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호, 인사동 리서울갤러리에서 3월25일까지 전시

 

서양화가 임지호씨의 제10회 개인전이 인사동  리서울 갤러리에서 3월5일부터 25일까지 열린다.   '상상의 시작'이란 부제로 소품 회화작품을 주로 전시한다. 일상, 순수, 세월, 인연, 꽃밭 등의 단어가 제목으로 들어간 작품들로 예술적 상상과 영감, 삶의 쉼표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편완식이 만난 사람] 그림 그리는 방랑식객 임지호

 

캔버스란 접시에 요리 담아… 누군가의 허기진 배 채워주겠죠”

임지호씨는 “음식은 복덩어리라 먹는 자는 복을 받는다는 감사한 마음을, 만드는 자는 복을 짓는다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과 들, 그리고 바다에 자생하는 모든 풀과 해초 등을 식재료로 삼아 나름의 요리를 만들어 가는 자연요리 연구가 임지호(59)씨. 그가 인사동에 나타났다. 전국을 누비며 할머니들의 토종 손맛을 구걸하고, 산야에 널려 있는 자연요리재료들을 채집하던 이가 전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래전에 그가 운영하는 양평의 레스토랑에서 서너 번 그를 마주한 적이 있다. 전원속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취재하다가 요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연히 들른 곳이 그의 레스토랑이었다. 그가 일을 마치고 그림을 그린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저 호사스러운 취미일 것이라고 흘려들었다. 이후 그의 전시소식이 간간이 들려왔다.


인사동 거리에서 맞닥뜨린 그가 다짜고짜 그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으로 이끌었다. 그림들을 둘러보며 그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요리 한 접시가 캔버스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림에서 음식이 보인다는 사람들의 평가가 괜한 말이 아니었다. 방랑식객으로 유명한 그가 왜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 우선 궁금했다.

“누구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축하해 주기 위한 음식을 만들 때 그 사람에 맞는 것을 우선 그려보게 됩니다. 일종의 스케치이자 영감의 기록이지요. 음식 디스플레이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다보니 그림이 됐습니다.”

적당히 보기 좋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그가 손사래를 쳤다. 하나의 법이라며 그림에서의 화법 같은 것이라고 했다.

“성공하고 싶은 사람에겐 꿈을 상징하는 씨앗 요리를 해 줍니다. 꿈의 씨앗을 키우라는 의미지요. 성공의 색인 황금색 열매와 채소류 요리가 좋아요.”

그는 용기가 부족한 사람에겐 우주적인 용기를 상징하는 검은색 요리를 해준다. 청정함이 필요한 이에겐 푸른색 음식을, 순수함이 요구되는 자에겐 흰색 식재료를, 열정이 부족한 이들에겐 붉은색 요리를, 사랑이 결핍된 이에겐 핑크색 음식을 마련해 주는 식이다. 화가들이 색을 다루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림에서 선 못지않게 음식에서의 선도 중요합니다. 선은 에너지이기 때문이죠. 요리를 직선과 곡선으로 배열했을 때 느낌이 다릅니다. 식재료를 사각, 삼각, 원으로 잘랐을 때 맛이 달라져요.”

그는 천천히 갔으면 하는 사람에겐 빠른 직선이 아닌 느린 곡선의 요리를 해 준다. 함께 하는 삶이 필요한 사람에겐 식재료를 엉켜있게 해서 서비스를 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몸은 인식을 하게 됩니다. 몸이 따라주면 생각도 따라주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삶이란 결국 자신을 진화시켜가는 행위지요.”

그는 이런 식으로 색상과 선을 선택해 가며 그림을 그렸다. 드로잉만 3000여점을 했다. 요즘엔 스케치 없이도 요리를 한다. 완숙한 경지에 오른 화가의 붓놀림이라 할 수 있다. 캔버스라는 접시에 요리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제 그림이 어느 누군가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리란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겐 현실을 넘어선 환상 여행입니다.”

맛과 멋이 접시와 캔버스에만 머물라는 법은 없다. 우리 모두의 영혼과 육체 속에서 수많은 반복의 자맥질을 하면서 행복이란 열매를 키워내고 또 다른 나와 너를 다듬고 보듬는 것이 아닐까. 그의 그림을 빈 가슴에 듬뿍 담아 본다. 봄날의 향기, 힘, 그리움 등이 벅차게 몰려든다.

그의 관심사는 자연재료와 그것을 조상 대대로 어떻게 먹었는가이다. 바닷가와 산속에 몇 년씩 머물거나 전국을 유랑하며 우리 손맛을 찾아나선 이유다.

“우리의 젓갈과 장문화에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땅에서 생존케 해주는 지혜가 숨겨 있습니다. 조상들이 미래세대에게 최소한의 생존조건을 마련해 준 셈이지요.”

그는 아파트 등 생활환경 변화로 전통의 가치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우리의 미래를 잃는 것이라 했다.
“공동체 회복 차원에서라도 아파트 등의 화단에 공동의 장독대를 마련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재래 간장엔 해독작용이 있고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된장엔 저항력을 높여주는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 전통음식이 몸을 살리는 지혜의 보고라는 얘기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게장을 담가 그 위에 참기름을 부어 부패를 방지하기도 했다. 찬 성질의 참기름이 밀폐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작품 ‘품바 새’ 옆에 선 임지호씨. 각설이 같은 그의 삶에서 음식은 생명살림이고 그림은 영혼의 쉼터였다.


그는 각종 첨가제나 조미료가 인간의 오각을 망가뜨리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향이나 색 등을 왜곡, 획일화시켜 ‘그 자체’의 맛의 감성을 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재료의 본맛이 바로 몸의 건강한 요소라는 논리다.

“음식은 땅의 소식을 하늘에 전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바로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이지요. 우리는 그 소식을 온전히 느껴야 합니다. 인간도 자연이기에 그렇습니다.”

요즘엔 땅에서 자란 것들도 자연산보다는 인공재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자연산이 영양소 100%라고 한다면 재배한 것은 영양소 15%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봄이 됐으니 온가족이 소쿠리를 들고 들과 산으로 나가 각종 자연산 나물을 캐 한 끼 식사를 준비해 보십시오. 가족 화목에도 좋지만 필요한 건강 영양소를 100% 섭취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는 우리 주변 산야에 널려 있는 풀들에 주목하라고 한다. 이 시대에 맞게 진화한 먹거리들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의 풀과 나무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성분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진화에 순응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인간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질경이가 지천으로 흥했을 땐 돌림병이 유행했다. 예로부터 질경이는 바로 그런 돌림병에 특효 성분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은 그런 방식으로 흥하고, 진화하고, 준비했다.

“인간이 요리하는 것은 자연에 가장 잘 순응하려는 몸짓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11살 때부터 라면집, 횟집, 공사판 함바집, 중국집 등을 떠돌며 요리를 배웠다. 한때는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일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숙명처럼 자연재료와 전통요리법에 빠져들었다. 서울 강남에서 자연요리전문점을 3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제가 가는 길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성공모델은 아니어도 가야 할 모델만큼은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의 이런 생각에 강원도 화천군이 화답하고 나섰다. 그가 주도하는 산촌의 자연요리학교가 내년쯤이면 가시화될 예정이다. 외국인 학생도 받아들여 화천을 식문화 혁명의 세계적 메카로 키운다는 포부다.

세계일보 /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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