬포장)

정영신(58·사진 오른쪽)씨는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소설가다. 전국 522개 장터를 빠짐없이 훑고 다녔던 그는 지난 1월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를 펴냈다. 사진집 <한국의 장터>(2012)의 후속편인 이 책에서 정씨는 장터를 중계하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책 출판에 맞춰 남편 조문호(69·사진 왼쪽)씨와 함께 사진전 ‘장에 가자’를 연 정씨를 2월9일 서울 중구 인사동 아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두메산골 주민을 찍던 남편은 9년 전부터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정씨와 함께 장터를 돌아다니고 있다.

 

 

장보따리는 가방으로, 유모차로 바뀌고

 

장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년간 장터에서 “할매들과 놀다”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릴 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함평장이 열렸다. 엄마 따라 오일장에 가곤 했는데 그 추억이 아련했다. 신춘문예에 자꾸 떨어져서 사람을 더 알아야겠다, 깊이 소통해야겠다 싶어 장터로 향했다.” 그렇게 1년간 장터를 훑다보니 ‘변화상’이 눈에 들어왔다. 컬러텔레비전이 시골에까지 보급되면서 장꾼의 옷차림, 머리 모양이 바뀐 것이다. 그 모습을 정씨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인사동 암실(지금의 스튜디오) ‘꽃나라’와 동아리 ‘진우회’를 오가며 사진을 배운 터였다.


 

변화상은 30년간 이어지고 있다. 할머니들이 장보따리를 이고 다니다 점차 가방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유모차에 싣고 다닌다. 장옥도 달라졌다. 난장이 줄어들고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그러나 장꾼은 반기질 않는다. “공무원들이 새 장옥으로 몰아넣어도 할머니들이 (시멘트가) 썰렁해 들어가질 않는다. 겨울에는 양지바른 곳에서 몸을 녹여야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다.” 조씨가 말했다. 정씨는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장에 나오는 물건이 이 장이나 저 장이나 비슷해진 것을 아쉬워했다. 또 힘의 논리를 절감할 때는 엉엉 울기도 했단다. “20년간 장터의 명당 자리를 지키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바구니와 빗자루 등을 만들었는데 햇볕 잘 드는 곳이라 이웃 장꾼들이 어우러져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느 날 가보니 낯선 트럭이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 힘있는 자들이 할아버지를 내쫓아버린 거였다.”

안 돼요, 툭툭 건드리며 ‘이거 중국산이죠?’

 

그래도 전통과 인정을 맛볼 수 있는 장터가 아직은 남아 있다. 충남 예산장, 경남 합천장, 경북 경주 건천장, 전남 함평장, 전남 구례 산동장, 제주 모슬포장 등이 그렇다(상자 기사 참조). 장씨는 몇 곳은 10번도 더 가봤다고 했다. “석류를 맛있게 먹던 모습을 기억하고 할머니가 석류를 챙겨놓고 기다린다. 그 따뜻한 정이 그리워 발길이 자꾸 간다.”

 

가볼 만한 시골장터

주변 모든 좋은 것이 모여드는 곳

 

926년 개설된 충남 예산장은 쌍송백이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에 펼쳐진다. 평소엔 주차장으로 쓰다가 장날이면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풀어 난장을 꾸민다. 보따리에선 가을에 수확한 콩과 말린 나물이 쏟아진다. 파라솔도 계절마다 설치가 달라진다. 겨울에는 파라솔이 누워 바람막이로 쓰였다가 여름에는 일어나 햇살을 가린다.

경남 합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보리, 콩, 참깨, 들깨 등의 곡식을 비롯해 무, 배추, 고추, 양파, 마늘, 수박, 우엉, 토란, 감자에서 백작약, 구기자, 질경이, 당귀 같은 약재까지. 이 모든 것이 인근 마을에서 재배돼 장터로 흘러 들어온다. 예전엔 인근 늪지대에 사는 여인네들이 모두 가물치, 메기, 뱀장어 등 민물고기를 이고 와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수가 줄어들어 몇몇 할머니들만 눈에 띈다.

 

경북 경주 건천장은 전통의 멋과 맛이 그대로 묻어난다. 장옥을 덮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과 함석 미닫이문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일부러 만들어놓은 풍경처럼 느껴진다. 장꾼들이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고단한 사람살이를 부려놓는, 끈끈한 정도 변함없다.

 

전남 함평장은 100년이 넘었다. ‘두루 평평한 땅’이라는 이름 그대로 산지보다 평야가 많아 지역 특산물과 농산물이 넘쳐난다. 함평만에서 잡아온 수산물과 축산물도 거래된다. 함평장 뒤에는 육회비빔밥집이 즐비하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신선한 재료만을 이용한단다.

1

956년 7월에 개설된 전남 구례 산동장은 2일과 7일에 열린다. 구례장의 한 귀퉁이밖에 안 되는 조그만 장이지만 산수유를 수매하는 12월 초부터 1월까지는 성시를 이룬다. 산동면 58개 마을이 새벽부터 갖고 나온 산수유 때문이다. 산동은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로, 1천 년 된 산수유 나무도 있고 생산량도 전국의 74%를 차지한다. 장에 나온 사람들은 “어째, 산수유 많이 땄는가?”로 시작해 “많이 따이소”로 인사를 끝낸다. 산동장은 오전 10시가 넘으면 서서히 파하기에 ‘파싹장’이라고도 불린다.

 

제주 모슬포장의 공식 이름은 대정오일장이지만 모슬포장으로 더 유명하다. 제주답게 귤이 종류별로 나와 있고 자두며 복숭아, 참외, 수박 등 색색의 과일들이 화려하다. 어물전에선 갈치가 은빛을 뽐낸다. 장터 머리에선 바다가 보인다. “어디 감수꽈?”(어디 가십니까?)로 표현되는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에서 토속적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장터에서 꼭 해야 할 것을 물었다. 장씨는 첫째, 할머니들과 눈을 맞추며 얘기하라고 권했다. “봄 장터에 가면 할머니가 캔 봄나물이 나와 있다. 3천원어치 쑥을 사면서 ‘참 예쁘게 다듬었어요’라고 칭찬해보라. 덤은 물론이고 첫사랑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둘째, 골목을 둘러보라. 장터에 가면 흔히 큰길만 훑어보는데 고유한 특색은 뒷골목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골목을 둘러보며 그들만의 일상을 엿보는 것과 비슷하다. 셋째, 국밥 먹기.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식재료로 장터에서는 국밥과 밑반찬을 만들어 값싸게 내놓는다. 국밥집은 보통 장날과 장이 열리기 전날만 연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날이 되면 장꾼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막걸리 잔을 부딪친다. 놓칠 수 없는 장터 현장이다.

 

정씨는 장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설명했다. “툭툭 건드리면서 ‘이거 중국산이죠?’라고 묻지 마라. 그렇게 무례하게 굴면 자긍심이 강한 장꾼들이 크게 화낸다. 그들은 갖고 나온 물건이 얼굴이고, 장터가 살아온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이끌려 장씨는 30년간 장터를 들락거렸다. “장터는 사람과 물건이 만나는 곳이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세월과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느끼는 끈끈한 감정은 그대로다.”

 

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21일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개장된 정영신, 조문호의 ‘장에가자’ 사진전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개장식에서 만난 분으로는 민속학자 심우성선생, 행위예술가 무세중, 무나미씨,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시인 강 민, 민 영, 황명걸, 서정춘, 김신용, 천성우, 조준영, 김명성, 송상욱, 김낙영, 김영재씨, 만화가 박기정씨, 사진가 육명심, 한정식, 전민조, 엄상빈, 김남진, 김지연, 이석필, 김문호, 배병수, 안해룡, 이수만, 김상현, 이수영, 곽명우, 고 헌, 권양수씨, 서양화가 신학철, 강찬모, 장경호, 전인경, 정복수, 박불똥, 성기준, 전강호, 허미자, 서길헌, 조경석씨, 한국화가 황외성, 주승자씨, 미술평론가 곽대원씨, 건축가 임태종씨, 연극배우 이명희씨, 무용평론가 이만주씨, 팝페라가수 전은주씨, 인터리어 디자이너 김의권씨, 최혁배변호사, 이성 구로구청장, 김수복 정선군청 문화과장,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 성윤미씨, 조경연, 김우진, 배성일, 강인구, 박시교, 신신자, 하재은, 김윤한, 정승재, 김민철, 김 구, 남연정, 백영웅, 방동규, 정정은, 장종수, 장한결, 이명옥, 김상현, 이기남, 임경일, 강선화, 홍성식, 공윤희, 이지녀, 한진희, 임계재, 클라라, 곽성훈, 김윤한, 하태웅씨 등이다.

그리고 전시 개막식과 뒤풀이를 비롯하여 초상사진 촬영 등 이번 전시회에 여러 가지 도움을  준 ‘사진바다’의 사진가 곽명우씨에게 거듭 감사드린다.

 

사진 / 곽명우 : 글 / 조문호

 

 

 

 

 

 

 

 

 

 

 

 

 

 

 

 

 

 

 

 

 

 

 

 

 

 

 

 

 

 

 

 

 

 

 

 

 

 

 

 

 

 

 

 

 

 

 

 



기사 관련 사진
가장 북적이고 활기 돋는 장터 가운데 하나인 강원도 정선오일장.
ⓒ 정영신

관련사진보기


집에서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경기도 성남 모란역 앞 모란장, 일산역 앞 일산장, 파주 문산역 앞 문산장 등 수도권에 있는 오일장 장터들을 알게 된 건 정영신 작가의 사진집 <한국의 장터>를 읽고 나서다.

특히 아파트들이 빈틈없이 들어선 신도시 일산에선 능숙한 솜씨로 여러 모양의 칼을 다루는 칼갈이 할아버지, 각종 곡식이 담긴 양철통 옆에서 연신 쇠통을 돌리는 뻥튀기 부부, "꼬끼오~" 우렁찬 목소리로 우는 수탉 등의 모습들은 언뜻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외에 강원도 양양장에서 제주도 모슬포장까지 책 속엔 500개가 넘는 오일장터 사진들이 담겨 있다. 사진들을 보며 아직도 전국 동네방네 곳곳에 저마다의 날짜에 맞춰 오일장들이 서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소읍은 물론 시골 마을까지 들어선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편의점들의 세상에서 이런 오일장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자생하고 있다는 게 고마웠다. 이후 여행 삼아 가까운 곳부터 찾아가보곤 했다.

내겐 좋은 여행 가이드이기도 했던 <한국의 장터>의 저자 정영신 작가가 남편인 조문호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와 함께 전국의 오일장 522곳을 약 30년에 걸쳐 기록한 사진들을 모은 사진 전시회 <장에 가자>를 열고 있다(오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1987년부터 최근까지 전국의 전통 시장을 돌며 사진으로 담아낸 작품 80여 점을 볼 수 있다. 추억 속 장터와, 동네주민이자 장꾼들의 삶, 장터의 변두리 풍경 등이 정겨우면서도 애잔하게 펼쳐진다.

정겨움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우리네 장터

기사 관련 사진
간간이 보이는 흑백사진은 더욱 진하고 뭉클하게 다가온다.
ⓒ 정영신

관련사진보기


국민 반 이상이 모여 사는 아파트, 모든 것이 편리하지만 이웃 간 소통하고 사는 이는 드문 한국의 도시. 이렇게 팍팍하고 메마른 도시 생활에 도무지 정이 안 갈 때 찾은 오일장은 고향 같은 푸근함을 느끼게 해줬다. 유년 시절 방학 때마다 놀러 갔던 시골 외갓집에 대한 기억이 유일한 내게 오일장이 펼쳐지는 공간은 고향의 정감을 나눠주는 곳이다.

그런 정경을 기대하고 찾아간 사진전에서 의외의 풍경과 마주쳤다. 아내인 정영신 작가의 감성적이며 푸근한 인간미가 넘치는 사진들이 있는가 하면, 남편인 조문호 작가의 사진은 마트와 시대에 밀려나고 있는 장터에 드리운 그늘과 스산함을 담아냈다. 승자보다는 패자, 강자보다는 약자에 시선을 돌려 톺아보는 다큐멘터리 사진 앞에서 자꾸만 서성였다.

기사 관련 사진
마트와 시대에 밀려 스러져가는 시골 오일장.
ⓒ 조문호

관련사진보기


시대를 기록하고 증언하는 생생한 현장감 외에 그만의 내공과 미학이 느껴지는 조문호 작가의 '불편한' 사진들은 묘한 공감과 감동을 전해줬다. 타인의 어려움과 아픔에 동정심보단 혐오를 드러내는 삭막한 시대에 다큐멘터리 사진이 좋은 보루가 되겠구나 싶었다.

전시장은 정 작가의 '희망을 엮는 집어등'으로 시작해 조 작가의 '장날, 그 쓸쓸한 변두리 풍경'으로 끝난다. 잔돈을 거슬러주며 물건 파는 장꾼의 생동감 있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짐을 짊어지고 어딘가로 가는 노인의 쓸쓸한 뒷모습 사진은 내 부모의 모습 같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컬러 사진 외에 간간이 보이는 흑백 사진 또한 푸근한 장터를 색다르게 느끼게 했다. 화려한 색을 뺀 단순한 흑백 사진이지만, 사진을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여러 감정이 배어 나왔다. 손님이 뜸한 늦은 오후 머리를 맞대고 단출하게 차린 밥을 먹고 있는 장꾼 부부. 사람이 그리워 채소 몇 단, 호박 몇 덩이 가지고 나와 장터 외진 곳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할머니. 하루 종일 바람과 햇볕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도 오일장터를 지키는 사람들의 사진은, 누가 굳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말해주지 않아도 정겨우면서도 아릿했다.

소중하게 지키고 보존해야 할 생활 문화 박물관, 오일장

기사 관련 사진
전시회장에서 관람객을 맞이해 주는 부부 다큐 사진가 정영신, 조문호 작가.
ⓒ 마동욱

관련사진보기


한국은 1970, 1880년대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 국민이 됐지만, 마을 공동체와 정다운 이웃 사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느 외국 작가의 말대로 기적을 이뤘지만, 기쁨을 잃고 말았다. 약자를 배려하고 슬픔과 고통을 함께하던 미풍양속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렇게 경제적 부(富)와 바꾼 것들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모여 아직도 이렇게 오일장터가 남아 있게 된 것일 게다.

오일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오일장은 서양의 대형 할인마트처럼 대량으로 상품이 거래되는 곳이 아니라 5일간의 일용할 양식과 물품을 장만하던 소박한 유통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강점은 서구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람 간의 교류와 정(情)이라는 무형의 물품이 함께 유통된다는 것.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거나 교환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대처의 소식을 듣거나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광장이요 소통의 공간이었다. - 정영신 사진집 <전국 오일장 순례기> 가운데

동학 혁명이나 3·1운동도 장날을 참고해 전개됐다 하니, 오일장의 사회적 의미는 큰 것이었다. 두 작가 또한 "​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그 지역의 생활 문화를 꽃피우는 무대요, 전국에 흩어진 장터들은 우리가 소중하게 지키고 보존해야 할 생활 문화 박물관"임을 강조한다.

기사 관련 사진
오일장터 사진 앞에서 옛 추억을 나누는 어르신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장터에 가면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장면이 오롯이 담긴 사진들은 언뜻 '이런 사진은 나도 찍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눈으로 보기는 쉬워도, 사진에 담아내기 어려운 게 장터 사진이다. 생계가 걸린 고된 장터 일을 하는데 낯모르는 타인이 와서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전시장에 정영신 작가가 나와 있길래 어떻게 장터 사진을 자연스럽게 찍을 수 있었는지 몇 가지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카메라보다는 먼저 인사를 건네고 물건도 사고, 조금씩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오일장터에 구경 가서 사진을 찍게 될 때 참고해야겠다.

 

 

오마이뉴스/김종성 시민기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