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사진, 회화, 조각, 퍼포먼스, 비디오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뒤섞으며 작업하는 스페인 작가 프란체스카 마티(Francesca Marti)의 국내 첫 개인전이 개막됐다.

서울 소월로 표갤러리 서울(대표 표미선)은 ‘The third sense:제 3의 감각’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14일 마티의 서울 전시의 막을 올렸다. 이번 작품전에는 마타가 지난 14년간 작업해온 Fly, Soul, Dreamers, Tears and Scream, Nomad 시리즈가 최초로 공개된다.

마타는 강렬한 색채및 명도 대비를 꾀한 도발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작업으로 유럽및 미국에서 입지를 굳혀가는 작가. 미국,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이집트 등지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MoMA)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4월 4일까지.

 


 
프란체스카 마티 Sin II, Photograph, 170x125cm, 2000, edition 1/3 [사진제공=표갤러리] 


프란체스카 마티 White Shadow on Blue,Diptychwith video projection,two paintings on canvas,

 200x125 cm(each), projector, 2006 [사진제공=표갤러리]


 프란체스카 마티 Darkness I, Photograph and paintoncanvas,100x100cm,2008 [사진제공=표갤러리]

 

 

 

 

 

윤아미 사진전 ‘빌린 이야기’가 인사동 갤러리룩스에서 5일부터 열린다. 윤씨는 수면 중에 꾸는 꿈과 유년 시절 앓았던 몽유병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윤씨는 자신이 직접 등장한 셀프포트레이트 한 장과 천장을 찍은 사진 한 장을 병치시켰다. 좌측 사진은 몽유병을 앓았던 시절에 대한 연출사진, 우측 사진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처음 눈 떴을 때 보는 장면인 천장 사진이다. 특히 천장을 두고 “나의 현실의 꿈이 투사되는 화면”이라고 윤씨는 설명했다.

윤씨는 “사람은 평균 수명 80세를 기준으로 26년 7개월을 수면 상태에 있다”며 “인생의 1/3을 차지하는 이 시간은 현실도 아니고 현실이 아닌 것도 아닌 모호한 이성과 비이성의 점이지대다”라고 말했다. “꿈의 이미지가 아직 남아 있는 동안의 낯선 공간과 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3월 11일까지 열린다.



한편, 인사동 갤러리룩스가 윤아미 사진전을 끝으로 옥인동으로 이전해 오는 10월 재개관한다. 갤러리룩스는 1999년 개관한 최초의 사진 전문 갤러리다. 전시 및 관련 문의는 02-720-8488. [사진 갤러리룩스]

 

온라인 중앙일보




장터순례(29)전북 익산 북부장


“황토밭서 큰 것들은 뭐시든 맛있제이~”

전국 두번째로 큰 재래시장
전주·김제·군산·완주에 둘러싸여
교통 편리하고
채소·수산물 가격 싸
언제나 문전성시


▲▲장터로 들어가는 주택가 골목에는 직접 거둔 농산물만 팔 수 있는 할머니 난전이 선다.

▲익산 북부장은 성남 모란장 다음으로 큰 재래시장이다. 이웃한 전주·김제·군산·완주 등에서 찾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배 속에 들어간 건 절대 돈 받지 않는다”는 마이크 소리를 따라 장 안으로 들어서자 과자 파는 강성구씨(30)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6년째 장사한다는 강씨는 배 속에 들어간 것은 무조건 공짜이니 많이 먹으란다.

 젊은 장꾼의 너스레에 끌려 맛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더러는 사 가는 사람도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다 밑지지 않느냐고 걱정스레 물었더니 “할매들 장 한 바퀴 돌고 다시 찾아오는 것 보믄 아직은 정이 살아 있당께요” 한다. 과자 한 뭉치 산 허씨 할머니(76)도 한마디 한다. “얻어먹기만 하고 안 사면 쓰간디. 정은 주고받는 것이여.”

 장터로 들어가는 주택가 골목에는 지역 주민들이 직접 거둔 농산물만 팔 수 있는 할머니 난전이 서 있다. 할머니들 앞에는 찹쌀·콩·고구마·땅콩·냉이와 말린 나물 등이 펼쳐져 있어 가을걷이가 끝난 시골 마당 한 귀퉁이가 이사 온 것 같다.

 고구마와 말린 나물을 펼쳐 놓은 소씨 할머니(82)는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서 왔다. 할머니는 고구마 자랑이 한창이다.

 “황토밭에서 큰 것들은 뭐시든 맛있제이. 땅이 너무 질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동네서 캔 것들이여. 이 고구마 맛 한번 보면 내 말 알 것이구만.”

 할머니 앞에는 고구마들이 등을 포개고 나란히 누워 햇빛과 노닐고 있다.

 1975년에 개설된 익산 북부장(익산시 남중동)은 전국에서 경기 성남 모란장 다음으로 큰 재래시장으로, 끝자리가 4·9인 날이면 오일장이 선다. 전주·김제·군산·완주가 둘러싼 지역의 중심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이들 지역에선 어디서든 20~30분이면 올 수 있다.

 북부장은 익산 황토밭에서 자란 채소와 과일, 군산에서 나오는 각종 수산물을 싼 가격에 살 수 있어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특히 전국에서 고구마가 세번째로 많이 나는 지역이기도 하다. 자색고구마를 이용해 만든 <자주빛 고운님>은 이 지역에서 나는 천연 생막걸리다. 자수정처럼 고운 보석 빛깔을 품고 있어 익산의 자랑거리로 자리 잡는 중이다.

 익산은 금강과 만경강을 품은 천혜의 곡창지대로, 백제 시대에는 왕궁이 있던 ‘서동요의 고장’이다. 또 이웃한 군산·강경과 함께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화강암의 원산지로 오래전부터 석공업이 활발했던 곳이다.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나 왕궁리 5층석탑(국보 제289호) 같은 석조 문화재들이 많아 근대 문명의 박물관으로 불리지만, 일제의 아픔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익산은 또한 102년의 철도 역사가 있는 교통 도시이자, 우리나라의 유일한 보석박물관인 ‘주얼팰리스’도 있다. 주얼팰리스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유사한 모양으로 설계되었는데, 이곳에선 ‘나만의 보석 만들기 체험’도 가능해 목걸이나 휴대전화 고리 정도는 직접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해 콩과 마늘을 갖고 나왔다는 구씨 할머니(85)는 오랜만에 나와 시세를 잘 모르겠다며 말을 이어간다.

 “오늘 사람 구경 많이 했응께 남는 장사 했제. 옛날에 장사허는 사람들은 농사 안 지응께 필요한 것끼리 모다 바꾸고 그랬어. ‘아짐, 오늘은 뭐 갖고 나왔소?’ 함서 아는 체하고들 그랬는디, 시방은 모다 남이나 마찬가지여. 옛날 생각하믄 안 되는디 그때가 생각나서 한번씩 나오믄 사람 말을 안 믿고 ‘중국 것 아니냐?’ ‘농사진 것 맞냐?’고 자꾸 물어싸….”

 큰길가에서 김을 파는 염씨(46)는 방학을 맞은 아들과 함께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엠에프(IMF) 때 장돌뱅이 길에 들어섰다는 염씨는 막막하던 그 시절을 장바닥에서 흘려보냈다. 인근의 익산장과 군산 대야장, 완주 봉동장·삼례장을 도는데 사철 파는 물건이 다르다고 한다. “장터 흐름을 읽을 줄 알면 장삿길도 편하다”는 염씨는 장터에서 세상살이를 배워간다.

 익산에서 열리는 장은 이 밖에도 천년고도 마한백제가 살아 있는 금마장(2·7일), 함열장(2·7일), 여산장(1·6일), 조선 시대부터 장이 열렸다는 황등장(5·10일)이 있다.

 

                                                                                                         최재영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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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하는 사람으로 이명동선생 모르면 간첩 소리 듣는다.
한국사진계에 끼친 영향력도 워낙 크지만 보도사진가로서의 기자정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4,19때 총탄이 쏟아지는 경무대 앞에서 찍은 사진과 육군교도소에 수감된 서민호선생을 찍기 위해 위장한 사건 등으로 사진계에 전설을 일구어 냈다.

그는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올해로 95세를 맞은 원로 사진가다.
어린 시절, 소 판돈 들고 나와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의 길로 나선 것이다.

종군기자로 시작된 사진인생은 육군본부에서 주최한 전투사진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막을 열었고,

화랑무공훈장을 무려 3개나 받았다.
동아일보 인촌선생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식장을 지켜, 갑자기 조문 온 이승만대통령을 찍어 특종 하였는데,

그 것이 계기가 되어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입사했다. 여지껏 사진기자 출신으로 부국장 반열에 오른 사람도 없거니와, 

일하는 동안 몸 아끼지 않는 그만의 기지로 많은 특종을 만들어 냈다.

특히 국내 최초로 시작된 동아사진콘테스트와 동아국제살롱사진, 사진단체 창설 등 사진사에 남을 중요한 일들은 모두 선생께서 주도하셨다. 대학에서 보도사진을 강의해 후학들을 양성하기도 했지만, 선생의 날카로운 사진비평은  황무지나 마찬가지였던 사진계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정년퇴임 후에는 '한국화보'와 '서울화보'를 발간하여 우리문화를 세계에 알렸으며, 그 이후 '사진예술'을 창간하여 낙후한 국내사진잡지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   

그동안 사진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현대사진문화상, 제비꽃 특별사진가상, 옥관문화훈장, 건국포장, 언론부문의 인촌상 등을 받아 온 이명동선생은 한국사진계의 전설이자 산 증인임에 틀림없다.

지난 2월 24일 아침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생각지도 않은 이명동선생의 전화를 받아 어리둥절했는데,

자택이 있는 약수동에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는 말씀이셨다.

선생님을 만나뵙고 갈비탕과 차를 들며 즐거운시간을 가졌지만,

계산을 먼저 해 민망하게 만들었다. 
사시는 모습을 기록하려 찾은 자택에는 사모님 혼자 계셨는데,
거동이 불편한 사모님을 위해 직접 밥을 지어 차려주고 나오셨다는 것이다.
연로하신 선생님께서 시장보아 음식 만들고, 간병까지 한다니 기가 막혔다.  

 

"아! 이게 인생이구나"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많은 공적과 화려한 명성도 세월 앞에는 다 부질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좁은 방에서 장모님 간병하는 아내가 안타까워 투정했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 졌다.  

선생님께서 마지막까지 한 수 가르쳐 주신 것이다.
갑자기 전화주신 것도 내 처지를 아셨던 모양인데, 이것이 말없는 교육이었다.
떠나올 때, 장모님 맛있는 음식 사드리라며 주머니에 강제로 찔러 넣어 준,
꼬기 꼬기 접은 오만원권 지폐 두 장이 결국 나를 울렸다.    

 

 

 

 

 

 

임채욱 'inside mountains'사진전


일시 : 2014년 3월 2일부터 3월 28일까지

장소 : 아라아트센터 (지하1,2,3,4층)  

개막식 : 3월 5일 오후6시

주관 : 아라아트센터

기획 : 박인식

 

 

 

 

 

 

 

 

 

 

 

 

 

 

 

 

 

 

 

 

 

 

 

 

 

 

 

 

 

 

 

 

 

 

 

 

 

 

 

 

 

 

 

 

이명동선생님을 모시는 자리가 지난 21일 정오, 인사동 '양반댁'에서 있었다.
그 자리에는 이명동선생님을 비롯하여 한정식, 육명심, 이완교, 김녕만, 구자호, 최재영, 유병용, 이기명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김기찬씨의 미망인 최경자씨 등 모두 열 한분이 참석한 가운데 오찬회를 가졌다.
올 해로 95세인 이명동선생님께서는 아직까지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지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모두들 선생님의 무병장수를 바라는 축배도 들었다. 독일에서 곧 열리게 될 비엔날레에 한국작가로 참여하게 된 이완교씨와 대구사진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을 맡은 구자호씨로 부터 외국과 국내와의 비엔날레 운영에 대한 차이점을 듣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진계 문제점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거론되었으나, 주요 화제는 사진협회에서 주관해 온 사진공모전의 오래된 비리였다.

사협 공모전 비리가 어제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010년에는 '한사전' 심사비리가 발각되어 사무처장 김모씨가 사전 구속되고 이사장을 비롯한 심사위원, 출품자 등 42명은 불구속 입건하는 등 사진계 초유의 비리사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도 있었다. 그 당시 경찰 발표에 따르면 김씨는 2008년 4월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대상수상을 부탁하는 진모씨로부터 3,000만원을 받는 등 2007년년부터 2010년까지 출품자 42명으로부터 총4억여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다. 그는 보통 대상작에는 3,000만원, 그 외는 300만원에서 1,500만원을 챙겼다고 한다. 김씨는 심사위원들을 협회 이사장실이나 모텔로 불러 미리 출품작의 샘플사진을 보여주며 '눈도장'을 찍게 하거나 심사장에 여직원을 들어오게 해 해당작이 나오면 자리에서 일어서는 방법으로 신호를 보내 특정 사진을 수장작으로 만들었는데, 김씨가 기획부터 심사위원 선정까지 협회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의 모든 과정을 총괄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8.000여명이나 되는 사단법인 단체에서 일개 사무처장에 의해 심사위원들이 좌지우지하는 이런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진공모전 비리 문제는 '사협'이란 단체가 결성될 때부터 이어져 온 구악이라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러한 비리물증들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 물증을 근거로 출품자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하다 고소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부탁한 사람들의 샘플사진 이면에 공모전명, 제공한 금액, 결과 등이 상세히 기록된 협박용 물증의 분량이 라면박스에 가득하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론적으로 사협이란 단체에 작품사진을 심사할 능력 있는 분들이 없다는데 문제가 더 크다. 20여 년 전, 만연한 비리에 식상한 대학교수와 프로사진가들이 모두 탈퇴하였기 때문이다.

이명동선생님께서는 옛날에 있었던 비리의 한 사례를 들려주었다.
어느 출품자가 심사위원들에게 같은 양복기지(원단)를 뇌물로 돌렸는데, 출품자가 의뢰했던 양복점에서 심사위원들이 똑같이 양복을 만들어 입고 심사장에 나와 서로가 놀랐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배꼽을 잡았다.

오찬 모임이 끝난 후 육명심선생과 함께 '갤러리 나우'에 들려 이순심관장과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 있는데, 사진평론하는 진동선씨와 김영태씨가 등장하여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김석종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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