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버린다

물건도 사람도 쓸모 없어면 다 버린다

쳐 먹고 싼 똥처럼 쉽게 버린다

 

가족이 버렸고, 친구가 버렸고, 세상이 버렸다

 

혈혈단신 밀려 나 정처없이 떠 돈다

 

모진 목숨, 다 버려도 목숨만 못 버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옆 방 사는 최군은 정신이 왔다 갔다 하여 다들 미친놈이라 부른다.

그러나 미친놈이 미치지 않은 놈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그는 돈 있은 놈보다 없는 놈을 더 좋아한다.

제 몸 눕기도 비좁은 쪽방에서 물고기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가하면

매달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대부분을 노숙자들 술 사주는 데 써 버린다.

 

가끔은 방안에서 발작 일으키는 소란에 관리인 정씨에게 혼 줄도 나지만 아무 소용없다.

정씨 역시 금방이라도 쫒아 낼 듯 욕을해대도 그의 인정스러움을 알아 그 때 뿐이다.

 

요즘 관리인 정씨가 허리를 다쳐 꼼짝을 못하는 와중에 최군의 발작이 도졌다.

갑자기 갑갑한지 팬티만 걸치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괴성을 질러댄다.

 

아무도 방문조차 열지 않아 그런지 골목으로 나가더니,

지나치는 이들의 심상찮은 반응에 다시 들어왔다.

 

조용해 방문을 열어보니, 발작이 끝났는지 큰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이제 한 숨 돌렸다! 이 더러운 세상 어찌 미치지 않고 살 수 있겠나?

 

마음껏 소리 지르며 억눌린 마음을 풀고 나면 훨씬 편할 것 같았다.

미쳐버리면 모든 걱정도 잊지 않겠는가?

 

일손이 잡히지 않아 하릴없이 거리를 돌아 다녔다.

동자동이나 서울역이나 그 풍경이 그 풍경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돈 많은 사람은 여전히 많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마스크도 멋인지 마스크 전문 매장이 생겼더라.

 

최군이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쳤다.

미친 자가 미친 것을 모르듯, 다들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사진, 글 / 조문호

 

 

걱정이 많아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으나, 몸이 버텨내지 못한다.

고질병인 호흡장애와 원인모를 두통에다 기력까지 쇄진하니, 사는 것 자체가 비참해 진다.

 

 

 

한 때는 심한 호흡장애로 입원도 했으나, 기관지 확장제인 ‘테오란-비’를 먹고 ‘아노로 엘립타’를 매일 흡입하는 식으로 버텨냈는데, 이젠 마스크까지 써야 하니 죽을 지경이다.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상책인데, 갑자기 날씨마저 더워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바람이라도 씌러 서울역광장으로 나갔더니, 노숙하는 박씨가 죽은 사람 만난 듯 반긴다. “형님! 오랜만에 만났는데 술 한 잔합시다” 술 생각이 간절한 모양인데,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아 같이 마신 게 화근이었다. 서너 잔 마셨는데, 갑자기 숨이 가빠지며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박씨가 “어디 아픈가베! 빨리 병원 가보라”며 술잔을 거두었다.

 

 

 

한참을 엎드려 있었더니 어지럼증이 좀 안정 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지은이는 “술을 혼자 많이 마셔 벌 받았다”며 낄낄댄다. 어디서 구했는지 헬멧을 쓰고 목에 채인 까지 감고 있었다. 지은이를 보니 갑자기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록 노숙하는 처지지만 아무런 걱정 없이 즐겁게 살아간다.

 

 

 

그래! 아무 것도 없는 게 속 편할거다.

 

 

 

나 역시 아무것도 없는데, 난 왜 편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쪽방도 있고, 좋아하는 동지도 있고, 케메라도 있지 않은가? 그 세 가지만은 아무리 생각해도 버릴 수가 없었다. 아직 수양이 덜 된 것 같았다.

 

 

 

곳곳에 쓰러져 자는 노숙인이 널려 있었다. 밥 얻어먹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으니, 잠 잘 일 밖에 더 있겠는가?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아플지 모르겠다. 아파 딩굴다 눈감으면 아무도 슬퍼해 줄 사람도 없다. 짐승보다 못한 삶이지만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정치꾼들은 걸핏하면 복지복지 노래 부르지만, 말짱 개소리다.

 

 

 

그래도 그냥 들어 갈 수는 없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 있는 한 이 짓은 반복할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다. 세상에 별의 별 병이 많지만, 이 병도 마약처럼 하나의 정신병에 속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속에 들어가 눕는 게 상책일 것 같았다. 관 치고는 큰 방이지만, 계단 오르는 일이 너무 힘들다. 쉬엄쉬엄 올라오긴 왔는데, 오자마자 그대로 뻗어버렸다. 숨을 못 쉬어 자다 죽는 것도 괜찮을 텐데, 그런 복이 내게 올 리는 없다.

 

 

 

누워 있어도 할 일이 눈에 어른거려 미칠 지경이다. 지금쯤 정선에 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집을 지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병이 된 것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말 없는 노숙인 천씨가 어렵사리 뱉어 낸 첫 말이

‘세상을 원망하랴! 마누라를 원망하랴’다.

가족은 어디 사냐? 는 물음에 내 뱉은 뜬금없는 말이다.

 

이 친구는 다른 노숙인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 넋 나간 듯 역전에 앉아 항상 묵묵부답이었다.

 

어디서 발목까지 다쳐 깁스 한 사연을 물었더니,

그때서야 처음으로 말문을 연 것이다.

힘이 없어 발을 헛디뎌 부러졌단다.

 

그는 잔재주 못 부리고 적극적이지도 못해

직장과 가정을 잃은 지가 십 여년이 훌쩍 넘었단다.

믿었던 가족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응어리져

사람 자체가 싫고, 말하기도 싫단다.

 

예전에는 부모 잘 못 만나 물려받은 것 없고 배우지 못한,

 타고 난 노숙인들이 많았으나

요즘은 돈 벌지 못해 집에서 쫓겨난 사람이 많다.

 

노숙인이 많이 생겨 난 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노숙인 세대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대개 아이엠에프 사태에 밀려 난 세대다. 

 

지금은 또 다르다.

돈 못 벌어 가정불화로 쫓겨난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돈 못 면 아내는 물론 자식에게도 버림받는 세상이다.

 

영악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비정한 세상이라

팔자소관으로 돌리기에도 억울한 삶이다.

 

고통스러운 하루하루의 삶은 차지하고라도

꿈마저 잃어버린 그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일까?

 

죽을 자신이 없어, 죽지 못해 산단다.

하기야! 죽을 용기로 나선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버림받은 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광장에 있는 노숙인 지원시설 ‘서울역 희망지원센터’와

‘서울역 응급대피소’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의 불똥이 동자동 쪽방 촌에도 떨어졌다.

서울역 노숙인들의 왕래가 잦기 때문이다.

 

어제에 이어 이틀 동안 동자동 새꿈공원에 임시선별검사소를 마련해 놓고,

감염자를 찾아내려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지금까지 서울역 노숙인 관련 시설에서 감염된 사람은 시설 종사자를 비롯한 41명이다.

서울시가 노숙인 등 700여명을 대상으로 진단 검사를 실시한 결과인데,

아직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설상가상으로 역학조사를 담당하는 보건소 직원 2명도 확진 판정을 받아

13명은 자가 격리돼 업무차질도 불가피해졌다.

 

문제는 노숙인들이 카드는 물론 휴대전화가 없어 역학조사가 어렵고,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현재 확진 판정을 받은 노숙인 2명도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역학조사가 지연될수록 노숙인들 사이에 추가 감염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오 무렵 동내 사정이 궁금해 쪽방 계단을 내려오니,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도시락 나눠주는 일을 맡은 원희룡씨가 기다리고 섰다. 

 

복도 계단이 너무 좁아 일방통행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마운 온정의 손길은 아직 이어지고 있었다.

 

새꿈공원 입구에 있던 구멍가게 주인장이 사진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한다.

마스크가 무슨 패션인지, 마스크 쓴 사진으로 찍어달라네.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검사받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공원 주위로 자주 오가는 몇몇 외는 다들 외출을 자제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쪽방 안에서 티브이나 끼고 알을 까니,

그보다 확실한 격리가 어디 있겠나?

 

서울역 지하도를 건너가니, 노숙인 선교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 ‘드림시티’는 문이 잠긴 체 화분으로 막아 놓았고,

옆에 있는 밥집 “따스한 채움터”는 음성 확인 받은 자에 한해 입장시켰다.

다들 24시 매장 부근에 서성거리는 건 컵라면이라도 먹기 위해서다.

 

서울역광장은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찬송가소리로 요란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잘 가라는 장송곡인가?

나도 저렇게 한 번 미쳐보았으면 좋겠다.

 

서울역 광장 외곽에 자리 잡은 노숙인 희망지원센터로 갔다.

이곳에서 하루 평균 70여명의 노숙자에게 응급 잠자리를 제공하나

잠자리는 물론 쉼터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부터 음성 판정을 받은 자만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입구에서 들어가려는 사람과 제지하는 종사자와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검사받은 지가 며칠 지났거나, 판정이 아직 나오지 않은 자들 때문이다.

 

노숙인의 불만은 컸다. “추워서 못 잔다. 차라리 감방에 처넣어라”

서울시에서 갈 곳 잃은 노숙인들을 위해 고시원 등에

응급 숙소를 마련한다고 하나 당장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거리로 내 몰린 것도 서러운데, 이젠 세상 밖으로 내 몰릴 처지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에서 노숙자 코로나 감염이 확인되어 비상이 걸렸다.

지난 26일 서울역 노숙자 시설에서 종사자 2명과 노숙자 3명 등 5명의

코로나 감염이 확인된데 이어 용산역과 영등포역의 노숙자 감염도 이어지고 있다.

 

당장 서울역광장의 노숙인 시설인 ‘서울역 희망지원센터’의 운영이 중단되었고

밀접접촉자인 종사자 24명이 입원 또는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문제는 다들 핸드폰이 없고 거처가 일정치 않아 추적이 쉽지 않다는 점이지요.

 

노숙자를 수용하는 다시서기 쉼터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면

많은 노숙인들이 거리로 내 몰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따스한 채움터’를 비롯한 무료급식소의 밥 나눔도 제대로 운영될 수가 없다.

 

지난 27일 서울역광장에 갔더니, 다들 겁먹어 마스크는 잘 쓰고 있었다.

식권을 얻기 위해 길게 줄서 있었는데, 밥 얻어 먹기도 힘들어졌다.

노숙인 쉼터보다 거리노숙을 고집하는 최씨는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체념했다.

 

동자동 쪽방촌 풍경은 대조적으로 썰렁했다.

골목을 돌아 다녀도 유한수씨 등 몇 명 밖에 만나지 못했고,

공원에는 이대영씨를 비롯한 세 명이 시간 죽이고 있었다.

 

누군가 나누어 먹으라고 빵을 갖다 놓았으나 먹을 사람조차 없었다.

있는 사람이라도 챙겨 가면 좋을 텐데, 다들 욕심 부리지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갖다놓아도 딴 사람을 배려해 한 두 개만 가져간다.

이젠 그놈의 코로나에 주눅 들어 다들 방안에서 티브이나 끼고 지내는 게 생활화 되었다.

 

쪽방촌 사람들은 거리두기가 잘 지켜지지만, 오 갈 때 없는 노숙자가 문제다.

여지 것 노숙자들은 접근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여겼는데,

방역에 구멍이 뚫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노숙자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골칫거리다.

빈부 격차가 큰, 잘 사는 나라일수록 더 많은 현실이다.

전 세계에 1억명이 넘는 노숙자가 있다는데,

이 수치가 정확하다면 인구 60명당 1명꼴이 노숙자인 셈이다.

 

빈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방세 낼 돈보다 먹을 것을 살 수밖에 없다.

노숙자들은 불규칙적인 식사에 의한 영양 결핍과 만성적인 수면 부족

갖가지 요인에 의해 여러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건강과 안전이 심각한 위험에 처한 재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이란 사치스런 말장난에 불과하다.

 

더구나 공공역사를 거점으로 신분증의 매매, 명의 도용, 위장결혼, 강제철거에 동원되는 등

노숙상태를 악용하는 자들도 많아 인권이 침해당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정해진 수급비를 받는 것은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도 많지만,

여기 저기 떠돌아 신청할 주소지가 없기 때문이다.

 

대개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다 노숙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많다는 것은

부모에 의해 가난이 대물림 되었다는 말이다.

더러는 사업실패나 이혼으로 집나온 사람도 있으나,

절반 이상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내일은 날씨마저 영하20도라는데, 거리에서 어떻게 잘 수 있겠나?

신이 과연 계시다면 말씀 좀 해주세요?

 

사진, 글 / 조문호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는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다 노숙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많다.

대개의 가난이 부모에 의해 대물림 된다는 말이다.

더러는 사업실패나 이혼으로 집나온 사람도 있으나,

절반 이상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지식은 물론 배운 기술조차 없어 막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였다.

그러니 어찌 가정을 꾸릴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제대로 먹지 못하니 일을 감당하지 못해 거지로 나 앉게 되었는데,

이젠 골병들어 생긴 병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무슨 천형의 죄로 짐승보다 못하게 살며 거리에서 죽음을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평등하지 못한 세상을 원망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잘 못 만난 부모를 원망해야 하는가?

 

지난 년 말 강명자씨로 부터 어려운 사람에게 전해 달라며 백만원을 보내왔다.

그냥 주는 것보다 당당하게 받으라고 인터뷰 사례비로 5만원씩 나누어 드렸는데,

말이 인터뷰지 이름과 인적사항이나 물어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소문이 퍼져 노숙자들이 몰리는 곤욕을 치룬적도 있었다.

 

지난 18일은 마지막 남은 사례비 봉투 4개를 챙겨들고 서울역광장에 나갔다.

눈 오는 날 사례비를 주지 못한 김계열씨 부터 찾아 나섰다.

지하도로 들어가니, 방태원(53)씨가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술병과 종이컵을 몇 개나 놓고 있어, ‘한 잔 얻어 마시자’며 옆에 앉았다.

 

그런데, 그 소주병은 술이 아니라 물병이었다.

술을 오랜 세월 많이 마셔 몸이 다 망가졌다고 한다.

더 이상 마시면 죽는다는 선고에 술 대신 물을 마신다는 것이다.

술을 자제한지 한 달가량 되었다는데 이젠 담배를 입에 달고 산단다.

 

지하도에서 담배를 피우며 한 대 권하기도 했다.

역무원에게 쫓겨난다며 말렸으나 막무가내였다.

쫒아내면 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밖에 있다 너무 추워 잠시 들어왔다고 한다.

 

방태원씨는 영천에서 태어나 노숙의 길로 들어 선지가 30년 되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우체국에서 일한 적도 있지만,

술을 너무 좋아해 일을 못하고 이 지경이 되었단다.

 

술을 끊으니 춥고 배고픈 것은 견디겠으나 외로워서 못살겠단다. 

여지 것 술이 취해 잠들었는데, 이젠 잠도 오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고 다독였으나 마음이 아팠다.

 

서울역 광장에서 정읍이 고향이라는 김용만(57세)씨도 만났다.

평생을 노가다로 어렵게 어렵게 살아왔으나,

이젠 당뇨와 고혈압 등 온 몸이 종합병원이란다.

 

일을 못해 거리에서 빌어먹은 지는 3년밖에 되지 않았단다.

처음엔 노숙이 힘들었으나 이제 몸에 익었다며 비시시 웃는다.

추워도 이렇게 앉아 있으면 가끔 눈먼 돈도 생긴다며 자랑 질이다.

 

안 쓰고 알뜰이 모아 고향 정읍에 한 번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어머니 무덤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지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싶단다.

여지 것 가난을 물려 준 부모를 원망하고 살았으나, 늦게나마 술 한 잔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 옆에서 졸고 있는 이재득(52세)씨는 구룡포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 상경했다고 한다.

노가다로 일하며 딸까지 두었는데, 돈 못 번다고 쫓겨났단다.

그리움도 미움도 다 잊어버리고 떠돈 세월이 어언 이십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천안에서 2년 지내다 서울역으로 옮긴지는 20일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베개 옆에는 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법구경 한 권이 있었다.

궁금증이 발동해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이형! 당신은 돈을 어떻게 생각 하는기요?"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니, “경계해야 될 요물이지요”라고 되받았다.

그리고는 세상이치를 하나하나 풀어가는데, 끝이 없었다.

 

결론은 돈 때문에 정신이 황폐화한다며, 욕심 부리면 안 된단다.

처음으로 부랑의 세월을 슬퍼하지 않는 도사를 만난 것이다.

그는 탁발 스님처럼 거리에서 도를 닦고 있었다.

 

사례비라며 돈 봉투를 주었더니, 지나가는 노숙자를 불렀다.

몇 가지 사올 것을 적어주며 남는 돈은 자기 필요한 것 사라고 했다.

부랑의 세월을 떠돌아도 헛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한 사람 남은 김계열씨를 찾았는데,

그 날은 배급받은 깨끗한 외투를 입고 있어 다른 사람인줄 알았다.

눈 오는 날 멋 낸다고 가방에 숨겨둔 낡은 외투를 입고 나와

식당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나지 않았던가?

옷으로 사람 차별하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어쩌겠는가?

 

지난 12일 만난 김계열씨

 

작년에 환갑이었던 김계열(61세)씨는 전라도 화순이 고향이란다.

한 때는 창신동과 동대문에서 재단사로 일하며, 하청업을 하기도 했으나

경마에 빠져 가산 탕진하고 빚더미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혼하고 가족과 소식 끊은 지는 15년 되었다고 한다.

 

지난 12일 만난 김계열씨

 

지금도 일거리가 생기면 노가다로 나가지만, 가뭄에 콩나기란다.

이젠 술과 벗 삼아 지내는데, 몸 생각하여 매일 마시지는 않는단다.

깨끗한 옷에다 안 취하니 얼마나 좋냐?며 칭찬했더니, 모르는 소리란다.

“이런 옷 입고 있으면 어느 놈이 돈을 줄 것이며,

마지막 낙인 술까지 못 먹는다면 살 필요가 뭐냐?“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 한 사람 사연 없는 사람이 없었다.

독지가 강명자씨의 자선은 빈털털이 부랑자에게 작은 힘이 되어주었지만,

덕분에 가슴 아픈 이야기 듣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주고 받은 모든 분들이 복 받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부랑자도 똑 같은 사람이다.

그들도 눈 오면 나중에 잘 걱정은 둘째 문제고 다들 좋아한다.

 

지난 12일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말하고 싶다’전 설치하는 날이었다.

출품작을 챙겨들고 서둘러 나갔는데, 인사동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출품 사진만 관장께 전해주고 강아지처럼 쪼르륵 내려갔다.

눈 치울 일이나 미끄러운 것은 나중 문제고, 왜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

날씨가 포근해 내리는 쪽쪽 녹아 내렸으나,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갑자기 노숙자들이 생각나 서울역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눈이 녹아 질퍽한 자리에 종이 깔고 술 마시는 패거리도 있고,

어슬렁거리는 등 평소의 풍경과 별 다를 바 없으나

다들 쌍판데기에 웃음이 만연했다.

 

당장 술 마실 자리조차 불편하고, 얼어붙어 잘 걱정이랑 나중 문제였다.

서울역에 온지 10년차라는 김계열은 온갖 똥 폼 다 잡고 광장을 활보하고 다녔다.

오늘 인터뷰 대상을 계열이로 낙점했다.

 

어디 가서 소주나 한 잔하자며 꼬셨는데,

눈 내리는 질퍽한 자리에 앉아 마시기가 거시기해 식당을 찾아 나섰다.

물주 나타난 것을 눈치 챘는지 곽학봉이가 따라 붙었고,

지난 번 인터뷰 사례금 받았던 최완구도 왔지만,

눈 오는 날 술 한잔하려는 걸 말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치킨뱅이'라는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계열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입구에서 노숙자라며 들어가는 것을 제지한 것이다.

주인공이 빠져서도 안 되지만, 사람 차별하는 데 부아가 치밀었다.

주문 하라지만 다시는 안 온다며 나와 버렸다.

싸가지 없는 집에서 마시면 마음이 편하겠는가?

 

요즘 노숙자들이 구호물품으로 방한복을 얻어 걸친 데다

마스크까지 써 누가 노숙잔지 잘 모른다.

그런데, 계열이는 눈 오는 날 폼 잡는다고

가방 속에 숨겨 둔 허럼한 롱코트로 갈아입은 모양이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 곳에선 코트를 벗어 들고 갔으나, 계열이만 못 들어가게 막았다.

얻어먹으려면 옷이라도 잘 입어야 한다는 옛말이 딱 맞았다.

 

차라리 평소대로 가게에서 소주 사와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길거리 서서 소주 마시니, 다리가 아팠다.

우리 동네 아는 식당에서 한 잔 더 하려고 지하도를 건너 왔는데,

계열이와 완구는 어디로 새버리고 학봉이만 따라왔다.

 

중국집에 들어가 잡채하나 시켜놓고 소주 두병 깠는데,

생각치도 못한 학봉이가 인터뷰 상대로 바뀌어, 나는 그를 묻고

그는 나를 묻는 쌍방 인터뷰가 되어 이야기가 길어졌다.

 

환갑을 한해 남긴 학봉이는 마누라와 이혼하고 떠돈 지가 오 년째란다.

지금은 주거급여를 받아 동자동 여인숙에서 지낸다기에,

왜 쪽방에 안 살고 오만원이나 더 들어가는 여인숙에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쪽방은 아침에 화장실 가려고 줄서는 게 지겨워서란다.

 

한양대를 중퇴하여 미8군에서 통역을 하며 가정을 꾸려갔는데,

아내가 바람 피웠다며 이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판사가 이혼하려는 이유를 물었더니, 신뢰할 수 없어서란다.

아내는 이혼하고 외국으로 이민 가 버렸는데,

이젠 그 미움이 그리움으로 변한 것 같았다.

 

중국집 창 너머는 백설이 휘날렸다.

밖에 나가 학봉이 기념사진도 찍고, 미끄럽지만 동자동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다시 중국집으로 돌아오니 학봉이가 훌쩍이고 있었다.

눈 내리는 걸 보니 옛날 생각난다는 것이다.

 

전화 좀 빌려 달라더니, 어딘가 전화를 걸어 눈물이 바가지다.

 

하나 남은 친구인 것 같은데, 운다고 떠난 임이 올소냐?

요즘 유행어처럼 “있을 때 잘해”란 말을 사내들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정신을 가다듬었는지, 이젠 나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심문의 답은 동자동 쪽방에 들어 온지도 그와 같이 5년째다.

쪽방에 들어 온 후부터 돈 걱정 없이 내 하고 싶은 일 하며 산다고 했다.

 

사진 찍어 뭐 할 것이냐기에 우리 살아 온 책 만들 것이라 했다.

출판사에 원고 넘겨 몇 개월 후에 책 나올 것이라며 떠 벌렸다.

언제까지 동자동에 살 것이냐고 묻기에 다들 떠날 때 까지라 했다.

 

책 나오면 술 한 잔하기에, 서울역광장에서 잔치 벌일 작정도 했다.

광장에서 현수막 전시 했으면 아주 좋겠으나 허락해 줄리 없고,

‘서울역 역사관’에 기획안 넣어 당사자들이 볼 수 있는 전시를 열고 싶다.

 

이젠 술이 올라 쪽방에 올라가야 했다. 4층까지 올라가려면 힘들어서다.

학봉이는 한 잔 더 하고 가겠다기에 주머니 털어주고 먼저 일어섰다.

미끄러운 눈길이라 발에 신경을 많이 써 그런지, 발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자리에 누워 곰곰이 생각하니 남의 일이 아니었다.

부랑자는 타고 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아무나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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