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마련한 동자동 추석맞이 한가위 잔치가
지난 12일 오전8시부터 오후3시까지 동자동 새꿈 공원에서 열렸다.
올 해로 열 번 째 맞는 ‘동자동 추석맞이 한가위 잔치’는
주민협동회인 ‘동자동 사랑방’에서 주민 후원금으로 치루는 순박한 동네잔치다.



주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음식 만들어 함께 나누는 잔치라,
돈으로 치루는 다른 축제와는 비교 할 수 없는 값진 축제다.




이 축제가 마음에 드는 것은 축제마다 나타나는 기관장이나 정치인이 없다는 점이다.
잔치에서 만난 김병택씨는 “어떻게 주민들이 협동하는 이 큰 행사에
‘서울역 쪽방상담소’ 직원들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냐?”는 것이다. 
서울시에 민원 넣겠다며 사진자료를 달랬으나,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십년 동안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즉 힘을 키워 왔잖은가?
힘만 키우면 못할 게 없다. 잘 못된 것들은 다 바꿀 수 있다.
사실, 복덕방 같은 느낌이 드는 '쪽방상담소'란 요상한 이름의 조직은 필요 없는 조직이다.
동사무소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별도의 관리업체를 두어 주민들 길들이는 것이다.




잔치 날 비 온다는 일기예보에 걱정도 했으나, 다른 곳만 내리고 동자동은 피해 갔다.

날씨도 시원했고, 주민들의 참석률도 작년보다 훨씬 높았다.
천 이 백여 명의 주민 중에 삼분의 일 정도가 나왔으니, 성공적인 잔치마당이었다.
거지 취급 받는 관에서 치루는 행사와는 다른 잔치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 주는 잔치였다.




일 년 동안 동자동을 떠난 분들을 추모하는 차례 상도 차렸더라.
한 달에 평균 두 명 꼴로 동자동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모아둔 영정사진에는 옆방에 살던 연영철씨도 있었다.
방문 틀에 붙여 두었던 신파극에나 나올만한 유한마담 같던
그 포스터 사진의 주인공은 저승에서 만났는지 모르겠다.




추석 차례에 이어 윷놀이와 투호놀이 등의 놀이에다

반주를 곁들인 닭 개장까지 먹으며 반가운 사람들을 한자리에 만났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 노래자랑에서 신명까지 풀어냈으니, 쪽방사람들 살 판 난거지.
모처럼 무대에서 폼 잡으며 동네사람 엉덩이 흔들게 했으니, 스타가 따로 있겠나?
그 신명을 쪽방 깊숙히 가두고 사느라 다들 고생했다.




이 잔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루 종일 방에 처박혀 사는 음지 사람들이 대부분 나왔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이웃들을 만나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이제 살면 얼마나 살 것이며, 만난들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겠나?




도영씨가 진행요원 옷을 입혀 술 한 잔 마시지 못했지만, 넘쳐나는 신명에 엉덩이가 절로 들썩였다.

흘러간 유행가 자락에 맞춰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이날 노래자랑에서 최경호씨가 선망의 일등을 먹었고,
장애인 부부인 김성호씨 노래와 김진희씨의 수화가 이등,
최춘자, 황옥선, 임한영, 이대영씨가 삼등에서 육등까지 골고루 상을 받았다.




모두 한가락들 했으나, 내 년에는 나도 한 번 도전할 욕심이 생기더라.
틀니 갈고 닦아 한 번 나가 볼 생각인데,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쪽이야 한 두 번 팔린 것도 아니고...




봄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돈이 있으면 있을수록 인간성과 정은 메말라가고,
돈이 없는 사람은 정을 나누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걸,
동자동 추석 한마당 잔치를 보며, 다시 한 번 느낀다.

아무 것도 아닌 돈이, 인간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추석을 이틀 앞 둔, 지난 22일 동자동 새꿈 공원에서 동자동 주민 잔치가 열렸다.
다 같이 명절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올 해로 아홉 번째인 이 행사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마련했다.
주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주민들의 손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가난한 사람들 끼리 함께 나누고, 즐기는 좋은 자리다.






투호, 윶놀이 등의 민속놀이와 함께 노래자랑까지 즐기고,
닭개장, 송편, 파전, 돼지고기에다 반주까지 곁들인 잔치상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걸 보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배가 불렀다.






사실 가난한 쪽방주민들이 음식을 장만하여, 더 어려운 노숙자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내가 동자동에서 이 행사를 맞은 지가 벌써 세 번째지만, 해마다 연이 맞지 않았다.
첫 번째는 입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몰랐고,
두 번째는 행사 날 전해주기로 한 사진 제작이 늦어 못 보고 말았다.
그 이튿날 별도의 빨래줄 전시로 약속은 지켰지만...





올 어버이날 행사 때도, 빨래줄 전시로 사진을 나누어 주었지만,
사랑방 조합 이사 한 분의 시비로 더 이상 빨래줄 전시를 하지 않기로 했다.
찍을 때마다 수시로 사진을 만들어 주기로 했으나, 그게 말 처럼 싶지 않았다.






빨래줄 전시를 하면 억지라도 밀어붙여, 한꺼번에 사진을 만들지만,
거지 주제에 수시로 사진을 만든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빚쟁이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사진은 언제 주냐고 물었고,
잔치에서는 사진전시는 왜 안 하냐고 물었지만, 답을 할 수 없었다.
다음에~ 다음에~만 노래 불렀다.






그런데, 이번에도 자칫하면 추석 잔치를 놓칠 뻔했다.
의례 추석 전 날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틀 전으로 바뀐 걸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 날이 토요일이라 빵 타러 공원에 내려갔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받은 빵은 먹을 틈도 없이, 반가운 사람만나 인사 나누며, 사진 찍느라 바빴다.
봉사하는 주민들은 음식 나르느라 눈코 뜰 새 없었지만, 다들 맛있게 먹었다. 






난, 배가 고프지만 끼어들지 않았다. 먹을 시간도 없지만, 먹는 게 귀찮았다.
이 쯤 되면 밥 숟가락 놓고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






행사가 끝나면 방에 올라가 빵으로 해결할 작정이었는데,
나를 눈여겨 본 사랑방 선동수간사께서 나를 위해 한 상 차려 온 것이다.
곧 노래자랑 할 시간이라 먹을 시간이 빠듯했지만, 너무 고마웠다.






따뜻한 배려에 감동 받아, 한 쪽 구석에 자리 잡았는데,
시간이 없어 허급지급 먹다보니, 그만 입술을 깨물어버렸다.





아이쿠! 이건 분명 천벌 받은 것이다.
밥을 우습게 여겼고, 일도 돕지 못하면서 새로운 밥상을 차리게 한 죄였다.






이어,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손님들은 다 떠나고, 동자동 새꿈공원을 주름잡는 단골주민과 동자동 사랑방 식구들만 남았다.
천 원씩으로 노래 신청한 사람은 스물 다섯명인데, 다들 한 가락 하는 분이었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은 춤을 추었는데, 참 잘 놀았다.
돈이 없어 그렇지, 신명 하나는 끝내 주었다.






노래자랑이 끝나고 심사결과가 나왔는데, 예상을 뒤엎었다.
다른 사람처럼 멋 부린 노래가 아니라,
다소곳하게 부른 황옥순 할머니가 최고상을 받은 것이다.






그 분은 '새꿈 공원'의 지킴이나 마찬가지다.
공원의 트레이드마크 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신다.
온갖 술꾼들의 거친 행동을 통제하고, 주변 쓰레기까지 정리 한지가 오래되었다,
그래서 준 인기상이 아니라, 노래를 잘 불러 받았는데, 다들 좋아하며 축하했다.





황옥순 할머니 외에도, 여러 가지 대회에서 상 받은 분들이 많다.

이대영, 이정애, 강동근, 조인형, 김성현, 조창현씨 외에도 성함이 기억나지 않는 여러명이 더있다.





사람 사는 것이란, 아무 욕심 없이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노는 게 답이더라.
그 답을 보여준, 동자동 사람들, 화이팅! 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요즘의 쪽방 사람들은 참고 견디는 인내의 한계가 어디인지 실험하는 것 같다.

다들 찜질방처럼 발가벗고 살지만, 아무도 탓하는 이는 없다.

후덥지근하게 돌아가는 갇힌 바람은 선풍기가 아니라 온풍기다.

뜨거운 바람이 거슬려 잠간이라도 선풍기를 끄면 땀이 팥죽처럼 흘러내린다.

건물이 햇볕에 잘 달구어져, 찜질방이 쪽방을 형님이라 부를 지경이다








그렇지만 다들 폭염을 견뎌내는 그들만의 노아우가 있다.

한계에 부딪히면 화장실에 가서 물 한 두 바가지 뒤집어쓰면 되고,

그도 안 되면 술 한 잔 마신 후, 공원이나 바람 통하는 그늘에 뻗어버리면 된다.

그렇지만, 쪽방 사는 사람들도 가오가 있어, 아무데나 눕지는 않는다.

더워 곤죽이 되어도 견딘다. 그래서 여름철은 노숙하는 친구들이 상팔자다.






옆 건물의 이기영씨는 무더운 여름 나는데, 이골 난 사람이다.

덥다고 생각하면 더 힘드니, 아예 신경을 끈다는 것이다.

가끔 찬물 적신 타올로 몸을 식히지만, 이열치열이라며 운동까지 한다.

나더러도 근육 운동을 하라지만, 개가 들어도 웃을 소리다.

이기영씨는 몸에 살이라도 남았지만, 난 뼈다귀뿐이라 개 달라 들 까 두렵다.





다들 지하철로 가면 시원하게 지낼 수 있건만, 끝가지 방에서 버티는 곰들이 존경스럽다.

옷을 몸에 걸치는 순간 땀에 젖기도 하지만,

비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더운데 힘만 빠져, 가만있는 게 상책이란다.







지난 토요일은 대전에 작업실이 있는 조성기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배님! 서울역에 왔는데, 동자동 있으면 같이 식사나 하시죠?”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지라, 움직이기 싫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식당가에 내려가니 다른 분과 같이 왔는데, 안면이 많아 보였다.

예전에는 포항에서 사진을 했다지만, 지금은 군부대에 근무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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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씨는 미술은행에 사진을 한 점 팔게 되었다며, 액자 맡기러 서울 왔다고 했다.

요즘 같이 어려운 경기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 조금이나마 숨통이 터일 듯 했다.

고등어구이에다 시원한 냉커피까지 얻어 마시며, 더위를 피하는 시간이 되었다.






손님들이 떠난 후 지하도로 내려갔더니, 처음 보는 사내가 지하도를 안방처럼 누워 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그런지, 맛이 살짝 간 것 같았다.

노숙을 해도 최소한의 예는 갖추어야 하는데, 저러다 역무원에게 쫓겨난다.

저런 게 민폐라는 것이다. 다른 노숙자까지 힘들게 하니까...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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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동자동은 한산해서 좋지만, 밥 사먹기가 지랄 같다.
직장인이 없어 쪽방 사람들이 이용하는 광주식당까지 닫아 버린다.
하루 쯤 굶어도 죽지는 않으니, 발길을 공원으로 돌려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입구에는 여러 사람이 술로 다독이고 있었다.
트랜지스터에서는 ‘돌아가는 동자동’이 아니라 ‘돌아가는 삼각지’가 흘러나왔다.
김상구씨가 잔뜩 어깨에 힘을 실어 장단을 맞추고 있었는데,
직장인 없는 일요일의 동자동은 쪽방 사람들 세상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자리를 지키는 정재헌씨를 비롯하여
구멍가게 주인 강재원씨, 전설로 통하는 전찬우씨,
의리의 사나이 이준기씨, 이법사로 불러달라는 이원식씨,
그리고 김상구, 이태수, 박동구씨 등 여러 명이 있었다.






술과 담배가 바닥나 물주를 기다리는 중이었던지,
소주 세병과 담배 한 갑을 사갔더니, 입이 쩍 벌어졌다.
늘 술자리를 지키며 빈병을 치워주는 황옥선 할매에게도
우유 한 팩 드렸더니, 기분 좋아 노래까지 하신다.
작년 추석 노래자랑에선 상까지 탔는데, 올해도 나간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구멍가게 주인인 강재원씨가 할 말이 있다며 날 좀 보잖다.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냐고 귀를 쫑긋 세웠더니, 나도 생각나지 않는 지난겨울 이야기를 꺼냈다.
내일 줄테니, 소주 한 병만 외상으로 달라 한 것을 거절한 게 아직까지 마음에 걸린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구멍가게에서 외상 주는 곳이 어딨냐고 그랬더니, 그 때는 사람을 잘 못 봤으나, 앞으론 잘 하겠단다.
그리고는 면전에서 내 칭찬을 해대는데, 얼굴이 간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가게에서 십만원치 팔아야 만원도 남지 않는다며, 돈도 잘 빌려주지 않는 땡보 양반의 또 다른 순진한 모습에 놀랐다. 



 


이번엔 이홍렬씨에 이어, 화장을 지운 김은자씨가 나타났다.
난 이 여인을 ‘친절한 금자’씨로 바꾸어 부른다.

김은자씨는 왕년에 룸살롱 마담으로 전전하며, 사내께나 휘어잡은 여인이다.
세월에 밀려 쪽방 촌까지 들어 온, 그 한 많은 사연을 한 번 들어 볼 작정이다.






그 날은 화장을 하지 않아, 나도 사진 찍을 생각을 않았는데,
영문을 모르는 이준기씨는 같이 한 판 찍자며 졸라댔다.
“안 된다는데 왜 그래~”라는 날선 반응에 이해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도 대머리라 모자 안 쓰면 찍기 싫은 거나 마찬가지다”고 했더니, 그때야 알아차렸다.






담장 모퉁이에 올려놓은 조그만 라디오에서는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한다'는 대목에서는 은자씨가 슬퍼하고,
현인의 ’체리핑크 맘보‘에서는 다들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이 것이 사람 사는 재미다.
하잘 것 없는 사연에 울고, 흥겨운 멜로디에 웃는 사람들...
배우고 가진 자들이 서민들의 순수한 이 맛을 알리 있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쪽방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
보증금이 없어 한 달만 못내도 쫓겨난다.
많지도 않은 짐, 버리고 버려도 남았네.

지하철 서울역11번 출구,
가랑이 쩍 벌린 사진 밑에 자리 잡아,
가져 온 짐을 성처럼 쌓고 잔다.

내일이면 하나하나 버리겠지만,
정들었던 마지막 밤을 같이 보낸다.
오늘 밤, 무소유의 진리를 꿈꾸리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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