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생일을 유달리 싫어한다.

나만을 위한 특별한 날이 부담스러워서다.

어릴 적부터 생일은 어머니를 위한 날이라고 여겨왔다.

오죽하면 미역국을 싫어했을까?

 

젊을 때는 음력 생일을 가족들이 챙겨주었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음력 생일은 잊어버렸다.

한 동안 생일은 잊고 지나칠 때가 더 많았는데,

정영신씨를 만나며 피곤할 정도로 생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음력생일이 양력생일로 바뀌었고,

그 미끌미끌한 미역국 먹는 일이 유일한 생일치레였다.

그냥 지나치기를 바랬으나, 페이스 북을 시작하며 더 큰 곤욕을 치룬다.

 

생일이 되면 페북에서 나팔 불어대니, 잊고 지나치기는커녕

잘 모르는 페친까지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날려댄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생일을 맞는다는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다.

 

지난 9월3일에는 폭우로 정선 만지산에 고립되어 있었다.

이튿 날 아침에 생일밥을 먹기로 약속 했는데,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정오 무렵에야 물길이 열려 떠날 수 있었다.

 

아침 약속이 저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는데,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평소 네 시간이면 충분한 국도가, 이날은 양평에서 밀리기 시작하여

장장 일곱 시간이 걸려서야 녹번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영신씨는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조촐한 생일 밥상을 준비해 두었는데, 손녀 하랑이도 온다고 했다.

 

좀 있은니 아들 햇님이 내외와 귀염둥이 하랑이가 등장했다.

하랑이가 생일케익까지 들고 왔는데, 그 날은 생일 같았다.

 

하랑이를 웃기려 빠진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더니,

괴기한 모습에 놀란 하랑이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진짜 웃기는 건, 나를 보지 않겠다고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하랑이 마음을 달래려고, 좋아하는 얼음과자를 주어도 반기지 않고

생일케익에 불을 꺼라 해도 시무룩했다.

얼마나 할애비가 얄미웠으면 눈을 반쯤 감고 안 보려 할까?

 

“하랑아~할아비 생일을 축하해 주어 고마워”라고 말했더니

그때사 손 키스를 날려준다.

 

하랑이가 요즘은 어린이집에 다녀 그런지

말도 제법하고 귀여운 짓을 곧 잘한다.

먼 길을 탈출하여 어렵사리 생일상을 받은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생일을 맞고 싶지 않다.

이젠, 나에게 생일은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2일 저녁 무렵, 우리 공주님이 출두했다는 소식이 떴다.

아들 햇님이 내외와 손녀 하랑이가 녹번동 ‘은평평화공원’에 왔다는 거다.

평화공원은 지척이라 냉동실의 얼음과자 몇 개 챙겨들고 달려갔다.

 

공원에는 아들과 며느리가 와 있었는데, 하랑이는 신이나 어쩔 줄 몰랐다.

잔디밭을 종횡무진 뛰어 다니며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방에 갇혀 지내다 모처럼 넓은 공원에 나왔으니, 신날만도 했다.

 

방바닥을 기어 다니던 때가 엊그제 인데, 벌써 다 커 버렸다.

쉴 틈 없이 바삐 움직여, 어른 같았으면 몸살 날 것 같았다.

그토록 잔디밭에서 뛰어다녔으나,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하랑이가 유모차를 가르키며 중얼거리는 걸 보니,

자기 차라고 자랑 하는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르거나 뭔가 중얼대는 걸 보니, 곧 말도 할 것 같았다.

 

유모차로 녹번동까지 왔으니, 장거리 운행이었다.

떠나려고 유모차에 태우니, 이미 알아채고 손부터 흔들어댔다.

하랑이는 신나게 놀았으나, 어른들은 재롱이며 기쁨이었다.

 

하랑 공주님! 잘 가세요.

다음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줘요.

 

사진, 글 / 조문호

 

 



세상에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가슴 터질듯한 첫사랑의 감정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손에 잡힐듯 생생하니,

사랑의 바이러스가 어지간히도 진하고 강한 것인가 보다.
주체할 수 없었던 아득한 옛 사랑은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린다.




그 아름다운 사랑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가'가 잘 말해준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얼마나 좋았으면 이렇게 노래 불렀겠는가?
고려장해야 할 나이의 사랑타령이 좀 껄쩍지근하지만, 좋은 건 좋은 것이다.
비단 연인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혈육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지난 설날 연휴에 쪽방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저장된 사진을 옮겨 담느라 정신없는데,

정영신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빨리 와! 하랑이 왔어”
아무리 다급한 일이지만, 모든 걸 팽개치고 부리나케 달려간 것이다.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 아들 햇님 내외와 손녀 하랑이가 와 있었다.
콧구멍한 집구석에 이토록 정이 철철 넘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몇일 전 돌잔치에서 본 하랑이와는 완전 달랐다.
무표정하게 폼만 잡은 그 때와는 달리 이리저리 비집고 다니며 신났다.




어른들이야 좁은 집이 불편하겠지만, 하랑이는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달라진 환경에 흥미를 느꼈는지, 책을 꺼내기도 하고 설합장을 열어보기도 하고,
문짝에 붙어 있는 장터할머니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며 웃기도 했다.
심지어 제 모습을 찍는 카메라를 돌려보며 깔깔거렸다.
호기심 가득 찬 하랑이는 모든 게 신기하고 즐거울 뿐이었다.


 

나 역시 처다보기만 해도, 그 행복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혈육의 정을 이렇게 뜨겁게 느낀 적이 도대체 얼마만이던가?
햇님이 어릴 때 느꼈던 40 여 년 전으로 거슬렀다.




꼭 껴안고 싶어도, 행여 다찰까 손도 댈 수 없었다.
하랑이가 집에 머문 두 시간 동안은 행복감에 부풀어 잠시도 눈을 땔 수 없었다.
쉬지 않고 사방을 기어 다니며 세상의 재롱은 다 떨었다.

음식도 잘 먹고, 보채지도 않았다.



하랑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 화인더로 지켜보았는데,
어른 같았으면 몸살 날 정도로 바삐 움직이며 표정도 변화무쌍했다.

붙잡고 일어서기도 하고, 말도 한마디씩 하며 숟가락 질도 곧잘 했다.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행복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하늘보다 더 높은 사랑의 감정을 다시 한 번 체감한 것이다.

아름다운 환경에 취했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행복감과는 수준이 달랐다.
잠시도 떨어지기 싫었던 연인의 사랑과도 또 다른 차원이었다.



하랑아! 할애비를 행복하게 해 주어 고맙구나.

부디 건강하게 자라다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남지현과 조햇님의 딸 조하랑의 생일잔치가 지난 18일 불광동 ‘본페뜨’에서 열렸다.




서둘러 나서기도 했지만, 시간 가늠을 잘 못해 한 시간이나 빨리 와 버렸다.
약속 때 마다 꾸물대다 늦게 가기 일수인데, 어지간히도 기다렸던 모양이다. 
아무도 없는 식장 주변을 30분이나 서성이는 촌놈 티를 내고 말았다.




시간이 되어보니, 돌상은 식장에서 차려 놓았고, 접대도 부페식이라 도와 줄 일이 없었다.
마침 노재학씨와 이정환, 성유나씨가 들어와 식사부터 하며 시간 보낸 것이다.




하랑이 태어 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첫돌이라니 세월이 빠르기는 빠르다.



뒤늦게 나타난 하랑이는 자다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모습인데,
처다 보는 초롱초롱한 눈길이 '어디서 본 듯한 영감탱이'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몇 달 만인데, 이제 처녀 티를 슬슬내며 제법 의젓했다.




"아이구야~ 올매나 이뿌고 새칩은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다는 말이 딱 들어 맞았다."




손님들의 집중된 시선이 불편한지, 아니면 주인공이라 폼 잡는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 좋아하는 음식 한 점 먹지 못하고 사진만 찍으니, 편할 리야 있겠나.
타고 들어갈 장난감 승용차에선 핸들을 돌려 보며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자신의 지난 모습이 편집된 영상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갑자기 좋아 하길래, 뭔 장면인지 확인하려다 그 순간마저 놓치고 말았다.

말은 못해도 뭔가 생각하는 건 있을텐데, 그게 뭘까? "하랑이 지금 정신 없어. 묻지마~"




드디어 우리 공주님께서 입장할 시간이 되었다.
세단을 탄 하랑이가 손님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이동했다.
케익에 촛불도 켜고 인사도 했다.




좋아하는 물건 찾는 순서에서는 다들 "뭘 잡을까?" 긴장했다.
실, 돈, 연필, 청진기, 마이크 등 갖가지 물건들을 살펴보더니, 마이크를 덥석 잡은 것이다.



이 녀석이 요즘 인기 있는 프로 ‘보이스 퀸’이라도 본 걸까?
아니면 진짜 가수가 되고 싶은걸까?



더 기가 찬 것은 사회가 아빠 더러 소감 한마디 하라니까 햇님이가 또 눈물을 글썽거리는 거다.
'하랑이를 키워보니, 아내의 고생스러움과 키워준 부모 마음을 알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하기야! 혼자 사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사실 하랑이를 위한 잔치지만, 하랑이는 힘들 수밖에 없다.
돌잔치가 끝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하랑아! 사는 게 다 그런 것이란다.
그리고 하랑이 생일을 축하해 주신 많은 분들, 고맙습니다.




"하랑아~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거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2일은 은평구 동내배움터 “뽀데모스”에서 사진 공부하는 날이었다
아들 햇님이가 진행하는 공부방인데, 나더러 사진 강의 좀 해달란다.
평생 강의라고는 서너 번 밖에 하지 않았는데,
갈 때마다 죄지은 놈 청문회 끌려가듯 어쩔 수 없어 나갔을 뿐이다.




첫 강의 할 때는 얼마나 혼 줄 났는지, 그 다음부터 술의 힘을 빌었다.
술에 취하니 수강생 눈이 보이지 않아 입이 열리기는 하는데,
쌍시옷 자가 수시로 나와 나이 값을 못했다.




그런 강의 공포증이 있지만, 아들 부탁인데 어찌 거절하랴.
죄 많은 애비 마음을 알랑가 모르겠다.




걱정되어 정영신씨 까지 대동해 갔으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들 페북을 보고 알게 된 몇몇이 오겠다고 했으나 오지 말라고 말렸다.
가보니 며느리와 손녀 하랑이까지 나와 있었는데,
사진가 노재학씨를 비롯한 몇 사람밖에 되지 않아 아주 가축적인 분위기였다.




큰 걱정은 덜었으나, 이 빠져 삭은 소리라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사진 찍지, 예술 하지 말라는 말도 했고, 멀리 가지 말고 가까운 주변을 찍으라는 말도 했다.

아들에게는 전몽각선생의 ‘윤미네’처럼 하랑이를 지속적으로 찍으라는 주문도 했다.




그런데, 강의 자료로 열장이 넘게 쳐 갔으나 눈에 보이지를 않으니 말이 연결되지 않았다.

독수리 타법으로 치느라 얼마나 고생한 자료인데...
한 시간으로 강의를 끝내고, 남은 한 시간은 정영신씨 장터 사람으로 떠 넘겨 버렸다.

하랑이 보려는 속셈도 작용했다.




하랑이는 엄마 품에서 풀려나고 싶어 몸부림 치고 있었다.
책상 의자에 세워주니 연필로 뭔가 적는 듯 끄적거렸다. 무슨 사진을 안다고...
그동안 공부할 때 마다 공부방에 나온 모양인데,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 다는 말도 있으나, 이 녀석은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정영신씨 강의가 끝나 헤어질 시간이 되니, 노재학씨가 맥주 한 잔 하잖다.
소주가 아니고 맥주란 말에 사양했더니, 가서 마시라며 술값을 건네주네.
염치없이 받아서는 활인마트에 들려 와인 한 병, 안심 한 팩을 사왔다.
징그러운 걱정거리 해결한 기념으로 정영신씨와 한 잔 했다.




술자리가 끝나 자리에 누웠으나, 하랑이 모습이 아른거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옛 말이 실감났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조햇님 담벼락에서 퍼 온 사진인데, 표정 하나 죽인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손녀 하랑이를 보게 되었다.
며느리가 넘어져 하랑이 머리를 찧었다는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간 것이다.
아들 햇님이가 추석 전부터 밥한 끼 먹자는 연락을 해왔으나,
추석 대목장 찍는 정영신씨와 일정이 맞지 않아 추석 뒤로 미뤘는데,
마치 미룬 것을 탓하는 것 같았다.



 
며느리는 다리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어 걱정을 덜었으나, 머리가 부딪힌 하랑이가 걱정되었다. 
울다 잠든 하랑이 머리에 외상은 없었으나, 마음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자다 일어난 하랑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거침없는 표정에
걱정 같은 건 눈 녹듯 녹아 내렸다. 그래, 넘어지고 깨지면서 자라는 거야. 


 

처음엔 두 늙은이를 낮선 듯 멀뚱거렸으나, 금방 익숙했다.
요상하게 생긴 영감탱이 형색보다 안경이나 카메라 같은 사물에 더 관심이 많았다.
카메라 앵글을 내 눈높이에 맞추면 처다보고, 하랑이 눈높이에 맞추니 바삐 기어왔다.




이제 아랫니가 두 개 나기 시작했는데, 이빨 빠진 나보다 복숭아를 잘 먹었다.
하랑이의 일거 수 일 투족이 얼마나 이쁜지,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핏줄은 무서운 것 이었다.




사랑은 마약 인가봐.
한 번 보면 두 번 보고 싶고, 두 번 보면 세 번 보고 싶으니...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주말, 아들 햇님이로 부터 점심식사를 함께하자는 연락이 왔다.
아침 식사를 거른 채 녹번동에 갔더니, 있어야 할 정영신씨가 없었다.
전화를 걸어 보니, 파주장으로 촬영을 떠났다는 것이다.






아뿔사!
운전할 사람 없으면 꼼짝 못한다는 안일한 생각에 미리 연락 못한 불찰이었다.
좀 있으니 손녀 하랑을 대동한 아들과 며느리가 도착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을 어쩌랴?
이 빠진 것처럼 허전 하지만, 우리끼리 식사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
서오능으로 간다는데, 그 것도 정영신씨가 좋아하는 낙지집이란다.






그런데, 낯선 외출이라 그런지, 하랑이의 표정이 편치 않아 보였다.
아무리 얼르도 웃지 않아, 갑자기 옛날 햇님이 얼르던 기억이 떠올랐다.
햇님이 앞에서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펼치며 “까꿍~”하면
까꿍 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내 모습에 까르르 웃었다.






백일 무렵에는 대상 연속성이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에
내손에 얼굴이 가려져 있다는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마치 마술쇼를 보고 “우와~”하며 반응하는 것처럼,
까꿍 소리와 함께 나타났으니 신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애기들을 억지로 웃기는 것이 육아 정서발달에 도움이 될까?
어른 들 좋아라고 아기를 억지로 웃기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
아무튼, 웃음이 만복의 근원이라니 해 될 것은 없을 듯하다.






햇님이도 어릴 때 잘 울지 않는 순둥이였는데, 하랑이도 잘 울지 않았다.
애가 자주 우는 것도 피곤하지만, 잘 울지 않는 것도 걱정이다.
많이 울어야 노래도 잘 부른다니까.






손녀 하랑이 때문에, 육아심리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하랑아! 건강하게 자라다오. 예쁜 인형 사줄게...

사진, 글 / 조문호










하랑아! 고맙다.
너를 만나는 순간 꿈은 이루어 질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사 같이 잠든 너의 모습을 보니, 온 마음에 평화가 가득했고.
빤작이는 눈동자에서 새로운 희망이 솟구쳤으며,
환하게 웃는 해맑은 표정에서는 세상 시름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구나.






이 할아비는 평생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 본 벙어리란다.
사랑이란 가슴속에 간직하고 입에 뱉어서는 안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칠십이 넘도록 고치지 못한 바보다.






너를 만나는 순간, 안아 보고 싶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싶었지만,
기어이 아무 말도 못한 채, 카메라 화인더 속에 숨어 너를 훔쳐보기만 했구나.
긴 세월 살아온 네 할미는 물론, 네 아비에게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했지만,
너를 낳느라 고생한 네 어미에게도 등 다독이는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구나.






살다보니 이심전심이 되었지만, 왜 그리 애정 표현에 인색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네 아비를 키우며 착하게만 자라 달라고 빌었던 것이 때로는 후회스럽기도 했다.
착한 사람이 못 사는 세상이지만, 너에게도 영악하게 살아달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구나.






네 아비와 어미도 좋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전사로 나섰지만,
나 역시 착한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작정이다.
그리고 하랑(嘏烺)이란 이름이 ‘크고 장대한 빛이 환하다’란 뜻을 가졌지만,
하나로 어우러지는 세상에 너의 이름이 불러졌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하랑아! 부디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다오.

-바보 할아비가 보냄-






지난 주말 사진후배 성유나씨가 손녀 하랑이 보러가자는 반가운 연락이 왔다.
하랑이가 태어 난지 오래지만, 참고 참아 백일이 될 때를 기다리지 않았던가.
목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이를 데리고 치루는 백일잔치를 탐탁찮게 생각해 왔는데,
다행히도 백일잔치는 생략한다기에 먼저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백일이 되는 날은 비좁은 집에 늙은이 까지 끼어들어 번잡스럽게 만들기도 싫지만,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다.




 


정오 무렵 들려 함께 식사하기로 했으나, 아침부터 마음이 들떴다.
손녀에게 줄 선물이 걱정 되어 잠을 설쳤는데, 정영신씨가 준비해 두었다기에 한시름 놓은 것이다.
그러나 결혼한 후로 신혼 방은 어떻게 마련하였는지 걱정 되었지만, 차마 물어보지도 못했다.

애비가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하니 무슨 면목이 있겠는가? 



 



염체불구하고 찾아갔으나, 짐을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어수선했다.
손녀 하랑이는 천사처럼 새근대며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더구나..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는 것을 보니, 아! 이래서 손주바보가 되는갑더라.
친구들이 손주재롱에 빠져 외출도 삼가며 히히덕거릴 때는 손가락질하였지만,
이제사 이해가 되었다.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하랑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들 햇님이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구나.
잠에서 깨었을 때만 한 번 울었지, 시종일관 생글거리는 모습을 보니, 참 순하고 착했다.
카메라를 치켜든 요상하게 생긴 늙은이가 이상한지 눈을 동그랗게 치켜 뜬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남은 생은 몰래 숨어 다니며 하랑이만 찍어대는 파파라치가 되고 싶어졌다.






이제 담배 값을 줄여서라도 하랑이 선물 사줄 돈을 꼬불쳐 두기로 작심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하랑이의 행복만을 빌어야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성유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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