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 전민조 (사진가) 2014.07.31
- 포트폴리오리뷰 2014.07.19
- 'The Masterpieces'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展 2014.07.18
- 이명동 "먼 역사 또렷한 기억"사진展 2014.07.10
- 원로사진가 이명동 선생의 생애 첫 사진전 개막 2014.07.06
- [25일 6·25전쟁 64주년]‘아버지께…’ 부치지 못한 전장의 편지 2014.06.29
- 역사적 현장 놓치지 않은 사진계의 살아있는 전설 2014.06.29
- [신수진의 사진읽기]지금 그대로의 당신에게 경의를 2014.06.21
전민조 (사진가)
포트폴리오리뷰
ENCOUNTER'14
•기획자 송수정
•기 간 2014. 9. 13(토) - 9. 14(일)
•장 소 호텔 인터불고
2014대구사진비엔날레는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가능하도록 리뷰 프로그램 “ENCOUNTER"를 준비하였다.
국내외 전시 기획자, 미술관 관계자, 사진축제 기획자 등이 리뷰어로 참석하는 본 프로그램은 작가들이 작업에 관해 현장 전문가와 심도 깊게 고민을 나누고, 전시와 출판 등의 구체적인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의미 있는 만남의 장이 될 것이다.
포트폴리오리뷰를 통해 우수 작가로 선정된 작가에게는 리뷰어들과의 개별적인 성과와 별도로 "2015 휴스턴 포토페스트 발견전" 및 "2016 휴스턴 포토페스트 포트폴리오 리뷰" 참여, "2016 대구사진비엔날레 우수포트폴리오 선정 작가전"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포트폴리오 리뷰는 국내 사진, 미술 전문가는 물론 한국 사진에 관심이 많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과 아시아의 사진관련 전문인들에게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이다.
알찬 결실을 맺은 2012년 포트폴리오 리뷰의 성과에 부응하고, 현재에서 더 나아가 미래에도 한국의 사진이 큰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기에, 젊은 사진인들에게 의미 있는 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신청기간 : 2014년 7월 26일(토) - 8월 3일(일)
신청경로 : 본 홈페이지 PARTICIPATION>포트폴리오 리뷰>신청안내
해외 리뷰어
레기나 안젠버거 Regina Anzenberger (오스트리아) |
비엔나 안젠버거 갤러리 디렉터 |
---|---|
아이린 아팅거 Irene Attinger (프랑스) | 유럽사진미술관 출판팀장 Library director of Maison de la Européenne Photographie |
짐 캐스퍼 Jim Casper (프랑스) | 렌즈 컬쳐 발행인 Publisher of Lens Culture |
로지나 카잘리 Rosina Cazali (과테말라) | 독립 큐레이터 Independent Curator |
클레어 그래픽 Clare Grafik (영국) | 영국 런던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전시팀장 Head of Exhibitions of London Photographer's Gallery |
엘리나 하이카 | 핀란드 사진미술관장 Director of Finnish Museum of Photography |
바오 쿤 Bao Kun (중국) | 평론가 겸 전시기획자 Critic |
그웬 리 Gawen Lee (싱가포르) | 싱가포르 사진축제 디렉터 Director of Singapore International Photography Festival |
보니 루벤스테인 Bonnie Rubenstein (캐나다) | 스코티아뱅크 콘택트 사진 축제 감독 Director of Scotiabank CONTACT Photography Festival |
히립시메 비써 Hripsime Visser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큐레이터 Curator of Stedelijk Museum Amsterdam |
웬디 와트리스 Wendy Watriss (미국) | 휴스턴 포토페스트 디렉터 Artistic Director of Fotofest |
야마지 유코 Yuko Yamaji (일본) | 일본 기요사토 사진미술관 큐레이터 Curator of Kiyosato Museum of Photographic Arts |
국내 리뷰어
강수정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
---|---|
구본창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
박영미 | 박건희문화재단 학예연구실장 |
박원재 | 원앤제이갤러리 대표 |
박천남 |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신보슬 |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
신수진 | 일우사진재단 디렉터 |
양정아 | 국제사진기획자, Y&G 아트디렉터 |
이상일 | 고은사진미술관 관장 |
조선령 | 미술평론가,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
최성우 | 보안여관 디렉터 |
홍경한 | 경향아티클 편집장 |
'조문호사진판 > 사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곳에서 만날 사람] ‘히말라야 14좌 사진전’ 연 사진작가 이창수씨 (0) | 2014.07.31 |
---|---|
"우리는 그냥 독도가 되자"…김중만 '독도 사진전' (0) | 2014.07.31 |
'The Masterpieces'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展 (0) | 2014.07.18 |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발자국 (0) | 2014.07.14 |
이명동 "먼 역사 또렷한 기억"사진展 (0) | 2014.07.10 |
'The Masterpieces'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展
The Masterpieces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展
2014_0705 ▶ 2014_0830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4_0705_토요일_05:00pm
참여작가
으젠느 앗제 Eugène Atget_에드워드 스타이켄 Edward Steichen
폴 스트랜드 Paul Strand_브라사이 Brassaï_마거릿 버크화이트_Margaret Bourke-White
앙리 까르티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_유섭 카쉬 Yousuf Karsh
아널드 뉴먼 Arnold Newman_마리오 쟈코멜리 Mario Giacomelli
브루스 데이비드슨 Bruce Davidson_르네 뷔리 René Burri_요세프 쿠델카 Josef Koudelka
마르틴 프랑크 Martine Franck_안타나스 수쿠스 Antanas Sutkus
로버트 메이플소프 Robert Mapplethorpe_허브 리츠 Herb Ritts
후원 / 가현문화재단_한미사이언스
관람료 / 성인 6,000원 / 학생 5,000원
송파구민, 사진관련학과, 단체 10인이상 1000원 할인
미취학 아동, 65세 이상, 장애우, 국가유공자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목요일_10:00am~09:00pm / 토,공휴일_11:00am~06:30pm / 일요일 휴관
한미사진미술관T
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19, 20층
Tel. +82.2.418.1315
소장품은 미술관을 대표하는 미술관의 얼굴이다. 전반적인 예술사 흐름을 유념하며 역사적, 미학적 관점에 따라 작품을 수집하는 미술관의 수집정책은 그 미술관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수집 방향의 일관성과 장기적인 안목은 미술관이 기반으로 하는 장르 전체를 아우르고 기관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 한미사진미술관은 한국사진사의 올바른 정립을 위하여 우리사진의 역사를 열다(2006), 대한제국 황실 사진전(2009)등 일련의 한국 근대사진 전시를 통해 국내 역사사진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왔으며 전시를 통해서 소개한바 있다. ● 이번 소장품 전시 The Masterpieces는 한미사진미술관의 정체성 확립과 내실화를 위해 꾸준히 수집해온 소장품들 중에서 해외 작품들을 엄선하여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전시이다. 세계 사진사 흐름에 충실하여 초기의 으젠느 앗제Eugène Atget를 비롯하여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 1930년대의 브라사이Brassaï, 인물의 힘을 보여주는 유섭 카쉬Yousuf Karsh, 결정적 순간의 앙리 까르티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등 해외 명작들을 포함한 주요 오리지널 작품들은 사진매체 고유의 사실적 특성을 기반으로 예술적 다양성을 수렴하는 한미사진미술관의 수집정책을 여실히 보여준다. ● 사진의 가능성과 미학에 대한 실험들로 점철된 사진사 170여 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각각의 사진이 지닌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발견하고 사진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이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출판물과 매체로만 소개해왔던 유수의 오리지널 작품을 총망라하여 전시장에서 직접 마주하는 아주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 손영주
으젠느 앗제 Jean Eugène Auguste Atget (프랑스, 1857~1927) ● 1897년부터 1927년까지 도시계획으로 변화되는 파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앗제는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빠른 속도로 근대화되어 가는 파리의 구시가지의 모습들은 기록하였다. 그의 사진들은 당시 문화의 중심지이자 급속히 거대 도시화되는 파리의 뒷골목, 가게의 유리창 안의 디스플레이, 건축 파사드 세부 등 사라져가는 자국의 문화유산을 자료로 남기고자 하는 공공 기관의 요청에 의해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파리의 구석구석 모든 것을 체계적이고 섬세하게 담아내었다. 당시 파리의 사진가들은 안정적인 구도와 노출의 완벽한 구성을 통해 사진을 제작하였으나 앗제는 사진의 형식적인 부분에 집착하지 않았다. 낡은 뷰 카메라의 노출과 테크닉 등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동트는 새벽, 이른 아침의 한적한 텅 빈 파리의 모습들을 장시간 노출로 촬영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그의 사진 속에서 건축물의 제외한 움직이는 사물들은 이미 사라진 흔적으로 표현되고, 렌즈 사이즈의 문제로 초점이 부정확하고 원판의 가장자리도 가려져 있다. 앞서 언급했듯, 공공기관의 의뢰로 만들어진 사진들이었기 때문에 몇몇 사진 유리원판에는 분류번호가 매겨져 있다. 실용적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앗제 사진은 텅 빈 도시의 멜랑콜리한 기분을 극대화하였다. 1920년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만 레이Man Ray의 조수인 미국출신 사진가 버레니스 애벗Berenice Abbott에 의해 널리 알려져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진가로 알려져 있다.
에드워드 스타이켄 Edward Steichen (미국, 1879~1973) ● 미국의 사진가이자 전시 기획자로 20세기 현대 사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 중에 하나이다. 화가로 출발한 에드워드 스타이켄은 초기에는 부드러운 초점의 회화적인 분위기의 사진으로 시작하여 흑백, 컬러 사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인물과 풍경, 패션, 광고 등 다양한 주제를 섭렵하였다. 스타이켄이 사진을 시작한 20세기 초반 당시 미국의 사진계에서는 인상주의 회화와 같은 느낌의 부드러운 백금인화에 조색하는 회화주의 경향이 유행하였다. 1905년에 제작된 이 작품의 경우 안개 낀 저녁거리의 모습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점을 볼 때 20세기 초 회화주의 사진의 영향아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스타이켄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glitz와 함께 사진 분리파로 활동하며 독자적인 장르로서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스타이켄은 극적인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1955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사진부 책임자로 재직할 당시 기획한 인간 가족전 The Family of Man은 세계적으로 그의 이름을 알린 전시이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273명의 사진가들의 200만장의 사진을 한자리에 모은 이 전시는 사진은 예술이라는 지엽적인 분야에서 벗어나 대중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세상을 알리고 이해시키는 매체로서 가능성을 지닌 사진만의 특성을 부각시켰다. 전세계 85개국의 순회 전시를 통해 이 전시는 사진이란 매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각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였고, 1957년에는 서울 경복궁 미술관에서 전시되며 한국 사진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폴 스트랜드 Paul Strand (미국, 1890~1976) ● 즉물사진의 개척자인 폴 스트랜드는 1900년에 사진 분리파 운동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glitz가 제안한 '스트레이트 사진'이 출연한 시기부터 포토저널리즘의 전성기에 이르기까지 사진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사진의 예술성과 과학적인 속성의 일치점을 모색하여, 사진의 기계적 기록성을 더욱 강조하여 즉물적인 극한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진을 통해 사진 분리파가 내건 순수사진의 주장을 보다 더 발전시켰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루이스 하인 에게 폴 스트랜드를 소개받은 스티글리츠는 첫 전시를 '291화랑'에서 갖도록 주선하였으며, 그의 사진을 『카메라 워크Camera Work』지 특집으로 꾸몄다. 이번에 소개되는 5점의 사진들은 대상을 정밀하게 클로즈업해서 촬영하는 동시에 조형적으로 구도를 잡아 사실적인 질감과 둥근 곡선들의 조화를 보여준다. 육안으로 느끼지 못했던 사물의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브라사이 Brassaï (헝가리, 1899~1984) ● 브라사이는 프랑스 사진의 주요 작가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 베를린 소재 미술학교에서도 공부한 적이 있다. 그 후 1923년에는 파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브라사이는 예술의 다양한 방면에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이러한 예술적 천성이 그로 하여금 파리에 머물게 했으며 예술의 도시에 쉽게 삶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였다. 그는 그 당시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를 비롯한 화가들과 헨리 밀러,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등과 함께 어울렸다. 그의 사진 작품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섬세함이라 하겠는데 이러한 예술가적인 그의 기질이 항상 화면 전체에 나타난다. 그는 사진뿐만 아니라 그림, 조각작업도 하고, 시도 많이 썼다. 그는 소재뿐만 아니라, 기록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사진에 대한 입장, 한편의 시적인 작품 분위기라는 점에 있어서 으젠느 앗제Eugène Atget의 사진세계와 동일하다. 앗제의 사진이 내향적이고 소박한데 비해, 그의 사진은 외향적이며 화사하다. 대상의 묘사가 소박한 경향을 보인 앗제와 달리, 브라사이는 대상을 극명하게 묘사하면서 개방적이고 전면적인 느낌으로 대상과 주위 환경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그는 대체적으로 인물을 화면 속에 전면으로 부각시키고 공간적 배경이나 분위기는 존속적인 조화관계로 처리했다. 이와 같이 다양성을 지닌 브라사이의 사진에서 회화적인 정취 혹은 조각처럼 입체적인 형태미와 더불어 시적인 로망을 머금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브라사이는 어느 하나에만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사진적인 조건 속에서 항상 그것들을 다루고 있다.
앙리 카르띠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 (프랑스, 1908~2004) ● 1930년대는 세계 1차대전이 끝난 후 활동성이 좋은 소형 카메라의 사용과 사진인쇄술의 보급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시기이다. 앙리 카르띠에-브레송은 사람의 눈과 유사한 35mm 카메라를 사용하여 소형 카메라의 사진미학을 '결정적 순간'이라는 명제로 제시하여 사진의 미학적, 기술적 가능성을 보여준 사진가이다. 그가 말하는 '결정적 순간'은 사진 촬영에 있어서 빛, 구도, 감정이 일치하는 순간, 다시 말해 대상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순간을 말한다. 1952년 발간된 브레송의 첫 사진집 『결정적 순간』은 브레송이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전세계 사진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진방법론이 되었다. 그는 대학 시절 회화와 문학을 공부하며 그림을 위한 자료로서 사진을 접하게 되었고 으젠느 앗제, 만 레이의 사진에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게 되었다. 1931년 처음으로 구입한 라이카 카메라는 평생 그의 동반자가 되었고 25세의 나이로 뉴욕 줄리안 레비의 화랑에서 첫 번째 사진전을 열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브레송은 잡지 편집자의 조수로 경력을 쌓아가고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인도, 중국, 미얀마, 멕시코, 쿠바, 구소련을 취재하며 사진사에 길이 남는 명작을 남겼다. 앙리 카르띠에-브레송은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무어 등과 1947년 '매그넘 포토스 Magnum Photos'를 창립하였다. 매그넘은 '크다' 또는 '포도주를 담는 큰 병'을 가리키는 라틴어로 브레송이 말하는 '결정적 순간'의 한 장에 대한 사진미학을 강조하여 동시대에 일어나는 세계 곳곳을 취재하는 국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그룹이다. 브레송의 작품들은 그만의 위트를 느낄 수 있다.
유섭 카쉬 Yousuf Karsh (미국, 1908-2002) ● 유섭 카쉬는 인물 사진가 중 가장 유명한 사진가이다. 1933년 캐나다에서 인물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총독 부처를 비롯하여 고관과 그들의 가족을 찍기 시작하면서 인물 사진가로서 자리잡았다. 사진 속 인물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통해 사진가와 직접 대면했을 때 느끼는 강렬한 인상을 카메라에 담는 카쉬는 다양한 조명 테크닉으로 흑과 백의 강한 대비를 통해 인물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여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 화가, 유명 배우들의 사진을 고전적인 인물화 방식으로 촬영하였다. 카쉬의 후원자인 캐나다 수상 맥켄지 킹의 주선으로 1941년 캐나다를 방문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을 찍은 이 사진은 후에 『라이프』지의 표지에 실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당시 독일과의 정치적 관계에서 처칠의 카리스마 넘치는 인상을 잘 표현한 이 사진은 카쉬가 사진을 찍기 위해 처칠이 입에 문 시가를 빼앗았고, 이에 화가 난 처칠의 모습을 촬영한 일화로 유명하며 지도자로서의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인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그 후 카쉬는 『라이프』지의 요청에 의해 42명의 인물을 촬영하였고, 사진마다 인물 삶과 개성이 드러나는 표정과 손짓으로 인물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진가로서 인정받고 있다.
아널드 뉴먼 Arnold Newman (미국, 1918~2006) ● 아널드 뉴먼은 1941년 이후 샤갈, 피카소, 미로, 잭슨 폴락 등 많은 예술가들의 인물 사진을 발표해온 미국의 대표적인 포트레이트 사진가이다. 발레 음악 「봄의 제전」, 「불새」를 비롯해 가극 오라토리오 「오이디푸스 왕」 등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를 피사체로 담은 이 사진은 아널드 뉴먼의 대표 작품이다. 주로 인물을 짐작케하는 사물을 배경에 적절히 배치하여 촬영하는데 능했으며 파격적인 구도의 트리밍으로 신선한 초상을 보여준다. 〈Igor Stravinsky〉 작품은 전형적인 초상 사진이라 하기엔 그랜드 피아노의 검은 뚜껑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아래쪽 한구석에 스트라빈스키의 몸이 조그맣게 배치되어 있다. 사진 속 단순한 배경과 강한 명암의 대비는 인물로 시선을 끌어들인다. 그의 사진 속에는 복잡한 이미지 속에 단순한 요소가 패턴화되어 숨어 있으며 흑백 프린트의 깊이와 톤의 풍부함이 인물과의 친밀감을 더해준다. 평론가들은 뉴먼을 '환경적 인물사진가'라고 부른다. 그는 스튜디오용 대형 카메라만을 사용했지만, 스튜디오 초상사진의 전형성을 벗어나 인물의 생활, 직업이나 업적을 드러낼만한 요소를 화면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그 결과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익숙한 자신들의 공간 안에서 한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촬영 전 그는 촬영 인물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데 열성적이었다. 촬영 대상이 유명인이면 신문, 잡지사에 정보를 요청하고 일반인이면 식사를 같이 하거나 그 주변 인물을 만나서 정보를 파악하였다. 그는 촬영 대상을 알 기회가 없을 때에만 자신의 상상력과 직감에 의존했다.
마리오 쟈코멜리 Mario Giacomelli (이탈리아, 1925~2000) ● 이탈리아의 사진가인 마리오 쟈코멜리는 이탈리아의 유명 시인과 화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흑백의강렬한 사진작업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상과 자연풍경을 촬영대상으로 삼았으며,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기보단 시적인 은유나 사색이 담긴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로 재구성하였다. 촬영 및 인화 테크닉을 통해 사진이미지를 부분적으로 남기기도 지우기도 하고 흑백 톤을 조절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로서 사진을 다뤘다. 흔치 않은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쟈코멜리는 죽음의 문턱에 있는 병든 노인들, 검은 옷을 입고 생활하는 스카노Scanno 마을사람들, 그리고 수도사들의 삶을 특유의 방식으로 조명했다. 그의 작업 곳곳에는 사진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죽음 시리즈는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강한 흑백대비를 살리고 거친 입자를 강조하는 인화법으로 표현한다. 대개가 종교적이고 어두운 분위기의 사진이다. 사진 속에서 작가 얼굴을 대신하는 가면, 날아가는 새들은 엄습하는 죽음을 상징하는 피사체로 등장한다.
요세프 쿠델카 Josef Koudelka (체코, 1938~ ) ● 요세프 쿠델카는 인간이면 누구나 부딪히는 삶의 순간들―탄생, 결혼, 죽음―을 자유로운 집시의 삶으로 보여준다. 연극 사진을 시작으로 극적인 상황, 그리고 대상을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하는 태도를 익히고 1962년 이후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유럽 곳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소수민의 삶을 보여준다. 쿠델카는 그들의 환경 안에서 클로즈업을 통해 고발하거나 억지스런 앵글로 호소하지 않으며, 삶의 무게를 힘들게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의 사진은 때때로 가슴 깊은 적막함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대상에 대한 신뢰와 그들과 형성된 유대감이 바탕이 되어있다. ● 요세프 쿠델카의 집시연작은 1967년 체코 프라하에서 전시되고 1975년에 사진집으로 출판되었다. 살인죄에 대한 형 집행을 위해 무리와 떨어져 걸어가는 한 남자의 긴장한 몸과 무표정,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사진 속에서 암시적으로 느껴지는 남자의 운명은 바닥에 깊이 박힌 거친 타이어 자국만큼이나 힘들게 느껴진다. 그를 바라보는 집시 무리와 점점 벌어지는 현실의 거리가 멀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사진가와 남자와의 거리만큼이나 긴밀하다. ● 집시를 통해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가가 되었지만,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유민주화를 담은『프라하의 봄』을 발표한 후 조국에서 추방되었다. 여전히 쿠델카는 자신의 흔적이 남아있는 터전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집시처럼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사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 한미사진미술관
□ 전시연계프로그램 라운지토크(총2회)
1) 7월9일(수)오후2시
주제 : 문화 속에 숨은 사진이야기
강연자 : 최봉림(한국사진문화연구소 소장)
장소: 한미사진미술관 20층
2) 8월13일(수)오후2시
주제 : 큐레이터의 이야기가 있는 전시해설
강연자 : 손영주(한미사진미술관 수석큐레이터)
장소 : 한미사진미술관 20층
Margaret Bourke-White_Dancers in a Saloon_Gelatin silver print_20.2×25cm_1936(Printed in 1950s)
Bruce Davidson_untitled(from Brooklyn Gang)_Gelatin silver print_22×33.5cm_1959
René Burri_Pablo Picasso, Villa la Californie, Cannes_Gelatin silver print_32.2×48.3cm_1957(Printed in 2004)
Martine Franck_Tulku Khentrol Lodro Rabsel with his tutor Llagyel Shechen in the Bonath Monastery, Nepal_Gelatin silver print_23.5×35.5cm_1996
Robert Mapplethorpe_Feathers/Eggs_Gelatin silver print_38.9×39.2cm_1985
Museum's collection pieces represent the museum's identity. To what extent and what kind of work one considers to collect, so-called acquisition policy tells about the museum itself. Coherency and long-term discernment in collection practices encircle the whole genre the museum stands on, and proposes its prospective direction. ●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MOPS) has endeavored to define history of Korean photography in a fine way through a series of Korean vintage print shows. History Reveals(2006), Portraits of the Grate Korean Imperial Family(2009) are examples. MOPS, for this time presents masterpieces from overseas, the museum has industriously collected for substantiality and establishment of institute identity so far.The Masterpieces introduces a select vintage prints covering Eugène Atget from the very first, Edward Steichen, 1930s' Brassaï, Yousuf Karsh with his powerful portrait, and Henri Cartier-Bresson of 'The dismissive moment' within a chronological frame of photography history. This group of original prints well reflect the museum's collection policy which canvass artistic variety based upon the medium's intrinsic characteristic; a realistic documentation. ● The Masterpieces will provide a rare chance to encounter with large numbers of original masterpieces, introduced merely through publication in the meanwhile. Audiences can look back the last 170 years of photography history with a series of experiments on the medium's probability and unique aesthetics. In addition, the show will broaden and deepen their understanding of photographic art while providing chances to experiences the pieces' own aesthetic and historical value for the first time in Korea. ■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Vol.20140706g | The Masterpieces展
'조문호사진판 > 사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그냥 독도가 되자"…김중만 '독도 사진전' (0) | 2014.07.31 |
---|---|
포트폴리오리뷰 (0) | 2014.07.19 |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발자국 (0) | 2014.07.14 |
이명동 "먼 역사 또렷한 기억"사진展 (0) | 2014.07.10 |
원로사진가 이명동 선생의 생애 첫 사진전 개막 (0) | 2014.07.06 |
이명동 "먼 역사 또렷한 기억"사진展
'조문호사진판 > 사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Masterpieces'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展 (0) | 2014.07.18 |
---|---|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발자국 (0) | 2014.07.14 |
원로사진가 이명동 선생의 생애 첫 사진전 개막 (0) | 2014.07.06 |
[25일 6·25전쟁 64주년]‘아버지께…’ 부치지 못한 전장의 편지 (0) | 2014.06.29 |
역사적 현장 놓치지 않은 사진계의 살아있는 전설 (0) | 2014.06.29 |
원로사진가 이명동 선생의 생애 첫 사진전 개막
한국사진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으로 이명동선생을 꼽을 수 있다.
보도사진은 물론 학술적인 이론과 평론, 출판을 위시하여 사진계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한 그의 업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대 원로작가께서 아흔다섯이나 되는 연세에 처음으로 사진전을 열게 된 것이다. 전무후무한 이번 사진전은 ‘사진예술’ 발행인 김녕만씨의 노력으로 성사되었는데, 문제는 그 첫 전시에 내놓은 사진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종군기자 때 찍은 한국전쟁의 가슴 아픈 사진들과 자유당시절의 민주화 운동 및 김 구, 신익희, 조병옥씨 등 우리나라 거목들의 마지막 초상사진에 이르기까지 작품성을 떠나 중요한 역사적 사료들을 망라했다는 것이다.
전선에서 찍은 어린 병사의 기념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미어지게 만들었다. 고향 부모에게 보내려고 찍어 달랬다는데, 그의 총구에는 예쁜 인형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개막식에서는 이명동선생의 인사말씀과 사진가 윤주영, 송영숙(한미미술관장)씨의 축사, 장사익씨의 축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많은 참석자들의 뜨거운 축하박수를 받았다.
지난 7월5일 오후5시에 개막된 ‘먼 역사 또렷한 기억“ 이명동사진전은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14에 위치한 ”한미사진미술관“ 19층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개막전에 참석한 사진가는 다음과 같다.
정범태, 김한용, 홍순태, 육명심, 한정식, 황규태, 강운구, 임범택, 김테레사, 차용부, 박영숙, 송영숙, 이완교, 윤주영, 박용윤, 전민조, 구자호, 최봉림, 김녕만, 윤세영, 이병용, 최광호, 김대수, 이주용, 이갑철, 이기명, 김영태, 박상훈, 곽명우, 손영자, 이종화, 김가중, 정태만, 유건식씨 등, 그 외에도 옛 현대칼라 대표였던 장남수씨를 비롯하여 동아일보 사우들과 이명동선생 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조문호사진판 > 사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발자국 (0) | 2014.07.14 |
---|---|
이명동 "먼 역사 또렷한 기억"사진展 (0) | 2014.07.10 |
[25일 6·25전쟁 64주년]‘아버지께…’ 부치지 못한 전장의 편지 (0) | 2014.06.29 |
역사적 현장 놓치지 않은 사진계의 살아있는 전설 (0) | 2014.06.29 |
[신수진의 사진읽기]지금 그대로의 당신에게 경의를 (0) | 2014.06.21 |
[25일 6·25전쟁 64주년]‘아버지께…’ 부치지 못한 전장의 편지
6·25 종군사진가 이명동씨가 기록한 ‘그날, 그 사람들’
입대해서 처음 글 배워 아버지께 편지 또박또박
“훌륭한 군인이 된 모습 사진 한장 찍어줄수 있습니까”
편지 들고 해맑게 웃던 병사, 이튿날 전투를 마지막으로…
소총에 인형 달고… 이명동 월간 ‘사진예술’ 고문이 6·25전쟁 당시 전선에서 찍은 어느 병사의 사진.
군대에서 한글을 배워 아버지께 처음 쓴 편지를 든 앳된 병사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아래쪽 작은 사진은 전쟁 중 국군이 눈 속에서 행진하는 모습. 이명동 고문 제공
흑백사진 속 국군병사는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앳된 얼굴이었다. 머리에 쓴 철모가 헐거워 보였다. 오른쪽 어깨에 자랑스럽게 M1소총을 기대고 풀밭에 앉아 두 손에 쥔 편지를 바라보는 모습. 소총 끝에 매달린 인형이 병사의 어린 나이를 짐작하게 했다. 비극적인 6·25전쟁의 한복판에서 이명동 월간 ‘사진예술’ 고문(94)이 찍은 한 병사의 사진이다.
한국 사진계 원로인 이 고문은 1950년 발발한 6·25전쟁에서 종군사진가로 활동했다. 육군 보병 제7사단에서 군무원 자격으로 전투 기록 사진을 찍었다. 24일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사무실에서 만난 이 고문은 전쟁 발발 64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렸다. 당시는 꽃다운 젊은이들의 피가 한반도를 붉게 물들이던 때였다. 전장에서 마주친 참혹한 광경들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자신이 찍어 준 어느 병사의 사진이다.
1953년 강원 중부전선에 있을 때였다. 한 병사가 카메라를 보고 그에게 다가왔다. “아버지에게 보낼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습니까?” 병사는 지리산 골짜기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숯을 구우며 살았다. 가난한 형편에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입대한 뒤 처음으로 한글을 배웠다. 혼자 남은 아버지께 처음 편지를 썼는데 같이 보낼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이었다. 병사는 “이렇게 훌륭한 군인이 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군복 주머니에서 돈 몇백 원을 꺼내 내밀었다.
카메라 앞에 선 병사는 자부심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글을 읽지 못하는 아버지 대신 경남 함양에 사는 친척의 주소가 적힌 편지를 남기고 그날 밤 최전방 고지로 떠났다. 며칠 뒤 이 고문은 병사가 사진을 찍은 이튿날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처음 쓴 편지가 마지막 유품이 돼버린 것. 이 고문은 그의 사진을 영정용 사진 크기로 다시 만들어 돈 몇천 원을 보태 편지와 함께 함양 친척 집으로 부쳐야 했다.
“참 아까운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어린 병사도 많았고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우리 국군이 얼마나 용감했는지….” 이 고문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눈앞에서 적군의 공격으로 즉사한 아군의 참혹한 시신, 혹한에 동상 걸린 발로 행군을 계속하던 병사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적군의 습격에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면서 국군의 훈련하는 모습과 생활상 등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전쟁이 끝난 뒤 1955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진기자로 활동했으며 동아일보 사진부장, 월간 ‘사진예술’ 창간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다음 달 5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 ‘먼 역사 또렷한 기억’에서 그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동아일보 /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조문호사진판 > 사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명동 "먼 역사 또렷한 기억"사진展 (0) | 2014.07.10 |
---|---|
원로사진가 이명동 선생의 생애 첫 사진전 개막 (0) | 2014.07.06 |
역사적 현장 놓치지 않은 사진계의 살아있는 전설 (0) | 2014.06.29 |
[신수진의 사진읽기]지금 그대로의 당신에게 경의를 (0) | 2014.06.21 |
[임실장] 오늘은 퍼머 하는 날 (0) | 2014.06.15 |
역사적 현장 놓치지 않은 사진계의 살아있는 전설
[사진마을] 한국 사진계 대원로 이명동 작가
이명동(94)씨
한국 사진계의 대원로인 이명동(94·작은 사진)씨의 생애 첫 개인전 <이명동 사진전>이 7월5일부터 31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월간 <사진예술>사에서 이명동 선생과 인터뷰를 했다. 사진가이자 사진예술 발행인인 김녕만(65)씨가 자리를 같이했다.
이명동 선생은 살아있는 한국 사진의 역사다.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그는 성주공립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14살 때 아버지가 황소를 사려고 마련해놓은 돈 12원을 훔쳐 사고를 친다. 등·하굣길에 홀리듯 보던 학교 근처의 일본인 가게에서 “절대 물러주지 않는” 조건으로 카메라를 구입했던 것이다. 발각이 되자 이틀 동안 산에 숨어 지낸 끝에 “손자 죽이겠다”는 할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용서를 받아서 사진 인생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나오는 사진잡지 <아사히카메라> 독자사진 응모란에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1942년에 일본 법정대학교 부속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본격 사진가의 길을 걷는다. 한국전이 나자 군무원의 신분으로 종군해 육군 보병 제7사단에서 종군사진을 담당했고 이 공로로 세 개의 무공훈장을 받았으며 1953년 종전 직후 군생활을 마무리했다. 1953년 <중앙일보>(현재의 중앙일보와는 다른 신문)에서 사진부장을 맡았다가 1955년에 <동아일보> 사진부로 옮겼다.
이때의 사연도 재미있다. 이해 2월18일 동아일보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가 세상을 떴는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정권에 늘 비판적인 야당지 동아의 사주 빈소에 문상을 온 사진을 기관지 격인 중앙일보의 이명동만 찍고 막상 동아일보 기자는 물을 먹었다. 크게 화가 난 김상만이 단독보도를 한 이명동을 불러 간단하게 면접을 보고 스카우트하였다는 것이다. 이후 1979년까지 동아일보에 근무하면서 이명동은 4·19혁명 당시 경무대 앞에서 학생 시민들이 경찰의 총탄에 쓰러지는 모습 등 역사적 장면을 특종취재했다.
경교장에서 촬영한 백범 최후의 사진(1949년 6월23일)
4·19 혁명 당시 경무대 앞에서
총탄에 쓰러지는 학생 모습 등
역사적 장면 숱한 특종 취재
한국 사진계 토대 구축 힘쓰고
일흔 나이에는 사진잡지 창간
생애 첫 개인전 다음달 열어
이미 그 전인 1949년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하기 3일 전에 김구의 최후 모습을 찍었던 이명동은 1956년 5월5일엔 호남선 열차에서 사망한 신익희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3시간 전에 찍기도 했고 1959년에는 조병옥 박사의 최후 사진도 기록했다. 이는 마치 마하트마 간디를 인터뷰하고 돌아서 나온 바로 몇 시간 뒤에 간디가 암살당하는 바람에 간디의 최후 사진을 찍게 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자신의 입으로 “나는 운이 좋았는지 세계 곳곳을 방문할 때마다 세계적인 사건의 현장과 마주칠 수 있었다”고 말한 대목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사진기자로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한 것뿐만 아니라 한국 사진계의 토대 구축에도 공을 들였다. 1963년에 동아사진콘테스트를 만들고 1964년에는 대한민국 국전에 사진 분야를 포함시키는 데도 앞장섰다. 1968년에는 한국 최초의 개인사진집에 해당하는 최민식의 <인간>이 동아일보사에서 나오는 과정도 주선했다. 이명동은 동아일보와 다른 매체의 지면을 통해 한국 사진계의 발전, 각성을 촉구하는 기사를 수차례 썼고 사진전시와 사진작가 소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임석제 제5회 사진전을 보고>는 1955년 중앙일보에 썼고 <제6회 사협전평>을 통해선 “내용 없는 작품을 형태만 크게 한다고 효과적이 될 수 없다”고 일갈했고 1957년엔 당시 경기고 2년생이던 김희중(에드워드 김)의 개인전을 소개하며 “사진계의 비상한 관심”을 전했다. 1969년 <신동아> 지면을 통해 “젊은 사진작가 주명덕”의 사진집을 소개했다.
그는 동아일보를 떠난 뒤 여러 대학에 보도사진 강사로 활약하며 후학들을 길러냈다. 70살의 나이에 사진잡지 창간에 도전했다. 이 선생은 “설날에 세배 온 후배 사진가들이 230만원을 모아서 주더라. 거기에 할머니(이 선생의 부인을 가리키는 표현)가 마련한 곗돈 500만원을 보태서 사무실을 얻고 창간호를 만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2001년에 <사진예술>을 아끼는 제자이자 후배인 김녕만에게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물려주었고 잡지는 올해로 창간 25년이 되었다. 김녕만은 “이 선생이 어렵게 창간한 잡지라서 물려받은 것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다”고 말했다. 이명동 선생에게 창간 때와 25년 된 지금의 사진예술을 비교하면 어떤지 물었다. 이 선생은 “하늘과 땅 차이다. 좋아졌지”라고 했다.
연평도(1956년).
보병 제7사단의 중동부전선(1952년).
2대 발행인 김녕만과 이명동의 인연은 그야말로 각별하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김녕만씨는 스물두살에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했고 대학 사진과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고창군청 공보실에서 사진담당으로 일했다. 1974년 동아사진콘테스트에서 <강제등교>로 입상하였고 대학생 시절에는 각종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으로 등록금을 조달했다. 김녕만씨는 사진학과 2학년이었던 1974년에 당시 동아일보 부국장인 이명동 선생의 보도사진강의를 듣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결국 1978년 “꿈속에서도 그리던”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진기자 선후배의 관계가 되었다.
<80년 광주>를 기록했던 김녕만씨는 이명동과 달리 기자 시절부터 수많은 사진전에 참가했고 개인전도 열었으며 사진집 등 저서도 여럿 펴냈다. 가장 최근의 사진집은 지난해 나온 <시대의 기억>이며 가장 최근의 개인전은 6월13일에 끝난 <김녕만, 해학을 공유하다>였다. <사진예술> 윤세영 편집장이 곁에서 인터뷰를 듣다가 “김녕만 현 발행인은 사진 인생 내내 이명동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이 선생님이 김 발행인의 뒤를 따른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명동은 평생 사진을 하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보도사진을 찍었고 사진계를 위해 일했지만 자신의 것을 돌보지 않았으나 이번에 한미사진미술관의 호의로 첫 전시를 열게 되었다. 그런 만큼 개막일에는 많은 사진가 등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겨레신문 /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조문호사진판 > 사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로사진가 이명동 선생의 생애 첫 사진전 개막 (0) | 2014.07.06 |
---|---|
[25일 6·25전쟁 64주년]‘아버지께…’ 부치지 못한 전장의 편지 (0) | 2014.06.29 |
[신수진의 사진읽기]지금 그대로의 당신에게 경의를 (0) | 2014.06.21 |
[임실장] 오늘은 퍼머 하는 날 (0) | 2014.06.15 |
재미있는 외신들 속 한국 사진 2컷 (0) | 2014.06.04 |
[신수진의 사진읽기]지금 그대로의 당신에게 경의를
[신수진의 사진읽기]
반듯하게 버티고 선 제빵사처럼 충실한 사람이 세계의 주인공
사진은 본질적으로 현실의 일부를 담는다. 사진으로 현실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순 없다고 하더라도 사진에 찍힌 현실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는 있다. 사진이 보여주는 현실이 직접적일수록 그 사진의 가치는 현실의 이면에 가린 내적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 생겨난다. 따라서 다큐멘터리 사진은 현실을 보여주고 실재를 창의적으로 탐구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독일의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1876~1964)는 1910년에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 대한 원형적 초상을 집대성하겠다는 생각으로 장대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에 돌입하였다. 그는 개인의 초상을 통해서 거대한 사회 구조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가능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20세기의 인간상(像)'을 사진에 담았다. 농부로부터 시작해서 기술자·변호사·국회의원·군인·은행가·학자·예술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과 계층을 체계적으로 촬영한 인물 전도에 포함된 사진은 그야말로 방대했으며, 초상 사진 위주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형을 제시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시도로 평가된다.
잔더의 야심 찬 계획의 첫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얼굴'이 출간된 후 나치 정권은 그의 활동이 아리안 우월주의에 위배된다는 생각으로 그를 불온 사상가로 지목하고 원판을 파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사람은 바뀌어도 사진은 남는다. 나치는 사라졌고 지금 우리는 잔더의 사진을 보고 있다.
▲ 아우구스트 잔더, 제빵사, 1928.
그의 인물 사진은 1928년에 촬영된 이 제빵사처럼 어떠한 꾸밈도 없이 단순하고 직접적이다. 둥근 얼굴에 흰 가운을 입은 퉁퉁한 몸집, 반죽을 만드는 주걱과 그릇을 잡은 손, 흰 가루가 덮인 작업 공간은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선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과 반듯하게 버티고 선 두 다리 아래에서 검게 반짝이는 구두는 그가 비록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누구보다 자기 역할에 충실한 사회인임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진중하고 반듯하게 바라보는 방법만으로도 유능함과 자존감이 어우러진 자긍심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순수한 사진이 지금도 우리 눈을 사로잡는 이유는 잔더가 꿈꾸었던 사회적 가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사진은 당대의 정치와 권력의 그림자를 벗어나면서 비로소 진정한 다큐멘터리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한 세기 전 평범한 제빵사 모습에서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떠나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를 다하는 사람들이 곧 시대와 세계의 주인공이라는 철학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적 시각에 내재한 인간관은 존중과 자긍의 미덕을 일깨워 준다. 나와 남을 존중하고 긍정하는 태도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신념을 실천하게 하는 힘을 만든다. 우리 모두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진정으로 믿고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기본 소양이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인 것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잔더의 눈을 빌려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필요한 자리를 지키는 모든 이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조선일보 2014.1.13
'조문호사진판 > 사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일 6·25전쟁 64주년]‘아버지께…’ 부치지 못한 전장의 편지 (0) | 2014.06.29 |
---|---|
역사적 현장 놓치지 않은 사진계의 살아있는 전설 (0) | 2014.06.29 |
[임실장] 오늘은 퍼머 하는 날 (0) | 2014.06.15 |
재미있는 외신들 속 한국 사진 2컷 (0) | 2014.06.04 |
에세이 / 비 오는 새벽은 낮보다 아름답다 (0) | 2014.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