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인사동에 나갔다.

 

인사아트프라자앞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 자선 공연'에 들리기 위해서다.

 

보름 전에 사진은 찍어 올렸으나, 그때 돈이 없어 모금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자선 공연은 열리지 않았다.

 

더 이상 나설 뮤지션이 없었을까?

아니면 모금이 신통찮아 그만두었을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자선음악회가 있다고 나팔 분 것이 문제였다.

행여 그 글을 보고 나왔다면 얼마나 원망하고, 실없는 사람으로 보겠는가?

주최 측에 재확인하지 못한 탓이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헛걸음 한 모든 분에게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몇 푼 되지 않는 후원금은 후원계좌를 찾아 보내기로 하고,

비참한 심정을 달래려 벽치기 골목으로 들어갔다.

 

벽치기 딱 좋은 좁은 골목을 들어서니, 반대편에서 장춘씨가 걸어왔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유목민에는 전활철씨 3-40년전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안면 있는 분도 여럿 있었는데, 술 장사에 찌든 활철씨가 제일 많이 삭았더라.

 

다행히 그날부터 유목민에 새 지배인이 들어와 활철씨도 편하게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전활철씨의 해방인지, 아니면 사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한건지 분간 안 간다.

 

담배 피우기 딱 좋은 술집 입구에 술상을 차렸는데,

장춘씨에 이어 강남에 전시 보러 간다던 정동지도 돌아오고,

갤러리시네노광래 관장과 불화가 이인섭선생 등 줄줄이었다.

 

덕분에 정성진, 안지현씨 등 미녀들도 알현할 수 있었다.

 

노관장은 전시 중인 “Funny Art, Money Art’ 리플렛 한 장 내놓았다.

 

719일까지 열리는 이번 기획전에는 돌아가신 민병산, 김구림, 변우식, 임창렬,

이존수, 강용대, 김지하시인에서 부터 요즘 잘 나가는 최울가, 강찬모에 이르기까지

22명의 작품을 모은 전시로 소품 위주라 마음에 들면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생각지도 못한 술자리가 만들어져 술은 취했으나, 씁쓸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기레기나 다를 게 뭐 있나?

 

덕분에 반가운 분들 만나 잘 마셨다.

인사동에서 그리운 분들 만나 전시 보아가며 좋은 시간 만들자.

남는 건 그리움의 추억뿐이다.

 

사진, / 조문호

 

 

 

2021,9,22

지난 18일 오후는 정영신씨의 ‘어머니의 땅’ 전시 디피하는 날이었다.

 

사진 액자는 진즉 ‘나무아트’ 전시장에 올려놓은 터라 인사동 거리부터 돌아보았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날따라 거리공연에 나선 뮤지션이 세 명이나 되었다.

다양한 음악으로 거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유독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러시아 소녀를 경찰관이 제지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주변에 있는 가게 주인이 신고를 했단다.

 

"에라이~ 돈밖에 모르는 썩을 놈의 인간들..."

바이얼린 연주가 무슨 영업 방해가 되며,

비록 방해가 된다 해도 어떻게 자식 같은 외국 소녀에게 상처를 주는가?

 

연주하던 소녀가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걸 보고서야 ‘나무아트’에 올라가니,

이미 김진하관장이 액자를 배치하고 있었다.

전문가가 하는 일에 나설 수 없어 포장 해체하는 정도만 도왔다.

 

마침 거리미술가로 알려진 이태호 교수가 오셨다.

고 김수영시인 탄생 백 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에 판화 두 점을 출품하기로 했는데,

어디서 주최하는 행사인지 궁금해 했다.

 

정영신씨가 기획자 소개도 할 겸, 그 일을 추진하는 김발렌티노를 불렀는데,

김수영시인의 대형 시비도 만들어 둔 게 있다며, 전시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

 

그런데, 김진하관장께서 토론토 Tai Kim씨가 보내왔다는 예쁜 엽서를 전해 주었다.

페친으로서 정선에 불난 소식을 전해듣고 얼마나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고

행운의 크로바까지 붙여 보내 와 너무 감동적이었다.

이 글을 통해서나마 그 고마움을 전해 드린다.

 

김진하관장의 전시 디피 솜씨는 일사불란했다.

그 많은 액자를 짜임새 있게 배치했는데,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을 마무리한 후 이태호 선생과 함께 ‘툇마루’로 식사하러 갔지만,

차 때문에 술 한잔 제대로 마실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노숙인, 길에서 살다’ 현수막을 설치할 ‘유목민’ 골목에도 잠시 들렸다.

골목 테이블에는 이인섭, 유근오, 노현덕씨가 술을 마시고 있었고,

‘유목민’ 안 쪽에는 김수길씨도 있었다.

 

반가운 분을 만났으나 술 한 잔 나누지 못하니 무슨 재미랴.

전시 기간 내내 짐 때문에 차를 끌고 다녀야 할 텐데,

참아야 할 술 고문은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만봉 스님 기일이라는 전활철씨 연락을 받았다.

 

만봉스님 자제분인 이인섭선생께서 생일과 기일이 되면 매번 지인들을 불러 모아 오찬을 베푸는 시간을 마련하는데,

직접 재워두었다가 구워주는 소갈비 맛 하나는 정말 일품이다.

 

가끔 기다려지는 이유도 그 맛을 잊지 못해서다. 솔직하게 말해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다.

 

코로나 사태이후 한 번도 가지 못해 이번엔 만사를 제쳐두고 봉원사로 달려간 것이다.

 

입구에 걸린 고색창연한 ‘만봉불화전시관’이란 현판이 반겼는데, 안쪽에는 이인섭선생을 비롯하여 전활철, 김명성, 안영희, 안완규씨등 뵌 지가 오래되어 성함도 기억나지 않는 몇몇 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손님들이 선물로 위스키나 와인을 가져왔는데, 스님 기일에 양주와 갈비 파티가 어울리지 않지만, 인사동 주객 이인섭선생의 오랜 전통이니 널리 양해하시길...

 

다른 분들이야 가끔 인사동에서 만나지만, 만봉스님 제자였던 안영희씨는 너무 오랜 만 이었다.

예쁜 모습은 여전하지만, 곱게 나이던 주름을 보니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었다.

 

차를 끌고 와 술은 마실 수 없었지만 다른 분들도 이른 낮이라 그런지 좋은 술이 남아돌았다.

 

이인섭선생 기력도 예전 같지 않아, 전활철, 김명성씨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 보러 간다는 전활철씨를 영천시장에 내려주고 ‘예술의 전당’에 갔다. 판화전시 보러 간다는 김명성씨 따라 나섰지만, 나 역시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지난 번 갔을 때는 일정에 쫓겨 꼼꼼히 살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시가 끝나는 날이라 철수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달리 관객이 제법 있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좋은 전시였다. 판화의 진면목을 골고루 볼 수 있는 이만한 기획전을 어디서 보겠는가? 미술품 컬렉터이기도 한 김명성씨는 김억씨 작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이태원에서 실내장식 중인 뮤지션 김상현씨를 만나러 갔다.

이제 ‘뮤아트’ 신사동 시대를 끝내고 다시 이태원으로 복귀한 셈이다.

 

공사 중인 현장을 둘러보았는데, 약50여 평 되는 공간에 공사자재들이 쌓여 있었다,

신사동 ‘뮤아트’보다 더 멋진 공연장이 될 것 같았다.

 

‘이태원 이모네' 집으로 자리를 옮겨 한 잔 했는데, 벽에 붙어 있는 글귀가 재미있었다.

 

생각에 따라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주 화제는 독립운동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요즘 김명성씨가 이승만에 의해 독립유공자 서훈도 받지 못한 독립 운동가들의 자료들을 추적하고 있다는데, 대표적인 항일단체였던 ‘조선의혈단’에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들의 서찰을 많이 찾아냈다고 한다. 얼마나 독립운동사에 빠져 몰입하는지, 좋아했던 여자 잊은 지도 오래되었다고 한다.

 

정선 집에 불난 이야기도 나왔는데,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했다. 시일이 오래 걸리지만,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소송을 위한 비용은 화가 박건씨가 페이스북에 올려 들어 온 후원금 천만 원으로 우선 추진한다는 말에 김명성씨와 김상현씨도 보태겠다며 주머니를 털어주었다.

 

옆집의 뻔뻔하고 얄팍한 속내도 얄밉지만, 나에게 제일 중요한 필름 원본이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잘못된 손해배상 규정에 맞서기 위해서다. 내일은 변호사를 만나기로 했으나 마음은 편치않다.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여파 이주원씨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잘 모르는 분이라 궁금했는데, 칡뫼선생과 함께 가겠다는 말에 나만 모르는 주변 분 같았다.




12일 오전엔 김명성씨 따라 장호원에 갈 일이 있어 일찍부터 차를 끌고 나왔다. 
서울로 돌아오니, 약속시간인 다섯시가 임박해 차 돌려 줄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인사동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주원씨와 약속한 ‘화인갤러리’로 간 것이다.




그 자리는 옛날 이해림씨가 운영한 술집 ‘평화만들기’ 자리였다.
수안스님 전시 뒷풀이를 비롯한 많은 일들이 생각나는 예사롭지 않은 장소였다.



쌈지 뒷골목은 오랜만에 들어가 보았는데, 이름도 반가운 '정선곤드레쌈밥'집도 생겼더라.



'화인갤러리'로 바뀐 후 첫 걸음인데, 마침 전시작을 철수하고 있었다.
칡뫼 김구, 여파 이주원 선생 등 여러 명이 참여한 단체전이었다.



칡뫼선생이 먼저 와 있었는데, 걷어내기 직전의 출품작 두 점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개인전을 못 봐 아쉬웠는데, 두 점이라도 봐 천만다행이었다.



뒷골목 밤 풍경을 그렸는데, 작품에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칡뫼선생 이야기로는 몇 년 전에 한 작업으로, 그 때는 작품도 제법 팔렸다고 한다. 
왜 주제를 바꾸었는지 모르지만, 계속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그리움에 병든 세상이 아니던가?




뒤 이어 여파선생이 나타났는데, 서울이 아니라 천안에서 왔다고 했다.
하기야! 칡뫼선생도 김포서 왔지 않았는가? 서울역 부근에 사는 거지 팔자가 상팔자가 아닌가 싶다.




난, 이주원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는 우리 집 숟가락이 몇 개인 것 까지 다 알고 있었다.
블로그 ‘인사동 사람들’ 단골손님으로 가끔 정다운 댓글로 위안도 준 분이다.
온라인 인연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몇 안 되는 귀한 인연이었다.




뒤늦게 임경일씨가 나타나 술 마시러 갈 때가 되었는데, 끌고 온 차가 골칫거리였다.



'툇마루'로 가기 위해 골목을 나서는데, 정영신씨가 지나가다 손을 흔들었다.

사진으로 본 정영신씨보다 더 젊어보인다는 여파선생 말에 내가 사진을 잘 못 찍은 것 같았다. 




술 마시려면 차는 어쩔 것인가?  일단 마시고 보자.
‘툇마루’에서 녹두빈대떡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 마셔버렸다.
이 좋은 날, 술 한 잔 마시지 못한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이차로 간곳은 벽치기 골목에 있는 ‘유목민’이었다.
요즘 술 마시러 인사동에 잘 나오지 않아 몇 달 만에 들렸는데, 대개 처음 보는 손님이었다.




화가 여파선생은 사진 작업도 병행한다는데, 그 작업들이 궁금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이인섭선생과 주인장 전활철씨가 나타났다.



술은 땡기지만, 몸에서 그만 마시라는 신호가 왔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멀리서 온 손님이라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지만,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대리운전을 부르라며 여파선생이 따라 나섰지만, 손을 흔들었다.
주차비도 제법 나왔을 텐데, 여파선생이 계산해 버렸다.
차를 끌어 내 ‘아라아트’ 옆 빈자리에 세워두고 지하철 타러 간 것이다.



내일 새벽 다시 나올 생각하면 귀찮지만, 어쩌겠는가?
“성질 마이 죽었다. 음주면허증으로 그 술 마시고 두 번 걸음하다니...”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사진


살아 생선 강민선생께서 주도하신 인사동 오찬 모임이 오랜만에 다시 열렸다.
선생께서 돌아가시고 부터 서서히 잊혀져갔는데,
강민선생은 차지하고라도 김승환, 방동규선생 등 다른 분마저 뵐 수 없었다.
언젠가 자리 한 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서정란씨로부터 메시지가 온 것이다.



조문호샘 올해 가기 전에 송년회 한 번 해요. 강민 선생님과 친분 있는 분들이랑요

그래서 "얼씨구나" 만들어진 자리가 지난 30일 정오에 뭉친 나주곰탕오찬모임이다.

인사동 툇마루일층의 나주곰탕은 강민선생 단골이기도 했지만,

탕 속에 고기가 푸짐해 술안주로 안성마춤인 밥집이다.


 


약속장소는 손님이 꽉 차, 다들 그 옆에 있는 찻집에 앉았는데,

방동규, 김승환 선생님을 비롯하여 박희연, 서정란, 이명옥,

이은정, 전태수씨 등 여러 분들이 자리 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보면 반갑고, 앉으면 빨고 싶은 분들이 아니던가?

강민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게 왠 말인가?

서정란씨 이야기가 오늘 점심은 돌아가신 강민선생님이 산다는 것이다.

모임이 정해지고 생각지도 않은 전화를 받았는데, 강민선생 아드님이었다고 한다.

아버님께서 자주 만났던 분들께 인사동에서 밥 한 끼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이심전심이었다.

이건 분명 강민선생님께서 저승에서 아들에게 지령내린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기국서씨가 '나주곰탕'으로 급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가서 찻집으로 데려 왔는데, 차라도 한 잔 하며 여유롭게 즐기라는 계시였다.

다들 연말이라 모이는 곳이 많은 모양인데, 뒤늦게 이행자시인도 나타났다. 

뚜꺼비 같은 소설가 김승환선생은 인증 샷만 찍고 도망치셨다.




 나주곰탕’에서 자리 비었다는 전갈에 다들 밥집으로 옮겼다.

소주 한 잔하며 탕 그릇에서 건져 놓은 수육을 보니, 돌아가신 강민선생님이 생각났다.

술 안주로 건져놓은 수육을 매번 슬며시 내 접시로 옮겼는데, 마치 죽은 울 엄마 같았다.

불의에는 칼날처럼 매서웠던 강민선생님의 그 자상한 모습이 떠오르니,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눈물이 탕 그릇에 떨어지는 거야 괜찮으나, 누가 볼까 쪽팔려 미치겠더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 지,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요량도 못한 채 취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밀정원으로 차 마시러 갔다.

, 까발리는 걸 좋아하는데, 다들 비밀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비밀정원에 가 있으니, 다른 곳에서 한 탕 뛰고 온 김명성씨가 나타났.

기국서씨는 술이 부족했던지, 보드카처럼 생긴 독주 한 병을 사 왔다.

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두 잔만 마셨는데, 그 술을 혼자 홀짝 홀짝 다 마셨다.


 

오늘은 빠질라고 작정하고 왔어요’라고 했던 귀엣말이 생각났다.

기상천외의 퍼포먼스가 일어날 것 같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자리에서 일어 나 남녀가 약속이나 한 듯 갈라졌다.

방배추선생께서 기국서, 김명성씨등 꼬봉들을 거느리고 유목민을 습격한 것이다

가보니 송일봉씨가 입구에서 뭔가를 정탐하는 것 같았고,

안쪽에는 시인 정동용, 기타리스트 김광석, 발렌티노김도 보였다.


 

여기 저기 다니며 사진 찍을 일도 많은데, 방배추선생 구라 듣느라 퍼져버린 것이다.

방동규선생이 누구더냐?

백기완, 황석영씨와 더불어 조선의 삼대구라로 꼽히는 분이 아니던가.

방배추선생은조선의 주먹등 최고로 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 노동판에 일하러 가고, 체육관에 다니며 체력 관리하는 분이다.

, 한마디로 선생님을 義人이라고 생각한다. 옳지 못한 것은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태극기부대나 가셔야 할 분이 촛불집회마다 쫒아 다니신다.

얼마 전 김정헌씨 작품 보러 간 영종미술관에서 그림 보며 내려오다 굴러 떨어져

엠블란스에 실려 갔다는 소식도 뒤늦게 들었다.


 

그 날 하신 말씀도 놀랄 노자다.

여지 것 청년으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노인이 된 것 같다는 말씀이셨다.

오죽하면 선생님이 살아온 그 소설 같은 실화를 기국서씨 더러 극화하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그 날 이야기만도 밤 샐 것 같아 말머리를 돌려야겠다.


 

기국서씨는 귀가 어두워 여기 저기 귀 기울이는 꼴을 보더니, 날 더러 탐색가라 했다.

내 귀에는 색을 탐하는 자로 들렸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두 번째 툇마루에서 열릴 인사모시간이 늦어버렸다.

정동용씨 더러 있으라 해놓고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채 달려갔는데,

가서 된장비빔밥에 술말아 또 한 잔 걸친 것이다.

반가운 분들과 노닥거리니, 시간은 잘도 갔다.


 

작별 인사하기가 무섭게 유목민으로 달려가니, 이미 술꾼이 바뀌었더라.

방동규선생을 비롯한 잔당은 물론 정동용, 발렌티노김, 김광석씨도 다 사라져버렸다.

새로 등장한 이인섭선생을 비롯하여 사진하는 이정환, 성유나씨가 있었다.

금주 한지가 두 달이 넘었다는 이정환씨는 소주잔에 음료수를 따라 마셨다.

그 술 좋아하는 사람이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아니겠는가?

정말 살아남기 힘든 것이다.


 

그나저나 긴장이 풀려 그런지, 술이 슬슬 올랐다.

쪽방 계단 오를 일이 겁나 줄행랑쳤는데, 인사동 밤거리는 축축했다.

어떤 미친 할매라도 납치되고 싶었다.



쇼윈도를 올려다보니, 처녀귀신이 잡아먹을 듯 내려다보았다.

네 이놈! 아직 정신 못 차리고 탐색하냐?

강민선생께 일러바쳐, 저승 오면 곤장이 백대다

 

사진, / 조문호
















정영신사진






































년 말이 다가오니 사방팔방 술 마실 일 뿐이다.
문제는 몸이 받쳐주지 못하니 탈이다.




지난 19일은 인사동 ‘유목민에서 망년회가 있었다.
연극연출가 기국서씨 시상식에서 뒤풀이도 마다하고 달려갔더니‘
일찍부터 여러 사람이 와 있었다.




시인 조준영씨, 화가 김 구, 장경호, 전강호, 조경석씨,
미술평론가 유근오, 최석태씨, 연극배우 이명희씨, 연출가 강경석씨
사진가 정영신씨, 중문학자 임계제씨 문화기획가 서인형씨,
안쪽에는 불화가 이인섭씨와 사진가 이유홍씨도 있었다
그 외에도 안원규, 전활철, 김대웅, 노광래씨 등 많은 분을 만났지만,
무슨 사정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 분도 많았다.




오랜만에 반가운 분들 만났으니, 기분 좋아 술이 술술 넘어갔다.
기분 좋게 즐긴 건 좋았으나, 그 다음 날 죽어났다.
술자리에서 실수도 많이 한 것 같은데, 필름이 끊겨 생각이 나지 않는다.

모자에 달라 붙은 김치조각이나, 튀어 나온 정영신씨 입을 보니 알만하다.


정영신사진


귀가 간지러운 걸 보니, 누군가 욕을 하는 모양이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으니 할 말도 없다.
차라리 술 마시다 뒈져 버렸으면 이런 낭패는 없을텐데...



정영신사진


주머니를 뒤져보니, 김구씨 전시 엽서가 한 장 나왔다.

내년 1월3일부터 16일까지 인사동 '갤러리화인'에서 열린단다.

'갤러리 화인'은 옛날 '평화 만들기'자리에 있고,

개막식은 1월3일 오후5시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오늘은 '브레송'에서 사진인들 망년회라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술 마시다 죽는 건 주사인가? 아니면 순직인가?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사진



















































어제는 새해의 셋째 수요일이라, 술 한 잔 하러 인사동 나갔다.

매번 셋째 수요일마다 인사동에서 오픈하는 전람회도 돌아보고
반가운 사람 만나 술 한 잔하는 날로 정한지가 오래되었지만,
반가운 사람 만나기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지난 16일은 점심때부터 강민선생님을 만나 뵙기로 약속했다.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청년 전만규 매향리 평화마을 기록전”에 들려 김진하관장을 만났다.





이 전시는 전만규씨가 주민들을 설득해 투쟁으로 일궈낸 매향리 폭격장 10년의 기록이다.
그동안의 자료를 얼마나 꼼꼼하게 챙겼으면, 격려의 글을 보낸 편지까지 모아두었더라.
투쟁에 사용되었던 깃발에서부터 시사만평에 나왔던 그림과 탄피에 이르기까지, 그 지난한 세월을 살펴보았다.
매향리에 가해진 폭력과 그 아픈 상처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2월1일까지 전시되는 매향리 기록전을 놓치지 마시길...




 


전시를 돌아보고 있으니 ‘강민’선생님께서 오셨다.
이 추운 날, 먼 길을 마다않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선생께선 한국전쟁을 직접 체험하셨으니, 그 기록의 감회도 남달랐을 것이다.
김진하관장 설명을 들으며, 지난 세월을 돌아보셨다.






선생님의 단골집 ‘나주곰탕’에 들려 소주 한 병에 곰탕 세 그릇 시켰다.
짐 때문에 차를 끌고 와 소주는 한 잔으로 끝내야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몸이 불편한지 따뜻한 물에 소주를 회석시켜 두세 잔 드셨다.
얼굴이 붉어져 낮술을 삼가한다는 김진하씨가 마실 수밖에 없었는데,
고맙게도 밥값까지 내 주셨네.






점심식사를 끝내고 커피 한 잔 하려니, 갈 만한 곳이 없다고 하셨다.
단골로 가던 ‘인사동 사람들’은 주인도 이름도 바뀐 식당이 되어버렸단다.
하는 수 없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포도나무‘골목의 끝 집으로 향하다
길에서 안숙선 명창과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를 만났다.






강민선생께선 ‘창비’에서 낼 시집 원고를 다 넘겼다고 하셨다.
급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하셨지만, 벌써부터 시집이 기다려진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힘없이 앉아계신 선생님 모습이 오늘의 인사동 같았다.


떠나오며, 방향이 달라 신호등 따라 급히 달려간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민예총’ 사무실에 들려 짐 실어 둔 차를 끌고 녹번동으로 떠났다.
차를 놓고 와 술 한 잔 할 생각이었는데, 꾸물대다 시간이 지체되어버렸다.
‘나무화랑’부터 달려 갔으나, 이미 문이 닫혀있었다.
매향리 전만규씨를 만나 보고 싶었으나, 날 샌 것이다.






백범영씨의 ‘백두대간’전이 열리는 ‘동덕아트갤러리’로 갔더니,
미술평론가 유근오씨를 비롯한 일행들은 벌써 나오고 있었다.
전시장에서 작가 백범영씨와 미술평론가 황정수씨를 만났고,
김달진씨와 편근희씨도 만났다.






백범영씨는 '소나무 작가'라 불릴 정도로 소나무를 즐겨 그렸는데, 이번엔 ‘백두대간’이었다.
산 능선을 비롯하여 나무들과 풀꽃 등 자연을 이루는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백두대간의 맥을 잡아 그린 산수에서는 신비로움마저 느껴졌다.
자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긴, 이 전시는 28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을 나와 ‘유목민’에서 이인섭선생을 만났다.
전활철씨와 셋이서 소주 한 잔 했는데,
앞으로는 박혜영씨에게 ‘유목민’을 맡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이인섭선생께서 비약처럼 넣어 다니는 술 한 잔을 따라주었는데, 58도의 중국술로 이름 하여 ‘오빠’란다.
부드러운 향의 독주 한 잔에 춘삼월이 오가더라.






인사동에서 나주곰탕 한 그릇 드시고 가는 강민선생이나
‘유목민’에서 파적 한 장에 소주 한 병 드시는 이인섭선생이나
이 두 분이 인사동을 지키는 마지막 유목민이 아닌가 싶다.

인사동 풍류도 그렇게 가나보다.

사진,글 / 조문호



“청년 전만규 매향리 평화마을 기록전”










네오록에 소개된 '매향리기록전' 전시리뷰 http://blog.daum.net/mun6144/5038





백범영씨의 ‘백두대간’전





네오록에 소개된 백범영 전시리뷰 http://blog.daum.net/mun6144/5033














오늘은 인사동 사람들 만나 대포 한 잔하는 셋째 수요일이다.

정영신씨 더러 인사동에서 밥 한 그릇 사달라는 전화를 했다.
어디서 만날 것이냐기에 대뜸 ‘인덱스갤러리’라는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무슨 전시인지도 모르지만, 밥값에 버금가는 찻집에서 만날 수는 없잖아.






낙엽이 뒹구는 인사동 거리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또 겨울이 찾아오고 실없이 한 해가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황량해 졌다. 사치스럽게도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이군열 사진전이 열리는 ‘나우갤러리’부터 들렸는데, 오프닝 준비로 바빴다.
‘자연의 성’이라 이름붙인 흑백 풍경이지만,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쓸쓸한 늦가을 분위기와 어울릴 것 같은 임춘희씨 '나무그림자'를 보러 ‘통인’으로 갔다.
변화무쌍한 감정을 마치 자서전처럼 화폭에 풀어놓았는데,
혼란스럽기도 하고 황량한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앙상한 겨울나무가 연상되었고, 아련한 향수도 밀려왔다.






정영신씨와의 약속 시간이 되어 ‘갤러리 인덱스’로 자리를 옮겼다.
김종성씨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거리는 한산해도 전시장은 북적였다.
아는 분이라고는 최건수관장을 비롯한 한 두사람 뿐이었다.






사람 틈을 비집고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사진이 왔다 갔다 했다.
정영신씨를 데리고 나와 버렸다.






정영신씨와 저녁식사를 한 후 ‘유목민’으로 갔다.
그 곳에는 유진오씨와 김완기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
김완기씨가 너무 오랜만이라 근황을 물어보았는데,

피맛골 가게를 처분하고, 삼개월 동안 러시아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좀 있으니, 이인섭선생이 나타났고 김재홍씨는 박기자라는 친구 분을 데리고 왔더라.
김명성, 서길헌, 김각환씨 등 반가운 분들이 줄줄이 왔으나, 앉을 자리가 없었다.





자리를 비켜주고, 옆집 커피숍으로 옮겼다.
연신내 연서시장으로 가자는 김명성씨 따라 지하철을 탔지만, 더 이상 술 생각은 없었다.
그날따라 혼자 있고 싶어,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계절을 타는 건지, 갈 때가 된 건지, 마음이 찹찹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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