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김정호·금속공예 이경자씨
법화경 7만자 돌에 새기고 불교 문양 더한 작품 전시


"불교 경전을 사경(寫經)해 보게."


1997년 당대 최고의 서예가 여초(如初) 김응현(金應顯·1927~2007)은 제자 김정호(57)에게 한 마디 했다.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한 마디 덧붙였다. "통일신라 때 화엄경을 돌에 새긴 '화엄석경'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깨졌다. 누군가 그걸 재현해야 할 텐데…." 보물 1040호 화엄석경은 지리산 화엄사에 있었으나 전란을 거치며 1만4000여 조각으로 깨져서 현재는 동국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날 이후로 김씨에게 '화엄석경'은 화두(話頭)가 됐다. 김씨는 "선생님 말씀 이후로 반야심경·금강경·법화경·화엄경을 쓰고 또 썼다"며 "2007년쯤 석경을 위한 돌판을 구했고 연구를 거쳐 2011년부터 우선 7만여 자에 이르는 법화경부터 돌에 새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난 11일 경기도 안성 작업실에서 ‘법화석경’을 살펴보는 서예가 김정호(오른쪽)씨와 금속공예가 이경자씨.

두 작가는 “천년을 가는 부처님 말씀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그가 사용한 돌판은 중국 저장성과 안휘성 사이에서 출토되는 벼루돌로 한 장은 약 15×30㎝ 넓이에 두께 1~1.5㎝짜리였다. 108배 하고 향(香)을 살라 마음을 가다듬은 후 오전, 오후 각각 5시간씩 몰두했다. 최대한 속도를 내도 하루 한 장, 150여 자를 새기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는 종이에 글자를 써서 돌에 붙이고 새기는 방식이 아니라 바로 돌에 전각 칼로 새겼다. 머릿속에 모든 획(劃)에 대한 설계가 끝난 후 칼을 들어야 하지만, 아차 싶으면 생각지 않은 방향으로 칼이 삐쳐나갔다. 한 글자라도 실수하면 그 판은 포기했다. 그렇게 버린 돌판이 100장 넘는다. 4년이 흘러 완성된 법화경은 모두 509장. 여기에 앞뒤 표지 한 장씩 붙여 모두 511장으로 법화석경을 완성했다. 그러나 애당초 석경을 만들겠다는 생각뿐 어떻게 전시하고, 어디에 소장할지는 계산에 없었다. 김씨는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는 것 자체가 환희였다"고 말했다.

석경이 완성될 무렵, 정각사 주지 정목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아니, 이 훌륭한 작품을 집에다 쌓아놓을 거냐?"며 코디네이터를 자청했다. 금속공예가 이경자씨를 소개해 석판 테두리를 옻을 매긴 홍송으로 싸고 연꽃·구름·물고기 등 불교적 상징 문양을 입사(入絲)한 금속판을 장식했다. 돌판을 보호하는 동시에 예술성을 높인 것. 전체 작품은 안국선원(선원장 수불 스님)이 소장하기로 결정됐다. 정목 스님은 "두 장인이 정성을 모아 천년을 가도 끄떡없을 오늘의 문화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제 법화석경을 마쳤으니 앞으론 원래 목표로 했던 화엄석경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화엄경은 모두 20여만 자(字). 김씨는 "20년쯤이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 장엄한 석경은 22일부터 5월 1일까지 서울 인사동 그림손갤러리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법화석경 511장이 전시장 벽을 꽉 채운 가운데, 둔황 벽화 연구로 유명한 화가 서용의 불화(佛畵)와 등공예가 김정순의 작품이 함께 선보인다. (02)733-1045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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