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도로 번져나가는 ‘코로나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전 세계로 번져가는 뉴스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머지않아 전염병은 물리치겠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국민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돈 바이러스 말이다.
아이엠에프에 비교되지 않는 심각한 상황이다.




구조조정 한다며 정리해고 바람도 또 다시 휘몰아 칠 것이다.
이미 중소영세 자영업자들의 몰락과 파산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재난의 맨 앞자리는 아무 것도 없는 빈민들이다.




쪽방 촌의 가난한 사람들과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들이 제일먼저 당한다.
벌써 끼니를 굶은 환자 아닌 환자가 속출한다.




가진 게 있는 사람은 전염병을 피해 사회적 거리두기라도 할 수 있으나
없는 사람은 폐지라도 주워야 먹고사니, 방에 갇혀 있을 수만 없다.
당장 끼니를 해결해야 하니, 전염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연명시켜 주던 구원의 손길조차 모두 끊겨버렸다.
아픈 몸을 보살펴주던 무료진료가 중단되고, 
쉬기 위해 드나 들던 만남의 장소와 식표품을 주던 푸드마켓도 문을 닫았다.
빈민들을 위한 크고 작은 나눔의 손길조차 뚝 끊겼다.




면역력 약한 홀몸노인은 먹기 싫어도 먹어야 버틸 텐데, 급식소와 도시락 나눔마저 중단 되어버렸다.
방에서 전염병을 피하고 싶으나 배가고파 못 견딘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있는 사람에 한정된 말이다.
아무 것도 없는 빈민들에게는 허황한 구호일 뿐이다.




“재난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도, “재난은 모든 걸 평등하게 쓸어간다“는 말도 모두 헛말이다.
길바닥에 노출된 빈민들을 집중 공격한다.




밀집된 공간과 비위생적인 환경은 병마가 활개 치기 딱 좋은 조건이다.
다들 고령인데다 몸마저 병들어 살아있는 시체다.
별도로 관리해야 할 상황임에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개발로 쪽방마저 쫓겨나게 생겼다. 옆 동네 양동은 벌써부터 내쫓기 시작했다.
이미 폐쇄된 건물이 5개동이고 4월중 퇴거하라는 건물도 3개동에 이른다.
다른 쪽방 촌이나 여인숙을 찾아 볼 생각이지만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서울역 바닥에 자리 깔 생각도 한다. 


 

봄은 언제 왔는지 공원에는 목련이 허벌나게 피었다. 춘궁기가 다시 생겼는지 부랑자는 배가 고파 쓰러져 있다.
그래도 사람이 그리워 공원을 기웃거린다. 마스크도 없지만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이판 사판이다.
장기 판에 세상시름 잊기도 하고, 살려고 폐지도 줍는다.




우두커니 앉아 있던 부랑자 덕영이가 날 더러 통사정 한다.
“형! 배고파 죽겠어. 빵 좀 사줘~"



이씨도 하소연한다.

"우린 어떡해? 한 명 걸리면 다 죽는다고..
아픈 사람이 다닥다닥 모여 사는데, 하나만 걸리면 끝장이야
병에 걸기기도 전에 굶어 죽게 생겼어“

사진, 글 / 조문호










부랑자의 꿈은 부귀영화 누리며 잘 사는게 아니다.

지친 몸 하나 누울 수 있는 쪽방 한 칸과

일할 수 있는 곳과 아프지 않는 것 뿐이다.



그러한 희망은 허망한 꿈에 불과하다,

아무도 부랑자에게 관심두지 않는다.

관심은 커녕, 죄인처럼 손가락질 한다.



그들이 기댈 곳은 가보지도 못한 저승 뿐이다.

이승의 생이 끝나면 짐승으로 환생할 꿈을 꾼다.

사람보다 애완동물이 더 사랑받는 세상이 아니던가? 




이제 모든 희망 버리고 떠날 준비되었다.

서울역 후미진 곳에서 천국가는 열차를 기다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쪽방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좁은 공간에서 티브이를 끼고 산다

세상을 내다보는 유일한 통로지만, 마약에 가까운 중독성이 있다.

요즘은 티브이가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 겁주는 방송 뿐이라

쪽방 사람들은 방에서 꼼짝도 않는다. 말 잘 듣는 착한 백성들이다.



난, 티브이 중독성에 등 돌린 지 오래되었지만, 페북은 더 심했다.

가진 자들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티브이보다 더 상세히 보게되니 

사람 좋아하는 인간이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 생길 정도다.

오죽하면 사람 만나기가 싫어 핸드폰을 꺼 놓거나, 방에 갇혀 있을 때가 더 많겠는가?



지난 10일 녹번동에서 어울려 마신 후유증에 몸이 말이 아니다.

그 다음 날 소주 석 잔에 맛이 가 진땀까지 흘리며 빌빌거렸으나, 술과 원수지기는 싫다.

아껴 오래 먹어야겠다.

그 날처럼 온종일 어울려 코가 비틀어지게 마실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겠는가?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으니, 죽어도 고다.



요즘은 아무 생각 없이 천정만 쳐다보는 시간이 제일 편하다.

예전엔 하루 종일 쪽방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도 동화되어 가는 것 같다. 아니 동화가 아나라 편했다.

방에서 담배를 피우던 딸딸이를 치던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잖은가? 

그러니 독신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2일은 비가 부슬부슬 내려 또 술 생각이 났다.

술병이 나서 골골거리는 형편인데도, 정말 대책 없는 인간이다.

그렇지만 혼 술은 절대 안 마신다. 라면을 끓여 속이나 풀었다.

 


밖에는 날씨가 포근해, 마치 봄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동네를 돌아다녔으나, 술 마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술은 핑게일 뿐, 사람들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동자동은 마치 민방위 훈련하듯 조용했다.

할매의 고함소리도 술꾼들의 술주정도 들을 수 없었다.



전 날도 누군가를 기다리던 이남기씨만 만났을 뿐이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 혼자 누워있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고독을 즐기는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동자동에서 아는 사람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지난 9일은 동자동에 사람이 없어 서울역으로 갔다.

토요일도 아닌데, 무슨 집회를 하는지 소란스러웠다.



문정권을 저주하는 문구로 뒤덮인 봉고차에서 흘러 나오는 확성기소린데,

엄청난 소음으로 주민들을 괴롭히는 이런 짓은 제재할 수 없는 것인가?



마스크를 쓰고 술은 어떻게 마실 것인지, 막걸리 가진 천씨가 약 올렸다.

‘한 잔 줄까? 말까?’ 술잔도 없잖아~



그런데, 서울역에도 노숙자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다들 ‘다시서기’에서 티브이나 보는 줄 알았는데,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다’는 텐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나누어 주며, 예수 믿으라는 설교가 한 창인데,

예수님 찾으면 전염병이 얼씬도 안하는 갑다.

다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설교를 들었다.

한 장뿐인 마스크는 걸레나 마찬가지라, 안 쓰는 게 낫다.



양지바른 곳에서 죽치는 몇몇 거사들이 있을 뿐, 서울역도 한산했다.



이제 곧 전염병이 물러나며 따뜻한 봄날이 찾아 올 것이다.

다들 방에서 나와 슬슬 몸이나 풀자.

동자동의 봄을 찾자.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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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점염병에 주눅 들어 갇혀 살지만 감옥살이는 이제 싫다.
기다리는 사람도 반기는 이도 없지만 쪽방에서 벗어나는 것이 맘 편하다.
불편한 몸이지만 서울역 주변을 돌아다니다 구경거리 있으면 구경하고
힘에 부치면 어디서나 눈 감으면 된다.




이젠 면역이 되었는지 피부가 무뎌졌는지 춥지도 않다.
모든 게 마음 하나 놓으면 편안해진다.
차라리 잠들어 저승 간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세상만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가 아니더냐?




통행에 방해 된다 나무라지도 말고, 불쌍하다고 휠체어를 밀지도 마라.
어차피 혼자 떠돌 수밖에 없는 나그네 길 아무도 간섭마라.
꿈에라도 할미를 만나고 싶고, 날 버린 자식 손이라도 잡고 싶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이남기씨는 올해로 예순 아홉인데, 나보다 네 살 적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술을 좋아해도 점잖게 마신다는 것과 동자동에 들어온지가 20년이 넘은 고참 이란 것 정도다.




지난 2일 ‘새꿈어린이공원’에 나가보니, 공원은 한적했다. 날씨가 추워 다들 방콕하는 것 같았다.

잘 안 가는 다방에 들어갔는데, 그 곳은  ‘동자희망나눔센터’에 있는 찻집이다.

본래 목욕탕 자리를 서울시에서 매입해 쪽방주민 편의시실로 사용한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사무실과 회의실, 샤워시설을 비롯해 차도 파는데, 쪽방 주민이면 천원에 마실 수 있다.

주민들이 커피 뽑는 다방 마담 역활을 하지만, 싱겁 떨다간 바로 미투다.
난, 자판기 스타일이지만, 여기서도 옛날 다방커피 맛은 볼 수 없다.

괜히 신년이라 천원짜리 폼 한 번 잡아본 것이다.




“아지매~ 달달한 다방 커피 한 잔 말아주이소” 했더니, 대뜸 ‘라떼’면 되겠어요?라고 물어왔다.

라뗀지 로똔지도 모르면서 그냥 달라 했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그대 오기만 기다리니, 마침 이남기씨가 들어왔다.
이 친구는 커피 마시러 온 게 아니라 화장실 사용하러 왔는데, 차 한 잔 하라며 불러 앉힌 것이다.




콧물이 대롱대롱 매달려, 감기에 좋은 따뜻한 레몬차나 마셨으면 좋으련만,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시켰다.
기자근성이 슬슬 발동해, 이남기씨의 살아 온 인생사를 캐묻기 시작했다.



이남기씨는 전라도 나주에서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양친 밑에 태어나,
어렵사리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때부터 인생의 쓴 맛을 보기 시작했는데, 84년도에 무작정 상경했단다.




이발소에 들어가 머리나 감겨주다, 어쩌다 이발 기술을 배워 밥이나 얻어먹고 살았는데, 
그 곳에서 나와 공사판 노가다로 전전하다 목수 일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하루 일당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그에게 갑자기 불운이 닥친 것이다.
어느 날 공사판에서 일하다 떨어져 팔목이 부러졌다고 한다.

더 억울한 것은 사고로 보상받은 돈이 고작140만원이란다.
더 이상 일할 처지가 못되어, ‘희망여인숙’에 거주하다 동자동에 들어 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일찍부터 수급자로 간신히 입에 풀칠하고 살았는데, 초창기의 수급비란 쥐꼬리만 했다.

힘들게 사는 쪽방 살이의 유일한 낙은 술 뿐이었는데, 쪽방살이에 길들고, 술에 길들어 산지가 어언 20여년이 넘어버렸다.
빈민들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총각딱지를 못 떼었다는 것이다.
사내로 태어나 여인네 품속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하냐? 아니, 그건 인간으로 태어나 죄악에 가깝다.




조용조용 신세타령하던 이씨가 갑자기 정치이야기에서 돌변하기 시작했다.
고함을 지르며 얼마나 욕을 해대는지, 찻집에서 쫓겨 나와야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찔렀는데, 테러도 마다할 듯 분노했다.
인간적인 노무현 대통령까지 욕하는 걸 보니,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이 작용한 듯 싶었다.
보수정권에서야 기대하지도 않았겠지만,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나아질까 나름으로 혼신을 다한 것 같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을 거쳐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까지 맞았으나, 빈민들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은 인간”이라며 정치에 대한 불신이 증오에 가깝도록 깊어진 것 같다.




쫓겨나와 공원으로 가니, 원종훈씨가 술판을 벌여놓았더라. 막걸리 한 잔에 분노를 다독이는 이남기씨가 안쓰러웠다.
분통 터트리게 된 구체적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으나, 다시 노발대발 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하기야! 이남기씨 삶에 비하면, 나는 잘 살았던 것이다.
좋은 부모 밑에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공부도 했고, 하고 싶은 것 하며 꼴리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정치나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아 씨팔 조팔하는데, 그야 오죽하겠나?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께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정부 예산에서 눈곱만큼만 떼어내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 다 보살필 수 있다.
정치도 돈도 모두 사람 생존에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새해부터 바람막이조차 없어 비닐 덮어쓰고 벌벌 떠는 홈리스가 거리에 늘렸다.
제발, 서민들 민생에 신경 좀 써주었으면 고맙겠다.

사진, 글 / 조문호















한 해가 저물어가는 동자동 풍경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한적한 공원에서 김영수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어니언스의 ‘편지’였다.



얼마 전 아들을 떠나보낸 황춘화씨는 좋아하는 술도 마다한 채 공원을 서성거린다.
“아~ 재미없는 노래말고 신나는 노래 좀 해봐요”

노래 자체가 슬프기도 하지만, 황씨 취향에 영 맞지 않는 모양이다.



악보를 뒤적이던 김씨가 이번엔 ‘처녀 뱃사공’을 부른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그 노래는 좀 알겠는데, ‘목포의 눈물’ 같은 건 할 줄 몰라요?”
부르는 노래나 신청한 노래나 비슷한 노래인데, 김씨는 수준타령한다.




하닐없이 공원을 돌아다니던 원용희씨가 비시시 웃는다.
한 해를 떠나보내는 송가 치고는 쓸쓸한 풍경이다.




“이건 예고편이고, 내일 경자양 오마 재미있게 한 번 놀아보자고..“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6일은 하릴없이 동자동을 돌아다녔다




앰블랜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더니, 누군가 구급차에 실려 간다,
동자동에선 구급차에 실려 가는 게 흔한 일이라 다들 죽음조차 초연하다.
저승 대기소 같은 쪽방에서 죽을 날만 기다린다. 



 
어린이 없는 '새꿈어린이공원'은 날씨가 쌀쌀해 그런지 한산했다.
김용철, 김정호씨가 공원을 어슬렁거렸고, 한 노인은 어설프게 기타를 쳤다.
햇살을 받은 막바지 단풍이 공원을 붉게 물들였건만, 아름답고 정겨워야 할 공원이 왜 처연하게 느껴질까?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은 술이 약이다.
공원 앞 쓰레기터에 자리 잡은 지경학씨 노숙 텐트는 술꾼들 아지트다.
눈치 보이는 공원보다 다들 이곳으로 몰려든다. 




그 날은 윤 용, 황우현씨 등 여러 명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지경학씨는 술자리에서 물러나 의자에 앉았는데, 오랜 노숙생활에 찌들어 연신 콜록거렸다.




전기장판이라도 사용하게 어디 전기 좀 끌어올 수 없냐고 물었더니, 꿈도 못 꾼단다.

안 그래도 구청에서 빨리 철거하라는 독촉이 빗발쳐 다른 데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황교안이는 청와대 앞에서도 전기를 끌어와 전기난로까지 켰는데,
너는 왜 안 되냐?“며 염장 지르는 소리를 해댔다.
권력 있는 놈과 거지가 같을 수 있겠나? 평등이란 말은 사전에나 존재한다.




좀 있으니, 목발 짚은 이준기씨가 절뚝이며 나타났다.
나도 올 때 술을 사왔으나, 이준기씨도 사와 술이 넘쳤다.
이곳은 술 담배 인심 하나는 끝내주는 곳이다. 아무나 사고 아무나 마신다.
비둘기조차 같이 먹는다.



좀 있으니, 벌침 놓아주는 젊은이가 나타났다.
몇 년 전부터 동자동을 들락거리는 양반인데, 몸 아픈 사람에게 벌침을 놓아준다.
어디서 잡아오는지 벌을 프라스틱 통에 담아 다니며 공짜로 놓아 주지만, 난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이 날도 벌침을 한 번 맞아 보라고 권했다.
매번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정력도 좋아지냐고 물었더니 손가락 등에 맞으란다.
핀센트로 벌을 끄집어 내 한 방 놓았는데, 따끔하긴 했으나 간단이 끝났다.
이 나이에 정력이 좋아 진들 어디에 쓰랴?




술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는 군대이야기 아니면 잘 나갈 때 이야기뿐이다,
다들 시간만 보내고 사는지라 “세월이 약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 날은 황씨가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절호의 찬스가 생겼으나 놓쳤다는 것이다.
나쁜 짓이라 거절했는데, 제안만 받아들였다면 팔자가 달라졌을 것이라 했다.
생각할수록 후회스럽다며, 일생에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기회를 놓쳐 평생 고생한다고 했다




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돈과 권력은 언젠가 사라져도 가오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사진, 글 / 조문호















임대주택 탐방할 주민을 모집하는 벽보가 오래 전부터 동자동에 나 붙었다.
동자동을 재개발하기 위한 작업이 추진 중인데다 

‘대책 없는 쪽방주민 집단이주 중단하라“는민들의 입장이 상충하는 상황이라 임대주택 탐방을 신청했다.

동자동 주민으로 임대주택을 신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난, 동자동 빈민들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절대 이주할 뜻이 없음을 먼저 밝혀둔다.

주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힘을 보태기도 하겠지만, 동자동 사람들의 삶을 마지막까지 기록하기 위해서다.

이주하더라도 임대주택에 갈 것이 아니라 정선 만지산 집을 수리해 돌아가야 한다.



주택 탐방일로 정해진 15일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였다.

집합장소로 정해진 '서울역쪽방상담소' 체력 단련실이 있는 곳에서는 아침부터 김치 배급이 있었다.

한 쪽 벽에 ‘'제2차 임대주택및 지역탐방"이라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서울시'와 '서울주택공사'를 등에 업은 '용산주거복지센터'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다.

예상했던대로 동자동 쪽방주민들은 몇 명 나오지 않았다.

총 열 아홉명으로 대부분 남영동에서 온 사람이고 아는 사람은 이배식씨 뿐이었다.



'용산주거복지센터' 담당자가 나와 임대주택 탐탕에 대한 취지와 일정을 소개했고, '서울역 쪽방상담소'에서도 보충 설명했다.

옆에는 참가자에게 줄 선물장자 20개가 ‘임대주택 및 지역탐방자 선물’이라는 딱지를 붙여 보란듯이 쌓여 있었다.

다들 45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탐방에 나섰는데, 하필이면 임대주택 탐방지역이 동자동으로 옮겨오기 전에 내가살던 곳이었다

수시로 장 보러 다니던 불광동 '대조시장' 옆에 버스를 세워 놓고 시장에서 백여미터 떨어진 연립주택에 들어갔다.

임대주택 탐방 온 주민들이 살 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몇 년전 동자동에서 살던 분이 옮겨 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전에 연락된 듯한 세 가구를 방문했는데, 15평에서 18평 쯤 되는 각기 조금씩 다른 구조였다.

결론적으로 어디를 가던 이 정도 집을 얻어 살 수 있다며, 이주 신청을 권장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볼 때는 한 평 남짓한 쪽방에 사는 독신이 살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대부분의 주민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임대료야 수급비에서 보장되지만, 그 공간을 채울 가구나 생활용품도 없다.

썰렁한 집인데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집만 넓으면 무엇 하겠는가?

여지것 타 지역으로 이주한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도 다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동자동처럼 자주 나누어주던 구호물품도 받을 수 없으니 더 싫은 것이다.

동자동 재개발을 위해 주민들을 이주시키려면 이 같은 땜질식 이주정책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지금 거주하는 동자동은 서울역과 가까운 교통이 편리한 지역인데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이웃이 있다.

먼저 지하철역과 가까운 지역에 빈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계획된 아파트 건설이 선행되어야 한다.

'서울주택공사'에서 7평에서 10평 정도로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필요한 만큼 지어야 한다.

외곽 지역이거나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 않다면, 불편한 만큼의 보상은 재개발조합에서 부담해야 한다.


 

다들 임대주택 탐방을 끝내고 서오능으로 옮겨 ‘남원추어탕’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빈민들이 오랫만에 맛있는 추어탕으로 영양 보충하는 시간이었다.



식사 후 서오능 구경하는 것이 마지막 행사 일정인데, 비가 내려 불가능할 것 같았다.

입구에서 단체사진이나 찍자며 데려 갔는데, 현장에 도착하니 비가 오지 않았다.

가을을 떠나 보내는 서오릉이지만 인적조차 없었다. 빗물에 젖은 단풍은 애잔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왕능은 세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서오릉에 들어가니 초입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과 속세와 성역을 구분하는 금천교가 있었다.

홍살문부터는 제향을 올리는 공간인데, 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각과 왕의 신주를 모시는 정자각이 있었다.

맨 윗부분은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능침 공간으로 무인석과 문인석, 석호 등의 호위를 받는 봉분이 자리했다.

왕릉에 따라 구조물과 석물 등이 조금 식 다른데,

그 규모를 보면 왕과 함께 그 시대의 권력이 사라지고 있는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숱한 정치적 파란을 일으킨 장희빈 릉도 돌아보았다.



긴 세월 녹번동에 살며 서오릉 앞을 수없이 지나쳤건만, 한 번도 들려보지 못한 자책이 들었다.

다른 분들은 유적에 대한 관심보다 저물어가는 단풍에 취해 서오릉 길을 산책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퀴즈로 선물을 나누어주는 시간도 가졌는데,

관광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뽕짝 음악이 소음되어 괴롭히기도 했다.



처음 떠난 장소로 돌아와 준비된 선물을 받을 차례인데, 쪽방상담소 실장이 올 때가지 기다리라고 했다.

준비한 선물상자를 그냥 나누어주면 될 것을 왜 기다리게 하는지 궁금했는데,

준비된 선물에다 다른 선물박스를 하나 더 보태주는 것이다.

상자에는 된장, 고추장, 김, 통조림, 라면 등 여러가지 식료품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무거워도 가져갈 수는 있으나, 왜 많은 선물을 집중적으로 안기는지 모르겠더라.

주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야 할 선물을 몇몇 사람에게 모아주는 이러한 형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입 맛대로 나누어주는 불평등한 분배가 쪽방촌 완장부대를 만들어내며, 주민을 길들이는 경우로 비약되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남거나 적은 량의 물품이 들어오면,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는 노숙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비효율적인 주거복지 프로젝트도 재고했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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