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늦은 시간, 소설가 배평모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쪽방촌 사람들과 어울려 일찍부터 술이 취해, 아내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을 또닥거리고 있는데,

인사동 ‘유목민’으로 나오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택시비를 줄 테니 빨리 오라 성화지만, 난 일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뒤가 걸려 안 된다.


결국 페북에 올리고 나갔는데, 취기에 걸러지지 않은 이야기로 난리가 났다.

정영신에 의해 급히 내려지긴 했으나, 부산에서 이광수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까지 했다.

작업이 끝나면 꼬리 내리고 집에 들어갈 것을 자기 교수직을 걸고 장담한다는 것이다.

‘유목민’에 도착하니 배평모씨는 김수길씨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반갑기는 하지만, 참 징그러운 친구다.

30여년 전 인사동 ‘레떼’에서 처음 만나 이틀 동안 자리를 옮기지 않고 술을 마셨던 그런 친구다.

그도 나처럼 아내와 헤어져 풍기에서 소설만 쓰는데다, 기초생활수급자인지라 더욱 더 동료의식을 느낀 모양이다.

지금은 해방된 45년부터 지금까지의 한국근대사를 쓰고 있는데, 장장 열권이 넘는 대하소설인지라 잘 팔릴까 걱정스럽다.

김수길씨는 나에게 술 한 병을 선물했는데, 그 자리에서 까 버렸다.

뒤늦게 김명성씨와 서길헌, 최건모씨가 합석했으나 술이 취해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기억조차 없다.

단지 김명성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는 희소식만 머리에서 윙윙거릴 뿐이다.


사진,글 / 조문호















김수길씨의 ‘시간지우기’사진전이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열렸다.

난, 오래전부터 인사동에서 김수길씨를 보아 왔지만, 사진을 한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80년대 중반무렵 인사동에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이란 카페가 있었는데,

그 카페를 운영한 주인이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일단, 그림공부를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사진들이 그림 같았다.

오래된 활동사진이 돌아가는 느낌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중첩된 이미지는 작가의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 낸 것들인데, 암울하고 처연한 풍경이었다.

앙상한 가로수가 펼쳐있고 그사이에 실루엣의 사람이 부각된 가운데. 저 멀리 버스도 보인다.

작가의 기억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뭔가 정처 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면서도, 한편으론 쓸쓸해진다.

또한 꽃 위로 웅덩이가 있는 시골길이 정겹게 펼쳐져 있다. 애틋한 고향에 대한 기억인 것 같다.

모든 사진들이 숨은 그림 찾는 퍼즐 같다.

작가는 왜 시간을 지우는 것인가? 사라져가는 시간을 지운다고 말할 때는 잊기 위함인가?
아니, 그는 잊기 위함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지운다고 한다.


한 때는, 서울 사대문 안의 이화동 낙산 뒷골목을 기록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엔 사실적인 기록이 아니라 정반대의 추상적인 기억의 기록을 선보인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현실기록보다 창의적 기록으로, 한 걸음 나아갔을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난다면 이화동의 현실기록이 더 빛나지 않을까?

어찌 보면, 그 가치기준 자체가 허망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잡지 ‘카페人’ 발행인 손한수씨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컷을 위해 작가는 오늘도 지운다.
 잊지 않기 위해 시간을 지운다.
 그렇게 응축된 순간들의 이야기는 울림이 크다.
 지우면 여운이 깊다”

글 / 조문호












아래 사진은 정영신씨가 오프닝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작가를 비롯하여 이순심관장, 노광래, 김구, 임경일, 편근희씨 등 낮익은 분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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