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씨가 서늘해지니,

봄이 찾아온 것 보다, 더 반갑다.
올 여름 쪽방 더위는 지긋지긋했다.
이보다 지독한 여름은 없었다.

날씨 덕에 노숙인의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깔판을 등짝에 붙인 노숙인의 패션도 재밋다.
쿠숀이 있어 노숙하기 안성마춤인데,
몇 겹으로 접을 수 있어 옮기기도 편하다.

옛날 거지는 얻어먹을 밥통이 필요 했지만,
요즘 거지는 자리 깔 박스용 판지가 필요하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노숙인은 빈 몸으로 떠돌아,
자리 깔려면 그 흔한 박스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복지, 복지, 입이 아프도록 나팔 불어대지만,
노숙인을 위한 복지 한 번 생각해 본적 있는가?
그들을 위한 물품 보관소 부터 만들어주라.
폐품을 사용하는 노숙자라 사람도 폐품이던가?

제발, 인간 폐품도 재활용 방법 좀 연구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여름철 동자동의 쪽방은 잠긴 방이 더 많다.
거리에서 노숙을 하는지, 물가로 갔는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사는 광주식당 건물 4층은 절반 넘게 자물쇠가 잠겨있다.
하기야 잠자리가 자유로운 자들이 푹푹 찌는 쪽방에서 버틸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 층에 남은 네 사람은 왜 떠나지 못했을까?
관리인 정선덕씨야 건물 관리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
맞은편의 김응수, 최성길씨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을까?
찾아 올 사람은 없으나, 나가기조차 귀찮은 모양이다.
왜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지 눈물이 난다.

그리 말하는 난 왜 나가지 않느냐고 되묻고 싶다.
사실, 컴퓨터가 없으면 사진정리는 물론,
세상과의 소통이 되지 않아 쪽방을 뜨지 못한다.
핑게 없는 무덤이 없으나, 컴 중독 증세에 가깝다.


8월5일이 울 엄마 제삿날이라 7월말에 정선가기로 했으나
일이 생겨 또 이틀간 연기 했다.

오늘은 찍은 사진 정리도 미룬 채, 보따리를 쌌다.
사진이고 컴퓨터고, 모든 걸 접어버렸다.
벌써 마음은 정선 만지산에 가 있다.


사진, 글 / 조문호





















노숙하는 이상구씨는 서울역 지하철 11번 출구에서 올 겨울을 보낸 사람이다.

밤늦게 돌아오다 보면, 늘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자고 있었다.
따끈한 빵이나 고구마를 사와 이불 속에 밀어 넣어도 미동도 안했다.
만사가 귀찮은 듯 보였다. 낮에는 어디서 지내는지, 늘 밤늦게 잠자리를 폈다.
지난 16일엔 모처럼 일찍부터 자리 깔고 앉아 있었다.

기회다 싶어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아제는 소원이 뭔기요?” 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뭉칫돈이나 여자, 대궐 같은 욕망의 찌꺼기들을 들먹일 줄 알았는데, 뒤통수 쳤다.
“소주 한 병과 김밥 한 줄” 아주 현실적인 소원이라 기꺼이 삼천 원을 내 놓았다.






술친구로 지내던 김씨가 내려오니, 술 사오라며 시켰다.
그는 꼼짝도 않고 입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학창시절에는 야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다는, 왕년의 자랑도 했다.

대개 그들을 인생패배자처럼 생각하지만,
더러는 아무런 욕심 없이 자유를 구가하는 사람도 있다.
추운 날씨에 노숙인 보호소에 가지 않는 것도 사람이 만든 규칙이 싫어서다.






술을 홀짝이다, 그가 나에게 되물었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야?'기에
“성은 조가고 하는 일은 사진기사다, 앞으로 조기사라 불러”했더니.
사진기자거나 사진작가지 기사가 무어냐며 나무랐다.
“기는 적을 記자고 사는 베낄 寫라 했더니, 그때야 ”말 되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서기’에서 일하는 이애신씨가 나타나 이상구씨에게 이 것 저것 물었다.
묻는 이야기라고는 언제부터 나왔냐는 등 뻔한 얘기들이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할 수 없냐?'는 물음에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자기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이다.
귀찮게 굴어 약 올리려고 거짓말했는지 모르나,
기초생활수급자면 길거리에서 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노숙 인에는 대개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아직 욕망의 찌꺼기가 남은 초짜는 늘 이글어진 표정이지만,
모든 욕망을 내 던진 고수들은 그냥 허허실실이다.
모든 걸 버렸다면, 그게 부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들 생불 만나거들랑, ‘소주 한 병과 김밥 한 줄’의 시주를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4일 동자동 골목의 가게 앞에서 김용태씨가 술 판을 벌이고 있었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막걸리 한 잔 권하며, 안주로 깎아 놓은 참외조각을 나누기도 했다.
지나가는 나에게도 한 잔하라며 눈짓을 했다.


그는 오늘 갖고 나온 팔 만원을 노숙자들에게 다 풀었다고 한다.
여러 노숙인 에게 나누어주었으니, 대개 술값으로 잘 썼을 것이다.
김용태씨는 노숙자들에게 구세주다.
돈 팔 만원으로 어디에서 그런 기쁨을 나눌 수가 있을까?

그런데 그의 행색 역시 노숙인과 다를 바 없는데, 돈은 어디서 나는지 물어보았다.
오래전 은행에서 퇴직하며 받은 퇴직금으로 쓰고 있는데, 그마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자신도 쪽방 달세를 내지 못해 노숙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손이 부어있는 것으로 보아 건강에도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

여의도에서 열렸던 기초연금 기자회견장 다녀오느라, 힘들어 그냥 헤어졌으나,
다음에 만나면 그의 삶의 철학이나, 지난 이야기를 물어 볼 작정이다.

스스로 선택한 동자동의 삶이 때론 힘들기도 하지만, 이런 분을 만나면 힘이 솟는다.
모두가 극락을 향한, 저승의 문턱을 두드리는 사람들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빈민들이 몰려있는 동자동에는 주말마다 사랑의 빵을 나누어 주는 작은 단체가 있다.
한강교회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의 온정인데, 중요한 것은 한시적인 나눔이 아니라 꾸준하다는 것이다.

몇 년 째 눈이오나 비가 오나 같은 시간에 나타나 200여명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다.

빵의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아껴 먹으면 일주일은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특히 취사도구 없이 돌아다니는 노숙인에게는 최고의 먹거리다.
밥은 얻으면 당장 먹어치워야 하지만, 빵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고, 반찬이 필요 없으니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빵 나눔에는 지역주민들 보다 외지에서 온 노숙인이 더 많다,

빵 나누어 주는 날이면, 다들 한 시간 전에 나와 줄지어 기다리는 것이다.

나 역시 동자동에 들어온 후로 한 번도 밥을 해 먹지 않았으니 빵이 최고였다.

좁은 방에 취사도구를 갖출 수도 없지만,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설거지하기 싫어 일체 밥을 해 먹지 않는다.

가끔은 ‘식도락’에서 끼니를 때우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회용 음식이나 빵으로 해결한다.

줄 세우는 것은 딱 질색이지만, 제일 필요한 것이 빵이니 줄서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선교를 위해 한시적인 사랑의 빵 나눔 행사이겠거니 했는데, 그 지속성에 놀란 것이다.

굳은 날씨에도 한 번도 빠트리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신의였다.
고맙다!

하루빨리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더 배고픈 노숙인에게 빵을 돌려주겠다.


사진, 글 / 조문호




















부활절을 하루 앞둔 지난 토요일 정오 무렵,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에서 '부활절 연합감사예배 및 짜장면 나눔 행사'가 열렸다.

‘전국노인, 노숙인 사랑연합회’에서 주최한 이 날 부활절 감사예배는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라 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동내 주민들 보다 대개 처음 보는 외지 분들이 많았는데,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많았다,

‘제사보다 젯밥’이라 듯이 다들 예배 후에 주는 짜장면을 기다리는 듯 했다.

짜장면을 싫어하는 사람이야 없지만, 노숙인들에게는 별미 중 별미일 것이다.

봄바람에 실리는 연주가 분위기를 띄어주었지만, 차례대로 이어지는 설교에 참석자들의 표정에 지루감이 묻어났다.

예배가 끝나고 짜장면 급식이 시작되자 질서정연하게 짜장면을 받아먹었다.

두 줄도 채 받지 않았는데, 처음 받은 사람은 다 먹어버렸다.

너무 맛있어 단숨에 먹었는지, 량이 적었는지는 모르지만 다들 잘 먹었다.

부활절 계란을 선물로 나누어주기도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건너편 길가에 자리 잡은 노숙인 김지은씨 자리에서 김정귀씨를 만났다.
따스한 봄볕 쬐며, 길가에 비스듬히 누워 술을 마시고 있었다.
구걸한 돈으로 소주 한 병 사와 세상 부러운 것 없는 듯 했다.

그는 경주 감포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서울로 올라왔단다.
인쇄소나 제판소 등에서 일하며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왔지만,
월급모아 장사를 시작한 아내 때문에 가산이 거들 났다.
빚더미에 시달리다, 결국 아내와 헤어져 노숙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처음엔 억장이 무너졌으나, 하루 이틀 지나다보니 편해지더라고 했다.
돈에 시달렸던 모든 걱정을 내려놓았으니, 홀가분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무소유가 이렇게 편할 수 없다며,
배고프면 밥 얻어먹고, 술 고프면 구걸하면 된다고 했다.
도둑질하여 소유하는 것 보다 낮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렇다! 몇 일전 “소유한다는 자체가 도적질이다.”고 한
시대의 협객 방배추선생의 말씀이 생각났다.
물론,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소유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에 의해 많이 가지려하니 도적질이 되는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지은씨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이재용이가 교도소 갔구나,
큰 도둑만 잡아가지 말고 작은 도둑도 모조리 잡아가라”며 낄낄거렸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술잔도 없이 병 채로 나발불고 있었다.
나더러 마시라고 술병을 건네주었으나, 잠시 망설여졌다.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 또한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옛날엔 사람중심으로 살았는데, 언제부터 얄팍한 지식가지고 계산하며 살았을까?






김정귀씨는 김해 김가 김수로왕 72대 장차자라며 자신의 출신을 종이에 적었다.
한자로 쓰 내려가는 필체에서 나름의 자부심이 엿보였다.
아무리 구걸하며 살아도 조상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은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권력 잡으려 발버둥치는 정치꾼들이여!
노숙인 김정귀의 말을 귀담아 들어라.
제발 조상과 후손들에게 욕 먹이는 짓을 하지마라.


사진, 글 / 조문호










JTBC ‘뉴스룸’은 보수단체가 벌이는 집회에 유형별로 가격표가 있다는 증언을 보도했다.

친박단체인 어버이연합의 집회 참가자 모집책이 증언한 바에 의하면 어버이연합 회원에게는 2만원,

추운 날씨에는 6만원, 여성이 유모차를 끌고 나오면 15만원을 주었다고 한다.
유모차는 가족이 함께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많이 준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국회연설에 박수부대 동원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허현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특검에 소환통보를 받는 등 돈으로 사람을 끌어 모우는 일은 이 부패정권의 주특기다.

서울역 집회에서도 돈 받은 사람을 여럿 확인한 바도 있는데,

이제 관제데모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고, 어제 오늘만의 일도 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고무신 공세를 비롯해 돈으로 표를 매수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 시작된 오래된 관행이었다.

돈 좋아하고 공짜 좋아하는 국민근성을 탓할 수는 없으나, 아직까지 그와 비슷한 짓거리가 반복한다는데, 기가 막힐뿐이다.

설 명절이 다가와 귀성객들이 몰리기 시작한 서울역 주변에는 갈 곳 없이 배회하는 노숙인들의 한 숨이 더 높다.

술에 시름을 달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넋을 놓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빈민들의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으나, 그 마저 남의 일인 냥 관심두지 않았다,





더욱 한심한 것은 빈민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설 민심돌리기에 혈안이 된 보수단체들의 행태다.

‘뉴스타운’, 프리덤뉴스‘ 노컷일베’등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신문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귀성객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죄인 박근혜를 옹호하는 개가 들어도 웃을 내용뿐인데, 그 많은 제작비나 인건비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 돈으로 고향 못가는 노숙인 들을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기야 정신병자 집단인 그들이 빈민들의 삶이 안중에나 있겠나.





복지공약을 내세우며 대통령자리를 탈취한 박근혜는 재벌에게 돈 끌어 모아 나쁜 짓은 다 했지만, 없는 자에게는 더 가혹했다.

가난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가난한 사람의 아픔을 모른다.

하루속히 죄인을 탄핵 구속시키고, 부와 가난이 세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평등한 세상으로 바꾸자.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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