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만 해도 명절만 다가오면 걱정이 태산 같았다.
갚아야 할 돈이나 선물 사서 인사 다닐 때가 많아서다.
그것도 가진 게 조금이라도 남아 생기는 걱정이었지만,
모든 걸 털고 나니, 명절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다.
맨날 노는 놈이 무슨 연휴야 필요 있겠냐마는, 덩달아 기분은 좋다.




추석 전 날, 동자동에서 열린 한가위축제에서 너무 힘들었나보다.
오전8시부터 사부작 거린데다, 저녁 무렵에는 장보러 가는
정영신씨 짐꾼노릇 하느라 좀 무리한 것 같았다. 빌빌거리는 게...
그래도 쪽방에서 탈출하여 제사상 준비하는 게 어딘데,
귀신 불러 모아 술 한 잔 올리며 먹는 제사 밥 또한 죽이지 않는가.




난, 제사 밥을 너무 좋아해, 명절이나 제삿날을 유달리 기다린다.
어릴 때부터 다른 친구들은 새 옷이나 용돈 얻으려 명절을 기다렸으나,
난 제사 밥 때문에 기다렸으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짐작가지 않는가?

제사 밥을 좌우하는 것은 탕국인데, 정영신씨 탕국 솜씨도 일가견이 있다.
연 삼일동안 제사 밥을 비벼먹었는데도, 아직도 미련이 있다.




정영신씨의 여동생 정주영씨와 아들 김희중과 함께
용인 천주교 공원묘원에 계신 어머님께 인사드리러 갔다.
오다 접촉사고를 내어 트럭운전수에게 오 만원 뜯기긴 했지만...

저녁 먹으며 추석 기념주 한 잔 없냐고 물었더니, 제사지내고 남은 청하를 내놓았다.
난, 청주 종류는 잘 마시지 않지만, 어쩌랴!
어제 공윤희씨가 사 준 소고기 구워 홀짝 홀짝 마셨더니, 불편하게 취해버렸다.




저녁에 달 보러 나갔으나 구름 속에 숨어 소원도 제대로 빌지 못했다.
너무 빌 것이 많아 조용히 편지에 적어 보내드리기로 했다.
늦은 시간에 조카 심지윤, 김중호씨 부부가 찾아왔다.

사 가져 온 족발에다 소주 한 잔 더 했다.



그런데, 일기를 쓰다 보니 같이 올릴 사진이 없네.
요즘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는 정영신씨 핀잔에 카메라를 꺼내지 않아서다.
아무래도 내가 말을 너무 잘 듣는 것 같다. 다시 반역의 카메라를 잡아야지.

그래도 먹고 싶은 것 양껏 먹고 취했으니, 명절은 잘 쉰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내 말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이 사진은 몇일 전 연신내 기자촌 넘어 사는 지인댁에서 찍은 북한산 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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