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새벽에 서는 삼척 번개시장을 찾아갔다.

번개시장은 번개처럼 빨리 끝난다는 말인데, 흔히 말하는 도깨비시장이다.

동트기 전 새벽 다섯시에 열었다가 아침 늦게 사라진다.

 

강원도 삼척시 삼척역 건너편에 서는 삼척 번개시장은

인근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신선한 수산물을 비롯하여

일반 재래시장처럼 별의 별 것이 다 있는 장이다.

 

요즘 새벽시장에 공들이는 정영신씨 따라 나선 촬영 길인데,

예전처럼, 인근 오일장 두 세 곳을 돌아보는 강행군이 아니라

장터지역의 문화유산도 함께 살펴보는 여유로운 나들이다.

 

전 날 밤 여관방 모기와 신경전 벌이느라 잠을 설쳤는데,

이른 새벽부터 잠이 덜 깬 상태로 장을 찾아 나섰다.

정영신씨를 차에서 내려주고 다시 잠들어버렸다.

 

얼마나 잤는지 눈을 떠보니, 이미 파장인데,

어물전 아줌마의 힘찬 칼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좀 있으니 정영신씨가 아이스박스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싱싱한 가자미가 30마리에 2만원이라는데, 진짜 싸긴 싸더라.

 

시장에서 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관동팔경 중 최고로 치는 죽서루부터 들렸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었는데,

높고 낮은 자연 석을 그대로 받쳐 기둥의 길이가 다 달랐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누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또한 절경이었다.

누각 출입을 금하는 다른 문화재와는 달리

누각에 올라 주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죽서루 천장에는 허목 삼척부사가 쓴 ‘第一溪亭’을 비롯하여 이이의 시편 등

절경을 노래하는 다양한 현판이 걸려 있어,

시대적 묵객들이 쉬어간 풍류의 현장임을 증명했다.

 

주위에 늘린 용문바위와 선사 암각화 등 다채로운 자연석도 볼만 했다.

대나무밭 입구에는 ‘송강 정철 가사의 터’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팔각 장대석 이래 팔각 기반에는 송강의 대표작과 친필이 새겨져 있었다.

 

삼척에 있다면 매일 들리고 싶다는 정영신씨의 말을 뒤로하고,

신비의 대금굴을 보기위해 대이리 동굴지대로 자리를 옮겼다.

 

대금굴은 발견된 후로 7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7년 세상에 알려졌는데,

모노레일로 현장까지 이동하도록 되어 있었다.

들어가려면 예약은 필수고, 성인 입장료는 12,000원이었다.

 

대금굴은 대이리 동굴지대 중 가장 아름다운 동굴로,

지척에는 동양에서 제일 크다는 환선굴도 있었다.

5억년의 신비에 쌓인 동굴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꼈다.

 

동굴 내부에는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이 아름답게 생성되었는데,

많은 물이 흘러내려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동굴호수를 만들어놓았다.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굉음에 동굴이 쩌렁쩌렁 울렸다.

 

마지막에는 남근숭배민속의 터전인 해신당을 찾았다

나무 남근을 바쳐 풍어를 비는 전설의 사당이다.

해신당 앞에는 ‘애바위’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처녀가 애를 쓰다 죽었다고 ‘애바위’가 되었단다.

해신당 맞은편에 조성된 ‘남근조각공원’은 좆으로 시작하여 좆으로 끝났다.

별의 별 좆이 다 있는데, 의자에 튀어나온 좆에서는 요절복통했다.

웃는 것이 좋긴 하지만, 이렇게 좆 갖고 놀아도 되나 싶었다.

 

사진 찍으러 간 번개시장에서 싱싱한 해산물 싸게 사고,

죽서류에서 풍류 즐기고, 태고의 대금굴 신비에 취하고,

해신당 좆에 배꼽 잡았으니, 이 보다 더한 여행이 어디 있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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