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술 마실 일이 잦다.

연이은 전시 오프닝에다 지인들과의 술자리가 줄 줄이다.

문제는 술이 땅기는데다 술을 마셔도 별 이상이 없는 게 탈이었다.

 

지난 토요일엔 조해인선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연이어 삼일동안 술독에 빠진 터라 망설여졌으나, 안 갈 수 없었다.

며칠 전에도 전화가 왔으나 일 때문에 못 받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새벽에 전라도 촬영 가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래! 술은 마시지 말고 얼굴만 보자”며 나간 게 탈이었다.

 

약속한 응암동 ‘푸른 언덕’으로 갔더니 길가 테라스에 자리 잡았는데. 술안주로 족발까지 시켜놓았더라,

좀 있으니 김수길씨도 불려 나왔는데, 그의 안색 역시 술에 쩔은 상이었다.

술 마시지 않을 작정에 콜라를 시켰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술이다.

콜라에 타서 한 잔만 마신다는 게 발동이 걸려버린 것이다.

소콜이 달아 그런지 술술 잘도 넘어 갔다.

 

조해인씨가 풀기 시작한 불교와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갑자기 20여 년 전 조해인씨가 선물한 돌부처가 생각났다.

정선 집 책장 위에 올려놓고 가끔 기도를 올렸는데,

이번 화재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돌은 불에 타지 않을 텐데 왜 부처가 보이지 않았을까?

언젠가는 새까맣게 그을린 모습으로 나타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죽고 사는 문제야 부처도 모를 텐데, 내가 어찌 알겠는가?

홀짝 홀짝 마신 술이 두꺼비를 여섯 병이나 까 버렸다.

술이 취하면 자빠져 자면 그만이겠으나, 내일 전라도 갈 일이 난감했다.

 

낮술에 젖어 허우적거리며 녹번동으로 들어갔는데,

김수길씨가 찔러 준 후원금을 전달하고는 그대로 뻗어 버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나보니, 여섯시가 가까웠다.

전라도 여산장터로 차를 몰았지만, 제 정신이 아니었다.

죄 많은 나야 가도 그만이겠지만, 옆에 탄 정동지가 무슨 죄냐?

 

죄 없는 껌만 입이 아프도록 씹고, 차만 세우면 자기 바빴다.

그러나 신의 가호가 있었는지, 무사히 마치고 잘 돌아왔다.

모진 목숨 명줄 하나는 정말 찔기다.

 

사진, 글 / 조문호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5일, 정영신씨와 함께 인사동에 전시 보러 갔다.

보아야 할 전시가 한 두 곳이 아닌지라, 고스톱으로 치면 일타삼피 격이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은 미얀마 민주시민을 위한 미술행동전이 열리는 ‘나무아트’였다.

서둘러 나온 것도 미술행동 서울 전 끝나는 날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생명평화 미술행동’이 추진한 미술행동전은 미얀마 민주화 항쟁을 지지하는

홍성담, 박건, 주홍, 박재동, 김진하씨 등 42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목숨 걸고 싸우는 미얀마 국민들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41년 전의 광주를 떠 올리게 하는 참상에 온몸이 떨리지만,

타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가슴 조릴 수밖에 없다.

그들을 지지하는 연대가 미얀마군부독재정권을 종식시키는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4월15일부터 29일까지는 ‘안성맞춤아트홀’에서 전시된다.

 

두 번째는 김수길씨의 ‘보이지 않는 도시’전이 열리는 마루 '아지트갤러리'로 갔다.

전시 작가인 김수길씨를 비롯하여 유진오, 박윤호씨를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에는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시간 지우기란 철학적 제목이 사뭇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낙엽처럼 쌓인 기억의 파편들은 작가의 추억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을 지운다는 것은 세월 지우기에 앞서 추억을 지우는 일이다.

 

작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시간지우기 작업을 보여 주었는데,

지워지는 시간의 파편 속에 세월의 아쉬움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의 카메라는 표현의 도구일 뿐, 사진이라기보다 그림에 가깝다.

이러한 심상 풍경은 여운이 깊지만, 다소 난해할 수도 있다.

숨은 기억을 찾아내는 퍼즐놀이처럼, 보는 이의 독해를 요구한다.

 

작가는 “잊기 위해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지운다.”고 말한다.

김수길씨의 도시풍경 ‘보이지 않는 도시’는 16일까지 열린다.

 

다음에는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리는 강찬모화백 초대전을 보러갔다.

전시장 입구에 박재동화백 작업실이 인사동 복덕방처럼 자리 잡고 있다.

 

집중하는 작업에 방해 되겠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눈인사만 나누었으면 좋으련만, 기어이 일어서게 만들고 말았다.

 

박화백이 인사동에 둥지를 틀고부터 항상 마음 든든함을 느껴왔다.

삭막해져가는 인사동에 한 가닥 단비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강찬모 초대전이 열리는 '인사아트프라자'1층에는

히말라야 산맥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강찬모씨는 손님을 만나고 있어 작품부터 살펴보았다.

 

오래전 히말라야에서 받았던 영감이 작품으로 승화되어 신비로운 빛을 쏟아냈다.

자연의 경이에 앞서 한 작가가 올리는 기도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마법처럼 펼쳐진 산세는 자연의 실체와 작가의 시적 언어가 어우러져 

보는 이들로 하여금 명상의 세계로 이끈다.

금분으로 드러낸 석양의 색조 또한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했다.

 

좋은 작품에 어찌 돈이 따르지 않겠는가?

대작은 억대를 호가하는 잘 나가는 작가다.

 

세치 혀로는 도저히 그의 작품을 말할 수 없다.

작업노트에 적힌 마지막 글 외에는 잔소리에 불과하다.

“눈물겹다. 따뜻하다. 행복하다. 신비롭다.”

 

전시는 20일까지 열린다.

 

꼭 보아야 할 전시가 남았으나, 술벗의 기다림이 마음에 걸렸다.

‘유목민'에는 ‘뮤아트’ 김상현씨 노래 소리가 골목을 촉촉이 적셨다.

 

뒤이어 ‘아지트’에 있던 김수길, 유진오, 박윤호씨 까지 합류했으나,

다음 약속이 있어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이튿날, 못 본 전시를 보기위해 다시 인사동에 나왔다.

‘갤러리 밈'에서 열리는 한국 최초의 여성 클라이밍 산악사진가

강레아의 ’소나무 바위에 깃들다‘를 보기 위해서다.

 

전시장을 돌아보니, 사진이 아니라 마치 산수화 같았다.

그가 보는 시각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위치에서 보기에 선경에 다름 아니다.

자일에 메 달려 바라보는 아슬아슬한 쾌감은 작가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보여주는 주제는 암벽에 뿌리 내린 소나무다.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소나무 자태에 반해버렸다.

 

고고함을 뽐내는 눈 덮인 소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정경이 아니다.

흐리거나 눈 오는 악천후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사진가의 필사적 의지가 필요하다.

입이나 머리로 사진하는 사람이 많은 세태라, 그의 노력이 더 돋보이는 것이다.

 

전시는 5월2일까지 열린다.

 

인사동에 전시 보러 가자

날이면 날마다 열리는 전시들이 아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일요일은 녹번동에서 개기는 날이다.

만사를 재처 두고 이불 속에 딩구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친구도 싫고 꽃놀이도 싫은 걸 보니 갈 때가 된 것 같다.

 

오후 늦게서야 일어나 먹을 것을 찾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조해인 시인이 응암동에서 소주 한 잔 하잖다.

꾀죄죄한 몰골로 나갔는데, 봄바람이 제법 쌀쌀하더라.

 

‘호주방’이란 술집인데, 새로 생긴 술집 같았다.

소주방도 색시방도 아닌 호주방은 또 뭔가?

 

조그만 술집에서 오뎅탕을 안주로 소주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조해인씨는 애늙은이된 박한웅씨 아들 장가 가는 소식을 전해주었고,

김수길씨는 4월9일부터 인사동 ‘마루’에서 개인전을 한다고 했다.

 

그 날의 화두는 젊은시절 놀았던 신촌 방석집 이야기였다.

주머니 탈탈 털렸던 그 때의 끈적한 추억을 건져 올렸다.

빈속에 들이키는 짜리리한 소주 맛에 춘정을 녹였다.

 

사진, 글 / 조문호

예전에는 인사동에서 술 마실 기회가 많았지만,

요즘은 은평 지역에서 마실 기회가 더 많아졌다.

그 곳에 정영신씨를 비롯하여 조해인, 김수길, 김명성, 서인형씨등

가까운 분들이 많이 살아 종종 술자리가 만들어진다.

예술인 ‘스마트협동조합’이 녹번동에 있는 것도 한 몫 하는 셈이다.

 

지난 25일 오후 김명성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녹번동 있으면 ‘마포나루’로 오라는데, 나의 움직임을 훤히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역에서 녹번동으로 이동 중에 전화를 받아 술집부터 먼저 들렸는데,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조해인, 김수길, 백승호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포나루’는 서부경찰서 뒤편에 있는 조그만 횟집인데,

가격이 저렴한데다 주인의 넉넉한 인심까지 한 몫해 김명성씨 단골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가격이 싸다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찾기에는 부담스럽기 마련인데,

원님 덕이 아니라 김명성씨 덕에 매번 나팔 부는 집이다.

지척에 이청운씨 화실도 있으나, 함께 못함이  마음에 걸린다.

 

갈 때마다 회에다 멍게, 전복, 생선구이 등 갖가지 해산물이 코스요리처럼 나왔다,

해산물을 골고루 맛볼 수 있어, 오죽하면 거지 영양 보충하는 날로 여길까?

이 날은 모인 사람이 다섯 명이라 두 군데 나누어 술 상을 차려 놓았다.

 

김수길씨는 다음 주에 ‘마루아트’에서 개인전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고,

김명성씨는 김상현씨의 두번째 ‘뮤아트’가 이틑 날 개업한다는 소식도 주었다.

그 날의 화제는 김명성씨 소장품전인 ‘백범 김구 쓰다’전과 관련된 독립운동에 얽힌 이야기였다.

사회적위치가 높은 사람들의 부친 친일이력인데, 문제는 독립운동가로 조작한단다.

고증자료를 근거로 철저하게 진위를 밝혀야 한다.

 

그 날은 소주 한 병 남짓 마셨는데, 숨이 차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었다.

김명성씨와 먼저 일어났는데, 조해인씨는 시동이 걸렸는지 일어 날 생각을 않았다.

난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더 이상 마시지 않지만, 조해인씨는 달랐다.

몸도 챙겨야 할 나이지만, 안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술로 끝장을 본다.

 

그런데, 또 다른 사진들이 나를 기다렸다.

얼마 전 만해도 매일 같이 소식 주워 날라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렸으나,

이젠 다른 일도 있지만, 몸이 받쳐주지 않아 일을 줄이기로 했다.

가급적 전시장 출입을 자제하고, 포스팅도 중요한 일이 아니면 안 한다.

 

그전 같았으면 주변 분들을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어 올렸지만,

이젠 꼭 필요한 사진만 찍고, 찍어도 올리지 않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은평에서 만난 분들 사진을 함께 엮어 소개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양산에 가 있는 공윤희씨가 전화를 했다.

역촌동 ‘양갈비에 꼬치다’에서 기다린다며 빨리 오라는 것이다.

고깃집 이름은 흥미롭지만, 그 곳은 잘 가지 않는 술집이다.

가보니, 공윤희씨 뿐 아니라 조해인씨와 김수길씨도 있었다.

 

그 날은 폭설을 예고한 날이라 온종일 서울역 주변에서 맴돌았다.

백설이 휘날리는 서울역 전경사진이 한 장 필요했는데,

날씨가 포근해 그런지 간간이 내린 눈도 금세 녹아버렸다.

술 마시러 오라는 공윤희씨 전화에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달려갔는데,

술을 마시다 보니 진짜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또 다시 황급히 서울역으로 달려갔으나, 도착할 무렵 눈이 그쳐버렸다.

운이 없는 건지 찍지 말라는 건지, 마치 숨바꼭질하는 것 같았다.

부득이 눈 내리는 서울역이 아니라 눈 내린 전경으로 만족해야 했다.

 

남은 사진은 녹번동 정영신씨 집을 방문한 최석태씨와 서인형씨 사진이었다.

 때늦은 사진이지만, 그 날은 대취해 그런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또 언젠가는 연신내 청구병원 앞을 지나가는데 뒤에서 누가 불러 세웠다.

돌아보니 화가 박불똥씨 였는데, 장경호씨 집에 들렸다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세월이 지나면 이 사진 또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사람은 사라져도 사진은 어딘가 남아 떠돌테니까...

 

사진, 글 / 조문호

 

 

이웃의 삶과 마을의 역사를 기록한 사진집들이 몇 달 동안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인간관계를 이어가며 마을의 역사를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숨은 노력의 결과다.

 

대표적인 사진집으로 수몰을 앞두고 찍은 마동욱씨의 ‘아! 물에 잠긴 내 고향’이다.

20여년 전 장흥다목적댐 건설로 수몰된 장흥군 유치면 일대

수몰지역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집이다

 

정들었던 집이 포클레인으로 부서지는 장면과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의 

눈물이 담긴 장면 장면들이 2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세상에 나온 것이다.

 

수몰지역 주민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얼마나 그립고 반가웠겠나?

그건 누가 시켜 한 것이 아니라 한 사진가의 고향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사진을 기록한 마동욱씨는 수몰지역 외에도 탐진강을 비롯하여 장흥, 영암, 강진, 보성 등지를

기록하여 여러 권의 사진집을 펴낸바있는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이번에 출판된 마동욱씨의 ‘아! 물에 잠긴 내 고향’ 사진집 (가격12,000원)은

눈빛출판사의 '눈빛사진가선 065'로 발행되었다.

출판기념전이 장흥읍 평장리 새마을 창고에서 오는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두 번째는 한센인 정착촌인 강원도 대명원 만종마을 주민들이 직접 찍은

‘만종' 사진집도 나왔다.

 

사진가 노은향씨를 주축으로 결성된 '좋은 사진 모임 포트인' 회원들의 지도와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김동한, 김연태, 김정희, 신순재, 전석권, 제갈귀자, 이종애, 윤순심, 허정자씨 등

아홉 명의 주민이 직접 기록한 의미있는 사진집이다.

 

절망에서 희망의 삶으로 바꾸게 된 만종마을 주민 뒤에는

노은향씨를 비롯한 사진가들의 따뜻하고 끈질긴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외부와 단절되어 소외된 삶을 살아온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가 그리 쉬웠겠는가?

 

지난 10월 17일부터 23일까지 인사동 ‘마루아트’에서

‘만종, 60년만의 외출’이란 제목의 전람회도 개최한 바 있다.

 

사진 기록에 참여한 주민들이 인사동에서 열린 전시 개막식에 나오는 성황을 이루었는데,

그동안의 노력과 보람에 따른 고마움에 눈물짓는 정겨움도 볼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서울 이화마을을 기록한 사진가들이 ‘낙산 아랫동네 이야기’ 사진집을 펴냈다.

 

재개발에 의해 서울의 골목이 하나 둘 사라지고

오래된 집이 허물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진가들의 노력에 의해서다.

 김수길씨가 주축이 되어 이대형, 이정은, 이용민, 최재현씨가 나선 것이다.

 

서울시가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진행한 ‘낙산공공미술 프로젝트’에

김수길씨를 비롯한 사진가들이 합류하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십년 간의 기록이 집대성되었다는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쉼 없이 기록해 온 사진이라 그 가치가 더 큰 것이다.

 

그동안 해마다 동내에서 빨래줄 전시를 열어 주민들과 함께하는 자리도 만들어 왔다.

동내 관광화에 따른 주민들과의 갈등을 풀어가며 이룬 성과라 그 의미도 남다르다.

 

네 번째 사진집은 사진가 양시영씨 지도로 난곡 주민들이 직접 기록한 ‘난곡난향‘ 별별 사진책이다.

 

2018년부터 양시영씨를 비롯하여 김미숙, 김숙희, 박우인, 서민경, 오순환, 유순덕, 유현만,

이양자, 전영석씨등 열 명의 주민이 참여하여 난곡 난향마을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난곡난향 도시재생사업에 힘을 얻기는 했지만,

사진가 양시영의 마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을 정경과 마을사람의 삶의 무늬를 담아낸 난곡난향 사진집에는

주민들의  마을에 대한 사랑과 사진기록에 대한 자부심도 담겨있었다.

지속적으로 이어 간다면 먼 훗날 난곡마을의 소중한 사료집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일년 넘게 지속된 ‘코로나19’로 개인주의가 극에 달한 세태에 나온

마을 공동체 사진집이라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번에 출간된 마을 사진집 외에도 '구룡마을', '동자동' 등 소외지역을 기록하는 사진가도 있다.

이웃 사랑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노력과 성과에 뜨거운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글 / 조문호

 

‘낙산 아랫동네 이야기’ 사진집에서

‘만종, 60년만의 외출’ 사진집에서

낙산아랫동네와 그 곳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기록해 온 사진가들의

열 번째 전시 ‘낙산아랫동네 이야기'가 현장 빨래 줄에 걸렸다.

 

재개발에 의해 서울 골목이 하나 둘 사라지고

오래된 집들이 허물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진가들이

낙산 아랫동네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뜻을 모은 지가 십년이 되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아니더냐.

기록 최고의 가치인 지속성의 성과였다.

 

서울시가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진행한 ‘낙산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사진가 김수길, 이대형, 이정은, 이용민, 최재현씨 등이 합류하며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제 10년의 기록을 기념하는 사진집도 출판했다고 한다.

 

그 작업은 성곽에 둘러싸인 마을의 역사성에 앞서

거미줄 같이 얽힌 골목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생각 된다

그 골목골목에는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기억에서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작업이었다.

 

지난 27일 오후 무렵, 정영신씨와 전시가 열리는 낙산마을에 올라갔다.

호젓한 늦가을 정취도 맛볼 수 있어,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다.

 

골목골목 빨래 줄에 걸린 사진 외에도 갤러리 카페 ‘이화중심’에도 전시되었다.

전시된 사진에는 저 마다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낙산마을의 오늘은 물론 지난날까지 돌아 볼 수 있었는데,

더구나 마을 관광화에 따른 주민 불만으로 생긴 문화충돌 현장까지 기록했다.

 

낡은 스레트 지붕 위에 널린 운동화에서 그 곳 주민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고,

지워진 벽화에서 문화충돌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로는 십년동안 이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끌어 온

사진가 김수길씨를 비롯하여 김철균, 백승호, 석덕희, 이동준, 이정숙, 이창수,

이정은씨 등 여덟 명이고, 전시는 오는 11월 7일까지 열린다.

 

늦가을의 정취를 맛보며 낙산으로 바람 쐬러 가자.

성곽 따라 걸으며, 사연으로 아롱진 낙산아랫동네 사진들을 구경하자.

 

사진, 글 / 조문호

 

 

, 생일을 유달리 싫어한다.

나만을 위한 날이 부담스러워 어릴 적부터 생일은 어머니를 위한 날이라 우겼다.

정영신씨를 만나면서 피곤할 정도로 생일을 챙겨주기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음력생일이 양력생일로 바뀌었고

미역국 먹는 일이 유일한 생일치레가 되어버렸다.

 

모르고 지나치기를 원하나, 페이스 북을 시작하며 더 큰 곤욕을 치룬다.

생일만 되면 페북에서 나팔을 불어대니, 잊어버리기는커녕

잘 모르는 페친까지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날려댄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생일을 맞는 것이 부담스럽다.

 

지난 생일은 수해 때문에 정선 만지산에 갇혀있었는데, 늦은 오후에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조찬 약속이 저녁으로 바뀌기는 했으나

아들 내외와 손녀 하랑이까지 합세하여 조촐한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런데, 생일 지난 지가 일주일도 더 되었는데,.

지난 13일 정오 쯤 인사동 유목민에서 생일잔치를 갖는다는 기별을 보내왔다.

생일 핑계로 술 한 잔 하자는 전활철씨의 제안이라 안 갈 수도 없었다.

 

그 날은 전활철씨를 비롯하여 김상현, 김수길, 유진오, 안원규, 정영신씨 등

여러 명이 모였는데, 백숙에다 장어까지 구워 음식이 푸짐했다.

김수길씨는 생일케익을 사왔고, 유진오씨는 초가을에 입을 티스쳐를 사왔다,

마침 날씨까지 쌀쌀해 선물을 그 자리에서 입을 수 있어 더 고마웠다.

모처럼 유목민에 모인 자리에서 엊그제 있었던 기가 막힌 뉴스를 풀어놓았다.

 

정영신씨의 전언에 의하면 지난 금요일 마약수사대에서 전화가 왔더라는 것이다.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에 대마에 대한 글과 사진이 있다며 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짐작이 가는 누군가가 자기 요구에 씨알이 먹히지 않으니, 경찰서에 신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양아치보다 못한 인간과 긴 세월을 함께 한 것이 너무 분했다.

,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아, 정영신씨 전화 번호를 알으켜 준것도 그의 제보였다.

 

나야 대마합법화를 위해 발벗고 나선 입장이라 두려울 게 없으나

전화를 받은 정영신씨는 많이 놀란 것 같았다.

 

경찰에서도 블로그를 꼼꼼히 살펴보아 나를 훤히 알더라고 한다.

동자동 쪽방에도 찾아왔다지만,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한 것이다.

 

직접 대면했더라면 교도소에 갈 지언 정, 개인 일기를 내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겁 먹은 정영신씨가 그들이 지적한 사진과 글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런데, 정영신씨가 블로그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바로 비밀번호를 바꾸어 버렸다.

 

법이 잘 못 되었지, 올린 내용이 틀린 말은 아니잖은가?

애지중지 농사지은 걸 흔적도 없이 도둑질해 가는 놈이 없나,

자기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비정한 세상을 만드는

 모든 것들이 대마를 합법화하지 않아 생긴 일이다.

약초가 마약으로 둔갑되는 잘못된 법은 하루속히 고쳐져야 한다.

 

몇년 전에는 환경을 훼손한 엉터리 사진가를 탓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해 감방에서 벌금 대신 지낸 적도 있었다.

교도소 생활을 해보니, 쪽방에서 사는 것 보다는 훨씬 편하더라.

끼니 거정할 것도 없는데다 술과 담배를 할 수 없으니, 건강도 좋아졌다.

더구나 코로나 때문에 독방에 넣어주어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주변에 있는 지인들은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을 것이다.

블로그에 올리는 직설적인 문제점 지적들은 친분관계를 따지지 않으니,

또 무슨 일이 터질까 항상 마음 조아리며 지낸단다.

 

그래서 생일 축하하는 건배사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 이제 사고 그만 쳐요.”라고 외친 것이다.

 

"그래! 미안하다.

나이가 일흔이 넘도록 철이 안 들어 몸이 너무 가벼운 걸 어쩌랴!"

 

유진오씨는 생일 축하곡을 봄날은 간다로 도전장을 냈다.

내 십팔번이지만, 유진오씨의 새로운 버전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김상현씨까지 그 노래를 불러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버렸다.

 

, 봄바람이란 노랫말만 들어도 왜 이리 슬퍼질까?.

노래가 슬픈 것인지, 사는 게 슬픈지 모르겠다.

 

술이 취해 일어났더니, 곰장어 덕인지 거시기가 구물구물 한다.

약발 하나는 정말 죽인다.

그렇지만, 더 이상의 생일은 맞고 싶지 않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지난 월요일은 동자동 복귀하는 날이었다.
주말에 정영신씨 집에서 쉬고 아지트로 돌아가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 였다.
“행님 어딧습니꺼? 녹번동이마 시상식 중계 보면서 술 한 잔 하입시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출발한 것 같았다.

 

 



이 집은 밥을 하루에 한 끼만 먹는데, 정오 무렵에 밥 먹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마침, 정영신씨가 돼지고기 수육을 삶아 놓았다.
자식 자취방에 보내는 심정으로, 가는 놈 몸보신 시킬 속셈이었다.
마침, 전 날이 보름이라 오곡밥과 나물도 남아 있었다.
술은 이름도 거룩한 ‘불사주’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었다.

 

 



전활철씨는 오전에는 시장보러 다녀 항상 등짐을 짊어지고 다닌다.
보따리를 뒤지더니, 송이버섯을 꺼냈다.
철 지난 송이라 향은 없으나, 명색이 송이버섯이 아니더냐.
그 정도의 술안주면 요리집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누가 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요즘 제주에서 벌어먹는 공윤희씨였다.
반갑게 어울려 함께 술을 마셨는데, 화제는 온통 ‘기생충’ 이야기 뿐이었다.
난, 상 받는 자체를 좋아했지만, ‘기생충’이란 영화 내용도 몰랐다.
대략의 줄거리를 들어보니 흥미롭기도 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건드려 더 관심이 컸다.

 

 


그나자나, 이 집은 영화 보는 모니터는 있으나, 티브이를 볼 수 없도록 해 놓았다.
노트북으로 YTN 뉴스 틀어 놓고 마셨는데, 빈속에 들어가는 낮술이라 기분 좋았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기생충’ 상 받는 게 안 좋은 사람이 있겠냐마는, 전활철씨는 남다르다.
봉준호 감독 일행이 ‘유목민’ 단골이라 그 속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각본상에 이어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네 개 부문을 차지했다는 소식에 모두 들떴다.
다들 기분 좋아 축배에 축배를 거듭한 것이다.

 

 



전활철씨는 가게 문을 열어야 하니, 아쉽지만 먼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을 뇌까리며...
뒤이어 조해인시인이 왔고, 한 참 후에는 사진가 김수길씨도 등장했다.
코구멍한 집구석에 인근에 사는 인사동 사람들은 다 등장한 것이다.

 

 



술 기운에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여기 저기 전화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공윤희씨가 미국 사는 최정자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가며 바꾸어 주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라 반갑기는 했으나, 미국 같으면 그 때가 새벽3시 무렵이었다.
잠자는 노친네를 깨운 그 죄를 어쩌려고, 정말 대책 없는 술꾼들이다.

 

 



기분 좋게 취했으나, 조해인씨는 술을 너무 급하게 마신 것 같았다.
신이 나서 십팔 번 노래까지 불렀는데, 문제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부득이 집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자리가 파하자 나 역시 녹초가 되어버렸다.

 

 

 

밥 먹으며 간단히 끝내려 했던 술자리가 결국 하루 종일 땡땡이 친 셈이다.
자고 일어나니 몸속의 기생충이 들고 일어났는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불사주'는 관절에 특효인 약술로 조금씩 마시면 아주 편하게 취하는 좋은 술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술도 지나치면 독일 뿐이었다.

 

 

 

몸이 안 좋아 술을 피해 다니니, 술이 나를 찾아다니는 격이었다.

 

 



하루종일 땡쳤으니, 국 쏟고 뭐 데인 격이지만 누굴 원망하랴!
술이 원수냐? 상이 원수냐? 친구가 원수더냐?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