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전시가 있어 모처럼 인사동 나왔다.




옛 민정당사 자리 호텔공사는 이제 마무리를 했다. 머지않아 인사동이 더 낯설 것이다.




거리에는 임금님이 나와 광고판을 들고 있고, 지난날이 그리운 유랑 악사는 멀쩡한 날 ‘봄비’를 불렀다.




요즘 인사동에 나와도 갈만한 술집이 별로 없다.
돈에 밀리고 젊은이에 밀려, 길 잃은 기러기 신세다.
아지트로 죽치던 ‘유목민’도 젊은이 아닌 돈에 밀려났다.




사실상, 인사동을 못 잊어 배회하는 것은 공간의 추억이 아니라, 그 곳에서 놀던 사람들의 추억이다.




그것도 살아남은 자 보다 죽었거나 볼 수 없는 자들의 추억이 짙다.
제일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천상병시인이고,
뒤이어 거리의 철학자 민병산선생, 방송작가 박이엽선생, 인사동 풍류객 이계익선생,
넋을 부르는 민속작가 심우성선생 같은 많은 분들이 생각난다. 



땡초시인 적음과 최루탄 냄새 풀풀 풍기던 사진기자 김종구, 별만 그렸던 강용대,
콧수염 사진가 김영수, ‘민예총’의 대부 김용태, 밤안개로 불리는 목탄화가 여운,
강단 있는 민중화가 문영태, 그리고 살아있어도 볼 수 없는 화가 박광호와 이청운도 있고,
미국으로 떠난 최정자시인도 그립다.




그들과 어울리던 ‘실비집’이나 ‘누님칼국수’, ‘시인통신’, '하가', '레떼'

‘수희제’는 모두 사라졌지만, ‘부산식당’이나 ‘사동집’, ‘귀천’ 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잘 가지 않는 것은, 집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만났던 사람이 그리운 거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만나려면 만날 곳이 있어야해 ‘다리 밑’에 자리 잡기로 했다.
‘다리 밑’은 낙원상가 계단 밑에 있는 코 구멍만한 술집인데, 간판이 없어 계단집으로 불렸다.
통인의 관우선생이 ‘다리 밑 집’으로 고쳐 불렀으나, 더 줄여 ‘다리 밑’으로 부른다.
옛날엔 거지들이 다리 밑에서 살았으나, 대개 태어날 때의 고향인 다리 밑을 좋아한다.
공사판의 함바집처럼 서민적이라 더 정겹다.




주종은 불문이나 관우선생이 개발한 시원한 생맥주에 막걸리를 타 먹는 막맥이 맛있다지만
통풍 때문에 맥주를 못 마시니 그 맛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안주가 싸다. 쫀득쫀득한 감자전 같은 대부분의 안주가 오천원이다.




이 날은 건축가 김동주씨와 통인의 관우선생을 만나기로 했는데, 처음보는 여인도 나타났다.
미끄러질 것 같은 입술도 매력적이지만 생글 생글한 눈웃음이 죽이더라.




그런데, 옆 자리에 아는 분이 있었다.
막사발 장인 김용문씨처럼 상투를 틀어 올린 권도경씨인데,
사진가 하형우씨께 전화 걸어 바꾸어 준 것이다.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좁았다.




그들의 건배사가 더 재미있더라.
술잔을 치켜들며 “이것이 무엇이요?”하니, 다같이 “정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정’이란 노래를 처절하게 합창했다.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 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그렇다. 다들 그 놈의 정 때문에 좋아했다 미워하는 것이다.




다음부터 그리운 사람 만날 때는 다리 밑에서 만나자.
받을 때나 줄 때나 한 결 같이 꿈속 같도록...

사진, 글 / 조문호





















낙원상가 계단 아래 자리 잡은 다리밑집은 다리 밑의 음습함이 정겹다.
테이블이라고는 두 개 뿐인 코 구멍만한 대폿집인데, 닭 똥집이 별미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좁은데서 부딪히는 사람냄새가 더 좋다.






지난 7일저녁 무렵, 편완식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인사동 찍사가 인사동에 안 있고 어딧냐?’는 것이다.
산토끼가 어디를 못 가겠냐마는, 동자동 쪽방에 살림 차린 걸 모르진 않을텐데...
연휴라 방구석에만 쳐 박혀 있어 목구멍이 근질 근질하던 차에 반가운 기별이었다.
라면 끓이려 물을 올려놓았으나, 꺼버리고 나갔다. 


 



다리밑집에 들어가니 편완식기자와 건축가 김동주, 화가 이목을씨가 있었는데, 옆자리에 미모의 여인도 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 여인인데, 일전에 인사를 나누었다기에 더 이상 묻지도 못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틀니라고 끼고 나올 걸 후회막급이었다.






그런데, ‘통인’ 관우선생은 춥다며 옷 가지러 간 사람이 강원도 포수란다.
김동주씨가 설계한 강화도의 ‘통인미술관’ 준공검사가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날의 화제는 단연 미투였다.






화가 이목을씨가 국회의사당에서 초대전을 열었는데, 미투에 휘말려 전시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큐레이터에게 수제 명함을 주기위해 성향을 물은 것이 화근이란다.
명함에 그림 그리려, ‘굵은 것을 좋아하냐? 가는 것을 좋아하냐?’고 물었단다.
펜그림 굵기를 물었으나, 그 여인은 요상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다들 한바탕 웃고 넘겼으나, 편완식기자가 말을 받았다.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있던 최효준씨가 당한 황당한 이야기였다.

부하 직원인 큐레이터에게 보낸 동영상이 문제가 되었는데,
작업에 상상력을 주려 보낸 동영상이 미투의 올가미에 걸렸다는 것이다.
어찌, 웃기 위해 농담도 못하는 이런 살벌한 세상이 되었는가?
집에서는 마누라 한테 엎어지고, 밖에선 입도 벙긋 못하는 남자 수난시대다.




 


농담 잘하기로 소문 난 나는 왜 시비 거는 여인이 없는건가?
사람 차별한다며 투덜거렸더니, 돈도 권력도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란다.
그 날도 전시 기획하는 미모의 여인에게 진한 농담을 했으나, 웃기만 했다.
아무래도 주둥이만 살아있는 능력 없는 사내로 보이는 것 같았다.
아이구 서러버라! 사내 취급도 못 받을 바에야 차라리 잘라 버릴까보다.


'




역시, 술타령은 미투가 최고더라!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통인가게김완규회장이 마련한 정월대보름맞이 과메기파티가 통인가게 상광루에서 열렸다.

지난 22일 오후5시경 열린 이 모임은 과메기와 늦겨울 추위를 함께 맛보는 자리였다,

통인에서 해마다 모임을 가져왔으나, 올해는 공교롭게도 정월대보름날 잡힌 것이다.

 

매콤한 추위에서 먹는 과메기의 진 맛은 마누라를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지경이라는데,

포항에서 가져온 이 곳 과메기는 꼬들꼬들하게 기름지게 잘 말라 여느 식당의 과메기와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이 연회만은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참석해, 해마다 그 진 맛을 보는거다.

그러나 아무리 과메기 맛도 맛이지만, 어디 반가운 사람들의 정담에 비하랴!

대개 새해 들어 첫 만남이라 과메기 쌈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술술 말아 먹은 것이다.

 

아직 연회장 매화나무의 꽃은 피지 않았지만, 예쁜 여인들의 미소가 넉넉했으니 그마저 부족함이 없었다.

연회석을 자주 만드는 관우 김완규씨는 왜 부부가 함께하는 자리보다 혼자 노는 따로 국밥을 좋아하는지?”

모두들 궁금해 하지만, 본디 옛날 한량들이, 어디 마누라 데리고 노는 것 보았는가?

그리고 이번 토요일에는 크래식기타와 만돌린으로 풍악까지 한 판 울린다니 기대된다.

 

이 날 모임에는 통인 김완규회장을 비롯하여 성악가 이동환, 화가 김양동, 에밀리 영, 최석운, 황주리, 건축가 김동주,

도예가 김정범씨, 라선영 작가, 한만영, 조균석, 손수호 교수, 편완식, 이광형 기자, 사업가 민호기, 황태인, 신재철,

황윤식, 윤경원, 손제희, 김성욱, 변현숙, 이방주, 감정규, 박상금, 정성기, 정미선, 손동범, 정진수, 강윤구, 강봉섭,

송재엽, 미혜, 김보선, 오만철, 손혁수, 서장원, 이마리, 강혜숙씨 등 각계 명사 40여명이 참석하여 상광루를 북적였다.

 

그러나 반가운 사람들 만나 사진 찍기 바빠, 과메기 먹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술이야 한숨에 쭉 들이키면 되지만, 과메기는 김, 미역, , 상추, 마늘, 고추 등 이것 저 것 챙겨 넣을 것이 많아

여간 번거롭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과메기가 많이 남아 몇몇 사람은 도시락을 싸기도 했지만,

난 마누라에게 상납하려 비닐장갑에다 과메기 세 마리와 파, 미역만 좀 챙겨 넣었다.

비닐장갑에 바람을 불어 넣었더니 마치 멋진 조각품 같았다.


"어디 예술이 따로있냐? 재미있게 사는게 예술이지..."


 







































술 취해 손제희씨와 황홀한 포즈까지 취하며 작별인사까지 했으면, 빨리 집에 가야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가지 못하듯  유목민에 또 들린 것이다.


그런데 이게 누군가?

이수호선생과 이행자시인, 이도흠교수가 계셨고,

퇴청하는 김진하씨를 만나 급히 카메라부터 잡았으나, 그만 초점이 빗나가고 말았다.


이수호선생 팀에 어울려 또 한 잔 걸친 건 좋았은데, 결국 마누라 줄 과메기를 꺼내고 말았다.

본래 음식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니까...

 

  사진, 글 / 조문호 









 

 



‘다리밑 집’은 인사동에서 제일 작은 대폿집입니다.
본래는 콧구멍만 구멍가게였는데, 2년 전부터 술집으로 바뀌었지요.
이름도 없이 그냥 ‘다리밑 집’이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낙원상가 악기점으로 올라가는 계단아래 터를 잡았거든요.
테이블이야 2개뿐이지만, 비집고 앉으면 열 명이나 앉을 수 있을까요.
감자부침이나 닭똥집 맛이 귀가 막혀, ‘통인’ 김완규씨가 단골이랍니다.

지난 15일 오후 길가다 들렸더니, 김완규씨와 건축가 김동주씨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반갑기도 하지만, 김동주씨와는 오랜만이라 자리에 눌러 앉았습니다. 

술자리에서 관우 김완규씨의 부친 인제 김정환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업을 아들에게 넘겨주고 나니, 친구 분께서 큰 일 난다며 우려 했답니다.
사실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관우는 밤새도록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는데.
부친께서 “난 아들을 믿는다”는 말에 정신을 차렸답니다.

지금은 김완규씨가 아들에게 사업의 일부를 넘겨주었는데,
아들 역시 부전자전이라 술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부친에게 배웠던 “난 아들을 믿는다‘는 말을 하긴 했으나, 걱정이랍니다.

다른 약속 때문에 술을 급하게 마셨더니, 대번 취해버렸습니다.
먼저 일어났으나 몸이 비틀거렸습니다. 흔들려도 기분은 좋지요.
화가 장경호씨가 기다리는 ‘유목민’으로 가며, 인사동거리를 찍습니다.
지나치다 ‘사동집’ 주인장 송점순씨를 만나 윙크도 보냈고요.

‘유목민’에는 장경호씨와 강행복, 이승철씨가 술을 마시고 있더군요.
이번에 나온 이승철시집 “그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도 받았습니다.

"사랑도 먹어야겠지만, 밥도 먹어야 살지요!"


반갑기는 했으나 이미 취해 더 마실 수가 없는데다,
사진에 거부감을 보이는 어느 여인네 히스테리에 도망쳐야 했습니다.
문제는 지하철에서 잠들어 한없이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아이구! 내 팔자야~”


사진, 글 / 조문호




















한 열흘 동안 정선에 있다 지난 28일 서울로 돌아왔다.

새로운 전시들도 볼게 많지만,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러 인사동에 나갔다.
인사동 거리는 다소 여유로웠고, ‘통인가게’ 마당의 공사현장엔 한옥으로 된 2층 누각이,
제법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날씨가 더워져, 술집들도 골목길 좌판이 성시였다.

연 이틀 동안 인사동 전시 작품들을 돌아보며 많은 분들을 만났다.
김규헌, 조충래씨의 그림전, 양지운씨의 도자전, 권치규씨의 조각전 등 인상 깊은 전시들이 많았다.
반가운 분으로는 ‘인사동 유목민’에서 전활철, 공윤희, 김명성, 조미자, 노광래씨를 만나 소주 한 잔 했고, ‘툇마루’의 ‘인사모’ 모임에서는 민건식회장을 비롯하여 김완규, 김동주, 박원식, 송재섭, 권치규씨 등 아홉 분이 모여 막걸리를 마셨다. ‘아지오’에서는 한정식선생과 한진희씨를 만나 서양 빈대떡도 먹었다.

그러나 술 마시며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세월호와 관련된 정치판 이야기라 짜증이 났다.

뒤숭숭한 세상을 어쩌랴마는 이제 그만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다.

 

“6월5일이 울 아부지 제삿날이라 내일 다시 정선으로 간다. 표 찍고, 제사지내고 오면 그 때나 세상이 좀 조용해지려나?”



 

 

 

 

 

 

 

 

 

 

 

 

 

인사모(인사동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1박2일 일정의 여행을 경상북도 상주로 떠났다. 

이번 나들이는 상주시 은척면 출신인 이상배, 김동주씨 주선으로 가게 되었는데, 지난 16일 오전 8시에 출발하여 상주옹기, 명주박물관, 곤충박물관, '은자골탁배기'공장, '고려왕검연구소', '동학교당', '묵심도예', 상주5일장 등을 돌아본 후, 이틀날 오후5시경 서울로 돌아왔다. 함께하신 분으로는 고위공직자인 이상배씨를 위시하여 녹색성장위원장 김형국씨 내외, 서화가 김양동씨, 통인그룹 대표 김완규씨, 동원건설 대표 송재엽씨, 서양화가 이목을씨, 건축가 김동주씨, 필자 등 모두 아홉 명이 함께해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

 

이 번 상주 나들이는 원님 덕에 나팔 분 격이었다.

이상배씨 덕분에 가는 곳마다 칙사 대접을 받았는데, 상주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보고 느낀 것들도 많았다.

명장들의 공방인 정대희씨의 '상주옹기', 칼을 만드는 이상선씨의 '고려왕검', 도자기 만드는 이학천씨의 '묵심도예' 등 이 지역 명장들의 작업현장을 골고루 둘러볼 수 있었고, 상주시에서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귀촌, 귀농에 대한 세미나도 들었다.

그리고 잠사곤충사업소에 들려 명주박물관과 곤충박물관은 물론 누에에서 명주로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둘러보았는데, 인근의 가로수마저 개량된 뽕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특히 3선 국회의원에 경북지사, 서울특별시장, 내무부장관, 정부공직자 윤리위원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이상배씨가 누에를 보며 던진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누에가 실을 다 풀어내고 생을 마감하듯, 자신도 누에처럼 모든 것을 다 바쳐 공직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고향에 잘못된 점을 알고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이틀 동안 노심초사하는 모습에서 잘못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그의 성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상주시 은척면에 동학본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최제우선생의 동학이념을 계승한 김주희선생께서 상주동학교당을 창건하여 동학경전과 동학가사 등 대대적인 간행사업으로 이념 위주의 교세화장을 꾀했다는데, 이곳에 동학의 유물들이 전부 모여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교당본부 건물5채를 비롯하여 유물 177종 1,084점이 전시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김주희선생이 타던 가마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숙소로 정한 상주시 은척면에 소재한 성주봉 휴양림의 풍광도 일품이었다. 울울창창한 산림과 계곡 요소요소에 팬션을 지어 환경친화적인 숙소를 조성해 놓은 것이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김동주씨 생가에 가서 또 한 번 놀랐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자택은 어떻게 지었을까?"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궁금했었는데, 옛 가옥을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해 놓았던 것이다. “툇마루나 문짝 하나하나에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데, 어찌 다시 지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역시 손 안대고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최고의 건축이었다.

 

상주 은자골 터가 명당은 명당인 모양이다. 오래 전에 동학교당을 세운 것도 그렇지만,

이 깡촌에 이상배씨와 김동주씨 같은 훌륭하신 양반이 두 분이나 태어났으니 말이다.

잔치 집처럼 마당에 자리를 본 만찬장 또한 최고였다. 논에서 우는 개구리소리를 들으며 먹고 마신 여러 가지 음식들은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었던, 그 곳 만의 진미였다.

 

손님들을 위해 정성껏 장만한 나물들을 보내 주신 이웃을 비롯해, 좋은 자리를 만들어 주신 이상배, 김동주님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혼자 고기 굽느라 고생하신 이목을님, 먼 길을 도맡아 운전해 주신 송재엽님, 식욕을 주체 못한 김완규님 등 함께하고 반겨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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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모’의 4월 정기모임이 지난 4월28일 오후6시30분부터 인사동 ‘툇마루’에서 있었다.

지난 3월 모임은 김용태씨 출판기념회와 날자가 겹쳐 참석하지 못했는데, 건국대 농학박사 전병태씨,

중대 의류학과 명예교수 정흥숙씨, “GUAM CS BLUE” 회장이신 이강춘씨 등 새로운 분이 세분이나 나오셨다.

그 외로  민건식회장님을 비롯하여 박일환, 이상배, 김완규, 김동주, 박원식, 송재엽, 강봉섭, 전국찬씨 등

모두 열 네분이 참석했다.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인지라  술이 당겨, 막걸리에다 소주를 타서 마셨다.

그래서인지 요즘 필름 끊기는 경우가 부쩍 많은데, 심지어는 카메라에 찍힌 사진마저

찍은 걸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있다.

박일환씨는 그런 일이 일년에 3-4회 이상이면 알콜 중독으로 보아야 한다며,

그러나 꼭 필요한 일은 대부분 기억한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저장키를 누르지 않으면 내용이 사라지듯, 기억도 저장해야 된다는 것이다.

헤어지기 아쉬운 몇 분들이 인근의 노래방에 들려 여흥을 즐기기도 했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인사모) 2월 정기모임이 지난 2월 27일 오후6시부터 인사동 ‘툇마루’에서 있었다.

이번 모임에는 민건식회장을 비롯하여 박일환, 김완규, 강봉섭, 김근중, 김동주, 김양동, 송재엽, 선우영, 조균석씨 등

열 한분이 참석했다.

빈대떡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셨는데, 이 집 막걸리는 맛은 있으나 술이 취하지 않아 제 구실을 못한다.

막걸리 몇 잔에 배가 불러 소주로 바꾸었는데, 술 잔을 단숨에 비우는 민회장님의 덫에 걸려 맛이 가버렸다.

‘툇마루’ 2층에는 급한 일로 박인식씨와 윤재문PD가 기다리고 있었으나 술이 취해 난감했다.

이날 술값 스폰서는 이대에서 법 가르치는 조균석교수라지만, 매번 얻어먹는 입장이라 좀 민망했다.

참석한 분 중 네분이나 법조인이라 회장님께 간곡히 부탁 드렸다.

다음 차례 술값 마련하려고 사기 한 번 칠 작정인데, 잘못되어 잡혀가면 법정에서 변론 좀 해 달라고...
우스게로 한 말이지만 좀 거시기해, 한 탕 더 뛰어야 한다며 줄행랑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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