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아침부터 반갑지 않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허기 때우려 새꿈 공원에 빵 타러 갔더니, 마음까지 축축했다. .
비가 와도 빵 주는 '한강교회'사람이나, 빵 타기 위해 줄 선 노숙자나 힘든 것은 다 마찬가지다.





난, 노숙자는 아니지만, 빵으로 끼니 때우기를 즐긴다.
어디서나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니, 버릇 된지 오래다.
그러니 빵 나누어 주는 행렬엔 노숙자들이 더 많다.
그 빵이면 삼일을 버틸 수 있으니, 노숙자에겐 최고의 밥이다.






오후에는 공원 아래 둥치 튼 ‘황야의 무법자’ 캠프에 들렸다.
그 곳은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환대받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지들 주머니보다 내 주머니가 더 무거우니까.
막걸리 세병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가까지 나온다.






원종훈을 좌장으로 이경환, 강 원, 박상일 등 넷이서 지키지만,
조연배우처럼 왔다 갔다 하는 거지도 많다.
그 놈의 담배 값이 너무 비싸, 술보다 더 목 타게 하는 것이 담배다.
한 대 얻어 피우려고, 담배 피우기만 기다리는 시선들이 따갑다.






버려진 천으로 하늘을 가렸지만, 마시다 보면 온몸이 비에 젖을 수밖에 없다.
속옷까지 젖어 우들우들 떠는 원이의 이빨 부딪히는 소리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쪽방에 기어올라 입지 않는 겨울 옷을 갖다주니,
지 애비 같은 나를 “형님은 죽으면 천당 갈 것”이란다. 이 썩을 놈~






그날 술상 안주는 푸짐했다.
어디서 얻었는지 해물탕 그릇이 놓여 있고, 빵 타는 날이라 술상에 빵 봉지가 너부러졌다.
비닐 벗긴 빵은 이미 빗물에 물러 버렸고, 종이 막걸리 잔에도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경환이 부르는 ‘긴 머리 소녀’에 갑자기 죽은 적음선사가 생간난다.
머리 털 하나 없는 중놈이 부르는 청성 맞은 노래에 다들 배꼽 잡지 않았던가.
그런데, 경환의 노래는 나를 슬프게 했다.
적음선사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노래에 경환의 애환이 실려 있었다.






공단에 들어간 어린누이는 없지만, 말 못할 소녀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기 때문이다.
집나간 지 오래된 애미보다 찰떡이 목에 걸려 돌아가신 할매가 보고 싶단다.
다들 눈물 마른지 오래지만, 이 날은 빗물이 눈물 되어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올 해로 아홉 번째인 동자동 사랑방마을어버이날 잔치가

지난 57일 오전10시부터 오후2시까지 동자동 새꿈 어린이공원에서 열렸다.



 


매년 어버이날마다 쪽방 주민들을 위로하는 어버이 잔치가 동자동 사랑방주관으로 열려왔다.

주민에게 모금한 돈으로 손수 음식을 장만하는 등 서로 정 나누는 의미 있는 자리다.

다들 꽃 달아드리는 이웃의 손길을 다소 어색한 눈길로 바라보았으나,

따뜻하고 흐뭇한 마음이 번지는 게, 금세 느껴졌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쪽방 촌에 거주하는 분들은 대개 자녀가 있어도 찾아오지 않거나,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며 살아가는 외로운 분들이다.

그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음식을 대접하며,

모처럼 이웃과 어울려 대포 한잔 나눌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식사 대접에는 공원에서 술을 못 마시게 하지만,

이 날만은 '동자동사랑방'에서 제공한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미역국과 밥, 부침개, 족발, 소주, 막걸리, 음료수 등 준비한 음식들을 사랑방 식구들이 부지런히 날랐고,

주민들은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는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주민들과 약속한 빨래집게 사진 나눔전도 열었다.

이번에는 사진가 정영신씨의 프린트 협찬으로 가능했는데,

공원에 쳐 놓은 빨래 줄에는 작년 추석 이후에 촬영된 85장과,

지난 빨래줄 전시에 걸었던 사진 중에 추가로 원하는 15점 등 모두 100점을 내 걸었다.



 


그런데, 뭔가 착각한 동자동 사랑방임원 한 사람이 사진 설치에 제동을 걸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행여 잔치 분위기를 헤칠까 대꾸하지 않은 채, 설치 예정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지나서야 걸었지만,

이건 분명 짚고 넘어 갈 사안으로, 당사자의 사과와 사랑방조합의 공식 견해를 요구할 것이다.



 


서로 돌려보기 싶도록 빨래 줄에 건 사진들은,

본인이 갈 때 거두어 가기로 되어 있으나, 잊어버렸는지 행사가 끝났는데도 절반이 남아 있었다,

나 역시 안애경, 류성조, 정영신씨 등 손님 맞느라 사진을 챙겨 드리지 못했다.

어쩌면 사진을 빌미로 다시 술 한 잔 나눌 수도 있으니,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미처 만들지 못한 사진이나 추가로 촬영된 사진은 올 추석에 돌려드릴 작정이다.

동자동 사랑방추석잔치는 고향 떠나기 하루 전에 치루지만,

빨래줄 사진 나눔 전은 작년처럼 추석 당일에 실시할 예정이다.

고향이나 가족을 찾아 갈 수 없는 분들을 위한 배려이니, 착오 없으시길 바란다.



 


그리고 본인 사진이 없다고 서운해 하지 말고, 혹시 거리나 공원에서 만나면

어이~ 사진 한 판 멋지게 찍어 줘라고 말을 하라,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다.

그 기록들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역사가 될 것이다.





행사가 끝난 후, 찾아 온 손님들과 어울려 서울역 284’에서 열리는 “Market EuRang"에 들려

젊은 작가들이 펼치는 공예의 일상화전도 들려보고, 서울역 맛집에서 늦은 점심도 먹었다.

돌아오다 보니, 서울역 주변에서 쓰러져 자는 김지은씨 등 노숙하는 친구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들은 어버이날 행사조차 끼일 수 없으니, 카네이션은 커녕 따뜻한 밥 한 끼 챙겨먹지 못한 것이 뻔하다.

빈속에 독주만 들이켰으니, 저렇게 쓰러져 잘 수밖에...




 

행사를 치룬 공원에는 몇 몇 분들이 남아 한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이상준씨는 나에게 전해 주라며 김도이씨가 맡겨 두었다는 비누와 향이 든 선물 봉지를 주었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그의 고마운 마음 잘 간직하겠다.




 

옆에 있던 이기영씨가 나를 불렀는데, 갑자기 호칭이 달라졌다.

평소에는 어이~“라며 만만하게 대하는 친구가 "조기자, 나 좀 보세라고 점잖게 말하지 않는가.

닭발을 먹고 있어 "닭발에 걸려 헛소리냐고 대꾸했더니,

나에 대해 모르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찾아 온 여인들과 총총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여러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았다.

이기영씨야 인터넷을 하지 않으니 아무 것도 몰랐으나,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간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기자라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았다.



    

 

배운 짓이 사진 찍는 일과 글 쓰는 일 뿐이니, 이곳에서나마 보탬이 되면 좋지 않냐고 말했으나,

예전처럼 편안한 사이가 지속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기자와 주민 사이에 생기는 거리감 같은 경계가 쉽게 해소될 수 없을 듯 하다.

여지 것 가장 우려해 왔던 일이 현실로 다가 온 셈이다.



 


이날 잔치에는 동자동사랑방김호태 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주민들이 협력하여 일사불란하게 치러졌는데,

외부 손님으로는 예술감독 안애경씨와 사진가 정영신, 김 헌씨, 그리고 류성조, 이보영씨 등

여러 명이 함께하여 보람된 어버이날 행사를 도우며 지켜보았다.

 

다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어, 내년에 다시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진, / 조문호





































































































































































 





어제는 비오다햇볕나는 등, 날씨가 지랄 같았다.

달세 보증금 50만원을 다 까먹어 쫓겨난 친구가 얼마 전 쓰레기장 옆에 거처를 마련했는데,

비 때문에 이불이 젖게 되어, 응급조치로 천막을 치게 된 것이다.

그 것도 이사라고 집들이 한다며 막걸리 4병과 꽈배기 한 봉지를 사들고 갔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서울역 노숙거사 이덕영을 비롯하여 이경환, 김동진, 정용성 등

몇 사람이 딸막딸막한 술병을 놓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먼저 본 놈이 임자라고, 그들이 집들이 술을 다 빨아 버렸다.



이덕영을 알게 된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

2016년 가을에 처음 만나 찍은 사진이 바로 카메라는 칼이다사진집 표지에 실린 것이다.

일 년 전, 그에게 사진을 뽑아 주었으나, 노숙자 신세라 보관할 곳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도 몰라, ! 그 사진 한 장 더 뽑아줘라고 다그치길래

사진 대신 책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동갑내기인 김동진씨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동사무소 복지과에 가서 이빨부터 하란다.

자기도 이빨이 없어 동사무소 도움으로 말짱해졌다며 자랑했지만, 난 구제 받을 급수가 아니다.

이빨이 없으니, 키스를 해도 걸리는 게 없어 좋더라고 했더니, 배꼽을 잡는다.

"지들이 게 맛을 알기나 하려나."


 

이덕영과 이경환은 천원 짜리 지폐한 장 놓고 가위 바위 보로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그 돈으로 막걸리 사서 같이 마시겠지만, 술을 쏘는 갑이 되고 싶은 거다.



그런데, 결핵검진 받은 사람은 라면을 다섯개 추가로 준다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얼마 전, 안 해도 될 결핵검사 받아 탄 라면을 원용희씨에게 준 일이 있었다.

그게 불법이라면 천 번이라도 법을 어기겠다는 글을 올린적도 있는데, 고맙기 그지없었다.


 

이경환이 이천원만 달라고 하도 졸라대어 돈 가지러 갔다 오며, 쪽방상담소에 라면 타러 갔더니,

여러명이 서예연습 하느라 한창이었다

 노숙자는 라면 끓일 불판도 없어, 청소하는 할매에게 받은 라면을 드렸다.



김용만는 고물하나 주워, 모터 빼내기 위해 드라이브로 나사구멍을 열심히 쑤셔댔다.

자기 일처럼 눈이 빠져라 지켜보는 홍홍임 아짐의 모습이 정겹더라.


 

돈 만진 김에 어버이날  성금 내러 동자동 사랑방에 들렸다가. 그 앞에서 노닥거리는 유한수, 강명국씨를 만났다.

행사는 며칠 남지않았는데, 뽑을 사진도 골라놓지 않고, 사진 주겠다는 생색만 내고 다닌다.

빌어 붙을 데라고는 마음 약한 정영신씨 뿐이니, 하해와 같은 선처를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이번 빨래줄 전시와 관련해 양해구할 일이 하나 있다.

몇일 전 혼자 이야기로, 주민들에게 돌려 줘야 할 빨래줄 사진 걱정을 했는데,

도와주겠다는 분들 전화나 댓글이 여럿 있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사연은, 결코 떠벌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이 빨래줄 전시지 사진을 전해주기 위한 방법인데,

자칫 일이 부풀려지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동네 주민들 잔치로,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또 한가지 해명해야 할 것이 있다.

인사동 사람들블로그는 나의 사진 일기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메주알 고주알 사적인 생각들을 올리는데, 이걸 페북에 연결하다보니,

때로는 오해를 빚거나 말썽을 일으킨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어떤 이는 사진작가란 양반이 무슨 사진을 그리 많이 올려?”

좋은 사진 한두 장만 올리라고 충고하는 이들도 많으나, 그건 내 뜻을 몰라 하는 소리다.



 

그 사진들은 나의 사진이 아니라, 찍힌 분들의 사진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보다, 찍힌 분들이 좋아하는 사진이 더 우선인 것이다.

그들의 취향을 일일이 알 수가 없어, 모든 사진을 올릴 뿐이다.

또한 내가 찍은 사진을 정리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빨래줄 사진도, 내가 좋아하는 사진보다 그들이 좋아 할 사진이나 영정사진을 뽑는다.


 

사진의 작품성 운운하는 웃기는 소리 제발하지마라.

내 사진은 예술이나 작품이길 단연 거부한다.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길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 순간순간을 기록할 뿐이니, 오해 없기 바란다.


 

그리고 어버이날 행사나 빨래줄 전시에 관심 있는 분은 그냥 편하게 오시면 된다

카네이션 한 송이라도 가져와, 자식 없는 불쌍한 어르신들에게 전해드려라.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싶은 분이라면 대환영이다.

 

57일 오전 열시부터 오후 두시까지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에서 진행된다.

 

사진, / 조문호


























동자동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목련과 벚꽃이 흐드러진 '새꿈 공원'은
이른 시간부터 봄 술에 젖었다.




의리의 사나이 이준기는 땅바닥에 더러 누웠고,
싱겁이 이대영은 뭔 소린지 구시렁거린다.




이홍렬과 몇몇은 개똥 철학 논하고,

몇몇은 화투 놀이에 정신없다.




장난 끼 발동한 이기영은 목발을 휘둘고,

누군 넘어져 얼굴에 피 칠갑이다.




커피집 앞에 얼쩡거리니 주인 노발대발이다.
공원으로 내 쫓느라 생 똥 싼다.




경찰차 사이렌 소리는 음악이다.




하릴없는 유한수, 김원호, 정선덕은
어울릴 자리 찾아 골목을 떠돈다.




봄 술에 젖은 동자동 사람들,
그 부랑의 세월이 음습하다.


사진, 글 / 조문호

















쪽방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는 ‘강제퇴거 이웃 문화제’가

지난 7월 19일 오후7시부터 동자동 ‘새꿈 어린이 공원’에서 열렸다.

이윤을 중심으로 한 도시개발은 가난한 이들의 터전을 빼앗아 거리로 내 쫓고 있으며,

쫓겨난 이들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저항은 합법적인 폭력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현실이다.

‘빈곤사회연대’에서 주최하는 이 행사는 쪽방에서 강제로 쫓겨나야하는 빈민들의 연대활동을 강화시켜,

주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빈민들 지역을 돌아가며 진행하는데, 그 네 번째 이야기가 동자동에서 열렸다.

‘빈곤사회연대’ 윤애숙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강제퇴거금지법’에 대한 이원호씨의 강연이 있었고,

동자동 주민으로는 김병택씨와 임수만씨가 나와 실제 사례를 이야기 했다.

김병택씨는 건물안전진단을 위해 비워달라는 요구에 맞서, ‘동자동 사랑방’의 협조로 물리쳤다고 했다.


이날 행사 준비는 ‘동자동 사랑방’의 허미라 활동가와 선동수간사, 이상준씨와 김창현씨 등

많은 주민들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협력했으나, 일부 주민들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누굴 위해 만든 자리인데, 주최 측에 태클을 거는 주민이 있는가하면, 욕지거리를 퍼 붇는 사람도 있었다.

술이 취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잘난 채 나서고 싶어서다. 그리고 주민들의 참석률도 저조했다.

심지어 ‘동자동 사랑방’ 임원조차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조합장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행사였다.

그리고 이 행사가 열리기 전에 ‘동자동 사랑방’의 운영위원회의가 열렸다는데,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고,

무엇이 결정되었는지 궁금하다. 그 결과는 즉각 '쪽방타운' 카페에 올려 전 조합원들이 알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누가 어떤 안건을 발의하였고, 누가 방임하였는지, 조합원들도 알 권리가 있다.

그냥 자리만 메우는 핫바지 임원이라면 물러나고, 몸 바쳐 일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젊은이들로 채워지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온 지난 19일의 동자동 새꿈 공원은, 공원 자체가 술상이었다.
평소에는 수급비가 20일 나오지만, 당일이 공휴일이라 하루 앞당겨 나온 것이다.

수급비래야 노령년금 제하고, 쪽방 달세내고 나면 40만원 가량 남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수급비를 못타는 빈민들의 입장에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알뜰하게 모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대개 얼마가지 않아 바닥 나 또 다시 수급 날을 기다리게 된다.


수급비가 나와도 이웃에 빌린 돈이나 외상값 갚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으니 
쪼달리는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다.






대개 술 담배를 즐기는 사람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인데,
희망도 없는 빡빡한 살림에 술 한 잔 하는 낙마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동자동 사람들은 예사로 이웃과  술 담배를 나눈다.

어디를 가나 없는 사람의 인심이 더 후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구두쇠처럼 야멸차게 사는 사람과 인심 좋은 사람을 두고,
대개의 사람들이 후자를 더 안 좋게 보는 세상이다.
사람보다 돈의 논리를 더 앞세우기 때문이다.






다들 술이 취해 별 것 아닌 일에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싸울 듯 맛 서기도 했다.
김씨가 이씨에게 나라 망친 역적의 후손이라니, 듣는 이씨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러나 아무도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 뒤의 결과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 소란스럽지만, 이내 다시 술잔이 오간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이진수씨가 내 팔을 당기며 따라 오란다.
비닐봉지에는 마시다 남은 소주병과 따지 않은 소주병이 있었지만, 기어이 새 병을 땄다.
먹던 술을 두고 왜 새 병을 따냐고 물었더니, 대접하는 술은 새 술이라야 된다나...


몇 발자국 옆의 정옥상씨를 부르니, 저 놈은 술 취하면 잔소리가 많으니 그냥 두란다.
그러면서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신사임당 지페 몇 장을 꺼내 보이며 자랑 해댄다.
허구한 날 허덕이다 모처럼 돈이 생겼으니, 기분 좋은 모양이다.






공원 한 쪽 구석에서는 잔돈 섰다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한 쪽에서는 빌린 돈을 갚는지 돈을 주고 받기도 했다.

구멍가게 옆의 공원 입구 자리는 일찍부터 정재헌씨가 판을 벌여 놓았다.
배용식, 이준기, 이원식, 강완우씨 등 여러 명이 주위를 배회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장수씨는 문대통령이 5,18유가족을 포옹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좋은 대통령이 되었다며 칭찬에 침이 말랐다.






공원에 어둠이 몰려오자 하나 둘 둥지로 돌아갔다.

정재헌씨는 엊그제 계단에서 넘어져 얼굴을 다쳤는데, 이 날도 술이 취해 몸을 가누지 못했다.
5층 사는 정재헌씨 방까지 부축하느라 얼마나 용을 썼던지, 마셨던 술이 깰 지경이었다.
간신히 방에 앉혀 놓았더니, 말없이 쳐다보는 눈길에 고마움이 묻어난다.





다행스럽게도 정씨는 혼자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술 취해 오르기가 힘든 줄 알면서도 매일같이 공원으로 내려오는 것은
사람 사는 정이 그리워서다.


정 때문에 울고, 정 때문에 사는 사람들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사람들’ 빨래집게 사진 나눔전도 열려...


[서울문화투데이] 정영신기자



서울역과 건너편의 높은 빌딩들 사이에 외딴섬처럼 둥지를 튼 동자동 쪽방촌은 검은 커튼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바로 코앞에 두고도 ‘동자동 쪽방촌’을 물어야 할 만큼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가려 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잔치가 지난 5월8일 어버이날을 맞아 동자동 ‘새꿈 어린이공원’에서 열렸다.



▲ 다큐사진가 조문호씨의 '동자동사람들' 빨래줄 전시풍경


‘동자동 사랑방’(대표 김호태) 가족들의 힘으로 마련한 어버이날 잔치는 올해로 여덟 번째라고 한다.

가족들과 떨어져 외롭게 사는 쪽방촌 빈민들에게 이날만큼은 한 가족이 되어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약주를 곁들인 음식을 대접했다.



▲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동자동 쪽방주민들 외에도 노숙자들까지 모여 모처럼 정담을 나누는 즐거운 자리였다. 평소엔 공원에서 술을 마시면 안 되지만,

이날은 행사장에서 준비한 주류에 한해 마실 수 있도록 배려 해 잔치 분위기를 돋구었다.



▲ 어버이날 잔치마당이 펼쳐진 '새꿈 어린이공원'


이날 잔치는 관이나 민간단체에서 후원을 전혀 받지 않고,

동자동사람들의 조그만 성금으로 만든 소박한 자리였지만 300여명이 모여드는 성황을 이루었다.

김호태 회장은 “이날의 잔치비용으로 250만원이 들었는데,

한 푼 두 푼 229명이 낸 모금액이 공교롭게도 지출과 맞먹는 2,513,230원이었다”며 "욕심 없는 사람들의 행복한 잔치마당"이라고 말했다.



▲ 잔치가 끝난후 '동자동 사람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이 정성들여 음식을 장만하고 다함께 협력해 잔치를 진행했는데,

쪽방 주민들보다 더 어려운 노숙인들을 대접하게 되어 보람이 있었다고 했다.


특히, 이날 어버이날 잔치의 색다른 이벤트로,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동자동 사람들’ 빨래줄사진 나눔전이 함께 열렸다.

공원 주변 나무 사이로 쳐진 빨래 줄에는 A4 규격의 사진 135점이 만국기처럼 걸려 전시됐다.


쪽방사람들의 초상사진, 결혼사진, 시위나 단체사진, 살아가는 모습 등, 다양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 '동자동사람들'을 기록하기 위해 이주한 다큐사진가 조문호씨와 7년째 동자동을 기록해온 사진가 김원씨



이 사진은 지난해 10월, 동자동으로 이주한, 다큐멘터리사진가 조문호씨가 찍은 사진으로 주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마련한 전시라고 했다.

서로 보기 싶게 빨래 줄에 걸어 전시를 하고, 잔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본인 사진은 스스로 가져가도록 진행했는데,

쪽방주민들의 반응도 좋았다.



▲ 동자동사람들이 전시된 사진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37년째 동자동에서 살고 있다는 이재화(81)어르신은 사진을 품에 안으면서 “내 영정사진으로 간직하고 있겠다”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이에 조문호 사진가는 “경제적 여건으로 다 만들지 못해 아쉬웠다”며,

“빠진 분들은 오는 추석잔치에 다시 빨래줄 전시를 열어 나누어 주겠다”고 말했다.



▲ 이재화(81세)어르신이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또한 ‘동자동사람들’을 7년째 기록하고 있는 사진가 김원(53)씨는 “이곳 사람들을 촬영하면서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는다.

일주일만 건너뛰면 기다리고 전화하는 이들 때문에 매주 오게 된다.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사회에서 나누어주는 물품이 아니라, 자기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의 따뜻한 온기”라고 말했다.



▲ 주민자치회 김만귀(48) 위원장이 자신의 합동결혼식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날 잔치에는 ‘동자동사랑방’ 김호태 회장과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 우건일 이사장,

남영동 동장 마필승씨가 나와 주민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 어버이날 잔치마당을 열고 있는 동자동사람들




부활절을 하루 앞둔 지난 토요일 정오 무렵,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에서 '부활절 연합감사예배 및 짜장면 나눔 행사'가 열렸다.

‘전국노인, 노숙인 사랑연합회’에서 주최한 이 날 부활절 감사예배는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라 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동내 주민들 보다 대개 처음 보는 외지 분들이 많았는데,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많았다,

‘제사보다 젯밥’이라 듯이 다들 예배 후에 주는 짜장면을 기다리는 듯 했다.

짜장면을 싫어하는 사람이야 없지만, 노숙인들에게는 별미 중 별미일 것이다.

봄바람에 실리는 연주가 분위기를 띄어주었지만, 차례대로 이어지는 설교에 참석자들의 표정에 지루감이 묻어났다.

예배가 끝나고 짜장면 급식이 시작되자 질서정연하게 짜장면을 받아먹었다.

두 줄도 채 받지 않았는데, 처음 받은 사람은 다 먹어버렸다.

너무 맛있어 단숨에 먹었는지, 량이 적었는지는 모르지만 다들 잘 먹었다.

부활절 계란을 선물로 나누어주기도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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