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피서객들을 위한 사진전 '프로젝트 장에가자2'가 오는 7월 20일부터 8월15일까지

정선시외버스터미널 문화공간에서 열립니다.

 

정선문화원이 주최하고 정선군이 후원하는 본 기획전에는 정영신의 '추억의 장터풍경'과

조문호의 '정선아리랑시장의 신바람'이 함께 전시됩니다.

 

전시기간중 7월31일(금), 8월1일(토), 8월2일(일), 8월7일(금), 8월8일(토), 8월12일(수),

8월15일(토), 일주일 동안은 오일장을 사랑하는 관람자들께 작가가 직접 초상사진을 찍어

주는 '장터 추억 만들기'퍼포먼스가 진행됩니다. 

 

위 날자에는 작가가 전시장에 상주하오니, 혹시 정선 오시는 걸음이라면 한 번 들려 주세요.

막걸리라도 한 잔 하게...

 

조문호

 

 

 

 

 

 

 

 

 

 

 

인사동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게 술이다.

친구와 술은 너무 오랜 세월 같이 했기 때문이다.

 

 

지난15일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 거닐기도 좋았다.

누구라도 만나면 소주 한 잔 나누고 싶었다.

 

 

일주일 동안 대마초 고백에 연루되어 꼼짝하기 싫었다.

그러나 긴 세월 가슴에 묻고 산 걸 털어내니 속은 후련했다.

 

 

인사동 거리는 여전히 메리야스에 겁먹어 한산했다.

사람들이 줄어드니, 얼핏 예전의 인사동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손님 없어 한숨짓는 사람들 보니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인사동에서 만난 아내가, 술 생각나는 내속을 눈치 챈 것 같다.

지나치다 들린 '유목민'에서 시인 김명성씨를 만났다.

"김선생님 오늘은 제가 술 한 잔 대접 할게요." 아내가 선수를 쳤다.

아직 술시간이 이르니 광화문의 '북한사진전'부터 가잖다.

 

 

오늘은 너무 많이 돌아다녀 다리가 아팠다.

거리에서 사진가 박진호씨와 서양화가 성기준씨, 현장스님

만났으나 아쉽게 헤어졌다.

매번 그렇지만 내가 만든 자리가 아니라 눈치가 보여서다.

 

'나주곰탕'에서 같이 소주 한 잔 했으면 딱 좋으련만.....

 

 

사진,글 / 조문호

 

 

 

 

 

 

 

 

 

 

 

 

 

 

사람이 그리워 인사동에 나간다.

인사동 어디에선가 반가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만, 때론 만나자는 연락들을 주고 받기도 한다.

 

인사동하면 그림판이고, 그림판하면 서양화가 장경호씨를 떠 올린다.

인사동 그림판의 마당발 장경호씨를 만난 지가 한 달도 넘어

오랜만에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자며 문자메시지를 날렸다.

 

싫어하는 사람 안 보고, 싫어하는 말에 참지 못하는 꼬장꼬장한 성격으로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징그러운 그런 사이다.

 

지난 5일 오후 6시30분경 인사동 ‘툇마루’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난감한 일이 생겼다.

끌고 다니던 자동차 정기검사에서 불합격을 받아 수리를 해야 했다.

몇일 전에도 정선의 급경사 절벽 앞에서 후진이 되지 않아 가까스로 견인된 일이 있었다.

더 이상 돈 들이기 아까웠지만, 할 수 없어 수리를 맡겼는데 시간이 30분이나 지체되어 버렸다.

 

뒤늦게 아내와 나간 인사동 거리는 메르스인지 메리야스인지 헷갈리는 전염병으로

거리에 사람들도 줄었지만, 마스크 가판대란 별난 것도 생겨났다.

 

‘툇마루’에는 장경호씨와 한양대 무용과 장순향 교수가 먼저 와서 마시고 있었다.

민예총 부이사장 직책까지 뒤집어 쓴 장순향씨는 매번 돈 안 되는 공연에 끌려 다니다 모처럼 돈 되는 공연 하나 생겼는데,

망할 놈의 메르스란 병 때문에 공연 자체가 취소되었다며 불만을 털어 놓았다.

 

그 날은 우연찮게 시작된 자동차이야기로, 술 마시는 내내 자동차로 시작해 자동차로 끝났다.

 

장경호씨가 형한테 딱 맞는 차라며 추천했으나 차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9인승 밴 종류의 차 이름은 다 들먹였으나 모두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다 사방팔방에 전화를 해 대는 것이다.

끝내 알지 못하자 타 보았던 차 주인을 수배해 결국 ‘트라제’란 이름을 알아낸 것이다. 정말 의지의 사나이였다.

얼마나 그 차에 쏠렸으면, 다음 달쯤 자기가 돈을 마련해 줄 테니 중고차 하나 사라는 것이다.

 

자동차이야기로 두어 시간을 보내다 ‘무다헌’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곳에는 노래 부르는 ‘마로니에’ 일행들이 먼저 장악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들린 ‘무다헌’의 실내 분위기도 약간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고장 난 노래방 기계 덕분에 돼지 목 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나

장경호씨가 특별 부탁한 한대수 노래 ‘하루아침’이 최고의 분위기로 이끌었다.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소주나 두 잔 마시고 소주나 석 잔 마시고 일어났다.”

 

모두들 취해 뿔뿔이 헤어졌다.

 

지하철 타러 가는 길에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듯 ‘유목민’에 잠시 들렸는데,

연극배우 이명희씨가 일본화가 木內 万宇씨를 비롯한 전진열, 설 송씨와 함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명희씨가 반가웠으나, 그동안 고관절이 부러져 두 달이나 입원했었다고 한다.

왜 연락하지 않았냐며 나무랐지만, 인사동 사람들의 경조사를 알려주던 ‘창예헌’의 존재가 세삼 아쉬웠다.

 

아무리 각박한 인심 속에 산다지만 서로 연락하고, 만날 수 있는 비상구 하나 쯤은 있어얄텐데...

 

사진,글 / 조문호

 

 

 

 

 

 

 

 

 

 

 

 

 

 

 

 

 

 

 

 

 

 

 

 

수요일을 맞은 지난 3일의 인사동은 인파가 평소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메르스란 전염병 여파로 중국관광객들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았고, 서양인 관광객들은 더러 보였다.

그 외는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러 인사동을 찾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오후6시 무렵, 예기치 않게 아내 정영신과 ‘아라아트’ 김명성씨를 거리에서 만났고,

‘유목민’으로 가다 도화가 오만철씨와 김은경씨 일행도 보았다.

‘유목민’에는 제주 김상철씨와 경주의 정비파씨가 먼저 와 있었는데,

뒤늦게 이상훈씨와 전인미씨가 찾아와  술자리에 함께 어울렸다.

 

목판화가인 정비파씨는 안면은 많았으나 그동안 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는데,

휴대폰으로 보여 준 그의 작품 수준이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오는 7월 중순부터 열릴 ‘아라아트’ 초대전이 벌써 기다려진다.

 

사진,글 / 조문호

 

 

 

 

 

 

 

 

 

 

 

 

 

 

 

 

 

 

 

 

 

 

 

 

 

 

 

 

 

 

 

 

 

 

 

김포 월곶면의 살림집에 들어앉은 별난 전시장 '민예사랑'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지난 5월20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초대전은 도예가 변승훈씨와 서양화가 최선호씨의 '빙빙유람'전 이었다.

 

'민예사랑'은 꽃 피는 오월을 맞아 일 년에 한 차례만 전시를 연다는데, 올 해로 벌써 열세 번째 전시라고 한다.

 

동양화가 출신의 서양화가 최선호씨와 섬유미술가 출신의 도예가 변승훈씨는 전공을 바꾸어

또 다른 세계를 개척한 이력이 서로 엇비슷하다.

 

 

추상화 중 추상화인 미니멀리즘으로 무장한 화가 최선호씨는 한국의 색을 탐구하는 작가로 알려졌는데,

단색으로 이루어진 시적 느낌의 추상화가 매우 인상깊었다.

 

 

변승훈씨는 분청사기기법을 현대화한 부조작업으로 도자벽화 등 여러 가지 설치작품들을 만든 실험적인

성향의 작가인데, 덤벙기법으로 제작된 그의 분청그릇들은 자유분방한 멋을 한 껏 풍기고 있었다.

 

 

실내에는 품격있는 조선의 고가구 사이사이로 단색의 그림과 분청 그릇의 정겨운 질감이 오밀 조밀 전시되어 있었고,

정원에는 돌확과 장대석, 동자석등 몇 백 년은 됨직한 갖가지 골동들이 토종 나무들과 어울려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서양화가 문영태씨의 아내 장재순씨는 인사동에서 30여 년 동안 '민예사랑'이란 앤티크숍을 운영해 온 골동전문가지만

이렇게 훌륭한 생활공간을 갖추고 오순도순 사는지는 미처 몰랐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보여주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두 부부의 생활이라는 점이다.

작품이나 생활 용품 모두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절하게 배치해 주변과 조화를 이루었다.

 

문영태씨는 내가 동강생태환경 기록하려 정선 만지산에 가서 눌러 앉듯이

민통선 따라가는 기행문을 연재하다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앞 창문을 통해 북한 산하가 바로 눈에 들어오니, 늘 남북을 오가는 셈이다.

 

그런데 전시회를 개최하며 방명록 첫 장에다 '봄맞이, 이천 몇 년 꿈속에서'란 글을 쓰며

자신의 이름 영태를 적는다는 것이 우연찮게 용태로 적었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글 쓴 날이 김용태씨가 세상을 떠난 지 일주기가 되는 날이었단다.

 

"전시회 준비하느라 일주기에 참석하지 못해 '용태형'이 직접 찾아 왔다"며 그가 웃었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7일 아침, 서양화가 문영태씨로 부터 전시회에 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연락이기도 하지만, 내일 전시가 끝난다고 해서 더 당황스러웠다.

예정된 일정을 바꾸어, 네비의 안내를 받아가며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꼬불꼬불 좁은 길을 따라가다 북한을 눈앞에 둔 서해안 최북단마을에 멈춰 섰다.

문영태, 장재순씨 부부가 사는 ‘민예사랑’은 정말 기막힌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저쪽 물 건너  있는 산들이 북한의 개풍군이라는 말에
"오늘 술 한 잔 먹고 넘어 가야겠다"며 흰소리까지 해댔다.

그런데 위치도 위치지만 고관대작의 저택인지 미술관인지 살림집인지 도저히 분간이 안 되었다.

전시장을 둘러보며 '걸린 그림들이 문형 작품이냐?'고 물었더니,
서양화가 최선호씨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내가 잘 못 알고 온게다.

문영태씨는 1990년도 경의선모임이란 공동작업체를 만들어 사진을 찍은 적도 있었다.
그가 주축이 되어 사진가 이지누, 화가 박불똥, 유연복, 최민화, 김기호, 김태희, 남궁산, 백창흠,

박 건, 송진헌, 유은종, 이정희, 조경숙, 공예가 김원갑, 이송열, 미술평론가 라원식씨 등 열일곱명이 참여했다. 

그 결과물로 ‘분단풍경’(눈빛출판사)이란 사진집을 펴 내, 통일운동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화가인 그의 그림을 볼 수 없었기에 이번이 기회다 싶었는데, 허탕 친 것이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녔으나, 어디 숨겼는지 작업실은커녕 그의 작품 한 점 만날 수 없었다.

대신 서양화가 최선호씨와 도예가 변승훈씨의 작품들을 감상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특별 초대된 안톤 바라노프의 클래식 기타연주와 성악가 김재연씨의 청량한 소리에

매료되어, 황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년 오월에 열릴 전시에는 문영태씨의 숨겨 논 작품들이 걸리길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사진,글 / 조문호

 

 

 

 

 

 

 

 

 

 

 

 

 

 

 

 

 

 

 

 

 

 

 

 

 

 

 

 

 

 

 

 

 

 

 

 

 

 




 

용기만 있었다면 세상사 비우고 사는 스님처럼 살 수도 있었겠으나

팔자가 그렇지 않은지 돈과 일, 인연에 얽힌 갖가지 욕망에 시달리며 산다.

돈은 아예 나와 인연이 없었던지 일찍부터 욕망의 조절대상이 되지 못했으나

사진과 관련된 일에서는 그 욕망을 버릴 수도 조절도 되지 않는다.

 

인사동으로 가거나 장에 가거나 어딜 가던 사진은 찍게 되는데,

많은 것들을 찍다보니, 찍는 것 못지않게 정리하는 일도 만만찮다.

그래서 밤늦도록 컴퓨터와 씨름해 아내로부터 종종 잔소리를 듣게 된다.

그의 중독 수준이라며...

 

아내 말처럼 적당하게 하면 좋으련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

조금만조금만 하며 일에 빠지다보면 금세 한두 시간이 지나버린다.

특히 블로그 관리하느라 매일 같이 인터넷에 접속하다보니 더 하다.

카페까지 버리며 멀리하려 했으나, 이젠 블로그에 덜미 잡힌 셈이다.

 

블로그는 일기 쓰 듯, 인사동 자료들을 정리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이젠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인사동을 더나드는 사람들을 찍다보니

당사자의 사적 기록에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스스로 일을 만드는 셈이다.

다 인연에 얽혀 사는데, 내가 할 일과 아닌 것을 칼같이 자르기도 쉽지 않았다.

 

몇일 전, 아내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얻게 되어 함께 돌아다닐 기회가 생겼다.

그 동안만이라도 컴퓨터에서 해방되기 위해 일단 사진정리부터 않기로 작정했다.

김포 문영태씨의 살림집 전시회를 비롯하여 채현국선생 강연회와

춘천의 무세중선생 공연, 인사동, 정선 귤암리 등 곳곳을 기록했지만, 모두 그대로 뒀다.

 

그런데 닷새 만에 사진을 정리하려 책상 앞에 앉아보니, 이게 장난 아니다.

하루 온 종일 걸릴 분량인데, 어디 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습관을 바꾸는 것은 물론, 적당이 한다는 말이 참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닥치고, 눈에 보이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도 없지만, 미뤄 둘 일도 아닌 것이다.

 

여지 것 작업은 ‘꾸준하게’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살아왔으나

이젠 ‘적당하게’라는 말을, 더 마음에 새길 때가 된 것 같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지난 24일 오후6시경, 인천에 사는 동서 김명구씨의 칠순 잔치에 정영신과 함께 갔다.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지만, 아내 눈치 보여 따라 나선 것이다.

김명구씨와 동서지간이 된지도 13년이 넘었지만, 서로 가치관이 달라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었다.

처제와 아내는 더러 만났지만, 동서지간은 서로 관심 밖 인물이었던 셈이다.
나보다 나이는 한 살 위지만, 늘 아래로 여겨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인연의 시작은 십년 전, 그의 회갑연에서였다.

그의 첫 인상이 꼭 뒷골목 건달 스타일인데, 모든 가치 기준을 돈으로 여기는 바람에 만정이 떨어졌다.

그래서 술 한 잔 먹은 김에 쓴 소리를 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몇 년 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슬며시 자리까지 피해 버렸다. 이야기를 나누고 지내다보면 상대의 좋은 점들도 알 수 있으련만...

​그리고는 이번 연회장에서 다시 만났는데, “칠순을 축하 한다”며 손을 내밀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더 과관인 것은 많은 하객들에게는 술 한 방울 내놓지 않으면서 향수병 같이 생긴 술병을

다섯 개나 독차지 해, 혼자 홀짝거리고 있었다.

친척 간에도 소통 되지 않아 마치 모르는 식당에 들린 분위긴데, 그나마 손녀 조현아양이 할아버지께

수여한 표창장이 유일한 칠순잔치의 이벤트였다. 얼마나 공치사를 좋아했으면 손녀까지 선물을 상장으로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좋아 입이 떡 벌어진 그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카메라를 꺼내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카메라마저 뭘 알아챘는지 말을 듣지 않았다.

겨우 아내의 컴펙트 카메라가 몇 장 남겼지만...

돌이켜보니, 머리에 돈 밖에 던 게 없다고 무시한 '문호'나, 돈 없다고 무시하는 '명구'나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깔보고 만만하게 여기는 넘끼리 코가 비틀어지도록 한 번 마셔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내년 정선 만지산에서 가질 나의 칠순잔치에 그를 정중히 초대해 잔치의 맛도, 자연의 이치도 한 번 느끼게 하고 싶다.

인생길 떠날 채비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만든 법이나 가족이란 울타리마저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동안 즐겁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동서지간이란 울타리를 떠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는 동안은

맺힌 것들은 모두 풀어 놓고 마음 편한 여생을 즐기는 것이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된다.

서울로 돌아와, 잔치 집에서 못 마신 술을 아내와 처제 그리고 손아래 동서와 어울려 밤늦도록 마셨는데,

이차로 끌려 간 노래방에서는 눈물까지 찔끔거려야했다.

노래 구절구절들이 어찌나 내 인생 같은지....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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