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정오 무렵, 박노철씨의 “폐광, 그 흔적을 묻다”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류가헌‘을 찾았다.
폐탄광의 환경오염을 오년 동안 기록한 전시였는데, 여지 것 붉은색의 황변현상은 여러 차례 보아왔지만,

하얀색으로 나타나는 백화현상은 처음 보았다.

마치 물감을 뿌린 듯 아름답게 채색되어, 환경오염이 아름답게 보이는 아이러니도 엿보았다.

비록 폐광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만이 아니라 이미 환경오염은 지구 전반에 걸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폐광의 환경오염을 안타까워하며 현장을 누비고 다닌 작가의 집념어린 노고가 사진 속에 오롯이 담겨있었다.






태백은 산업 고도화에 발맞춰 수십 년 동안 자원개발을 통해 국민들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주었으나,

광부들의 목숨을 위협하며, 주변 환경의 수질 및 토양에 심각한 오염현상을 유발하였다.

‘청정지역을 오염시키는 폐탄광 중금속 오염원을 제거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며 작가의 문제의식을 표출하기도 했다.

카드뮴, 비소 등 중금속에 오염된 폐탄광의 폐수는 물에 녹아 있는 탄산칼슘이 고체 상태로 석출되어

흰색으로 나타나는 백화현상과, 엽록소 생성에 필요한 원소의 결핍으로 황변화현상이 발생한다는데,

흐르는 하천만이 아니라 지하수의 오염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작가는 환경오염을 고발하거나 미화하는 작업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기록했으며,

이번 사진집 출판과 사진전도 끝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환경오염을 개선하는 학술적 자료로서의 작업도 병행할 것이라 했다.

박노철씨를 처음 만난 지는 20여 년 전 ‘동아국제사진전’ 태백 순회전 때, 이석필씨를 통해서다.

그 뒤 정선에서도 만난 적이 있으나, 세월의 흘러 그를 잊어버렸는데, 아직도 젊은 그대로였다.

지금은 ‘사협’ 태백지부장을 맡아, 자기 작업에 전념하고 있었다.

대개 공모전 위주의 사진을 선호하는 ‘사협’회원들을 제대로 된 사진가로 여기지 않았지만,

자기만의 작업에 열성인 작가가 있다는 것도 박노철씨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미 태백에는 탄광전문 사진가가 여럿 나왔다. 오래전에 찍은 주동호, 이석필씨를 비롯하여 김재영, 박종호씨,

그리고 이번에 전시를 연 박노철씨, ‘아버지는 광부였다’로 유명세를 떨친 박병문씨,

현역광부로서 탄광을 찍고 있는 전제훈씨 등 많은 탄광 전문가를 배출했다.

오래전에는 태백에 거주하는 작가들이 모여 탄광에 대한 기획전도 열었다는데, 그 전시도 궁금했다.

태백은 작은 소도시지만, 사진 열기만은 뜨거운 지역이다.

전시를 관람하며 반가운 분들도 만났다. 작가를 인터뷰하러 온 ‘서울문화투데이’기자 정영신씨와

대전의 김은환씨, 그리고 90년도 초반 ‘사진집단 사실’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인들도 여럿 만났다.

이석필씨와 김문호씨,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김봉규씨를 한꺼번에 만났다.


이석필씨는 그동안 찍은 수많은 필름들을 모조리 불태웠다는데, 왜 그랬을까?

그렇다고 사진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풍수지리에 관한 사진에 전념한단다.

좌우지간 그의 삶은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지만, 깨우칠 점도 많은 사람이다.

지붕 위에 깃대만 꽂으면 영락없는 도사인데, 상대방의 사주팔자까지 꽤고있다. 


다들, 흐르는 세월 따라 늙어가고 있지만,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진가들이다.

늦은 오찬을 함께 하고 나오는 길에 사진가 엄상빈씨도 만나는 반가운 하루였다.






이 전시는 서울 ‘류가헌’ 전시에 이어 7월15일부터 18일까지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도 열린다.

또한 ‘눈빛출판사’에서 오늘의 다큐5집’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 박노철 사진집(25,000원)도 펴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사진가 14인의 ‘촛불항쟁’ 현장 기록
촛불 구술사 口述史


강재훈 김봉규 노순택 박종우 성남훈 성동훈 윤성희
이승훈 전민조 정택용 조문호 조진섭 최형락 홍진훤


전시기간: 2017년 3월 28일 - 4월 23일

장소: 류가헌 http://ryugaheon.com/



정택용



‘빛의 예술’ 사진을 통해, 촛불을 ‘꺼지지 않는 빛’으로
- 사진가 14인의 ‘촛불항쟁’ 현장 기록 사진전, 3월 28일부터 류가헌

‘순한 촛불 하나를 어두운 밤 보탠다’
송경동의 시 ‘촛불 연대기’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랬다.

지난 2016년 10월 29일 첫 번째 촛불집회로부터 19번의 촛불 집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 ‘순한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거리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쳤다. 더 큰 빛을 찾아서, 어두운 밤에 빛 하나를 보탰다.


하나의 촛불로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그날의 시간들이 지워지지 않을 풍경으로 각인될 때, 사진은 그것을 기록했다.

개개인의 기억으로 또한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장면으로 남을 그날의 시간들을 사진가들이 빛의 예술이라는 사진으로 기록함으로써

촛불을 또한 ‘꺼지지 않는 빛’으로 만든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체온으로 광장을 덥혔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오늘,

사진가 14인의 ‘촛불항쟁’ 현장 기록 사진전이 다시금 그날의 장엄과 감동을 재현한다.

3월 28일부터 사진위주 류가헌(청운동 113-3)에서 열리는 사진전 <촛불의 구술사 口述史>가 그것이다.

강재훈 김봉규 노순택 박종우 성남훈 성동훈 윤성희 이승훈 전민조 정택용 조문호 조진섭 최형락 홍진훤. 신예 사진가부터

이름이 잘 알려진 다큐멘터리 사진가, 원로사진가, 사진기자 등 14명의 사진가가 함께 한 100여 점의 사진들은

최초의 집회로부터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탄핵인용에 이르기까지 장구하게 이어진 촛불의 시간들을 바로 눈앞인 양 펼쳐 보인다.

한 손으로는 목마 태운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치켜 든 촛불, 기차처럼 늘어 선 차벽,

자신의 촛불로 다른 이의 심지에 불을 붙여주는 손길, 눈물을 흘리는 여학생과 ‘너무 좋다, 박근혜 파면’의 신문 호외를 들고 뛰며 웃는 청년.....

촛불항쟁 현장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사진가들의 시선은 저마다의 변별성을 지닌다.

드론을 사용하지 않고 몸으로 찍은 이백만 촛불광장의 하이앵글, 만장일치로 탄핵이 인용된 순간 군중들의 환희와 눈물 등

기자의 직분을 가진 사진가들은 일반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극적인 순간들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프랑스에서 사진을 공부한 젊은 사진가의 프레임은 어떤 혼잡한 순간에도 미쟝센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그 균형 때문에 현장의 분노와 함성은 증폭된다.

바람 부는 광장과 거리에 촛불을 들고 선 군중들의 낯선 풍경을 더욱 더 기이하게 구성한 사진가, 태극기와 성조기의 물결에 주목한 사진가,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농성을 한 예술인들과 함께 넉달 보름동안 직접 풍찬노숙을 하며 ‘광화문 캠핑촌 예술행동’의 면면을 기록한 사진가까지,

14명 사진가의 시선도 표현방식도 다채롭다.

전시제목의 ‘구술사’란 민중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한 방식이다.

촛불항쟁의 촛불은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이룬 거대한 빛이었다.

그러한 민중의 외침이었다는 점에서, 그것을 사진가들이 사진의 형식을 빌어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술했다는 점에서

구술사이자 한국사의 풍경을 바꾼 역사의 한 장면이라는 면에서 또한 구술사다. 

전시는 4월 23일까지 류가헌 전시 2관에서 열리며,

이어서 박근혜 정부 4년과 촛불항쟁을 기록한 사진집 출간 기념 전시가 4월 18일부터 전시1관에서 2주간 열린다.



정택용

정택용


조진섭


조진섭


성동훈


성동훈



최형락



최형락


최형락


전민조 - 탄핵만세   2017. 3.   10  안국동


김봉규



​김봉규


​김봉규


최형락


윤성희



성동훈


​강재훈-7차 촛불집회,어린이05-1


박종우


박종우


박종우


홍진훤


조문호

조문호


2. 작가소개


강재훈
한겨레신문 사진부문 선임기자(부국장)이자 자타공인 분교 사진 전문가다.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럽고 정겨운 사진으로 피사체와 감성적으로 공감하려는 사진가이기도 하다.

경기대, 홍익대 대학원 등 여러 대학에 출강해 사진사와 포토저널리즘 등을 강의했으며,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1999년부터 2011년까지 포토저널리즘 강의를 하였고,

현재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재훈 사진학교”의 강의를 전담하고 있다.

이곳에서 배출된 100여 명의 사진가들로 구성된 사진 집단 <포토청>을 이끌고 있다.


노순택

露宿澤. 사진사. 길바닥에서 사진을 배움.

본명 노순택이었으나 2016년 11월 박근혜 퇴진 광화문광장 농성에 돌입하면서 노숙택으로 개명.

분단체제가 파생시킨 작동과 오작동의 풍경을 수집 중.

<분단의 향기> <얄읏한 공> <붉은 틀> <좋은 살인> <비상국가> <망각기계> <어부바> 등 국내외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이름의 사진집을 출간.

최형락
사진가로서, 외면 받은 사람들의 눈빛을 기억하려 애쓴다.

 '돈의 논리'와 '국가의 논리'가 망가뜨린 것들을 기록하며, 혹시 그럴 수 없는 것이 있는지를 찾고 있다. 

4대강 사업의 허위를 기록한 책 <사진, 강을 기억하다>(2011, 공저) 등을 펴냈다.

현재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 기자로 일하고 있다. 

성남훈
프랑스 파리 사진대학 ‘이카르 포토(Icart Photo)’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

프랑스 사진에이전시 ‘라포(Rapho)’의 소속 사진가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전주대학교 문화산업대학원 객원교수이고 사회공익적 사진집단 ‘꿈꽃팩토리’를 이끌고 있다.

2008년 한미사진미술관, 2010년 타슈켄트 국립사진센터,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2016년 스페이스22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2004년 강원다큐멘터리 작가상, 2006년 한미사진상, 동강사진상, 1999/2009년 월드프레스포토상을 수상하였다.

출판물로 『소록도』(타임스페이스, 1996), 『유민의 땅』(눈빛 2005)등이 있다.

성동훈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사진가
ATLAS PRESS 소속

수상
제3회 온빛사진상. 2013
LUCIE FOUNDATION SCHOLARSHIP COMPETITION, USA, 2011
CITY OF SUBIACO PHOTOGRAPHY AWARD, AU, 2010 _ FINALIST
INTERNATIONAL PHOTOGRAPHY AWARD, USA, 2010 _ 4CATEGORY, 6 PICTURES

정택용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생태를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
대추리나 제주 강정, 밀양, 용산과 더불어 숱한 노동현장에서 이 나라엔 대접 받는 1등 국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의문을 품고

사진을 찍는다.

2010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냈고,
2014년 ’밀양구술사프로젝트팀'이 쓴 『밀양을 살다』 속 밀양 주민 16명의 사진을 찍었다.
2016년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담은 사진집  『외박』을 냈다.

​조문호
 다큐멘터리 사진가.

개인전으로 ‘사람이다’(2016), '청량리 588'(2015), ‘장에 가자'(2015),'인사동, 봄날은 간다'(2010), '산을 지우다'(2008),

‘신명’설치전(2007),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2007), '두메산골 사람들'(2004), '태풍 루사가 남긴 상처'전(2002), '동강백성들'(2001),

 '전통문양초대전(1995), '불교상징전(1994)', '전농동588번지‘(1990)', '87민주항쟁’(1987)', '동아미술제초대전(1987)',

‘아시안 게임’ 기록전(1986) 등을 개최하였다. 현재 인사동 사람들과 동자동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다.

외 7인



3. 작업노트


노순택
광장일기, 어떤 날
비닐포장을 뜯고 흔들면 뜨거워지는 ‘핫팩’이라는 물건.

그런 물건을 알기는 했으나 써본 건 처음이었다.

1인용 텐트에서 잠을 잔 것 또한 내겐 첫 경험이었다.

비 내린 후 첫 얼음이 얼었던 어느 날, 새벽에 눈을 떠 보니 텐트가 주저앉은 채 얼어 얼굴에 닿아 있었다.

바닥에 깔 스티로폼 반입을 경찰이 허용하지 않아, 작은 텐트 안에 침낭만 깔고 자던 나날이었다.

몸서리나게 추운 그런 날들을 핫팩 덕분에 견뎠다. 나는 언제부턴가 식어서 버려야 하는 핫팩을 모으기 시작했다.

봄이 오면 핫팩 안의 흙을 모아 퇴비를 섞어 무언가 심어볼 생각이다.

점성질 재료를 섞어 조형물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택용
142일. 이렇게 오랫동안 광화문 광장에 공간을 점거해 유지할 줄 몰랐다.

작년 11월 4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기자회견 뒤 기습적으로 점거하면서

적어도 2주 정도면 이 정권에 뭔가 사달이 나서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완전 오판이었다.

헌재 탄핵심판 선고일 예측이 미뤄질 때마다 느낀 절망감은 깊었다. 하루라도 빨리 광화문 캠핑촌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 안에선 사진 찍는 일도 흥이 나지 않았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시간들이었다.


조문호
촛불이 예술로 꽃 피우다.
정의를 부르짖는 촛불시민들의 함성이 ‘광화문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 펼친 촛불시위의 놀이판은 예술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고,

예술이 대중 속에 녹아드는 예술 본연의 일상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시민들과 어울려 펼친 예술가들의 행동은 촛불의 위대함에 화관을 씌우며,

촛불이 예술로 거듭나는 쾌거로 또 하나의 민중미술사에 남게 된 것이다.

이 사진들은 석 달 동안 열 네 차례의 프로젝트에 함께 한 기록이다.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에 나가는 게 습관이 되어 토요일만 되면 엉덩이가 들썩인다.

지난 토요일은 집회가 없었지만 나갈 채비를 했는데, 마침 ’눈빛출판사‘의 이규상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류가헌‘ 전시장에서 만나 점심식사나 같이 하자는 것이다.

사실 ’류가헌‘이 옮긴지가 제법 되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더구나 나도 출품한 ’촛불의 구술사‘전이 열리고 있지 않은가.

첫 날 일이 있어 못 들리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것이다.

길눈이 어두워 물어물어 찾아 갔는데, 가보니 촛불집회 때마다 들락거린 청와대 가는 청운동이었다.

전시장에는 황규태선생을 비롯하여 이규상, 이규철씨가 나와 계셨고, 뒤이어 석재현, 박진영, 하지권씨도 만났다.

다들 반가웠으나 황규태선생을 뵈니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몇 일전까지 ‘류가헌’에서 열었던 황선생님 개인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좋은 전시를 못 본 건 내 손해인데, 스스로의 게으름을 자책해야 했다.






2관에서는 강제훈씨를 비롯한 13명의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이 찍은 ’촛불의 구술사‘전이 열리고 있었고,

1관에서는 사진가 이규철씨가 컬렉션한 ‘我 之 我’전이 열리고 있었다.

매년 한 장씩 20년 동안 모은 작품 20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진가가 매년 사진작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사진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품이기에 허턴 작품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잘 알려진 작품도 있었는데, 사진보는 안목이 덜한 분은 믿고 살만한 작품들이었다.

전시된 작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작가와 연결시켜 주는데, 부담 없는 가격이라 제법 팔렸다고 한다.

또한 사진집을 구입한 분께는 작품사진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열고 있었다.

사진 컬렉션에 다시 한 번 관심 갖게 하는 좋은 사진나눔운동이었다.






이규상, 황규태 선생과 전시장 옆에 있는 떡 만두국 집에서 식사를 하고 ‘광화문광장’까지 걸어왔는데,

경복궁 앞길에는 유난히 한복 입은 아가씨들이 많았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은 여느 때와 달리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이순신동상 부근에는 ‘사회를 위한 대학생공동행동’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인사동터줏대감 강 민시인과 방동규선생이 계셨고 옆에는 미모의 소설가 김단하씨의 모습도 보였다.

술 한 잔 하자는 강 민선생의 말씀에 간재미집으로 안내했다.

방배추선생의 구수한 옛 이야기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방동규선생 사모님께서 광장에 기다린다는 전갈이 받고야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사드저지 및 세월호 진상규명, 적폐청산의 날‘이란 퇴진행동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사진가 고 헌씨의 모습도 보였고, 무대에는 장순향교수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문제는 눈앞에 닥친 대선에서 이러한 난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는 분은 이재명, 심상정 후보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드철회는 물론 모든 진상규명과 적폐가 청산될 때까지 촛불을 꺼서는 안 된다.

토요일마다 ‘광화문광장’을 문화예술난장으로 만들어 촛불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전진기지로 만들자.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갤러리 류가헌은 내달 10~22일 온빛사진상 수상작가 사진전 '아버지의 삶'을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20년간 광부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온 박병문 작가의 사진전이다.
강원도 태백 출신으로 광부 아버지를 둔 작가는 폐광을 앞둔 탄광에서 이 시대 마지막 광부들의 흔적을 기록한 사진 40여 점을 선보인다.
온빛사진상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들 모임인 '온빛 다큐멘터리'가 의미 있는 스토리를 발굴해 사진으로 기록, 사회적 소통을 시도하는 작가를 선정해 주는 상이다.


박병문, '출근 직후 분주한 모습'. [갤러리 류가헌 제공]










다큐사진가 엄상빈 선생과 몇몇 전시를 함께 돌아보기로 약속한바 있었다.

지난 3일 오후1시무렵, 통인동 메밀꽃 필 무렵에서 엄선생을 만났다.






제일먼저 사진위주 류가헌부터 들렸다.

그 곳에는 박찬원씨의 숨 젖 잠이란 제목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에 돼지 사진들이 걸려있고, 스피커에서 들리는 돼지들의 거친 숨소리는

마치, 돼지우리에 들어 온 느낌을 주었다.


오로지 고기로 왔다 고기로 가는 돼지를 통해, 생명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

, 생명의 의미를 사람에게서 찾는 게, 더 빠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상빈선생은 사람 찍기가 어려우니, 그 기에 이르는 과정일 것 같다고도 했다.  

그 전시 사진들은 눈과 귀는 빠져들게 하였지만,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두 번째는 창성동 온그라운드에서 열리는 차장섭씨의 한옥의 ’을 보러 갔다.

이 전시는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보았으나, 시간에 쫓겨 꼼꼼히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침 전시작가인 차장섭교수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 반가운 만남의 시간도 되었다.

건축부문, 전문 갤러리인 온그라운드는 적산가옥 골격을 그대로 살린 독특한 전시장이었다.


한옥 벽의 조형미에 빠져, 10년에 걸쳐 전국400여개 고택에서 찾아낸 한옥 이미지는 매혹적이었다,

자연스런 비대칭구도의 어울림은 마치 선사의 붓길 같기도 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 추상화 같기도 했다.

천장 판자 사이로 비쳐내린 햇살의 그림자와 어울려, 한옥의 현장감까지 더해 주었다.

    







그 때 마침 다급한 차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제~ 아제~”라 불렀는데, 유리창 넘어로 고향 친척 한 분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한 모양이다.

전시장을 찾아 헤 메는 것을 먼저 알아차렸는데, 두 분 반가운 만남에 슬며시 빠져나왔다.





세 번째 들린 곳은 옥인동 갤러리 룩스에서 열리는 안옥현, 김병규의 넌 벽에 박혔어.

곳에서 작가인 안옥현씨와 사진평론하는 최연하씨도 만났다.


선생님은 여자 가슴사진을 춘화로 알고 오셨구나라는 농담을 받았는데,

내가 여자 밝히는 게, 동네방네 소문난 것 같았다.

”아이구! 너무 그러지마쇼. 여자 안 좋아하는 사내 있으면 한 번 나와 보라 그래요.“


그리고 전시된 사진들의 감정묘사 하나는 확실했다.

여인들의 리얼한 표정들은 마음 속에 감추어진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젖가슴을 통해 욕정의 찌꺼기까지 다 보여주었다.

 







네 번째는, 최연하씨의 안내로 일정에도 없던, 구기동 아트 스페이스 풀 퇴폐미술전에 들렸다.

전시 제목 자체가 왠지 친근감이 들었다. 내가 퇴폐적이라 그럴까? 아니면 퇴폐적인 현실 때문일까?

먼저, 퇴폐미술하면 독일 나치정당이 작품을 퇴폐미술로 규정해 문제를 일으켰던, 1937퇴폐미술전이 떠올랐다.

 

권용주, 김웅현, 안경수, 오용석, 옥인 콜렉티브, 임유리, 장파, 전소정, 정덕현 등의 작가들이 참여해

회화, 비디오, 조각. 아카이브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기획자인 안소현은 나치의 퇴폐미술전과는 반대로, 예술이 먼저 사회의 경직성과 편견을 드러내,

사회를 규정해보고자 했다고 적어 놓았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바르게 살자라는 등의 문구가 적힌 돌덩이 형상에도 실소를 머금었지만,

한나라당이라 세겨진, 긴 나무 현판을 옮겨 놓은게, 더 죽였다.







 

오영석씨의 작품은 남성의 아름다운 신체와 동성애 장면을 마치 흔들린 것 처럼 보여 주었다.

한 화면에 화려한 색감으로 풀어내, 마치 금기와 환상 사이를 오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오랜 동안 권력자들이 쳐 놓은, 금기의 울타리에 주눅 들어 살아 온 민족이다.

한 번 금기로 정해지면, 그 틀을 벗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퇴폐 아닌 퇴폐도 많지만, 퇴폐로 분류되어야 할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들린 동아일보 일민미술관에는 포르투칼의 영화감독 페드로 코스타와, 조각가 후이 샤페즈의

멀리 있는 방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러나 너무 불친절한 전시였다.

입장료를 받았지만, 아무런 안내조차 없었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둠 속의 흐릿한 형체가 떠올랐다. 소재는 강철인데, 강철 같아 보이진 않았다.

마치 먹물을 잔뜩 머금은 붓을 공중에 휘두른 듯, 흐드러진 곡선들이 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조각들도 마찬가지다. 강철 조각들은 육중함을 뽐내기는커녕 날아오를 듯 가벼워 보인다.

어떤 것은 풍선처럼 공중에 뜬 것 같았고. 어떤 것은 천으로 만든 가림막처럼 천장으로부터 늘어져 있다.


이 가벼운 강철 조각들 사이에는 과묵한 영상들이 반복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카메라는 표정 없는 인물을 관찰하였고, 모니터의 흐릿한 빛들만 전시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멀리 있는 방'이란 조각과 영상 이면의 관념이 공진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여러 전시를 돌아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일민미술관'을 제외한 모든 전시가 무료였지만,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작가들의 헌신적인 노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두지 않았다.

돈에 갇혀, 창살없는 감옥에 사는 많은 대중들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작가들이 불쌍하게 보이겠지만...


작가들의 예술을 향한 일방적인 짝사랑도 가슴이 미어터지지만,

무더위에 못 견뎌, 거리에 더러누운 노숙자들의 모습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사진, 글 / 조문호


 

    







2016 집과밤_린넨에 아크릴릭_73x53cm



서숙희의 집과 밤그림전 개막식이 지난 9일 오후5, 통의동 류가헌에서 있었다.

그 전시장은 여러차례 가보아, 위치엔 신경 쓰지 않고 찾아갔다.

그러나 경복궁역에서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얼마나 헤매었는지, 30분이나 늦어버렸다.

 

어렵사리 찾았더니, 작가 서숙희, 신대엽 부부는 물론 황효창, 길종갑, 김대영, 최형순, 이수환씨등

춘천의 화가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다. 뒤늦게 사진을 찍었으나 그의 설거지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보며, 뭔가 아련한 몽환적 기억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인적 드문 곳에 자리 잡은 구멍가게나 집들의 흔적이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진 않았지만,

분명 오래 전 만났던 풍경이었다.

 

낮과 밤으로 나뉘어 그려진 집을 비롯해 물이나 풀, 창고 등의 형체가 희미한 안개나 어둠에 묻혀있었다.

선묘 형태로 형체를 흐릿하게 드러내며, 색채 깊숙한 곳에 묻힌 이담의 작품은 언뜻 추상화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그림들은 마치 슬픈 상처를 가린 듯, 아늑한 꿈 속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서숙희씨는 왜 그토록 집에 집착했을까?

인간의 삶이란 모든 것이 집에서 이루어진다.

사랑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집에서 비롯되지만, 또 집에서 매일같이 밤을 맞이한다.

집은 작가의 많은 기억들을 끌어낼 수 있는 매개였기에 집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의 작품에는 변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도사리고 있었다.

오직 서숙희 만이 회억하며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 생각되었다.

작품은 작가 스스로의 위안이기도 했지만, 작품을 보는 감상자에게도 위안을 안겨주었다.

    


2015 밤길_린네에 아크릴릭_53x33cm


 2016  여름밤_리넨에 아크릴채색_73x61cm


2015 숲속의 집-밤_린넨에 아크릴릭_91x61cm


2016 밤_순지에 아크릴채색_53x34cm


2016 망초꽃핀 운동장_리넨에 아크릴채색_73x60cm


2015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곳에 구멍가게를 내다_린넨에 아크릴릭_52x52cm



메밀꽃 필 무렵이란 뒤풀이 집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내 머리 속에 남은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술을 마시다, 다시 전시장에 들려 찬찬히 그림들을 둘러보다 무릎을 친 것이다.

맞다! 고등학생 시절, 버스 차장 때문에 본 풍경이었네

갑자기 아득한 추억 속의 그리움이 왈칵 밀려왔다.

 

그 추억은 반세기 전, 고등학교 다닐 무렵, 집에 가는 시외버스 탔을 때 일이었다.

그 날 처음 본 버스 차장의 매력에 끌려, 우리 동네를 지나치고 마냥 따라 간 것이다.

종점은 표충사인접 마을이었는데, 도착하니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소녀는 숙소로 사라져버렸는데, 이미 돌아 갈 차도 끊겨버렸다,

 

희미하게 길과 집들이 보였지만, 내가 안착할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하릴없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본 희미한 풍경들이, 바로 서숙희의 그림 속에 똬리 틀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산길을 지나치던 자동차의 희미한 불빛도 보았고, 들어가 쉴 수 없는 집이나 창고도 보였고,

여기 저기 파수꾼처럼 버틴 희미한 나무도 보았던 것이다.

 

길섶에 앉아 두려움에 떨면서도, 이름도 성도 모르는 소녀 생각에 밤을 꼬빡 지센 것이다.

차라리 잠이라도 들었더라면,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녘의 풍경을 바라보며 돌아 왔던, 무모했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결론적으로 서숙희씨가 말하고자 하는 그림 이야기는,

잊혀져가는 그리움의 기억을 찾아내고, 슬픈 상처를 다독이며 서로 위안하는 것이었다.


류가헌’(02-720-2010)에서 열리는 이담 서숙희 그림전은 24일까지 이어진다.

이 살랑대는 봄날, 그 아련한 그리움의 풍경  찾아 가보자.

 

사진,/ 조문호





































































 

 

 

 

 

 

 

 

 


이담 서숙희_차가 잘 다니지 않는 곳에 구멍가게를 내다_리넨에 아크릴채색_52×52cm_2015



춘천에서 활동하는 이담 서숙희씨의 ‘집과 밤’ 네 번째 개인전이

오는 19일부터 24일까지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류가헌’에서 열린다.

낮과 밤을 나눈 그의 그림들은 일련의 그림 솜씨나 말 솜씨로,

보는 사람의 아늑한 감성을 건드리며, 말 걸어 오고 있었다.

보일락 말락  산길을 지나는 자동차의 자취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 올리게 했고,

안개에 가린 듯한 희뿌연 그림들은 마음속에 가라앉은 사무친 그리움을 들춰냈다.

조근 조근 속삭이는 말들은 마치 한 편의 시를 보듯, 긴 여운을 남긴다.

소설가 하창수씨가 “위안이 일방적인 획득이 아니라 주고받음이

예술의 소중한 덕목이라는 것을 그녀의 그림이 조용히 읊조려준다."했듯이

“내 그림이 다른 사람 마음에도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뜻을 충분히 충족시켰다

.  
그 아늑하고 그리운 환몽(幻夢)의 세계로 여러분을 모신다.
개막식은 오는 19일 오후5시, ‘류가헌’(02-720-2010)이다.

글 / 조문호




이담 서숙희_숲속의 집-낮_리넨에 아크릴채색_91×61cm_2015

이담 서숙희_숲속의 집-밤_리넨에 아크릴채색_91×61cm_2015

이담 서숙희_집과밤_리넨에 아크릴채색_73×53cm_2016



환몽(幻夢)처럼, 아늑하고 아득하고 그리운...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곳에 구멍가게를 내다' 그림의 제목이다. 제목이 아니었으면, 저 옛날 매화초옥도에 그려진 초가집처럼 은자연한 풍경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구멍가게'이니 의당 손님이 나들어야 할 텐데 '차가 잘 다니지 않는다'니 사람의 왕래가 적고 가게의 목적인 장사가 잘 될 턱이 없다. 그런데도 구멍가게 혹은 집을 둘러싼 초목은 푸르고, 나무는 점점이 흰 꽃을 피우고 의자들은 비어있으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다. '내다'에서 느껴지는 자의성처럼, 마치 일부러 그렇게 인적 드문 곳에 가게를 낸 것처럼도 여겨진다. 가게라는 세상과의 소통창구를 열어둔 채로, 자연 속에 홀로 의연하다. 마치 그림이 안개 같은 입자로 "그래도 괜찮아."라고, 귓가에 속삭이는 것만 같다.

 

'산을 지나가는 자동차' 또 다른 그림의 제목이다. 역시 제목이 아니었으면, 비구상 추상화라고 여겼을 법한 그림이다. 그런데 어둔 밤중에 홀로 서서 막연한 기다림으로 저 멀리 '산을 지나가는 자동차'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별빛 같은 점으로 나타난 자동차가 헤드라이트 불빛을 비추며 어떻게 선으로 사라져가는 지를. 그 불빛에 어떻게 산이 능선을 내보이며 제 형체를 잠깐 드러냈다 다시 컴컴한 어둠 속에 묻히는 지를. 한 순간 설렘으로 환해진 마음이 어떻게 가뭇없이 그리움으로 어둑해지는 지를... 산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지만, 그 설렘과 그리움 사이의 어느 지점을 자동차는 지나고 있는 중이다. 그림을 보는 동안 "나의 어둠을 당신도 아는구나."라고 속엣 말로 되뇌게 된다.

 

낮과 밤으로 나뉘어 그려진 '숲 속의 집'을 비롯해 '물과 풀' '여량철교' 등의 제목을 한 다른 그림들도, 같은 화법(畫法) 또는 화법(話法)으로 말을 걸어온다. 말을 걸어옴으로써, 그림 앞에 오래 서 있게 한다. 이 그림들을 그린 화가 서숙희는 작가노트에 이렇게 썼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나를 위로하기 위한 노력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또 이 그림들에 대해 소설가 하창수는 이렇게 썼다. "위안이 일방적인 획득이 아니라 주고받음이라는 것을, 이것이 예술의 소중한 덕목이라는 것을 그녀의 그림들은 조용히 읊조려준다." 그리고 덧붙인다. "짙고 깊게 화폭을 파고들어간 안개는 강의 흐름을 감추고, 자잘하게 절개한 상처와도 같은 무수한 세필자국을 감추고, 아득한 환몽(幻夢)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아늑하고, 아득하고, 그립다." 글의 결미처럼, 화가 서숙희의 네 번째 개인전인 집과 밤의 그림들은, 아늑하고 아득하고 그리고 그립다. 류가헌

  


이담 서숙희_여량철교_리넨에 아크릴채색_73×53cm_2016

이담 서숙희_벚꽃놀이_리넨에 아크릴채색_73×53cm_2016

이담 서숙희_망초꽃핀운동장_리넨에 아크릴채색_73×60cm_2016

이담 서숙희_산을 지나가는 자동차_리넨에 아크릴채색_117×73cm_2016

이담 서숙희_산을 지나가는 자동차_순지에 아크릴채색_120×83cm_2015




그림이라는 이름의 자아, 혹은 위안과 꿈 - 이담 서숙희의 2016년 전시회에 부쳐


잭슨 폴락의 전시회를 둘러보던 한 미술담당 기자가 야릇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곁에 있던 친구가 이유를 물었다. 기자는 시니컬하지만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폴락이 말하길, 그림은 자아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했지. 그래서 훌륭한 화가는 그 자신을 그린다고. 그런데……" 기자의 말을 가로챈 친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러니까 자넨 폴락의 그림에서 그의 자아를 발견하지 못했군. 하기야 이런 추상화에서 화가의 자아를 발견한다는 게 웃기는 일이지."하고 아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이어진 기자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 "아니, 폴락의 자아가 이렇게나 깊다는 것에 놀라고 있는 중이야."

 

서숙희의 2016년 전시회 그림들 앞에서 이 일화를 떠올린 건 형체를 색채 깊숙한 곳에 묻어버리거나 두터운 색채의 안개에 숨긴 채 보일락 말락 드러내는 그녀의 그림이 폴락의 추상화들과 겹쳐진 때문이 아니라, 우주의 청회색 가스층에서 발견한 화가의 자아에 나 또한 "이렇게나 깊었나?"하고 놀랐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본 것이 그녀의 자아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화가의 손을 떠난 그림은 작가의 손을 떠난 글이 그렇듯, 온전히 감상자에 의한, 감상자를 위한, 감상자의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녀의 그림들에서 본 게 그녀의 자아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림에서 발견되는 자아란 무엇이며, 그림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일은 어떤 가치를 가지며, 훌륭한 화가가 그 자신을 그린다는 건 무엇이며, 그 자신을 그리는 일은 또 어떤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내놓을 수 있는 답은 무수히 많겠지만, 그림에 대한 안목이 짧고 얕은 나는 한 가지 답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 답은 "오직 자신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는 말로 수렴된다. 오직 그만이 그릴 수 있으므로 '자아'라는 말을 붙일 수 있고, 그래서 그 그림이 가치 있는 그림인 것이다. 요컨대, 서숙희의 그림은 오직 그녀만이 그리며, 그녀만이 그릴 수 있다. 어디에서도 나는 그녀의 그림과 같은 그림을 본 적이 없다. '개성'이라는 단어에 모두 담을 수 없는 그녀의 독특과 유별은 무너뜨릴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낸다

 

서숙희의 지난 전시회들을 찾아왔던 사람들이 들려준 감상의 변들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위안'이었다. 그녀의 그림들에서 받게 되는 위안은 어쩌면 그녀로 하여금 붓을 놓지 않도록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일는지도 모른다. 독특과 유별이 화가 서숙희가 가질 만한 자부심이라면, 감상자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받아가는 위안은 인간 서숙희에게 가져다주는 소중한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선물은 10년 전인 2006년의 전시회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에서 듬뿍 받은 것이기도 하다. 나는 그때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어떤 이는 이담의 그림에서 몇 줄의 시를 읽고, 어떤 이는 조곤조곤 긴 사설을 듣는다. 어떤 이는 그녀의 그림 앞에서 쓸쓸히 가슴을 쓸어내리고, 어떤 이는 가만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이 상반된 반응이야말로 서숙희라는 화가의 매력이거니와, 그녀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뭐 하나 똑 부러지는 게 없는 그녀 특유의 '머뭇거림'이 그 이유다. 그런 그녀야말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바로 그 사람이지 않을까."

 

위안은 대상과 감상자의 눈이 같은 높이에 있을 때 얻게 된다. 그래서 우러러 보아야 하는 존경과 다르다. 위치를 달리하면 위압이 되는 존경은 그래서 위안을 주지 못한다. 태생부터 '높은 곳'과는 거리가 먼 서숙희에게 위안은 당연한 것이리라. 그녀의 머뭇거리는 발길은 그녀의 손을 잡게 하고, 대상에 대한 그녀의 연민은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하며, 내면을 향한 그녀의 침잠은 우리를 서두르지 않게 만든다. 위안이 일방적인 획득이 아니라 주고받음이라는 것을, 이것이 예술의 소중한 덕목이라는 것을 그녀의 그림들은 조용히 읊조려준다.

 

서숙희의 그림들은 머물지 않고 흐르는 강과도 같다. 2006년과 2011, 두 번의 전시회에서 그녀의 그림들이 보여준 '변화'는 보기에 참 좋았다. 정통 문인화가 한 굽이를 흐르며 담묵과 순정한 선묘의 '사라지는 것들'로 바뀌고, 선묘가 옅은 안개에 가려지며 침잠의 여울로 건너간 것이 다섯 해 전까지의 일이다. 이제 2016년으로 건너온 그녀의 강은 또 한 번의 '다름'을 보여준다. 짙고 깊게 화폭을 파고들어간 안개는 강의 흐름을 감추고, 자잘하게 절개한 상처와도 같은 무수한 세필자국을 감추고, 아득한 환몽(幻夢)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아늑하고, 아득하고, 그립다. 그녀가 오래, 그녀만의 그림으로, 늘 변화를 꿈꾸며 우리 곁에 있기를 빈다.


소설가 / 하창수


 

 

 전시 일정들을 살펴보다 아는 이름을 발견했다.
‘류가헌’에서 전시하는 이주영씨의 ‘Water Soul'이었다.
같은 이름일 수도 있겠으나, 주제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작가는 자리를 비웠지만, 전시된 사진들이 너무 좋았다.
신사임당의 표충도를 연상했으나, 아니었다.
수면의 수초를 찍었는데, 사물이 내게 말을 걸었다.

잔잔한 수면에서 알 수 없는 변화가 감지되었다.
마치 폭풍전야 같은 팽팽한 긴장감 말이다.
때론 편안한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힘도 있었다.

사진심리치료라는 말이 이해되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 전시는 4월 12일까지 이어진다.

글/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