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또 누군가 북망산천 가는구나 싶었다.
구급차가 ‘해 뜨는 집’ 앞에 세워, 누군지 걱정되었다.
그 집은 잘 아는 사람이 여럿 살기 때문이다.




쪽방촌에 사람 죽는 것이 다반사기는 하지만,
좋은 친구들이 가면 살아 남은 사람이 외롭다.
똑 같은 동네사람이라도 잘 아느냐 덜 아느냐에 따라 다르니,
인간이란 게 참 몰인정하고 간사하기 그지없다.




물어보니, 이제 막 팔순에 접어든 김씨 노인이란다.
이 분은 이웃과 소통 없이 혼 술을 즐기는 분이라 다들 잘 모른다.
옆 방의 김병택씨 이야기 들어보니, 고개부터 절래절래 흔들었다.
술 취해 넘어지는 “쿵”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는 것이다.




이 날도 "쿵"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의식이 없더라는 것이다.
소방서원들이 심페소생술 한다고 난리쳤으나, 힘들 것 같았다.
환자가 실려 간 후 방문을 열어보니, 기가 막혔다.
아마 사는 것을 포기한 것 같은데,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방에 음식이라고는 한 톨 없고, 빈 막걸리 병뿐이었다.
선풍기도 없는 방에서 술만 마셨으니 천하장사인들 견딜 수 있겠나?
빈 속에 술만 마신 걸 보니, 수면제 대신 술을 택한 것 같았다.
다들 목숨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나무라겠으나, 죽는 것이 편한지도 모른다.




팔십이면 살만큼 살았지만, 더 이상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나?
떠나고 나니 배웅 나온 이웃들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나둘 사라졌다.
애달피 울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가운데, 쓸쓸하게 막내린 것이다.
부디 저 세상에서라도 귀신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소리가 지겹다.
쪽방의 더운 바람을 돌리지만, 그것마저 꺼버리면 질식한다.
정선에서 허리를 다쳐 일주일째 더러 누워있다.
약을 먹어도 신통찮아 쉴 수밖에 없는데, 컴퓨터가 유일한 소식통이다.
라면과 미숫가루가 넉넉하니, 먹을 것은 걱정 없다.






가끔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는데,
정선덕씨가 심어 놓는 고추와 오이가 잘 자랐더라.
얼마나 정성을 들였으면, 징그럽게도 컸다.
옥상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동자동의 또 다른 풍경이다.
늘어놓은 빨래와 꾀죄죄한 옥탑 방에서 따뜻한 사람냄새가 난다.






어제 아침엔 꼼짝하지 않는 내가 걱정되었던지,
건물 관리인 정선덕씨가 죽을 끓여 내밀었다.
고맙지만, 죽을 좋아하지 않아 부담만 되었다.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 눈 감은 김에 스르르 갔으면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산목숨이다.





구부정한 폼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몸을 추스렸다.
친절한 은자씨가 방정맞게 앉아 아이스케키를 먹고 있었다.
천천히 아껴 먹으려고 핥아먹어, 한 입 얻어먹을 수도 없었다.
날씨가 더워 유난히 얼음과자가 그리운 날이다.






공원 쪽으로 올라가니 낮선 학생들이 우글거렸다.
용산고등학교 전기과 학생들이 동자동에 봉사활동 하러 나왔단다.
건물 주인들이 해 주지 않는 공사를 학생들이 하는 모양인데, 도움 될지 모르겠다.
작년 여름에는 내 방도 전기가 나가 곤욕을 치룬 적이 있지만,
대부분 돌출된 외부선이 아니라 건물내부의 오래된 전선이 문제다.
결국 천장을 뜯어내는 공사를 하였는데, 학생들로서는 역부족일 것이다.






원용희씨는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도시락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를 불러 세워 지난 번 야유회에서 찍은 사진을 전해주려니,
‘서울역쪽방상담소’ 전익형실장이 나를 좀 보잖다.
지난 달 주민간담회에 참석한 글을 보았다며, 그 지적에 대한 변명이었다.
그 날 준 일회용 곰탕은 답례가 아니라 있는 물건을 주었단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줄 세우는 짓을 그만둘 수 없냐고 다그쳤더니,
줄 세우지 않는 방법이 있으면 좀 가르쳐달라는 것이다.
‘푸드마켓’으로 보내어 필요한 물건을 거기서 골라가도록 하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푸드마켙’은 용산구청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쪽방상담소와 상관이 없단다.
그래서 옥상옥인 쪽방상담소를 없애고, 그 일을 동사무소에 통합시키라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을 여유 있게 해도 일찍부터 줄 서는 사람을 탓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너 자신도 줄을 서지 않냐?"는 말처럼 들렸다.
물건이 탐나서가 아니라, 줄을 서야 그 일을 기록할 수 있지만, 줄서는 사람 고충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래야 바꾸라고 말할 것 아니가?






날씨가 더워 공원 곳곳에 드러누워 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시락을 돌리던 원용희씨가 찾아 와, 한 개 남았다며 날더러 먹으라고 주었다.
고맙게 받기는 했으나, 밥 생각이 없어 청소하는 황옥선 할머니에게 넘겼다.
다들 입맛이 없으니, 술만 마시고 자는 것 같았다.






더운 선풍기바람 돌듯 다들 그래그래 살아가고 있었다.
건물주는 돈벌이에 급급하고, 일하는 사람은 편한 방식만 고집하고,
가진 것 없는 빈민들만 모든 걸 감수하지만, 인정 하나는 변치 않았다.
그래도 바람이 부니, 죽지 못해 잔소리를 해댄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에 밀집한 대개의 쪽방은 악덕 투기꾼들이 소유하고 있다.
다른 곳에 살며 입주한 주민을 대표로 내세워
계약서를 쓰게 하고 관리하며 돈을 거두어 간다.
선불인 월세는 현금으로만 받아 탈세를 하지만, 모두들 방관한다.






대개의 쪽방이 오랫동안 시설보수를 안 해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몸을 씻을 사워시설이 없는데다, 공용으로 쓰는 재래식화장실에서 식기를 세척하는
짐승만도 못한 환경에 살지만, 집세는 하루만 늦어도 쫓겨난다.






대개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내가 사는 4층의 쪽방 한 달 임대료는 23만원이다.
한 층에 아홉 개의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옆방의 티브이소리가 들릴 정도로 방음도 되지 않는 숨 막히는 공간이다.






평당 가격으로 치면 타워펠리스 보다 비싼 월세를 내면서도
비가 새거나 전기시설에 문제가 생겨도 손봐달라는 말조차하기 어렵다.
불편을 하소연하거나 조금만 그들의 비위에 거슬리면 곧 바로 쫓겨난다.
갑 질도 그런 갑 질이 없다.






배운 것도 없고 돈도 힘도 없는 쪽방빈민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인 불쌍한 사람들을 언제까지 당하게 할 것인가?






지난 19일 오후 다섯시 ‘서울시청’ 동편에서
쪽방 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세수문화제(세 번째 수요일)'가 열렸다.
‘동자동 사랑방’과 ‘빈곤사회연대’, ‘홈리스 행동’에서 마련한
‘세수문화제’에는 10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강제 퇴거 OUT”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 건 이 날 행사에 앞서
동자동에서 쪽방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주거권 교육을 세 차례 실시했다.
그 교육 내용을 토대로 쪽방 주민들의 목소리를 서울시에 전달하는 행사였다.






개발이나 건물주의 욕심으로 하루아침에 쫓겨나도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웠던
당사자들이 힘을 모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빈곤사회연대’의 윤애숙씨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수문화제’는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과 ‘동자동사랑방’ 김호태 대표로부터
‘쪽방주민 주거권 돌아보기’란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서울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의 문제점에는 ‘홈리스행동’ 박용수 회원이 발언했다.
쪽방 재개발 문제를 중심으로 한 쪽방주민 발언으로는 홍선호씨,
서울시 저렴 쪽방 정책의 문제점에는 김병택씨가 발언했다.






유영기씨 등 쪽방 주민 세분이 나와 주거권 보장을 위한 쪽방 주민들의 요구안을 발표했다.
첫째 “지주가 아닌 주민이 주인 되는 개발을 실시하라”
둘째 “모든 비 적정 주거지에 대한 주거기준을 마련하라”
셋째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 개선하라”고 했다.






동자동의 이대영, 안만정씨를 비롯하여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의
노래교실 회원들이 나와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고,
임채희씨는 홈리스의 삶에 대한 자작시를 2편 낭송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장 면담을 요청하는 종이비행기 날리기 퍼포먼스로 ‘세수문화제’를 마무리했다.






쪽방 촌에 공공의 강력한 개입을 요구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하루빨리 사람답게 살 대책을 마련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왕년에 잘 나갔다는 김씨
열다섯에 집나와 오십여 년을 서울역에서 놀았던 세월
주먹질에 7년 받아 법정소란으로 3년 보탠 것은 계급장
그 가오에 백발만 서렸구나.




왕년에 돈 좀 만졌다는 이씨
사람 좋아 흥청망청 다 날리고
집 쫓겨 나 사십여 년을 떠돈 세월
그 가오에 주름만 늘었구나.




빛바랜 왕년의 가오를 안주삼아
죽음 재촉하는 독주를 들이킨다.



사진, 글 / 조문호


















‘KT와 함께하는 정다운 주민 나들이’가 지난 22일 ‘화담 숲’에서 있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추진한 이 여행은 KT가 협찬했다.




오전10시 무렵, 버스 두 대로 출발한 이 날 소풍은
동자동 주민에게 모처럼 주어지는 신나는 외출이었다.




다들 근사한 옷을 갈아입고 나와 낯선 사람처럼 보였다.
옷만 잘 입으면 신분까지 격상되어 보였으나, 난 그게 안 된다.
‘옷 잘 입은 거지가 밥도 더 얻어 먹는다’는 옛 말도 있으나,
새 옷이 왠지 불편하다. 그 날은 깜빡 잊어 틀니까지 두고 나왔다.




경기도 광주의 ‘화담 숲’으로 떠난 이날 소풍은 80명을 모집했으나 65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선착순이라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공짜로 밥 먹여 구경시켜주는데도 무관심한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다들 할 일없이 방에 앉아 티브이나 보고 있을 텐데...
아마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모든게 귀찮은 것 같았다.




쪽방상담소 김갑록소장과 전익형실장을 비롯하여
김정길, 임수만, 전인중, 원용희, 최갑일, 이인숙, 한종희, 김정심, 김유례,
심경섭, 이난순, 이배식, 홍홍임, 김용철씨 등 반가운 사람을 많이 만났는데,
사진 찍히는 것을 유독 좋아하는 이경기씨가 나를 제일 반가워했다.
점심은 곤지암의 ‘초월보리밥’에서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화담’은 엘지의 구본무 회장 아호인데, 그가 생전에 조성한 숲이란다.
안내판에는 ‘내가 죽더라도 그 사람이 이 숲만큼은 참 잘 만들었구나는 말을 듣고 싶다.’는

구본무씨가 생전에 했던 말이 적혀 있었으나, 과욕으로 생각되었다. 



 
자연이란 그대로 두는 게 최선이지, 인위적인 환경이라 호감이 가지 않았다.
타 지역에 있던 노송이나 회귀종 나무들을 무더기로 옮겨놓고,
도보로 산책할 수 있는 완만한 길에 모노레일을 깔아 놓았다.
이끼원, 자작나무숲, 소나무 숲, 분재원, 암석정원을 비롯하여 한옥주막과 찻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화담 숲’에 들어가는 입장료는 만원이고, 모노레일 타는 데는 팔천 원이었다.
취미삼아 조성한 숲마저 장삿속을 보이는 재벌의 속성은 어쩔 수 없었다.




협찬으로 입장료는 해결하지만, 지난번에 떠난 대부도 여행이 훨씬 나았다.
장관을 이룬 철새들의 비행도 좋았지만, 입장료 아껴 ‘동춘 서커스’를 보지 않았던가?
차라리 화담 숲’보다 지척에 있는 남산 길을 산책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나들인지 들러린지 헷갈리는 소풍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에도 어김없이 봄바람이 분다.
지난 9일 오후에는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잔뜩 찌푸렸는데, 그런 날씨는 내 몸이 먼저 알아챈다.






찌푸둥한 몸을 이끌고 공원으로 나갔더니, 이미 사람들은 젖어있었다.
비가 아니라 술에 젖어 세상시름 다 녹였다.
그들의 텅 빈 가슴 위로 꽃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날따라 흐드러지게 핀 목련이 슬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무슨 말인지도 알아듣지 못할 혀 꼬부라진 소리가 나를 반긴다.
세상에 여기처럼 인심 좋은 곳은 없을 게다.
담배와 술은 기본이고, 그 철천지원수 같은 돈도 나눠 쓴다.
공원의 비둘기조차 빈자들의 술안주를 축낸다.





다들 취했으나, 정용성씨가 소주 두 병을 더 사왔다.

할 술이 떨어져 사왔겠지만, 술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주량에 맞추어 알아서 마시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다.






한 쪽에선 장기로 상대의 수를 탐색하였고,
한 쪽에선 욕설로 상대의 정을 확인하였다.
못할 놈들의 “씨발넘아”는 사랑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가끔 생각 차이로 실랑이가 생기고 큰 소리도 나지만, 옆에 있는 경찰초소 보안관이 판결 내린다.






이 꿀꿀한 봄날에 어찌 술 생각이 없겠냐마는 술을 자재 했다.
‘알중’들의 술자리를 부추긴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의식해서다.
요즘 노숙자 술 마시는 사진을 올리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멀쩡한 놈들이 일은 안 하고 술만 마신다는 질책을 여러 번 들었다.
노인들도 폐지를 줍거나 일 하는데, 뭐 좋다고 그런 놈을 찍느냐는 거다.
대꾸는 안하지만, “잘난 놈보다 못난 놈이 정겹다‘고 구시렁거린다.






일하는 사람들은 희망이라도 있지만, 이들은 희망조차 잃은 사람이다.
그들의 죄라면 부모 잘 못 만나,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죄 뿐이다.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이 스스로의 목숨을 재촉하는 것이다.






술 없이는 못 사는 불쌍한 사람들, 너무 나무라지 말라.
“새벽종이 울렸네”의 새마을 시대도 아니고, 죽자 살자 일만하는 시대도 지났다.
그런 욕심들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뒤늦게 안면은 있으나 잘 모르는 아낙이 나타나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싫어하면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은 기본인데, 왜 다른 사람까지 찍지 말라는 것인가?
가끔 심통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일체 대꾸하지 않는다.






이대영씨가 사진작가라고 해도 소용없고, 정용성씨가 기자라 해도 소용없었다.
뒤에서 나를 지켜보다 카메라만 꺼내면 고함을 질러댔다.
결국은 황춘화씨의 “우리 편이야!”라는 혀 꼬부라진 한 마디가 그 여인의 입을 막았다.






우리 편이란 한 마디가 그렇게 친근할 수 없었다.
“그래, 우린 모두 한 편이야!
세상은 편 가르기에 눈이 뒤집혔지만, 모두 우리 편으로 만들어버리자“






노래 가사처럼 ‘아픈 가슴 빈자리에 하얀 목련이 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월에 받은 빵사진 



토요일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던 ‘한강교회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의 자선이 8년 만에 끝났다.



지난 10월, 빵나눔에서 선물을 주기 위해 퀴즈문제를 내고 있다



지난 달 부터 사정이 어려운지 빵의 량이 줄더니, 급기야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러나 참 고마운 사람들이었고, 훌륭한 일을 했다.
배고픈 사람들을 살렸으니, 정부에서 표창장이라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17년 11월 비오는 날, 빵을 타기 위해 길게 줄지어 있다.



말이 그렇지 8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토요일마다 한 결 같이 베푼다는 것이 말처럼 싶지 않다.
그 빵은 어려운 사람이나 노숙자들의 생계를 잇는 생명줄이었다.



지난 11월 찍은 사진, 빵을 타서 허급지급 먹는 노인,



빵의 량도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 일주일은 버틸 수 있는 량인데다, 빵을 탈 때 마다 카드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열두 번을 찍으면 컵라면 한 박스를 선물로 주는데, 그 라면을 받기위해 더 열심히 빵 타러 나왔다.



지난 9월에 찍은 빵나눔 사진


왜냐하면, 다들 몸이 불편하여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움직여 먹어라는 배려였고 유인책이기도 했다.
빵을 나누어 주는 봉사원들도 모두 친절했지만, 타 먹는 사람들도 새치기 하는 사람 한 번 본 적 없을 정도로 질서정연하다.


단지 아쉬운 것은 줄 세우기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지난 2월에 찍은 방봉지



난, 그들보다야 낫지만 밥 해먹을 공간이 없는데다,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아 열심히 타 먹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빵을 뺏어먹는 것 같아 늘 꼬리 줄에 붙어 빵을 놓칠 때가 많았다.



지난2월에 찍은 사진, 봉사원들이 주민들에게 도장 받을 카드를 만들어주고 있다.



없는 사람들이 잔정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한 번은 빵이 없어 돌아서는데, 누가 뒤에서 빵 봉지를 손에 쥐어 주었다.
돌아보니 강완우씨였는데, 자기 받은 빵을 건네고는 씩 웃으며 총총히 사라졌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순정의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지난 2월 찍은 사진, 빵을 받기 위해 길게 줄서 있다.



나야 인사동 친구나 사진하는 후배들 만나 면 고기도 얻어먹지만, 그들은 빵과 반찬 없는 밥이 유일한 영양 공급원이다.



지난 2월 찍은 사진, 빵을 받기 위해 길게 줄서 있다.



줄서 기다리며 서로 나누는 농담 따먹기도 가지가지다.
“딸딸이를 치니 먹은 게 없어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등 별의 별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다 나온다.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는 고상한 학문이 아니라 생존 자체다.



 3월26일, 힘없어 땅에 퍼져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주민,



문제는 한 3년 정도 얻어먹다 보니, 이젠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엔 맛있는 고급 빵도 있어 가방에 넣어 다니며 나누어 먹기도 했다.
2년 전 촛불시위로 광화문광장을 들락거릴 땐 그보다 좋은 도시락이 없었다.



3월26일, 휘어진 허리로 힘들게 걷는 할머니



한 번은 정의당 깃발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나온 아들 햇님과 나누어 먹었는데,
얼마나 요긴하게 먹었는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배고픈 자식을 먹이고 싶은 부모마음이야 똑 같을 것이다.



3월23일 골목앞 풍경



이젠 빵을 사 먹는 수밖에 없으나, 돈 없는 노숙자들이 걱정스럽다.
돈은 없고 배가 고프면 장 발장 같은 사람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월23일, 고물을 옮기기 위해 손 수레를 끌고간다.



노숙자 지원센터인 ‘다시서기’에서라도 심각하게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팔고 남은 빵을 제과점에서 싸게 수거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3월23일,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계단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빵 나눔이 없어진 지난 토요일의 동자동 새꿈공원은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있는 ‘동자희망나눔센터’ 앞 계단에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3월23일,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계단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민들의 환경 개선을 위해 도와주는 것은 고마우나, 멀쩡한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릴 필요가 무언가?



3월23일,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계단에 그린 그림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봄단장은 좋으나, 쪽팔리게 하나은행 로고를 커다랗게 새겨 놓았다.
꼭 그렇게 생색을 내야 하는가?



3월23일, 그림에 하나은행  로고가  그려져 있다.



봄은 왔건만, 동자동의 봄은 요원한 것 같았다.
정치인들은 입만 벌리면 서민복지를 노래 부르지만, 빈민들의 삶은 피폐하기 짝이 없다.



3월26일, 목련 나무아래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주민들



공원의 목련조차 차마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력이 없어 길에 퍼져 앉았거나, 잠든 사람이 여기 저기 늘려 있었다.



3월23일, 힘없이 쓰러져 졸고있는 노숙인



생사의 기로에서 허덕이는 사람이 도처에 늘렸는데,

서울역 대합실 티브이에서 나오는 뉴스라고는 하나같이 간 뒤집어지는 소리뿐이었다.



3월23일, 벤취에 누워 단잠에 빠진 노숙인



정치하는 계집이 나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반문특위니 성 접대니 씹 지랄 같은 소리나 지껄였다.
권력 가진 놈들의 추악한 짓거리에 치가 떨린다.



3월26일 저녁, 서울역 지하도 입구에 자리를 잡은 노숙인들



“씨바~ 제발 사람 좀 살자”


사진, 글 / 조문호


















해피빈

2월 이슈데이 / 이미령



추석 노래자랑 ⓒ조문호


2017년 어버이날, 동자동 새빛 공원에 처음으로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줄에 매단, ‘빨랫줄 사진전’이었습니다. 이웃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자기 얼굴이 있으면 가져갈 수도 있었습니다. 어버이날과 추석을 택해 세 차례 전시를 했으나, 꺼리는 이들이 있어 더 이상 사진전은 열지 않기로 했답니다,

동자동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조문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2017 추석 빨랫줄 사진전, ⓒ조문호


고층 빌딩 사이 숨겨진 작은 동네


3년 전 어느 날, 후배가 보여준 쪽방촌 동영상이 선생님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쪽방행을 선언했습니다. 고심하여 선택한 곳은 동자동. 교통이 편리하고, 친구들이 많은 인사동과 가깝기 때문입니다. 바로 건너편 서울역은 유동 인구가 많지만, 동자동은 한낮에도 조용합니다. 고층 빌딩 사이에 위치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쪽방촌은 한 층에만 다닥다닥 붙은 방이 여덟 개. 방음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몸을 누이면 남는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화장실과 세면대는 공동으로 사용해야 해, 요리를 포기하는 집도 있습니다. 그나마 월세는 보증금 없이 약 23만원으로 저렴합니다.



어버이날  ⓒ조문호



가난하지만 정 많은 이웃들이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주민 대부분이 나이가 많고, 혼자 살기에 맥없이 누워 있을 거라 막연히 상상합니다. 하지만 마음 맞는 이웃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동자동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집은 훨씬 따뜻하고 깔끔했지만, 친구가 없어 심심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길지 않을 텐데 마음 편히, 즐겁게 살고 싶다고 합니다. 서울역 노숙인들도 동자동 이웃입니다. 가진 것이 없기에, 오히려 더 호쾌히 배풀기도 합니다. 주머니 속에 단돈 만 원밖에 없어도,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빌려줍니다.



어버이날  ⓒ조문호



돈에 오염되지 않은 가난한 자들이 남았습니다.



선물나눔  ⓒ조문호



가난을 줄 서서 확인 받고 싶지 않습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동자동에는 긴 줄이 늘어섭니다. 수량이 한정적인 ‘후원 물품 배급’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줄을 세우기 때문에 오히려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이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 많고 병든 사람들은 줄을 설 기력이 없습니다. 조문호 선생님은 순번을 정해 골고루 물품을 배분하거나 늙고 아픈 사람들에게 직접 물건을 가져다 주는 게 어떠냐고 여러 번 건의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줄을 세우는 것이 활동을 홍보하기에 좋고, 물품을 나눠주기에도 편리하니까요.



추석 음식나눔  ⓒ조문호



기부하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물건은 정해져 있습니다. 겨울에는 전기장판, 여름에는 선풍기. 전기장판과 선풍기는 소모품이 아니기에, 한 개만 있으면 몇 년을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매년 새로 기부가 들어옵니다. 쪽방에는 창고도 없어 난감합니다. 매번 받는 쌀과 김치, 라면도 좋지만 가끔은 새로운 맛도 궁금합니다. 쪽방에는 부엌이 없어 조리를 못하는 가구도 있습니다. 후원품을 줄 세워 나눠주기 보다 남영동 ‘푸드마켓’처럼 각자 필요한 물건을 조금씩 고르게 하면, 필요한 만큼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 물건이 제 쓰임을 다하는 셈입니다.



2018 어버이날 빨랫줄 사진전 ⓒ조문호



작품 사진과 일반 사진의 경계는 따로 없습니다. 보는 사람이 판단할 몫입니다.


이런저런 불편한 점을 앞장서서 건의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찍혔다’는 조문호 선생님. 그래도 이미 3년 가까이 이곳에 살았더니 ‘좀 별난 이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더 이상 사진전은 하지 않지만, 사진 찍히는 즐거움을 안 이웃들의 요청으로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한 사람, 한 사람 공들여 촬영합니다. 영정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이웃도, 그냥 자기 얼굴을 모으는 걸 좋아하는 이웃도 있습니다.



선물나눔  ⓒ조문호



“진실한 사진이 가장 좋은 사진입니다.”


앞으로 계속 동자동에 거주하실 거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가능한 한 계속 있고 싶다고 답하셨습니다. 이미 재건축 조합이 들어서, 몇 년 후에는 모두가 쫓겨날 것 같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이곳에 살며 동자동의 마지막을 기록할 예정입니다. 동자동에도 우리처럼 다양한 개성과 취향을 가진 개인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함께 응원하는 희망찬 새봄
여러분의 기부금 만큼 네이버 해피빈에서 함께 기부합니다.




인터뷰하는 이미령씨 ⓒ조문호


지난 달 ‘해피빈’ 이미령씨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린 동자동 글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뭔지도 모르고 만나기로 했는데,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노출되는 것이 싫어 쪽방촌에 관한 언론 인터뷰를 거절해 왔으나,

공익단체의 기부를 위한 인터뷰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사진찍는 이미령씨 ⓒ조문호


어렵사리 동자동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예쁜 아가씨가 예쁜 선물까지 사왔네요.

경찰 조서 받듯 충실하게 답했더니, 인터뷰기사를 보내 왔습니다.



이미령씨가 준 선물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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