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은 동자동 쪽방사람들이 김치 타는 날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겨울을 나려면 김치가 유일한 반찬이라 없어서는 안 될 부식이다.

2주일 전부터 날자를 바꾸어가며 두 차례나 붙은 벽보에는 8일 오후3시부터 450명 선착순이라 적혀 있었다.

동자동 쪽방에 사는 빈민 수가 천명이 넘는데, 반 밖에 못 받는다고 생각하니, 올 겨울 김치 맛보기는 틀렸다 싶었다.



혹시나 하여 나누어 주는 시간보다 늦게 나갔는데,

추측한데로 김치 받으려고 줄 선 사람이 공원을 돌아 400명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그 때까지 나누어 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나마 날씨가 춥지 않아 기다릴 수 있었는데, 번호표가 없으니 몇 명째인지 알 수 없었다.

450명이 넘으면 기다릴 필요가 없지 않는가?



나 뿐 아니라 주변에 줄 선 사람들도 걱정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서울역쪽방상담소'의 전익형 실장이 오늘 타지 못해도, 다음 주에도 나누어준다며 안심시켰다.

지금 줄 선 사람이 몇 명이나 되냐고 물었더니, 사람이 많아 파악할 수 없다며 돌아갔다.

생각이 바뀌었는지, 좀 있으니 줄 선 인원수를 세기 시작하더니, “줄 선 사람은 다 탈 수 있다”고 했다.



내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정확하게 두 시간이 걸렸는데,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 회원증을 내놓았더니, 김정길씨가 바코드로 바뀌었다며 사무실 가서 등록해 와야 된다고 했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일주일 전부터 알렸는데 왜 협조하지 않느냐고 신경질을 부리며 다음에 타라고 욱박질렀다.

벽보를 보지 못해 등록하지 못했는데, 일부러 안 한 것처럼 말하는 그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직원도 아닌 주민인데, 그가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내 세우는 완장 부대일까?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주민들에게 일괄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벽보로 알리는 것만 고집할까? 지정된 벽보 판도 없는데...

나야 그래도 돌아다니다 나붙은 벽보를 볼 기회라도 있지만,

방에 박혀 사는 노인네들은 모르고 지나 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주민등록증에 바코드 하나 붙여 와 어렵사리 김치는 탔다.

누구의 도움인지는 모르나 올 겨울 반찬 걱정은 덜었는데, 김치가 예년과는 달랐다.

김치를 스치로폼 박스에 담지 않아, 김치가 익어 신김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김치를 공짜로 얻어먹었으면 누가 보낸 것인지 알고는 먹어야 할 것 아닌가?

고맙게 생각하며, 우리가 도울 게 있으면 보답하는 것이 도리다.

그리고 김치나눔 봉사라면 직접 나누어주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물질적 가치보다 주는 사람 마음이 전달되어야 하니까..




혹시 그게 아니라, 지자체 예산으로 만들어진 김치라면 나눔이라기보다 배급이다.

배급이라면 전 주민에게 일정량을 골고루 나누어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주민들 어려움은 생각치 않고, 일하는 사람 편리에 따르는 그런 복지라면 이제 집어치우라.

주민들 줄 세워 길들이지 말라고 노래 부른지가 삼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쇠귀에 경 읽기'인데, 잘 못된 것이라면 고쳐야 할 것 아닌가?



부자나 거지나 다 같은 사람이다.

이 정부에서 내 세우는 기치가 무엇이더냐?

바로 “사람이 먼저 다!”


사진, 글 / 조문호















날씨가 추워지면 대개의 동자동 사람들은 방안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거리에 방치된 노숙자들만 주차장 구석에 모여 앉아 술로 시간을 죽인다.



한산한 공원 주변을 돌아보니, “쪽방주민 집단이주 중단하라”는
주민대책위에서 내건 현수막이 오늘의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동자동 재개발을 위해 주민들을 외곽으로 이주시키려는 작업이 추진되지만,
나간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는 실정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딴 지역인데다,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쪽방 촌에서는 수시로 여러 가지 생필품을 나누어주었지만, 요즘은 예전같지 않다.

줄 세워 주민들을 길들이지 말라는 비난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외곽으로 내 몰기 위한 작전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누어주는 구호물품도 대개가 유통기간이 임박한 상품이 많다.

시중에 팔기 힘든 상품으로 선심 쓰는 기업들도 비인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나 역시 라면 같은 것은 바로 끊여먹지만, 자칫하다가는 유효기간을 넘길 때가 종종 있다.




방안에서 밥해 먹을 수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호하는 라면 외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아 유효기간을 넘기게 된다.



노숙하는 친구들은 유효기간이 지나도 괜찮으니 갖다 달라지만,
내가 못 먹는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겠나?



쉽게 내 뱉는 인권이니 평등이라는 말은 먼 나라 이야기 같다.
국회에서도 쌈박질만 할 것이 아니라, 오갈 때 없는 빈민들 대책에 적극 나서라.
버림받은 가난한 사람들은 유효기간이 지난 인간인가?

사진, 글 / 조문호














추석이 되어도 보름달빛은 골고루 비쳐주지 않았다.
동자동 공원에서 잠깐동안 지켜 본 가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다.




허기져 먹을 것이 필요한 노인이 공원을 찾았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공원계단에서 넘어져 버렸다.
“쿠당”하는 소리와 함께 굴러 떨어져,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몸을 살펴보니, 머리에서 피가 흘렀고 붕대를 맨 팔목에서도 피가 흘렀다.
119 요원들이 달려들어 응급조치 후 병원으로 이송하려 했으나
한사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손사래 친다.
온 몸이 상처투성인 것으로 보아 한두 번 넘어진 것이 아닌 듯 싶다.




요양원에 계셔야 할 분이 살기위해 움직이니 수시로 넘어지는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없다고 굶어 죽을 수야 없지 않은가?




머리에 부딪힌 게 염려되어, 집에 데려달라는 애원을 마다하고 병원에 이송시켰다.

병원비가 없는 노인의 걱정같은 건 구조 절차에 묻혀버렸다.
노인이 원하는 것은 약이 아니라 빵이고, 삶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좀 있으니, 경찰차에서 술 취한 젊은이가 끌려 나왔다.
아마 술이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을 순찰하던 경찰이 공원으로 데려온 것 같았다.




대개의 노숙자나 쪽방촌 사람들이 아무 곳에나 쓰러져 자는 것은 힘이 없기 때문이다.
먹은 것이 부실하여 탈진한 상태이니 술을 조금만 마셔도 인사불성 되어 뻗어 버린다.




눈만 뜨면 고통을 잊으려 다시 술을 찾게 되고, 마시면 쓰러져 자는 일상이 반복된다.
알콜 중독자라는 낙인을 찍어 방치한 이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보름달님~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도 빛을 비쳐주소서!

사진, 글 / 조문호























그 지긋지긋한 더위가 물러가니,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왔다.

다들 귀성 준비하며 선물을 보내거나 음식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돌아갈 고향마저 잃은 동자동 사람들은 마음도 몸도 한가롭다.


 

인생 막장인 쪽방촌에 들어오기 전만 하더라도

명절만 되면 여기저기 돈 구하느라 전전긍긍하던 사람들이 아니던가?

다 포기하고 나니 잡다한 걱정은 끼어 들 틈조차 없다.


 

힘들어도 살아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걸 지켜보며 추억이라도 떠 올리지 않는가?

이젠, 세상에 대한 원망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다 타버린 촛물처럼 내려앉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속담처럼,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나은가?

모진 목숨 차마 끊지 못할 뿐, 저승을 그리는 사람이 더 많다.

술 한 잔에 모든 근심걱정 내려놓고, 실없는 웃음만 흩 날린다.


 

지난 9일은 동자동 멋쟁이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 잡고 동네 마실 나왔더라.

그래도 이 분들은 의지하고 사는 분이 있어 행복한 편인데,

요즘 할멈 건강이 신통찮아 운동 삼아 자주 나오신다.


 

골목에선 틈틈이 모아 둔 깡통을 손 수레에 옮겨 싣는 이씨의 표정이 넉넉했다.

고물 판돈으로 추석 장보러 갈 것이란다.

이 정도가 동자동의 희망적인 소식이라면 희망적이다.


 

지난 10일 오전에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로 골목이 소란스러웠다.

옆 건물에 사는 젊은이가 갑자기 호흡에 문제가 생겨 119를 불러 놓고, 병원가려고 길가에 나와 있었다.

미안해 내려와 기다렸으나, 구급요원 보기는 좀 떨떠름한 모양이다.


 

태풍 링링도 동자동에선 나뭇가지 정도만 부러트리고 도망쳤다.

삶의 의욕을 잃은 쪽방 사람들은 태풍도 두렵지 않다.

방에서 꼼짝 않거나, 술에 모든 것을 맡긴 체념한 사람들이다.

길바닥에 잠든 이들, 꿈이라도 행복 했으면 좋겠다.


 

지난11일은 오전10시부터 동자희망나눔센터'2층에다 추석명절 공동 차례상을 차렸다.

서울역쪽방상담소김갑록 소장과 주민 송범섭씨 등 몇 명이 차례를 지냈는데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들 고향을 잃어 조상까지 잊었단 말인가?

큰 절 올리고 약과 하나 얻어 내려오니, 공원에선 이른 시간부터 술판이 벌어졌더라.




그런데, 용성이네 두 모자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애미는 허벅지와 정갱이가 벌겋게 피멍이 들었고, 용성이는 온 얼굴에 상처투성이였다.

술에 젖어 사는 사람들이 5층 옥탑 방 까지 오르내리다 보니, 수시로 넘어져 몸이 성한 날이 없다.


 

얼마전만해도 아들 용성이가 술 끊었다는 말을 전하면서,

자식 자랑보다 술친구를 잃은 허전함의 그늘이 더 짙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둘다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정은 얼마나 많은지, 큰 컵에 소주를 벌컥벌컥 따라주고, 안주하라며 사과까지 나눠준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과 살기 위해 죽지 못한다는 말은 어느 것이 정답인가?

정답은 없다그냥 꼴리는 대로 살자.

 

사진, / 조문호















이제 더위가 꼬리 내려 가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밖에 나가 살랑거리기 좋지만, 쪽방은 아직 덮다.
그래서 동자동 입구나 공원에서 자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여름 철 동자동 주변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쪽방주민들이다.

사방이 뚫려 시원한 곳 놔두고 성냥갑 같은 방에 갇혀 땀 찔찔 흘릴 필요 있겠는가?


 

공원에 나갔더니 최씨가 개를 안고 나왔더라.

피치는 최씨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고 새끼다.

그 좁은 방에 털숭이 끼고 자느라 땀띠 깨나 생겼을 거다.


 

내가 동자동에 주민 신고식 한지가 오늘로 딱 삼년 되었다.

기념할 소식이라도 있나 싶어 똥개 똥 찾듯 동내를 살피고 다녔다.

사람 죽어 나간 자리 다른 사람이 채웠을 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바뀌지 않듯, 다른 사람도 바뀌지 않았다.

완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완장 좋아하고,

칼자루 쥔 서울역쪽방상담소나리들 막힌 것도 여전하더라.

술에 중독된 사람들은 사는 것도 개판이었다.


 

그동안 새 삶을 찾아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구급차에 실려 죽어가는 사람만 숱하게 보았다.

동자동은 강민시인의 시처럼 이승의 간이역이고, ‘신판 고려장이다.


 

잘 못된 것을 아무리 바꾸자고 방방 그려도 쇠귀에 경 일기다.

좆통수 불어도 동자동은 돌아가고 세상도 돌아간다는 것인지...

사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다 죽는 거지 별 것 있겠나?



아직 꿈을 못 깨 돈 돈하는 사람이 있는데, 죽고 나면 말짱 도루묵이다.

버티고 사는 날 까지는 재미있게 살자. 잘못된 것은 싸워서라도 편하게 만들자.

행복은 권력자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몇일 후 동자동 사랑방의 추석 잔치에서 신명나게 한 판 놀자.


노세 노세 늙어 놀아, 죽고 나면 못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차면 기우나니라

 

사진, / 조문호















 





지난 20일 정오 무렵, 동자동에서 짜장면 잔치가 벌어졌다.
‘한국새생명복지재단’과 ‘모리아교회’가 마련한 “사랑의 짜장면 나눔 잔치“다.
쪽방촌이라 간간히 음식 나누는 자리가 있긴하지만,
짜장면은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해, 군침 흐르는 음식이 아니던가.




빈궁한 어린 시절, 중국집에서 먹던 짜장면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짜장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지만, 오랜 세월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게 짜장면이다.
짜장면 나누어주는 ‘모리아교회’로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식하는 순서가 잘 못 되었더라.
금방 솥에서 나온 면을 짜장면에 비벼 먹으면 얼마나 맛있겠는가?
오는 사람 순서대로 받아가 먹게 하면 면도 굳지 않고 일하는 사람도 편할 텐데,

한꺼번에 모아 주니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얻어먹는 주민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좀 섭섭했는데,
맛이야 어떻던 획일화, 광고 화에 신경 쓰는 것 같아 심기가 꼬였다.




짜장면을 받아보니, 이미 면이 뭉쳐져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발에 군침 흘리며 들어 왔는데, 이렇게 불려 먹여야 속이 시원한가?
덩어리 진 면을 한 올 한 올 풀어 비볐지만, 역시 짜장면은 짜장면 이었다.




먹는 시간이 오 분도 걸리지 않아 그런지, 먹은 사람은 금세 나가 버렸다.
맛은 있어도, 한 그릇 더 달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짜장면을 그리워한 것은 맛도 맛이지만, 아득한 향수 때문일 것이다.




자리 비어가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목사께서 한마디 하신다.
“한 사람도 잘 먹었다는 사람 없고 고맙다는 사람 없네”
사실 그렇기야 하지만, 목사가 수양이 덜되었거나 동자동 사정을 잘 몰라 하는 말이다.




설사 그런 생각이 들어도 목회자가 뱉을 말은 아니다.
“고맙다는 인사 받으러 베푸는 것은 아니 잖은가?”
그리고 주민들을 줄 세워 길들여 놓은 자업자득이다.



여지 것 수시로 줄 세워 나눠주었으니, 당연히 주는 것으로 아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자선을 내 세운 활동이 스스로 일어나는 자립심을 잃게하고 안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사육하며 길들인다”고 악을 쓰며 발발거리지 않았던가.




다들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교회 봉사 활동하는 주민들이 공원이나 사람 모인 장소까지 배달했으니,
동자동 사람은 물론 노숙자까지 짜장면 맛은 다 보았을 것이다.
‘은혜짜장선교단’이란 단체에서 짜장면을 배식하며 선교 할동을 하는 모양인데,
배식 시간만 지체되지 않았다면 짜장면 맛은 어디 내 놓아도 손색없었다.



짜장면하면 오래 전 중국집 주인이 손님에게 퍼부었다는 욕이 먼저 떠오른다.
70년대 중반 쯤, 부산에 살던 친구 신윤택씨로 부터 들은 이야기다.
얼마나 실감나고 재미있게 중국집 주인 말을 옮기는지,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배꼽을 잡았다.




그 무렵에는 중국집 골방에서 술 먹으며 연애걸 때가 많았단다.
다들 여관에 갈 처지가 못 되니 중국집에서 음식 시켜먹다 말고

감정을 주체 못해 일칠 때가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문만 걸어놓고 정염을 불태웠으니, 낡은 창호 틈으로 어찌 소리가 들리지 않겠는가?




그걸 들으며 중국집 주인이 투덜거리며 욕을 하더라는 것이다.



“나뿌노므 새끼들~
짜자이에 가시들어 아야 아야 해,
보리차 달라 조지씻고,
시보루달라 보지닦아
나뿌노므 새끼들~“




나쁜 놈이 아니라, 죽어도 좋은 거지 뭐~


사진, 글 / 조문호



마지막 만찬이냐?

잘 처 먹었으면 치워야 할 것 아니냐?

나뿌노므 새끼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주민들 이주대책에 대한 상담을 하고 있네요.


쪽방촌이 몰려있는 동자동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떠날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 한 잔 술로 시름 달랜다.



저승사자처럼 달려오는 구급차에 긴 한숨 쓸어내린다.




그들은 꿈도 희망도 버린지 오래다.
희망이란 한낱 말 장난으로 여긴다.



저주받은 삶은 죽음이 축복일 뿐이다.




죽는 것이 편하지만, 그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죽지 못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죽지 못하는 것은 뭐가 다른가?




틈틈이 ‘용산소방서’에서 나와 보살펴준다.
죽는 사람 데려가는 일만 아니라 뜨거운 공원을 시원하게 적셔 준다.
맥 놓은 빈민들 혈압도 재 준다.




그러나 찜통 같은 쪽방은 방치한다.
움직이면 살고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죽으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더러운 꼴도 안 보겠지만,
이를 부득부득 갈며 살아야 한다.




나쁜 놈들이 잘사는 빈부의 악순환은 끝내야하기 때문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잘려고 자리에 누웠지만, 너무 더워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하루만도 공동화장실에서 물 뒤집어쓰기를 세 차례나 했다.
자정이 훨씬 지났건만,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밖에 나가보니, 술 취한 사람이 길 가운데 큰 대자로 뻗어있었다.
차 다니는 길이라 일으켜 세웠으나, 너무 취해 힘에 부쳤다.
지나갈 차가 기다렸지만, 도와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핸들을 꺾어 피해가면 될 텐데, 기어이 버텼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 도움을 받아 인도로 옮겼으나,
좀 있으니 경찰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아마 승용차 운전자가 112에 신고한 모양이었다.
사정을 이야기해 돌려보냈지만, 참 야박한 세상이더라.




날씨가 더워 길가에 잠든 사람만 있고, 공원에는 사람이 없었다.
술자리가 어지럽게 널린 걸 보니, 조금 전 까지 여럿이 술을 마신 듯 했다.
어떻게, 자리가 파하면 치우고 가야지 몸만 빠져 나간단 말인가.
옆에 재활용품과 쓰레기 모우는 포대기도 있는데도...
몇 몇 몰지각한 인간들 때문에 동자동 빈민 전체가 욕먹는 것이다.



사실, 공원에서 술 마실 수 없으나, 불쌍해서 눈감아 주는 것 아닌가?
아무리 사회가 폐인을 만들었지만, 최소한의 질서는 지켜야 한다.
주변에서 젊은 놈들이 일은 안하고 술만 마신다며 손가락질해도,
사는 게 너무 안 서러워 감싸 안았던 것도 사실이다.
엉뚱한 사람 욕먹이지 않도록, 해 끼치면 강력하게 대처해야 겠다.




방에 돌아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는데,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옆에 사는 정선덕씨가 콩국수 한 그릇을 말아 왔는데, 벌써 점심 때란다.
입맛이 없어 끼니를 거른 터라 고맙기 그지없었다.
가끔 구두까지 닦아주어 부담스러울 때가 많은데, 보답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정선에서 일하느라 삼일 간이나 떠나 있어, 궁금한 게 많았다.




나가보니, 누군가 보따리를 오트바이에 실어 이사하는 것 같았다.
날씨가 더우니 공원도 한가했다.
‘용산소방서’에서 무더위 안전캠프를 차려 놓았으나, 파리만 날렸다.
하기야! 이처럼 더울 때는 꼼짝 않는 것이 상책이다.
숨까지 안 쉴 수있다면 더 좋겠지만...




생필품 나눠준다는 벽보가 붙어 있어 지하 쉼터로 찾아갔다.
더워 그런지 먹거리가 없어 그런지 줄 선 사람이 없었다.
마침, 옷으로 보이는 구호물품이 들어와 물건을 내리고 있었다.




배급품을 받아보니, 살충제와 모기향, 토시, 펜티, 쫄티 등 다섯 가지나 있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이 여럿 있어 요긴하게 쓸 것 같았다.
그런데, 고마운 상품들을 어디서 보냈는지, 알고나 받아야 할 것 아닌가?
주민들에 대한 배려이기 이전에 보낸 사람들의 성의를 생각해서다.




주민들도 지킬 것은 지키고, 협조할 건 해야 하지만,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도 주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는 사람들, 좀 어여삐 봐다오”

사진, 글 / 조문호











'조문호사진판 > 동자동 쪽방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도 살아야 한다.  (0) 2019.08.18
말복에 복 터졌다.   (0) 2019.08.13
또 한 사람 가는구나!  (0) 2019.07.29
그래도 바람은 분다.  (0) 2019.07.24
노숙자의 마지막 보따리  (0) 2019.07.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